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도 지난 주말,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때마침 비가 내린다. 여기저기 초록이 짙어지고 있다. 떡갈나무 잎사귀도 손바닥만큼 자라 등산로는 온통 초록의 물결이다. 삶이란 언제나 '제로섬 게임'인지라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는 게 순리, 다만 우리의 인식은 두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고 어느 것 하나를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기대했던 수익을 거뒀다면 그것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이 잃었던 것들(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거나 무리한 스케줄로 인한 건강 악화 등)에 대해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사실. 우리는 종종 죽음을 앞둔 이들의 절절한 고백을 마치 유언인 양 듣게 된다. 그러나 삶이 지속되는 한 운명과도 같은 인간의 우둔함은 피하기 어렵다.


마르셀 서루의 소설 <먼 북쪽>을 읽고 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던 것은 물론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추천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몇 가지 현실적 묘사는 우리에게 은연중에 소름을 돋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사태가 그저 픽션의 장치가 아닌,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임을 이미 알아버렸다. 우리가 이야기라는 장치를 헤쳐 가는 동안 발견하는 것은 통절할 정도의 공감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모든 언론이 기다렸다는 듯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다. 마치 선거 전에는 100% 잘하던 정부가 선거를 기점으로 180도 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손바닥을 뒤집듯 순식간에 표변하는 행태는 비단 언론에 그치지 않는다. 한때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대답이 30%대 중후반을 넘어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발표하던 여론조사가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2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에 당혹감을 느끼는 건 여당의 지지자들뿐만이 아니다.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이 선거에 상관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왔더라면 신뢰는 고사하고 욕이라도 덜 먹었을 텐데 이제는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으로부터 어떤 신뢰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언론사에 대한 신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말이다. <먼 북쪽>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아버지가 늘 말했듯이, 자궁의 원시 진흙에서 썰매를 타고 빠져나온 이후로 우리를 규정한 건 바로 결핍이었다. 치즈, 교회, 예절, 절약, 맥주, 비누, 인내, 가족, 살인, 울타리. 무엇을 행하고 만든들 모두가 결핍 때문이었다. 모두에게 돌아가기에 충분치 못하거나 부족하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투쟁하거나 투쟁에 실패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곡우가 딱 하루 지난 오늘 풍년을 예감하듯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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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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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읽을 책이 쌓인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배가 불러 결국 다 먹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라도 여러 반찬이 놓인 밥상은 언제나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처럼. 게다가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나 3권 이상의 장편 소설이라도 보일라치면 고되고 긴 여정을 앞에 둔 순례자처럼 괜스레 설레는 것이다. 최근에 나의 책상 위에는 다 읽어서 치워지는 책보다는 읽기 위해 새로 올려지는 책이 더 많았던 까닭에 책상은 수시로 난장판이 되곤 했다. 이 책 저 책을 꺼내 읽다가 읽던 쪽을 그대로 책상 위에 엎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름 남짓 위치를 바꿔가며 책상 위를 떠돌던 책이 허먼 멜빌의 대작 <모비딕>이다. 나는 김석희 작가의 개역판 <모비딕>을 앞에 놓고 책의 화자인 이슈메일과 함께 문제의 포경선 '피쿼드호'에 탑승하였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몇 년 전-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래도 좋다-지갑은 거의 바닥이 났고 또 뭍에는 딱히 흥미를 끄는 게 없었으므로,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p.43)


육지 생활에 염증을 느껴 뉴욕 맨해튼을 떠나 동부의 낸터컷에서 피쿼드호에 탑승한 이슈메일 일행은 추운 크리스마스 날 운명의 항해에 나선다. '신과 같은 남자' 선장 에이해브는 한쪽 다리를 잃고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했으며 모비딕을 향한 복수의 일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에이해브 선장은 무리한 항해를 말리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충고를 뿌리치고 모비딕을 끝까지 쫓는다. 대서양에서 출발한 배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그리고 마침내 태평양에 도달한 그들은 모비딕과 대면하게 된다. 


"나는 희망봉을 돌고 혼곶을 돌고 노르웨이의 마엘스트롬을 돌고 지옥의 불길을 돌아서라도 놈을 추적하겠다. 그놈을 잡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구 곳곳에서 그놈의 흰 고래를 추적하는 것, 그놈이 검은 피를 내뿜고 지느러미를 맥없이 늘어뜨릴 때까지 추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항해하는 목적이다... 나는 놈에게서 잔인무도한 힘을 보고, 그 힘을 더욱 북돋우는 헤아릴 수 없는 악의를 본다. 내가 증오하는 건 바로 그 헤아릴 수 없는 존재야. 흰 고래가 앞잡이든 주역이든, 나는 그 증오를 녀석에게 터뜨릴 것이다. 천벌이니 뭐니 하는 말은 하지 마라. 나를 모욕한다면 나는 태양이라도 공격하겠다. 태양이 나를 모욕할 수 있다면 나도 태양을 모욕할 수 있을 테니까."  (p.250~p.251)


1800년대에 쓰인 이 소설은 사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듯 어색하고, 대화에 있어서도 신파적인 요소가 다소 눈에 띈다. 그러나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명상을 각각의 인물에 투영하여 어색하지 않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소설은 존재적 가치를 지닌다. 게다가 실제로 포경선에 승선하였던 경험과 해군 수병으로 복무하였던 경험 등 파란만장했던 작가의 경험이 밑바탕이 된 까닭에 소설에서 작가는 포경업에 대한 지식적 탐색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지나간 네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아득한 곳에서 밀려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더욱 높게 일게 하라!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너와 끝까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의 한복판에서 너를 찌르고,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증오를 담아서 뱉어주마. 관도, 상여도 모두 같은 웅덩이에 가라앉혀라! 어떤 관도, 어떤 상여도 나에겐 소용없다. 저주받을 고래여, 나는 너에게 묶인 채 너를 추적하면서 산산이 부서지겠다. 자, 이 창을 받아라!"  (p.760)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어떤 관점에서 소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소설에 대한 평가는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시대적 배경과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현대의 관점에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를 평가한다는 건 여러 면에서 모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소설 <모비딕>이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읽힌다는 건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인간 본성과 불굴의 의지가 세대를 건너 감동을 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작살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p.403)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는 날. '인간은 누구나 작살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는 동안 10년 전의 세월호처럼 '죽음으로 급선회'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보름 남짓 내 책상 위에서 장식품처럼 뒹굴던 <모비딕>을 치우며 10년 전 오늘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과 많은 희생자들을 생각했다. 피쿼드호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였던 이슈메일. 화자인 이슈메일의 타임라인을 따라 전개되는 장대한 이 소설이 오늘따라 슬프게 읽혔던 것도, 보름 남짓 정들었던 책의 표지를 나도 모르게 쓰다듬었던 것도 소설 속에 쓰러져가는 세월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일 터. 하늘엔 뿌옇게 황사먼지가 떠돌고 나는 어쩌면 눈물 한 방울 흘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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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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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올랐던 선거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았던 만큼 집권 여당에 대한 반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선거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러나 높았던 선거 열기는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고 방송사의 개표 방송이 시작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고 말았다. 한 표의 권리를 행사했다고는 하지만 국민 각자가 선거에서 누릴 수 있는 더 이상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바라던 결과이든 아니든 그저 묵묵히 수용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 능동적인 유권자의 입장에 있던 모든 국민들을 무기력하게 했다. 미력하나마 국가와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 힘을 미칠 수 있다는 능동적인 입장에서 주어진 결과를 그저 묵묵히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수동적인 입장으로의 태세 전환을 요구받는다는 것은 영 마뜩잖은 일이었다.


"두 가지 비관적인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맹목적인 충동을 다 만족시켜주지 못해 삶은 늘 허기와도 같은 고통을 겪는다. 반대로 이 충동이 쉽게 충족되는 경우엔? 삶은 좌표를 잃고 무료함에 빠지게 된다.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 그리고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데서 오는 권태와 무료함. 인생은 어디로 가든 이 두 가지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p.187)


서동욱 교수의 저서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는 지금처럼 마음이 헛헛한 시기에 읽기 좋은 책이다. 정부의 실정과 무능함에 대한 분노가 투표라는 일회성의 행사를 통해 분출된 후 과도하게 흘러넘치던 에너지는 사막의 와디처럼 말라 있었다. "당신은 폭우로부터 가뭄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서 비롯된 날씨를 만든다는 착상은 서강대 철학과 교수인 서동욱에게 이른다. 국내 최고의 들뢰즈(Gilles Deleuze) 사상 연구자이자 시인과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 문학, 미술, 영화 만화, 게임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자신이 정한 마흔 편의 소제목에 철학적 재미를 더한다.


"AI는 문학 작품이든 미술품이든 만들어낸다. 이는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고, 홀릴 수 있으며, ‘유혹’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핵심은 작품의 수준이 높냐 아니냐, 독창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유혹이 예술의 영역에 그칠까? 일단 유혹의 기술을 배우면 그 적용 범위는 한없이 넓어진다. AI가 유혹의 문제라는 것은, AI가 칵테일이나 요리 레시피에 대해서까지 독자적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최고의 레시피를 제공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최고의 기준인지 우리는 결코 답하지 못한다. 관건은 AI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며 인간을 유혹할 것이고, 결국 적응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p.168)


1부 '우리는 성숙할 수 있을까', 2부 '세상을 견뎌내기 위하여', 3부 '위안의 말', 4부 '예술과 세월과 그 그림자'의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무엇보다 철학적 설명을 위한 다양한 영역의 소재를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이를 통하여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철학이라는 영역은 사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책을 읽다가도 자칫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한눈을 파는 독자를 저자가 끝없이 유혹하지 않으면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더라도 철학 분야의 서적은 앞의 몇 장만 손때가 묻어 더럽혀졌을 뿐, 나머지 부분은 처음에 구입했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깨끗하게 유지되는 게 일반적이다. 책에 실린 몇몇 소제목만 예로 들어도 저자의 노력을 알 수 있을 듯하다. '기생충의 예술과 철학', 남녀관계는 평생의 학습을 요구한다', '인공지능과 인공양심', 서유기와 혹성탈출의 정치' '유머', '혼밥', '환생 이야기', '레트로 마니아 또는 수집가' 등 저자가 늘여놓은 관심의 촉수는 다양하고 넓은 세대에 걸쳐져 있다.


"산책에는 삶의 중요한 진실이 있다. 산책에는 단조로움과 새로움이 결합해 있다. 달리 말하면 반복과 반복을 통해 얻는 새로움이 결합해 있다. 늘 똑같은 길로 들어서지만 그것은 늘 새로운 하루이다. 이것이 일상의 구조 자체라는 것, 반복이 새로움의 조건이라는 것은 산책의 귀중한 동반자인 우리 집 강아지가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매번의 산책이 세상에서의 첫날인 것처럼 구름이는 너무 신나서 걸어간다. 산책이 그렇듯 반복이 새로움이 아니라면, 일상은 그저 형벌일 것이다."  (p.180)


많은 사람들이 철학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까닭은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난해함 때문이 아니라 철학이 우리의 삶에 대한 어떠한 질문에도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열이면 열, 각자의 삶이 제각각인 것처럼 그에 대한 해답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철학은 결국 우리들 각자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알려줄 뿐 각자에게 맞는 수백, 수천 가지의 해답을 각자에게 떠먹여 주듯 일일이 알려주지는 못한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어떤 현상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미지의 세상에 대해 가눌 수 없는 호기심을 갖는 동물이다. 결국 우리는 죽을 때까지 질문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면 우리는 언제나 바른 대답, 긍정적인 해답을 내놓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화창하고 따뜻한 오늘의 날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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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을 앓는 건 아니지만 휴일 다음날의 시간은 유독 천천히 흐른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휴일의 피로가 다음날인 월요일까지 연장되기도 하고, 달라진 생체 리듬 탓에 적응하는 데 힘든 측면도 있고. 그러나 인간의 적응력이란 때론 놀라운 것이어서 몸도 마음도 한껏 무거워졌던 시간을 어찌어찌 견디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럭저럭 견딜만 한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물가도 크게 오르고 경제상황도 악화되다 보니 정치권 인사들이 점점 코믹하게 변하는 듯하다. 먹고사는 문제가 팍팍한 까닭에 얼굴에서 오래전부터 웃음기가 사라진 국민들에게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한 그들만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인 듯 싶기도 하고. 예컨대 이런 것이다. 기상 예보 시간에 미세먼지 농도가 1마이크로그램까지 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해 파란색 글씨로 아라비아 숫자 1을 크게 보여주었더니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최고 수준의 징계인 '관계자 징계'를 의결하는가 하면, 9주년을 맞은 '복면가왕'이 비례정당인 조국혁신당의 번호와 같다며 방송을 다음주로 연기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4·10 총선에서 투표소 내 대파 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아무리 국민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기로서니 이런 식의 무리한 설정으로 국민들을 웃기려 들다니...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 수준을 어찌 보고...


외국에 사는 지인들은 현지 방송국의 뉴스에서 보도되는 우리나라 소식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한다. 부끄러워서 말이다. 한때는 대한민국의 위상 덕분에 어깨를 펴고 다녔는데 불과 1,2년만에 이렇게 국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고 다들 혀를 쯧쯧 찼다. 국내에 사는 우리는 오히려 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데 외국에 사는 교민들은 제2의 IMF 외환위기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는 웃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이 제발 국정을 진지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정치권의 능력이 부족하면 천공과 같은 무속인을 전면에 내세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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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 (10만부 기념 행운 에디션)
박여름 지음 / 히읏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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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뭔가 급하게 서둘러야만 할 것 같고, 꼭 해야 할 일을 지금 내가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곤 한다. 나의 생각이 말(言)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말(言)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형국. 사람의 말(言)이란 묘한 구석이 있어서 오래 쓰다 보면 오히려 나의 생각보다 앞서서 끌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게 마련이다. '사랑해'라고 조용히 읊조리면 차갑기만 하던 손끝으로부터 미지근한 온기가 가슴을 향해 시나브로 밀려오는 것처럼.


박여름의 에세이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는 앉은자리에서 두어 시간이면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날개에서 찾을 수 있는 작가 소개글에는 '자주 울고 자주 웃는 사람/앞으로도 그러며/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문구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을 뿐 어떠한 신상 정보도 실려 있지 않았다. 다만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작가의 나이를 어렴풋이 짐작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불안, 알 수 없는 슬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새로운 만남 등에 대하여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쓰고 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작가는 지금 푸른 청춘의 관문을 통과하고 있거나 그곳으로부터 멀리 지나쳐오지 않았을 듯하다.


"말이 어떤 이의 마음에 닿아 새싹을 틔우는 거름이 되기도 하고, 잘 자라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불씨 남은 담배꽁초 따위가 되기도 한다. 살아가며 우리가 할 일은 내 삶의 꽃을 피우는데 방해가 되는 꽁초나 쓰레기를 제때 줍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장식용으로 쓸 수 없다. 그런 환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절대 예쁜 꽃을 피울 수 없다."  (p.183~p.184)


작가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50여 가지의 소제목에 자신만의 감성과 철학을 담은 글을 덧붙임으로써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처진 어깨를 바로 세우고, 갈라진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준다. 사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은 그 시절의 감성에서 멀어진 까닭에 아련한 추억으로만 기억될 뿐, 작가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작가의 충만한 감성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생각에 공감하게도 된다.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좋은 사람은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 편해지자고 남에게 상처 줘서도 안 되지만, 남을 위해 나를 울려서도 안 된다. 몇 번의 성장통을 겪으며 적절히 마음을 배분하는 것, 그러다 아주 가끔은 나를 더 챙겨도 괜찮은 것, 그게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p.213)


지나고 보면 젊은 시절은 정말 빛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갔음을 깨닫게 된다. 청춘이란 어쩌면 벼락이 치는 순간처럼 짧고 선명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귀한 순간을 아무것도 아닌 양, 하수구에 물을 흘려보내듯 너무도 쉽게 보내버리는 건 아닌지...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사랑도 하고,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청춘을 청춘답게, 청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처럼 나이가 든 꼰대(?)들은 누구나 비슷한 어법으로 훈수를 늘어놓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시련이나 아픔은 당사자에게는 타인과 견줄 수 없는 크나큰 상처이자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절망의 빙벽이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게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음을 깨닫게 된다.


"헤어지자는 얘기를 했을 때 그들은 모두 기회를 달라 말했고, 나는 돌아갔다. 하지만 사랑을 몇 번 해봤다면 모를 사람은 없지. 이미 한 번 문제가 생긴 관계는 구멍 난 풍선에 바람을 부는 꼴이라 언젠간 지쳐 다시 끝이 나게 되어 있다. 나는 그 풍선을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예쁘게 불고 싶었는데."  (p.18)


벚꽃이 피고 지는 계절. 거리에는 봄을 즐기려는 연인들로 가득하다. 변덕스러운 꽃샘추위를 견뎌온 봄은 이제 한낮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로 향하고 있다. 왔는가 싶었던 봄은 이처럼 빠르게 흘러 사라진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마냥 길게만 느껴지던 청춘의 관문도 지나고 나면 흩날리는 저 벚꽃잎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 흔적만 겨우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가는 봄이 아쉬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그 헛된 수고가 매년 봄마다 이어지고 있다. 박여름의 에세이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는 마음이 헛헛한 사람들을 다독이며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봄이 가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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