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면 이런저런 채널의 영상을 띄워 놓은 채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보지도 않을 양이면 귀한 전기를 써가면서 뭐 하러 동영상을 재생하느냐 따질 사람도 있겠으나 평일에는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까닭에 아마도 백색 소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소음도 없는 적막한 공간은 그것을 인지하는 인간에게 약간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언제나 유튜브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을 귀담아듣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흘려보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더러 있는 까닭에 어쩌다 그런 동영상을 만날 때면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게 됩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말입니다.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읽고 있습니다. 그의 산문집은 때로 난해하기 짝이 없어서 나의 상식이나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저 '아무려면 어때'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이해하자 마음을 가볍게 먹은 채 담담히 책을 읽어나가곤 합니다.


"슬픔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기쁨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래야 자신이 어떤 시를 가지고 있는 시인인지를 안다. '사람들은 모두 시인이다.' 다만 자신이 시인임을 스스로 무시하고 살아가다가 죽거나 시인이면서도 시인인 줄 모르고 살다가 죽을 뿐이며 심지어 나는 자신 안의 시인을 일부러 살해하는 사람들조차 자주 본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애써 괴물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날개를 하늘에서 사용하지 않고 발의 부스러기나 계단쯤으로 여기다가 차에 치여 길에 찌그러져 말라붙어 있는 저 비둘기들의 사체처럼."  (p.97~p.98)


오늘 최욱이 진행하는 '매불쇼'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 테지만 오랜만에 보는 유시민 작가의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진보 유튜버들의 일베식 조롱과 멸칭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그것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견해와 일치한다고는 판단한 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던 검찰개혁이 조금씩 물거품으로 변해가는 듯한 인상을 받기 시작하는 요즘, 김민석 전 총리를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지지하는 듯한 대통령의 노골적인 태도와 의중을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은 어쩌면 지리멸렬한 국민의힘과 당대 당 통합은 아닐지라도 그들 주변의 인사들을 최대한 끌어 모아 민주당으로 편입함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자(일명 강경파라고 할 수도 있는)들의 이탈을 과감히 용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보완수사권의 유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보수권 인사들을 포섭하려면 검찰개혁은 시늉만 하고 눈 감고 아웅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테지요. 현 상황을 그렇게 이해하면 대통령과 김민석 전 총리의 행보도 이해 못 할 게 없습니다. 박정희를 '스마트한 독재자'라고 칭한 김민석 전 총리의 발언을 조금 더 확장하면 이토 히로부미도 '스마트한 독재자'라고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 인식을 지닌 사람을 대통령은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밀고 있습니다.


수십 년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나 역시 앞으로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바 있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주변 사람들 역시 검찰개혁은 이제 물 건너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검찰이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유시민 작가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하였던 민주자유당이 떠올랐던 건 아마도 현 시국이 그와 비슷한 까닭일 테지요. 무척이나 덥고 지루한 날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침함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을 무가치하게 만든 현 정치권과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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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단편선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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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뜸해진 자리엔 무더위가 자리를 잡았다. 잦아진 기상이변 탓인지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이 가장 나기 쉬운 계절이 여름이었는데 이제는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여름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계절이 되고 말았다. 살인적인 더위와 게릴라성 폭우는 매년 그 강도를 더하고 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대책은 없는 게 현실이다. 그저 침수 피해를 입은 이재민에게 지급되는 일시적인 성금과 보여주기식 복구 활동이 그들을 위한 과분한(?) 성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느린 듯하지만 화살보다도 빠른 한 해 한 해를 살아내고 있다. 무성의한 이웃과 가혹한 하늘을 원망하면서.


소담출판사에서 출간한 <도스토옙스키 단편선>을 읽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나는 그의 작품 대부분을 읽어보았다, 청소년기의 어느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나는 꽤나 깊은 우울과 인생에 대한 회의감 속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우리의 삶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 시기에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그가 겪었던 지독한 가난과 간질이 마치 나의 경험인 양 아팠다. 그 후에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문고판으로 나온 그의 작품들을 수시로 꺼내 읽곤 했었다.


<도스토옙스키 단편선>에 실린 작품은 '백야'를 비롯하여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첫사랑' 등이다. 그의 작품이 늘 그렇듯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를 통한 철학적 사색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일관적이지 않은 인간의 변덕스러운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책을 읽는 이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 되돌아보도록 한다. 자신의 모습을 곰곰 되돌아보지 않는 우리는 자신이 마치 신에 버금가는 대단한 사람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까닭에 도스토옙스키와 같이 탁월한 작가에 의해 간접적으로나마 지적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스텐카, 내가 모욕당한 것을 언제나 기억하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밝고 아늑한 행복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리라 생각하는가! 심한 비난의 말을 퍼부어 너의 가슴에 슬픔을 주고,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너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며, 행복한 순간에도 우울한 생각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네가 그와 함께 계단을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곱슬머리에 꽂은 그 부드러운 꽃 가운데 단 하나라도 짓뭉개 놓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오, 결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하늘이 맑게 개기를, 너의 사ㅓ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그리고 감사함으로 가득한 어떤 외로운 가슴에 네가 심어 준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대해 축복받기를!"  (p.114 '백야' 중에서)


'백야'에서 작가는 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소심한 한 남자를 등장시킨다. 어찌나 소심한지 연애 경험도 없고 단지 상상 속에서만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운하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보게 되고, 그녀를 괴한으로부터 구해 준 것을 계기로 가까워진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로부터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여인(나스텐카)을 위로하며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 남자는 자신의 소심함을 떨치고 그녀에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에 대한 미련을 남겨두었던 여인은 결국...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이성이 아닌 감정과 본능에 따라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에 상관없이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남자는 아내를 미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의 오해와 충돌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그는 긴 외투를 입고 G거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현장을 덮쳐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대체적으로 어제보다는 좀 더 강력하게 행동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금방 집을 찾아 입구로 들어섰다. 그때 외투를 입은 말쑥한 멋쟁이 차림의 한 형태가 그의 팔을 스치듯 가까이 그를 앞질러 3층으로 급히 올라갔다. 이반 안드레예비치는 비록 극장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멋쟁이 차림의 사나이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바로 조금 전에 본 그 말쑥한 차림의 멋쟁이 사나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한 층을 앞서 올라갔다. 마침내 3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왓다. 문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벨 소리도 없이 열렸다."  (p.157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중에서)


마지막 작품인 '첫사랑'은 열한 살 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어른들의 세상이다. 소년이 사랑하는 M 부인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철저히 숨기지만, 어린 소년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M 부인의 입장에서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소년이었지만, 소년의 입장에서 M 부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었고, 그런 까닭에 소년의 시선에서 M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결코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M 부인과 이를 지켜보는 소년. 첫사랑에 빠진 소년은 M 부인을 통해 어른들의 허영과 위선, 사랑과 고독을 감지한다.


"M 부인이 남편에게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마자 나는 바로 부인 옆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마치 그녀가 한 시간 전부터 같이 산보하자고 청해 놓은 것처럼, 마치 이미 한 달 내내 아침마다 그녀와 함께 산책이라도 해 온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인은 왜 그렇게 당혹스러워했을까? 또 사소한 거짓말을 할 때 도대체 그녀의 머리엔 무엇이 있었을까? 왜 그녀는 혼자 산보하러 간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제 나는 어떻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할지 몰랐다."  (p.225 '첫사랑' 중에서)


사회학 연구자인 이승연은 자신의 최근 저서인 <손절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체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삶,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와 공공의 책임을 해체하는 하나의 정치적 세계관이자 '문화'라고 규정했다. 내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까닭은 도스토옙스키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태도는 우리가 평소에 관계를 맺고 지내는 여러 관계의 간극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소심하여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 질투심에 불타는 남편, 소년이 연애 대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성인 여성 등 도스토옙스키가 설정한 소설 속 인물들과의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것은 별 이득이 없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한마디로 우리는 그들과 손절을 하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다양한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 사상에 물든 우리는 나에게 이득이 없는 관계는 곧바로 손절을 하는 바람에 나와 다른 타인을 연구하고 탐색할 기회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통하여 배워야 할 것은 관계를 통한 의미와 깨달음이지 단순한 손익 관계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손익 계산에 익숙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에 배척과 혐오로 일관한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경계를 넘어 배척의 이유가 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에게 고전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어떤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나와 다른 타인을 배척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세대를 배척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단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장마가 지나간 아파트 화단에는 말매미 울음소리가 시작되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낮잠을 자기도 어렵다. 나의 뜻에 반한다는 이유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배척하고 없애야 하는가. 저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이 악다구니를 쓰며 묻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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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왔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처음에 목표했던 지점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직면했을 수도 있고, 예기치 않았던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근접했던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기억들을 한두 개쯤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한 여운과 아쉬움을 삭이면서 말입니다. 평소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운동선수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사례는 종종 목격되곤 합니다. 프로 데뷔를 앞둔 시점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도박이나 성범죄 또는 음주운전과 같은, 사회로부터 지탄받을 범죄에 연루되는 바람에 결국 목표로 하던 꿈이 좌절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의 꿈이나 목표를 향해 달려왔건만 그것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또는 피곤을 무릅쓰고 장거리 운전을 하여 곧 집에 도착하려던 순간, 불의의 사고나 뜻밖의 소식으로 눈앞에서 그것을 놓치거나 이루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건 어쩌면 당사자의 긴장감이 풀어졌거나 이미 목적지에 도달한 듯한 착각 속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운명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어떤 사건이 발목을 잡는 경우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예정에도 없던 인생의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장마가 시작된 탓인지 후덥지근한 날씨가 사람의 기분마저 바꿔놓은 듯합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대기 중의 습기는 차츰 높아지나 봅니다. 그에 따라 스트레스 지수도 비례하여 증가하고 말이죠. 하늘이 멀끔하게 갠 시간에 서둘러 산책에 나섰습니다. 비가 내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도의 보도블록 위에는 은행잎이 흩뿌려져 있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에 나선 어느 할머니는 당신의 반려견이 새로 생긴 물웅덩이를 피하게 하느라 동동걸음을 칩니다. 예측 가능한 범위 내의 무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양솽쯔 작가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를 읽고 있습니다. 음식에 그닥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 대부분이 생경한 것이지만, 작가의 섬세한 표현만큼은 나무랄 데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움직여 창밖을 보았다. 열차가 마침 광활한 논을 지나고 있었다. 먼 곳도, 가까운 곳도 모두 황금빛 바다를 이루며 벼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논 너머에는 산이 있었다. 가까운 산은 푸르고 먼 산은 쇠붙이처럼 회색빛이 도는 파란색이었다. 산맥이 겹겹이 이어지고, 부드럽고 고요한 뜬구름이 곡선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다. 나는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달아오른 뺨이 천천히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때 샤오첸이 낮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음악 선율과도 같은 웃음소리였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웃음소리.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가슴을 눌렀다."  (p.265~p.266)


돌이킬 수 없는 여름입니다. 이 장마가 끝나고 나면 무덥고 습한 날씨가, 숨이 턱턱 막힐 듯한 더위가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우리는 그 사이 길거나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오고, 휴가지에서 보낸 고생담을 자랑스레 내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여행에서 돌아와 그 여행을 되새기는 데 있다'고 썼던 정여울 작가의 말처럼 여행의 되새김을 위해 우리는 그 힘든 여행을 매년 계획하고, 그 열기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에 우리의 인생처럼 갑작스러운 비가 한바탕 쏟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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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15만 부 리커버 에디션)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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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몇몇 추구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 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게 있다면 '추상적인 것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예컨대 '행복하게 살자'와 같은 추상적인 문장을 추구하거나 매달리기보다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 이를테면 산책이나 낮잠 등 때에 따라 다양한  어떤 것을 선택하여 실행에 옮기려 한다는 점이다. 나의 일상이 그렇게 흘러가면서부터 나는 대학생인 아들에게도 어떤 일의 선택 기준이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이따금 당부하곤 한다. 이를테면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단순히 어떤 의무나 관습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런 일은 하지 말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나중에 어떤 직장에 취업을 하고 출근을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100% 의무감 때문에 하고 있다면 이직을 포함하여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의 반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느냐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라도 그 일의 밑바탕에는 99%의 의무감과 1%의 재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리의 인생은 꽤나 긴 듯하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너무나 짧다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책에 담고 싶었던 세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결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둘째는 좋은 사람이 돼서 좋은 사람을 곁에 두었으면 한다는 것. 셋째는 결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들은 다 행복하기 위해 한다고 믿고 있고,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행복은 과연 어디서 나오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랑. 저는 행복이라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p.8 '작가의 말' 중에서)


김상현 작가의 에세이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는 출간된 지 적어도 5, 6년은 흘렀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신처럼 믿고 있는 책과의 궁합이 맞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며 권하더라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고, 한참이 지나 책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아, 이 아무개가 이 책을 권한 적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예정에도 없던 독서를 시작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이 책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매일 아침마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답은 언제나 똑같다. 또 그런 일상들을 보낼 것이다. 가끔 내가 그리는 미래에 닿았을 때, 그려왔던 모습과 다르면 실망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며 또 다른 답을 찾기도 하고 길을 찾기도 한다. 왜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주제가 온전히 나이기에 끊임없이 되묻고 깨닫고 갈망한다."  (p.165)


우리는 이런 종류의 책이 마치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이나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여 밤잠을 설치게 되는 결혼 적령기의 그들에게나 어울리는 책으로 분류함으로써 자신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하루도 타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감정에 쏟는 에너지가 극심하여 체력이 남은 상태의 가뿐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날이 없는 까닭에 오늘의 나를 위로할 단 한 줄의 문장은 어느 날이나 필요한 게 아닌가. 마음을 가라앉혀 줄 힐링 에세이는 어쩌면 나의 마음에 건네는 한 병의 박카스가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로 인하여, 과도한 불안과 고민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으로 인하여 지친 우리 영혼을 위하여 우리는 영혼의 자양강장제를 한 병쯤 마셔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인생은 고통이다. 삶 자체는 고통일 수밖에 없다. 존재 역시도 고통이다. 우리가 죽음으로 회귀하는 동안 살아내야 하는 저항값이 고통인 것이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고통 받는 건 당연하다. 허나 고통을 회피하는 건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아가고 흘러가기 위해서 많은 것들에 부딪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환경일 수도, 체제일 수도 있다."  (p.214)


늦은 장마가 시작되면서 하늘은 연일 어둡거나 희미해지고 있다. 몸에 닿는 바람도 전처럼 건조하고 상쾌하지가 않다. 눅눅하고 끈적한 공기가 번번이 의욕을 꺾는 바람에 휴일이면 온통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의 원심력에 한없이 휩쓸린다. 우리를 강한 인력(引力)으로 빨아들이는 과거의 기억들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대기 중의 습습한 알갱이들마다 나를 붙잡는 기억들로 가득하다. 습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는 맥을 못 추고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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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부터 늦은 장마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중부지방은 소나기 예보만 간간이 들릴 뿐 본격적인 장마 소식은 전해지지 않은 듯합니다. 한낮 기온은 여전히 높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습습한 기운이 스며 있습니다. 장마가 오기도 전에 대기 중의 습기가 보란 듯 먹구름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듯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는 건 생각만 해도 시원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비가 쏟아진 뒤의 습기는 텁텁한 더위와 함께 괜한 짜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곧 소서(小暑 7월 7일)입니다. <제철 행복>을 쓴 김신지 작가 역시 소서 절기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작가의 소서 풍경을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정류장 곳곳에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가 보일 무렵이면 소서다. 산책로에는 피고 지길 반복하며 100일 동안 붉은 꽃을 보여주는 백일홍 나무도 꽃송이를 열고 있다. 오래도록 피는 능소화와 백일홍은 우리와 함께 여름을 나는 꽃. 그래서 기념사진 속에 찍힌 행인처럼 여름날의 추억 속에 종종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올해 첫 능소화를 목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긴 장마가 시작된다. 시골에 있는 부모님은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면 논둑 밭둑을 정비하느라 장화를 신고 집을 나설 것이다. 제주에 사는 친구는 그치지 않는 빗소리를 들으며 종일 제습기를 돌리고 있겠지. 소서와 대서 사이, 장마가 만들어내는 풍경 아래서 저마다 다르게 비를 만난다."  (p.162)


내가 매일 아침 오가는 등산로의 산어귀에는 달개비가 무성합니다. 머지않은 시기에 남빛 달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겠지만, 나는 이맘때만 되면 무성한 달개비 잎에 눈길이 가곤 합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달개비는 한낱 잡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남빛 달개비꽃이 아침이슬을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나는 모습을 본 이는 그 자태에 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달개비꽃에 대한 황동규 시인의 묘사를 옮겨보면 그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황동규, '풍장58' 중에서)


7월입니다. 엊그제인 듯 새해를 시작했던 우리는 벌써 한 해의 반을 지나쳐왔습니다. 그렇게 헉헉대며 이 여름을 보내고 나면 왠지 모르게 허한 가슴으로 한 해를 다 흘려보낸 듯 느낄 테지요. 우리는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는 있지만, 자신의 결승점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오늘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나와 같은 도시내기에게 절기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만 나는 이따금 우연히 마주하는 절기가 옛 사진을 보듯 반갑습니다. 곧 소서(小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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