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살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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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의 3대 고전(古典)'
- [살의]/[크로이든발 12시30분]/[백모 살인사건], 1931~1935.


이른바 '고전(古典)'을 읽고 소개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주간 문사철(文史哲)'을 브런치와 블로그 등에 연재하는 내가 요 몇 주를 하염없이 '추리소설'들만 붙잡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 나를 책으로 인도한 쟝르가 '추리소설'이기는 했지만, 2~30대를 지나 40대 초반까지의 나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고, 그 당시의 내가 꼽은 '고전(古典)'이란 문사철(文史哲)' 중 거의 '역사와 철학(史哲)' 분야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브런치를 통해 본격 '서평가'를 자임하면서 주로 읽은 책은 '역사(史)'로 수렴되었다. 
지금의 내게 모든 책은 '역사책'이다. 미술도 음식도 전쟁도 모두 내겐 '역사'다. 
그러므로 내가 읽는 모든 '고전'은 '역사책'이다.

2026년 3월부터 마을 뒷산인 초안산 종주산책을 했고, 그 길의 끝으로 이어지는 도봉문화정보센터 마을도서관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을 발견했으며, 6월이 다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 '미스터리소설' 또는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내게 '추리소설' 또한 '역사책'이고 '고전'이다.

그 과정에서 최근에 도착한 지점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이다.


"줄리아(비클리의 부인)가 죽은 다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비클리 박사 자신이 가장 뚜렷이 인정했다. 단 하나의 행동(살인)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처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존재'를 주장했을 뿐이다. 이번만큼은 그의 생각을 밀고 나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능력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도저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했더라?... 아아, 그렇지, '자기 정신의 지배자' - 바로 이것이다. '자기 정신의 자배자'였다."
- [살의], <제9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수수께끼 또는 퀴즈를 풀듯이 범인을 추적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성을 벗어나,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완전범죄'의 심리를 풀어내는 서술과 마지막에 그 범행을 역으로 뒤집어 추적하여(倒) 사건의 전모를 밝혀 서술하는(敍)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3대 고전은 영국 소설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로부터 시작된다.

프랜시스 아일즈(Francis Iles;1893~1971)는 본명 앤서니 버클리 콕스(Anthony Berkeley Cox)라는 영국 추리소설가가 쓴 필명으로, 본명으로도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팔명인 '아일즈'의 이름으로 낸 첫 작품이 [살의]다. 

소설은 영국 어느 시골 의사 비클리가 오랫동안 본인을 무시하고 머슴처럼 부리던 여덟 살 연상의 귀족 가문 출신의 아내 줄리아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속의 공포심리를 묘사하는 이야기다. 살인자 본인의 이야기이므로 살인행위를 자기 '존재' 또는 '정체성' 확인 과정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며 결코 발각되지 않을 '완전범죄'로 혼자 철저히 합리화한다. 그러나 실은 중요한 단서들이 여기저기 새어나가고 런던 경시청의 러셀 경감에게 그 범죄의 '불완전성'이 추적되고 발각된다는 내용이다.


"상류 사립중학교 출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비클리 박사) 자신은 사립중학 출신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옥스퍼드며 케임브릿지를 나온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만, 그는 옥스퍼드 출신도, 케임브릿지 출신도 아니었다. 자기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개업의)에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3대째 걸친 '신사(gentlemen)' 계급의 조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가 '신사'라고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은 자기 때부터였다. 친구, 아는 사람, 또는 누추한 집에 살고 있는 환자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는 어느 누구와 결혼한다 할지라도 그는 사회적으로 한갓 보잘 것 없는 사나이였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물어볼 때면 언제나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였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는 아니었다. 그것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었다."
- [살의], <제2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아일즈의 [살의]에서 비클리가 아내를 죽이게 된 직접적 동기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으로 나오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의사가 된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주인공이 귀족 가문의 여인과 혼인하면서 '신분상승'은 이루었음에도 일상적으로 무시당하고 사는 20세기 초 몰락해 가는 신분체계의 모순이 잠재되어 있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1839)의 내용도 기울어가는 기존 신분체계의 몰락을 대저택의 물리적 붕괴로 상징해내고 있는데,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또한 그러한 시대정신의 연장선 상에 있다.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가 특이한 점은 '완전범죄'로 자기합리화하는 살인자 주인공이 그의 '악행(malice)'을 집요하고 은근하게 추적하는 민완형사에 의해 기소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는 반전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어이없는 '증거'로 인해 2차 범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일사천리로 사형당하는 대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극적인 반전은 아내를 살해한 1차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계획한 2차 집단 세균살인 계획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악인에 대한 응당한 단죄라는 점에서 정당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와 같은 '도서 추리소설'의 전개과정과 서술방식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으로 이어진다. 크로프츠의 이 소설은 '도서 추리소설' 3대 고전 중 두번째 작품이다.

크로프츠의 작품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이전의 서평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고전은 첫번째 작품인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를 읽고는 이를 대놓고 따라 써보고자 한 역시 영국 작가 리처드 헐(Richard Hull;1896~1973)의 [백모 살인사건](1935)이다.


"정말로 나(에드워드)의 마음이 결정된 것은 그보다 조금 전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마도 그 순간(개싸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이전이었다면 결심을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로서는 되돌리지 못할 만큼 마음이 굳어 버렸다.
자동차를 심하게 몰아댐으로써 나를 모욕했던 다리 부근으로, 나를 비웃으며 서 있던 관목 언저리로, 큰어머니('백모')를 떨어뜨릴 결심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큰어머니가 상식에 벗어나리만큼 우상화하여 사랑하는 웨일스의 끝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는 것도 어쩌면 한 구실을 할테지.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문제에 이르면 그리 쉽지 않다. 이미 설명했듯이 혐의가 ('백모'의 유일한 상속자인) 나에게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백모 살인사건], <브레이크와 비스킷>, 리처드 헐, 1935.


본명이 리처드 헨리 샘프슨(Richard Henry Sampson;1896~1973)인 리처드 헐(Richard Hull)의 본업은 회계사였는데 '도서 추리소설'의 세번째 걸작이라 불리는 [백모 살인사건](1935)이 데뷔작이다. 이후 1939년부터 영국 해군성 경리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20여 편의 장편을 더 썼다고 한다.

그런데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이 '도서 추리소설'의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지만, 이 작품의 '오마주'와 같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에 비하면 좀 특이하게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 
어찌보면 '추리소설' 같지 않기도 하고, 마치 약 16년 후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1951)을 쓴 미국 소설가 J.D.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19~2010)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오히려 '오마주'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다소 익살스럽다. 

[살의]의 주인공 비클리나 [크로이든발 12시30분]의 찰스는 '완전범죄' 살인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지한 공포심리에 시종 휩싸이지만, [백모 살인사건]의 어설픈 살인미수자 에드워드는 그냥 얼빠진 청년으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정신나간 화자 홀든 콜필드의 멍청이 삼촌 뻘 되는 듯 하다.

여기에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 같은 게 있는데,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주인공의 주관적 '완전범죄'가 형사나 백모 등의 타인에 의해 객관적 '불완전범죄'로 드러나는 말미의 과정과 반전이 그것이다.

[살의]에서는 '불완전범죄'지만 법정에서 중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자마자 살인자 비클리가 곧바로 다시 의도치 않았던 누명을 쓰고 교수대로 가게 되는 대반전이 있다. 그것도 마지막 <에필로그> 두 페이지로 급반전을 보여준다. [크로이든발 12시30분] 또한 비슷한 플롯이다. 형사에 의해 소설 말미에 되짚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완전범죄'라고 자부하던 살인자 주인공의 응징이 '도서 추리소설'의 '고전'적 전개과정인 것이다.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 또한 플롯은 비슷하다. 단지 리처드 헐의 방식대로 1인칭 화자가 등장하면서, 얼빠진 백수청년 에드워드가 자신을 속박하는 큰어머니(백모)를 어처구니 없이 죽이려고 세 차례나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기록한 비밀일기가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설픈 살해 위기에서 당연하게도 살아남게 되는 백모의 관점에서 쓴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에드워드의 무모한 계획의 실체가 되짚어 드러난다. 멍청이 에드워드의 일기에서는 '완전범죄'로 포장되지만, 어이없이 큰어머니의 손에까지 들어간 일기에 반박하는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불완전범죄'로 전모가 역으로 되짚어('도서;倒敍;inverted')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귀족' 가문은 아닌 듯 하나 웨일즈 시골의 '지역 유지' 정도 되는 듯한 파우엘 집안의 현대적 타락 또는 몰락을 멍청이 청년 에드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문학'을 사랑한다지만 제도화된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실근면한 노동도 거부하는 한 젊은이를 통해 무너져가는 구체제에 대한 비판적 묘사를 역시 수행하고 있다.


"남은 일은 이 (큰어머니의) '수기'에 제목을 붙이는 일 뿐입니다만, 내가 선택한 제목에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The Murder of My Aunt(백모의 살인)', '소유격(of)'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큰어머니가 저지른 살인, 또는 큰어머니의 살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백모 살인사건], <큰어머니의 수기>, 리처드 헐, 1935.


[백모 살인사건]의 결말 또한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대로 대반전이다. 
정신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친의 피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제정신이라 볼 수 없는 에드워드가 세번째 백모 독살계획이 이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던 큰어머니에 의해 현장에서 발각되면서 차를 몰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가 백모 살해의 첫번째 계획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게 되는 반전이다. 에드워드가 첫번째 살인계획에서 백모 자동차의 브레이크 철사를 끊은 방식 그대로 백모가 그의 자동차에 조치를 미리 해둔 것으로 어찌보면 백모의 복수가 되겠다.

그러므로 살인사건의 전모는 소설의 제목이자 백모의 수기 제목인 'The Murder of My Aunt(백모 살인사건)'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즉, 큰어머니(백모) 스스로 본인의 '수기'에 썼듯, '백모가 저지른 살인 또는 백모의(소유격 of) 살인'인 것이다.

어쨌든,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읽는 내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이 떠올랐다. 전자의 에드워드가 죽는 결말과 후자의 콜필드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결말은 이들의 캐릭터 자체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필연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는 아일즈의 [살의](1931)를 '오마주'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의 '패러디'가 아니었을까.

***

1. [살의(殺意;Malice Aforethought)](1931), <제2장>, Francis Iles, 유영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백모 살인사건(The Murder of My Aunt)](1935), Richard Hull, 백길선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4.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 Jerome David Salinger,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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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모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70
리처드 헐 지음, 백길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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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의 3대 고전(古典)'
- [살의]/[크로이든발 12시30분]/[백모 살인사건], 1931~1935.


이른바 '고전(古典)'을 읽고 소개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주간 문사철(文史哲)'을 브런치와 블로그 등에 연재하는 내가 요 몇 주를 하염없이 '추리소설'들만 붙잡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 나를 책으로 인도한 쟝르가 '추리소설'이기는 했지만, 2~30대를 지나 40대 초반까지의 나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고, 그 당시의 내가 꼽은 '고전(古典)'이란 문사철(文史哲)' 중 거의 '역사와 철학(史哲)' 분야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브런치를 통해 본격 '서평가'를 자임하면서 주로 읽은 책은 '역사(史)'로 수렴되었다. 
지금의 내게 모든 책은 '역사책'이다. 미술도 음식도 전쟁도 모두 내겐 '역사'다. 
그러므로 내가 읽는 모든 '고전'은 '역사책'이다.

2026년 3월부터 마을 뒷산인 초안산 종주산책을 했고, 그 길의 끝으로 이어지는 도봉문화정보센터 마을도서관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을 발견했으며, 6월이 다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 '미스터리소설' 또는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내게 '추리소설' 또한 '역사책'이고 '고전'이다.

그 과정에서 최근에 도착한 지점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이다.


"줄리아(비클리의 부인)가 죽은 다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비클리 박사 자신이 가장 뚜렷이 인정했다. 단 하나의 행동(살인)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처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존재'를 주장했을 뿐이다. 이번만큼은 그의 생각을 밀고 나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능력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도저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했더라?... 아아, 그렇지, '자기 정신의 지배자' - 바로 이것이다. '자기 정신의 자배자'였다."
- [살의], <제9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수수께끼 또는 퀴즈를 풀듯이 범인을 추적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성을 벗어나,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완전범죄'의 심리를 풀어내는 서술과 마지막에 그 범행을 역으로 뒤집어 추적하여(倒) 사건의 전모를 밝혀 서술하는(敍)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3대 고전은 영국 소설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로부터 시작된다.

프랜시스 아일즈(Francis Iles;1893~1971)는 본명 앤서니 버클리 콕스(Anthony Berkeley Cox)라는 영국 추리소설가가 쓴 필명으로, 본명으로도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팔명인 '아일즈'의 이름으로 낸 첫 작품이 [살의]다. 

소설은 영국 어느 시골 의사 비클리가 오랫동안 본인을 무시하고 머슴처럼 부리던 여덟 살 연상의 귀족 가문 출신의 아내 줄리아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속의 공포심리를 묘사하는 이야기다. 살인자 본인의 이야기이므로 살인행위를 자기 '존재' 또는 '정체성' 확인 과정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며 결코 발각되지 않을 '완전범죄'로 혼자 철저히 합리화한다. 그러나 실은 중요한 단서들이 여기저기 새어나가고 런던 경시청의 러셀 경감에게 그 범죄의 '불완전성'이 추적되고 발각된다는 내용이다.


"상류 사립중학교 출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비클리 박사) 자신은 사립중학 출신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옥스퍼드며 케임브릿지를 나온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만, 그는 옥스퍼드 출신도, 케임브릿지 출신도 아니었다. 자기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개업의)에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3대째 걸친 '신사(gentlemen)' 계급의 조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가 '신사'라고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은 자기 때부터였다. 친구, 아는 사람, 또는 누추한 집에 살고 있는 환자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는 어느 누구와 결혼한다 할지라도 그는 사회적으로 한갓 보잘 것 없는 사나이였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물어볼 때면 언제나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였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는 아니었다. 그것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었다."
- [살의], <제2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아일즈의 [살의]에서 비클리가 아내를 죽이게 된 직접적 동기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으로 나오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의사가 된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주인공이 귀족 가문의 여인과 혼인하면서 '신분상승'은 이루었음에도 일상적으로 무시당하고 사는 20세기 초 몰락해 가는 신분체계의 모순이 잠재되어 있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1839)의 내용도 기울어가는 기존 신분체계의 몰락을 대저택의 물리적 붕괴로 상징해내고 있는데,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또한 그러한 시대정신의 연장선 상에 있다.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가 특이한 점은 '완전범죄'로 자기합리화하는 살인자 주인공이 그의 '악행(malice)'을 집요하고 은근하게 추적하는 민완형사에 의해 기소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는 반전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어이없는 '증거'로 인해 2차 범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일사천리로 사형당하는 대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극적인 반전은 아내를 살해한 1차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계획한 2차 집단 세균살인 계획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악인에 대한 응당한 단죄라는 점에서 정당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와 같은 '도서 추리소설'의 전개과정과 서술방식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으로 이어진다. 크로프츠의 이 소설은 '도서 추리소설' 3대 고전 중 두번째 작품이다.

크로프츠의 작품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이전의 서평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고전은 첫번째 작품인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를 읽고는 이를 대놓고 따라 써보고자 한 역시 영국 작가 리처드 헐(Richard Hull;1896~1973)의 [백모 살인사건](1935)이다.


"정말로 나(에드워드)의 마음이 결정된 것은 그보다 조금 전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마도 그 순간(개싸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이전이었다면 결심을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로서는 되돌리지 못할 만큼 마음이 굳어 버렸다.
자동차를 심하게 몰아댐으로써 나를 모욕했던 다리 부근으로, 나를 비웃으며 서 있던 관목 언저리로, 큰어머니('백모')를 떨어뜨릴 결심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큰어머니가 상식에 벗어나리만큼 우상화하여 사랑하는 웨일스의 끝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는 것도 어쩌면 한 구실을 할테지.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문제에 이르면 그리 쉽지 않다. 이미 설명했듯이 혐의가 ('백모'의 유일한 상속자인) 나에게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백모 살인사건], <브레이크와 비스킷>, 리처드 헐, 1935.


본명이 리처드 헨리 샘프슨(Richard Henry Sampson;1896~1973)인 리처드 헐(Richard Hull)의 본업은 회계사였는데 '도서 추리소설'의 세번째 걸작이라 불리는 [백모 살인사건](1935)이 데뷔작이다. 이후 1939년부터 영국 해군성 경리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20여 편의 장편을 더 썼다고 한다.

그런데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이 '도서 추리소설'의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지만, 이 작품의 '오마주'와 같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에 비하면 좀 특이하게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 
어찌보면 '추리소설' 같지 않기도 하고, 마치 약 16년 후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1951)을 쓴 미국 소설가 J.D.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19~2010)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오히려 '오마주'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다소 익살스럽다. 

[살의]의 주인공 비클리나 [크로이든발 12시30분]의 찰스는 '완전범죄' 살인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지한 공포심리에 시종 휩싸이지만, [백모 살인사건]의 어설픈 살인미수자 에드워드는 그냥 얼빠진 청년으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정신나간 화자 홀든 콜필드의 멍청이 삼촌 뻘 되는 듯 하다.

여기에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 같은 게 있는데,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주인공의 주관적 '완전범죄'가 형사나 백모 등의 타인에 의해 객관적 '불완전범죄'로 드러나는 말미의 과정과 반전이 그것이다.

[살의]에서는 '불완전범죄'지만 법정에서 중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자마자 살인자 비클리가 곧바로 다시 의도치 않았던 누명을 쓰고 교수대로 가게 되는 대반전이 있다. 그것도 마지막 <에필로그> 두 페이지로 급반전을 보여준다. [크로이든발 12시30분] 또한 비슷한 플롯이다. 형사에 의해 소설 말미에 되짚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완전범죄'라고 자부하던 살인자 주인공의 응징이 '도서 추리소설'의 '고전'적 전개과정인 것이다.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 또한 플롯은 비슷하다. 단지 리처드 헐의 방식대로 1인칭 화자가 등장하면서, 얼빠진 백수청년 에드워드가 자신을 속박하는 큰어머니(백모)를 어처구니 없이 죽이려고 세 차례나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기록한 비밀일기가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설픈 살해 위기에서 당연하게도 살아남게 되는 백모의 관점에서 쓴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에드워드의 무모한 계획의 실체가 되짚어 드러난다. 멍청이 에드워드의 일기에서는 '완전범죄'로 포장되지만, 어이없이 큰어머니의 손에까지 들어간 일기에 반박하는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불완전범죄'로 전모가 역으로 되짚어('도서;倒敍;inverted')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귀족' 가문은 아닌 듯 하나 웨일즈 시골의 '지역 유지' 정도 되는 듯한 파우엘 집안의 현대적 타락 또는 몰락을 멍청이 청년 에드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문학'을 사랑한다지만 제도화된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실근면한 노동도 거부하는 한 젊은이를 통해 무너져가는 구체제에 대한 비판적 묘사를 역시 수행하고 있다.


"남은 일은 이 (큰어머니의) '수기'에 제목을 붙이는 일 뿐입니다만, 내가 선택한 제목에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The Murder of My Aunt(백모의 살인)', '소유격(of)'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큰어머니가 저지른 살인, 또는 큰어머니의 살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백모 살인사건], <큰어머니의 수기>, 리처드 헐, 1935.


[백모 살인사건]의 결말 또한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대로 대반전이다. 
정신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친의 피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제정신이라 볼 수 없는 에드워드가 세번째 백모 독살계획이 이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던 큰어머니에 의해 현장에서 발각되면서 차를 몰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가 백모 살해의 첫번째 계획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게 되는 반전이다. 에드워드가 첫번째 살인계획에서 백모 자동차의 브레이크 철사를 끊은 방식 그대로 백모가 그의 자동차에 조치를 미리 해둔 것으로 어찌보면 백모의 복수가 되겠다.

그러므로 살인사건의 전모는 소설의 제목이자 백모의 수기 제목인 'The Murder of My Aunt(백모 살인사건)'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즉, 큰어머니(백모) 스스로 본인의 '수기'에 썼듯, '백모가 저지른 살인 또는 백모의(소유격 of) 살인'인 것이다.

어쨌든,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읽는 내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이 떠올랐다. 전자의 에드워드가 죽는 결말과 후자의 콜필드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결말은 이들의 캐릭터 자체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필연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는 아일즈의 [살의](1931)를 '오마주'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의 '패러디'가 아니었을까.

***

1. [살의(殺意;Malice Aforethought)](1931), <제2장>, Francis Iles, 유영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백모 살인사건(The Murder of My Aunt)](1935), Richard Hull, 백길선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4.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 Jerome David Salinger,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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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든 발 12시 30분 동서 미스터리 북스 77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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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의 3대 고전(古典)'
- [살의]/[크로이든발 12시30분]/[백모 살인사건], 1931~1935.


이른바 '고전(古典)'을 읽고 소개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주간 문사철(文史哲)'을 브런치와 블로그 등에 연재하는 내가 요 몇 주를 하염없이 '추리소설'들만 붙잡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 나를 책으로 인도한 쟝르가 '추리소설'이기는 했지만, 2~30대를 지나 40대 초반까지의 나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고, 그 당시의 내가 꼽은 '고전(古典)'이란 문사철(文史哲)' 중 거의 '역사와 철학(史哲)' 분야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브런치를 통해 본격 '서평가'를 자임하면서 주로 읽은 책은 '역사(史)'로 수렴되었다. 
지금의 내게 모든 책은 '역사책'이다. 미술도 음식도 전쟁도 모두 내겐 '역사'다. 
그러므로 내가 읽는 모든 '고전'은 '역사책'이다.

2026년 3월부터 마을 뒷산인 초안산 종주산책을 했고, 그 길의 끝으로 이어지는 도봉문화정보센터 마을도서관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을 발견했으며, 6월이 다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 '미스터리소설' 또는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내게 '추리소설' 또한 '역사책'이고 '고전'이다.

그 과정에서 최근에 도착한 지점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소설이다.


"줄리아(비클리의 부인)가 죽은 다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비클리 박사 자신이 가장 뚜렷이 인정했다. 단 하나의 행동(살인)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처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존재'를 주장했을 뿐이다. 이번만큼은 그의 생각을 밀고 나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능력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도저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했더라?... 아아, 그렇지, '자기 정신의 지배자' - 바로 이것이다. '자기 정신의 자배자'였다."
- [살의], <제9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수수께끼 또는 퀴즈를 풀듯이 범인을 추적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구성을 벗어나,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완전범죄'의 심리를 풀어내는 서술과 마지막에 그 범행을 역으로 뒤집어 추적하여(倒) 사건의 전모를 밝혀 서술하는(敍)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3대 고전은 영국 소설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로부터 시작된다.

프랜시스 아일즈(Francis Iles;1893~1971)는 본명 앤서니 버클리 콕스(Anthony Berkeley Cox)라는 영국 추리소설가가 쓴 필명으로, 본명으로도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팔명인 '아일즈'의 이름으로 낸 첫 작품이 [살의]다. 

소설은 영국 어느 시골 의사 비클리가 오랫동안 본인을 무시하고 머슴처럼 부리던 여덟 살 연상의 귀족 가문 출신의 아내 줄리아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속의 공포심리를 묘사하는 이야기다. 살인자 본인의 이야기이므로 살인행위를 자기 '존재' 또는 '정체성' 확인 과정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며 결코 발각되지 않을 '완전범죄'로 혼자 철저히 합리화한다. 그러나 실은 중요한 단서들이 여기저기 새어나가고 런던 경시청의 러셀 경감에게 그 범죄의 '불완전성'이 추적되고 발각된다는 내용이다.


"상류 사립중학교 출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비클리 박사) 자신은 사립중학 출신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옥스퍼드며 케임브릿지를 나온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만, 그는 옥스퍼드 출신도, 케임브릿지 출신도 아니었다. 자기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개업의)에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3대째 걸친 '신사(gentlemen)' 계급의 조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가 '신사'라고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은 자기 때부터였다. 친구, 아는 사람, 또는 누추한 집에 살고 있는 환자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는 어느 누구와 결혼한다 할지라도 그는 사회적으로 한갓 보잘 것 없는 사나이였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물어볼 때면 언제나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였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는 아니었다. 그것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었다."
- [살의], <제2장>, 프랜시스 아일즈, 1931.


아일즈의 [살의]에서 비클리가 아내를 죽이게 된 직접적 동기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으로 나오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의사가 된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주인공이 귀족 가문의 여인과 혼인하면서 '신분상승'은 이루었음에도 일상적으로 무시당하고 사는 20세기 초 몰락해 가는 신분체계의 모순이 잠재되어 있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1839)의 내용도 기울어가는 기존 신분체계의 몰락을 대저택의 물리적 붕괴로 상징해내고 있는데,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또한 그러한 시대정신의 연장선 상에 있다.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가 특이한 점은 '완전범죄'로 자기합리화하는 살인자 주인공이 그의 '악행(malice)'을 집요하고 은근하게 추적하는 민완형사에 의해 기소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는 반전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어이없는 '증거'로 인해 2차 범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일사천리로 사형당하는 대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극적인 반전은 아내를 살해한 1차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계획한 2차 집단 세균살인 계획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람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악인에 대한 응당한 단죄라는 점에서 정당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와 같은 '도서 추리소설'의 전개과정과 서술방식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으로 이어진다. 크로프츠의 이 소설은 '도서 추리소설' 3대 고전 중 두번째 작품이다.

크로프츠의 작품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이전의 서평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고전은 첫번째 작품인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를 읽고는 이를 대놓고 따라 써보고자 한 역시 영국 작가 리처드 헐(Richard Hull;1896~1973)의 [백모 살인사건](1935)이다.


"정말로 나(에드워드)의 마음이 결정된 것은 그보다 조금 전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마도 그 순간(개싸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이전이었다면 결심을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로서는 되돌리지 못할 만큼 마음이 굳어 버렸다.
자동차를 심하게 몰아댐으로써 나를 모욕했던 다리 부근으로, 나를 비웃으며 서 있던 관목 언저리로, 큰어머니('백모')를 떨어뜨릴 결심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큰어머니가 상식에 벗어나리만큼 우상화하여 사랑하는 웨일스의 끝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는 것도 어쩌면 한 구실을 할테지.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문제에 이르면 그리 쉽지 않다. 이미 설명했듯이 혐의가 ('백모'의 유일한 상속자인) 나에게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백모 살인사건], <브레이크와 비스킷>, 리처드 헐, 1935.


본명이 리처드 헨리 샘프슨(Richard Henry Sampson;1896~1973)인 리처드 헐(Richard Hull)의 본업은 회계사였는데 '도서 추리소설'의 세번째 걸작이라 불리는 [백모 살인사건](1935)이 데뷔작이다. 이후 1939년부터 영국 해군성 경리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20여 편의 장편을 더 썼다고 한다.

그런데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이 '도서 추리소설'의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지만, 이 작품의 '오마주'와 같은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와 프리먼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30분]에 비하면 좀 특이하게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 
어찌보면 '추리소설' 같지 않기도 하고, 마치 약 16년 후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1951)을 쓴 미국 소설가 J.D.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19~2010)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오히려 '오마주'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다소 익살스럽다. 

[살의]의 주인공 비클리나 [크로이든발 12시30분]의 찰스는 '완전범죄' 살인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지한 공포심리에 시종 휩싸이지만, [백모 살인사건]의 어설픈 살인미수자 에드워드는 그냥 얼빠진 청년으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정신나간 화자 홀든 콜필드의 멍청이 삼촌 뻘 되는 듯 하다.

여기에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 같은 게 있는데,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주인공의 주관적 '완전범죄'가 형사나 백모 등의 타인에 의해 객관적 '불완전범죄'로 드러나는 말미의 과정과 반전이 그것이다.

[살의]에서는 '불완전범죄'지만 법정에서 중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자마자 살인자 비클리가 곧바로 다시 의도치 않았던 누명을 쓰고 교수대로 가게 되는 대반전이 있다. 그것도 마지막 <에필로그> 두 페이지로 급반전을 보여준다. [크로이든발 12시30분] 또한 비슷한 플롯이다. 형사에 의해 소설 말미에 되짚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완전범죄'라고 자부하던 살인자 주인공의 응징이 '도서 추리소설'의 '고전'적 전개과정인 것이다.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 또한 플롯은 비슷하다. 단지 리처드 헐의 방식대로 1인칭 화자가 등장하면서, 얼빠진 백수청년 에드워드가 자신을 속박하는 큰어머니(백모)를 어처구니 없이 죽이려고 세 차례나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기록한 비밀일기가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설픈 살해 위기에서 당연하게도 살아남게 되는 백모의 관점에서 쓴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에드워드의 무모한 계획의 실체가 되짚어 드러난다. 멍청이 에드워드의 일기에서는 '완전범죄'로 포장되지만, 어이없이 큰어머니의 손에까지 들어간 일기에 반박하는 <큰어머니의 수기>를 통해 '불완전범죄'로 전모가 역으로 되짚어('도서;倒敍;inverted')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귀족' 가문은 아닌 듯 하나 웨일즈 시골의 '지역 유지' 정도 되는 듯한 파우엘 집안의 현대적 타락 또는 몰락을 멍청이 청년 에드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문학'을 사랑한다지만 제도화된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성실근면한 노동도 거부하는 한 젊은이를 통해 무너져가는 구체제에 대한 비판적 묘사를 역시 수행하고 있다.


"남은 일은 이 (큰어머니의) '수기'에 제목을 붙이는 일 뿐입니다만, 내가 선택한 제목에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The Murder of My Aunt(백모의 살인)', '소유격(of)'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큰어머니가 저지른 살인, 또는 큰어머니의 살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백모 살인사건], <큰어머니의 수기>, 리처드 헐, 1935.


[백모 살인사건]의 결말 또한 '도서 추리소설'의 '공식'대로 대반전이다. 
정신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친의 피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제정신이라 볼 수 없는 에드워드가 세번째 백모 독살계획이 이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던 큰어머니에 의해 현장에서 발각되면서 차를 몰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가 백모 살해의 첫번째 계획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게 되는 반전이다. 에드워드가 첫번째 살인계획에서 백모 자동차의 브레이크 철사를 끊은 방식 그대로 백모가 그의 자동차에 조치를 미리 해둔 것으로 어찌보면 백모의 복수가 되겠다.

그러므로 살인사건의 전모는 소설의 제목이자 백모의 수기 제목인 'The Murder of My Aunt(백모 살인사건)'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즉, 큰어머니(백모) 스스로 본인의 '수기'에 썼듯, '백모가 저지른 살인 또는 백모의(소유격 of) 살인'인 것이다.

어쨌든,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읽는 내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이 떠올랐다. 전자의 에드워드가 죽는 결말과 후자의 콜필드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결말은 이들의 캐릭터 자체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필연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는 아일즈의 [살의](1931)를 '오마주'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의 '패러디'가 아니었을까.

***

1. [살의(殺意;Malice Aforethought)](1931), <제2장>, Francis Iles, 유영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백모 살인사건(The Murder of My Aunt)](1935), Richard Hull, 백길선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4.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 Jerome David Salinger,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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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든 발 12시 30분 동서 미스터리 북스 77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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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에 발목을 잡히다
- 프리먼 크로프츠, [통]/[크로이든발 12시30분], 1920~1934.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영국작가 '크로프츠(Crofts)'는 처음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책으로 유인한 게 '추리소설'이었다지만, 사실 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의 팬이었지 다른 작가들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코넌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영국 유명 추리소설 작가로 꼽힌다는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나, 엘러리 퀸의 전형과 같은 S.S. 반다인은 그래도 들어는 봤더랬지만, '프리먼 크로프츠'는 진심 처음 듣는 작가였다.

'크로프츠'는 역시 격주 토요일 동네 뒷산 초안산 종주를 하고 마을 도서관에서 본 <동서미스터리북스>의 각종 '작품해설'을 통해 접하게 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였는데, 
내가 그를 알게 된 '테마' 또는 '키 워드'는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다.


"'슬픈 당신의 에이미로부터'라고 서명한 편지, 커튼에 꽂혔던 굽은 핀, 압지에 남은 틀림없는 필적의 자국, 경감은 이러한 세 가지 발견으로 훼릭스의 유죄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는 반대로 '통(The cask)'을 열었던 흔적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는데, 번리(경감)로서는 이토록 철저한 수사를 한 이상 '통'을 연 것은 여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번리는 자기의 수사가 바야흐로 정확한 궤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자신을 얻어 더욱 그러한 생각으로 밀고 나갔다..."
- [통], <제1부. 런던>, 프리먼 크로프츠, 1920.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란 '거꾸로 뒤집어서 역행적으로 서술한다'로 번역될 수 있겠는데, 사실관계의 퍼즐을 맞추면서 퀴즈를 풀듯 범인을 추적하는 기존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을 '뒤집어(倒) 서술하는(敍)' 방식으로 보면 된다.

영국의 철도회사 토목기사였던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Freeman Wills Crofts:1879~1957)의 추리소설에서는 다른 추리소설 작가들의 주인공 같은 '천재 명탐정'이 없다. 크로프츠의 '프렌치 경감'이나 '번리', '르빠르쥬' 경감은 그냥 좀더 부지런하고 유능한 '민완형사'이고, 사립탐정 '라 튀슈' 또한 갈피를 영 잡지 못하다가 우연히 실마리를 잡고는 '머리'가 아닌 '발'로 끝까지 추적하는 '프롤레타리아' 탐정에 가깝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범죄소설의 계보학](2018)을 추적하며, 주인공의 변천 과정을 '범죄자-부르주아(또는 귀족) 탐정-프롤레타리아 탐정'의 계보로 정리한다. 

18세기 영국 초기 자본주의 시대 '뉴게이트 소설'은 중죄인 수감소 '뉴게이트' 감옥의 범죄자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었다는데 오히려 이런 찌라시들이 당대의 불평등한 체제를 반증하는 '영웅소설'로 반전되는 과정이었고,
이런 흐름에 맞서 보수주의 귀족(또는 부르주아 지배계급) 층에서 내세운 '반(反) 영웅'들이 바로 셜록 홈즈와 에르큘 포와로, 오귀스트 뒤팽과 파일로 번스 또는 엘러리 퀸 같은 명문대 출신 '천재 탐정'들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던 이 탐정들의 임무는 '체제 수호'였고, 성인이 되어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잠시 실망하기도 했더랬다.
이후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미국식 모험소설로 이행되면서 주인공은 부패비리로 짤린 전직 형사와 같은 '생계형' 탐정, 즉 '프롤레타리아 탐정'으로 변화한다. 007 같은 특수요원의 전신이 아닐까 싶은 이 '프롤레타리아 탐정'은 두뇌는 '천재' 수준이 아니지만 성실과 근면, 무엇보다 목숨을 걸 정도의 끈기와 투지로 사건을 해결한다.

항상 이행과 변천 과정에서 '과도기' 또는 '이행기'에 집착하는 나는 여기에 또 '크로프츠'를 먼저 대입해 본다.


"'몹시 빙 돌려서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분명히 말한다면 내가 아내를 죽였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결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누구를 막론하고 일단 모든 관계자의 행동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당연한 직무로서, 우리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통], <제2부. 파리>, 프리먼 크로프츠, 1920.


이제 '크로프츠'의 '도서 추리소설' 영역에 들어서기 전에, 그의 첫 작품 [통(The Cask)](1920)을 읽어보자.

프랑스로부터 영국으로 건너온 화물이 담긴 '술통(cask)' 속에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런던의 '번리' 경감과 파리의 '르빠르쥬' 경감의 멋진 케미로 범인을 거의 잡을 뻔한 1~2부와, 누명을 쓴 프랑스계 영국인 훼릭스(희생자 아네트의 전남친)가 변호사와 사설탐정를 고용하면서 진범인 피살자 아네트의 남편 보와라크의 혐의를 잡고 누명을 벗는 3부로 구성된다. 런던과 파리 경시청의 협조를 통해 밝혀지는 범인은 고전적 의미의 '누명'을 쓴 게 되고 이에 반전을 가하면서 진범을 잡는 탐정은 그럼에도 '천재'가 아닌 일단 두 경감들 못지않게 부지런하고 끈기있는 인물이다.

독자들은 '크로프츠'를 읽으며 '천재 탐정'들로 인해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함께 쫓아다니고 같이 회의하면서 좌충우돌하면 된다. 
결국 '범인'은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

내가 생각하기로 '미스터리소설'에서는 최후에 범인이 드러나지 않아도 좋으나,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이 밝혀져야 한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소설이 바로 '추리소설'인 것이다.


"그랬었구나! 센트 캐더린 부두로 간 '통(The cask)'-시체를 넣은 '통'-은 북 정거장에서가 아니라, 보와라크의 집에서 직접 나왔었구나! 이 점을 깨닫지 못했다니, 이 무슨 실수랴! 겨우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와라크가 자기 아내를 죽인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던 그 집에서 죽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시체를 '통'에 넣어 훼릭스에게 직접 보낸 것이다. 마침내 (탐정) 라 튀슈는 애타게 바랐던 증거를 파악했다. 훼릭스의 억울한 혐의를 풀고 보와라크를 교수대로 보낼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것이다."
- [통], <제3부. 런던과 파리>, 프리먼 크로프츠, 1920.


그렇게 '크로프츠'의 영국과 프랑스계 혼혈 사립탐정 '라 튀슈'는 매우 성신근면한 활약을 통해 진범 보와라크(피살자 아네트의 남편)를 잡는다. 결말에서 범인은 저택을 불싸지르는 한바탕 활극을 연출하고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결국 '라 튀슈'의 활약으로 댓가를 치르게 된 것인데, 20세기 초 '추리소설'의 끝은 법에 의한 '공적 응징'보다 대부분 '자살'하게 만드는 '사적 응징'이 많다.

'크로프츠'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통](1920)의 결론도 그렇다.


"... 그러나 '살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불쾌한 결과가 생기는 것은 '살인'이 발각되었을 때뿐이다. 그런데 이 '살인'은 발각당할 리가 없다. 만일 예기치 않았던 사태가 일어나 일이 발각된다 해도 자살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일은 끝아다. 찰스는 죽은 다음의 세계 따위는 믿지 않았다. 이리하여 찰스는 마음 속으로는 의론의 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 [크로이든발 12시 30분], 프리먼 크로프츠, 1934.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산업발전과 문명교류 및 문화진보의 중추가 되었던 철도산업에 종사했던 이공계 토목기사 '프리먼 크로프츠'가 부업으로 '추리소설'을 썼다는 건,
21세기 지금으로 치면 첨단 통신산업 또는 AI 기반 산업의 '본캐' 종사자가 '부캐'로 'SF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격 아닐까 싶다.

그 한 사례로, 중국계 미국인 작가 테드 창(Ted Chang)이 있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온갖 계산과 협상이 난무하는 손해보험회사의 보상직원이 온갖 인류의 '고전'을 읽고 '서평'을 써보겠다며 독후감을 남발하고 있어, '크로프츠' 같은 본업과 부업의 시너지를 별로 못보고 있기는 하지만.

'크로프츠'의 인물들이 활약하는 성실과 근면의 현장은 이공계 토목기사 '크로프츠'다운 세밀한 묘사와 현실감 있는 '리얼리즘'으로 가득하다. 

아일랜드 출생 영국 추리소설가 '크로프츠'의 '리얼리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다.

1920년 리얼리즘' 추리소설 [통]으로 데뷔한 크로프츠'의 15번째 작품인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도서 추리소설'의 '세계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는 '크로이든 출발 ' 0시 30분 비행기에서 독살당한 희생자 앤드루 클라우드 이야기로부터 1장을 시작하여 바로 2장부터 그를 독살한 조카 찰스 스윈번이 주인공이 되어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이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결행하는 과정이 찰스의 심리 묘사와 함께 리얼하게 전개된다. 찰스의 심리적 공포와 자기합리화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더 이상 범인을 쫓는 '추리소설'의 독자가 아니다. 작가가 애초에 서술을 뒤집었듯(倒敍;invert), 독자 또한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독법을 뒤집게 된다(倒敍;inverted)'.


"'다음에 또 한 가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즉 알약을 쓰면 범인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여길 만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 속에 독이 든 알약을 넣기만 하면 희생자가 죽었을 때 범인은 얼마든지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으니까요.'
...
'범죄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알리바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난히 통용되었겠지요. 현장에 없었는데 어떻게 혐의가 걸리겠는가 생각할 테니까요. 그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완전히 모습을 감출수록 완벽한 것처럼 생각되겠지요. 이치에 맞든 맞지 않든 그것이 사람의 생각 아닙니까?'"
- [크로이든발 12시 30분], 프리먼 크로프츠, 1934.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살인자의 관점에서 '완전범죄'를 구성하는 과정을 서술하다가 마지막에 런던 경시청 조제프 프렌치 경감의 의심과 수사로 되밝혀지는 이중 플롯의 서사를 보여주는데, 범인 찰스의 '자기합리화' 과정에서는 헛점이 없어 보였을지 모르지만, 런던 경시청 프렌치 경감의 노련한 수사기법으로 무너지는 '불완전범죄'의 진상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공계 토목기사 '크로프츠' 작가는 이 '도서(倒敍;invert)' 서술기법을 위해 당시 경찰당국의 과학수사 기법을 열심히 취재하고 면밀하게 연구분석했으리라, 소설을 읽는내내 독자로서 나는 추측해 마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비록 처음 알게 되었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추리소설가 프리먼 크로프츠의 '리얼리즘' 추리소설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제 그만 다른 쟝르로 옮겨갈까 싶다가 '도서(倒敍) 추리소설'의 '세계 3대 고전'은 그래도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에,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마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게 된다.

이렇게 난 또 다시, 그리고 여즉,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에 발목을 잡힌 채,
당분간 '미스터리소설'의 숲을 거닐게 되었다.

***

1. [통(The Cask)](1920), Freeman W. Crofts, 오형태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5.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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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F. W. 크로프츠 / 프리디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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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에 발목을 잡히다
- 프리먼 크로프츠, [통]/[크로이든발 12시30분], 1920~1934.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영국작가 '크로프츠(Crofts)'는 처음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책으로 유인한 게 '추리소설'이었다지만, 사실 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의 팬이었지 다른 작가들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코넌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영국 유명 추리소설 작가로 꼽힌다는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나, 엘러리 퀸의 전형과 같은 S.S. 반다인은 그래도 들어는 봤더랬지만, '프리먼 크로프츠'는 진심 처음 듣는 작가였다.

'크로프츠'는 역시 격주 토요일 동네 뒷산 초안산 종주를 하고 마을 도서관에서 본 <동서미스터리북스>의 각종 '작품해설'을 통해 접하게 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였는데, 
내가 그를 알게 된 '테마' 또는 '키 워드'는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다.


"'슬픈 당신의 에이미로부터'라고 서명한 편지, 커튼에 꽂혔던 굽은 핀, 압지에 남은 틀림없는 필적의 자국, 경감은 이러한 세 가지 발견으로 훼릭스의 유죄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는 반대로 '통(The cask)'을 열었던 흔적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는데, 번리(경감)로서는 이토록 철저한 수사를 한 이상 '통'을 연 것은 여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번리는 자기의 수사가 바야흐로 정확한 궤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자신을 얻어 더욱 그러한 생각으로 밀고 나갔다..."
- [통], <제1부. 런던>, 프리먼 크로프츠, 1920.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란 '거꾸로 뒤집어서 역행적으로 서술한다'로 번역될 수 있겠는데, 사실관계의 퍼즐을 맞추면서 퀴즈를 풀듯 범인을 추적하는 기존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을 '뒤집어(倒) 서술하는(敍)' 방식으로 보면 된다.

영국의 철도회사 토목기사였던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Freeman Wills Crofts:1879~1957)의 추리소설에서는 다른 추리소설 작가들의 주인공 같은 '천재 명탐정'이 없다. 크로프츠의 '프렌치 경감'이나 '번리', '르빠르쥬' 경감은 그냥 좀더 부지런하고 유능한 '민완형사'이고, 사립탐정 '라 튀슈' 또한 갈피를 영 잡지 못하다가 우연히 실마리를 잡고는 '머리'가 아닌 '발'로 끝까지 추적하는 '프롤레타리아' 탐정에 가깝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범죄소설의 계보학](2018)을 추적하며, 주인공의 변천 과정을 '범죄자-부르주아(또는 귀족) 탐정-프롤레타리아 탐정'의 계보로 정리한다. 

18세기 영국 초기 자본주의 시대 '뉴게이트 소설'은 중죄인 수감소 '뉴게이트' 감옥의 범죄자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었다는데 오히려 이런 찌라시들이 당대의 불평등한 체제를 반증하는 '영웅소설'로 반전되는 과정이었고,
이런 흐름에 맞서 보수주의 귀족(또는 부르주아 지배계급) 층에서 내세운 '반(反) 영웅'들이 바로 셜록 홈즈와 에르큘 포와로, 오귀스트 뒤팽과 파일로 번스 또는 엘러리 퀸 같은 명문대 출신 '천재 탐정'들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던 이 탐정들의 임무는 '체제 수호'였고, 성인이 되어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잠시 실망하기도 했더랬다.
이후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미국식 모험소설로 이행되면서 주인공은 부패비리로 짤린 전직 형사와 같은 '생계형' 탐정, 즉 '프롤레타리아 탐정'으로 변화한다. 007 같은 특수요원의 전신이 아닐까 싶은 이 '프롤레타리아 탐정'은 두뇌는 '천재' 수준이 아니지만 성실과 근면, 무엇보다 목숨을 걸 정도의 끈기와 투지로 사건을 해결한다.

항상 이행과 변천 과정에서 '과도기' 또는 '이행기'에 집착하는 나는 여기에 또 '크로프츠'를 먼저 대입해 본다.


"'몹시 빙 돌려서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분명히 말한다면 내가 아내를 죽였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결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누구를 막론하고 일단 모든 관계자의 행동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당연한 직무로서, 우리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통], <제2부. 파리>, 프리먼 크로프츠, 1920.


이제 '크로프츠'의 '도서 추리소설' 영역에 들어서기 전에, 그의 첫 작품 [통(The Cask)](1920)을 읽어보자.

프랑스로부터 영국으로 건너온 화물이 담긴 '술통(cask)' 속에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런던의 '번리' 경감과 파리의 '르빠르쥬' 경감의 멋진 케미로 범인을 거의 잡을 뻔한 1~2부와, 누명을 쓴 프랑스계 영국인 훼릭스(희생자 아네트의 전남친)가 변호사와 사설탐정를 고용하면서 진범인 피살자 아네트의 남편 보와라크의 혐의를 잡고 누명을 벗는 3부로 구성된다. 런던과 파리 경시청의 협조를 통해 밝혀지는 범인은 고전적 의미의 '누명'을 쓴 게 되고 이에 반전을 가하면서 진범을 잡는 탐정은 그럼에도 '천재'가 아닌 일단 두 경감들 못지않게 부지런하고 끈기있는 인물이다.

독자들은 '크로프츠'를 읽으며 '천재 탐정'들로 인해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함께 쫓아다니고 같이 회의하면서 좌충우돌하면 된다. 
결국 '범인'은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

내가 생각하기로 '미스터리소설'에서는 최후에 범인이 드러나지 않아도 좋으나,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이 밝혀져야 한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소설이 바로 '추리소설'인 것이다.


"그랬었구나! 센트 캐더린 부두로 간 '통(The cask)'-시체를 넣은 '통'-은 북 정거장에서가 아니라, 보와라크의 집에서 직접 나왔었구나! 이 점을 깨닫지 못했다니, 이 무슨 실수랴! 겨우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와라크가 자기 아내를 죽인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던 그 집에서 죽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시체를 '통'에 넣어 훼릭스에게 직접 보낸 것이다. 마침내 (탐정) 라 튀슈는 애타게 바랐던 증거를 파악했다. 훼릭스의 억울한 혐의를 풀고 보와라크를 교수대로 보낼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것이다."
- [통], <제3부. 런던과 파리>, 프리먼 크로프츠, 1920.


그렇게 '크로프츠'의 영국과 프랑스계 혼혈 사립탐정 '라 튀슈'는 매우 성신근면한 활약을 통해 진범 보와라크(피살자 아네트의 남편)를 잡는다. 결말에서 범인은 저택을 불싸지르는 한바탕 활극을 연출하고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결국 '라 튀슈'의 활약으로 댓가를 치르게 된 것인데, 20세기 초 '추리소설'의 끝은 법에 의한 '공적 응징'보다 대부분 '자살'하게 만드는 '사적 응징'이 많다.

'크로프츠'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통](1920)의 결론도 그렇다.


"... 그러나 '살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불쾌한 결과가 생기는 것은 '살인'이 발각되었을 때뿐이다. 그런데 이 '살인'은 발각당할 리가 없다. 만일 예기치 않았던 사태가 일어나 일이 발각된다 해도 자살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일은 끝아다. 찰스는 죽은 다음의 세계 따위는 믿지 않았다. 이리하여 찰스는 마음 속으로는 의론의 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 [크로이든발 12시 30분], 프리먼 크로프츠, 1934.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산업발전과 문명교류 및 문화진보의 중추가 되었던 철도산업에 종사했던 이공계 토목기사 '프리먼 크로프츠'가 부업으로 '추리소설'을 썼다는 건,
21세기 지금으로 치면 첨단 통신산업 또는 AI 기반 산업의 '본캐' 종사자가 '부캐'로 'SF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격 아닐까 싶다.

그 한 사례로, 중국계 미국인 작가 테드 창(Ted Chang)이 있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온갖 계산과 협상이 난무하는 손해보험회사의 보상직원이 온갖 인류의 '고전'을 읽고 '서평'을 써보겠다며 독후감을 남발하고 있어, '크로프츠' 같은 본업과 부업의 시너지를 별로 못보고 있기는 하지만.

'크로프츠'의 인물들이 활약하는 성실과 근면의 현장은 이공계 토목기사 '크로프츠'다운 세밀한 묘사와 현실감 있는 '리얼리즘'으로 가득하다. 

아일랜드 출생 영국 추리소설가 '크로프츠'의 '리얼리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다.

1920년 리얼리즘' 추리소설 [통]으로 데뷔한 크로프츠'의 15번째 작품인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도서 추리소설'의 '세계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는 '크로이든 출발 ' 0시 30분 비행기에서 독살당한 희생자 앤드루 클라우드 이야기로부터 1장을 시작하여 바로 2장부터 그를 독살한 조카 찰스 스윈번이 주인공이 되어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이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결행하는 과정이 찰스의 심리 묘사와 함께 리얼하게 전개된다. 찰스의 심리적 공포와 자기합리화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더 이상 범인을 쫓는 '추리소설'의 독자가 아니다. 작가가 애초에 서술을 뒤집었듯(倒敍;invert), 독자 또한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독법을 뒤집게 된다(倒敍;inverted)'.


"'다음에 또 한 가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즉 알약을 쓰면 범인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여길 만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 속에 독이 든 알약을 넣기만 하면 희생자가 죽었을 때 범인은 얼마든지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으니까요.'
...
'범죄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알리바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난히 통용되었겠지요. 현장에 없었는데 어떻게 혐의가 걸리겠는가 생각할 테니까요. 그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완전히 모습을 감출수록 완벽한 것처럼 생각되겠지요. 이치에 맞든 맞지 않든 그것이 사람의 생각 아닙니까?'"
- [크로이든발 12시 30분], 프리먼 크로프츠, 1934.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살인자의 관점에서 '완전범죄'를 구성하는 과정을 서술하다가 마지막에 런던 경시청 조제프 프렌치 경감의 의심과 수사로 되밝혀지는 이중 플롯의 서사를 보여주는데, 범인 찰스의 '자기합리화' 과정에서는 헛점이 없어 보였을지 모르지만, 런던 경시청 프렌치 경감의 노련한 수사기법으로 무너지는 '불완전범죄'의 진상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공계 토목기사 '크로프츠' 작가는 이 '도서(倒敍;invert)' 서술기법을 위해 당시 경찰당국의 과학수사 기법을 열심히 취재하고 면밀하게 연구분석했으리라, 소설을 읽는내내 독자로서 나는 추측해 마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비록 처음 알게 되었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추리소설가 프리먼 크로프츠의 '리얼리즘' 추리소설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제 그만 다른 쟝르로 옮겨갈까 싶다가 '도서(倒敍) 추리소설'의 '세계 3대 고전'은 그래도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에,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마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게 된다.

이렇게 난 또 다시, 그리고 여즉,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에 발목을 잡힌 채,
당분간 '미스터리소설'의 숲을 거닐게 되었다.

***

1. [통(The Cask)](1920), Freeman W. Crofts, 오형태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5.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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