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마이리뷰 당선작

10점
한 시대의 종언에 대한 증언 - 레삭매냐
<패주>
이 책을 내가 지난 3년에 걸쳐 읽었다고? 그건 아니지.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주문해서 질풍처럼 280쪽을 읽었다. 그리고 나서 잠시 잊고, 아니 한참을 잊고 있다가 얼마 전 역전다방 <보불전쟁> 편을 보고 나서 바로 내달렸다. 역시 독서란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나 보다. <패주>는 20권에 달하는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엔딩에 해당하는 19편이고, 프랑스 제2제정의 몰락을 가져온 보불전쟁과 1871년 파리 코뮌을 다루고 있다. 이제 첫 걸음이지만 왠지 에밀 졸라 읽기라는 숙제를 시작한 것 같아 기...

10점
놀라운 예술 저작이다 - 미학과 윤리의 경계에서 - 필리아
<예술 도둑>
“세상에 존재했던 도둑 중 가장 많은 예술작품을 훔쳤고, 가장 성공한 도둑임에 틀림없는” 인물의 일대기라 해야 할까? 예술품 절도 역사상 이 인물보다 자주, 그리고 더 많이 훔친 도둑은 없다는 말처럼 “예술 역사의 영원한 한 부분을 차지”할, 가히 기록적 범죄를 둘러싼 예술범죄에 대한 총합적 보고서라 할 만한 저작이다. 한낱 절도범에 대한 추적의 기록이 무어 그리 흥미롭겠는가하지만 그 대상이 고가의 회화와 조각 등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라는 것, 게다가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해서 훔치고, 그 어떤 금전적 이득을 원하지 않았을 뿐 아...

10점
주어진 운명과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경험의 주인은 내가 된다. - 전야제
<원 맨즈 독 One Man's Dog>
조중걸 작가님의 책 중에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바로 '원 맨즈 독'이었다.이 책을 읽고 한국에 이러한 수필 작가가 있다는 것에 감탄했고, 작가님이 예술사와 철학을 전공한 교수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에 작가님의 철학책도 읽게 되었고, '나스타샤'와 '마지막 외출'이라는 멋진 소설도 읽을 수 있었다.원 맨즈 독을 거의 5번은 읽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여서 반복해서 읽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읽는 내내 작가만의 경험과 그 여정 속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인생은 그저 살아내는 것 만으로는 경험이 만들어...

10점
결국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 제코루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었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에는 식물 키우기의 일가견이 있는 저자가 [식물적 낙관]처럼 식물에 관련된 사건을 풀어나가는 미스터리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첫 장을 읽으면서 [경애의 마음]에 이어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킬 빼어난 작품이 되지 않을까란 기대를 품게 되었다. 때마침 책을 읽기 며칠 전에 창덕궁 돌담벽 앞 건물에서 열린 북토크에 다녀왔던터라 그전까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원서동이 어딘지도 몰랐던 처지에서 순식간에 영두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공간적 우연까지 겹치게 되었다....

8점
한 수 배웠습니다 - 꼼쥐
<단순 생활자>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의 정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로 타인에 의해 지배되거나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계의 밑바탕에는 영리적인 목적도 있을 수 있고, 친밀감이나 애정이 근본 이유일 수도 있다. 물론 둘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유지되던 타인과의 관계를 일거에 정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살아야겠다' 굳게 다짐을 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자연인이 되어 산속 깊숙이 숨어들지 ...

10점
조해진이 조해진했다. - Sarah
<빛과 멜로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조해진 작가를 애정한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조해진 작가가 5년 만에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5년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새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 의 의미가 특별한 건 2017년 쓴 단편소설 <빛의 호위>의 긴 버전이자 후속작이기 때문이다. 『빛과 멜로디』는 단편 <빛의 호위>의 장편버전이기 떄문에 첫 부분은 전작과 내용이 많이 겹친다. 분쟁 지역...

10점
구원하는 마음 - 친절한박선생
<이중 하나는 거짓말>
누구나 주머니에 송곳하나쯤은 가지고 산다. 누구는 다칠 때마다 얼른 꺼내 되려 상대를 찌르고, 누구는 거기에 송곳이 들어있는지도 모른채 꽉 쥐고 있다가 속으로 피를 철철 흘린다. 남에게 쉬이 드러내지 못할 비밀을 간직한 아이들은 어떨까? 그 송곳이 손을 뚫고 나와 허벅지를 찌르고 지혈도 안 되는 비참을 뚝뚝 흘리는 동안 그 아픔을 그대로 끌어안고 세상을 향해 발짝을 뗀다. 지금도 그런 목숨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실은 소설보다 더 거짓말 같으니까.​소설 속 아이들도 그랬다. 부모가 서슴없이 물려준 고통의 조각들은 아이들을 잘못이...

8점
[마이리뷰] 평범한 인생 - 물감
<평범한 인생>
드디어 차페크의 작품을 읽었다. 아니 근데, 너무 탄탄대로여서 결코 평범한 인생이 아니드만?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는 조롱으로 느껴질 수준이랄까. 뭐가 됐든, 나님은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평범하다는 건 정말 정말 어렵고 힘든 것이라고. 남들은 다 하고 사는 것을 나만 못한다 해서 평범하지 않구나 여겨선 안된다. 반대로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할 때가 많을수록 찐 평범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삶이란 공평치가 못하거늘 잘난 사람과 비교되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거기에 전혀 기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10점
해즐릿이 되는 것에 관하여 - 버지니아 울프 - 나무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의 국내 최초 에세이 번역인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의 발간 축사를 맡은 이는 버지니아 울프이다. 그렇다. 당신과 내가 경애해 마지않는, 그 버지니아 울프다. 20페이지에 달하는, 오직 윌리엄 해즐릿을 위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는 해즐릿이란 작가의 베일을 섬세하게 걷어 올린다. 처음 이 책을 받은 날 밤, 울프의 이 에세이를 먼저 읽었는데, 그 희열감이란. 에세이 한 편으로 독자를 달뜨게 하는 작가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버지니아 울프는 윌리엄 해즐릿 사후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이 에세이를 ...

10점
인공 도시 속 각각의 욕망 그리고 화려한 껍데기 - 다정한곰님
<시티 뷰>
작년 겨울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지켜야 할 세계'를 제법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번 수상작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컸다. 그래서 또 이렇게 챙겨보게되는구나. 이번엔 우신영 저자의 시티-뷰.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긴 하나 책소개에 적혀있는 소재를 살펴보니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관심이 갔다. 뭔가 현대 생활 밀착형 소설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마냥 허구의 이야기는 아닐테니 머릿속에 영상을 그려보며 이 작품이 OTT를 통해 구현되면 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읽게되고, 꼬여있는 이야기들과 인물...

6점
세상에 말 걸기 - 나비종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니! 조각에 대한 멋진 정의를 들었을 때, 매끈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떠올린다. 바로 그가 이렇게 멋진 말을 한 장본인이라는 걸 아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는다.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구현해 낸 사람이라는 생각에서이다.머릿속에만 머물던 이미지를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로 탄생시키는 예술은 멋진 작업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과정으로 향하는 화살표에 인간의 손길이 있다. 울퉁불퉁한 직육면체 비스므레한 덩어리였을 돌 조각을 그토록 멋지게 깎아내기까지 작가는 ...

10점
오 만 오 천 원 짜리 그림책? - aldomia
<당신은 여기 있어요>
#당신은여기있어요 #요안나콘세아요그림 #라에티티아부르제글 #나선희옮김 #비룡소zebra #사야하는책 #Tueslà(2022년)오 만 오 천 원 짜리 그림책?요안나 콘세이요니까 샀다. 10년 동안이나 작업을 했다고 하니 오만 오천 원이 이해되기도 했다. 인터넷 미리보기는 3장에 연속해서 나오는 세 그루의 나무만 보여주고 끝이었다. 보고 싶은 욕구를 막내딸 생일선물을 핑계로 샀다.도착한 책은 실망을 먼저 주었다. 크리라 생각했는데 대개의 그림책 사이즈보다도 작은 200*260mm. 엠마뉴엘 우다의 『엄마』 정도의 사이즈 (285*367...

10점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_ 작지만 단단한 작품이란 이런 것! - 투콤마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중·단편에 이토록 밀도 있고 강렬한 여성 서사를 녹여낼 수 있다니!부단히 밀고 나아가 자신만의 서사를 쌓아가는 개개인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작품! 지난하고 비애를 느끼는 삶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때, 책은 아주 훌륭한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혁명과 전쟁, 정치적 억압과 숙청으로 혼란이 가중될수록, 소네치카는 현실을 피해 도스도옙스키, 이반 투르게네프와 니콜라이 레스코프와 같은 러시아 문학 작가들이 제공하는 환상의 영역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암담하고 끔찍했던 피란 생활에서 그녀를 구원한 것도 도서관 지하실이었다. 남편이 될 로...

10점
여전히 유효한 발자크 시대의 결혼과 법의 풍속 - 페넬로페
<결혼 계약>
결혼에는 사랑이, 법엔 공정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법칙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그 속에 온갖 메커니즘이 작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세기 프랑스 복고왕정시대를 배경으로, 실제로는 7월 혁명이후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 발자크의 ‘인간극’엔 이러한 결혼과 법의 기본 정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서른의 나이에 첫 책을 출간한 발자크는 그때 이미 6만 프랑의 빚을 지고 있었다. 발자크는 돈을 좋아했고 돈을 좇았지만, 빚을 갚고 글 쓰는 일에만 몰두하고 싶은 이유로도 돈을 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인쇄...

10점
니체의 자존감 수업 - 모나리자
<니체의 자존감 수업>
사이토 다카시의 저서 중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등 여러 책을 유익하게 읽었던 터라 그의 신간이 나온 걸 알고 반가운 마음에 읽게 되었다. 수천만 독자를 사로잡은 일본 최고의 교육 전문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다수의 저서가 소개되어 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저자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니체를 40년 넘게 읽어온 니체 애독자라고 해서 더욱 반가웠다. 니체를 입문하기에 딱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니체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니체를 읽...

6점
과학하는 마음 - cyrus
<바디>
평점3점 ★★★ B빌 브라이슨(Bill Bryson)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 겸 칼럼니스트다. 2003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이덕환 옮김, 까치, 초판 2003년 발행, 개역판 2020년 발행)는 과학 비전공자들이 많이 읽은 과학 도서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과학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과 미국에서 여러 개의 상을 받았다. 브라이슨의 두 번째 과학 도서 《바디: 우리 몸 안내서》(The Body: A G...

10점
사소함의 위대함 - 마법모자김시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홍한별 옮김/다산책방/2024 사소함의 위대함 우리는 거대담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되고, 환경과 기후, 전쟁 등은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치와 경제 또한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로 작동된다. 점점 거대화되고 집단화되는 세계 속에서 개인은 외면당하며 점점 왜소해진다. 개인은 ‘사소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저자 클레어 키건은 거대한 혹은 부당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

10점
시인과 활동가 - 강별
<유리 광장에서>
윤은성을 보면 시인보다는 활동가가 먼저 떠오른다. 시를 어느 순간부터 읽지 않게 된 나로서는, 연대의 장에서 늘 윤은성을 먼저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활동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항상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주소를 쥐고' 역시 그렇게 만나게 된 작품이다.사실, '주소를 쥐고'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새 자신의 감정에서 배제되고, 정화된 뒤 기억과 분석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그 사랑(첫사랑)이 남아 있지 않지만, 아니, ...

10점
아무튼, 라디오 - 이애월 - Breeze
<아무튼, 라디오>
#아무튼라디오 #이애월 #제철소 하루를 마치는 퇴근 시간, 6시가 되면 알람이 울린다. 습관처럼 듣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익숙한 아저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흥얼거리며 메모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건 기본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으로 라디오를 들으며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는 좀 더 볼륨을 높인다. 오래전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디제이가 읽어 주는 내 사연에 뭉클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라디오는 마치 친구처럼 친숙한 매체다. 모르는 사람들의 사연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며 친구처럼 여겨...

10점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 자목련
<새벽과 음악>
어느 순간 삶이란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거라는 걸 배운다. 누군가 나를 붙잡고 그게 삶이라고 가르쳐 준 기억은 없다. 거대한 죽음 앞에, 개인의 존엄을 파괴하는 폭력 앞에서 저절로 배운다. 이토록 잔인한 가르침이라니. 차곡차곡 쌓아놓은 삶은 한순간 무너져버리고 처음으로 되돌려놓는다. 돌림노래처럼, 이어 부르기처럼 계속 돌고 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하는 생과 사의 순간, 준비한다고 반가울 리 없는 그 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말이 통하지 않는, 나를 아는 다정한 얼굴이 없는 곳에서 사고를 당한 시인의 경험으로 시작하는 글은 내...

10점
그들은 외로웠다. - 그레이스
<체호프 희곡선>
오래전 명동의 극장에서 연극 「갈매기」를 봤었다. 이 내용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갔던 나는 전하려는 메시지를 대략 짐작만 하고 감동도 공감도 하지 못했었다. 가볍게 던져지는 대화들과 주인공의 자살이 맥락 없이 다가왔다. 연기나 연출의 문제가 아니라 체호프의 작품 자체가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19세기 말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 문학사에 있어 ‘공백 시대’에 등장했다. 네크라소프,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가 세상을 떠났다. 톨스토이는 절필을 선언했다. 그런 시기에 체호프가 등장했다. 초기에는 코믹하고 가벼운...

8점
‘호명‘하는 이는 우리에게 누구든 스승이다 - 젤소민아
<그리스인 조르바>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끌며 헤어지는 것은 독약이다. 단칼에 자르고 인간 본연의 상태대로 외로움 속에 홀로 남는 것이 차라리 낫다. 하지만 그날 새벽 빗속에서 나는 친구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불행히도 아주 늦게야 그 까닭을 깨달았다.) 나는 그와 함께 배에 올라 그의 선실로 가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방들 사이에 앉았다. 나는 그가 딴 곳을 보는 동안 마치 그의 특징을 하나하나 모두 확인하려는 듯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와, 둥글고 젊은 그의 얼굴과 자신감에 넘치는 고매한 표정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족...

10점
넘버원 복사본으로 살것인가, 온리원 원본으로 살것인가 - kecologist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 책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유독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낯선 생각으로 물꼬를 터주는 질문이 많이 등장한다. 현실에 안주하며 안락한 삶을 살다가 낯선 질문을 받으면 가던 길을 멈춰서서 자신을 점검하고 현재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특정한 가치에 비추어 반추해본다. 개미가 지나가던 지네에게 난생 처음 질문을 던졌다. “지네야, 너는 수많은 다리 중에서 앞으로 걸어갈 때 어떤 다리를 첫 발로 내딛느냐?” 이 질문을 받은 지네는 가던 길을 멈춰서서 깜짝 놀랐다. 자신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질문은 가던 길을 ...

브랜드란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이다. 브랜드란 비제품이 제품을 초월하는 것이다"(163쪽)


8점
시티뷰, 또 다른 탐욕의 민낯 - 꼬마요정
<시티 뷰>
바다를 메운 땅, 수많은 유물을 덮어버리고 높은 건물들을 지은 강남처럼 수많은 생명들을 덮어버리고 만든 도시. 그 곳은 화려하고 잘 짜여진 고급 태피스트리 혹은 휘황찬란한 샹들리제 같은 곳이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달빛을 가리고 공포를 이겨내는 탐욕을 쌓아가다 마침내는 가슴 내밀한 곳에 숨겨진 욕망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곳이라고나 할까.처음부터 그런 곳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로펌 대표 변호사이자 IMF 때 망한 부동산을 사들여 돈을 번 아버지와 무용을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우아한 어머니를 둔 수미 ...

석진은 자신이 꿈꾸었던 궁전에 대해 생각했다. 최고급 대리석이 깔린 미진 내과, 먼지 한 톨 없이 반짝이는 우아미 필라테스. - P228


8점
어디까지가 사람일까? - Falstaff
<나 같은 기계들>
. 이 책은 반 정도 읽다가 도서관 사물함에 책을 두고 왔었다. 그리고는 추석 연휴가 휙 지나갔다. 닷새만에 중간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니까 좀 헛갈렸다. 이게 별점을 조금 깎아 먹었을 수도 있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이름은 찰리 프렌드. ‘나’는 서른두 살에 완전히 빈털터리였다. 남부 런던의 따분하고 황폐한 거리에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의 습기 찬 일층에 산다. 아빠는 재즈 콰르텟을 이끄는 관악 주자로 대부분 연주여행을 다니며 아름다운 여성과 지나가는 바람을 피우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 같다. 어머니가...

10점
『밤은 노래한다』애도의 마음을 담다...용서할 수 있어 더 좋았다! - 은하수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우리가 간도(연변, 동만주로 불리는 곳.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 조선과 인접한 네 개 현을 지칭했다고 한다)로 알고 있는 동만주의 항일 유격 근거지에서 벌어졌던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분명 우리 조선 사람들의 역사이지만 너무도 생소한 '민생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민생단'이라는 정치 조직은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 간도지방은 항일 운동의 근거지로 혹은 일제의 침탈로 정든 ...

8점
탈탄소는 쉽지 않다. - 닷슈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지구온난화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매년 여름 기온은 최고 기온을 갱신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올 여름이 앞으로의 일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거론한다. 온난화의 영향은 실로 광범위하다. 교육, 생산성, 의료, 수명, 농업, 범죄, 복지, 군사, 치수, 총체적 경제성장 등 거의 사실상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인류의 안녕에 탄소의 감축은 매우 중대하게 관여한다. 하지만 인간은 문명 발달 과정에서 특히,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 상당히 화석 연료에 의존해왔고 이는 언급한 ...

10점
힐링 에세이 추천: 폐교생활백서, 어두운 숲을 지나는 방법-로서하 - 피로
<폐교생활백서, 어두운 숲을 지나는 방법>
기다리고 기다리던 #폐교생활백서 출간! 예약 주문하고, 책을 받고 읽는 과정에서 여러번의 이슈가 있었다. 예컨데 폐교생활백서는 프로개님, 지박령님 각각의 시선으로 쓴 두 권이 세트인데, 서점 실수로 지박령님 책만 2권 받았다던가 하는 첫 번째 이슈. 이스터 에그 찾는답시고 하루동안 에세이를 1n차례 여러방법으로 무한 정독했다는 두번째 이슈. 하지만 결국 스스로 이스터 에그를 못찾고, 프로개님 힌트를 보고나서야 찾고나서 몰려드는 허무감이 세번째 이슈. 첫번째야 어쩔수 없지만, 두번째는 내 스스로 이토록 추리력이 없었나 하는 자괴감이 ...

10점
유령의 시간을 마주하다 - csw2700
<유령의 시간>
'이섭'은 늘 취해있었다.집에는 그를 기다리는 '미진'이 있었고 뱃속에 그의 아이를 품고 있었다.아이가 태어나자 '이섭'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집에 일찍 들어갔고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미진'을 돌보기 시작한다.'미진'은 고맙다고 '이섭'에게 말한다. 갓 태어난 아이마저 모른 척 하면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걱정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이섭'의 동생이라는 '윤'이 자식들을 데리고 잠시 머무른다. 일주일 남짓 머무르다 가는 '윤'을 배웅하고서 '이섭'은 밤이 늦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미진'은 그날 못하는 술을 연거푸 마시며 ...

10점
올해의 소설을 선정해버렸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 바람돌이
<이야기꾼들>
소설이란 뭘까? 여기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소설 한 편이 있다.보후밀 흐라말의 소설집 <이야기꾼들>의 반은 중편인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차지하고 있다.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주 오랫만에 주인공에 완전히 동일시되어 버리는 경험을 해버렸다.그래서 좀 많이 먹먹하고 슬펐다.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진짜 "안돼 안돼 밀로시"를 외쳤다.17살의 소년 밀로시는 시골 작은 역의 견습철도원이다.소설은 소년의 서사를 지나칠정도로 담담하게 따라간다.소설 초반의 밀로시 가족의 서사를 얘기할 때는 너무 비참한데 또 너...

10점
나의 안토니아 (윌라 캐더/윤명옥/디오네) - 성근대나무
<나의 안토니아>
테이블에 두 팔을 디딘 채 창밖을 바라보는 한 젊은 여인. 수수한 옷차림으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응시하는 옆얼굴. 그녀는 무언으로 웅변한다.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버텨나가리라. 표지 한가운데가 네모지게 파여있고 책날개의 안쪽은 온통 빨간 바탕에 몇 글자가 흰색으로 쓰여있다. 책날개가 한번 접히면서 이 글자가 파여있는 네모 사이로 드러난다. <나의 안토니아>, 아름다운 표지다. 이상이 2017년 12월에 쓴 문장이다. 거의 7년 가까이 지난 이제 다시금 <나의 안토니아>를 읽었다....

8점
미궁 속에 빠져 버린 십자가에 못 박힌 남자의 엽기적인 죽음 - scott
<십자가의 괴이>
지금으로 부터 13년 전인 2011년 5월 1일 문경 폐채석장서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 괴이한 형상으로 숨진 50대 남자가 발견 된다.다음 날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시신 부검 결과 국과수로부터 숨진 남자의 오른쪽 옆구리에 난 자창 흔적은 각도와 방향상 스스로 흉기로 찌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1차 소견을 받고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경찰이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던 가장 큰 증거는 손과 발에 박힌 못의 모양새가 서로 달랐고. 발에 박힌 못에는 못머리가 있는 반면, 손바닥을 박은 못에는 그렇지...

10점
보물 수집 / 스위스 아동도서상 수상 - 구름모모
<보물 수집>
2024 스위스 아동도서상, 2024 벨기에 Lu et Partage 상, 2023 프랑스 Prix Millepages 상 수상작 그림책이다. 120쪽을 채우고 있는 그림들과 글은 큼직한 사이즈의 책만큼이나 볼거리, 생각거리를 충분히 전달하는 그림책이다. 수상작의 가치가 궁금해서 고른 책인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7명의 아이들이 수집한 7가지의 보물들은 무엇일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집한 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수집한 보물들을 어떤 곳에 간직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물들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들려주는 7가지...

8점
우리의 본질은 결국, ‘기후 난민‘ - beatrice1007
<한국인의 기원>
우리의 본질은 결국, '기후 난민'- [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2024."... 인간의 이동을 자극한 주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리학자로서 나는 그 답이 '기후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기후 변화'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의 기원], <1-3. 사피엔스가 동쪽으로 간 까닭>, 박정재, 2024.생물지리학과 고기후학을 전공한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2021년의 저서 [기후의 힘]을 통해 '기후의 힘'을 통제해야 인류가 산다는 주장을 했다. 오랜 빙하기를 지난...

10점
우린 잘 들었을까? - kinye91
<듣기 시간>
며칠 전에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다.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이제 생존자는 8명이라고 한다. 거의 십만 명에 가깝게 끌려갔던 위안부 중에 생존자가 이제 한 자리 숫자가 되었다. 그런데, 한자리 숫자로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과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던가?어떤 사람이 그랬다. '위안부'라는 명칭을 쓰지 말자고.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위로와 편안함을 주었단 말인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대가로? 아니다. 이들은 위안을 준 사람들이 아니라 성 착취를 당한 '성노예'였다.근대에 들어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니, 현대판 성노예라는 ...

10점
프랑스 혁명과 파리코뮌을 위한 .... - bookholic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사랑하는 딸과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이란책이란다. 아빠가 프랑스 혁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찾아보다가 알게 되어 구입했던 책이란다. 파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인 프랑스 혁명과 파리 코뮌의 이야기라서 관심이 갔고 책의 평점도 좋아서구입하게 되었단다. 당연히 외국 작가의 책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지은이가 노명식이라는 우리나라 역사가시더구나. 이 책을 처음 쓴 것도 지금으로부터 40년에 쓰셨다고 했어. 그리고 아빠가 읽은 책은 201...

루이는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에는 유능하다든가 흑백이 분명하다든가 의지가 꿋꿋하다든가 책임감이 강하다든가 혹은 믿음직하다든가 하는 따위의 뜻은 들어 있지 않다. 루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뚱뚱한 몸집에 어디로 보나 호인형 남자였다. 미식가이고 무도회와 사냥을 즐기고 특히 열쇠를 만드는 취미가 있었다. 취미를 취미 삼아 즐기는 정도라면 골치 아픈 정무에 휴식을 제공하는 오락거리쯤으로 생각하겠지만, 루이는 골치 아픈 정치는 아예 질색이고 사냥과 열쇠 만들기에만 전념하는 편이었다. 그는 국왕 참의회에서 골치 아픈 일이 논의되면 곧 피곤해져서 회의석상에서도 졸곤 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물이었으니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한들 무슨 유익한 일을 과단성 있게 해낼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에 직면하여 어찌 일을 제대로 판단하여 책임성 있게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 P52


10점
종의 일부로 살아가는 법 - starover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작가에 대해서는 학술대회에서 처음 접했으나, 『지구 끝의 온실』은 SF를 사랑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순진한 호기심으로 읽기로 다짐한 책이었다. 인류세 논의, 한국 SF의 전망 등의 거창한 이야기는 제쳐두고, 멸망에 맞서는 인간들의 사투를 그린다는 점에서 참 반가웠다. 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디스토피아 문학에서 놓치는 것이 멸망의 과정인데, 『지구 끝의 온실』은 더스트 폭풍 이후로 찾아온 무수한 혼란과 그에 투쟁하는 인간들의 사투를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문명 재건 이후의 시점에서 바라본 과거의 치열한 사투가 결코...

8점
우리는 매 순간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 편독
<소비의 한국사>
양쪽 관자놀이 뒤 깊숙한 곳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을 주관하는데, 편도체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은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어떤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 기분이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매순간 자기 자신을 사유하며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현존재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심리적 기제가 불안이라고 했다. 불안은 우주적으로 물려받은 본질적인 감정이며,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하는 보편적인...

10점
‘팩트, 분노,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불꽃이 튀는 책‘ -
<격차>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나 경제학자일 것" - 데이비드 애튼버러(동물학자)내가 이 구절을 읽고 든 생각은, '세상은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경제학자와 미친 사람.' 그래, 우리는 모두 미쳐있다. 우리는 모두 성장이 계속될 거라고 믿고 있다. 기하급수적 성장을 무한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친 생각이다. 다행히 이 책을 읽으면 제 정신을 찾을 수 있다.글로벌 경제가 연간 4.5% 성장률을 유지하면 물건이 16년마다 2배고 되고 32년마다 4배가 된다. 고대 이집트가 1세제곱미터 부피...

10점
[세계 끝의 버섯] 이토록 다양한 삶 - 다락방
<세계 끝의 버섯>
처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가졌던 의문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어떻게 버섯 하나로 책을 썼다는거지? 도대체 버섯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한다는거지? 게다가 분량도 이렇게 많아? 이렇게나 할 말이 많다고? 만약 버섯을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튼 버섯'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면 분량이 적은 책이었을텐데, 아니 세상에 이 책을 보라지. 버섯으로 500 페이지가 넘는다니까?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버섯으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언젠가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