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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생공부 - 천하를 움직인 심리전략 ㅣ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나관중 원작 / PASCAL / 2025년 10월
평점 :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어렵다고 느끼는 건 바로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보아도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 그것은 곧 내가 예측하는 상대방의 반응이 항상 어긋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작 문제는 나의 예측과 다른 상대방의 반응에 짜증이 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세상이 내가 예측하는 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세상은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항상 불만투성이의 갈등 국면만 초래할 뿐이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 직책이 올라갈수록 인간의 심리나 행동에 대해 기술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한참이나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인간관계를 점검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 지식을 진즉에 배워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난 후에나 겨우 움직이는 것이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사람에게 있는 공통의 본성이나 중복되는 특성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것처럼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이에게 늘 짜증이나 내고 나의 생각만 고집하였던 것은 얼마나 유치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었던가. 가수 양희은의 에세이 <그럴 수 있어>를 읽으면서도 나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직장이나 비즈니스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명확히 알고, 적절한 조언을 받아들이며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장기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 自知者明)", 즉 남을 아는 지혜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p.145~p.146)
인문학자 김태현이 엮은 <삼국지 인생 공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삼국지> 속 인물들이 당시에 처했던 상황적 배경을 살펴보고, 그들의 심리와 결단을 추적하며, 그로 인하여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사실 과거의 역사나 고전 문학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현대인에게 맞는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엮은 책은 지금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어떤 한 인물의 영웅담에 가까운, 말하자면 그 인물의 언행이나 지혜를 모은 잠언집에 가까운 책들이었다. 그러나 김태연의 <삼국지 인생 공부>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이 남긴 명문장을 발췌하여 그 말이 나온 배경과 의미, 그것으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설명함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는 현대에 맞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음은 물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강구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고 하겠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각자의 '인생 삼국지'를 치르고 있습니다. 경쟁과 협력,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조조처럼 결단하고, 유비처럼 사람을 모으며, 제갈량처럼 최선을 다하고, 사마의처럼 인내를 갖고 세상의 흐름을 파악해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끝에 다다라서는 결과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고, 그 과정에서 진심을 다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p.350 '에필로그' 중에서)
사실 '삼국지'는 하도 많이 들어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책이지만 원작자인 나관중의 '삼국지'보다는 만화가인 고우영이나 국문학자 고정욱, 소설가 이문열, 역사학 강사 설민석 등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고 각색됨으로써 오히려 원작자인 나관중의 원본 '삼국지'는 구시대적 유물이 된 느낌이다. 게다가 '삼국지'는 주로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대강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원작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을 찾는 일도 쉽지 않게 되었다. 책이 귀하던 과거에는 거실 장식장을 꾸미기 위한 장식용이든 아니면 삶의 지혜를 배우기 위한 용도이든 웬만한 집에서는 '삼국지' 한 질이 보란 듯이 꽂혀 있어서 어린 시절에 '삼국지'를 읽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는데 말이다.
""언필행, 행필과(言必行, 行必果)"는 자기 신뢰를 세우는 핵심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작은 실천들은 내면의 자존감을 키워주며, 남들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아무리 작고 소박한 말이라도, 끝까지 지켜낸 말은 사람의 신뢰를 얻고,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p.243)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식보다는 지혜가 필요할 때가 많다. 결국 우리는 책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할 수는 있지만,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경험과 노력에 달렸다고 하겠다. 새로 입사하는 젊은 후배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 세상이 심히 걱정되고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듯한 이기주의적 관점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과연 개인주의라고 치부하는 게 옳은 일일까. 나는 가급적 젊은 후배들에게 잔소리처럼 들릴까 우려하여 일체의 조언을 삼가는 편이다. 사실 조언이라는 건 말이 좋아 조언이지 사람들과의 관계만 악화시킬 뿐 장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조언을 마음을 터놓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젊은 사람들이 읽고 곰곰 생각해 볼 만한 책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