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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책읽기

 


  새벽 일찍 마을 청소를 한다. 한가위 맞이 큰청소이다. 청소를 마치고 바지런히 짐을 꾸린다. 11시 15분 군내버스를 탄다. 읍내로 나아간다. 읍내에서 순천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순천역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에 탄다. 자리 넉 칸을 붙인다. 조치원역까지 기차가 신나게 달리고, 조치원역에서 다시 음성역으로 신나게 달린다. 음성역에서 내린 네 식구는 택시를 잡아타고 음성 읍내에 들렀다가 생극면 도신리로 달린다. 이제, 아이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집에 닿는다.


  아침 11시에 길을 떠나서 저녁 20시 무렵에 닿는다. 전남 고흥을 떠나 충북 음성으로 가는 네 식구는, 버스길과 기차길과 택시길에서 숱한 사람들을 만난다. 무뚝뚝한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아이들 바라보며 싱긋 웃는 사람들을 보며, 기차에 딸린 뒷간에서 담배를 피우며 연기 가득 채워 놓은 누군가를 본다. 고단함에 쩔디쩐 사람들을 보고, 맑게 웃거나 홀가분하게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들을 본다. 옷차림이 눈부시거나 해사한 사람들이 있다. 옷차림이 우중충하거나 무거운 사람들이 있다. 짐이 많은 사람이 있고, 빈손인 사람이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아주머니가 있고, 혼자 다니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있다.


  우리 곁을 스치는 숱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 사람들한테 우리 네 식구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보이겠지. 이 사람들은 우리 네 식구를 비롯해 숱한 사람들을 어떤 이웃이나 동무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이 숱한 사람들을 어떤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면서 바라볼까.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에 안는다. 스스로 떠올리는 지난날이든, 스스로 생각하는 오늘날이든, 스스로 꿈꾸는 앞날이든, 사람들 누구나 가슴속에 이야기 한 자락 품는다. 돈을 버느라 바쁘든, 무언가에 쫓기느라 힘겹든, 이것저것 하느라 슬프거나 외롭든, 이렇거나 저렇게 기쁘거나 홀가분하든, 스스로 느끼건 안 느끼건 사람들 누구나 이야기를 빚으면서 살아간다.


  저 사람 저 이야기는 어떤 삶이요 어떤 빛일까.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는 어떤 삶이면서 어떤 빛인가. 우리들은 어떤 삶으로 어떤 꽃을 피우면서 어떤 빛을 이루려 하는가. 나는 어떤 일을 꾀하고 어떤 생각을 돌보면서 어떤 사랑을 나누려 하는가.


  나는 내 모습을 찬찬히 짚으면서 내 몸과 마음을 헤아리고, 내 가슴속에 깃든 이야기가 무엇인지 읽는다. 나는 누구보다 ‘나라고 하는 사람 책’을 읽는다. 내가 나를 읽을 수 있을 때에, 나는 내 옆지기를 읽을 수 있겠지. 내가 나를 읽지 못할 때에, 내 두 아이가 어떤 빛이면서 숨결인가를 읽지 못하겠지.


  나를 사랑하는 내 삶일 때에 나를 둘러싼 이웃과 동무를 따사롭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 느낀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 삶일 적에 내 둘레에 흐르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느끼는 허여멀건 나날이 되리라 느낀다. 사람을 읽기는 아주 쉽다. 내가 나를 읽는 데에서 사람읽기가 열리니까. 사람을 읽기는 아주 즐겁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데에서 사람읽기 첫끈을 여니까.


  같은 하늘 아래이지만, 들판과 멧자락과 물과 바람이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삶을 꾸리며 사랑을 일군다. (4345.9.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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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똥벌레 책읽기

 


  두 아이를 이끌고 저녁마실 나온다. 작은아이는 내 오른손을 잡고, 큰아이는 내 왼손을 잡는다. 마을회관 옆에 서며 달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가득 낀 밤하늘은 달빛을 새롭게 감싼다. 아주 천천히 흐르는 구름은 달빛이 마을마다 예쁘장하게 흩뿌리도록 돕는다. 달을 한참 올려다보고 나서 걷는다. 문득 큰아이가 “저기!” 하고 외친다. 뭐가 있기에 그런가 하고 바라보니 불빛이 조그맣게 반짝인다. 그래, 개똥벌레, 반딧불이로구나. 어쩜, 여기에 개똥벌레가 있구나. 불빛 없는 시골길을 걷는 동안 개똥벌레를 여럿 만난다. 논 옆으로 도랑이 흐르고, 도랑에는 다슬기가 사는가 보다. 개똥벌레한테는 먹이가 있고, 올해부터 마을마다 농약을 아예 안 쓰거나 되도록 적게 쓰기로 한댔으니, 이처럼 저녁에 반짝반짝 빛나는 날갯짓을 볼 수 있구나. 풀벌레 노랫소리 감도는 고즈넉한 마을 곳곳에 개똥벌레가 춤을 춘다. 내 머리 위로, 아이들 머리 위로, 개똥벌레가 부웅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4345.9.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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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2.8.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시골에 도서관을 여는 일을 헤아려 본다. 시골에는 사람이 적으니까 굳이 도서관을 안 열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뜻밖에 참 많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가야 하니까 도시에 열어야 하고, 도시에서도 시내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내가 서재도서관으로 꾸리는 ‘사진책 전문’ 도서관 또한,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찾아오기 쉬운 커다란 도시 시내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고들 말씀한다.


  도서관이라는 곳을 찬찬히 그려 본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많이 읽어 주면 책이 반갑게 여기리라 느낀다. 다만, 반갑게 여기는 일이 가장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가장 좋으며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책이란 종이꾸러미로 엮을 때에만 책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 살아가는 몸짓과 말짓과 마음짓 모두 책이라고 느낀다. 곧, 시골에서는 흙을 만지고 햇살을 쬐며 새와 벌레 노랫소리 듣는 일 모두 책읽기가 된다고 느낀다. 가만히 보면, 시골에서는 애써 종이꾸러미 책을 안 읽어도 될 만하다. 그러나, 언제나 삶책과 자연책과 나무책과 풀책을 읽기에, 여기에 다른 한 자리로 종이책을 읽으면서, 마음과 몸을 고르게 살찌울 수 있으리라 느낀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도시에는 ‘종이책 도서관’에 앞서 ‘자연책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도시에는 ‘숲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도시 아파트나 건물 사이사이 조그맣게라도 숲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가 득시글거리는 찻길 한켠에는 길다랗게 숲길이 이루어져, 이 거님길 걷는 사람들이 나무와 풀을 느끼면서 햇살과 바람을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학교나 공공기관도 자동차 대기 좋은 아스팔트 바닥만 마련하지 말고, 두 다리로 사뿐사뿐 디딜 흙땅과 숲이 얼마쯤 있어야 한다. 방음벽을 세우지 말고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룰 노릇이다. 전철이 지나는 기찻길 옆이든, 고속도로 가로지르는 곁이든, 어디에나 숲이 있고 풀과 나무가 어우러져야지 싶다. 먼저 이렇게 도시가 숲 품에 안기도록 하고 나서야, 종이꾸러미로 된 책을 갖추는 도서관을 마을마다 알맞춤하게 세워야지 싶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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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 (도서관일기 2012.8.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여름에는 서재도서관을 널리 알리며 책손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책 갈무리는 끝냈어도 서재도서관을 널리 알리지는 못한다. 큰아이가 한참 크던 세 살 적에 인천을 떠나 충북 음성 멧골로 갈 적에도 이와 비슷했는데, 아이들하고 집에서 함께 부대끼는 겨를을 보내느라 막상 도서관에 머물며 책손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언제나 내 마음은 ‘책보다 아이’ 쪽으로 기운다. 이제 둘째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는 두 살이니, 작은아이하고 복닥이고 큰아이하고도 어울리면서 ‘도서관보다 집’에 오래 머문다.


  곰곰이 돌아보면, 아이들 크는 나날이란 짧으리라.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크리라. 그동안 집에서는 집살림 잘 꾸리고, 책을 둔 도서관에서는 책이 안 다치고 곱게 깃들도록 하면 되리라.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도서관보다, 책 하나 알뜰히 아낄 고운 책손을 바라는 만큼, 책바다에서 책사랑을 익히고픈 이라면 언제라도 즐거이 마실을 올 테며, 이때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손을 맞이하며 함께 놀 수 있겠지.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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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 장으로 읽기

 


  자그마한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찾아가 보니, 크기가 작아 ‘자그마한 헌책방’이라 말하지만, 이곳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곳입니다. 크기가 크대서 ‘더 나은’ 헌책방이 아니요, 크기가 작대서 ‘덜 떨어지는’ 헌책방이 아닙니다. 책을 더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더 뛰어난 사람이 아니요, 책을 적게 읽은 사람이 덜 떨어진 사람이 아니듯, 책방이나 책터는 크기로 따지지 않습니다.


  갖춘 책이 더 많아야 더 좋은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사고파는 책 가짓수나 숫자가 더 많아야 더 훌륭한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어느 헌책방에 들든 내가 읽을 마음이 드는 책 하나 만나면 됩니다. 주머니를 털어 책 하나 장만하지 않더라도, 책시렁을 가만히 돌아보며 책내음을 맡고 책이야기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모습을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어떤 모습을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란 나한테는 아무 값을 못합니다. 오직 하나, 나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이 샘솟는 데에 좋아하는 그대로 찍는 사진만 값합니다. 아이들을 찍든, 내 보금자리와 시골마을을 찍든, 또 헌책방을 찍든, 이웃을 찍든, 자전거를 찍든, 내 마음속 가장 따사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사진기를 들 때에 비로소 뿌듯하고 즐거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삶을 읽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내가 마음으로 아낄 이웃 삶을 읽습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지구별 삶을 읽고, 내 발자국이 닿는 아름다운 삶터를 읽습니다. (4345.9.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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