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
노아 차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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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 자신있게 말하자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노아 차니, 2022.


"엉터리 같은 작품을 보면 엉터리라고 자신있게 말하자."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11. 미술의 미래>, 노아 차니, 2022.


러시아 미술가가 반정부 '예술' 행위라 부르며 붉은 광장에서 자신의 음낭을 자갈바닥에 못박든, 이탈리아 예술가가 자신의 배설물을 90개의 깡통에 담고 '예술'이라 우기든, 엉터리는 엉터리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대중들 앞에 책을 내민 미술사학자가 있다. 

슬로베니아에 사는 미국인 미술사학자 노아 차니(Noah Charney : 1979~)다. 
미술사학자이면서 작가로 활동한다는 그의 현재 주 전공분야는 '미술 범죄(art crime)'인데, 유럽의 미술관에서 사라지는 예술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미술사 서술 또는 소설 등으로 풀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역사상 가장 많이 도난의 수난을 겪었던 작품은 15세기 얀 반 에이크의 <신비한 어린 양에 대한 경배>를 담은 '헨트 제단화'다.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 리자>가 그 다음일 게다.

노아 차니의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전술한 대로 단 시간에 일반 대중을 '예술', 특히 '미술'의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내 유지하고 있는 책이다. 원제는 'The 12-Hour Art Expert'로 '한나절만에 미술 전문가' 또는 '한나절이면 나도 미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정도로 직역이 가능할텐데, 실제로 저자는 책의 '서문'인 <들어가며 - 미술은 열려있다>에서 성인 평균의 독서속도로 4시간 반이면 읽을 수 있는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일반인도 미술 전문가 못지 않게 될 수 있다며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다 읽는 데 '반나절', 생각을 정리하는데 '한나절', 그래서 '12시간'만에 일반 독자가 '미술(예술) 전문가(art expert)'가 된다. 
말도 안되는 이 자부심을 완화하고자 국역은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라는 다소 겸손한 번역본을 낸 듯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아 차니가 말한 '예술 전문가(art expert)'는 미술사학자가 아니라 '엉터리'를 주저없이 '엉터리'라 말할 정도로 예술 작품을 주눅들지 않고 보는 사람이 될 수 있게 저자가 도와주겠다는 의미였다.


"... (조르조) 바사리가 미술에 관한 글을 최초로 쓴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현대인의 생각 대부분이 그의 글과 관련 있다. 1550년과 1568년에 출간한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한길사>,2018)은 최초의 미술사 책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미술가에 관한 짧은 전기들로 구성되었고, 거의 처음으로 '미술가'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미술을 처음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술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의미에서 조르조 바사리가 '미술사'를 '발명'했다고 말할 수 있다."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1. 이것도 예술일까?>, 노아 차니, 2022.


동양의 역사에서 사마천 [사기](기원전 1세기)로부터 시작된 기전체 역사서와 서양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기원후 1~2세기)의 백미는 '열전', 즉 각 인물들의 '전기'다. 

서양미술사에도 그런 고전이 있는데 바로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회화, 조각, 건축가로 알려진 예술가 조르조 바사리(Giorgo Vasari : 1511~1574)의 미술가 '열전'이다. 
바사리는 조토 디 본도네의 스승인 13세기 미술가 조반니 치마부에로부터 16세기 당대 플랑드르 여러 미술가들까지 여러 미술가의 '전기'를 남겼다. 그의 책은 국역으로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한길사>,2018)으로 번역되어 있다. 한참 오랜 후의 20세기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1950)에서 따랐듯 바사리는 이미 16세기에 조토 디 본도네의 '혁명성'을 최초로 주장했고(<1권>), 그랬기에 '열전'의 시작을 조토의 스승 치마부에로부터 시작했다(<1권>). 외모든 미술 실력이든 '신의 행위'와 같다는 칭송을 담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같은책 <3권>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결국 바사리의 결론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5권>)다.

미켈란젤로는 같은책 <5권>의 1/3 정도를 차지하는데, 르네상스 예술은 미켈란젤로에서 완성되었고, 그의 방식 또는 '양식'(매너/마니에르:manner)을 넘어서지 못한 '매너리즘'을 규정하는 1차적 문헌자료가 바로 조르조 바사리의 '열전'이다.


"... 조각과 회화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지력의 모든 부분을 육성하는 생명이라고 할 '디세뇨(disegno : 소묘 또는 의장, 조형력)'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늘을 눈부신 빛으로 장식하고서 맑은 대기를 뚫고 견고한 대지에 지력을 가지고 내려와 마지막에 인간의 형상을 창조했을 때, 다른 아름다운 창조물들과 함께 조각과 회화에서 최초로 매혹할 만한 형상을 발견했을 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 1], <전기에 대한 서설>, 조르조 바사리, 16세기.


노아 차니는 미술가의 자질로서 '인벤치오네(invention)'와 '디세뇨(design)'를 그의 책 <2장>에서 소개하는데 이러한 개념들 또한 16세기 바사리의 저작들로 인해 형성된 미술사 개념들이다. 물론 바사리가 '미술가', '인벤치오네', '디세뇨' 등의 예술 개념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16세기에 이른 '친퀘첸토(500년대)' 르네상스는 이미 예술가들에게 지금의 헐리우드 제작자 못지 않은 명성을 안긴 시대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은 이미 예술가 본인의 이름을 내건 당대의 유명인이었다. 
바사리는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남긴 사람인 것이다.

'소묘', '의장(意匠:design)', '조형력'으로 번역되는 '디세뇨(disegno)'는 노아 차니에 의하면, 모사하는 기술적 능력이다. 이에 반해 '인벤치오네'는 '아이디어'또는 '개념' 등으로, 르네상스 미술가 공방을 예로 들면 미켈란젤로 같은 대 화가 또는 공방 사장님은 주로 큰 구상을 짜는 '인벤치오네'를 맡고, 공방의 도제들은 '디세뇨'를 맡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공방 사장님은 '인벤치오네'와 '디세뇨' 둘 다 잘 해야 하지만 부자들로부터 의뢰받은 대작을 유명 미술가 혼자 다 생산하기란 불가능했기에 유명 미술가의 공방을 통한 매뉴팩처 분업이 당시 미술에서는 불가피했다.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미켈란젤로 혼자 문 잠그고 그리다가 척추가 굳었다는 이야기는 허구이며, 미술가 홀로 작은 캔버스를 마주한 고독한 장면은 이후 19세기 인상주의 정도 가야 전형이 되는 장면이다. 
르네상스 미술가의 작업장인 '공방'은 지금의 헐리우드 종합예술 '공장'과 같았다.


"추상미술은 우리 두뇌가 진화하면서 익숙하게 재구성해 온 이미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해석하라고 우리 시각 체계를 부추긴다."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8. 프로이트는 뭐라고 말할까?>, 노아 차니, 2022.

노아 차니는 미술의 몇 가지 기본 개념만을 익힌 일반 대중이 주눅들지 말고 '예술'을 바라보라 권한다. 물론 '알고 봐야 보인다'는 강령에 맞게 시작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규정한 '예술'의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요건이다.

1) 훌륭한가 : 기교있게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졌는가,
2) 아름다운가 : 미적 뿐만 아니라 도덕적, 지적으로도 감흥을 주는가,
3) 흥미로운가 : 재미가 있어 계속 끌리는가,

위 3요건을 갖춘 것이 '예술'인 바, 그 다음은 현실의 '모방'으로서 역시 사실의 '재현' 문제가 온다.

이미 사실의 '재현'은 카메라 옵스큐라는 물론 사진 기술의 발전을 시작으로 현대 과학기술의 몫이 된지 오래되었다. 
본격적인 사진 기술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눈앞의 현실을 재현해내었지만 프리즘을 이용한 카메라 루시다, 거울처럼 상을 거꾸로 맺히게 하는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광학 기술은 이미 사진 기술 보다 오래 전부터 발전되어 왔다. 

현존하는 화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다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 1937~)는 15세기 화가 얀 반 에이크는 물론 16세기의 브론치노와 카라바조, 17세기 페이메이르, 18세기 앵그르 등이 눈에 보이는 사물을 사진 이상으로 '재현'해낸 사실로부터 새삼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호크니는 화가인 본인이 직접 실험을 하면서 앵그르 같은 선배 화가들과 비슷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고, 르네상스 이후의 화가들이 광학 기술을 이용하여 그려낸, 공식적으로 전해지지 못한 채 지금은 잊혀진 기술적 사실을 과학적, 문헌적으로 증명하는 글쓰기를 위해 미술작품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고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명화의 비밀](2001~)이라는 책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대로, 이미 미술에서 사실의 '재현'은 오래 전부터 과학의 힘과 함께해 왔던 것이며, 인간의 기교만으로는 눈앞 사물의 오롯한 '재현'이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미술의 임무는 눈에 보이는 대로의 '재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원래부터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재현'해야 하는 본연의 소임을 끊임없이 완수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 역사에 복무할 것이다.

이 길에서 '미술가'의 '혁신성'은 필수 요소로서 미술사를 전진시켰지만, '새로운 시도'라고 해서 다 '예술'은 아니다. '예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반 대중도 미술에 대해 조금만 '알고 보면' 주눅들지 않고 '예술'을 구분해낼 수 있다.

'내가 볼 때 아름다운 것'이 결국 '예술'이다.

이제, 
자신있게 말하자. 

***

1.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The 12-Hour Art Expert)](2022), Noah Charney, 이선주 옮김, <현대지성>, 2025.
2.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1550~1568), Giorgio Vasari, 이근배 옮김, <한길사>, 2018.
3.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2001~2006), David Hockney, 남경태 옮김, <한길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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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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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미'로 돌아왔을 때 이미 그곳에 '왕'은 없었으나
- [황금가지], 제임스 프레이저, 1890~1915.


1.

'목생화(木生火)'

아버지는 삼형제 중 둘째였다. 아버지 삼형제의 성함은 모두 '동(東)'으로 끝난다. 삼형제로부터 나온 아들은 큰아버지댁 외아들인 사촌형과 둘째네 외아들인 나, 이렇게 둘 뿐이다. 사촌형 이름에는 '찬(燦)'이 있고, 내 이름에는 '용(容)'이 들어가 있다. 

어렸을 적 산소를 같이 둘러보시던 큰아버지께서 내 이름 '용(容)'의 가운데 부분에 불 '화(火)'가 들어있다 하셨는데, 오행의 원리에 따라 지은 이름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들의 '동(東)'을 관통하는 건 나무 '목(木)'인 것이고, 그들의 아들 둘의 이름에 '화(火)'가 들어간 것은 '나무가 불을 낳는다'는 '목생화(木生火)'의 원리였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냉큼 더 위로 올라가 할아버지들의 비석을 둘러보았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인 나의 할아버지들은 물 '수(水)'가 있는 '태(泰)'자 돌림의 성함들이었으니, 과연 '수(水)'가 '목(木)'을 낳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나온 나의 세 자녀들에게 아들딸 구별없이  흙 '토(土)'가 들어간 '규(奎)'를 넣어 직접 이름을 지었다. 이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내 자식의 자식을 쇠 '금(金)'으로 작명하면, 우리 집 5대는 '목-화-토-금-수'의 '오행상생설'을 한 순배 완성하게 된다.


2.

"고대사회에서 왕은 흔히 사제이면서 동시에 주술사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종종 사술이나 법술에 능란해 보인 덕택에 왕권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왕권의 발달과정과 미개인이나 야만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직책의 신성한 성격을 이해하자면 '주술'의 원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며, 또 고대의 미신 체계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인간 정신에 미친 비상한 지배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나는 그 주제를 약간 상세하게 검토해 보고자 한다."
- [황금가지], <1-2. 사제의 왕>, 제임스 프레이저, 1890.


영국의 민속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 1843~1941) 평생의 역작은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인데, 1890년 2권짜리 초판으로 나온 후 1900년에 3권으로 엮은 재판, 1906~1915년에 총 12권으로 편집된 3판으로 알려져 있단다. 

고대의 세계 각지 원시 문명과 미개인들 사회로부터 전해내려온 미신과 '주술'의 사례들을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수집하고 분류하여 인류 문명에서 미신과 주술의 지대한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는 '민속학'의 고전이다. 
아마도 초판 이래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사회에서 강한 비난과 반발을 받은 듯, 재판과 3판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같은책, <3-5>) 이야기와 같은 민감한 논쟁적 사안은 부록처리 되었고, '신성한 매춘'(<2-7>)이나 '모계근친제'(<2-14>) 같은 내용들은 편집되거나 했던 것 같다. 아마도 프레이저 집안의 후대 학자로 추정되는 로버트 프레이저가 1994년 '옥스포드판 서문'을 쓰고 낸 판본은 총 4권(1. 숲의왕 / 2. 신의 살해 / 3. 속죄양 / 4. 황금가지)으로 편집되었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은 <한겨레출판사>에서 2003년에 번역한 '옥스포드판'인데, 방대한 미신 사례집과 같이 온갖 잡다하게 수집된 세계각지 미신주술 사례들을 또 다시 편집한 작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근현대 과학의 진보시대를 목격하기 시작했을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의 '서설'과도 같은 <1권. 숲의왕>에서 인간 사상이론의 흐름에서 그 기원과도 같은 '미신'과 '주술'의 상세한 검토를 연구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황금가지], <1-2>). 
그러면서 당대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그림 [황금가지]로부터 시작되는 모티브를 소개한다.

즉, 터너 그림의 배경이 되는 '네미'라는 호숫가에서 일어나는 '숲의왕' 살해의식이 이 장대한 연구의 단초였다는 건데, 사실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토너 그림의 배경은 전설속 아베르누스 호숫가를 그린 것으로, 프레이저가 모티브로 삼은 로마 동남쪽 18km 거리의 '네미'와는 무관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쨌든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네미'의 사제왕 또는 숲의왕은 호숫가에 서 있는 참나무 가지인 '황금가지'가 꺾이면서 동시에 살해당하게 된다는 그 전설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그리스신화의 '아도니스' 신화로, 프리지아의 '아티스' 신화로,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로 접속된 후였다.
프레이저의 '미신'과 '주술' 연구는 이미 '네미'의 전설을 떠나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요컨대 인류문화의 물질적 측면에서 석기시대가 보편적으로 존재했듯이, 지적 측면에서는 '주술의 시대'가 보편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 [황금가지], <1-3. 주술과 종교>, 제임스 프레이저, 1890.


프레이저 [황금가지]의 결론은 인류사에서 미신과 주술은 석기시대만큼 분명한 역사이며, 주술의 그 숱한 오류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고체계는 이후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 "진보의 희망"을 이끌어낼 "과학의 운명"(같은책, <4-6>)으로까지 오는데 필수적이었던 과정이었다는 이야기다. 
자연적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인류에게 고대의 '주술'은 '오류적 질서'였고 중세의 '종교'는 그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대의 '과학'은 '엄밀한 질서'를 끊임없이 지향하는 바, 인류 사고체계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진부하지만, 미신과 주술이 인간 사상사의 기원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프레이저의 위대함은 당대 유럽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 사상과 제국주의 사상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이저에게 그리스도 십자가형은 고대 이교도의 인간제물 희생의식의 연장된 이벤트였고, 미개인과 문명인의 차이는 없다.


"그러므로 내가 아주 조심스럽게 고려의 대상으로 제기하는 가설은 이렇다. 짐작컨대 유대인은 부림절 또는 때때로 유월절에 그 제전의 중심적 특색을 이루는 수난극에서 죄수를 두 명 고용하여 각기 '하만'과 '모르드개'역을 맡기는 것이 관례였다. 두 남자는 모두 짧은 기간 동안 왕의 상징물을 걸치고 행진을 벌이지만, 운명은 각기 달랐다. 행사가 끝나면 하만역을 맡은 한 인물은 교수형이나 십자가형을 당하고, 대중들이 '바라바'라고 부르는 '모르드개'역을 맡은 인물은 자유롭게 풀려났다. 빌라도는 예수를 고발한 내용이 하찮은 것을 깨닫고 유대인들더러 그에게 '바라바'역을 맡기도록 설득해서 그의 목숨을 구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선의의 시도는 실패하고, 예수는 '하만'의 대역으로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러한 임시왕 중 한 사람이 어째서 '바라바', 곧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주목할만한 칭호를 사용했는지 묻는다면, 단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 칭호가 어쩌면 진짜왕, 곧 신격화한 인간이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대신 죽게 하던 시대의 유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황금가지], <3-5.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제임스 프레이저, 1890.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아마도 가장 논쟁적이었을 부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사상이 주류였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예수의 신성한 대속행위로서 십자가형을 고대 '이교도'들의 인간제물 희생제례의 연속으로 보는 '불경함' 자체가 프레이저를 '이단'시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네미' 숲의 사제왕은 공동체의 풍요와 안녕을 지키는 권위자로서 그 기력이 노쇠해지기 전에 젊은 후대 권위자에 의해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한때의 권력자는 자연사하면 안되고 꾾임없는 견제 속에 끝내 폭력적으로 살해당해야 했다. 그래야 권력은 노쇠하지 않고 생생함을 유지하게 된다. 

왕을 살해하려는 자가 들고 가는 것이 바로 '황금가지'로 불리는 참나무 가지다. 여기에는 원시적 기원이 있다. 고대 아리아인 또는 유럽의 선조는 참나무 같은 크고 강한 나무를 섬기는 '나무정령' 신앙이 있었는데, 이는 세계각지 원시사회의 '토템' 중 하나를 의미한다. 단군의 어머니는 웅녀, 즉 곰이었으니 동북아의 어느 종족은 곰의 정령을 믿었을테고, 지금까지도 그 부족이 남아있다면 그 '토템'을 신성시하거나 '터부'시하고 있을 게다. 

'터부'는 [황금가지]에 따르면 바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 주술'과 달리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피하려는 소극적 주술"(같은책, <1-3>)을 이른다. 수많은 사례 중 동북아 코략크 족이나 에스키모 또는 시베리아 사람들에게 곰은 신성하여 범접하면 안되기도 했고(터부), 한편으로는 일용할 공동체의 양식과 옷의 형태로서 사람과 영혼을 나누기도 했는데, 북유럽의 늑대와 나무, 아메리카의 독수리 등이 그렇다. 

또 한 때는 '인간제물'이 횡행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들은 공동체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바쳐지던 활력있는 '왕'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원시 풍습이 권력관계의 정치적 확정 과정에서 왕 대신의 희생제물을 바치는 문화로 변형되었다. 이 시기의 절대권력을 바라던 왕들은 다른 '임시왕' 또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제믈로 바치면서 자신의 권세를 유지했단다.

신성한 예수의 죽음도 바로 이런 공동체의 희생제의 중 하나였다.


프레이저는 책의 마지막 장(<4-6>)에서 '황금가지'의 비밀을 알려준다. 즉, 태양이나 불을 숭배한 유럽인의 조상이 본, 참나무의 큰 몸체에서 꺾어져 분리된 후에 황금색으로 노랗게 시든 참나무 가지를 보고는 불의 영혼을 담은 신성한 영성체로 믿고는 왕의 영혼을 그 나무에 가두어 보존하고자 했던 '토템'의 일부였던 것이다. 현재 '숲의왕'은 폭력적인 죽음을 당하지만, '황금가지'의 '토템'을 통해 그 활력있는 영혼이 부활하여 미래로까지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여담으로 현대식으로 빗대자면, 민주사회의 대통령은 '국민주권'이라는 '토템'을 통해 결국 노쇠하기 전에 죽게 된다는 정도 아닐는지. 
결국 현대 민주주의의 '토템'은 '국민주권' 아닌가.


3.

'불'을 담은 '나무'인 '황금가지'는,
과연 우리 아시아의 '목생화(木生火)'였다.

'네미' 숲 호숫가로부터 장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네미'로 돌아온다. 
그때는 이미, 윌리엄 터너의 그림 속 배경이 더 이상 '네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상관은 없다. 
[황금가지]의 첫 장과 달리 마지막 장에 이르면 더 이상 '숲의왕'의 운명 같은 것도 없다. 
'주술'은 오래된 이야기일 뿐, 이제 인류 '진보의 희망'은 '과학의 운명'이 된 지 오래다.
'주술'의 역사를 오랫동안 둘러보았고, 예수의 신성에 불경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성베드로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퍼질 때 프레이저는 "아베 마리아"를 읊으면서 책을 마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황금가지'는 우리의 사상체계에서 영원하다.

자연현상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인류사상사에서 '주술'은 그 오류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현대적 방식으로 줄기차게 이어진다.

***

- [황금가지(The Golden Bough)](1890~1915), James George Frazer,  Robert Frazer 엮음(1994), 이용대 옮김, <한겨레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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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림 - 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
박영택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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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
- [오직, 그림], 박영택, 2024.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시대마다 주도적인 예술형식이 존재했다며 17세기에는 문학이 우위에 있었으며 회화는 그것을 모방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린버그는 과거의 회화가 신화나 소설 속 사건을 평면에 옮기는 매체였기 때문에 회화가 그 자체의 고유성을 획득하기 위해 문학적인 요소를 화면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화가들은 그린버그의 강령을 따라 '추상회화(추상표현주의/추상인상주의)'를 발전시켰고 환영도, 이야기도 없는 회화로 방향을 바꾸었다. 보통 현대 회화를 '매체 특수성(Medium Specificity)'으로 규정한다. 모더니즘 페인팅에서 회화에 주어진 가장 주된 임무는 회화로서 스스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 무엇보다도 '평면성'이 우선 강조되었다. 왜냐하면 회화라는 '매체'가 지닌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 '평면성'이기 때문이다."
- [오직, 그림], <40. 추상적 숭고를 안기는 화면>, 박영택, 2024.


어려서부터 나는 데생과 소묘에 자신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독서실에서 소피 마르소 책받침을 보고 똑같이 따라 그렸고,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드레곤볼] 같은 만화 장면을 정말 내가 보기에도 아주 똑같이 그려낼 수 있었다. 구도를 잡을 줄도 몰랐고 밑그림 없이도 그렇게 '사실' 그대로 '재현'했다.
미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내게 그림은 사물의 '사실적 재현'이었다.

이후 어떻게 하다가 서양미술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도 그림 또는 회화를 이르는 '시각예술(Visual Art)'은 내게 '보이는 것(가시적인 것)'을 있는 그대로, '사실주의'적으로 '그리는 것(재현)'에서 멈췄다. 사진은 사진대로, 그림은 또 그림 나름대로의 '사실적 재현'의 맛이 있었다.


경기대 교수인 미술사학자 박영택 교수의 책 [오직, 그림](2024)은 서양미술사에서 '사실주의'에 멈춘 내게 현대 미술의 개념을 소개해 주었다. 
19세기 인상주의를 넘어 세기말 폴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를 기점으로 20세기 초의 야수파와 표현주의 등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현대 미술사가 아닌 책 제목 그대로 오직, '그림'만을 보는 회화에 대한 이해다. 

[오직, 그림]을 통해 '시각예술'로서 회화를 한 구절로 요약한다면,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다.

이는 비단 추상주의를 표명한 현대 회화만이 아니라, 인류와 늘 함께 해 온 회화, 미술의 본질이다.


"'원근법'이라는 용어는 16세기 말이나 돼서야 나왔고, 소실선이 무한대에서 만난다는 개념을 증명한 것은 근대에 와서이다... (19세기) 인상주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핵심은 외부세계의 '모방'이었다. 모든 문제는 원근법의 원칙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로 귀결되었으며 '재현'의 기본형식은 불변했다. 반면 (프라) 안젤리코는 일찍이 원근법적 공간이 아닌 또 다른 공간구성을 통해 '비가시성'의 세계가 구현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 중요한 작가였다."
- [오직, 그림], <4. 신의 무한성과 마주하는 인간>, 박영택, 2024.

14세기 르네상스 회화 이전의 주목할 만한 화가 조토 디 본도네는 서양미술사가 곰브리치가 가장 '혁명적'이었다고 인정한 인물이다. 조토는 중세의 평면적 종교화를 벗어나 처음으로 원근법적 구성을 통해 종교화를 그렸다. 조토의 그림 속 인물들은 기독교적 성상이 아닌 당장이라도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으로 처음 재현되었다.

15세기에 이르러 프라 안젤리코는 선배들이 기하학적 언어로 재현한 원근법을 한층 더 다양하게 실험한다. 근대 르네상스 초기의 과학적 발견으로서 3차원적 원근법의 원칙을 어떻게 2차원적 평면 속에서 구현하느냐가 근대 회화의 중요한 임무가 된 것이다. 

역시, 근대 회화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것'의 '가시화(재현)'에 복무하고 있다.


"... 성경을 그릴 때 내용을 주관적이고 개성적으로 해석해서 그린 화가는 카라바조가 최초에 해당한다. 카라바조는 종교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가톨릭 교회가 요구하는 반종교개혁적인 시대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인간의 내면세계를 조망하는 그림을 그려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배경과 강렬한 빛의 극적인 대조(키아로스쿠로)로 감상자에게 심적 자극을 더하는 카라바조의 화풍은 17세기 이탈리아를 바롯해 유럽 전역을 휩쓸 '바로크 미술'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 [오직, 그림], <8. 빛과 어둠의 환상적인 조합>, 박영택, 2024.

16세기 무역도시 베네치아는 세계 각지로부터 온 물품들이 활발히 교류된 도시국가였다. 여기에는 각양각색의 안료들, 즉 물감의 재료들도 있었다. 화려한 색채화가 티치아노, 틴토레토 등의 출현은 이런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다. 이제 회화는 선을 넘어 색채를 통해 현실을 모방하고 '재현'하게 된다.

티치아노를 지나 여기에 등장하는 극적인 화가가 바로 카라바조다. 그의 극적인 명암대비 표현은 '키아로스쿠로'라 부르는데, 그림의 구도는 물론 현실적이지 않은 빛과 어둠의 대비는 역설적으로 현실과 똑같다는 환시를 불러온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의 장면은 그렇지 않을텐데 티치아노나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왠지 살아있는 현실을 보는 것 같이 생생하다.

카라바조는 이렇게 17세기 웅장한 감격을 주는 '바로크 미술'의 서막을 열고 있다.


"서양화화는 렘브란트에 와서 실질적으로 완성되며 서구 '재현주의'는 렘브란트가 정점이다."
- [오직, 그림], <13. 얼굴에 내재한 삶의 굴곡과 주름>, 박영택, 2024.

17세기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은 [오직, 그림]의 저자 박영택에 의하면 서양미술사에서 '재현주의'의 정점이다. 그 말의 의미는 명암대비법 '키아로스쿠로'나 밑그림 없이 그리는 '알라 프리마', 윤곽을 흐리는 '스푸마토' 등 현실 '재현'의 온갖 기법과 실험을 모두 사용한 회화가 더 이상의 재현에 있어 그 한계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렇게 책은 18세기 프란시스코 고야로 넘어간다.


"인간의 심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고야는 서양회화사에서 거의 최초로 몽환적인 내면의 세계를 그린 작가로서 초현실주의의 선구적 존재이기도 하다. 고야는 '재현주의'에 심리묘사와 비현실적 환상을 삽입했다. 그를 정점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서구 '재현주의'의 역사는 하락세로 돌아선다."
- [오직, 그림], <15. 재현될 수 없는 눈과 마음>, 박영택, 2024.

이제 더 이상 회화는 사실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오랜 시간 '재현'을 통해 지향해 온 '객관성'을 넘어 화가 개인의 '주체성'으로서 심리와 느낌이 본격적으로 개입된다. 박영택 교수는 고야를 이후 초현실주의의 기원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고야로부터 회화의 '재현주의'는 화가와 관객의 주관적 개입의 여지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마네는 불가해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우리의 인식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회화에서는 가능한 세계를 역설하고 있다."
- [오직, 그림], <19. 공간의 물질적 속성들을 이용하고 작동시킨 화가>, 박영택, 2024.

19세기 '인상주의'의 창시자격인 에두아르 마네는 빛의 우연성과 시각적 변화를 회화에 도입하면서 다시금 회화를 '사실적 재현'의 길로 새롭게 안내하고 있지만, 실은 자세히 보면 당최 사실 같지 않은 구도와 원근법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회화는 '가시적인 것'을 넘어 '비가시적인 것', 즉 '보이지 않는 것'을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잔의 작품은 유럽회화의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푸생의 견고한 고전주의와 들라크루아의 자유로운 색, 엘 그레코의 상상력 및 풍부한 과장이 모두 들어가 있다. 세잔의 그림은 '가시적' 세계의 기록에 전념했던 지난 여섯 세기(13~18세기) 동안의 유럽회화의 정점이다."
- [오직, 그림], <22. 자연과 지각의 관계에 관한 회화>, 박영택, 2024.

19세기말의 고독한 화가 폴 세잔은 미학자 진중권이 꼽는 가장 '혁명적'인 화가다.

세잔은 특이한 구도와 색채표현을 통해 하나의 관점에서 여러 각도의 정물을 처음으로 그려낸 화가다. 이른바 '후기 인상주의'로 규정되는 그의 화풍은 '인상주의'와 이후 피카소와 같은 '입체주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현실은 하나의 관점으로는 해석되거나 '재현'될 수 없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여러 관점들이 2차원적인 평면 캔버스에 한꺼번에 '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그림]은 세잔이 '유럽 회화의 요약'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피카소의 입체주의, 마티스의 표현주의, 더 나아가 현대의 추상주의까지 전통적인 서양 회화사로부터의 그 분기점은 폴 세잔이 된다.


"세계는 시간적이며 모든 것은 '운동'의 한가운데에 있다. 사물을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결국 '운동' 속에, '변화' 속에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빌럼) 더코닝의 그림 역시 만물의 시간 속에, 사건 속에, 변화 속에, 생성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은 작가의 선험적인 의도, 주체성과 훈련된 손 등을 지우고 '우발성'과 과정 자체를 적극 끌어들이는 한편 자연의 법칙에 조응하고 남겨진 것을 포용한다고 볼 수 있다."
- [오직, 그림], <34. 처소 없는 재현>, 박영택, 2024.

1990년대 미국 퀸스미술관의 큐레이터 연수를 했다는 [오직, 그림]의 저자 박영택 교수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28번째 그림인 파울 클레의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를 설명하면서 이 책의 결론을 담아낸다. 즉, 서양 회화사는 '가시적인 것의 재현'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재현)'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제 20세기 들어 현대 회화는 미국의 '추상인상주의' 또는 '추상표현주의'로 수렴되고 있다.

수많은 화가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화가들은 빌럼 더코닝과 조르조 모란디, 프랭크 스텔라와 마크 로스코, 그리고 루치안 프로이트 등이다.

빌럼 더코닝의 <여인 연작>은 추상화이면서도 구상(형태)를 섞어놓되 '사실적 재현'은 아니다. 그의 형태들은 추상 속에서 뭉개지면서 현실의 '비가시성'을 표현한다.

조르조 모란디는 평생 고요한 정물화만 그렸는데, 세잔의 입체성을 계승하는, "서양미술사에서 세잔의 진정한 추종자 중 하나"([오직, 그림], <36>)로 자리매김한다. 

프랭크 스텔라의 <검은 연작>은 회화에서 3차원적 공간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2차원적 평면성만을 획득하면서 '극단적 추상표현'의 길을 열었다.

여기에 마크 로스코는 건물의 벽과도 같은 거대한 캔버스에 검은 물감의 '물질'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회화사에 있어서 모든 문학적 서사로부터 미술을 해방시키고 있다. 미국의 미술평론가 클레멘스 그린버그는 회화의 고유성 쟁취를 위해 미술에서의 문학적 요소를 추방하자고 선언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화가들은 추상인상주의든 추상표현주의든 일체의 '추상주의'로 달려나갔다. 현대 화가들은 이제 원근법적 실험 등의 전통은 버린지 오래였고, 회화의 '평면성'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했다.

또한 무의식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 루치안 프로이트는 할아버지의 무의식 관념을 미술로까지 밀고 올라가 날 것 그대로의 누드화를 주로 그렸다는데, 책의 설명은 사실 잘 모르겠고 조부의 성적 무의식을 미술로 발현한 것 아닌가 싶었다. 책 <48장>에서 소개한 아래의 <푸른색 발톱을 가진 플로라>는 그나마 그 중 '정상'적으로 보이는 그림을 고른 것 같았는데, 궁금해서 프로이트의 작품들을 검색해보니 다른 누드화들은 별로 보고싶지 않은 '비가시적' 장면들을 괴기스러울 정도로 '가시화'하고 있었다.

'가시적'인 것, 즉 우리가 '본다'라는 것은 모종의 욕망을 투여한 행위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물의 이면, 즉 다른 측면 또는 볼 수 없는 '비가시적'인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직, 그림]에 의하면 예술은 이런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끝없이 날아가는 불나방이거나 끝내 그곳에 이르지 못하고 날개가 녹아 추락하는 이카루스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지속적으로 관습을 깨뜨리며 나아가는 니체와 같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곳이 바로 미술과 철학이 조우하는 지점인 것이다.

이렇게 '우연'한 "생소함의 '재현'과 '가시화'"([오직, 그림], <39>)가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미술인 것이다.

회화의 역사는 '비가시적'인 것들의 다양한 '가시화' 과정이다.

***

1. [오직, 그림 - 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 박영택, <마음산책>, 2024.
2.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1950),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03.
3. [서양미술사], 진중권, <휴머니스트>, 2008~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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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역사 - 지식을 향한 욕망의 문화사 Philos 시리즈 36
앤드루 페티그리.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 지음, 배동근.장은수 옮김, 장은수 해제 / arte(아르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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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도서관의 '반전(irony)'
- [도서관의 역사], 앤드류 페테그리 외, 2021.


1.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둘째딸과 토요일마다 마을 도서관에 온다. 
여름방학에도 학교 갈 시간 즈음에 깨워 마치 학교 가듯이 데리고 오려고 했으나 매번 쉽지는 않다. 토요일 오전의 동네 도서관에서 며칠 전 빌린 책을 반납하기 전에 서평을 쓰고 또 다른 책을 빌리는 내게는 이 더운 여름에 도서관만한 피서지가 없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마다 미적거리는 나의 둘째딸은 이 '피서지'로 영 가기 싫은 눈치다.

하긴, 도서관을 좋아라 하는 내게도 한때 해야 하는 '공부'를 위해 찾았던 도서관은 답답하기 그지없던 장소였으니, 열아홉 인생 최초로 갑갑한 일상을 버텨야 하는 고3 수험생에게 도서관이 반가울리 만무할게다.

그러던 중 근대적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룬 괴테의 [파우스트]를 반납하고는 잠시, 
'도서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던 나의 눈에 들어온 책이 마침, 
[도서관의 역사]였다.


2.

"지식축적의 욕망은 지식접근권을 통제하려는 욕망 또는 독자 '계몽'을 위해 지식을 사용하려는 욕망과 경합했다."
- [도서관의 역사], <프롤로그>, 앤드류 페테그리 외, 2021.


커뮤니케이션의 역사가 주요 연구대상인 영국의 역사학자 앤드류 페테그리(Andrew Pettegree)가 설립한 '국제약식서명목록(USTC;Universal Short Title Catalogue)'은 17세기 이전 유럽의 인쇄출판물을 연구하는 단체인데, 창립자 앤드류 페테그리와 USTC의 부소장 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Arthur der Weduwen)이 2021년에 출간한 [도서관의 역사(The Library)]의 노란색 표지가 그 때 나의 눈에 띄었던 거다.


[도서관의 역사 - 지식을 향한 욕망의 문화사](2025)로 번역된 이 책의 원제는 [The Library - A Fragile History](2021)다. 직역하면, '도서관의 세밀한 역사' 또는 '도서관 정밀사' 정도 되겠다. 그만큼 6백 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의 이 책에는 인류의 역사에서 '도서관'을 발전시켜 온 수많은 인물들의 노고가 가득 소개되고 있다. 19세기 대서양 양안에서 영미 공공 도서관 문화가 만개할 수 있게 한 그 유명한 카네기 뿐만 아니라 근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로부터 이후의 유명한 도서관 사서 관료들의 활약은 물론, 각종 대학도서관을 키워낸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아르헨티나의 국립도서관장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의 [독서의 역사](1996)를 통해 '책'과 '읽기'의 역사를 충분히 일별했다고 생각하던 내게 '도서관의 역사'는 좀더 넓은 '책'과 '도서관'의 세상을 보여주었다.

[도서관의 역사]의 공동 번역자인 장은수 전 민음사 대표는 국역판 <해제>에서, 이 책에 가장 빈번히 나오는 단어가 '반전(irony)'이라고 쓰고 있다. 
즉, 도서관은 인류 지식을 독점하려는 당대 권력의지의 소산으로서 지식통제와 지식계몽의 모순된 목표를 향했고, 권력이동 과정에서 철저히 파괴되곤 했지만 오히려 기존에 탄압당하던 공간을 통해 은신하기도 했다는, 온갖 '반전(irony)'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의 동력이 그렇듯,
'도서관의 역사' 또한 '모순'과 '반전'이 그 동력이다.


"... 그러나 전쟁의 승패가 바뀌면 불가피하게 그 도서관은 정당한 제거대상이 됐다. 승리자들은 도서관을 약탈하고 파괴하면서 패배집단의 정당성도 함께 무너뜨렸다. 약탈당한 책은 전리품으로 정복자의 고국에 있는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이 모든 '반전(irony)'의 반전은 비록 난폭한 방식이었으나 '책'의 힘을 입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툼의 주역 중에 누구도 '책'에 사람을 바꾸고 삶을 이끌며 의문을 해결하는 힘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책'들은 종종 성스러운 권력에 대항했다가 오히려 의심을 사서 의식적 수모와 함께 죽임을 당했던 선교사들과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 전쟁을 위한 무기는 다양하다. 어떤 무기는 무시무시한 모습만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그 은밀함이 무기가 된다. 17세기와 18세기에 '도서관'을 둘러싼 전쟁도 그랬다."
- [도서관의 역사], <3-9. 선교의 장>, 앤드류 페테그리 외, 2021.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고대 기원전 아시리아를 무너뜨린 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 니네베 도서관의 모든 점토판을 파괴하면서 이전 권력의 미래를 빼앗고자 했다. 고대 로마는 초기 기독교의 양피지를 탄압했다. 중세 가톨릭은 '이단'의 책(코덱스)들을 역시 불태웠고, 그 후 '종교개혁' 시기와 숱한 전쟁, 특히 20세기 세계대전 총력전은 셀 수 없는 책들을 파괴하고 훼손시켰으며 약탈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도서관의 역사]는 위와 같은 "전쟁이나 악의보다 방치가 더 무서운 적"(같은책, <1-1>)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로마의 박해에도 책은 수도원에서 안식처를 찾았고 종교전쟁 속에서도 책은 반대파의 서재 궤짝에서 잠을 잤다.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수하 알프레드 로젠베르크의 특수부대가 약탈한 수많은 책들 대신 소련을 비롯한 승전국들은 그 이상의 책들을 패전국 독일로부터 빼앗아 복수했다. 또한 인쇄기술 및 출판산업의 발달과 독자들로의 권력이동으로 인해 전쟁과 재난으로 파괴된 책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이 생산되고 유통 및 공유되기도 했다. 반면, 오래된 고서와 기록은 '이단'이라는 이유로, 하찮다는 이유로,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방치되면서 세월의 궤짝 속에 묻힌 채 사라지거나 훼손된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다. 

17세기 영국 옥스포드 대학도서관의 기반을 닦은 토머스 보들리는 라틴어나 고어가 아닌  셰익스피어 같은 당대 영어책은 '고상한' 지식의 보고가 아닌 '하찮은' 책이라서 도서관에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미국의 어느 사업가는 상상 이상의 거금을 들여 셰익스피어 희귀본만을 수집하여 보존해 왔단다. 이후 프랑스의 독서클럽이나 독일의 독서협회 또한 어느 정도 고지식한 틀을 고집했고 18세기 미국의 회원제 도서관이나 대여 도서관도 처음은 그랬으나 점차로 로맨스 소설과 여성 독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즉, '도서관의 역사' 또한 독자층의 저변이 확대되는 '책'의 민주화 과정과 궤를 함께 한다. 

지금은 없어지고 다른 형태로 존속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근세에 콜럼버스의 아들 페르난도 콜론이 한 차례 재건하려고 했는데, 한 때 그 도서관이 전성기를 맞은 이유도 '팸플릿' 같이 '하찮은' 인쇄물 취급은 받았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읽을거리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의 사서 가브리엘 노데는 [도서관 설립을 위한 의견서]에서 도서관은 전통적 학문의 모든 분과를 포함하는 한편 '하찮은' 인쇄물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데는 이탈리아와 스웨덴에서도 고급 사서로 일했는데 밀린 급여를 귀중한 장서들로 대신 받아 챙기고는 고국에 들여와 리슐리외의 후계자 쥘 마쟈랭의 공공도서관을 채우기도 했다.

17~18세기 대학도서관 같은 근대적 공공도서관의 발전 시기에도 귀족과 군주의 개인도서관은 권력의 사치와 향유를 위한 공간으로 남았지만 이곳에 모인 작가와 예술가들은 이 개인도서관을 활발한 사교의 장으로 만들면서 문화발전을 촉진하는 매개체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이후 도서관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쟁이나 화재 같은 재난으로 인해 파괴된 공공도서관의 책들은 상류계층의 개인도서관으로부터 기부되거나 책에 관심없는 상속인들에 의해 쉽게 처분되면서 다시 채워지기도 했단다. 
유럽 지배층의 사치품에서 공공재로, 미국 악덕자본가의 폼내기 기부에서 역시 공공재로 전환되는 이 '반전' 또한 '도서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 '책'은 튼튼하고 복원력이 뛰어난 데다 사후서비스나 부품교체가 필요하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을 꾸미는 데 쓰이기도 하고, 공유하고 대여하고 소장할 수도 있는 '문화자본'을 제공한다.
...
'도서관'이 다양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돌아다니고, '책'을 읽다가 내킬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장소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책'의 '무작위성'과 사람들 취향과 호기심의 '무작위성'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다른 공공 공간과 구별하는 점도 이 '무작위성'이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무얼 바라든지 간에, 그 바람을 북돋우는 모든 것을 마음껏 탐색할 수 있는 장소이다."
- [도서관의 역사], <에필로그>, 앤드류 페테그리 외, 2021.


그러나 사실, 이 '도서관의 역사'는 또 하나의 '반전'과 '배반'(같은책, <5-15>)을 보여주는데, 항상 그 '고상한'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에 세워진 공공도서관은 식민통치의 정당성와 식민지인들에 대한 효율적 착취가 그 설립의 주요 목표였지만, 공공도서관을 통해 지식을 깨우친 사람들은 어느덧 식민지 해방투쟁의 전사가 되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독일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 주도로 세워진 노동자 도서관 네트워크에서는 정치사회적 도서나 노동조합 관련 책들은 거의 대출되지 않았고 문학이나 희곡 작품이 수천 배나 더 많이 대출되었다. 대신 노동시간 단축으로 여가를 보내기 위한 노동계급의 활발한 사교공간으로서 유감없는 제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18~19세기에 '하찮은 금서' 취급을 받던 소설이 20세기의 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아 그 금서 자리를 공산주의와 포르노 서적들에게 물려주고는 비로소 공공도서관의 주역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제 도서관은 예전의 '하찮은' 것들 없이는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도서관의 역사]의 저자들은 말한다.
'책'과 '도서관'은 없어질 것 같았으면 아주 오래전에 이미 없어졌을 거라고.

아직까지 유효한 '문화자본'으로서 '책'이 있고, 
그 책들을 공유하는 독자대중과 시대를 함께 하는 한,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도서관' 또한 그런 '책'의 끊임없는 '반전(irony)' 속에서 다양한 독자대중 취향의 '무작위성'과 만나면서 오래도록 진화하고 남을 것이라고 말이다.


3.

이제 알 것 같다.
고3 딸이야 답답하건 말건 내가 더 도서관을 찾는 이유를.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우연히 책들과 만나게 되는 그 '무작위성'(같은책, <에필로그>)이 바로 그 이유였다.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이 있든 없든, 
무시로 드나드는 생각의 꼬리를 따라 만나게 되는 뜻하지 않은 세상, 
도서관은 적어도 내게는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거다. 

게다가, 근대의 공공도서관은 보일러를 놓지 않아 겨울난방이 안되었다고 하는데, 현대의 마을도서관은 겨울난방은 물론 한여름 냉방까지 매우 훌륭하지 않은가.

***

1. [도서관의 역사(The Library - A Fragile History)](2021), Andrew Pettegree/Arthur der Weduwen, 배동근/장은수 옮김, <Arte>, 2025.
2.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Alberto Manguel,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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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2 펭귄클래식 13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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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존재'로 향한 근대적 '자유의지'의 여정
- [파우스트], 괴테, 1790~1831.


"...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는 서기 1~3세기경에 로마제국의 많은 지역에서 연금술사들, 점성술사들, 주술사들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지만, 훗날 기독교 작가들에게는 '악마'로 인식되었고, 16~17세기에 악마론을 다룬 문헌들에서는 '오피엘'과 '메피스토-오피엘'로 호칭되는 악마로 묘사된다."
- [데모니쿠스], <3-1>, 토머스 데이비슨 외, 19세기.

19세기 미국 철학자 토머스 데이비슨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근원을 추적하던 중,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신의 전령사이자 마술사와 사기꾼, 도박꾼 등의 상징인 '헤르메스'로부터 시작하여 기독교 세계관에서 '악마' 또는 '마귀'의 이름 중 하나인 '오피엘'의 어원을 파헤치면서 '메피스토-오피엘' 혹은 '메기스토-오피엘'이라는 존재로까지 소개하고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 1749~1832) 일생의 역작인 [파우스트(Faust)](1790~1831)는 괴테가 41세에 <1부>를 내놓았다지만, 실은 그의 나이 17세부터 구상했던 이야기로서 괴테가 70년 동안 집필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17세의 괴테가 보았던 연극 [파우스트 박사]의 주인공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는 16세기 독일 라이프치히와 하르츠 지방의 연금술사였다고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독일 시민들은 중세 말기 흑사병을 '고쳐준' 의사이자 마술사인 파우스트의 아버지를 높이 칭송하고 있다. 이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는 토로한다. 사실 아버지와 본인이 했던 일은 흑사병을 고치기는 커녕 사람들을 기망했던 사기였을 뿐이라고. 물론 당시 의학 및 과학의 지식이나 기술로는 '신의 징벌'로 여겨진 흑사병에 대처할 수 없었지만, 이처럼 파우스트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지상적인 것을 높이 평가하는 법을 익히고,
우리 모두 계시를 갈망하면 된다.
이런 계시야 그 어디에서보다
신 앞에서 가장 멋지게 빛난다.
어서 원전을 펼쳐놓고
나의 온 정성을 담아
이 성스러운 원문([성경])을
사랑하는 독일어로 옮겨보고 싶다.

(책을 펼치고 펜을 손에 든다)

이런 말이 적혀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처음부터 막히는군! 누가 좀 도와주었으면!
'말씀'이 그리 높은 뜻을 지닐 수는 없다,
번역을 달리 해야 한다.
성령의 높은 감화를 받은 내가 아닌가.
이렇게 적혀있다. '태초에 뜻이 있었다.'
이 첫 행을 조심해야 한다.
펜을 너무 서두르면 안된다.
'뜻'이 모든 행동과 창조의 근원인가?
이렇게 쓰자. '태초에 힘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쓰는 사이
거기서 멈추지 말라. 경고의 소리 들린다.
정신이 돕는구나! 묘안이 떠오른다.
나는 당당히 적는다.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 [파우스트], <비극 1부. 서재(1)>, 괴테, 1790.


부친의 명성과 당대의 모든 학문을 섭렵한 파우스트 박사는 마르틴 루터처럼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려고 하다가 결국 '보편적 존재'를 꿈꾸는 인간의 지식적 한계를 체감하고는 대학교수직에도 회의를 느끼면서 모종의 '행동'을 하고자 하는데, 바로 '자살'이었다.

[성경]의 첫 구절,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로 재해석한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난 이후 학문을 떠나 자살'은 미뤄두고는 그 '악마'와 함께 일련의 '행동'에 나선다.

이것이 '파우스트'로 대표되는 근대 시민적 '자유의지' 여행의 시작이다.


"결국 그러다 보니 우리는 다시 정신력의 한계에 이르렀네요.
이 지점에 이르면 당신들 인간들은 늘 이성을 잃어버려요.
감당할 능력도 안되면서 우리와 손을 잡는거요?
날고는 싶은데 현기증 때문에 겁이 난다는 격이네요.
대체 우리가 당신을 끌어들인거요, 아니면 당신이 우리를 끌어들인거요?
...
그녀를 구해내라고요? 아니 그 여자애(그레트헨/마르가르테)를 파멸에 빠뜨린 게 대체 누구요? 나요? 아니면 당신이오?"
- [파우스트], <비극 1부. 우중충한 날, 들판>, 괴테, 1790.


'자살'이라는, 기독교적 신에 반(反)하는 '행동'을 시도하려던 파우스트 박사는 최초 개의 형상으로 자신을 따라붙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대화를 시작한다. 신학은 물론 고대의 철학 등 인류의 지적 유산을 모두 섭렵했다고 생각하는 파우스트는 시종일관 메피스토펠레스를 존대하지도, 마냥 끌려다니지만도  않는다. 마치 자신의 종처럼 부리면서 '자살'이라는 당시 세계관에 대한 소극적 반항 '행동' 대신,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악마를 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790년에 일단락된 괴테 [파우스트] <비극 1부>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피의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가 대학의 서재를 떠나 거리로 나와 젊은 소녀를 후리고 청년들과 술집에서 난잡토론을 하는 일련의 사회적 교류를 통해 인간 개인의 '자유의지'를 실험하는 적극적인 '행동'의 무대로 이어진다.

비록 악마에게 영혼을 판 계약이었지만, 파우스트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단을 통해 악마를 부리고 그 힘으로 사회적 '행동'을 결행했다. 마지막에 파우스트가 꼬셨던 소녀 마르가르테(또는 그레트헨)의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소녀 또한 감옥에 갇히지만 파우스트는 역시 악마의 힘을 다시 빌려 소녀를 탈출시키고자 한다.

후회스러워 하는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저주하지만, 악마의 대꾸는 의미심장하다.

"대체 우리가 당신을 끌어들인거요,
아니면 당신이 우리를 끌어들인거요?"

근대적 '자유의지'의 실험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 때 썼던
그 펜도 그대로 여기에 있다.
그래! 깃펜 안쪽에는 그의 핏줄에서
내가 옭아냈던 피 한 방울도 들어있다."
- [파우스트], <비극 2부. 2막>, 괴테, 1831.


1815년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임명된 괴테가 이듬해부터 구상을 다시 시작한 [파우스트] <비극 2부>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현실을 떠난 파우스트가 온갖 고대 인물들과 다니는 연극무대와도 같다. 여기서부터는 트로이 전쟁 후 다시 스파르타로 돌아온 헬레네도 등장하고, <비극 1부>에서 파우스트로 변장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현혹된 조교 바그너가 대학을 떠난 파우스트의 공백을 채우면서 만들어낸 '호문쿨루스'라는 실험적이고 이상적 인간형태도 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마녀 세자매 '포르키아스'는 물론 각종 신화적 보조출연자로 변신한 메피스토펠레스는 <비극 1부>에서 파우스트를 타락시킨 것처럼 <비극 2부>에서도 인류역사의 모든 추상적 현상들을 동원하여 그를 파멸시키고자 한다. 

그들의 외도 중에도 파우스트가 떠난 대학의 서재에는 여전히 악마에게 영혼를 판 파우스트의 '피'가 묻은 펜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파우스트)는 자신에게 표면적이고 형식적 허울을 강요하는 모든 학문, 모든 인간관계, 모든 제도, 모든 보편적 인간의 관심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인류의 모든 경험을 축적하려고 전심전력한다. 그는 애초에 충동적으로 개시한 이런 노력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노력은 '보편적 존재'가 되려고 염원하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열망의 발로이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보편적 존재'만이 언제나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데모니쿠스], <3-4>, 토머스 데이비슨, 19세기.


그러나 결론은 역시 '악마'가 아닌 '인간'의 몫이었다.

애초에 파우스트가 결행한 '행동'은 중세에서 근세를 거쳐 근대적 인간으로서 깨어나려는 '개인'의 '자유의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세계관 또한 당대 유럽의 기독교적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지막에 악마와의 계약을 무력회시키면서 파우스트가 안긴 곳 또한 신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인간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신과 종교의 테두리에서 찾는 '보편성'이 아니라, 때로는 '악마'와도 계약할 수 있는 근대적 시민 '개인'의 '자유의지'에 주목하며 개별과 추상 모두를 여행하면서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괴테의 [파우스트]는 전형화하고 있다.
'자유의지'의 화신, '파우스트(Faust)' 이름의 의미는 '주먹(fist)'이기도 하단다.

19세기 괴테의 [파우스트]는 과연, '보편적 존재'로 향한 인간 개인의 '자유의지'의 긴 여정을 담은 서사시이기도 하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기원을 추적하려던 19세기 미국 철학자 토머스 데이비슨에 의하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개인들 각자를 '보편적' 인간으로 간주하는 근대적 '개인주의'"를 보여주는 인류의 '고전'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호메로스와 존 밀턴 등의 서사시가 우리말로 온전히 번역되기 어려운 것처럼, 괴테의 '비극'적 '희곡' [파우스트] 또한 번역본으로는 원문의 감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존 밀턴의 [실락원]조차 원문으로 읽을 마음이 없는 '영문학' 전공자인 내가 괴테의 독일어 원문을 읽어볼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원문은 아니지만 우리말로라도 인류의 근대적 '자유의지'를 다른 고전은 비록 그것이 서사시라 해도 계속 읽어볼까 한다.

그렇게 어찌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시(詩)는 역사보다 더 엄중하고 철학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

1. [파우스트(Faust)](1790~1831), Johann Wolfgang von Goethe, 김재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2.
2. [데모니쿠스(Demonicus)](19세기), Thomas Davison 외, 김성균 옮김, <우물이있는집>, 2025.
3. [실락원(失樂園;Paradise Lost)](1667), John Milton, 김흥숙 옮김, <서해문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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