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법규 Traffic rules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색을 신호체계로 연구하려는 사람에게 교통법규는 대표적인 연구영역이다.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기호학, 그리고 언어학이 이 영역에서는 서로 만나고 얽혀서 서구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신호체계(나중에 서서히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가 되었다.
그런데 교통법규와 그 표현수단인 신호표지가 사회학자뿐만 아니라 기호학자나 이미지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에게도, 이렇게 적은 언급과 연구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도로표지는 해운신호, 철도신호의 유산이다.
19세기 말, 도로표지가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던 체계와 완전히 새로 완성된 도로표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표지와 신호의 엄밀한 계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면 관계로 이 계보를 다 더듬을 수 없다.
다만 교통법규와 색채세계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교통법규에 사용되는 주요한 색의 기능 방식만 지적하고자 한다.

신호표지는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수평 표지(도로면에 그려지는 지시사항), 수직 표지(도로표지판), 빛에 의한 표지(교통신호, 점멸신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각 색의 의미, 함축성(말의 명시적인 의미에 상대되는 암시적인 의미, 그 말이 띠고 있는 풍성한 감정적·사회적·문화적 의미)은 변하지 않는다.
사용되는 색은 빨강, 파랑, 노랑, 녹색, 흰색, 검정에 한정된다.
이들 여섯 가지 색은 서구에서 중세 이래로 문장(紋章)이나 상징해 온 색채 체제의 기본색이다.
15∼17세기에 확립된 색상체계에 의한 흰색과 검정의 배제나, 원색과 보색의 ‘과학적’ 구별이나 근래의 보라색, 분홍색, 주황색의 지위향상도 이들 여섯 색의 우월한 위치는 넘볼 수 없었다.

교통표지판에서 가장 중요한 색은 흰색, 빨강, 파랑의 세 가지이다.
그러나 흰색은 하나의 색으로 사용되지는 않고 다른 색과 대조를 이루며 사용된다.
흰색이 그 자체로 고유한 의미를 갖지는 않기 때문에 대부분 바탕색으로 사용된다(크림색이나 밝은 베이지색도 좋다).
때문에 흰색은 대부분 다른 색과 조합되어 의미를 유발한다.
반면 빨강은 언제나 위험과 금지의 관념과 결부된다.
빨강이 표지를 덮고 있는(무수한 예가 있다) 경우에는 위험을 나타내어 흰색과 함께 통행금지, 정지, 그리고 파랑과 함께 쓰인 몇몇 경우에서는 주차금지를 나타낸다.

파랑이 바탕색인 경우 ― 그러한 예는 많다 ― 규제(최고속도, 방향규제 등)나 지시(주차, 병원, 고속도로구간 시작)를 의미한다.
이 경우 파랑은 흰색과 함께 사용된다. 노랑은 특히 일시적인 지시의 표지로 사용된다.
노랑은 차선변경 혹은 노선변경(사고, 공사, 작업 등)의 상황에서 운전자에게 신중한 주행을 요망하는 표지판의 바탕색으로 사용된다.
사용빈도가 가장 적은 녹색은 언제나 허가의 의미로 사용된다(이 책의 항목 가운데 하나인 「신호등」이 이것에 해당한다).
녹색은 또 이용이 권장되는 주 도로(예컨대 우회도로)나 어떤 범주의 도로(파랑, 노랑, 녹색, 흰색 등 각 색의 서열은 일반적으로 고속도로, 간선도로, 중간규모 도로라는 교통도로망의 서열에 대응한다)를 지시하기도 한다.
검정색은 단순히 어떤 정보(흰색 바탕 위에 검은 기호)를 지시하거나, 사선을 부가하여 금지(추월금지, 제한속도, 클랙슨 금지)의 해제를 알려준다.

이렇다 하더라도 교통법규의 색채는 우리의 생각만큼 엄밀하지 않고 유연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아마도 이러한 유연성 때문에 이 신호체계가 유효함이 틀림없다.
각각의 색은 여러 개의 암시적 의미와 명시적 의미를 가지며, 또 같은 관념도 다양한 색으로 표시할 수 있다.
또한 나라에 따라서(독일, 이탈리아, 영국) 지방이나 도로의 종류에 따라서 표지가 변형되기도 한다.
그러나 금지를 의미하는 빨강과 같은 강한 개념은 어느 나라에서나 같다.
옛날의 교통법규 교본에 빨강은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는데(그러나 파랑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금지항목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두꺼운 교본에는 빨강이 넘쳐난다.
바야흐로 위험과 금지가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만으로도 20세기 초부터 20세기 말까지 현대사회가 얼마나 변모했는가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 「자동차」, 「국기」, 「문장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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