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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평점 :
"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
- [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2021.
"평등과 정의를 향한 여정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투쟁의 과정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4장. 배상의 문제>, 토마 피케티, 2021.
세계적 역사학자로 부상한 '빅히스토리' 대가 유발 하라리의 최근 관점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하라리의 최근작 [넥서스](2024)를 찾아 읽어본 후, 나는 또 하나의 세계적 경제석학 토마 피케티의 최근 근황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이후 5년만에 [평등의 짧은 역사]라는 피케티의 책을 집어 들었다.
토마 피케티는 2013년에 [21세기 자본]을 통해 300년 서구 자본주의 역사에서 'r>g', 즉 자본의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빨리 증가한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21세기 자본], <결론>)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파헤쳤다. 이 [21세기 자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는 '평등'에 먼저 주목한 게 아니고 '불평등'의 정당화가 가능한지 질문을 던졌다. 당시의 나는 그런 피케티를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로 보지 않았다. '불평등'의 정당화를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공부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내가 보기에 미국식 '정의론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으로 얻은 세계적 명성을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좌파 경제학자들과 활발한 의견을 나눈 결과 더 이상은 '불평등의 정당화'가 아닌 '평등을 위한 투쟁'으로 관점을 전환한다.
2019년의 저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는 본인의 사상을 알고자 한다면 이 책 한 권만 읽으라면서 본인 사상의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2019년에 '불평등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본격 파헤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식의 '자유주의'적 개혁으로부터 '사회주의'적 혁명으로 사상전환을 감행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후 3년 후인 2021년에 토마 피케티는 [평등의 짧은 역사]를 통해 '불평등'의 틀을 벗어나 '평등'의 나라로 완전히 들어선다. 그러는 한편, 역사적으로 대다수 민중의 집단행동과 반란으로 쟁취해 온 '평등'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주장한다.
물론 결론은 이전 저작들과 동일하다.
'사회적 국가'의 재부상과 강력한 '누진세' 확대, '민주적 사회주의 연방제'를 통한 '글로벌 자본세' 등으로 '현대화된 사회민주주의' 정책과 제도로 '불평등'을 없애면서 '평등'을 더욱 현실화시키자는 주장이다. 20세기 초에 세계전쟁을 겪으며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뤘던 강력한 누진세의 역사를 통해 부상한 '사회적 국가'의 재부상이다. 피케티는 이를 자본주의 역사상 1914~1980년대의 '대규모 재분배'([평등의 짧은 역사], <6장>)라고 명명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신식민주의 청산을 통한 모두에게 고르게 분배되는 '상속' 제도 등을 덧붙인다. 20세기 식민주의 해방은 가진 자들에 대한 대규모 배상을 통해 식민지 해방보다는 제국주의 부자들의 배를 더 불렸다는 역사를 돌이켜 보며, 포스트식민주의에서는 소수의 부자들이 아닌 다수 민중 모두에게 돌아가는 제대로 된 배상과 상속이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러한 정책과 제도 일체는 21세기에 맞게 현대화된 민주적, 분권적, 다문화적, 연방적 '사회적 국가'가 투명하고 합법적으로 시행하는 강력한 '누진세'와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가능한 것인데, 가진 자들에 대한 몰수에 가까운 '부유세'로 다수 민중이 '평등'하게 사회적 부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평등'을 향한 이 역사적 과정은 '다수 민중, 다수 시민들의 집단행동과 반란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피케티가 다시금 확인하는 역사의 교훈이다.
역시 대전제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란 개인적인 소유 개념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생산한 집단의 영역이라는 확고한 신념이다.
소유와 분배의 문제는 사회적 개념이다.
"... 소유와 그 분배의 문제... 소유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 개념... 소유의 집중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 번도 극단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전반적인 경향 속에서도 집중이 뚜렷하게 꺾이는 추세는 관찰된다... 평등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 계속되는 게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를 좀더 확대강화해야 할 것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2장. 서서히 일어난, 권력과 소유의 탈집중화>, 토마 피케티, 2021.
'평등'을 향한 여정은 '다수 민중의 집단행동과 반란투쟁'을 통해 여전히 진보해 왔고 앞으로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평등'의 길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평등의 짧은 역사]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저작을 통해 기존 [21세기 자본](2013)과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라는 매우 두꺼운 벽돌책들의 결론을 좀더 대중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라고 <감사의 말>에서 쓰고 있다.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참여적 사회주의' 제도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실현 가능한 경제시스템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확보한 역사적 경험들에 따르면, 이런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민중의 집단행동'이 필요하다."
- [평등의 짧은 역사], <5장. 혁명, 지위, 계급>, 토마 피케티, 2021.
여기에 전작들에 비해 다수 민중의 집단적 투쟁을 통한 '평등'의 쟁취 역사를 한층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분배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혁명적 제도로서 '민주적 사회주의'와 강력한 '누진세', 투명한 '글로벌 자본세'와 기후 대응 등의 대안을 광범위하고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만들어가자는 제안을 피케티는 반복하고 있다.
토마 피케티의 이 민주적 논의 제안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는 1970~1980년대 스웨덴의 강력한 사민주의 국가 시절 '평등'한 '사회주의' 이행체제 대안 중 하나였던 렌-마이드너의 좌파적 '임노동자 기금' 또는 우파적 응답으로서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 등의 재조명을 언급한 것 또한 반가운 일이다.
'평등'을 향한 여정에서 사적 소유의 사회적 소유로의 전환을 위한 가능한 대안 체제를 열어놓고 논의하자는 것이 피케티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 책에서 나는 민주적이고, 연방제적인, 분권화되고 참여적인, 환경적이고 다문화적인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 사회주의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의 확대, 기업내 권력분유, 포스트식민주의 배상, 차별철폐, 교육평등, 개인 탄소카드 도입, 점진적인 경제의 탈상품화, 고용보장, 모두를 위한 상속, 화폐적 불평등의 대폭축소, 그리고 마침내 금권의 영향에서 벗어난 선거와 미디어 시스템의 기반 위에서 작동하게 될 것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10장. 민주적,환경적,다문화적 사회주의를 향하여>, 토마 피케티, 2021.
'평등'을 위한 이 모든 '민주적 사회주의' 결론들은 다수 민중, 즉 시민들에 의해 광범위하고 민주적으로 재전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이후 토마 피케티가 주장하는 그의 사상적 목표다.
현재 토마 피케티의 사상적 궤적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자본과 이데올로기], <결론> / [평등의 짧은 역사], <감사의 말>, <10장>)가 바로 그 한 마디다.
"'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는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단계다. 이 책의 독자들에게 평등을 위한 투쟁의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어주었다면, 나는 목표를 다 이룬 셈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10장>, 토마 피케티, 2021.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과연,
현대식 [공산당선언]에 버금간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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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등의 짧은 역사](2021), Thomas Piketty, 전미연 옮김, <그러나>, 2024.
2.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3.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4.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사회평론>, 2012.
5. [공산당선언(Communist Manifesto)](1848), 마르크스/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