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빅토리아 턴불 지음, 김영선 옮김 / 보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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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408


《판도라》

 빅토리아 턴불

 김영선 옮김

 보림

 2017.9.20.



  나무는 늘 나무입니다. 나무는 이쪽하고 저쪽을 가르지 않습니다. 별빛은 푸른별에 고루 퍼집니다. 어느 쪽만 비추고 다른 쪽은 안 비추지 않습니다. 벌나비는 모든 꽃을 찾아다니면서 꿀이나 꽃가루를 얻고는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꽃을 따지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이니까’ 가를까요? ‘네 쪽’하고 ‘내 쪽’으로 말이지요. 우리는 사람인 탓에 나라를 가르고 왼오른을 쪼개어 서로 으르렁대거나 윽박질이거나 끼리질을 일삼을까요? 끼리끼리 노는 사람을 마주할 적마다 “그리 놀면 지겹지 않나?” 하고 묻습니다. 어디에서나 너른 품으로 흐르는 풀꽃나무랑 바람이랑 해랑 비랑 풀벌레랑 새를 마주할 때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구나!” 하고 노래합니다. 《판도라》는 작은 새를 동무로 맞이하는 길이란 어떻게 나아가는지, 작은 새를 마음벗으로 맞아들이면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작은 새가 없는 곳하고 작은 새가 날갯짓하는 곳은 얼마나 다른지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사람이 사람답다면 총칼은 진작 버렸으리라 봅니다. 사람이 사랑스럽다면 군대·전쟁무기도 일찌감치 버렸을 뿐 아니라, 금긋기나 감춤질이나 주먹질이란 얼씬도 못하리라 봅니다. 스스로 숲이 되려 하지 않으니 엇나갑니다. 스스로 숲이 되면 환하게 피어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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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ora #VictoriaTurnb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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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덩키덩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15
로저 뒤바젱 지음, 김세실 옮김 / 시공주니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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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75


《당나귀 덩키덩키》

 로저 뒤바젱

 김세실 옮김

 시공주니어

 2011.11.25.



  저는 우리 집 두 아이를 ‘그냥 졸업장을 내세우면서 입시지옥으로 몰아세우는 시멘트덩이 학교’에 보낼 뜻이 하나도 없습니다만, 둘레에서는 으레 “왜?”라고만 묻고 스스로 생각하려 들지 않습니다. “학교에 에어컨도 있고 난방도 잘하더군요. 그런데 한낮에 창문 다 닫고 형광등을 켜던데요?” 하고 물어도, “멀쩡한 운동장에 화학덩이 인조잔디를 까는데, 어떻게 뛰놀지요?” 하고 물어도, “학교폭력, 줄세우기, 스마트폰, 거친말 ……은 언제 바뀌나요?” 하고 물어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대꾸만 듣습니다. 엉터리 사회를 바꿀 생각은 왜 안 하면서 ‘엉터리 사회에 몸을 맞추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학교에 내몰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당나귀 덩키덩키》에 나오는 ‘당나귀’는 스스로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를 잊은 채, 자꾸 옆에서 쑥덕거리는 말에 휘둘립니다.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아요. 다른 이가 하는 말에 휩쓸리고 끄달립니다. 당나귀를 당나귀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 터전이라면, 이 터전이 엉터리입니다. 당나귀한테 토끼나 닭이나 소나 돼지처럼 굴라고 말하는 터전이라면, 이 터전은 망나니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아름나라·아름마을·아름집이 돼야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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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Duvoisin #Donkeydon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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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계절 - 열두 달 숨은 그림 찾기 아티비티 (Art + Activity)
나탈리 베로 지음, 미카엘 카이유 그림, 이세진 옮김 / 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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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416


《우아한 계절》

 나탈리 베로 글

 미카엘 카이유 그림

 이세진 옮김

 보림

 2020.2.14.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되도록 단출하고 깡똥한 차림새로 해바라기를 합니다. 눈을 살며시 감고 후끈후끈한 여름볕이며 포근한 겨울볕을 온몸으로 받다 보면 어느새 온몸에 따끈따끈한 해님이 스며들면서 해내음이 납니다. 소나기가 오건 가랑비가 들건 장대비가 꽂건 가벼우며 짤막한 차림새로 비맞이를 합니다. 눈을 가만히 감고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덧 온몸은 빗방울이 콕콕 건드려 주면서 비내음이 물씬 나요. 《우아한 계절》은 “놀라운 숲(Merveilleuse Nature)”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또는 “멋진 숲”으로 읽어도 돼요. 놀랍거나 멋진 숲이 철마다 어떻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새로운 빛내음을 퍼뜨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아한 계절”이 아닙니다. 이런 ‘인문학자 같은 어른스런 이름’은 놀랍고 멋지게 우리 곁에서 반짝이는 숲을 이야기하기에는 걸맞지 않아요. 아이처럼 맨발로 풀밭을 달리면서 풀내음을 머금어요. 아이랑 맨손으로 나무를 타면서 나무바람을 쐬어요. 아이하고 바닷물에 뛰어들고 골짝물에 몸을 담그면서 온통 숲내음으로 우리를 달래 봐요. 홀가분히 찾아오는 모두한테 상냥한 숲입니다. 단출하게 찾아드는 누구나 조촐히 품어 주는 아름다운 숲이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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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veilleuseNature #NathalieBereau #MichaelCaillo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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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t in the Hat (Paperback)
Dr. Seuss / HarperCollins Publishers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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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25


《the Cat in the Hat》

 Dr. Seuss

 Random House

 1957.



  노는 어린이는 그저 놉니다. 놀면서 틀을 세우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제랑 다르게 놀고, 낮에는 아침하고 다르게 놀아요. 뭔 놀이를 이랬다저랬다 하느냐고 퉁을 놓는다면 오로지 틀에 박힌 눈길입니다. 놀이란 홀가분한 길이에요. 놀이란 ‘틀을 놓는’ 몸짓이에요. 어떠한 틀도 받아들이지 않기에 놀 수 있어요. 아무런 틀이 없이 모든 신바람을 넉넉히 맞아들이니까 놀이라는 이름입니다. 《the Cat in the Hat》을 펴면, 비오는 날 바깥을 내다보며 ‘놀고 싶은데 비가 와서 못 놀잖아?’ 하고 툴툴대는 두 아이가 나옵니다. 이윽고 ‘갓을 쓴 고양이가 두 다리로 척척 걸어’ 두 아이한테 찾아오지요. 갓을 쓴 고양이는 거리낌없이 놀이판을 펴고, 스스럼없이 놀이마당을 이룹니다. 놀면서 아무것도 안 쳐다봐요. 신나는지 안 신나는지만 생각합니다. 두 아이는 갓을 쓴 고양이가 ‘노는 짓’이 영 못마땅합니다. “왜 저러는데?” 하는 얼굴이고, ‘어머니한테 꾸지람 들을까 걱정’을 합니다. 그래요. 비오는 날 옷도 몸도 옴팡 적시며 놀면 되지 않나요? 꾸지람 걱정을 벌써부터 한다면, 아이는 아이다움을 잃은 셈이에요. 눈치를 보면 놀이가 아닌 굴레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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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Seuss #theCatintheHat #Se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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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과학 친구들 2
히라야마 가즈코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베틀북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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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336


《뿌리》

 히라야마 가즈코

 햇살과나무꾼 옮김

 베틀북

 2003.3.25.



  아이는 어른에 대면 손이 작습니다. 저는 어른인 몸이라지만 손이 좀 작습니다. 저보다 키가 작은 곁님하고 손크기가 비슷한데, 우리 집 아이들이 열 몇 살쯤만 되어도 저보다 손이 훨씬 크겠네 싶습니다. 저는 손이 작고 발도 작으며 키도 고만고만하지만 등짐은 잘 나르고 오래 걸으며 맨발로 높은 봉우리를 척척 넘곤 합니다. “크지도 않은 사람이 힘은 꽤 쓰네?” 하고 묻는 분이 많은데, “아, 그대는 허벅지가 꽤 굵잖아.” 하고 덧붙이더군요. 스스로 거울 볼 일이 없다 보니 허벅지가 남보다 굵은 줄 알지도 못했는데, 어쩌면 허벅지힘으로 자전거를 달리고 집안일을 하고 걸어다니며 사전까지 쓰는구나 싶어요. 《뿌리》는 그야말로 뿌리를 오롯이 담아냅니다. 새가 심은 어린나무를 곧잘 옮겨심는데, 어린나무는 아직 뿌리가 작고 얕습니다. 어른나무가 되면 줄기마냥 굵고 긴 뿌리가 됩니다. ‘뿌리깊은 나무’란 ‘철든 나무’예요. 푸나무가 뿌리를 뻗는다고 할 적에는, 푸나무가 삶을 새롭게 배우며 맞아들인다는 뜻이겠지요. 풀뿌리를 바라보며 풀뿌리가 짓는 사랑을 떠올립니다. 나무뿌리를 마주보며 나무뿌리가 들려주는 살림을 그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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