칸트는 미의 판단들 다시 말하면
칸트는 미의 판단들 다시 말하면 취미판단을 범주의 네 국면들인 관계 양과 특성 그리고 양상에서 분석했다.
첫째, 취미판단이 일반 판단들처럼 한 개념 하에서 재현된 것을 포함시키지 않지만 재현과 특별한 무관심한 만족, 즉 욕망과 관심의 독자적 만족 사이의 관계를 제시한다.
둘째, 취미판단이 “이 장미가 아름답다”라는 식으로 논리적으로 특이한 형태지만 동의할 것을 강제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단순한 감각적 쾌의 보고와는 달리 객관적인 수락에 타이틀을 둔다.
아직은 역설적으로 어떤 논쟁도 그 누구에게 취미판단과 더불어 동의할 것을 강요할 수 없는 한 그것은 이성들에 의해 지지받을 수 있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셋째, 미적 만족은 실제로는 목적이나 기능이 없더라도 목적적인 형태의 한 오브제에 의해 일깨워지는데 어떤 일체로 해서 그것이 마치 이해되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목적적 목적성 Zweckmassigkeit ohne Zweck”을 지녔다.
넷째, 아름다운 것은 미적 만족에 필요한 참조를 가진 취미판단에 의해 주장된다.
이는 우리가 그 밖의 모든 것이 비슷하게 동요될 것임을 보장할 수 있는 한 오브제에 의해 우리 자신들이 이 방법으로 동요되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만족하는 것과 같은 것을 그것들이 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네 관점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칸트는 그것들이 어떻게 이치에 맞게 당연한 결과를 유추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그런 판단을 미리 가정한 상태들이 그것을 만든 개인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납득이 될 만하게 모든 이성적 존재의 것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실마리가 미적 만족의 무관심에 제시되었는데 만약 우리의 만족이 개별적인 관심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일종의 상호 주관성을 고용할 것이란 점이다.
하지만 통합적인 정당성 선험적 취미판단에는 좀 더 직관적인 연역을 모색하는 것이 요구된다.
칸트의 논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경험적 지식이 가능한 이유는 판단능력이 일반개념들과 특정한 감각-직관들을 상상 안에서 그것을 예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적인 판단의 경우들은 그렇지만 상상(재현들을 합성하는 사람처럼 자유로운 판단에서의)과 이해(판단의 우선하는 정당성 안에서의) 사이 한 일반적 조화를 미리 추정한다.
경험된 한 오브제의 형식상의 목적성은 칸트가 “상상의 자유로운 유희 a free play of the imagination”라고 하는 어떤 특정한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두 인식의 힘인 상상과 이해의 조화에 대한 의식에만 의존하는 강한 무관심한 즐거움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취미판단에서 확언하는 쾌이다. 상호 지식을 공유하는 일반 가능성이 허락되어 우리 각기에게 상상과 이해의 협동이 있다고 미리 추정한 이래 모든 이성적 존재는 이 인식적 힘들의 조화인 적합한 지각적 상태들 하에서 느끼는 역량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취미의 진정한 판단이 모두에게 사실임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