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덥다' 하면 더 더울까 봐 덥다는 말을 가급적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덥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요즘입니다. 게다가 비가 자주 내릴 때는 그렇게 지긋지긋하더니 이렇게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자 차라리 비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잠깐 내리는 소나기조차 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맘때의 나는 새벽 운동을 나서는 경우에도 주로 긴소매의 운동복을 입는 편이었습니다. 극성스러운 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앵앵거리는 모기마저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한동안 비는 오지 않고 강한 여름 햇살만 내리쬐는 까닭에 등산로에서도 모기 유충이 살 만한 물웅덩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먼지만 풀풀 날릴 뿐입니다.


그러나 지구 환경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말하기를 올해 여름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또 다른 여름에 비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확률이 거의 100%라고 합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올해 여름보다 내년 여름이 더 더울 것이며, 내년 여름보다 내후년 여름이 더 더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입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이런 전망이 수긍은 되면서도 들을 때마다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알래스카의 숭고한 풍경을 사진에 담았던 호시노 미치오의 에세이 <긴 여행의 도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문득,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말이었다. "이 세상은 이미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만다. 체념과 희망이 공존하고, 밝음과 슬픔이 한데 섞인 채, 나는 내일을 생각한다." 제인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나와 미카엘의 손을 잡았다. 나는 말로 할 수 없는 약속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은 끝이 났다."  (p.52)


여전히 비소식은 없고, 쨍한 하늘만 지겹도록 계속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애프터 다크>에는 '내 인생의 좌우명.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셔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생의 좌우명까지는 아닐지라도 이런 날씨에는 물을 자주 마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듯합니다. 어쩌면 올 여름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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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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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심에 컴퍼스를 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원 하나를 그려 보자. 그리고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같은 크기로 등분을 하여 각각의 나이대에 동일한 양의 슬픔을 나누어 주자. 일명 슬픔의 분할. 그렇게 등분된 슬픔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행복할까? 어느 나이대에 너무 과도한 슬픔이 몰린 까닭에 한동안 견디기 힘든 시기를 보내거나 과도한 슬픔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 각각의 나이대에 일정한 슬픔이 배분된다면 삶은 지금보다 수월하거나 행복의 총량이 조금쯤 늘어나지 않을까? 같은 크기로 나뉜 피자의 조각처럼 같은 양의 슬픔을 각각의 나이대에 분할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이따금 설렁설렁 여유를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최지은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그런 의문에 젖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의 슬픔이 내게 전이되어 어느 순간 눅눅한 슬픔이 감정의 밑바닥에 착 달라붙어 곰팡이처럼 피어났을지도 모른다. 한여름의 슬픔이 뿜어내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나는 한동안 '슬픔의 분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비록 내던져진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특정 시기에 슬픔이 집중된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삶을 주관하는 하느님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그런 심정이 여름의 불청객 불쾌지수에 더해져 짜증만 늘었었다.


"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가끔 그가 내게 말한다. 창을 열자. 그래, 바람을 들이자."  (p.105)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어렸던 작가를 할머니에게 맡겨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것도, 할머니의 죽음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를 잠깐 돌보았다는 작가,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작가는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대학생 시절 가난하여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다는 작가는 신인시인상 수상 상금 500만 원도, 첫 시집을 내고 인세로 받은 180만 원도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


"상금도 첫 인세도 내게는 소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시를 써서 받은 돈이 내 것 같지 않았고, 시를 쓰게 된 삶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시와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틈을 좁힐 수 없었으니까. 당장 내가 쓸 수 없다면 급하게 필요한 사람과 나누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실은 다 나중에야 생각해본 이유들이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명확한 이유를 여전히 나는 모른다."  (p.134~p.135)


아버지의 자살 이후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작가는 다니던 회사에서 휴직하고, 작가의 남편이 검은 개 탄이와 흰 개 설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1부 '여름에 만난 아이',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구성된 <우리의 여름에게>는 읽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거나, 불쌍하거나 기구하다거나, 가엾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들려주는 건강한 슬픔은 때로 우리에게 삶을 지탱하는 튼튼한 다리가 되기도 한다. '모모 씨는 이보다 더한 슬픔도 이겨냈다는데'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는 것이다.


"글로 하는 고백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 나의 시간, 나의 경험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을 때 고백은 쓸쓸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쓸쓸함 때문에 꼭 필요한 고백이 침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수많은 오해를 품고 살면서 왜 모든 독자와 오해 없이 연결되기를 기대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욕심쟁이일까."  (p.170)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도로변의 작은 카페에 들렀다. 냉방이 잘 된 보송보송한 공간이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겐 조금 서늘하다 싶은, 기분 좋은 한기가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끼쳤다. 그리고 구수한 커피 향과 달착지근한 빵 냄새가 뒤섞여 나른한 '풀림'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불필요한 여자>를 조금 읽었다. 더위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손님이 끊긴 조용한 카페에서 이글거리는 바깥 풍경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최지은 작가의 <우리의 여름에게>가 내게 남겼던 눅눅한 슬픔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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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고 나면 대기의 층이 한 뼘쯤 두터워지는 느낌입니다. 텁텁하고 두터워진 대기층으로 인해 한낮의 매미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쯤 높아지게 마련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그 간절한 소음을 뒤로한 채 점차 뜨거워지는 여름 햇살의 열기는 두꺼운 대기층을 뚫고 지상의 모든 생물을 향해 "견뎌라. 이 고통을 견디는 자만이 곧 다가올 가을의 신선한 햇살을 누릴 자격이 주어지리니."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어느새 8월입니다. 경남의 어느 지역은 한낮 기온이 41도를 넘었다지요. 극한의 더위 속에서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도 하고, 이웃의 죄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하지만 결국에 내게 돌아오는 것은 허무와 결핍으로 얼룩진 앙상한 팔뚝과 빈손뿐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피해 작은 양산의 그늘 속으로 숨어보지만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글이글 불타는 한낮의 도로는 모자이크를 닮은 아지랑이로 인해 모든 피사체가 흔들리고 있는 듯합니다. 여름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태양의 열기 속에서 자신의 크고 작은 죄가 흔적도 없이 불타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낮 기온이 아무리 뜨거워도 우리에게는 일말의 '죄 사함'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늦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서희 작가의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를 읽고 있습니다. 아스라이 멀어졌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눈앞에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잠시 행복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나 힘든 시절을 보내고, 아픔을 간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보내는 태도에 있습니다. 안나와 마니를 통해 우리가 치유받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소녀들은 힘든 일과 슬픔을 피하지 않고 마주합니다. 솔직한 태도로 내면의 아픔에 마주 서는 것입니다."  (p.68 조앤 G. 로빈슨의 '거기 마니가 있었다')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이 한 권 있는데 도서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베란다 창밖을 보니 아파트 화단에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무궁화는 시골집 담장 밑에 피어서 진드기 떼의 습격을 고스란히 받곤 했던 까닭에 언제나 지저분한 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무궁화에 진드기가 달라붙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 꽃이라는 상징성이나 주목도는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된 게 사실입니다. 베란다 창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두텁고 답답한 대기층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아무래도 책을 반납하는 일은 내일로 미뤄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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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김인철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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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소재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전에 읽었던 다른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인철의 소설 <하얀 거짓말>을 읽을 때도 그랬다. 탐사 기자 이기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사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과거 2019년에 있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실을 파헤칠 탐사보도팀이 결성되면서 시작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변형 바이러스라 할 수 있는 신종 조류독감이 유행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삶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인간의 판단력은 무뎌지고 성행하는 가짜 뉴스에 대응할 능력은 극도로 약화되어 가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로서의 '탐사보도'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엘리트 젊은 기자들로 구성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 속한 기자들로 구성된 탐사보도팀의 일원인 기준과 아구스틴은 팬데믹의 발원지인 우한을 중심으로 추적에 들어간다.


"그는 이제 바이러스 팬데믹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미래에 닥쳐올 새로운 팬데믹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2019년 코로나19 사태의 숨겨진 진실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을 품게 된 것이다."  (p.42)


정유정의 소설 <28>의 공간적 배경은 화양시이다.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인수공통감염병이 발병하자 화양시는 봉쇄된다. 외부와 차단된 도시에서 펼쳐지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린 소설 <28>에도 소방대원의 이름 역시 기준이었다. 소설 <28>은 팬데믹 이전(2013년)에 출간된 소설이었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전문가가 예상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에도 포함된 것을 보면 그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는 첫 번째 '물리학 실험의 실패', 두 번째 '화산폭발', 세 번째 '빙하기 또는 태양 폭발로 인한 기온 상승', 네 번째 '외계인의 침략', 다섯 번째 '컴퓨터의 지배', 여섯 번째 '소행성 충돌', 일곱 번째 '치명적인 벌레의 공격'(바이러스와 연관), 여덟 번째 '별의 대규모 폭발', 아홉 번째 '나노 기술의 악몽'이다. 이런 까닭에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지구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이와 같은 현실적 가능성으로 인해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은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광기 어린 도박의 가장 끔찍한 뇌관은 따로 있었다. 벡터로 강제 개조된 인공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에서 잃어버린 복제 능력을 되찾거나, 대자연의 야생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전대미문의 괴질을 퍼뜨릴 새로운 변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임상에 동원된 피험자의 체내에서조차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돌연변이가 창궐할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리 된다면 인류의 재앙에 가까운 부작용이 들이닥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제창과 자오융의 흐려진 동공에 그런 과학적 경고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들의 영혼은 오직 빛의 속도로 임상을 주파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틀어쥐겠다는 검은 광기로만 펄떡이고 있었다."  (p.312)


탐사 기자 이기준과 그의 동료 아구스틴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밝고 희망에 찬 내용이 아니었다. 부를 향한 거대 제약회사의 편법과 은폐, 권력의 동조와 과학의 오만 등이 섞여 세상은 다시 M-바이러스라는 공포 속으로 걷잡을 새 없이 빨려 들어가고 만다. M-바이러스는 인간의 육체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이나 거짓말까지 겨냥한다. 종국에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심판하는 상황.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기준마저 M-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데...


"그들은 서둘러 기준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당도한 민희가 초인종을 거듭 눌렀으나, 문 너머에서는 어떠한 생의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구스틴이 기준의 현관 비밀번호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간신히 닫힌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거실로 들어선 그들의 시야에, 소파 곁에 처참히 허물어져 있는 기준의 형상이 들어왔다."  (p.545)


여름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그 열기가 무섭기만 하다. 이런 열기라면 웬만한 바이러스도 살아남지 못할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장염으로 며칠째 출근을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무섭고 치명적일 때가 많다. 김인철의 소설 <하얀 거짓말>도 어쩌면 인간의 지적 오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인류의 생존은 그렇게 조심조심 지켜져 왔을 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개개인의 건강 역시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금 건강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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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허방을 짚고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급하게 서둘렀던 탓입니다. 경사가 진 산 중턱 비탈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는 마침 관리가 잘 된 가족묘 두 기가 서 있는데 묘를 관리하는 듯한 노인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올라 묘 주변의 잡초를 뽑고, 파인 곳을 돋우고, 봉분 위로 뻗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 등이 굽은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일들을 거뜬히 해내면서 소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묘 앞의 작은 공터에 호박을 심어 애지중지 가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플라스틱 물병에 물을 담아 양손에 들고 산을 올라 호박 구덩이 물을 주는 모습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도 노인은 새벽부터 산에 올라 묘를 관리하다가 '어이쿠!' 하고 넘어질 듯하다가 멀쩡히 일어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넘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말입니다. 노인의 미소 너머로 매미가 '맴맴' 기를 쓰고 울고 있었고,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자리를 피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묘 주변에 쪼그려 앉은 채 열심히 잡초를 뽑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노인은 지금 잡초 뽑기를 핑계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몰래 하곤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그렇게 죽음과 친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당황하거나 불필요한 거부와 원망의 말을 쏟아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무던히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또 해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산을 오가며 마주치는 저 노인처럼 말입니다. 라비 알라메딘의 소설 <불필요한 여자>를 읽고 있습니다. 요르단 암만에서 태어난 작가는 여섯 편의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집 한 권을 썼고, 화가로도 활동하면서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인전을 열었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글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에 나를 맡겼다.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이다. 나는 그 안에서 놀고, 요새와 성을 쌓고,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놀이터 바깥의 세상이다. 나는 눈앞의 세상에  온순하게, 그러나 관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적응해왔다. 모래의 비유를 변형해 보자면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 현실 세상은 나의 모래시계이다. 모래는 한 톨 한 톨 빠져나간다.   문학은 내게 삶을 주고, 삶은 나를 죽인다."  (p.16)


무척이나 덥고 습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짜증이 많아지는 요즘, 주식 시세마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표정은 울상입니다. 현 정부가 잘못한 일은 주식의 위험성도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 대다수에게 주식 투자를 알게 모르게 권유하고 부추겼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주가가 이렇게 하락하였을 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알지 못한 채 마냥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투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묻지마 투자'에 뛰어드는 게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결과는 냉혹하다는 것을 지금과 같은 주가 하락기를 통하여 뼈저리게 겪게 될 것입니다. 주식 투자는 사실 원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투자 방식임을 이번 기회에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온종일 주식 시세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한 권의 문학작품을 읽는 게 우리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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