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의 정의 
 

플라톤의 <공화국 Republic>의 주요 논제는 정의justice인데 제4권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절정에 달한다.
플라톤은 정의란 모든 사람이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며 국가가 정의롭다는 것은 각층 계급의 사람들이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간섭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그걸 오늘날의 사람들이 정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인이 생각한 정의의 개념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철학이 태동하기 전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성에 기초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기 전, 그리스인은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에는 각각 부여받은 장소와 기능이 있다고 믿었다.
이런 부여받은 장소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으며 플라톤 역시 정의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했다.
법에서 사용하는 정의란 말은 좀더 플라톤의 개념에 가깝지만 정치가가 사용하는 정의란 말은 공론에 가깝다.

민주주의의 영향으로 우리는 정의란 말을 평등equality과 연계해서 사용했으며 정의라고 하면 법과도 유사한 개념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정의의 법정 Courts of Justice'이라고 말할 때 주로 재산의 관리를 말하는 것이지 평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공화국>의 시작에서 정의에 대한 규정을 빚을 갚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그런 개념을 버렸는데 이런 내용 일부가 책의 말미에서 다시금 언급되고 있다.

플라톤이 규정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정의가 없는 불평등한 권력과 특권이 가능하다는 점과 수호자들(오늘날 대통령 장관들)은 모든 권력을 가지는데 그들이 가장 지혜롭기 때문이다.
정의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다른 계급 사람들 가운데 수호자보다 더욱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는 경우이다.
그렇게 때문에 플라톤은 시민들에게 윗 계급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는데 보통 수호자들의 자녀들이 우수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모든 남자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정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남자의 일이란 무엇일까?
고대 이집트와 잉카에서는 몇 세대에 걸쳐서 남자의 할 일이 아버지의 일을 계승하는 것, 즉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플라톤의 <공화국>에는 늙은이들은 모든 젊은이들의 아버지들이지 누구에게도 법적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국가가 남자에게 해야 할 일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플라톤은 아테네가 페르시아에게 패전하고 또 흉년이 들었던 시기에 살았으므로 이런 것들을 겪지 않기 위해 정치가들의 올바른 태도를 이론으로 성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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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스위스로 달아났으며
 

루소는 자신의 교육론 <에밀 Emiile>(1762)을 발표하고, 여기서 결론으로 요약한 정치원리를 <사회 계약론>에서 더욱 진전시켰다.
그는 불평등을 돌일킬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한 후 무엇이 한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무슨 권리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들에 답하는 형식으로 논리를 전개해나가면서 "자유의지를 보유하는 가운데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자신 외의 모든 사람에게 구속시키는" 의미로서의 계약이 암묵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유추해냈다. 루소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다른 사람의 충동에 따르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지만 자신이 규정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자유이다."

루소는, 백성은 주권자이며 자신들의 주권을 언제라도 무효가 될 수 있는 정부를 통해 행사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정부 형태를 역사적, 지리적 조건에 적응시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에밀>과 <사회 계약론>은 정부와 종교에 반한다는 이유로 1762년 6월에 파리의 국회로부터 불온서적으로 규정받았다.
루소는 스위스로 달아났으며, 그의 저서들은 스위스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는 1763년 <크리스토프 드 뷔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에밀>을 비난한 파리의 대주교를 공격했다.
이듬해에는 <산에서 쓴 편지>란 제목으로 제네바 공화국의 검찰총장 트론친을 공격했는데, 트론친은 <에밀>과 <사회 계약론>을 불태울 것을 명령한 제네바 원로원의 결정을 옹호했던 사람이다.
코르시카의 독립운동 선두자 파올리는 1764년 9월 루소에게 코르시카를 위해 헌법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고 루소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초안을 작성했다.

1764년 12월 31일 루소는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시민의 느낌>이라는 팜플렛을 받았다.
거기에는 자신을 위선자, 애정이 없는 어버이, 기분 나쁜 친구에 비유하면서 사정 없이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볼테르가 쓴 것으로 루소가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루소는 충격에서 벗어나자 자서전 <고백록>을 쓰기로 결심했다.
<산에서 쓴 편지>는 물의를 일으켰는데 개신교 목사들이 더욱 더 그를 공격했으며 폭도들이 그의 집을 부수었다.

루소는 1766년 1월 영국으로 갔다.
영국의 경험론자 데이비드 흄은 루소를 반갑게 맞아주며 자신의 보호 하에 있게 했다.
그러나 고난을 겪는 동안 이성적 판단력에도 이상이 생긴 루소는, 흄이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함으로써 파리 철학자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이는 루소에게 불리했지만 유럽인들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즐기며 즐거워했다.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루소가 <사회 계약론>애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지만 부패한 정부와 부정한 법 아래서는 사악해진다고 한 말과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나서 부자연스러운 문명 하에서 노예가 된다고 한 말은 루이 16세 치하의 프랑스 시민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경구였다.
이런 가르침을 로베스피에르와 마라, 그리고 쟈코뱅파 당원들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쟈코뱅파들은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시민이 정부의 보호를 받게 되면 암암리에 법에 복종할 것을 서약하게 된다는 루소의 사상을 적용했다.

마라는 1788년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루소의 <사회 계약론>에 관해 해설했다.
루소가 말한 시민의 주권은 혁명의 시기에 정부의 주권이 되었고, 공안위원회의 주권이 되었으며, 그리고 한 사람의 주권이 되었다.
한 사람이란 농부와 노동자를 말한다.
혁명정부에서 농부와 노동자의 주권은 한층 강화되었다.
1789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경작농지의 3분의 1이 농부의 재산이었고, 31ㅜㄴ의 1은 귀족, 교회, 부르주아가 소유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소작인들이 경작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 1789년 7월 프랑스 지방을 여행한 아더 영이 전한 소작농 여인과의 대화내용이 이를 말해준다.
그녀는 세금과 소작료를 바치고나면 살 수 없을 지경이며 무슨 수가 나든지 세상이 달라져야 자기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살 수 잇을 거라고 하면서, 루이 16세가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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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문 
 

근대Modern의 문을 연 것은 과학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예술가이면서 과학자였는데 과학의 발달이 전통주의 사고에 의심을 가져다주었다.
레오나르도 이래 과학은 꾸준히 발전했고 따라서 전통의 위협은 비례적으로 커졌다.
갈릴레오의 일련의 과학적 성과는 철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특히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거의 2천 년 동안 서양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맹종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17세기에도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연은 신이었다.
태양과 별들은 그에게 신이나 다름 없었다.
그가 시사한 신들의 수는 47개 혹은 55개로 알려졌다.
이를 당구대에 놓인 당구알들에 비유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의 당구알 하나가 어떤 당구알을 쳐서 운동을 만들어냈고 그 당구알이 다른 당구알을 치는 것으로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47 혹은 55개의 당구알이 서로가 서로에게 운동을 제공하며 우주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최초에 당구알을 친 신의 당구실력은 놀라워서 우주의 운동은 매우 짜임새 있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천체학이다.

이런 그의 천체학은 과학의 발달로 위협을 받았다.
과학은 신이 아니라 물질 자체가 스스로 태초에 운동을 일으킨 이래 운동력이 조금씩 떨어지지만 지금도 유사한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호나경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인식은 천체학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에도 적용되었다.
물리학뿐 아니라 철학에서도 중요한 문제들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는데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이란 없다는 인식이었다.

뉴턴에게는 공간이란 포인트들points의 집합이었으며, 시간은 사건들의 집합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두 사건의 관계라고 정의했는데 뉴턴의 시간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과학적 지식이 철학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철학의 재생은 과학에 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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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러다임은 한 분야다.
과학사학자로서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Physica』,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Almagest』, 뉴턴의 『프린키피아 Principia』와 『광학 Opticks』, 프랭클린의 『전기에 관한 실험과 관찰기록 Experiments and Observations on Electricity』, 라부아지에의 『화학요론 Traite elementaire de himie』, 라이엘의 『지질학 Geology』 등으로 하나의 이론theory이기보다는 여러 이론을 두루 갖춘 한 분야discipline를 말한다. 이상과 같은 저작들은 한동안 각 분야에서 합당한 문제들과 방법들을 차세대에게 묵시적으로 정의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이런 것들을 쿤은 전문가 집단에게 모형문제와 풀이를 제공하는 보편적·과학적 성취들”

3)로 간주했다. 이런 저작들을 패러다임이란 말로 부름으로써 쿤은 “과학활동의 몇몇 인정된 실례들 - 법칙·이론·응용·기기법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례들 - 이 그로부터 과학 연구의 특정한 정합성의 전통이 나타나는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을 시사하고자”4) 했는데 한 패러다임을 공유한 과학도들이 과학활동에 대한 동일한 규칙과 표준을 지키기 때문이다.5)

2. 패러다임에는 새로운 정의가 있다.
패러다임이 당면하게 되는 모든 사실을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6) 그 분야를 전수하는 그룹의 구조에 큰 영향을 끼치고, 낡은 학파들을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촉매작용을 한다. 새 패러다임을 수용하지 않고 낡은 이론에 고착된 사람들의 연구는 무시당하기 때문에 전문분야에서 자연히 소외되는데 이들은 고립을 감수하든지 다른 그룹에 자신들을 소속시키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반면 패러다임의 수용은 일반그룹을 전문연구profession 혹은 최소한 한 분야로 변형시키게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단일 패러다임을 처음 수용하는 그룹은 전공분야 학술지를 발간하거나 전문가들의 학회를 결성하거나 교과과정에서의 특별한 지위를 요구한다.  

 3. 패러다임은 인정된 모형이다.
패러다임은 문법에서 동사들의 변형에 대한 패턴인데7), 이런 경우 패러다임은 그중 어느 하나가 원칙적으로 그 패러다임을 대치할 수 있는 예제들을 모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그 기능을 나타내지만, 과학에서는 패러다임이 모사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오히려 쿤은 관습법에 의해 판가름난 판결처럼 새롭거나 보다 엄격한 조건하에서 더욱 명료화되고 특성화되어야 하는 대상8)으로 간주했으며, 그런 이유로 패러다임이 처음 제시될 때 전망과 정확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제한될 수 있기 때문임을 꼽았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전문가들 그룹이 시급하게 여기는 몇몇 문제를 푸는 데 경쟁 상대들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는 이유로 해서 그 직위를 획득하더라도 한 패러다임의 성공은 처음에는 불완전한 예제들에서 발견되는 성공의 약속일 뿐9)으로 보았다. 전문가들만이 알 수 있겠지만 그런 약속의 실제화를 통해 정상과학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패러다임 자체가 더욱 명료해지는 것을 말한다.

패러다임 마무리 작업에 생애를 바치는 대부분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이론의 창안을 목적으로 삼지 않을 뿐더러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창안된 것을 수용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정상과학의 연구는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현상과 이론을 재공식화reformulation에 의한 명료화articulation를 지향한다. 쿤은 패러다임에 대한 확신에서 파생되는 이런 제한이 과학 발전에 불가결한 것으로 보았으며, 패러다임에 기초한 연구의 의미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압도적인 다수 과학자들이 사실-수집을 통해 자신들의 지속적 연구 결과를 전문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10) 의미있는 사실의 결정·사실과 이론의 일치·이론의 명료화로서 실험적·이론적 과학 모두에서 정상과학 문헌을 거의 전부 차지한다. 거의 전부라고 한 것은 정상과학의 진보에 의해 마련된 특별한 경우, 즉 일반적이 아닌 비상적인 문제들도 있기 때문인데 그는 비상적 문제의 풀이가 오히려 과학적 활동을 전반적으로 가치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또한 알았다. 결론적으로 쿤은 패러다임을 버리는 것이 그것이 정의하는 과학 다루는 일을 중단하는 것임을 알았다.

4. 패러다임을 탓하는 사람은 연장을 탓하는 목수다.
4장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은 말 그대로 정상과학을 퍼즐-풀이에 비유한 것이다. 퍼즐-풀이에는 일반적으로 규칙rule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는데 “과학자들이 그들의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한 공약에 관해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11) 하지만 정상과학이 고도로 결정적인 성격의 활동이더라도 전적으로 규칙에 의해 결정될 필요는 없으며, 지침을 터득하면 퍼즐을 풀 수가 있다. 재능있는 과학자에게는 이전에 아무도 풀지 못했거나 제대로 잘 풀지 못했던 퍼즐을 푸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며, 가장 위대한 과학적 정신의 대가들은 거의 이런 류의 미결된 퍼즐들에 전문가로 헌신해 왔다. 정규적 연구에서 패러다임의 기본이론과 상치되는 결과를 얻는 경우 이론의 성립 여부가 의심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능력 여부가 의문시되는 것이 상례이며, 성급하게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과학자는 “연장을 탓하는 목수”격이 된다. 쿤은 결론으로 “규칙은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되지만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연구의 지침이 된다”12)고 했다.

5. 패러다임에는 확인이 있다.
5장 ‘패러다임의 우선성’은 패러다임에 대한 완벽한 해석interpretation이나 합리화rationalization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혹은 그런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은 채 패러다임의 확인identification에서는 의견의 합치를 볼 수 있음13)을 예증한 장이다. 규칙은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되지만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연구의 지침이 된다는 앞장의 내용과 흡사하게 패러다임의 표준 해석이나 규칙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패러다임에 의한 연구 방향은 지속되며, 오히려 패러다임의 존재는 완벽한 한 벌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조차 할 필요가 없음을 논했다.

정상과학이 부분적으로 패러다임들의 직접적 점검에 의해 결정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흔히 규칙들과 가정들의 공식화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그것들에 의존하지는 않는다면서 쿤은 ‘패러다임의 직접적 점검direct inspection of paradigms’의 의미를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저서 『철학적 연구 Philasophical Investigations』에서 인용해 설명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이 “‘의자’니 ‘잎’이니 하는 말들을 애매하지 않게 그리고 논쟁거리가 되지 않게 적용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14) 하고 질문한 것에 주목했다. 그런 말들이 지닌 공통적 특성은 파악되어져야 한다고 알려졌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주어지고 우리가 그것을 적용하는 세계의 유형이 정해지는 경우, 그런 공통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왜냐면 분류층의 모든 구성 요소들에 대해서 동시에 모조리 그리고 거기에만 유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특성의 묶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을 예로 들면 어떤 활동에 직면한 우리는 이 용어를 적용하는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이미 그런 명칭으로 부르도록 배운 많은 활동에 매우 가깝게 ‘과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을 지녔기 때문”15)이라고 했다. 쿤은 이런 유형의 양상이 정상과학에서 야기되는 다양한 연구 문제와 기술에서도 성립된다고 했다.

6. 패러다임은 이상 현상과 패러다임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지표를 제공한다.
6장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에서 쿤은 모든 과학적 발견은 패러다임 변화의 원인이거나 기여의 요소이며, 발견들이 암묵적으로 그 속에 내포된 변화들은 건설적이면서 동시에 파괴적임을 예증했다. 발견이 동화된 이후 과학자들은 자연 현상의 보다 넓은 영역에 관해 설명할 수 있거나 이미 알려진 현상들의 일부에 관해 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런 이득은 그들로 하여금 기존의 표준 이념이나 방법을 더러는 포기하거나 이전 패러다임의 그런 구성 요소들을 다른 것으로 대치함으로써 성취했다. 따라서 그는 세부 사항을 제외하고 모든 발견이 예측된 놀라울 것이 없는 것으로 간주했는데 발견이 파괴적-건설적 패러다임 변화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상과학은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겨낭하지 않으므로 성공적인 경우에라도 그 어떤 새로움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새롭고 뜻밖의 현상들이 과학 연구에 의해 끊임없이 베일이 벗겨졌고, 과학자들에 의해 첨단의 새 이론들이 거듭 창안되어 왔더라도 발견과 창안 사이의 차이, 또는 사실과 이론 사이의 차이를 지극히 인위적인 것으로 보았다. 발견이 이상anomaly의 지각과 더불어 시작되는 이유는 자연이 정상과학을 다스리는 패러다임-유도의 예상들을 어떤 식이로든 위배했다는 점을 인식하기 때문이며, 이의 다음 단계는 이상 현상의 범위를 다소 확장시켜 탐사하는 것이고, 그 이상이 기대치가 되도록 패러다임 이론이 조정되는 경우에만 종결이 가능하다.

처음 수용된 패러다임은 일반적으로 과학 종사자들이 쉽사리 접할 수 있는 관찰과 실험의 대부분에 대해 상당히 성공적으로 설명하듯 느껴지므로 더욱 발달됨과 더불어 정교한 장치의 제작, 심오한 의미의 어휘와 기술의 개발, 그리고 상식에 대한 일치성이 점차 감소되는 개념들의 정련이 요구된다16). 이같은 전문화는 한편 과학자의 시야를 크게 제한하며, 패러다임 변화에 상당한 저항으로 작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이 그룹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그런 분야에서 정상과학은 정보의 세부화로 유도하며, 다른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는 관찰-이론 일치observation-theory match의 정확성으로 유도한다. 게다가 그런 상세함과 일치의 정확성precision-of-match은 늘 대단히 높지 않은 그들의 본유적 관심을 능가하는 가치를 지닌다.  

 7. 패러다임의 도구들이 패러다임의 문제를 푼다.
앞서 과학에서의 사실과 이론, 발견과 발명은 범주상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님을 논한 쿤은 7장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에서 패러다임 변화에서의 유명한 세 가지 실례17)를 들었다. 그는 과학철학자들이 주어진 자료의 수집에 의해 늘 하나 이상의 이론이 성립될 수 있음을 꾸준히 증명하며 그런 대안들을 고안하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다는 점을 말해 주지만 그 대안의 창안은 그들 과학의 발전에서의 패러다임 이전의 단계를 제외하고는 과학자들이 거의 수행하지 않는 작업이며, 그 뒤에 따르는 진전 과정에서 지극히 특수한 경우에만 일어난다고 보았다.

새로운 이론을 위기의 직접적 반응으로 본 그는 붕괴가 일어났던 모든 문제들이 오랜 세월을 걸쳐 인식되어 온 형태였음을 상기시켰는데, 즉 각각의 실례에 대한 해답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해당 과학에서 위기가 없었던 시기에 예측되고 있었다는 점과 위기를 느끼지 못하던 상황에서 그 예상들은 무시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에게 위기들의 의미는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도구를 바꾸어야 할 계제에 도달했음을 가리키는 지표였다.

8. 새 패러다임으로 해서 기존 패러다임은 무용해진다.
앞서 위기의 의미를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도구를 바꾸어야 할 계제에 이르렀음을 가리키는 지표로 간주한 쿤은 위기의 존재에 대한 과학자들의 반응을 살핀 결과 심각하고 만연된 이상 현상에 직면해서 그들이 신념을 상실하기 시작하며, 이어서 다른 대안을 궁리하면서도 자기들을 위기로 몰고 간 기존 패러다임을 쉽사리 폐기하려 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과학철학적 어의상으로는 그 의미가 성립되더라도 이상 현상들을 반증 사례로 여기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임을 알았다. 어떤 이들은 위기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아예 과학을 포기하기도 하는데 이를 쿤은 유일한 형태의 패러다임 폐기로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과학자들도 뒤죽박죽된 세계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함을 지적했다.

그는 모든 위기가 패러다임이 모호해짐과 더불어 그리고 그에 따라 정상과학의 규칙들이 해이해짐에 따라서 시작되는 것을 알고18), 괄목할 만한 위기 기간 중 과학자들이 수수께끼를 푸는 장치로 철학적 분석으로 전향했음을 17세기 뉴턴 물리학의 출현 그리고 20세기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탄생이 당대 연구 전통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분석이 뒤따랐고, 또 수반되어야 했던 사실을 들어 예증했다. 그는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이 연구의 진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았다. 위기는 결국 상투적인 틀을 이완시키고 동시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동에 필요한 증대분의 자료를 제공하는데 이상 현상이나 위기에 직면해서 과학자들은 기존 패러다임에 대해 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되며, 연구의 성격도 따라서 바꾸게 된다. 경쟁적인 명료화의 남발·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지·명백한 불만의 표현·철학에의 의존과 기본 요소에 관한 논쟁, 이 모든 것은 정상ordinary 연구로부터 비상extraordinary 연구로 옮아가는 증세들이었다.

쿤은 기존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결단은 새 패러다임과 자연의 비교 그리고 패러다임끼리의 비교 두 가지를 포함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19).  

9. 패러다임은 성숙한 사회의 문제풀이 표본이다.
앞서 과학혁명을 옛 패러다임이 양립되지 않는 새 것에 의해 전반적 혹은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비축적적인 발전에서의 에피소드로 간주한 쿤은 9장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에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혁명으로 불리워야 하는 이유에 관해 예증했다. 그는 정치혁명이 기존 제도가 주위 상황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더이상 적절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의식이 정치적 사회의 집단에 편재되어 팽배해지면서 일어나듯 과학혁명 또한 이와 유사하게 기존 패러다임이 자연 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탐사에서 전에는 그 방법을 주도했지만 더이상 적절하게 구실하지 못한다는 의식이 과학자 사회의 좁은 분야에 국한되어 점차로 증대되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20).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기능적 결함을 깨닫는 것이 혁명의 선행조건이라면서 정치혁명의 성공이 다른 제도를 위해 기존 제도의 일부를 파기하는 것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고 본 쿤은 서로 경쟁하는 정치제도들 사이의 선택처럼 경쟁하는 패러다임들 사이의 선택을 과학자 사회 생활의 양립되지 않는 양식 사이에서의 선택과 동일시했다.

계속 이어지는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우주의 구성 요소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의 특징적 거동에 관해 서로 다른 사항들을 일러주기 때문에 새 패러다임의 승인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과학을 재정의하는 경우가 보통이라면서 쿤은 서로 겨루는 패러다임 사이의 선택이 정상과학의 준거가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을 규칙적으로 제기하는 이유에 대해 최초의 명시적 증거를 제시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패러다임 논쟁을 특징짓는 논리적 접근의 불완전성으로 어느 패러다임도 그것이 정의하는 모든 문제를 풀어낸 적이 없었던 점 그리고 두 가지 패러다임이 풀지 못한 문제들이 모두 동일한 것이 아니므로 어떤 문제들을 해결한 것이 보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발생함을 지적했다. 가치관에 대한 논쟁을 그는 패러다임 논쟁을 가장 확실하게 혁명적으로 만드는 외적 기준에 의지하는 것으로 보고 패러다임들이 과학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구성한다는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집착했다.

10. 패러다임은 개연성이다.
패러다임이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정신에서 출발하는데 개인 혹은 소수는 앞서 과학과 세계를 달리 보는 방식을 처음 익히게 되고, 천이를 일으키게 하는 그들의 능력은 그들 전문 분야의 대다수 다른 구성원들에게 공유되지 않은 두 가지 상황에 의해 성숙된다고 본 쿤은 그들이 늘 위기를 조장하는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검증은 일반적으로 주목할 만한 퍼즐들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거듭된 실패가 위기를 초래한 뒤에야 비로소 일어나며, 그때조차도 위기 의식은 패러다임의 대안적 후보를 출현시킨 뒤에야 발생됨을 알았다. 검증은 과학자 사회에 충실하려는 두 개의 경쟁적 패러다임 사이에서의 경합의 일부로 일어나며, 어떤 이론도 관련되는 시험에 모두 접해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과학자들은 이론의 입증 여부를 묻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증거에 따라 이론의 개연성probability에 대해 묻게 된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유력한 학파는 바로 손안에 있는 증거를 설명해내는 상이한 이론들 사이의 능력을 비교하게 된다.

개연성 이론들이 사실입증 상황을 감춘다면서 쿤은 사실입증 과정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칼 포퍼K. R. Popper의 주장을 자신의 것과 비교했는데, 오류입증falsification, 즉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한 포퍼는 오류입증은 그 결과가 부정적인 까닭에 정립된 이론의 폐기를 불가피하도록 몰아간다고 주장했다. 쿤은 자신의 이상 현상 경험, 즉 위기 유발에 의해 새 이론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경험에 부여한 역할과 포퍼의 오류입증에 매겨진 역할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상 현상의 경험을 오류입증의 경험과 동일시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류입증의 경험이 존재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했다21). 포퍼의 이상 현상 경험은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경쟁 후보들의 출현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더라도 오류입증이 이상 현상 혹은 오류입증 사례의 출현과 더불어서 혹은 단순히 그것 때문에 일어난다고는 말할 수 없다면서 그것이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새 패러다임의 승리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1. 패러다임들의 경쟁은 증명되지 않는다.
경쟁적인 패러다임의 주창자들은 항상 조금씩이라도 서로 엇갈리게 마련이고, 어느 쪽도 다른 한쪽이 그 입장을 확고히 하는 데 필요한 모든 비경험적 가정을 시인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 어느 쪽도 자신의 입장이 증명되기를 기대하지 못한다. 양쪽이 가진 과학에 대한 기준이나 정의도 동일하지 않다. 새 패러다임들이 옛 것들에서 탄생된 것이므로 그것들은 보통 전통적 패러다임이 과거에 사용해 왔던 개념적이며 조작적인 용어와 장치의 많은 부분을 포함하지만 새 패러다임은 차용한 이런 요소들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새 패러다임 속에서 옛 용어·개념·실험은 상호 새 관계를 맺는다. 이런 필연적 관계를 쿤은 두 경쟁적 학파들 사이의 오해로 보았다.

쿤은 실례를 통해 경쟁적 패러다임의 제안자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그들의 연구를 수행한다는 점을 예증한 후22) 그들이 각기 다른 세계에서 작업하므로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동일한 방향과 관점에서 조망하더라도 각기 다른 것을 보게 된다면서 한 그룹의 과학자들에게 증명될 수 없는 법칙이 다른 그룹에게는 직관적으로 명백히 보이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를 예증했다. 이런 이유로 그들 사이에 충분히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한 그룹 혹은 다른 그룹이 패러다임 변동shift, 즉 개종conversion을 거쳐야만 한다면서 경쟁적인 패러다임 사이의 이행은 동일 표준상 비교불능의 것들 사이의 이행transition인 까닭에 논리에 의해서나 가치 중립적 경험에 의해서 강제되어 한 번에 한 걸음씩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일어나거나 또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

(2). 패러다임에 대한 쿤의 추가 제안
쿤은 1969년 7절로 나누어 패러다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더욱 명료하게 했다. 그는 1절에서 먼저 패러다임의 개념을 과학자 사회의 관념으로부터 분리시켰는데 이를 보편적인 개념으로 정립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과학자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에서 실례를 들어 패러다임이 추구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를 기술하다 보니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신념·가치·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인 집합, 다른 하나는 그런 집합에서 한 유형의 구성 요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형이나 예제로 사용해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나머지 퍼즐에 대한 풀이의 기초로서 명시적 규칙들을 대치할 수 있는 구체적 퍼즐 풀이puzzle-solving였다.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신념·가치·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인 집합으로서의 의미는 2절에서 다루어지고, 3절에서는 예제가 될 만한 사례가 소개된다.

예제에 암묵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지식의 구성 요소들을 통해 패러다임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그러다 보니 과학을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활동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이에 대한 쿤의 변명이 4~5절에 있다. “그런 지식은 본질적 변화 없이는 규칙과 기준을 써서 알기 쉽게 바꾸어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이고 시간의 검증을 겪은 것이며, 어떤 의미로는 교정할 수 있는 성격을 띤다”23)고 쿤은 말한다. 그는 논증을 상호 양립할 수 없는 이론들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로 촛점을 맞추었다.

6절은 쿤의 과학관이 철두철미 상대주의적이란 비난에 대한 변명이고, 마지막 절은 자신이 서술적 양식과 규범적 양식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과 자신의 패러다임론이 과학 이외의 분야들에도 적용가능하다는 역설이다. 

12. 사회 구성원들이 패러다임을 공유한다.
쿤은 과학자 사회는 패러다임들에 우선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형성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서 그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세밀히 검토함으로써 패러다임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자 사회의 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과학자 사회는 과학 전공 분야의 종사자들로 구성되며, 그들은 유사한 교육과 전문적인 전수를 거치고, 그러는 과정에서 동일한 기술적 문헌의 내용을 흡수하며, 그것으로부터 다수의 동일한 교훈을 얻는다.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은 후계자 양성을 비롯해서 공유하는 일련의 목표를 추구하는 책임을 졌다고 스스로 자처한다. 그룹 안에서의 의사소통은 비교적 완전하고, 전문적인 판단에서도 비교적 의견에 일치를 본다. 그런가 하면 상이한 과학자 사회의 주목은 상이한 주제에 집중되므로 그룹 노선 사이의 전문적 의견교환은 때때로 곤란해지기도 하고, 오해를 낳기도 하며, 진행과정에서 미처 예기치 못한 상당한 의견 차이를 빚기도 한다.

여하튼 이런 과학자 사회들은 과학 지식의 생산과 확인의 주역이며 기본 단위들이며, 패러다임은 이런 그룹들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그 무엇이다. 이런 그룹들, 혹은 학파들은 그 분야의 지배권을 놓고 겨루게 되며, 결국 몇몇 주목할 만한 과학적 성취의 자취를 따라 다수의 학파는 대폭 줄어들어 하나로 수렴되기 보통이고, 보다 효율적 방식의 과학활동24), 즉 퍼즐 풀이가 시작된다.

쿤은 혁명을 그룹 공약에서의 모종의 재정립을 포함하는 특이한 유형의 변화로 보았고, 이는 대규모의 변화라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위기가 혁명에 절대적인 필수요건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위기를 통상적인 서막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정상과학의 경직성이 영원히 도전받지 않은 채로 계속될 수 없음을 보증하는 자체 보정 메커니즘으로 보았다. 위기의 결과가 곧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면서 “전자 현미경 같은 새로운 기기 또는 맥스웰의 법칙 같은 새로운 법칙이 하나의 전문 분야에서 등장하여 그것들의 동화가 다른 분야에서 위기를 발생시키기도 한다”25)고 했다. 

13. 패러다임은 집단 공약의 집합이다.
쿤은 요즈음 과학철학에서 사용되는 ‘이론’이란 말이 패러다임에 비해 성격과 범위에서 훨씬 더 제한된 구조를 내포한다면서 자신이 ‘전문 분야disciplinary’라고 한 이유가 특정 전문 분야 종사자들의 공통적인 소유에 관련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모형matrix’이라고 붙인 이유는 각기 고도의 명세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유형의 규칙적 요소로 구성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자신이 패러다임들, 패러다임의 부분들, 혹은 패러다임적인 것들로 만든 요소들의 그룹 공약의 집합이 ‘전문 분야 모형disciplinary matrix’의 요소를 이룬다면서 그런 요소들이 집단을 형성하고 총체적으로 작용함을 지적하면서 전문 분야 모형 요소들의 주된 유형에 주목할 필요를 역설했다26).

14. 패러다임은 공유된 예제가 된다. 
표준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법칙과 이론은 경험적인 내용을 거의 지니지 못할 것이라면서 쿤은 18세기 역학자에게 표준예가 될 수 있는 실례를 들었다27). ‘활력의 원리principle of vis viva’로 알려진 그 법칙은 “실제의 하강은 잠재적 상승과 동일하다”로서 매우 논리적인 귀결이지만 그 자체로서의 법칙은 별 위력이 없음을 그는 지적했다. 이 법칙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실제의 하강”과 “잠재적 상승”이 자연의 요소임을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럴 경우 자연이 나타내거나 나타내지 않는 상황들에 관한 깨우침이 있게 된다: 깨우침은 구체적인 실례들로부터 생기며 자연과 용어들은 함께 더특된다. 이런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을 그는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의 말을 빌려 ‘묵시적 지식tacit konwledge’으로 표현하면서 이는 “과학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규칙을 얻는 것보다는 오히려 과학을 수행하는 것에 의해서 터득되는 지식이다”28)라고 했다. 

15. 패러다임은 구체적 퍼즐풀이다.
쿤은 법칙이 예제로 사용되어 명시적 법칙들을 대치할 수 있는 구체적 퍼즐 풀이가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묵시적 지식과 공존하는 법칙의 거부로 나타났으며, 이런 견해가 쿤의 비판자에게 그가 과학을 논리와 법칙보다는 오히려 분석할 수 없는 개별적 직관에 정지시키려 한다는 오해를 심어주었다. 쿤은 직관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시험을 거치고 또한 공유된 소유물로서 성공을 거둔 그룹의 구성원들이 지닌 것들로 “초보자는 그룹-회원이 되기 위한 준비의 한 부분으로서 그런 직관들을 수련을 통해 얻게 된다”29)고 변명했다. 그는 이런 직관은 분석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반대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분석가능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1996년에 타계함으로써 실험의 결과가 알 수 없게 되었다.

전체적 문화권이나 전문 분야의 세분화된 집단이거나 간에 그룹의 구성원들이 동일한 자극에 직면해서 동일한 것을 보는 것을 배우는 기본 기술 중 하나가 상황의 실례들에 접합하는 것이다. 실례들이란 그 그룹에서 앞서 간 사람들이 서로 동류의 것으로서 그리고 다른 상황과는 틀리는 것으로서 보는 것을 이미 배워온 그런 실례들을 말한다. 유사한 상황들은 그 개체의 연속적인 감각적 표상일터인데 유사한 상황은 자연의 과들natural families에서의 구성요소들의 직각도 될 수 있다30).

우리가 한 상황을 이전의 경험으로 보는 것은 물리적·화학적 법칙으로 완전히 다스려지는 신경 과정의 결과이며, 이런 데 익숙해지면 유사성의 인식은 완전히 체계적이 된다31). 하지만 이 시스템이 인식에 있어서 “해석상 동일한 방식으로 조작되도록 짜여진다고 믿을 만한 이유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면서 쿤은 데카르트 이래 지각작용을 하나의 해석적 과정으로 지각 이후 행동의 무의식적 해석으로 분석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론을 폈다32). 쿤은 자극을 감각으로 변형시키는 신경과정 속에 짜여져 있는 그 무엇은 교육을 통해 전수되어 온 것이며, 시험을 통해 효율적임이 밝혀진 것이고, 만약 환경에 어울리지 않게 되면 교육을 통해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그런 것들이 지식의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특징 하나가 더 있다면서 우리가 아는 것에 우리가 직접 접근하는 방법이 없고, 그런 지식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규칙이나 일반화가 없기 때문에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은 감각이 아니라 자극에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자극은 정교한 이론을 통해서만 알게 되고, 이론 없이는 자극에서 감각에 이르는 경로에 내포되어 있는 지식은 암묵적인 채로 남게 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실험적 조사, 즉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검증하려고 시도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96년에 타계했다.

16. 패러다임으로의 혁명에서 설득이 심장부를 이룬다.
앞서 유사성의 인식이 체계적이 되더라도 “해석상 동일한 방식으로 조작되도록 짜여진다고 믿을 만한 이유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쿤의 주장은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할 수 없는 동일 표준상 비교불능성incommensurability에 대한 그리고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이론들 사이에서 과학자들이 선택의 문제를 놓고 논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었다. 쿤은 이론 채택에 관한 논쟁에서 참석한 분파들 어느 누구도 한 이론이 다른 이론에 대해 우월하다는 점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면서 자신의 견해가 우월하다는 점과 상대방의 견해가 대치되어야 한다고 믿게 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역설했다. 설득은 개종과도 같으며 새 패러다임으로의 혁명 과정에서 심장부를 이룬다.

17. 패러다임은 자연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상이한 이론들의 옹호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문화권language-culture 집단의 구성원과 같고, 유사성을 인식하는 것은 양 그룹이 옳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며, 문화와 그 발달에 적용될 때 이런 입장은 상대성을 띠게 되지만 쿤은 과학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한 그룹 혹은 다수 그룹들 속에서 볼 때 발전된 과학의 종사자들을 근본적으로 퍼즐 풀이자들로 본 쿤은 이론을 채택해야 하는 시기에 그들이 전개하는 가치관이 그들 연구의 다른 국면으로부터 유도되기는 하더라도 자연에 의해 주어진 퍼즐들을 설정하고 풀이하는 증명된 능력은 가치 상충의 경우 과학자 그룹의 대다수 구성원에게 가장 뚜렷한 기준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퍼즐 풀이 능력의 높은 가치가 과학 활동에서 중요한 요소인 단순성·전망·다른 전공과의 조화 등을 완결시킬 것으로 보았다. 이런 것들이 완결될 때 과학의 발전은 생물학적 진보와 같이 방향이 하나가 되고 비가역적인 과정이 될 것이라면서 “그 이후의 과학 이론들은 그것들이 적용되는 흔히 상당한 차이가 나는 환경에서 퍼즐들을 푸는 데에 이전의 것들보다 더 좋은 이론이 된다”33)고 했다. 쿤은 이것이 자신을 상대주의자가 아니라 과학의 진보를 확신하는 신봉자임을 증명한다고 했다.

그러나 진보의 개념과 비교할 때 자신의 입장은 핵심 요소를 결여하게 되는데 새 패러다임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비해 우수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파즐들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 더욱 나은 도구일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라도 자연을 더욱 잘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했다34). 사람들은 새 이론들이 계속 등장하는 것을 가리켜 진리에 더욱 근접하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이는 오히려 퍼즐 풀이와 이론의 “존재론에 관한 것이고, 그 이론이 어떠한 실재로 자연을 채우는가 그리고 ‘참으로 거기에really there’ 무엇이 존재하는가 사이에서의 조화에 관한 것”으로 보았다.

18. 패러다임은 행동방식에 책임진다.
『과학혁명의 구조』 초판(1962)에서 쿤이 “그러나 그것은 과학자가 하는 일이 아니다”로 시작되어 “과학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주장을 편 문장에서 서술적descriptive 그리고 규범적normative 양식 사이를 왔다갔다 한 것을 두고 어느 비평가가 쿤이 서술을 처방prescription과 혼동한 것이며, ‘… 이다’는 ‘… 이어야 한다’를 의미할 수 없다는 유서 깊은 철학적 명제를 위배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쿤은 개정판(1969)에서 그런 명제는 상투어처럼 되어버려서 이제는 존중되는 윈칙이 되지 못한다면서 ‘… 이다’와 ‘… 이어야 한다’는 별개의 것이 결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철학사상과 같이 과학 이론이 성공적일 경우 과학자들이 마땅히 행동해야 하는 방식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서 “그것은 반드시 어느 다른 이론보다 좀더 옳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 이어야 한다’와 ‘… 임이 당연하다’에 대한 합법적인 근거를 제공한다”35)고 했다.

과학 이외의 많은 여타 분야의 사람들이 쿤의 저서를 자신들의 분야에 광범위하게 적용했는데 이에 대해 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서 자신이 주제들을 다른 분야들에서 빌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쿤은 “문학·음악·미술·정치 발전 그리고 다른 여러 인간 활동을 연구하는 사학자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주제를 같은 방식으로 서술해 왔다. 형식·취미 그리고 제도적 장치에서의 혁명적인 단절로 나뉘어진 시대 구분은 그들의 표준적 수단 가운데 군림해 왔다”36)고 했다. 쿤은 자신이 이런 개념들을 처음 발상했다면 “이는 주로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발달한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던 과학에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를 들어 미술에서 양식 개념에 관한 말썽 많은 난점들이 회화를 추상적인 양식 규범에 따라 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라면서 서로서로 본을 따서 완성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난점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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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패러다임을 말하는가

웹스터Webster 사전에는 패러다임의 어원이 그리스어 패러다이그마paradeigma로 ‘나란히 보여주다 to show side by side’로 되어 있고, 전형example, 패턴pattern, 혹은 ‘철학적 이론적 틀a philosophical and theoretical framework’을 뜻한다고 적혀 있다. 사전의 정의조차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된 책을 꼽으라면 단연 토마스 쿤Thomas S. Kuhn(1922-1996)의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1962)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패러다임의 구조’라고 부르는 이유는 쿤이 과학사에서 실례를 들어 예증했을 뿐 주제들을 다른 분야들에서 빌려왔으며, 그가 정작 의도한 점도 과학을 포함한 많은 여타 분야에서 패러다임이 언제, 왜, 어떻게 생기고 또 사라지는가를 정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패러다임 개념을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1980년에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번역자는 1999년 6월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김명자이다. 김명자는 1992년에 개역했는데 원전에 충실하기 위해 다시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사실상 패러다임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하고 완벽하게 정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다만 여러 가지 구성 요소로 기술될 따름이다”1)라고 ‘역자해설’에 적었으며, 패러다임은 정의되기 힘든 개념이라면서2) 은연중에 터득되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출간되고 많은 사람이 쿤에게 존경심을 표했지만 일부는 불분명한 패러다임의 개념을 비판하면서 그가 과학을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활동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쿤의 확신에 공감하는 동조적인 독자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쿤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적어도 스물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했다. 쿤이 7년 후 개정판을 내면서 이에 대한 추가설명을 7절로 구체적으로 기술했는데 그만큼 패러다임은 알기 쉽게 간략하게 설명되기 어려운 말이다. 쿤은 패러다임이 “적어도 스물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된 것이 대부분 형식상의 일관성 결여가 원인이었다면서 예를 들면 뉴턴의 법칙들을 때로는 패러다임으로, 때로는 패러다임의 부분으로, 때로는 패러다임적이라고 한 것으로 이런 일관성의 결여는 비교적 수월하게 제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나는 『과학혁명의 구조』가 패러다임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패러다임이란 생각을 갖고 이 책을 통해 신념·가치·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인 패러다임의 의미와 기존의 명시적 규칙들에 대치될 만한 것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패러다임은 매우 자주 사용되는 말이면서 가장 모호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과학혁명의 구조』 초판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개념 11가지와 7년 후 개정판에 나타난 7가지를 한데 묶어 패러다임의 18가지 의미를 요약했는데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쿤은 집필 도중 1996년 6월 74세의 나이로 타계했으므로 우리는 더이상 진전된 그의 글을 접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과학혁명의 구조』 개정판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패러다임에 관해 이해할 수 있어 그에게 새삼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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