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신정질서를 위한 탐구

 

 


 

 

 

 

 

 

냉전이 종식된 이후, 세계의 질서를 둘러싼 종교와 세속적 비전의 경쟁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미국 학자 마크 위르겐스마이어는 탈양극성 정치를 논하기 위해 “신냉전”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신냉전에서는 서방세계의 숙적인 공산주의를 이슬람이 대신해왔다. 왜일까? 좌파에서는 문명의 통일을 확신하던, 숙적을 잃은 서방세계가 이슬람교에서 “새로운 적” 을 만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념의 전쟁에서는 이슬람혐오증이 반공을 대체한 셈이다. 이 같은 분석은 종족중심주의적 성향을 띤다. 즉, 서방세계의 정치적 라이벌에 집중한 나머지, 이슬람 자체는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실제적인 쟁점을 간파하려면 편협한 집착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이슬람문명의 “종교의 귀환” 이 현대성에 내민 과제이기도 하다.
유럽이 팽창할 당시, 이슬람교는 반식민지・방어적 문화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하드는 서방 제국주의의 대응으로 비쳐졌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세계의 리더를 자처하겠다며 한술 더 뜨고 있다.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사이드 쿠틉이 쓴 문헌에 따르면, 인류는 “서방세계의 위기와 민주정치의 파산으로 만신창이가 된 데다, 벼랑 끝에 내몰린 것으로 비쳐졌으므로 이슬람교만이 인류를 인도할 자격이 있다” 고 한다. 나중에 나온 『세계 평화와 이슬람교』에서 쿠틉은 이슬람교가 통치해야 세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면서, 이를 달성하려면 지하드를 “온 인류의 구원과 알라 신의 통치(하키미야트 알라)를 확립하기 위한 영원하고도 포괄적인 세계 혁명” 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샤리아는 쿠틉의 구원론을 전시 이데올로기로 바꾸는 데 필요한 기틀이 되었다. 상상속의 다국적 무슬림 공동체에 근간을 둔 이슬람주의식 정치적 국제주의가 실현되려면 샤리아국가뿐 아니라 세속주의를 탈피한 샤리아 기반 세계질서를 갖추어야 한다.
앞서 주장했듯이, 이슬람주의와 샤리아화 프로젝트는 이슬람 민족국가의 개발 위기와 맞물린 근대성 도입의 실패와 어설픈 세속화의 결과다. 이슬람세계가 문화접변acculturation에서 탈문화접변deacculturation으로, 근대화에서 전통화로의 복귀로, 서양화에서 탈서양화로, 세속화에서 세속화 탈피로 이동함으로써 기존의 소득도 잃어가고 있다. 지식의 탈서양화는 합리주의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으며, 베버의 보편적인(문화적인 한계는 있었지만) 개념인 합리주의화의 일환인 세속화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샤리아를 둘러싼 이슬람주의 사상은 세속 세계질서를 이슬람교의 신조에 근거한 신정질서로 바꾸려는 야심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꾸며낸 샤리아 전통은 이 같은 세계질서의 주된 정의를 제시한다. 고전 샤리아는 평화와 질서 및 정의의 개념을 포함하나, 현대의 “문화적 전통들 사이의 경쟁” 을 감안해볼 때, 샤리아와 민주적 헌법주의의 갈등에는 새로운 의미가 담겨 있다. 이슬람 신학에 따르면 코란은 알라 신의 말씀으로 신성한 것이나, 이를 탈피한 사상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것이므로 얼마든지 논쟁과 수정・보완의 여지가 있으며, 코란의 말씀과는 다르게 세속적인 특징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마다힙의 네 학파가 샤리아 법체제를 발전시킨 것은 지식인(울레마)과 율법사(푸카하)가 주도한 코란탈피post-Quranic 계획이었다. 얼마 후, 이븐 타이미야의 영향력 있는 문헌에 힘입어, 샤리아는 국가 정치(시야사)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대 이슬람주의에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꾸며낸 샤리아는 반서양 국가질서를 뒷받침하기 위해 신성한 기원을 주장해야 했다.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변종 샤리아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예고한다. 세속화와 세속화의 탈피라는 라이벌 아젠다는 문명이라는 선을 따라 갈라지지 않는다. 세속주의 사상이라고 특히 유럽다운 것은 아니다. 중세 이슬람교에서도 기원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7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이슬람교의 헬레니즘화에 기초한 일종의 합리주의32인 아베로이즘٢으로 중세 이슬람세계에서는 탁월한 이성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합리주의 학파는 이슬람문명에서 점차 수그러든 반면, 합리주의적 계몽사상은 유럽 문화의 영속적인 일원이 되었다. 또한 계몽사상은 유럽의 세계화와 요즘은 서양화로 낮잡아 부르는 유럽사상의 보편화 과정에서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서방세계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는 비서양 문화권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이슬람세계에서는 지금껏 문화적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토착문화주의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34 현대 이슬람교에서는 정치의 샤리아화가 “세속화를 탈피한 사회 ”가 아닌 토착문화주의와 관계가 깊다.  새로운 정치적 외양을 갖춘 샤리아의 귀환은 신성한 종교의 귀환 사상에 담겨 있다. 근대성의 위기를 둘러싼 이슬람주의의 대응은 영성이 주도하는 종교적 르네상스라기보다는 정치의 종교화와 종교의 정치화에 더 가까우며, 이 둘은 갈등을 문화로 승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슬람교의 샤리아화가 그 문제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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