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는 스위스로 달아났으며
 

루소는 자신의 교육론 <에밀 Emiile>(1762)을 발표하고, 여기서 결론으로 요약한 정치원리를 <사회 계약론>에서 더욱 진전시켰다.
그는 불평등을 돌일킬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한 후 무엇이 한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무슨 권리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들에 답하는 형식으로 논리를 전개해나가면서 "자유의지를 보유하는 가운데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자신 외의 모든 사람에게 구속시키는" 의미로서의 계약이 암묵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유추해냈다. 루소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다른 사람의 충동에 따르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지만 자신이 규정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자유이다."

루소는, 백성은 주권자이며 자신들의 주권을 언제라도 무효가 될 수 있는 정부를 통해 행사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정부 형태를 역사적, 지리적 조건에 적응시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에밀>과 <사회 계약론>은 정부와 종교에 반한다는 이유로 1762년 6월에 파리의 국회로부터 불온서적으로 규정받았다.
루소는 스위스로 달아났으며, 그의 저서들은 스위스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는 1763년 <크리스토프 드 뷔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에밀>을 비난한 파리의 대주교를 공격했다.
이듬해에는 <산에서 쓴 편지>란 제목으로 제네바 공화국의 검찰총장 트론친을 공격했는데, 트론친은 <에밀>과 <사회 계약론>을 불태울 것을 명령한 제네바 원로원의 결정을 옹호했던 사람이다.
코르시카의 독립운동 선두자 파올리는 1764년 9월 루소에게 코르시카를 위해 헌법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고 루소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초안을 작성했다.

1764년 12월 31일 루소는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시민의 느낌>이라는 팜플렛을 받았다.
거기에는 자신을 위선자, 애정이 없는 어버이, 기분 나쁜 친구에 비유하면서 사정 없이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볼테르가 쓴 것으로 루소가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루소는 충격에서 벗어나자 자서전 <고백록>을 쓰기로 결심했다.
<산에서 쓴 편지>는 물의를 일으켰는데 개신교 목사들이 더욱 더 그를 공격했으며 폭도들이 그의 집을 부수었다.

루소는 1766년 1월 영국으로 갔다.
영국의 경험론자 데이비드 흄은 루소를 반갑게 맞아주며 자신의 보호 하에 있게 했다.
그러나 고난을 겪는 동안 이성적 판단력에도 이상이 생긴 루소는, 흄이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함으로써 파리 철학자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이는 루소에게 불리했지만 유럽인들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즐기며 즐거워했다.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루소가 <사회 계약론>애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지만 부패한 정부와 부정한 법 아래서는 사악해진다고 한 말과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나서 부자연스러운 문명 하에서 노예가 된다고 한 말은 루이 16세 치하의 프랑스 시민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경구였다.
이런 가르침을 로베스피에르와 마라, 그리고 쟈코뱅파 당원들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쟈코뱅파들은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시민이 정부의 보호를 받게 되면 암암리에 법에 복종할 것을 서약하게 된다는 루소의 사상을 적용했다.

마라는 1788년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루소의 <사회 계약론>에 관해 해설했다.
루소가 말한 시민의 주권은 혁명의 시기에 정부의 주권이 되었고, 공안위원회의 주권이 되었으며, 그리고 한 사람의 주권이 되었다.
한 사람이란 농부와 노동자를 말한다.
혁명정부에서 농부와 노동자의 주권은 한층 강화되었다.
1789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경작농지의 3분의 1이 농부의 재산이었고, 31ㅜㄴ의 1은 귀족, 교회, 부르주아가 소유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소작인들이 경작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 1789년 7월 프랑스 지방을 여행한 아더 영이 전한 소작농 여인과의 대화내용이 이를 말해준다.
그녀는 세금과 소작료를 바치고나면 살 수 없을 지경이며 무슨 수가 나든지 세상이 달라져야 자기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살 수 잇을 거라고 하면서, 루이 16세가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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