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미와 숭고의 감정에 대한 고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자신의 요리사가 그들의 가장 재기넘친 창작자이고, 자신의 섬세한 취미의 작품들을 고작 자신의 창고에서 발견하는 뚱보들은, 세속적인 농담과 조야한 익살에서 생기넘치는 즐거움을 얻게 되는데, 그들은 이러한 농담과 익살을 사람들이 고상한 느낌으로 자부심을 갖게 되는 바로 그러한 것으로 여긴다.
책을 읽으면서 잘 잠들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태한 사람이 있을 것이요, 모든 만족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상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인은 영악한 사람이 상업적 이윤을 계산할 때의 즐거움만을 받아들일 것이다.
또한 즐거움을 주는 대상으로 간주되는 한에서만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파리쫓기를 즐겨하는 도미티안같은 새나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싶어하는 A씨같은 시냥애호가나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특성에 따라 만족을 향유할 수 있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개념을 형성할 수 없어도 된다.”
칸트는 미적 지각과 개념 형성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인간적인 천재가 어떤 전적인 파괴로부터 일종의 재생을 통해 다행히도 스스로 고양을 이루어낸 후라면, 우리는 우리 시대에 예술과 학문에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견지에서도 미와 우아에 대한 올바른 취미가 꽃피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를 쉽사리 기만하는 거짓된 미광이 우리를 고상한 단순함으로부터 눈에 띄게 소외시킨다는 사실은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더욱이 일찌감치부터 도덕적인 감정을 젊은 세계 시민들의 가슴 속에 활동적인 느낌으로 고양시키기 위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교육의 비밀을 낡은 광기로부터 떼어내야 한다는 것도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순수함이 우리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단순한 취미로 판단해버리는 데서 얻어지는 일시적이고 범용한 만족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