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플랑드르 미술의 영향
보스가 스헤르토겐보스 밖으로 나간 적이 있다는 기록은 없지만
초기 작품을 보면 위레트흐트에서 지낸 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후에 나타난 성숙한 양식에서 보여지는 플랑드르 미술의 영향으로 미루어 볼 때
네덜란드 남쪽을 여행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하는 중에 <성 율리아노의 십자가 처형 Crucifixion of St. Julia>을 그렸다는 주장이 있지만
휴고 반 데르 고스Hugo van der Goes(1440년경~82, 1467~82년에 주로 활동)의 포르티나리 세쪽 제단화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에 거주하던 이탈리아 상인이나 외교관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이 형제회 기록에 남아 있는 건
1516년에 사망했다는 사실과 그해 8월 9일 형제회 친구들이 성 요한 교회에서 그를 추도하는 장례미사를 올렸다는 내용이다.
보스에 관한 내용은 시문서와 형제회 기록이 거의 전부지만
17세기의 몇몇 자료를 통해 그의 작품 몇 점이 성 요한 교회에 장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지창조>가 제단 위에 있었고 <동방박사의 경배>는 성모 마리아 제단에 장식되었다.
1504년 부르고뉴의 미남 공작 필리프는 예로니무스 반 아켄Jeronimus van Aeken으로 불리운 보스에게 제단화를 주문했는데,
<최후의 심판>으로 양날개 패널에 <천국>과 <지옥>이 묘사된 세쪽짜리 커다란 그림이다.
이 작품은 현존하지 않는다.
현재 빈 소재 세쪽 제단화를 필리프가 주문한 작품의 축소판 복제품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원작은 1629년 프레데리크 헨리Frederick Henry 왕자의 네덜란드 군대가 스페인으로부터 스헤르토겐보스를 탈환했을 때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톨릭의 번영시대가 칼뱅주의자들의 금욕주의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 뮤지엄 그리고 개인이 소장한 상당수의 보스 작품은 원작을 복제 또는 모방한 것들이다.
그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30여 점에 불과하고 그림과 소품 드로잉들이다.
원작을 보려면 마드리드의 프라도 뮤지엄에 가야 한다.
보스와 그의 작업장에서 제작한 주요 제단화 세 점과 소품 몇 점이 그곳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 중 초기에 제작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정확한 제작연대를 추정하기 어렵다.
작품에 제작연대를 기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손상이 심하고 후세 사람들이 덧칠을 했으므로
작품에 나타난 양식과 기교의 미묘한 차이를 들어 연대순을 확정짓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