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패러다임을 말하는가

웹스터Webster 사전에는 패러다임의 어원이 그리스어 패러다이그마paradeigma로 ‘나란히 보여주다 to show side by side’로 되어 있고, 전형example, 패턴pattern, 혹은 ‘철학적 이론적 틀a philosophical and theoretical framework’을 뜻한다고 적혀 있다. 사전의 정의조차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된 책을 꼽으라면 단연 토마스 쿤Thomas S. Kuhn(1922-1996)의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1962)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패러다임의 구조’라고 부르는 이유는 쿤이 과학사에서 실례를 들어 예증했을 뿐 주제들을 다른 분야들에서 빌려왔으며, 그가 정작 의도한 점도 과학을 포함한 많은 여타 분야에서 패러다임이 언제, 왜, 어떻게 생기고 또 사라지는가를 정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패러다임 개념을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1980년에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번역자는 1999년 6월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김명자이다. 김명자는 1992년에 개역했는데 원전에 충실하기 위해 다시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사실상 패러다임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하고 완벽하게 정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다만 여러 가지 구성 요소로 기술될 따름이다”1)라고 ‘역자해설’에 적었으며, 패러다임은 정의되기 힘든 개념이라면서2) 은연중에 터득되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출간되고 많은 사람이 쿤에게 존경심을 표했지만 일부는 불분명한 패러다임의 개념을 비판하면서 그가 과학을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활동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쿤의 확신에 공감하는 동조적인 독자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쿤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적어도 스물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했다. 쿤이 7년 후 개정판을 내면서 이에 대한 추가설명을 7절로 구체적으로 기술했는데 그만큼 패러다임은 알기 쉽게 간략하게 설명되기 어려운 말이다. 쿤은 패러다임이 “적어도 스물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된 것이 대부분 형식상의 일관성 결여가 원인이었다면서 예를 들면 뉴턴의 법칙들을 때로는 패러다임으로, 때로는 패러다임의 부분으로, 때로는 패러다임적이라고 한 것으로 이런 일관성의 결여는 비교적 수월하게 제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나는 『과학혁명의 구조』가 패러다임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패러다임이란 생각을 갖고 이 책을 통해 신념·가치·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인 패러다임의 의미와 기존의 명시적 규칙들에 대치될 만한 것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패러다임은 매우 자주 사용되는 말이면서 가장 모호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과학혁명의 구조』 초판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개념 11가지와 7년 후 개정판에 나타난 7가지를 한데 묶어 패러다임의 18가지 의미를 요약했는데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쿤은 집필 도중 1996년 6월 74세의 나이로 타계했으므로 우리는 더이상 진전된 그의 글을 접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과학혁명의 구조』 개정판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패러다임에 관해 이해할 수 있어 그에게 새삼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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