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영화 

<비디오아트의 마에스트로 백남준 vs 팝아트의 마이더스 앤디 워홀>(숨비소리) 중에서


워홀의 작업실 ‘소방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
어빙 블럼도 와서 영화배우들의 초상화는 뉴욕보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시하는 게 낫다면서 페러스 화랑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자고 제의했다.
워홀은 블럼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1963년 9월 마지막 주 페러스 화랑에서의 전시를 위해 워홀은 캠코더를 메고 친구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전시에서 엘비스와 리즈의 초상화를 소개했다. <붉은 엘비스>란 제목으로 수십 점을 제작한 워홀은 이번에는 로큰롤의 왕 엘비스를 기타를 든 모습 대신에 권총을 들고 막 쏠 태세인 카우보이의 모습으로 제작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실제 사람의 크기보다 확대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영웅으로 보이도록 했다.
당시 인기가 대단했던 미남배우 말론 브란도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는 모습도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다.
권총과 모터사이클은 남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들로 여성들에게 엘비스와 브란도를 성적 우상으로 인식시키기에 적절했다.
블럼은 워홀이 엘비스를 한 상자 보냈다면서 모두 합하니까 198cm 높이에 폭이 457cm에 달하더라고 말했다.
리즈의 초상은 1m 정사각형으로 모두 12점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주 머무는 동안 워홀은 2시간짜리 흑백유성영화 <타잔과 제인>을 제작했다.
깡마른 메드가 정글의 왕자 타잔 역을 맡았고 곱슬머리 나오미 레빈이 제인 역을 맡았다.
<보편적인 사랑>에서 괴물 거미 역을 맡았던 레빈은 워홀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말을 듣고 달려와 제인 역을 맡겠다고 자청했다.
말랑가의 말로는 레빈은 워홀에게 홀딱 빠진 많은 여자들 중에 하나라고 했다.
워홀은 자신이 묵고 있는 베버리힐스 호텔 목욕통에서 벌어지는 장면과 레빈이 옷을 홀랑 벗고 수영장으로 몸을 던지는 장면도 필름에 담았다.
올덴버그 부부도 단역을 맡아 열연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뒤 워홀은 계속해서 언더그라운드 영화제작자들과 어울렸는데 그들 대부분은 리투아니아 태생의 조나스 메커스가 주도한 영화제작자협회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레빈으로부터 메커스를 소개받은 워홀은 <키스>를 그에게 보여주었고 <키스>를 본 뒤 메커스는 워홀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키스>는 워홀이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부터 구상했던 것으로 50분짜리 흑백무성영화였다.
한 쌍의 남녀가 다른 동작 없이 키스하기에 여념이 없는 장면을 가까이서 찍은 필름이다.
촬영 장소는 레빈의 아파트였으며 레빈이 말랑가, 시인 에드 샌더스, 배우 러퍼스 콜린스와 50분 동안 키스하는 장면이 전부였다.

1963년 말 소방서를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좀 더 큰 장소를 물색하던 워홀은 47번가 이스트 231번지의 건물이 마음에 들었다.
전에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와 공중전화도 있었다.
워홀은 그곳을 부르기 좋게 공장이라고 했다.
그는 공장을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면서 벽에 은색 스프레이를 뿌렸고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아치 세 곡에 알루미늄 호일을 부착했다.
책상, 의자, 복사기, 화장실, 마네킹, 공중전화까지도 은색으로 통일하고 바닥도 은색으로 칠했다.

워홀이 공장으로 이주하고 처음 제작한 영화는 33분짜리 흑백무성영화 <이발>이다.
이것 도한 독특한 영화로 디자이너 존 다드의 머리 깎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워홀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주제로 선택하여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행위에 역점을 두었다.
반복이라지만 똑같은 행위는 있을 수 없어 유사한 행위들의 집합 안에서 매 행위가 새롭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

다음에 제작한 영화는 <식사>였다.
출연자는 스테이블 화랑에서 알게 된 로버트 인디애나였다.
<식사>는 1964년 2월 2일 일요일 아침 맨해튼 남쪽에 있는 인디애나의 화실에서 촬영되었다.
인디애나에 의하면 워홀이 그에게 준 지침은 단 한 마디 “이 버섯을 먹어라”였다고 한다.
3분짜리 필름 9통을 찍었으니 인디애나는 27분 동안 버섯을 먹었던 것이다.
<잠>과 <식사> 모두 사람의 기본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964년 한 해에 그가 제작한 영화가 많았고 제목을 붙이지 않은 영화도 많았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사람들의 동작은 극히 제한되었고, 클로즈업된 얼굴은 오랫동안 무표정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따라서 배우가 눈이라도 깜빡할라치면 클라이맥스에 이른 것처럼 부각되었다.
워홀은 10분 동안 눈을 세 번밖에 깜빡거리지 않은 배우를 가리켜서 최고의 배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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