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고(vigo)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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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양식'의 구조적 세계사
-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책은 '교환양식'을 통해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재검토함으로써 현재의 '자본-네이션-국가(스테이트)'를 넘어서는 전망을 여는 시도다... 새롭게 '헤겔(법철학) 비판'을 시도한다는 것... 나는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시 파악하기로 했다...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다시 하는 것... 헤겔이 관념론적으로 파악한 근대의 사회구성체와 그것에 도달한 '세계사'를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유물론적으로 계속 전도시키면서 헤겔이 파악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사'를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으로 보는 시점이 불가결하다."
- [세계사의 구조], <서문>, 가라타니 고진, 2015.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다소 도식적이지만 '역사발전단계설'을 통해 일체의 계급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과학적 사회주의'다.

인류 최초의 자유롭던 유동적 사회인 원시 공동체에서 국가와 계급의 출현과 함께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를 넘어 근현대 자본주의를 거치고 이후 다수 노동자민중의 국가권력 전유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오히려 다수 민중의 직접적인 '민주주의'적 권력체제 형태로 계급의 철폐와 국가의 소멸을 완성한다는 '역사발전단계설'이다. 계급투쟁과 계급지배의 현실태로서 국가가 소멸된 공산주의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인류의 미래였다. 

이러한 역사의 필연적 발전 과정에서는 인간의 '노동'에 기초한 생산력(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인 생산관계의 상호작용이 필수요소다. 이 둘은 변증법적 관계로 일정 기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둘러싼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견인하지만 계급 불평등이 심화되면 특정 생산관계는 생산력 발전을 저해하는 상호 모순의 관계가 된다. 이러한 변곡점에서 노예제나 봉건제 같은 특정 생산양식은 새로운 생산양식, 즉 새로운 정치경제체제로 이행한다. 봉건제를 이은 자본주의체제는 생산력 발전의 최고 수준을 담보하는 한편 소수 자본가들의 생산수단 사적독점이 다수 노동계급을 소외시키면서 계급투쟁의 대단원을 기록한다는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과 '생산'의 관점에 철저한 '노동가치론'에 기반한다. 

다수의 '자유'를 위해서 '평등'이 전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를 소멸시키기 위해 우선 국가권력을 잡아야 한다. 국가를 지양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이 모순적 정치상황이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복지국가든, 사민주의 정당이든 '혁명'이라는 계기만 제외한다면 동일한 정치사상이 된다.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1941~)은 칸트주의적 초월론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다. 마르크스 철학의 헤겔 극복 작업을 칸트 철학에서 찾는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The Structure of World History)](2015)라는 제목의 그의 주저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생산양식(Modes of production)' 이론을 넘어서는 '교환양식(Modes of Exchange)' 이론을 제시한다.

인류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생산양식'에만 국한된 '평등'에서만 멈춰서면 안되고 생산과 유통, 소비 일체를 아우르는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세계사 '이야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생산양식'을 넘어선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세계사의 구조'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 [세계사의 구조(The Structure of World History)의 부제는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From Modes of Production to Modes of Exchange)'다.


"내가 여기서 쓰려는 것은 역사학자가 다루는 '세계사'가 아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복수의 기초적 '교환양식'의 연관을 '초월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사에서 일어난 '세 번의 이행'을 구조론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네 번째 이행', '세계공화국으로의 이행'에 관한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 [세계사의 구조], <서설 : 교환양식론>, 가라타니 고진, 2015.


가라타니 고진 또한 나름대로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발전단계설'을 지지한다. 다만, 기존의 원시 공동체와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와 근현대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미래의 공산주의 등의 '생산양식' 개념을 넘어, 각 시기별 '교환양식'의 단계적 개념으로 구분한다.

- 1부. 미니세계시스탬(교환양식A) : 원시 공동체 유랑(유동성) 이후 정착사회인 씨족(부족)사회는 '증여'와 주술 중심의 상호(호수) 사회 / '네이션'(부족 또는 씨족)의 최초 출현
- 2부. 세계=제국(교환양식B) : '국가(스테이트)'의 등장으로 '폭력' 또는 강제에 기반한 국가중심주의와 절대왕권의 '주권' 개념과 '주술'을 넘어선 '보편종교'의 확립 / 부르주아 시민혁명으로 등장하는 '국민국가'와 '네이션(인민/민족)'의 진화 및 강화
- 3부. 근대세계시스템(교환양식C) : 절대왕정의 중상주의(상업자본주의)를 넘어선 산업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한 '자본'의 부상 /  자본의 '제국화' 또는 '세계화'와 '국민국가(스테이트)'와의 모순
- 4부. 현재와 미래(교환양식D) : '자본'의 '제국화'와 '국민국가(스테이트)'간 모순을 극복하는 '세계공화국' / 칸트의 루소적 근대 시민국가와 프루동과 마르크스 등 사회주의자들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사회(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건설을 통한 상호(호수)주의적이고 증여적인 '교환양식A'의 회복

원시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를 통해 생산력이 최고로 발전한 상태에서 계급 불평등과 국가를 지양하면서 '공동체주의(코뮤니즘/공산제)'를 현대적으로 복원한다는 칸트식 '규제적 이념'이다. 즉, 논리적으로 완벽하여 필연적 결론에 도달하는 '구성적 이념'이 아닌, 일관성과 경향성을 지닌 좌표적 개념으로 끊임없이 그에 수렴해 나가는 '규제적 이념'인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 생산양식) 관점은 최초의 단계에 존재하는 '평등성'을 중요하게 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유동성(자유)'이라는 사상을 무시한다. 즉, '코뮤니즘'을 '유동성(자유)'이 아니라 '부의 평등'이라는 점으로만 보는 사고가 되기 쉽다.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볼 때 이상과 같은 결함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 [세계사의 구조], <1-2. 증여와 주술>,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교환양식A-B-C'들은 각 시기단계별로 하나씩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기마다 각각의 교환양식이 '네이션-국가(스테이트)-자본'의 형태로 복합되어 있으며, 원시 공동체는 '교환양식A(증여)'가, 고대 노예제와 중세 봉건제 또는 아시아적 전제주의와 유럽의 절대왕정 등은 '교환양식B(국가)'가, 근현대 산업자본주의 체제는 '교환양식C(자본)'가 우세한 시기다. 미래의 '세계공화국(교환양식D)'은 이 모든 '교환양식'들이 혼재하지만 '증여'와 '상호(호수)주의'적인 '교환양식A'의 현대적 복원을 기획한다.


"호수(상호/증여) 원리에 기초한 세계시스템, 즉 '세계공화국'의 실현은 쉽지 않다. '교환양식A,B,C'는 집요하게 존속한다. 바꿔 말해 '네이션-국가-자본'은 집요하게 존속한다. 아무리 생산력(인간과 자연의 관계)이 발전해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인 '교환양식'에서 유래하는 그와 같은 존재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존재한다면 '교환양식D' 또한 집요하게 존속한다... 칸트가 말하는 '규제적 이념'이란 그런 것이다."
- [세계사의 구조], <4-2. 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과정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1,2차 세계대전의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국민국가(자본-국가-네이션)'간 대전쟁 후 결성된 국제연맹과 국제연합(UN)에 희망을 건다. 국가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간의 연대 못지 않게 국가들간의 연대가 미래의 '세계공화국' 건설의 필수요소다.

'생산양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환양식'까지 아우른다는 것은, 생산과 노동의 노동자계급을 넘어 총자본의 입장에서 역시 노동 못지않게 잉여가치와 자본증식을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소비자'로서의 '다중(다수 대중)'에 주목하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주의적 프롤레타리아 개념을 현대화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틀 하트의 '제국' 및 '어셈블리' 개념을 지지한다.

이렇게 '노동'을 넘어 '소비'와 '유통'까지 아우르는 '교환양식' 관점에 입각한 가라타니 고진의 사회구성체는 '노동'과 '생산양식'에 머물던 마르크스주의적 경제결정론을 극복한다. 하부구조(토대)의 경제적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시되던 상부구조로서 정치적 '국가'의 자율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즉, '자본'을 키운 것은 '국가'이며,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의 현대적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교환양식D(코뮤니즘/어소시에이션)'로서 '교환양식A(증여/호수)'를 복원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과 헤겔의 근대적 국민국가주의를 넘어선 칸트의 '목적의 나라'다.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도덕적 정언명령은 마르크스가 헤겔을 넘어선 그 이상의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제,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을 역주행하여 칸트식으로 마르크스를 읽고 접속시키는 [트랜스크리틱](2010)을 읽어봐야겠다.

***

1. [세계사의 구조 -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2015),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비고>, 2024.
2. [트랜스크리틱](2010), 가라타니 고진,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3.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1848),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4.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5. [제국(Empire)](1998),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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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34
찰스 디킨스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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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무엇으로 '상징'되는가
(What was the symbol of revolution)
-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1859.


1.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두 도시 이야기], <1-1. 시대>, 찰스 디킨스, 1859.


첫 문장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하면,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Call me Ishmael)"라고 시작하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1851),
"어머니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로 시작하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1942),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면서 그 유명한 <서문>을 열고는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수천년의 인류 문명사를 과감하고 명료하게 요약하는 압축적인 문장으로 <1장>을 시작하는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8)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인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의 [보물섬](1883)의 첫 문장 또한 이야기 서술의 경위를 소개하는 매우 평이한 문장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상깊다. 

"트렐로니 지주와 리브시 판사를 비롯한 몇몇 양반들이 나에게 보물섬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요청했는데, 아직 가져오지 못한 보물이 남았으므로 보물섬의 위치만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기록하라고 했고 나는 17백 몇년의 어느 때로 돌아가서 펜을 들어야 했다. 내 아버지가 남긴 '벤보우 제독' 여관 처마 아래로 뺨에 큰 칼자국이 있는 늙은 선원이 처음 들어섰던 바로 그 때 말이다."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1장, '벤보우 제독' 여관의 늙은 선원>, <Collins classics>에서 필자 번역.

해적 플린트 선장의 보물섬 지도를 훔쳐서 달아난 1등 항해사 빌리 본즈의 등장과 함께 시작하는 그 첫 문장은 어린 나를 미지의 추억과 모험의 세계로 바로 초대해 주었다.

여기 또 하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자랑하는 소설이 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 1812~1870)의 1859년작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다.
한 시대를 짧으면서도 인상깊게 대비되는 문장으로 묘사한 대목이 압권이다. 번역하기에 따라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식의 병렬식 문장도 좋고, "최고의 시간이었지만(한편으로는),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식의 대비식 문장도 나쁘지 않다. 아마도 번역자에게는 두 가지 표현 중 무엇으로 할까 고민되는 첫 문장이기도 하겠으나, 원문은 단순한 한 줄 문장들의 나열이다.


"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It was the age of wisdom. It was the age of foolishness. It was the season of light. It was the season of darkness. It was the spring of hope. It was the winter of despair. We had everything before us. We had nothing before us..."
- [A Tale of Two Cities], <1. Recalled to life>, Charles Dickens, 1859.


이 기념비적인 첫 문장들이 묘사한 시대가 언제일까 궁금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였을까. 
소설은 <1권. 되살아나다(Recalled to life)>의 <1장. 시대>를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혁명이 일어나기 14년 전인 1775년이 그랬다고 적고 있다. 제목과 같은 공간적 배경인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는 '턱이 큰' 조지 3세와 역시 '턱이 큰' 루이 16세가 영국과 프랑스를 다스렸고, '평범한 얼굴'의 샬럿 소피아와 '아름다운 얼굴'의 마리 앙뜨와네뜨가 각 나라의 왕비로 있던 때였다. 중세를 지나 절대왕권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던 이 지배권력자들은 '혁명'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낡은 질서의 대표적인 '상징'들이다. 영국은 이미 한세기 전인 17세기에 의회혁명으로 왕권이 제한된 입헌군주국이었고, 프랑스는 왕정과 귀족 계급의 폭정과 착취로 인해 바야흐로 민중 대혁명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폭풍전야였다. 

주지하다시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절대군주 개인의 국가가 아닌 다수 민중(인민) 주권의 국가의 건설, 이른바 '국민국가'의 시작이었다. 
'국가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근대적 헌법정신의 기원이다.

[두 도시 이야기], <1권. 되살아나다(Recalled to life)>, '1장. 시대'에서 말하는,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은,
1775년의 왕족과 귀족 계급에게는 '최고'였던 반면, '제3신분'인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농노를 비롯한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최악'의 시대였다.

한편으로 이 첫 문장들은,
'혁명'의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1789~1793년 대혁명의 '바다(같은책, <2-22>)'와 '불(<2-23>)', '폭풍(<3-4>)' 속에서는 다수 민중 계급에게 '최고'였던 반면, 소수의 낡은 지배계급에게는 '최악'의 시간이었을 테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1859)의 유명한 첫 문장은 다름아닌 바로 '계급투쟁'의 진실을 담아낸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2.

"'라 기요띤(La Guillotine)'이라 부르는 날카로운 여인...
그것은 대중적인 농담의 주제였다. 그것은 두통에 대한 최상의 치료약이고, 머리카락이 세는 것도 확실히 막아주며, 표정을 기묘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주는, 바짝 잘 깎이는 '국민 면도칼'이라는 거였다. '라 기요띤'에 입을 맞추고, 그 작은 구멍을 들여다 보고 자루 속에 재채기를 한(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람들 말이다. 그것은 인류가 갱생한다는 지표였다. 그것은 '십자가'의 지위를 빼앗았다. '십자가'를 내버린 가슴 위로 그것의 모형이 달렸고, '십자가'를 부정한 곳에서 사람들은 그것에 절하고 신봉했다."
- [두 도시 이야기], <3-4. 폭풍 속의 고요>, 찰스 디킨스, 1859.


미국 독립혁명 이데올로기를 기초한 근대 사상가 토머스 페인이 영국에 대항해 미국의 독립을 지원한 프랑스로 건너가 '자유, 평등, 우애(연대)'를 강조하면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철저히 옹호했을 때, 이미 한세기 전 '명예혁명'의 파고를 겪은 영국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완전한 인민 공화국을 건설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깎아내렸다.

[두 도시 이야기]의 '두 도시'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인데, 프랑스 대혁명 시기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오고가는 '이야기'다.
귀족 계급의 억압과 착취를 고발하다가 바스띠유 감옥에 10년 동안 갇힌 프랑스 의사 마네뜨 박사가 '되살아나서(Recalled to life)' 영국에서 건너온 딸 루시와 상봉하는 <1권>부터 영국으로 건너가서 프랑스 간첩으로 기소되었다가 살아난 프랑스 귀족 찰스 다네이(에브레몽드 후작 가문)와 루시 마네뜨의 영국에서의 결혼 및 프랑스 대혁명의 복수혈전을 그린 <2권>, 역시 루시 마네뜨를 사랑했던 영국의 방탕한 변호사 시드니 카턴의 희생으로 끝나는 <3권>의 긴 이야기를 통해 찰스 디킨스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인간성'에 관한 것이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1943)와 함께 전세계에서 2억 부 이상 팔렸다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1859)는 결국 '혁명'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간사의 그 어떤 파도와 폭풍, 그 어떤 혼돈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우정을 위해 바쳐지고 희생되며 그 진가를 발휘하는 도덕과 미덕의 '인간성'이 그 주제였다.

한편, 영국인으로서 찰스 디킨스가 그려내는 영원한 숙적이자 '적국'인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혁명은 '자유, 평등, 우애'보다는 '복수'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농노(소작인)들의 새신부의 정절은 물론 그들의 목숨까지도 무시로 빼앗고 착취하는 귀족 계급을 기어코 처단하면서 '애국시민'과 '공화국'을 배신하는 자들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목을 쳐대는 민중해방의 공간은 피의 '복수'로 점철된 '국민 이발소'로 비유된다.

그렇게 영국인 찰스 디킨스에게 '프랑스 대혁명'은 '기요띤(Guillotine:단두대)'으로 '상징'된다.
구태의 지배계급과 그 낡은 문명 일체의 모가지를 날려 버리는 '기요띤'은 만병통치약으로서 '국민 면도칼'로 불리면서 이 대혁명의 공간은 '국민 이발소'가 되는 것이다.

소설 말미에 시드니 카턴의 희생 덕분에 기요띤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한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 귀족 에브레몽드 후작 가문의 상속자였지만 귀족의 압제에 신물을 느끼고는 일체의 기득권을 버린 채 영국으로 망명한 자의 영국식 이름이다. 알렉상드르 마네뜨 박사의 딸 루시 마네뜨와 영국에서 결혼하고 정착하였지만 프랑스인으로서 인도적 의무를 위해 파리로 건너갔다가 에브레몽드 가문과 철천지 원수였던 애국시민 포도주상 드파르주 부부로부터 고발을 당해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과정과 그런 다네이를 구하기 위해 영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사람들이 함께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찰스 디킨스의 '추리소설'식 서술의 면모도 충분히 보여주면서 읽어나가기에 일종의 박진감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성'의 '도덕'과 '미덕'을 강조하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그려내는 프랑스 '대혁명'이란 '국민 면도칼'인 '기요띤(단두대)'으로 상징되는 '복수혈전'의 대혼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찰스 디킨스는 '십자가'로 상징되던 구시대의 폐허 위에, '혁명'의 새로운 '상징'으로서 '기요띤'을 세웠다.

물론, 이 소설이 그러거나 말거나 '프랑스 대혁명'이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 '자유, 평등, 우애(연대)'라는 이념, 인민주권에 기초한 공화정인 '국민국가'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3.

"상상력이 기록된 이래 상상되어 온, 탐식하며 만족을 모르는 그 괴물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실현되어 있다. '기요띤'. 그러나 풍요롭고 다양한 토양과 기후를 지닌 프랑스 어디에서도 이 공포를 낳은 것보다 더 확실한 조건 하에서 성장하는 풀잎, 나뭇잎, 뿌리, 가지, 열매는 하나도 없다. 비슷한 망치로 다시 한 번 더 '인간성'을 일그러뜨린다면, 그것 역시 똑같은 일그러진 모양으로 구부러질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탐욕스러운 방종과 억압을 다시 씨 뿌린다면, 그것은 분명 그 종류에 따라 똑같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 [두 도시 이야기], <3-15. 발소리 영영 사라지다>, 찰스 디킨스, 1859.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낡은 질서에 대한 피의 '복수'에 불과한 '기요띤'으로 상징되고 마는 '프랑스 대혁명'은 결국 공포정치 지도자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마저 '기요띤'의 희생자가 되면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티즘'에 의한 왕정복고로 되돌려졌다. 이 과정을 다 지켜봤을 1859년의 찰스 디킨스에게 역시 '혁명'의 '복수'는 무한하게 반복될 수 있는 '인간성'의 말살로 상징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시대를 불문하고 '혁명'은,
18세기든, 19세기나 20세기든,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찰스 디킨스가 바라본 '상징'과 바로 그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며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가 되는 '계급투쟁'의 현실이 존속하는 한, 
'혁명'은 피해갈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고,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이며,
'믿음과 불신',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계급투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1.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 Charles Dickens, 성은애 옮김, <창비>, 2014.
2. [소설가의 첫 문장], 김대웅 엮음, <북플라자>, 2024.
3. [모비 딕(Moby Dick)](1851), Herman Melville,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1.
4. [이방인(L'Etranger)](1942), Albert Camus, 박용철 옮김, <덕우출판사>, 1990.
5.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1848), Karl Marx/Friedrich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6. [Treasure Island], Robert Louis Stevenson, <Collins classics>, 2010.
7. [상식(Common Sense), 인권(Rights of Man)](18세기), Thomas Paine, 박홍규 옮김, <필맥>, 2004.
8.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1956), Jean Massin, 양희영 옮김, <교양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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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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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
- [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2021.


"평등과 정의를 향한 여정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투쟁의 과정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4장. 배상의 문제>, 토마 피케티, 2021.


세계적 역사학자로 부상한 '빅히스토리' 대가 유발 하라리의 최근 관점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하라리의 최근작 [넥서스](2024)를 찾아 읽어본 후, 나는 또 하나의 세계적 경제석학 토마 피케티의 최근 근황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이후 5년만에 [평등의 짧은 역사]라는 피케티의 책을 집어 들었다.

토마 피케티는 2013년에 [21세기 자본]을 통해 300년 서구 자본주의 역사에서 'r>g', 즉 자본의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빨리 증가한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21세기 자본], <결론>)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파헤쳤다. 이 [21세기 자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는 '평등'에 먼저 주목한 게 아니고 '불평등'의 정당화가 가능한지 질문을 던졌다. 당시의 나는 그런 피케티를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로 보지 않았다. '불평등'의 정당화를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공부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내가 보기에 미국식 '정의론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으로 얻은 세계적 명성을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좌파 경제학자들과 활발한 의견을 나눈 결과 더 이상은 '불평등의 정당화'가 아닌 '평등을 위한 투쟁'으로 관점을 전환한다. 
2019년의 저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는 본인의 사상을 알고자 한다면 이 책 한 권만 읽으라면서 본인 사상의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2019년에 '불평등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본격 파헤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식의 '자유주의'적 개혁으로부터 '사회주의'적 혁명으로 사상전환을 감행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후 3년 후인 2021년에 토마 피케티는 [평등의 짧은 역사]를 통해 '불평등'의 틀을 벗어나 '평등'의 나라로 완전히 들어선다. 그러는 한편, 역사적으로 대다수 민중의 집단행동과 반란으로 쟁취해 온 '평등'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주장한다. 

물론 결론은 이전 저작들과 동일하다. 
'사회적 국가'의 재부상과 강력한 '누진세' 확대, '민주적 사회주의 연방제'를 통한 '글로벌 자본세' 등으로 '현대화된 사회민주주의' 정책과 제도로 '불평등'을 없애면서 '평등'을 더욱 현실화시키자는 주장이다. 20세기 초에 세계전쟁을 겪으며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뤘던 강력한 누진세의 역사를 통해 부상한 '사회적 국가'의 재부상이다. 피케티는 이를 자본주의 역사상 1914~1980년대의 '대규모 재분배'([평등의 짧은 역사], <6장>)라고 명명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신식민주의 청산을 통한 모두에게 고르게 분배되는 '상속' 제도 등을 덧붙인다. 20세기 식민주의 해방은 가진 자들에 대한 대규모 배상을 통해 식민지 해방보다는 제국주의 부자들의 배를 더 불렸다는 역사를 돌이켜 보며, 포스트식민주의에서는 소수의 부자들이 아닌 다수 민중 모두에게 돌아가는 제대로 된 배상과 상속이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러한 정책과 제도 일체는 21세기에 맞게 현대화된 민주적, 분권적, 다문화적, 연방적 '사회적 국가'가 투명하고 합법적으로 시행하는 강력한 '누진세'와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가능한 것인데, 가진 자들에 대한 몰수에 가까운 '부유세'로 다수 민중이 '평등'하게 사회적 부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평등'을 향한 이 역사적 과정은 '다수 민중, 다수 시민들의 집단행동과 반란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피케티가 다시금 확인하는 역사의 교훈이다.

역시 대전제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란 개인적인 소유 개념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생산한 집단의 영역이라는 확고한 신념이다.
소유와 분배의 문제는 사회적 개념이다.


"... 소유와 그 분배의 문제... 소유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 개념... 소유의 집중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 번도 극단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전반적인 경향 속에서도 집중이 뚜렷하게 꺾이는 추세는 관찰된다... 평등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 계속되는 게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를 좀더 확대강화해야 할 것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2장. 서서히 일어난, 권력과 소유의 탈집중화>, 토마 피케티, 2021.


'평등'을 향한 여정은 '다수 민중의 집단행동과 반란투쟁'을 통해 여전히 진보해 왔고 앞으로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평등'의 길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평등의 짧은 역사]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저작을 통해 기존 [21세기 자본](2013)과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라는 매우 두꺼운 벽돌책들의 결론을 좀더 대중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라고 <감사의 말>에서 쓰고 있다.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참여적 사회주의' 제도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실현 가능한 경제시스템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확보한 역사적 경험들에 따르면, 이런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민중의 집단행동'이 필요하다."
- [평등의 짧은 역사], <5장. 혁명, 지위, 계급>, 토마 피케티, 2021.


여기에 전작들에 비해 다수 민중의 집단적 투쟁을 통한 '평등'의 쟁취 역사를 한층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분배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혁명적 제도로서 '민주적 사회주의'와 강력한 '누진세', 투명한 '글로벌 자본세'와 기후 대응 등의 대안을 광범위하고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만들어가자는 제안을 피케티는 반복하고 있다.

토마 피케티의 이 민주적 논의 제안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는 1970~1980년대 스웨덴의 강력한 사민주의 국가 시절 '평등'한 '사회주의' 이행체제 대안 중 하나였던 렌-마이드너의 좌파적 '임노동자 기금' 또는 우파적 응답으로서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 등의 재조명을 언급한 것 또한 반가운 일이다.
'평등'을 향한 여정에서 사적 소유의 사회적 소유로의 전환을 위한 가능한 대안 체제를 열어놓고 논의하자는 것이 피케티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 책에서 나는 민주적이고, 연방제적인, 분권화되고 참여적인, 환경적이고 다문화적인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 사회주의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의 확대, 기업내 권력분유, 포스트식민주의 배상, 차별철폐, 교육평등, 개인 탄소카드 도입, 점진적인 경제의 탈상품화, 고용보장, 모두를 위한 상속, 화폐적 불평등의 대폭축소, 그리고 마침내 금권의 영향에서 벗어난 선거와 미디어 시스템의 기반 위에서 작동하게 될 것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10장. 민주적,환경적,다문화적 사회주의를 향하여>, 토마 피케티, 2021.


'평등'을 위한 이 모든 '민주적 사회주의' 결론들은 다수 민중, 즉 시민들에 의해 광범위하고 민주적으로 재전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이후 토마 피케티가 주장하는 그의 사상적 목표다.

현재 토마 피케티의 사상적 궤적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자본과 이데올로기], <결론> / [평등의 짧은 역사], <감사의 말>, <10장>)가 바로 그 한 마디다.


"'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는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단계다. 이 책의 독자들에게 평등을 위한 투쟁의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어주었다면, 나는 목표를 다 이룬 셈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10장>, 토마 피케티, 2021.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과연,
현대식 [공산당선언]에 버금간다 할 수 있겠다.

***

1. [평등의 짧은 역사](2021), Thomas Piketty, 전미연 옮김, <그러나>, 2024.
2.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3.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4.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사회평론>, 2012.
5. [공산당선언(Communist Manifesto)](1848), 마르크스/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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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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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다
- [넥서스], 유발 하라리, 2024.


"역사는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변하며, 어떻게 변하는지 가르쳐 준다. 이 원리는 다른 모든 종류의 역사적 '변화'와 마찬가지로 정보혁명에도 적용된다."
- [넥서스], <프롤로그>, 유발 하라리, 2024.

2011년에 [사피엔스(Sapiens)]라는 책으로 인류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생태계 일반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빅 히스토리' 열풍을 일으킨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 1976~)는 2015년에는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친 인류가 궁극에는 '정보혁명'의 대표격인 AI 혁명으로 현대판 '길가메시' 영생을 길을 '사피엔스'답게 슬기롭고 지혜롭게 열어가면서 유한한 '인간(Homo)'이지만 또 하나의 새로운 '신(神:Deus)'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역사학자로서 [총,균,쇠](1997)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뒤를 이어 본격적인 '빅 히스토리' 대가가 되었지만, 갈수록 급격한 현대 과학기술혁명을 맞아 '미래예언서'로 전환되는 듯한 유발 하라리는 어느덧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모든 책은 결국 '역사책'이며 모든 지식은 궁극에는 '역사지식'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유발 하라리에 관해 알고 싶다면 [사피엔스] 한 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동성애 남편과 함께 교육과 스토리텔링 사회적 기업인 '사피엔스십(Sapienship)'을 창립하여 AI로 대표되는 현대 과학혁명의 중대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는 유발 하라리의 근황이 궁금하여 그의 최근작 [넥서스(Nexus)](2024)를 펼쳤다.


"이 책의 입장... 인간 병사들은 자신들의 유전코드와 상사의 명령을 따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독립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AI 알고리즘도 마찬가지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고리즘도 인간 개발자가 프로그래밍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인간 경영진이 예측하지 못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수많은 (비인격적) '새로운 주체들'이 세상에 등장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AI 혁명의 본질이다."
- [넥서스], <2-6. 새로운 구성원 : 컴퓨터는 인쇄술과 어떻게 다른가?>, 유발 하라리, 2024.

9년 전 [호모 데우스]의 결론은, 다소 진부하지만 19세기 근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의 연속으로서 21세기 현대의 '정보혁명'인 급진적인 AI 혁명 과정에서도 인류(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선택과 결정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역사), 또는 열어가야 한다(예언)는 것이었다.

2018년부터 구글과 페이스북, 유투브, 일론 머스크 같은 AI 관련 기업과 기업가 등을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집필하기 시작해 2024년 올해 발표한 유발 하라리의 책 [넥서스] 역시, '과학혁명'의 최신판인 AI 정보혁명 과정에서 '비유기(비인간)적인 새로운 주체로서의 컴퓨터 정보네트워크 환경 속 기존의 인식적 주체인 인류(사피엔스)의 현명한 선택과 결정을 믿는다는 이야기를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넥서스(nexus)'는 '연결고리'라는 뜻의 라틴어다.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는 [사피엔스]에서 고찰했던 언어의 발전으로 시작한 인류 최초의 '인지혁명', 즉 '이야기'를 통한 '인간 네트워크들'([넥서스], <1부>)을 역사적으로 서술하면서 시작한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역사는 마르크스주의가 규정하듯 경제와 물질 결정론이 아니다. 인간 관계(네트워크/넥서스)를 규정하고 변화시킨 것은 신화와 종교, 이데올로기 같은 '이야기'들이다. 인간은 경제적 이해관계나 권력투쟁 또는 계급투쟁 보다는 신화 또는 종교와 같은 이데올로기, 즉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전쟁도 일으켰고 함께 발전도 해 왔다는 주장이다. 

역사학자답게 인류 역사에서 '이야기'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여 문자와 인쇄술([넥서스], <1-3>), 이른바 '거룩한 책들'로 번역된 '무오류성'을 본질로 하는 [성경]같은 각종 경전들(같은책, <1-4>) 및 '이야기' 공유를 통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정치체제(<1-5>) 같은 '인간 네트워크들'을 돌아본 후, 이 책의 <2부. 비유기적 네트워크>에서는 컴퓨터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비인간적' 네트워크를 다룬다. 

컴퓨터와 AI는 처음에는 인간이라는 전통적인 인식의 주체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제되지만 '스스로' 발전하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비인간적' 또는 '비유기적' 주체로서 새롭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AI 혁명의 키워드는 '스스로'다.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AI는 인간처럼 '인식'의 주체일 수는 없으나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정보제공을 받아 빅데이터로 집적된 정보를 무한하게 조합하고 자발적인 '좋아요'와 '구독'의 참여 순위로 콘텐츠가 배치되고 노출되며 공개되는 자체 알고리즘 메커니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책임의 주체 또한 인간도, 기업도 아닌 컴퓨터 네트워크 자체가 된다.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는 인류의 '이야기' 역사를 유발 하라리는 '상호주관적' 네트워크라 부른다. '진실'이 아닐지라도 '진실' 이상으로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현상이다. 이러한 '인간적' 넥서스는 AI 혁명 과정에서 새로운 '비인간적' 주체의 등장과 함께 '상호컴퓨터적' 현실로 대체된다.

인류 역사에서 '상호주관적 이야기'의 힘을 훨씬 능가할 이 '상호컴퓨터 현실'은 강력하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실행할 힘은 강력한데 인류 역사 속 전통적 주체인 인간처럼 '자정 기능'은 없다. '지능'은 있지만 '인식'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 없는 '과학', 반성 없는 기술의 미래다. 
디스토피아다.


"인간 사이에서 협력의 전제 조건은 비슷함이 아니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화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를 단합하게 해줄 어떤 공통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를 지구를 지배하는 종으로 만들었다... 
... 나는 역사학자로서 '변화' 가능성을 믿는다. 역사의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우리가 자연스럽고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인간이 만들었으며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분쟁으로 소멸한다면 그것은 어떤 자연 법칙이나 낯선 기술이 아니라는 뜻... 우리가 노력할 경우(인간의 선택)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뜻... 모든 오래된 것은 한때 새로운 것이었다.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다."
- [넥서스], <3-11. 실리콘 장막 : 세계 제국인가, 세계 분열인가?>, 유발 하라리, 2024.

'자정 기능'은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의 주요 특징이다. 히틀러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 같은 현대 전체주의 정치체제는 모든 정보를 중앙에 집중하고 독점하는 본질적 특성상 AI라는 새로운 '비인간적' 주체에게 권력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정보를 독점한 1인 독재자가 AI의 꼭두각시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면 말 그대로 디스토피아가 된다. 그러므로 유발 하라리는 사회 '스스로' 분권화하고 견제하며 '자정 작용'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강조한다. AI 혁명이 계속되면서 전체주의의 유혹은 여전하거나 더욱 강화되겠지만 인류는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AI 디지털 신화 제작자와 디지털 관료들과의 대결 과정에서 정치체제는 여전히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간의 대립으로 반복되겠지만, 실은 21세기 AI 혁명 과정에서의 정치분열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분열"(같은책, <1-5>)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비인간적'이고 '상호컴퓨터적' 넥서스는 기존의 '인간적'이고 '상호주관적'인 '이야기' 넥서스보다 상상 이상으로 훨씬 강력하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의 정치투쟁보다 인간과 비인간의 주체간 투쟁이 더욱 위험하다.
20세기 '철의 장막'은 21세기에 '실리콘 장막'으로 세계질서의 전선이 구분된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현실이 된다.


"AI의 발명은 전신이나 인쇄기, 심지어는 문자의 발명보다 중대한 사건일 수 있다. AI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아이디어를 생성할 수 있는 최초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 네트워크가 막강해 질수록 네트워크의 '자정 장치'가 중요해 진다... 
... '자기 수정'을 통한 개선은 인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된 원리다. 그것은 자연의 기본 원리요, 유기체의 근본 바탕이다. 최초의 유기체는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는 천재나 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으며, 복잡한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출현했다."
- [넥서스], <에필로그>, 유발 하라리, 2024.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의 결론은 '사피엔스'가 AI라는 새로운 '비인간적' 주체에 의해 멸망한다 해도 우주의 역사나 지구의 '빅 히스토리'는 변함없이 흐르겠지만 그렇다고 허무주의로 빠지기 보다는 '인간의 선택'을 중시하자는 내용이다. 즉,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같은책, <에필로그>)에 따라 AI 혁명의 미래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 될 수 있다. 인류가 새로운 '비인간적' 주체인 '상호컴퓨터적' 넥서스를 스스로' 진화하도록 그냥 둔다면 디스토피아가 올 것이요, 새로운 주체의 창조자로서 인간의 민주주의적 '자정 기능'을 지키고 변화 및 발전시킨다면 '사피엔스'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역사학자다운 결론이다.
역사가 '정의'의 편이라는 믿음은 '정글의 법칙'처럼 신화에 불과하다(같은책, <에필로그>).
역사 속 모든 오래된 것들은 처음 한때는 새로운 것이었고(같은책, <3-11>),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역사'는 이러한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같은책, <프롤로그>).

AI도 마찬가지다. 
이 새로운 '비인간적' 주체도 '사피엔스'의 슬기롭고 지혜로운 결정이 어떠한가에 따라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만이 역사의 유일한 진리다.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다."
- [넥서스], <3-11>, 유발 하라리, 2024.

이것이,
[넥서스] 본론의 마지막 문장이다.

***

1. [넥서스(Nexus) : A Brief History of Information Networks from the Stone Age to AI](2024), Yuval Noah Harari, 김명주 옮김, <김영사>, 2024.
2. [사피엔스(Sapiens)](2011),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1.
3. [호모 데우스(Homo Deus)](2015),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문학과 사상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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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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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사는 건가, 파는 건가
-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2012.


'시간'에 대한 관념에서,
당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략 2년 전 아버지가 폐암 말기 선고 후 딱 1년만에 돌아가신 후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당시에는 잘 몰랐다. 작년에 아버지의 남은 형제인 백부와 숙부가 아버지를 따라가셨고, 올해 어머니가 당뇨쇼크로 오랜만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시고 뇌졸중으로 오래 누워계시던 장인이 돌아가시는 과정이 누적되면서 나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집 마당 지킴이였던 알래스칸 말래뮤트 에코마저 요단강을 건너갔다. 

일련의 '죽음'에 대한 관념이 3년 동안 나를 '시간'의 깊은 심연에 빠뜨렸다.

원래는 아버지 세대의 '죽음'과 그곳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어머니 세대, 하다못해 마당을 지키던 큰 개까지 가세하는 과정을 반추하면서, 마치 '죽음'의 필연적 종착점을 향해 직진하는 중세적 시간관으로부터 나는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몇 개월 더 나는 '시간'에게 잡혀 있었다. 

아니 사실 내가 '시간'을 붙잡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객체적으로는 '죽음'을 늘상 연상하는 83세의 노모가 내 곁에 계셨고, 주체적으로는 미욱한 솜씨라도 매주 글을 끄적여대야 내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나를 잡았고,
내가 '시간'을 잡았다.

이제 슬슬 '시간'을 조금씩 놓고 싶은 마음에 집어든 책이 김선영 작가의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2012)이었던 거다.


"우리가 맞이하는 시간이 늘 처음인 것처럼."

소설의 첫 문장이 아니고 마지막 문장이다.

반복하는 듯 아닌 듯 흘러가고 다가오는 '시간'에 관한 작가의 결론인 것이다.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시간을 파는 상점]은 '백제'라는 이름의 소방관 아버지를 일찍이 먼저 떠나보내고 환경시민단체 활동가인 어머니와 둘이 사는 '백온조'라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의 짧은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백제'의 딸 '온조'의 시간은 1학년부터 2학년 가을까지 약 1년을 두고 있으되 주인공의 삶에서는 결코 짧다고만 볼 수 없는 '시간'에 관한 장기적인 성장과정으로 볼 수 있다.

2020년대 들어 '편의점'이든 '골동품서점'이든 대유행하기 전이었던 2012년에 일찍이 '상점'을 제목으로 다룬 소설인데, 고등학생 백온조의 알바가 '시간을 파는 상점'의 정체다.
일종의 심부름센터 같은 '상점'을 인터넷 카페에 개설하고 의뢰인들의 '시간'을 대신해서 써주는 일을 익명 및 비밀보장의 조건으로 맡아서 처리해주는 거다.

학교에서 발생한 우연한 도난사건에서 장물을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첫 번째 의뢰건부터 시작하여 할아버지, 아버지와의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이어주기 위한 일, 죽은 보육교사의 생전 의뢰를 받아 남은 아이들에게 한 통씩 천상의 편지를 몰래 전달해주는 일, 정식의뢰는 아니지만 절친의 짝사랑을 연결해주는 일 등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시간'을 사색하고 통찰한다.

'사간을 파는 상점' 주인장 백온조의 익명은 '크로노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절대적 '시간'을 관장하는 거인족 타이탄이면서 제우스 형제자매들의 아버지다. 한편으로 '크로노스' 백온조가 느끼는 '시간'은 '카이로스'에 가깝기도 하다. 앞머리는 길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인, 앞에서 올 때는 잡아야 하고 또 잡기도 쉽지만,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대머리라 잡을 수 없는 '기회의 시간'이다. '카이로스'이기도 하고 영어 'occasion(기회)'의 어원인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이기도 하다. 또 다른 버전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제 때에 잡지 못하면 어떻게든 그 댓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다른 '기회' 또는 '시간'이 또 올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지나가 버린 그 '시간'과는 다르다.

그래서 [시간을 파는 상점]이 보는 모든 '시간'은 늘 '처음'이다.

객관적으로는 '나선형'으로 진보하는 근대적 시간관을 믿는 내가, 주관적으로 최근 3년 동안 '죽음'의 필연을 형해 '직선형'으로 흐르는 중세적 시간관에 빠진 것처럼,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 주인공 '크로노스'가 일련의 성장을 통해 '카이로스'의 시간관을 정립하는 과정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청소년의 성장소설이기에 다소 유보적이기도 하다.


"온조는 지금 맞이할 이 '순간'을 먼 미래의 어느 '시간'에 맡겨두려 한다. '시간'이라는 것이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다.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치 않는다면."
- [시간을 파는 상점], <미래의 시간에 맡겨두고 싶은 일>, 김선영, 2012.


중년인 나도 이제,
'시간'에 관해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둬야겠다.

타인의 '시간'을 돈을 받았으니 파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본인의 '시간'을 지불하면서 도리어 타인의 '시간'을 사는 것인지 모를 시간 상점 주인 백온조처럼, 
'크로노스'의 관장 아래 무시로 흘러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나를 잡고 있는지, 아니면 도리어 내가 잡으려 하는지를.

내 생각엔,
'크로노스'의 '나선형 시간'은 나를 잡고 있지만,
'카이로스'의 '직선형 시간'을 잡으려 하는 건 오히려 나인 것 같다.

그러니 굳이 이 '시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려 한다.

'크로노스'의 명령에 따라 지금 지나가버린 이 '카이로스'의 '시간'은 아쉽게도 뒤통수가 대머리라 잡을 수가 없겠지만, 또 다시 찾아올 다른 빛깔의 또 다른 '카이로스' 또는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의 그 '시간'은 그 앞머리를 잡아둬야겠다는.

내가 맞이하는 모든 '시간'은 항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시간'을 기꺼이 지불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귀하게 사야겠다.

나의 '시간'을 팔아,
소중한 이들의 '시간'을 사는 상점처럼.

***

-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자음과모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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