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내에서도 이슬람주의처럼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성향이 있

 

 

 

 

 

 

이슬람교 내에서도 이슬람주의처럼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성향이 있다. 성문화된 샤리아가 없고, 무슬림이 샤리아를 보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샤리아를 고집하는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어떤 샤리아를 말하는 것인가?” 라고 묻고 싶다. 샤리아화는 신정법의 탈을 쓴 독단정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슬람주의는 전체주의 조직법을 일반법으로 취급하여 시행한다. 융통성 있는 해석법과는 달리— 코란과 하디트를 해석하는 수니파 샤리아 학파(마다힙)와 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졌다— 현대 샤리아화는 전체주의 방식으로 정치를 규정하며, 법치질서를 고려한 이슬람교의 재창조를 제안한다. 과거에는 샤리아의 정치적 역할이 칼리프에게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여, 통치자의 정치적 결정이 샤리아와 일치한다고 공포하는 데 그쳤다. 당시 율법사들은 판결의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굳이 헌법의 영역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어떤 샤리아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어느 이슬람주의자에게 물을 땐 세 가지 방식을 일러주는데, 이를 시대 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코란에서 샤리아가 기록된 구절(우리가 너희에게 바른 길[샤리아]을 마련하니 이를 따르라)은 하나밖에 없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전통적인 샤리아는 법이 아니라 도덕으로 이해해야 한다. 코란에 기록된 대로(선을 권하고 악을 금한다)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샤리아는 행실의 도덕과 최고의 선이지 법체제가 아니다. 무슬람 학자들은 이러한 사상을 되살리고, 이슬람주의 정치를 샤리아화해야 한다는 민중의 요구는 반박하며, 인권에 위배되는 독단적인 법체제를 당당히 거부해야 마땅하다.

 

둘째, 8세기 당시, 4명의 무슬림 서기관 아부 하니파, 이븐 한발, 알샤피, 말리크 빈 아나스는 각각 자신의 이름을 따서 수니 이슬람교의 율법학파를 세웠다. 네 학파는 지금까지 민법에 제한을 두면서도 예배식에 관련된 사안도 다루었다. 비무슬림의 종교적 자유에 대해 이슬람법은 유일신 숭배자(유대인과 기독교인들)만 인정하여 유일신을 믿는 소수집단으로서 제한된 자유를 누리게 했다.

 

셋째, 20세기 이슬람주의가 부상하자 샤리아는 국가의 질서라는 법적 기반으로서 정치적 구색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샤리아의 근간은 이슬람교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8장에서 언급하겠지만, 이데올로기로서의 샤리아는 전체주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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