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형법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9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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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2
- [화형법정], 존 딕슨 카, 1937.


거의 모든 소설이 지니는 '반전',
그 중 '미스터리' 소설의 주요 특성으로서의 극적 '대반전'을 찾아 '존 딕슨 카'를 다시금 읽어본다.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6~1977)는 미국 출신으로 스물한살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당시부터 작가의 꿈을 안고 보헤미안적 삶을 살다가 1930년에 미국 뉴욕으로 돌아와 미스터리 작가로 데뷔했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영국에서 활동하며 주로 유럽 무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을 쓴 작가다.

추리소설의 계보에서 보면 존 딕슨 카는 '밀실트릭'(밀실살인)을 주로 다룬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로서, '마법'과 '오컬트' 등의 '신비주의'를 주제로 한 기묘한 미스터리 소설로 유명하다. 1930년부터 1972년까지 그는 약 60~70여 편의 장편을 썼다는데, 정작 '본격파' 추리소설은 10편 정도에 불과하다지만 대중에게는 마술적 '밀실트릭'으로 대표되는 '본격파' 추리소설 작가로 자리매김되었다([화형법정], 해설 <초자연적 퍼즐 게임의 매력> 참고).

'마술'적 요소와 '이단', '심령현상' 또는 '초자연적' 소재 등을 통해 현실에 있을 법 하지 않은 불가능한 '밀실트릭'을 실험한 딕슨 카의 여러 작품들이 있다. 
그는 [해골성](1931), [세 개의 관](1935) 등을 거쳐 1937년에는 [화형법정(The Burning Court)]으로 '밀실'과 '마술', 그리고 시공간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현상'의 끝까지 밀고 간다.

그렇게, 나는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인 존 딕슨 카의 소설 [화형법정](1937)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의 '대반전'을 기대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실망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같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마법'에 의한 살인이 극에 달했다... 루이 14세의 궁정 귀부인들은 '악마주의'를 예찬하여 특히 흑미사 때 태아를 희생으로 바치는 일이 성행했다. 이들의 비밀의식은 비밀방에서 거행되었다... 이 '악마주의' 예찬자들은... (추한) 노파들이 아니라, 침모에서 궁정의 귀부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미모의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남편과 아버지들이 살해되어 갔다.
이 '비밀결사'의 존재는 한 참회자의 말에 의해 파리 대사제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바스티유에서 가까운 병기고에 유명한 '화형법정'이 설치되었고, 피고들은 사지가 4대의 마차에 묶여 찢어지는 형벌이나 불에 타죽는 형벌을 받았다... '비밀결사'의 전모가 세계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1676년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의 재판에서였고..."
- [화형법정], <제3부 제16장>, '그리모의 [마술의 역사] 인용문', 존 딕슨 카, 1937.


존 딕슨 카의 [화형법정](1937)은 마일즈 데스파드 노인의 독살 의혹을 중심으로 처음 시작부터 17세기 유럽의 독살범 여인들의 이야기와 20세기 초반 현재를 사는 출판사 편집인 에드워드 스티븐스의 아내 '마리'의 외모적 흡사성 및 의문의 교차점을 상정하면서 수백년을 넘나드는 환상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이중적으로 배치한다.

'마녀'들로 유추되던 '독살자' 여인들은 사실 추한 외모와 천한 신분의 할머니가 아닌 고귀하고 아름다운 귀부인들이었고, 이들은 일종의 '비밀결사' 조직의 형태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인간'이 되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남거나 혹은 후계자를 통해 '독살'(주로 '비소'를 사용한)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내용이 이야기 내내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결혼전 이름이 '마리 도브리'였던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의 연쇄 독살사건과 그녀와 똑같이 닮은 외모와 이름을 가진, 에드워드의 스티븐스의 아내 '마리 스티븐스'를 교차시키며, 데스파드 노인이 결정적으로 독살당하던 날 그의 방에서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마술처럼 사라진 의문의 여인에 대한 증언을 통해 모든 정황이 '마리'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 그 17세기 살인마와 20세기의 데스파드(데프레) 집안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옛날의 '데프레 집안'에 그녀에게 희생된 자가 있기라도 한 건가?'
'아니야, 아닐세, 그런 게 아니라, 더 훌륭한, 법적으로 당당한 관계라고 할 수 있네. 데프레 집안 사람이 그녀를 체포했으니까.'
'그녀를 붙잡았다고?'
'그렇네.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은, 경찰이 혈안이 되어 자기를 추적하고 있는 파리에서 달아나 리에주의 수도원에 숨었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파견한 두뇌가 명석한 데프레는... 신부로 변장하여 조용히 수도원에 잠입한 뒤, 그녀를 만나 그 마음을 흔들고... 데프레가 휘파람을 불자 경찰관이 왔고... 그녀는 마차에 감금되어 기마경관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파리로 압송되었네. 그녀는 1676년에 목이 잘린 뒤 시체는 화형되었네.'"
- [화형법정], <제2부 제8장>, 존 딕슨 카, 1937.


여기에 '데스파드' 가문과 17세기 '회형법정'으로 사라진 대표적 독살자 브랑빌리에 후작부인(결혼전 본명 '마리 도브리')의 오래된 원한관계를 밝히며, 소설은 마일즈 데스파드 독살사건에서 마리 스티븐스(결혼전 이름이 역시 '마리 고브리'로 추정)가 살인자임을 독자로 하여금 더욱 짐작케 하고 있다.

단, 추리는 불가하다.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이긴 하나,
존 딕슨 카는 엘러리 퀸처럼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단서들을 알려주지 않는데,
다른 작품들보다 [화형법정]은 더더욱 독자에게 불친절한 편이다.

아내 루시가 독살범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몰래 납골당에 잠입해 부검을 하려던 피살자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이자 상속자 중 하나인 마크 데스파드가 에드워드 스티븐스를 비롯한 친구들과 하인의 도움을 받아 함께 관을 열었을 때 사라진 시체는 '밀실트릭'의 요소가 적용된 사례다.
필라델피아 경찰청의 블레넌 경위가 등장하면서 '독살자 마리'에 대한 의혹은 헷갈리기도 하면서 짙어지기도 하는 혼란의 상황으로 전개되는데 마치 '본격파'와 대비되는 '현실파' 추리소설의 형사들처럼 전개되는 듯 하다가도, 의혹의 와중에 갑자기 사라졌던 '마리'(스티븐스)가 찾아가서 불러온 범죄연구가 고던 클로스가 등장하면서 소설 [화형법정]의 '반전'은 시작된다.

고던 클로스가 등장하는 <제4부 요약>의 '제18장'.
이때부터 마일즈 데스파드의 독살사건은 극적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출판사 편집인 에드워드 스티븐스가 교정을 보기위해 소설 시작부터 가지고 다니던 '마리 고브리' 사진이 담긴 독살사건 원고의 저자 고던 클로스는 마치 이 소설의 탐정과도 같이 데스파드 집안 독살사건의 경위와 마술적 현상의 진상을 밝히면서 일사천리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고던 클로스는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 마크와 피살자인 마일즈의 살아생전 간호사로 위장한 마크의 전 애인 코베트를 범인으로 시원하게 지목한 것이다.


"... 하지만 역시 그녀(코베트)가 사형을 당하지 않게 된 건 유감이야. 내(마리 스티븐스) 험담을 그렇게 해댄 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한데, 그날 내가 (피살자) 마일즈에게 먹이고 있는 약에 대해 물은 건 실수였어. 오랫동안 그런 걸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 그녀가 진짜 범인이 아니었던 것도 가엾지만, 우리(독살자 '비밀결사?')의 동료가 되려면 유죄가 아니면 안 되니까 하는 수 없는 일이야. 우린 지금 동료를 좀더 많이 늘려야 하거든."
- [화형법정], <제5부 '에필로그'>, 존 딕슨 카, 1937.


[화형법정]은 이렇게 마치 탐정 역할을 하는 듯 하던 범죄연구가 고던 클로스를 통해 '반전'을 한 번 시전하더니,
바로 마지막 <제5부 평결>의 '에필로그'에서 다시금 결말을 뒤엎는 '대반전'을 한 번 더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독살자 범인은 '마리'가 맞았으며, 도망친 마크는 몰라도 코베트는 누명을 쓴 것이라는 결말이다. 아마도 마크는 마리에게 홀려 공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다. 소설 전반 내내 주요한 역할을 하던 마크 데스파드(피살자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는 피살자의 방에서 사라진 검은 옷을 입은 의문의 여인처럼 어디론가 사라진 '신비주의'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 소설 후반부에 '갑툭튀' 하면서 그 동안 독자들이 몰랐던 사실들을 마구 공개하고 거들먹거리며 탐정 역할을 하던 범죄연구가이자 미스터리 작가인 고던  클로스는 사건을 해결하던 현장인 <제4부 요약>의 '제21장'에서 사건을 완전히 '해결'했다며 누군가로부터 받은 술잔으로 건배를 했다가 독살을 강하고 마는데, 고던 클로스는 17세기 브랑빌리에 후작부인(마리 고브리)에게 '독살법'을 알려준 애인 고던 생 클루아에였다는 암시가 깔린다. 그렇다면 그 독잔은 누명을 쓴 간호사 코베트가 아니라 진범인 '마리'가 준 것일까.

역시, 추리의 단서는 없다.

'초자연'적이고 '마술'적인 온갖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을 총망라하여 얽혀진 시공간의 교차 속에 엮으려다 보니, 다소 복잡한 플롯이다.

[화형법정]의 마지막장인 <에필로그>에서는 시종일관 독살범으로 의심받던 마리 스티븐스(에드워드 스티븐스의 부인)의 독백으로 자신이 진범임을 밝히며 수백년 간 이어져온 독살범 여인들의 '비밀결사'가 실재함을 암시한다.
어쩌면 오래 전 브랑빌리에 후작부인(마리 고브리 또는 스티븐스)의 애인이었던 고던 생 클루아에(고던 클로스)를 소환하여 진범인 마리가 아니라 다른 인물에게 누명을 씌우도록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녀들은 중근세 유럽의 '화형법정'에서 고문을 당하고 목이나 사지가 잘린 후 화형을 당했지만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녀들은 지금도 어딘가애서 남편들과 애인들을 끊임없이 독살하고 있는 것이다.

'마술'과 '초자연'적 요소, 비현실적인 '밀실트릭'의 끝을 보여주려는 듯 야심차게 밀어붙인 존 딕슨 카의 기묘한 미스터리 소설의 '대반전'은 그럼에도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다소 실망을 남겼다.
복잡하지만 늘어놓은 요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한 독후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번주 토요일에도 마을도서관 책장의 '미스터리' 숲을 서성인다.

이대로 '존 딕슨 카'를 아쉽게 기억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깔끔한 '반전'을 다시금 기대하며,
이 '미스터리'의 오솔길을 떠나지 못하고 그의 [모자수집광사건(The Mad Hatter Mystery)](1933)을 대출대 위에 올려놓고 만다.

비현실적이기는 해도,
'밀실살인'의 대가 '존 딕슨 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 [화형법정(The Burning Court)](1937), John Dickson Carr, 오정환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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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독초콜릿 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75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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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1
- [독초콜릿 사건],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그냥 흘러가는 대로의 서사는 이야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작품으로 남을 수는 없다. 
그러니 대부분의 소설은 '반전'을 동반한다. 
그리고 소설 중 다른 작품들보다 더 '반전'이 필수적인 분야는 '미스터리' 소설일 게다.

어쩌면, 역으로 '반전'이 극적일 때, 
그 소설은 일종의 '미스터리'가 된다.


"나(로저 셀링검)는 당신들(런던 경시청)의 수사활동을 비웃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훌륭한 수사활동에 의해 거의 해결단계에 이르러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행운(우연)'- 운도 실력에 포함되지만, 운은 역시 운이지요-의 힘으로 비로소 완전히 해결해 낸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나는 그 예를 몇십 가지나 들 수 있습니다... 
.... '복수'는 언제나 '우연'이나 '신의 섭리'가 아닐까요?"
- [독초콜릿 사건], <제4장>,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에드거 앨런 포의 오거스트 뒤팽이나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퀼 포와로 같은 탐정들이 '귀납적'으로 사실관계를 추적하고 조립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을 지나, 
S.S.반다인의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 같은 20세기 초 신인탐정들의 '연역적' 추리기법을 거치면서, 
추리소설은 사실적이고 '리얼리즘'에 기초한 '현실파' 추리소설에서 오로지 추리소설을 위한 소설의 상황만을 가정하는 '본격파' 추리소설로 이행되거나, 
혹은 '현실파'와 '본격파'로 양분된다.

'본격파' 추리소설은 '밀실트릭'과 같은 가상의 상황을 전제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는데, 범인은 항상 등장인물 안에서만 존재하게 되는 '한정형' 살인사건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많은 사건들은 어느 누구나 용의자가 될 있는 '개방형' 사건으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현실의 형사나 탐정들이 맡게 되는 사건의 처음은 '개방형'에서 차츰 용의자들을 좁혀나가며 '한정형' 서사로 구축되어야 해결이 되는 것일게다. 

이렇게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의 한계를 탈피하고 넘어서고자 노력한 흔적은 이른바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형식으로도 나타난다. 20세기 초 잠시 등장했던 이 '도서 추리소설'은 천재탐정 1인극으로 흘러가는 기존의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을 비판하면서 아예 범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마지막에 형사나 탐정으로 하여금 그 주관적 '완전범죄'의 헛점을 캐고 사건의 전말을 '역으로 서술(倒敍;inverted)'하여 밝혀내는 추리소설의 이례적 방식이었다. 

앤서니 버클리 콕스(Anthony Berkeley Cox;1893~1971)는 '도서 추리소설' 3대 고전의 첫번째 작품인 [살의](1931)를 쓴 프랜시스 아일즈(Francis Iles)의 본명이다. 평소 작가 본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던 콕스는 본인이 아일즈였다고 시인한 적도 없었다지만 모두들 두 작가가 동일인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동 시대에 청년탐정 엘러리 퀸으로 유명한 작가 '엘러리 퀸'이 '바너비 로스'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드루리 레인이라는 노년 탐정이 활약하는 작품을 낸 것과 비슷하게 보면 되겠는데, 엘러리 퀸은 한 발 더 나아가 두 작가가 동일인들임을 숨기고는 대놓고 둘을 비교하고 대결시키기까지 했단다. 

밀실트릭'의 대가 '존 딕슨 카' 또한 '카터 딕슨'이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콕스는 아일즈와 동일작가 여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었다는 거다.

아무튼, 미국의 S.S.반다인과 엘러리 퀸이 '연역소거 추리법'으로 전통적인 추리소설 서술방식에 변화를 꾀하던 20세기 초 동시대에, 미국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딕슨 카와 같은 '밀실트릭' 대가들은 오로지 추리소설에서만 존재할 법한 상황을 가정하는 '본격파' 추리소설의 길을 닦았고, 한편으로 영국의 프리먼 크로프츠 같은 작가는 더욱더 사실적인 '현실파' 추리소설을 추구하기도 했다.

프랜시스 아일즈가 [살의](1931)를 통해 '도서 추리소설'로 새롭게 시도하기 전, 1929년에 앤서니 버클리 콕스라는 본명으로 발표한 [독초콜릿 사건(The Poisoned Chocolates Case)]은 '본격파'와 달리 좀더 사실적인 '현실파' 추리소설의 시도를 했던 작품 중 하나로 읽힌다.

[독초콜릿 사건](1929)에는 과연 등장인물 중 누가 범인일지 갈피를 잡기 힘든 '개방형' 사건과도 같이 출발한다. 피살자인 벤딕스 부인 조안, 그리고 살인자를 쫓는 모리스비 경감과 범죄연구회원들 외에 용의자는 세 명(유스티스, 폴링, 벤딕스) 뿐이다. 
그러나 결국, 범인은 이들 모두 중 한 명인 '한정형' 사건의 대반전로 끝난다.

소설은 런던 경사청이 포기한, 독이 든 초콜릿으로 인해 귀부인이 살해된 미제사건을 로저 셸링검이라는 소설가가 조직한 6인의 '범죄연구회' 회원 여섯명이 돌아가며 각자의 추리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이들의 추리는 귀납적이기도 하고 순전히 연역적일 경우도 있으며 귀납과 연역의 혼합양상으로 여섯명의 회원이 각자의 결론을 도출하는데, 마지막 가장 지명도가 낮은 회원인 앰블러즈 치터윅이 사회적으로 저명한 다른 다섯명의 회원들의 추리를 종합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은 소거하면서 범인을 지목하고 최초 '개방형' 사건과도 같던 사건을 이야기에 맞게 '한정형' 사건으로 되돌린다. 


"그래요, 이 (독초콜릿) 살인은 결국 동료 사이에서 비밀리에 행해진 작은 사건이지요. 이른바 '한정형' 살인이에요. 블래드리 씨,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좀 비약한 것 같군요. 내 추론을 세우기 전에 우선 (로저) 셸링검 씨의 추리를 완전히 뒤엎어야 하지요."
- [독초콜릿 사건], <제15장>,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위의 말은 다섯번째로 추리발표를 맡은 여류작가의 말인데, 마지막 주자 치터윅은 결국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 대단한 '반전'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주 천천히 (앰블러즈) 치터윅의 의견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앨리시어 더머즈와 같을 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더욱이 미묘한 심리적 추론이니 '가치' 따위를 들먹이지 않고서였다. 다만 앨리시어 더머즈만은 회의에 찬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찰스 경이 엄숙하게 물었다.
'동기는 무엇입니까, 치터윅 씨? 질투라고 하셨지요? 아직 그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는데, 그렇잖습니까?'
치터윅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야 물론 뚜렷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처음에 그것을 분명히 밝혀둘 생각이었는데, 역시 이야기 솜씨가 서툴렀군요. 아니, 어쩌면 질투라기보다 복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릅니다. 유스티스 경에게는 복수가 될 테고, 벤딕스 부인에 대해서는 질투가 되겠지요. 내가 아는 한 그녀는...'"
- [독초콜릿 사건], <제18장>,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독초콜릿 사건](1929)에는 더 이상 '천재탐정'이 없다. 런던 경시청의 유능한 모리스비 주임경감은 사건해결에 실패했고, 범죄연구회장 셸링검 또한 논리적 추리보다는 '우연'이나 '행운'적 요소를 강조하기도 하다가 범인에 관해 완전히 헛다리 짚기도 하며, 오히려 최후에 실제 살인자로 지목되는 질투의 여인 앨리시어 더머즈에 의해 처절하게 반박된다. 

마지막 발표자 치터윅은 변호사나 작가와 같이 저명한 다른 다섯 회원에 비해 사회적으로 특별한 지위도 없지만, 다른 회원들의 추리와 실패를 토대로 '질투'와 '복수'를 살인동기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범인으로 엘리시어 더머즈를 지목한다.


"'이제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말할 차례입니다, 치터윅 씨.'
치터윅은 마주보며 웃고는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다섯 사람의 목소리가 입을 모아 외쳤다.
'그래요!'
치터윅은 조용히 말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르쳐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발표하게 된 덕에 나의 작업은 꽤 간단히 끝났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의견이 옳은지 그른지 가려내기만 하면 되었거든요. 그리하여... 그렇습니다, 나는 확실히 진상을 파악했습니다.'"
- [독초콜릿 사건], <제17장>,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이처럼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독초콜릿 사건](1929)은 전혀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천재도 아닌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추리를 통해 어쩌면 운 좋게도 범인을 지목하게 되는 '리얼리즘'적 '현실파' 추리소설의 '반전'을 보여준다.

역시,
'미스터리소설' 또는 '추리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언제나, 
극적인 '반전'으로 결말지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파' 추리소설에서는 또 어떤 '반전'이 일어나는가 다시 또 읽어봐야겠다.

다음 책은,
존 딕슨 카의 대표작, 
[화형법정](1937)이다.

***

- [독초콜릿 사건](1929), Anthony Berkeley Cox, 손정원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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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살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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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의 3대 고전(古典)'
- [살의]/[크로이든발 12시30분]/[백모 살인사건], 1931~1935.


이른바 '고전(古典)'을 읽고 소개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주간 문사철(文史哲)'을 브런치와 블로그 등에 연재하는 내가 요 몇 주를 하염없이 '추리소설'들만 붙잡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 나를 책으로 인도한 쟝르가 '추리소설'이기는 했지만, 2~30대를 지나 40대 초반까지의 나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고, 그 당시의 내가 꼽은 '고전(古典)'이란 문사철(文史哲)' 중 거의 '역사와 철학(史哲)' 분야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브런치를 통해 본격 '서평가'를 자임하면서 주로 읽은 책은 '역사(史)'로 수렴되었다. 
지금의 내게 모든 책은 '역사책'이다. 미술도 음식도 전쟁도 모두 내겐 '역사'다. 
그러므로 내가 읽는 모든 '고전'은 '역사책'이다.

2026년 3월부터 마을 뒷산인 초안산 종주산책을 했고, 그 길의 끝으로 이어지는 도봉문화정보센터 마을도서관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을 발견했으며, 6월이 다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 '미스터리소설' 또는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내게 '추리소설' 또한 '역사책'이고 '고전'이다.

그 과정에서 최근에 도착한 지점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이다.


"줄리아(비클리의 부인)가 죽은 다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비클리 박사 자신이 가장 뚜렷이 인정했다. 단 하나의 행동(살인)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처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존재'를 주장했을 뿐이다. 이번만큼은 그의 생각을 밀고 나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능력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도저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했더라?... 아아, 그렇지, '자기 정신의 지배자' - 바로 이것이다. '자기 정신의 자배자'였다."
- [살의], <제9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수수께끼 또는 퀴즈를 풀듯이 범인을 추적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성을 벗어나,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완전범죄'의 심리를 풀어내는 서술과 마지막에 그 범행을 역으로 뒤집어 추적하여(倒) 사건의 전모를 밝혀 서술하는(敍)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3대 고전은 영국 소설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로부터 시작된다.

프랜시스 아일즈(Francis Iles;1893~1971)는 본명 앤서니 버클리 콕스(Anthony Berkeley Cox)라는 영국 추리소설가가 쓴 필명으로, 본명으로도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팔명인 '아일즈'의 이름으로 낸 첫 작품이 [살의]다. 

소설은 영국 어느 시골 의사 비클리가 오랫동안 본인을 무시하고 머슴처럼 부리던 여덟 살 연상의 귀족 가문 출신의 아내 줄리아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속의 공포심리를 묘사하는 이야기다. 살인자 본인의 이야기이므로 살인행위를 자기 '존재' 또는 '정체성' 확인 과정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며 결코 발각되지 않을 '완전범죄'로 혼자 철저히 합리화한다. 그러나 실은 중요한 단서들이 여기저기 새어나가고 런던 경시청의 러셀 경감에게 그 범죄의 '불완전성'이 추적되고 발각된다는 내용이다.


"상류 사립중학교 출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비클리 박사) 자신은 사립중학 출신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옥스퍼드며 케임브릿지를 나온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만, 그는 옥스퍼드 출신도, 케임브릿지 출신도 아니었다. 자기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개업의)에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3대째 걸친 '신사(gentlemen)' 계급의 조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가 '신사'라고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은 자기 때부터였다. 친구, 아는 사람, 또는 누추한 집에 살고 있는 환자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는 어느 누구와 결혼한다 할지라도 그는 사회적으로 한갓 보잘 것 없는 사나이였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물어볼 때면 언제나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였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는 아니었다. 그것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었다."
- [살의], <제2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아일즈의 [살의]에서 비클리가 아내를 죽이게 된 직접적 동기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으로 나오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의사가 된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주인공이 귀족 가문의 여인과 혼인하면서 '신분상승'은 이루었음에도 일상적으로 무시당하고 사는 20세기 초 몰락해 가는 신분체계의 모순이 잠재되어 있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1839)의 내용도 기울어가는 기존 신분체계의 몰락을 대저택의 물리적 붕괴로 상징해내고 있는데,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또한 그러한 시대정신의 연장선 상에 있다.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가 특이한 점은 '완전범죄'로 자기합리화하는 살인자 주인공이 그의 '악행(malice)'을 집요하고 은근하게 추적하는 민완형사와 검사장에 의해 기소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는 반전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어이없는 '증거'로 인해 2차 범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일사천리로 사형당하는 대반전으로 마무리되는 황당한 결말에 있다.

마지막 극적인 반전은 아내를 살해한 1차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계획한 2차 집단 세균살인 계획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악인에 대한 응당한 단죄라는 점에서 정당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와 같은 '도서 추리소설'의 전개과정과 서술방식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으로 이어진다. 크로프츠의 이 소설은 '도서 추리소설' 3대 고전 중 두번째 작품이다.

크로프츠의 작품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이전의 서평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고전은 첫번째 작품인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를 읽고는 이를 대놓고 따라 써보고자 한 역시 영국 작가 리처드 헐(Richard Hull;1896~1973)의 [백모 살인사건](1935)이다.


"정말로 나(에드워드)의 마음이 결정된 것은 그보다 조금 전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마도 그 순간(개싸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이전이었다면 결심을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로서는 되돌리지 못할 만큼 마음이 굳어 버렸다.
자동차를 심하게 몰아댐으로써 나를 모욕했던 다리 부근으로, 나를 비웃으며 서 있던 관목 언저리로, 큰어머니('백모')를 떨어뜨릴 결심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큰어머니가 상식에 벗어나리만큼 우상화하여 사랑하는 웨일스의 끝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는 것도 어쩌면 한 구실을 할테지.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문제에 이르면 그리 쉽지 않다. 이미 설명했듯이 혐의가 ('백모'의 유일한 상속자인) 나에게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백모 살인사건], <브레이크와 비스킷>, 리처드 헐, 1935.


본명이 리처드 헨리 샘프슨(Richard Henry Sampson;1896~1973)인 리처드 헐(Richard Hull)의 본업은 회계사였는데 '도서 추리소설'의 세번째 걸작이라 불리는 [백모 살인사건](1935)이 데뷔작이다. 이후 1939년부터 영국 해군성 경리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20여 편의 장편을 더 썼다고 한다.

그런데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이 '도서 추리소설'의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지만, 이 작품의 '오마주'와 같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에 비하면 좀 특이하게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 
어찌보면 '추리소설' 같지 않기도 하고, 마치 약 16년 후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1951)을 쓴 미국 소설가 J.D.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19~2010)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오히려 '오마주'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다소 익살스럽다. 

[살의]의 주인공 비클리나 [크로이든발 12시30분]의 찰스는 '완전범죄' 살인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지한 공포심리에 시종 휩싸이지만, [백모 살인사건]의 어설픈 살인미수자 에드워드는 그냥 얼빠진 청년으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정신나간 화자 홀든 콜필드의 멍청이 삼촌 뻘 되는 듯 하다.

여기에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 같은 게 있는데,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주인공의 주관적 '완전범죄'가 형사나 백모 등의 타인에 의해 객관적 '불완전범죄'로 드러나는 말미의 과정과 반전이 그것이다.

[살의]에서는 '불완전범죄'지만 법정에서 중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자마자 살인자 비클리가 곧바로 다시 의도치 않았던 누명을 쓰고 교수대로 가게 되는 대반전이 있다. 그것도 마지막 <에필로그> 두 페이지로 급반전을 보여준다. [크로이든발 12시30분] 또한 비슷한 플롯이다. 형사에 의해 소설 말미에 되짚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완전범죄'라고 자부하던 살인자 주인공의 응징이 '도서 추리소설'의 '고전'적 전개과정인 것이다.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 또한 플롯은 비슷하다. 단지 리처드 헐의 방식대로 1인칭 화자가 등장하면서, 얼빠진 백수청년 에드워드가 자신을 속박하는 큰어머니(백모)를 어처구니 없이 죽이려고 세 차례나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기록한 비밀일기가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설픈 살해 위기에서 당연하게도 살아남게 되는 백모의 관점에서 쓴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에드워드의 무모한 계획의 실체가 되짚어 드러난다. 멍청이 에드워드의 일기에서는 '완전범죄'로 포장되지만, 어이없이 큰어머니의 손에까지 들어간 일기에 반박하는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불완전범죄'로 전모가 역으로 되짚어('도서;倒敍;inverted')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귀족' 가문은 아닌 듯 하나 웨일즈 시골의 '지역 유지' 정도 되는 듯한 파우엘 집안의 현대적 타락 또는 몰락을 멍청이 청년 에드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문학'을 사랑한다지만 제도화된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실근면한 노동도 거부하는 한 젊은이를 통해 무너져가는 구체제에 대한 비판적 묘사를 역시 수행하고 있다.


"남은 일은 이 (큰어머니의) '수기'에 제목을 붙이는 일 뿐입니다만, 내가 선택한 제목에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The Murder of My Aunt(백모의 살인)', '소유격(of)'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큰어머니가 저지른 살인, 또는 큰어머니의 살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백모 살인사건], <큰어머니의 수기>, 리처드 헐, 1935.


[백모 살인사건]의 결말 또한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대로 대반전이다. 
정신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친의 피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제정신이라 볼 수 없는 에드워드가 세번째 백모 독살계획이 이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던 큰어머니에 의해 현장에서 발각되면서 차를 몰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가 백모 살해의 첫번째 계획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게 되는 반전이다. 에드워드가 첫번째 살인계획에서 백모 자동차의 브레이크 철사를 끊은 방식 그대로 백모가 그의 자동차에 조치를 미리 해둔 것으로 어찌보면 백모의 복수가 되겠다.

그러므로 살인사건의 전모는 소설의 제목이자 백모의 수기 제목인 'The Murder of My Aunt(백모 살인사건)'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즉, 큰어머니(백모) 스스로 본인의 '수기'에 썼듯, '백모가 저지른 살인 또는 백모의(소유격 of) 살인'인 것이다.

어쨌든,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읽는 내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이 떠올랐다. 전자의 에드워드가 죽는 결말과 후자의 콜필드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결말은 이들의 캐릭터 자체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필연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는 아일즈의 [살의](1931)를 '오마주'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의 '패러디'가 아니었을까.

***

1. [살의(殺意;Malice Aforethought)](1931), <제2장>, Francis Iles, 유영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백모 살인사건(The Murder of My Aunt)](1935), Richard Hull, 백길선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4.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 Jerome David Salinger,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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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모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70
리처드 헐 지음, 백길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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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의 3대 고전(古典)'
- [살의]/[크로이든발 12시30분]/[백모 살인사건], 1931~1935.


이른바 '고전(古典)'을 읽고 소개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주간 문사철(文史哲)'을 브런치와 블로그 등에 연재하는 내가 요 몇 주를 하염없이 '추리소설'들만 붙잡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 나를 책으로 인도한 쟝르가 '추리소설'이기는 했지만, 2~30대를 지나 40대 초반까지의 나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고, 그 당시의 내가 꼽은 '고전(古典)'이란 문사철(文史哲)' 중 거의 '역사와 철학(史哲)' 분야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브런치를 통해 본격 '서평가'를 자임하면서 주로 읽은 책은 '역사(史)'로 수렴되었다. 
지금의 내게 모든 책은 '역사책'이다. 미술도 음식도 전쟁도 모두 내겐 '역사'다. 
그러므로 내가 읽는 모든 '고전'은 '역사책'이다.

2026년 3월부터 마을 뒷산인 초안산 종주산책을 했고, 그 길의 끝으로 이어지는 도봉문화정보센터 마을도서관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을 발견했으며, 6월이 다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 '미스터리소설' 또는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내게 '추리소설' 또한 '역사책'이고 '고전'이다.

그 과정에서 최근에 도착한 지점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이다.


"줄리아(비클리의 부인)가 죽은 다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비클리 박사 자신이 가장 뚜렷이 인정했다. 단 하나의 행동(살인)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처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존재'를 주장했을 뿐이다. 이번만큼은 그의 생각을 밀고 나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능력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도저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했더라?... 아아, 그렇지, '자기 정신의 지배자' - 바로 이것이다. '자기 정신의 자배자'였다."
- [살의], <제9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수수께끼 또는 퀴즈를 풀듯이 범인을 추적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성을 벗어나,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완전범죄'의 심리를 풀어내는 서술과 마지막에 그 범행을 역으로 뒤집어 추적하여(倒) 사건의 전모를 밝혀 서술하는(敍)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3대 고전은 영국 소설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로부터 시작된다.

프랜시스 아일즈(Francis Iles;1893~1971)는 본명 앤서니 버클리 콕스(Anthony Berkeley Cox)라는 영국 추리소설가가 쓴 필명으로, 본명으로도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팔명인 '아일즈'의 이름으로 낸 첫 작품이 [살의]다. 

소설은 영국 어느 시골 의사 비클리가 오랫동안 본인을 무시하고 머슴처럼 부리던 여덟 살 연상의 귀족 가문 출신의 아내 줄리아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속의 공포심리를 묘사하는 이야기다. 살인자 본인의 이야기이므로 살인행위를 자기 '존재' 또는 '정체성' 확인 과정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며 결코 발각되지 않을 '완전범죄'로 혼자 철저히 합리화한다. 그러나 실은 중요한 단서들이 여기저기 새어나가고 런던 경시청의 러셀 경감에게 그 범죄의 '불완전성'이 추적되고 발각된다는 내용이다.


"상류 사립중학교 출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비클리 박사) 자신은 사립중학 출신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옥스퍼드며 케임브릿지를 나온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만, 그는 옥스퍼드 출신도, 케임브릿지 출신도 아니었다. 자기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개업의)에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3대째 걸친 '신사(gentlemen)' 계급의 조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가 '신사'라고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은 자기 때부터였다. 친구, 아는 사람, 또는 누추한 집에 살고 있는 환자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는 어느 누구와 결혼한다 할지라도 그는 사회적으로 한갓 보잘 것 없는 사나이였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물어볼 때면 언제나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였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는 아니었다. 그것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었다."
- [살의], <제2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아일즈의 [살의]에서 비클리가 아내를 죽이게 된 직접적 동기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으로 나오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의사가 된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주인공이 귀족 가문의 여인과 혼인하면서 '신분상승'은 이루었음에도 일상적으로 무시당하고 사는 20세기 초 몰락해 가는 신분체계의 모순이 잠재되어 있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1839)의 내용도 기울어가는 기존 신분체계의 몰락을 대저택의 물리적 붕괴로 상징해내고 있는데,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또한 그러한 시대정신의 연장선 상에 있다.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가 특이한 점은 '완전범죄'로 자기합리화하는 살인자 주인공이 그의 '악행(malice)'을 집요하고 은근하게 추적하는 민완형사와 검사장에 의해 기소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는 반전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어이없는 '증거'로 인해 2차 범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일사천리로 사형당하는 대반전으로 마무리되는 황당한 결말에 있다.

마지막 극적인 반전은 아내를 살해한 1차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계획한 2차 집단 세균살인 계획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악인에 대한 응당한 단죄라는 점에서 정당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와 같은 '도서 추리소설'의 전개과정과 서술방식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으로 이어진다. 크로프츠의 이 소설은 '도서 추리소설' 3대 고전 중 두번째 작품이다.

크로프츠의 작품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이전의 서평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고전은 첫번째 작품인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를 읽고는 이를 대놓고 따라 써보고자 한 역시 영국 작가 리처드 헐(Richard Hull;1896~1973)의 [백모 살인사건](1935)이다.


"정말로 나(에드워드)의 마음이 결정된 것은 그보다 조금 전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마도 그 순간(개싸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이전이었다면 결심을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로서는 되돌리지 못할 만큼 마음이 굳어 버렸다.
자동차를 심하게 몰아댐으로써 나를 모욕했던 다리 부근으로, 나를 비웃으며 서 있던 관목 언저리로, 큰어머니('백모')를 떨어뜨릴 결심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큰어머니가 상식에 벗어나리만큼 우상화하여 사랑하는 웨일스의 끝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는 것도 어쩌면 한 구실을 할테지.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문제에 이르면 그리 쉽지 않다. 이미 설명했듯이 혐의가 ('백모'의 유일한 상속자인) 나에게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백모 살인사건], <브레이크와 비스킷>, 리처드 헐, 1935.


본명이 리처드 헨리 샘프슨(Richard Henry Sampson;1896~1973)인 리처드 헐(Richard Hull)의 본업은 회계사였는데 '도서 추리소설'의 세번째 걸작이라 불리는 [백모 살인사건](1935)이 데뷔작이다. 이후 1939년부터 영국 해군성 경리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20여 편의 장편을 더 썼다고 한다.

그런데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이 '도서 추리소설'의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지만, 이 작품의 '오마주'와 같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에 비하면 좀 특이하게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 
어찌보면 '추리소설' 같지 않기도 하고, 마치 약 16년 후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1951)을 쓴 미국 소설가 J.D.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19~2010)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오히려 '오마주'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다소 익살스럽다. 

[살의]의 주인공 비클리나 [크로이든발 12시30분]의 찰스는 '완전범죄' 살인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지한 공포심리에 시종 휩싸이지만, [백모 살인사건]의 어설픈 살인미수자 에드워드는 그냥 얼빠진 청년으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정신나간 화자 홀든 콜필드의 멍청이 삼촌 뻘 되는 듯 하다.

여기에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 같은 게 있는데,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주인공의 주관적 '완전범죄'가 형사나 백모 등의 타인에 의해 객관적 '불완전범죄'로 드러나는 말미의 과정과 반전이 그것이다.

[살의]에서는 '불완전범죄'지만 법정에서 중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자마자 살인자 비클리가 곧바로 다시 의도치 않았던 누명을 쓰고 교수대로 가게 되는 대반전이 있다. 그것도 마지막 <에필로그> 두 페이지로 급반전을 보여준다. [크로이든발 12시30분] 또한 비슷한 플롯이다. 형사에 의해 소설 말미에 되짚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완전범죄'라고 자부하던 살인자 주인공의 응징이 '도서 추리소설'의 '고전'적 전개과정인 것이다.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 또한 플롯은 비슷하다. 단지 리처드 헐의 방식대로 1인칭 화자가 등장하면서, 얼빠진 백수청년 에드워드가 자신을 속박하는 큰어머니(백모)를 어처구니 없이 죽이려고 세 차례나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기록한 비밀일기가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설픈 살해 위기에서 당연하게도 살아남게 되는 백모의 관점에서 쓴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에드워드의 무모한 계획의 실체가 되짚어 드러난다. 멍청이 에드워드의 일기에서는 '완전범죄'로 포장되지만, 어이없이 큰어머니의 손에까지 들어간 일기에 반박하는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불완전범죄'로 전모가 역으로 되짚어('도서;倒敍;inverted')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귀족' 가문은 아닌 듯 하나 웨일즈 시골의 '지역 유지' 정도 되는 듯한 파우엘 집안의 현대적 타락 또는 몰락을 멍청이 청년 에드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문학'을 사랑한다지만 제도화된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실근면한 노동도 거부하는 한 젊은이를 통해 무너져가는 구체제에 대한 비판적 묘사를 역시 수행하고 있다.


"남은 일은 이 (큰어머니의) '수기'에 제목을 붙이는 일 뿐입니다만, 내가 선택한 제목에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The Murder of My Aunt(백모의 살인)', '소유격(of)'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큰어머니가 저지른 살인, 또는 큰어머니의 살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백모 살인사건], <큰어머니의 수기>, 리처드 헐, 1935.


[백모 살인사건]의 결말 또한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대로 대반전이다. 
정신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친의 피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제정신이라 볼 수 없는 에드워드가 세번째 백모 독살계획이 이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던 큰어머니에 의해 현장에서 발각되면서 차를 몰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가 백모 살해의 첫번째 계획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게 되는 반전이다. 에드워드가 첫번째 살인계획에서 백모 자동차의 브레이크 철사를 끊은 방식 그대로 백모가 그의 자동차에 조치를 미리 해둔 것으로 어찌보면 백모의 복수가 되겠다.

그러므로 살인사건의 전모는 소설의 제목이자 백모의 수기 제목인 'The Murder of My Aunt(백모 살인사건)'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즉, 큰어머니(백모) 스스로 본인의 '수기'에 썼듯, '백모가 저지른 살인 또는 백모의(소유격 of) 살인'인 것이다.

어쨌든,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읽는 내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이 떠올랐다. 전자의 에드워드가 죽는 결말과 후자의 콜필드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결말은 이들의 캐릭터 자체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필연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는 아일즈의 [살의](1931)를 '오마주'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의 '패러디'가 아니었을까.

***

1. [살의(殺意;Malice Aforethought)](1931), <제2장>, Francis Iles, 유영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백모 살인사건(The Murder of My Aunt)](1935), Richard Hull, 백길선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4.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 Jerome David Salinger,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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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든 발 12시 30분 동서 미스터리 북스 77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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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의 3대 고전(古典)'
- [살의]/[크로이든발 12시30분]/[백모 살인사건], 1931~1935.


이른바 '고전(古典)'을 읽고 소개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주간 문사철(文史哲)'을 브런치와 블로그 등에 연재하는 내가 요 몇 주를 하염없이 '추리소설'들만 붙잡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 나를 책으로 인도한 쟝르가 '추리소설'이기는 했지만, 2~30대를 지나 40대 초반까지의 나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고, 그 당시의 내가 꼽은 '고전(古典)'이란 문사철(文史哲)' 중 거의 '역사와 철학(史哲)' 분야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브런치를 통해 본격 '서평가'를 자임하면서 주로 읽은 책은 '역사(史)'로 수렴되었다. 
지금의 내게 모든 책은 '역사책'이다. 미술도 음식도 전쟁도 모두 내겐 '역사'다. 
그러므로 내가 읽는 모든 '고전'은 '역사책'이다.

2026년 3월부터 마을 뒷산인 초안산 종주산책을 했고, 그 길의 끝으로 이어지는 도봉문화정보센터 마을도서관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을 발견했으며, 6월이 다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 '미스터리소설' 또는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내게 '추리소설' 또한 '역사책'이고 '고전'이다.

그 과정에서 최근에 도착한 지점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이다.


"줄리아(비클리의 부인)가 죽은 다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비클리 박사 자신이 가장 뚜렷이 인정했다. 단 하나의 행동(살인)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처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존재'를 주장했을 뿐이다. 이번만큼은 그의 생각을 밀고 나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능력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도저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했더라?... 아아, 그렇지, '자기 정신의 지배자' - 바로 이것이다. '자기 정신의 자배자'였다."
- [살의], <제9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수수께끼 또는 퀴즈를 풀듯이 범인을 추적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성을 벗어나,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완전범죄'의 심리를 풀어내는 서술과 마지막에 그 범행을 역으로 뒤집어 추적하여(倒) 사건의 전모를 밝혀 서술하는(敍)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3대 고전은 영국 소설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로부터 시작된다.

프랜시스 아일즈(Francis Iles;1893~1971)는 본명 앤서니 버클리 콕스(Anthony Berkeley Cox)라는 영국 추리소설가가 쓴 필명으로, 본명으로도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팔명인 '아일즈'의 이름으로 낸 첫 작품이 [살의]다. 

소설은 영국 어느 시골 의사 비클리가 오랫동안 본인을 무시하고 머슴처럼 부리던 여덟 살 연상의 귀족 가문 출신의 아내 줄리아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속의 공포심리를 묘사하는 이야기다. 살인자 본인의 이야기이므로 살인행위를 자기 '존재' 또는 '정체성' 확인 과정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며 결코 발각되지 않을 '완전범죄'로 혼자 철저히 합리화한다. 그러나 실은 중요한 단서들이 여기저기 새어나가고 런던 경시청의 러셀 경감에게 그 범죄의 '불완전성'이 추적되고 발각된다는 내용이다.


"상류 사립중학교 출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비클리 박사) 자신은 사립중학 출신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옥스퍼드며 케임브릿지를 나온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만, 그는 옥스퍼드 출신도, 케임브릿지 출신도 아니었다. 자기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개업의)에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3대째 걸친 '신사(gentlemen)' 계급의 조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가 '신사'라고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은 자기 때부터였다. 친구, 아는 사람, 또는 누추한 집에 살고 있는 환자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는 어느 누구와 결혼한다 할지라도 그는 사회적으로 한갓 보잘 것 없는 사나이였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물어볼 때면 언제나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였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는 아니었다. 그것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었다."
- [살의], <제2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아일즈의 [살의]에서 비클리가 아내를 죽이게 된 직접적 동기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으로 나오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의사가 된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주인공이 귀족 가문의 여인과 혼인하면서 '신분상승'은 이루었음에도 일상적으로 무시당하고 사는 20세기 초 몰락해 가는 신분체계의 모순이 잠재되어 있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1839)의 내용도 기울어가는 기존 신분체계의 몰락을 대저택의 물리적 붕괴로 상징해내고 있는데,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또한 그러한 시대정신의 연장선 상에 있다.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가 특이한 점은 '완전범죄'로 자기합리화하는 살인자 주인공이 그의 '악행(malice)'을 집요하고 은근하게 추적하는 민완형사와 검사장에 의해 기소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는 반전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어이없는 '증거'로 인해 2차 범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일사천리로 사형당하는 대반전으로 마무리되는 황당한 결말에 있다.

마지막 극적인 반전은 아내를 살해한 1차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계획한 2차 집단 세균살인 계획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악인에 대한 응당한 단죄라는 점에서 정당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와 같은 '도서 추리소설'의 전개과정과 서술방식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으로 이어진다. 크로프츠의 이 소설은 '도서 추리소설' 3대 고전 중 두번째 작품이다.

크로프츠의 작품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이전의 서평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고전은 첫번째 작품인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를 읽고는 이를 대놓고 따라 써보고자 한 역시 영국 작가 리처드 헐(Richard Hull;1896~1973)의 [백모 살인사건](1935)이다.


"정말로 나(에드워드)의 마음이 결정된 것은 그보다 조금 전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마도 그 순간(개싸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이전이었다면 결심을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로서는 되돌리지 못할 만큼 마음이 굳어 버렸다.
자동차를 심하게 몰아댐으로써 나를 모욕했던 다리 부근으로, 나를 비웃으며 서 있던 관목 언저리로, 큰어머니('백모')를 떨어뜨릴 결심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큰어머니가 상식에 벗어나리만큼 우상화하여 사랑하는 웨일스의 끝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는 것도 어쩌면 한 구실을 할테지.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문제에 이르면 그리 쉽지 않다. 이미 설명했듯이 혐의가 ('백모'의 유일한 상속자인) 나에게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백모 살인사건], <브레이크와 비스킷>, 리처드 헐, 1935.


본명이 리처드 헨리 샘프슨(Richard Henry Sampson;1896~1973)인 리처드 헐(Richard Hull)의 본업은 회계사였는데 '도서 추리소설'의 세번째 걸작이라 불리는 [백모 살인사건](1935)이 데뷔작이다. 이후 1939년부터 영국 해군성 경리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20여 편의 장편을 더 썼다고 한다.

그런데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이 '도서 추리소설'의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지만, 이 작품의 '오마주'와 같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에 비하면 좀 특이하게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 
어찌보면 '추리소설' 같지 않기도 하고, 마치 약 16년 후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1951)을 쓴 미국 소설가 J.D.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19~2010)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오히려 '오마주'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다소 익살스럽다. 

[살의]의 주인공 비클리나 [크로이든발 12시30분]의 찰스는 '완전범죄' 살인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지한 공포심리에 시종 휩싸이지만, [백모 살인사건]의 어설픈 살인미수자 에드워드는 그냥 얼빠진 청년으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정신나간 화자 홀든 콜필드의 멍청이 삼촌 뻘 되는 듯 하다.

여기에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 같은 게 있는데,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주인공의 주관적 '완전범죄'가 형사나 백모 등의 타인에 의해 객관적 '불완전범죄'로 드러나는 말미의 과정과 반전이 그것이다.

[살의]에서는 '불완전범죄'지만 법정에서 중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자마자 살인자 비클리가 곧바로 다시 의도치 않았던 누명을 쓰고 교수대로 가게 되는 대반전이 있다. 그것도 마지막 <에필로그> 두 페이지로 급반전을 보여준다. [크로이든발 12시30분] 또한 비슷한 플롯이다. 형사에 의해 소설 말미에 되짚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완전범죄'라고 자부하던 살인자 주인공의 응징이 '도서 추리소설'의 '고전'적 전개과정인 것이다.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 또한 플롯은 비슷하다. 단지 리처드 헐의 방식대로 1인칭 화자가 등장하면서, 얼빠진 백수청년 에드워드가 자신을 속박하는 큰어머니(백모)를 어처구니 없이 죽이려고 세 차례나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기록한 비밀일기가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설픈 살해 위기에서 당연하게도 살아남게 되는 백모의 관점에서 쓴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에드워드의 무모한 계획의 실체가 되짚어 드러난다. 멍청이 에드워드의 일기에서는 '완전범죄'로 포장되지만, 어이없이 큰어머니의 손에까지 들어간 일기에 반박하는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불완전범죄'로 전모가 역으로 되짚어('도서;倒敍;inverted')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귀족' 가문은 아닌 듯 하나 웨일즈 시골의 '지역 유지' 정도 되는 듯한 파우엘 집안의 현대적 타락 또는 몰락을 멍청이 청년 에드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문학'을 사랑한다지만 제도화된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실근면한 노동도 거부하는 한 젊은이를 통해 무너져가는 구체제에 대한 비판적 묘사를 역시 수행하고 있다.


"남은 일은 이 (큰어머니의) '수기'에 제목을 붙이는 일 뿐입니다만, 내가 선택한 제목에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The Murder of My Aunt(백모의 살인)', '소유격(of)'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큰어머니가 저지른 살인, 또는 큰어머니의 살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백모 살인사건], <큰어머니의 수기>, 리처드 헐, 1935.


[백모 살인사건]의 결말 또한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대로 대반전이다. 
정신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친의 피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제정신이라 볼 수 없는 에드워드가 세번째 백모 독살계획이 이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던 큰어머니에 의해 현장에서 발각되면서 차를 몰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가 백모 살해의 첫번째 계획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게 되는 반전이다. 에드워드가 첫번째 살인계획에서 백모 자동차의 브레이크 철사를 끊은 방식 그대로 백모가 그의 자동차에 조치를 미리 해둔 것으로 어찌보면 백모의 복수가 되겠다.

그러므로 살인사건의 전모는 소설의 제목이자 백모의 수기 제목인 'The Murder of My Aunt(백모 살인사건)'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즉, 큰어머니(백모) 스스로 본인의 '수기'에 썼듯, '백모가 저지른 살인 또는 백모의(소유격 of) 살인'인 것이다.

어쨌든,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읽는 내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이 떠올랐다. 전자의 에드워드가 죽는 결말과 후자의 콜필드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결말은 이들의 캐릭터 자체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필연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는 아일즈의 [살의](1931)를 '오마주'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의 '패러디'가 아니었을까.

***

1. [살의(殺意;Malice Aforethought)](1931), <제2장>, Francis Iles, 유영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백모 살인사건(The Murder of My Aunt)](1935), Richard Hull, 백길선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4.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 Jerome David Salinger,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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