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마이리뷰 당선작

10점
사랑없이 살 수 없다 <독일인의 사랑> - 새파랑
<독일인의 사랑>
N23070한 어린이가 있었다. 그의 신분은 높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귀족이라는 계급에 위축되지도 않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었다.[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랑에는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척도나 비교가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오로지 온 마음, 온 영혼,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해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P.22어느날 그는 마리아라는 후작의 딸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그녀, 하지만 병약했던 그녀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말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

8점
꿸 구슬은 없지만 - 희선
<글쓰기, 당신의 초능력 잠금 해제>
자기 이야기를 쓰면 책이 여러 권이다,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쓰면 한권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걸 쓰지는 못하겠네요. 어릴 때 일은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요. 초등학교 글쓰기 시간에 학교에 다니기 전 이야기 하나를 쓴 적 있는데, 그건 지금도 기억해요. 어릴 때 이런저런 글을 썼다면 기억하는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쉽네요. 학교 다닐 때 글쓰기 시간 싫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글쓰기 시간이 아니고 국어에 글쓰기가 있어서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일기 검사 ...

10점
시대가 만든 인간, 애도와 참회의 기록 - 필리아
<도어 (리커버 특별판)>
우리들은 여러 다른 시대, 다른 질서를 요구하는 현실에 때론 순응하거나 저항하며, 삶을 견뎌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리 변화하는 그 질서와 무관하게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처럼 외부에서 적응을 강요하는 사회적 힘의 존재와 무관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진장한 내적 긴장과 외적 경계를 요구할 것이다. 아무튼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역사가 기술하지 못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개인의 심적 변화와 행위에 대한 고독한 투쟁을 보았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로서의 문학이 역사를 말하는...

10점
[마이리뷰] 명랑한 은둔자 - 물감
<명랑한 은둔자>
지난 일요일에는 처음으로 친구 따라 낚시를 갔다. 이것은 활동 반경이 매우 좁은 나에게 매우 큰 결심이었는데 지금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이 갑갑함을 풀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당장 서해로 달려가 자리 잡고 물멍을 때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동안 머리에 가득했던 잡생각들을 한 가지씩 흘려보내었다. 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 자아가 생길 무렵부터 줄곧 해오던 질문이다. 지금 나이의 두 배쯤 살면 그 질문에서 자유로워지게 될까. 확신은 못하겠군. 젊었던 시절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다는 유명 연예인들의 인터뷰를 종...

6점
레테의 사람들을 읽고... - stella.K
<레테의 사람들>
디멘시아 문학상이라는 상이 있다고 한다. 벌써 5회째를 맞이했고, 이 작품은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문학상은 치매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사회적 이해와 공감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 2017년에 처음 제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문학상이 있다니 좀 놀랍기도 했고 반갑기도 하다. 문학이 해야 하는 역할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회의 외지고 그늘진 면을 밝히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닌가. 하지만 막상 이 책을 읽으려니 마음이 좀 무거웠다. 아무리 문학의 역할을 운운해도 내용 자체가 유쾌한 건 아닐 테니. 그래도 염려한만큼 그렇게...

8점
어디서나 가볍게 수학을 떠올리기 - 로렌초의시종
<누가 수학 좀 대신 해 줬으면!>
수학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는 가벼운 생각들이 참 다양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배웠다. 언제나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인데도, 읽는 내내 부담스러운 대목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학이라는 과목에 특히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을 수학 전문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아는 덕이 크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수학은 사칙연산의 밖이나 그 너머에 있다는 말이 정말로 퍽 참신한 통찰이라고 자신하는 듯한 말을 퍽 자주 듣는다. 날마다 듣는 말이야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화 ‘식스센스’의...

10점
인간의 조건, 죽음 - 그레이스
<작별인사>
“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9p)”직박구리를 묻어주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철이는 가슴 속에 치밀어오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슬픔일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생명 안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불현 듯 실체로 직면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아버린 자의 두려움과 슬픔일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 감정은 마치 상점의 쇼윈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16p)“이란 표현에서 수상함을 발견한다. 인간이 감정을 이런 식으로 느끼나? “막연한 추상으...

8점
신생국 현대사의 비극은 이 섬나라에도 - Falstaff
<말리의 일곱 개의 달>
. 셰한 카루나틸라카는 1975년 스리랑카 남부 골Galle에서 (부잣집 아들로? 맞을 걸?) 태어나 콜롬보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 뉴질랜드로 유학 가 경영학을 공부하라는 집안 어른들 말씀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마시(Massey)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다. 이후 런던, 암스테르담, 싱가포르 등지의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가디언, 뉴스위크, 롤링스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특집기사를 실어 가외수입을 올리는 한편, 베이스 기타를 들고 스리랑카 록밴드와 공연도 하며 2010년 데뷔작 <차이나맨: 프라딥 매튜의 전설&g...

10점
그의 구원 - 다락방
<엑소시스트>
유명한 영화배우 '크리스'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열한살 딸아이 '리건'이 이상한 증세를 보인다. 험한 말이나 욕설은 물론이요 갑자기 소변을 보고 라틴어,그리스어, 독일어, 불어 등의 외국어를 말하고 평소와 목소리까지 달라졌다. 이에 크리스는 너무나 걱정이 되어 병원에 데려가 검사하고 그때마다 치료약이나 주사를 받아 아이에게 투약해보지만 아이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진다. 침대가 위아래로 움직이거나 어쩌면 아이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살인사건도 일어난다. 크리스는 이에 정신의학의의며 주술에 ...

데이미언 캐러스는 조지타운대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찾은 책과 간행물들을 한아름 안고 서둘러 예수회 기숙사 방으로 돌아갔다. 후다닥 짐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서랍을 뒤져 담배부터 찾았다. 오래된 카멜 반 갑이 나왔다. 그는 한 개비에 불을 붙여 깊이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숨을 참으며 리건을 생각했다. 히스테리. 당연히 히스테리여야 했다. 그는 연기를 내뿜은 후 양손 엄지를 벨트에 걸고 그 자세로 책들을 내려다보았다. 외스터라이히의 『빙의』, 헉슬리의 『루됭의 악마들:지크문트 프로이트의 하이즈만 사례에 나타난 착행증』, 매캐슬런드의 『현대의 정신병 관점으로 고찰한 마귀 들림과 초기 기독교 시대의 엑소시즘』. 그리고 프로이트 정신의학 저널들에서 뽑아온 논문들. 「17세기 마귀 들림의 신경증」과 「근대 정신의학에 있어서의 마귀 연구」. - P320


6점
버너 자매 - 베터라이프
<버너 자매>
이디스 워튼은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전적으로 그녀에게 부유함이 가져다주는 축복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녀가 4살이 되던 해에 가족을 위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고 이미 어린 소녀 때부터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런 재능을 바탕으로 그녀는 1921년에 장편인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가 됩니다. 워튼은 40세가 될 때까지 첫 소설을 출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봤을 때, 꽤 생산적인 이력을 쌓게 되는데요. 총...

래미 씨는 세상에 자기 혼자 뿐이라고 했고, 그녀가 아는 한 외로운 남자들은 먼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8점
선과 악은 한몸이다 - 레삭매냐
<반쪼가리 자작>
다시 한 달이 지나, 이번 주말 달궁 독서모임 출격할 때가 되었다.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백 쪽 남짓한 책이라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판단착오였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칼비노가 대단한 작가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투르크와의 전쟁이 벌어졌고, 테랄바 출신 화자의 외삼촌 메다르도 자작은 보헤미아로 황제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쟁터로 출발한다. 오스만 투르크의 비엔나 침공은 1529년과...

10점
사랑 없인 살 수 없어. - 반유행열반인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20231112 스테파니 카치오포. 뷰렛-Love Forever. 읽는 중간중간 기대나 예측을 벗어나며 흥미를 불러오는 사랑에 관한 책이었다. 계속 읽어오던 뇌과학책들이랑 비슷한 교양서인가 했는데, 읽다 보면 이거 뭐냐 연애 에세이냐, 로맨스 소설이냐, 하다가 마지막엔 그렇게 간단하지 않군, 했다. 뒤로 갈수록 좋았다. 누가 무슨 책이에요? 하고 짧게 답해 달라고 하면 한 사랑의 일대기, 하겠다. 저자 스테파니는 유럽에서 나고 자라 심리학과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스테파니의 엄마 아빠는 사이 좋고 다정한 부부였다....

10점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소설 - 구름모모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여러 편의 단편소설들 중에서 『일 년』과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소설을 떠올려본다. 평이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무엇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것이 최은영 작가만의 장점이 된다. 병문안을 온 큰아버지 부부의 통성 기도와 찬송가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남겨지는 흔적이 되고 어떤 큰아버지 부부였는지도 지긋하게 눌러서 흔적을 남긴다. ​​신앙인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큰아버지 부부이다. 대외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활동을 할지 모르지만 내면에는 정이 없는 종교인, 가족을 아프게 한 사람들임을 부각시킨다. 신...

10점
이 책을 읽으며 나눴던 지금 이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길... - 잭와일드
<작은 버섯>
"작은 존재들이 돌고 돌며 일으키는 웅장한 세계"정지연 작가의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작은 버섯>은 우연히 발생한 작은 솔방울의 두드림으로 숲속의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깨어나고 성장하면서 거대한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책이다. 자연 안에 존재하는 작은 존재들이 가진 에너지가 순환하면서 거대한 세계를 이루는 것을 경쾌하고 재치넘치는 이미지와 필치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작은 솔방울이 우연히 대지에 떨어지면서 작은 버섯을 깨운다. 깨운다는 것은 에너지를 전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새로운...

10점
뭉근한 고유명사의 서사를 읽다 - honamwon
<꽃잎이 뜸 들이는 시간>
이문재 시인의 노숙인 시설 강의에서 접한 책이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그저 이 책을 낭독하게 했다. 시 낭독은 보았어도, 운문이 아닌 산문을 읽게 하는 것은, 무척이나 생경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낭독은 여느 시 낭독보다 훨씬 더 가슴에 와닿았고 파문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그 산문은 산문이 아닌 운문, 운문이 아닌 산문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선생으로서 수강생들의 '촉진자'가 되어 시를 촉진하고 싶었다고 한다. 시의 마음을 일깨울지에 대해 아직도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시가 아닌, 에세이를 -그것도 자기 이야기를-쓰자고 제안했다고...

8점
나의 낱말 목록을 갖고 싶다 - 자목련
<낱말의 장면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은 대단하다. 달래는 정도가 아니라 괜찮은 상태로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가 아니니까. 어떤 이는 지나간 과거에 오래 매달려있고 어떤 이는 사람들과의 부침에 힘겨워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괴롭다. 『낱말의 장면들』 의 저자도 다르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고 관계에 지치고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게 고달팠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사전을 찾았다. 잘 알려지지 않고 많이 쓰지 않는 순우리말을 외우고...

8점
[리뷰]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뒤바뀐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 겨울호랑이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이 전쟁은 다른 식민주의 군사 행동들과 비슷한 전형적인 특징이 많기는 하지만, 또한 아주 특수한 특징도 있다. 대단히 특별한 식민주의 기획인 시온주의 운동에 의해, 이 운동을 위해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 열강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수행된 이 식민주의 충돌이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두 민족 집단, 두 국민의 민족 대결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특징의 밑바탕에서 그 점을 더욱 증폭시킨 요인은 유대인, 그리고 또한 많은 기독교인에게 역사적인 이스라엘 땅과 성경의 연관성을 불러일으키...

10점
세피아빛 초상-인생이 이야기가 될 때의 청량함 - mazinga
<세피아빛 초상>
이사벨 아옌데의 『세피아빛 초상(조영실 옮김, 민음사, 2022, 2020, 452쪽 분량)』은 네루다의 시를 제사로 삼는다. “길만이 가족이라네”라는 마지막 연의 여운이 남아 있을 때 페이지를 넘기면 델 바예 일가의 가계도가 나온다. 어느 여정이 되었건 인간은 가족에게로 이끌리고, 가족은 인간에게 갈래길이자 관문 또는 허들을 제공한다. 스포가 될까 싶어 가계도를 스쳐 넘겼지만 얼핏 보아도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의 부엔디아 집안 가계도와 견주어 간결하다. 저절로 안도가 된다. 『세피아빛 초상(2000)』은 &...

10점
[마이리뷰] 순간을 그리는 열일곱 자(字) - 잔별
<바쇼의 하이쿠>
<사르륵사락 / 대나무에 소리 나네 / 밤의 눈> 얼마나 조용한 밤이면 대나무에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릴까. 정말이지 고요하고 평온한 밤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댓잎에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홀로 깨어있는 이의 고독함이 느껴진다. 날이 추워지는 이맘때면 생각나는 시(하이쿠)다. 시 속 상황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이 시를 읊조리면 눈 내리는 어느 고요한 밤이 떠오르곤 한다. 이처럼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그 상황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는 점이 바로 하이쿠가 지닌 매력이 아닐까.하이쿠란 일본 ...

10점
주영이가 꿈꾸는 세상을 함께 꿈꾸기 - 고민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읽었다.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나는 운이 좋아 편히 살고 있는가.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도, 내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도 우연이다. 나보다 잘나고 잘사는 사람 많아도 나 자신의 모습과 나의 삶을 운명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아프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저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살맛 나는 순간들을 버팀목 삼아 살아간다. 양심껏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낀 까닭이 뭘까.지구의 모든 생명은 태양을 에너지 삼아 우연히 발생하고 진화하고 유지되어 왔...

8점
가을비는 내리고 - 꼼쥐
<오십에 듣는 클래식>
비가 내린다. 가을비는 왠지 후줄근하고 추레한 느낌이 먼저 드는 것이다. 아스팔트를 뒤덮은 낙엽 더미가 떠오르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비에 젖어 볼품없어진 은행잎이나 단풍잎의 잔해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배수구로 쓸려가는 모습은 처연하다 못해 씁쓸하다. 마치 우리네 삶의 끝자락을 보고 있는 듯해서 말이다. 비가 내리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낮게 깔리는 피아노 선율에 젖어 있다."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끝이 어디든 한번 시위를 떠난 사랑의 화살은 어딘가에 꽂힐 때까지 날아가는 법입니다. '빗방울 전주곡'...

10점
제2의 뇌, 장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 - 모나리자
<내 장은 왜 우울할까>
참 굉장한 책이다. 그동안 장 건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책은 그 결정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건강지식과 정보를 알게 되어 유익한 독서가 되었다. 저자 윌리엄 데이비스는 저명한 심장병 예방학 전문의이자 250만 부 이상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밀가루 똥배』를 썼다. 이 저서로 인해 ’밀가루똥배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신드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세상사 모든 게 다 그렇겠지만 건강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도 고정불변의 법칙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예를 들면, 지방과 포화지방 섭취를 줄이고 식단의 중심...

10점
언어생활자들이 주고받은 맛깔나는 편지 - 별사탕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여기 두 명의 번역가가 있다. 같은 시기 같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던 두 문학소녀는 30대 후반에서야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고 40대가 된 지금 같은 번역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는 번역가 노지양과 홍한별이 프리랜서 번역가의 삶과 번역 철학에 관해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으로, 동녘에서 펴내는 편지 시리즈 ‘맞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두 번역가의 이름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낸 역서는 알지도 모른다.《나쁜 페미니스트》, 《트릭 미러》 등 화제작을 번역해 한국 ...

10점
설자은, 금성을 접수하다 - 꼬마요정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남장 여자 이야기는 흔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제법 특별하다. 왜냐하면 미은이 남장을 하게 된 계기가 죽음이나 어떤 불가항력적인 사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은이 약간 상식에서 벗어난 인물이라는 점이 불가항력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상황 자체만으로 봤을 때 미은은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다, 본인이 진정 원하지 않았더라면. 집안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자은이 없다고 해서 망해가는 집안이 순식간에 폭삭 망하지는 않을 것이고, 미은이 자은을 대신한다고 해서 금방 집안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셋째이...

10점
끊임없이 나를 밀어내는 세상 속으로 기어코 파고드는 소년의 이야기 - 외계인
<타국에서의 일 년>
타국에서의 일 년,이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의문이 들었다. 1년 간 해외로 여행을 갔단 말인가, 유학을 떠났다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온 건가. 이 애매모호한 제목에는 그저 남의 나라에서 일 년을 지냈다는 정보만 나와 있었다. 주인공이 보낸 일 년이 어땠을지 궁금해 선뜻 책을 집어 들었다.*소설의 주인공은 틸러. 미국에 거주중인 20대 초반 남성으로, 아시안의 피가 아주 조금 섞인 ‘거의’ 백인이다. 아시안은 그를 코쟁이라 불렀지만, 백인은 젓가락질하는 방법을 짓궂게 묻곤 했다.그에게 아시아쪽 피를 물려준 엄마...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10점
운명 - 페넬로페
<운명의 꼭두각시>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초반 부분은 약간 밋밋하게 읽혔다. 트레버 작가 특유의 담담하고 간결한 문장에 어떤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고, 혹시 번역의 문제인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가다가 71페이지에서 갑자기 불안이 엄습했고, 78페이지에서 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아 버렸다. 무너졌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훅 들어오는 이 운명의 꼬임들 때문에 그 다음은 계속 슬픈 감정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언제나 불행할 수밖에 없는 폭력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고결하며 용기를 내게 하는 것임에도 따뜻함보다는 서늘한 느낌...

10점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 인간의 고유한 자리를 찾는 여정 - 초란공
<수학 지능>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 인간의 고유한 자리를 찾는 여정- 《수학 지능》주나이드 무빈 지음 | 박선진 옮김 [까치] | (2023) 2016년 한 해를 특징지었던 사건들 가운데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건이라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에서 그렇게나 빨리 인간을 상대로 승리할 줄은 몰랐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작년 이맘 때 즈음에는, 챗-GPT의 출현이 또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나는 아직 제대로 이 기술을 사용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1년...

10점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 chkim4199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군 복무 시절 버스 표를 검사하는 차장이 "군인 아저씨" 하고 불렀다. '나?' 어색했다. 이제부터 아저씨가 되는 순간이었다. 30대 후반 연수원에서 팀을 나눠 축구 경기를 했다. 공 좀 차던 나는 내게 굴러오는 공을 냅다 찼다. 난생처음 헛발질을 했다. 신체적으로 움츠러들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50대 초반, 통로에 쓰러지는 책상을 (내 딴에는) 가볍게 뛰어넘었다.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손목이 부러졌다. 장애물을 피해 돌아서 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신체적 자신감은 사라졌다.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정신적으로도 예전의 당당함은 사그라...

8점
[마이리뷰] 주소 이야기 - 지하철 독서가
<주소 이야기>
우리에게 주소는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우편물을 보내거나 받을 때 외에는 그닥 필요하지 않은 무엇일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국가의 통제 수단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디어드라 마스크는 주소가 갖는 이 모든 가능성에 주목한다. 현대 사회에서 주소가 상징하는 바,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이 책 초반에 저자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시골마을 친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1991년까지 도로명 주소가 있는 곳이 거...

8점
이 책을 읽는 자들은 ... - scott
<이 책을 훔치는 자는>
마을 곳곳에 50여 개의 책방들이 즐비 한 책의 마을 요무나가에는 신사가 있다.이 곳 신사에는 서책을 관장하는 미쿠라관에는 이나리 신이 모셔져 있다.서책을 관장하는 이나리 신을 모신 요무나가신사로 향하는 이들의 염원하는 소원들은 독서, 글쓰기에 관한 것으로 책과 관련된 기원과 욕망, 저주의 말들을 쏟아 내기 위해 전국 각 지역에서 모여 들고 있다.[1980년에 나온 <정본 수서산서>의 특별 한정판 35부를 10만엔 이하로 구입할 수 있길.SF작가 도헨 보쿠타로의 창작 의욕에 불을 지펴주세요.20년 동안 신간을 기다리고 있...

8점
여러분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 cyrus
<위대한 파리>
평점4.5점 ★★★★☆ A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요, 아직까진‥….” 그가 말했다. “김 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예.”라고 나는 대답했다.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안에 잡아 본 적이 있으세요?” “가만 계셔 보세요.” 그는 안경 속에서 나를 멀거니 바라보며 잠시 동안 표정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없어요, 파리밖에는‥….”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중에서, 《무진기행》 ...

10점
누구 옆에 서 있는지 - 공쟝쟝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동생의 강추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정주행했다. 매 화가 다 좋았는데, 주인공이 우울증에 걸린 상황을 볼 때 눈물이 계속 나서 힘들었다. 재경험. 재인식. 애도.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애써서 생각하지만. 가끔 참기 힘든 마음은 내가 나를 이상하고 아픈 애라고 스스로 여겼다는 거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학습된 성격과 무기력의 결과겠지.별 뜻 없이 했을 말들만 귀에서 울려 퍼지고 가슴에 남아서 나를 할퀴더라. 뒤늦게 지속적으로 상처받고 말았다. 여전히 상처는 벌어져 있는 모양. 내 마음...

언어에는 ‘내리쌓이는’ 성질이 있다. 입 밖으로 나온 언어는 개인 안에도, 사회 안에도 내리쌓인다. 그러한 언어가 축적되어 우리가 지닌 가치관의 기반을 만들어간다. ‘배려 없는 말’이야 예전에도 있었지만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말의 축적’과 ‘가치관 형성’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심지어 그 폭발을 누구나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무섭다.
‘누군가를 입 다물게 하기 위한 말’이 내리 쌓이면 ‘입을 다물게 하는 압력’도 반드시 높아질 것이다. ‘삶의 괴로움을 떠안은 사람’이 "도와줘"라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압력이다. - P30


8점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의 편지 모음 - kinye91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
편지는 사적이면서 공적이다. 일기와 달리 자신만이 보지 않고 상대방이 보게 쓴 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담고 있지만, 그 내면이 상대에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 나와 남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편지가 한다.나와 상대. 단 둘만이 간직하고 있으면 사적인 글로 그쳤을 텐데, 편지는 둘 다 폐기하지 않는 한 어느 한쪽이 쓴 글이라도 살아남는다. 그래서 둘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읽히게 된다. 이때 편지는 공적인 존재가 된다.편지가 문학이 될 수도 있음을 유명한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발간된 편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중에 ...

10점
시를 다시 말하는 마음 - 서늘한바다
<뒤를 보는 마음>
아마도 팬데믹의 시절을 어둑한 시간이었다고 기억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두려운 시간이었고 한 순간에 자의가 아닌 채로 홀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었을까 한다. 형벌로써의 고립이나 혹은 열반의 조건으로서의 고립을 상상하고 이야기할 때와는 다르게 지난 몇년의 고립은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고립이었기에 그 고립의 의미는 실은 남달라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의 고립이 쓰디쓴 사회의 안정망을 확인하는 데에 불과했기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연대를 오히려 잃어버리고 만 기분이 든다. 그때 나에게 위로...

10점
송이버섯과 인간, 그 이상의 다종의 세계 만들기 - 에로이카
<세계 끝의 버섯>
0. 짧은 서평을 써야지 다짐하고 앉았다. 다 읽는 데 한 달 좀더 걸린 것 같다. 중간쯤 읽을 때에 가끔 가는 꽤 큰 전통시장에서 송이버섯 구경을 하면서 높은 가격에 입맛만 다시기도 했다. 갓이 핀 송이는 더 쌌지만, 그 가격도 내게는 벅차 포기했다. 만약 그때 송이버섯을 살 여유가 있었다면 좀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ㅋ처음엔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중엔 계속 똑같은 이야기 같아서 지겨웠다.소위 포스트휴먼 인류학도 그저 그렇다. 1. 주변자본주의에서의구제 축적애나 칭은 송이버섯 채집현장에서의 참여관찰과 심층면접에 기반해서 버섯 ...

8점
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 닷슈
<미학 수업>
이 책을 사놓고 몇 년을 책장에 쟁여두다 보게 되었다. 이유는 그냥 지난 주 정도에 비가 와서다. 사람은 당연히 주변 날씨에 영향을 받고 그것은 가끔 책을 고르는데도 작용하곤 한다. 가볍고 그림을 보려고 책을 들췄는데 이런,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책에는 작가가 평생을 살아가며 사회와 역사, 시, 그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유가 잔뜩 담겨있었다. 내가 약한 류의 책이었다. 책은 읽을 수록 묘한 느낌인데 활자가 술술 읽혔지만 확 내 것으로 들어오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알 것 같은데 모르는 느낌,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10점
친구가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 잠자냥
<나의 친구들>
친구라든가 사람이 고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거나 고독하다거나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도 없다. 오히려 외로움이나 고독감은 사람 사이에 있을 때 더 느껴지는 법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집사2가 핀잔을 준다. 넌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서 그래.... 그러는 자기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보면 그렇기는 하다. 한 번도 철저하게 혼자였던 적이 없다. 애초에 가족 구성원도 많았고(자매도 많음), 어쩌다 보니 누군가와 헤어지면 금방 새 사람을 만나 사귀고 있어서 애인이 없던 적도 없고, 애인이라는 존재...

8점
[마이리뷰]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 거리의화가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같은 저자의 책이라도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20쇄를 넘게 찍을 정도로 현재도 판매되고 있는 책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24쇄로 2020 년 판이었다. 앞서 읽은 <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는 저자가 뒤에 출판한 책이지만 절판이라 구입 불가다.사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첫 날 바로 앞부분을 읽었는데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못 읽다가 주말에 마저 읽었다. 앞부분을 읽었을 때 좀 지루하고 감흥이 없다 생각했...

8점
제가 좀 엄살이 심해요. - 칼리아예프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받지 않으며 산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해보인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욕망하는 한, 번뇌한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해탈하고 초연할 것이 아니라면, 자기를 완전히 비워버리고 세상에 완전히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면, 필요한 것은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것일테다. 그래서 삶은 고통을 다루는 기술을 요구한다.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아야 하니까.한편 고통을 겪는 자는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다만 울부짖을 뿐이다. 그래서 고통은 그 자체로는 나눌 수 없다. 심지어 고통 받는 자는 응답을 원하지도 않...

10점
근대인의 불안 - 오네긴
<한눈팔기>
<도련님>, <산시로>, <그 후>, <행인>에 이어 읽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 제13권 <한눈팔기>. 이 책은 저자인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이라 잘 알려진 작품이다.소설의 주인공인 '겐조'는 옛날 소세키처럼 머나먼 외국에 있다가 이제 막 본국인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겐조를 맞이한 것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근처에 살고 있는 형제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가족과 친인척들만이 겐조를 기다린 건 아니었다. 바로 과거 겐조의 양아버지였던 '시마다'라...

그는 독선가였다. 아내에게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믿었다. 왜 좀 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그녀의 가슴 속 깊은 데서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가하게 할 만한 타고난 재질이나 재주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