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뜻 나서기 어려운 자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넉살이 좋고 유들유들한 성격의 사람도 내키지 않는 자리는 언제든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대개 얼굴을 마주하기 힘든, 관계가 불편한 사람이 한두 명쯤은 참석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무리 불편한 자리일지라도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는 그 시간만 견디면 된다는 생각으로 참석하게 되지만,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할 사이라면 참석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나와 사이가 껄끄러운 사람의 참석 여부를 모임이 있을 때마다 묻는다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나빴던 관계를 복원하는 일인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야 말이죠. 나도 이따금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 주십사 초청을 받게 되면 그와 같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개인의 사적인 모임도 이럴진대 대통령이나 외교관처럼 국가를 대신하여 어떤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의 부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요 며칠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지난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의 행보에 비하면 괄목상대의 변화이겠습니다만 그게 어디 매 순간이 즐거워서 임했던 것이겠습니까. 물론 대통령이라는 큰 권한을 주었을 때는 그에 맞는 의무가 함께 주어지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윤석열이나 김건희가 했던 외교 행보를 되돌아볼 때 그들은 정말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국가의 명예나 이익보다는 그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재명이 당선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소한 무렵의 이맘때면 일 년 중 가장 추울 때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추위는 때론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독서법의 고전'으로 불리는 에밀 파게의 저서 <단단한 독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자기애, 잡다한 정열, 소심함, 불만족한 정신. 이런 것들은 독서의 주적으로, 언제나 우리 안에서 비롯된다. 그 수가 많음을, 상당히 흉물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  (p.202)


책에서 작가는 느리게 읽기와 거듭하여 읽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허다한 현실과 마주하며 살고 있는 까닭에 느리게 읽기는 강조하되 거듭하여 읽기는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2026년의 1월도 벌써 7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누군가에게도 안녕을 전하고픈 저녁입니다.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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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7 1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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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이야기장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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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책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책을 읽는 일이 어렵다 보니 자연스레 책 읽기의 무용론도 뒤따른다.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한 미흡한 자기 합리화이자 책을 읽지 않는 자신에 대한 구차한 자기변명에 가깝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람에 독서의 무용론이 마치 정론처럼 대접을 받는 처지에 이르고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그런가?' 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이따금 귀를 기울이게도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을 포함한 몇 안 되는 독서인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글 속에는 풍부한 상징과 은유가 깃들어 있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사려 깊고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우주 속으로 진입하는 티켓이다. 기적은 늘 디테일 안에 있다. 감동도 늘 디테일 안에 숨어 있다. 꾹 참고 끝까지 읽어야만 끝내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p.57~p.58)


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처지도 아니다 보니 나에게도 가끔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이 당도하곤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어찌나 줄었던지 그런 질문을 받아줄 이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독서의 효용이랄까, 책을 읽는 목적이랄까 아무튼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의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독서를 통하여 추상적인 단어의 개념을 구성원 모두에게 정의에 근접한 방향으로 통일시킬 수 있음을 독서 효용의 1순위로 꼽곤 한다. 이를테면 자유, 평등, 사랑, 권리, 차별 등 우리가 나열할 수 있는 많은 추상어가 있지만 구성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는 열이면 열, 다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현상은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의 힘이 강해지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더라도 누구는 남녀 간의 짙은 애정행각이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행위를 '사랑'이라고 믿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적적인 몇몇 사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동체 내에서 일반어로 '사랑'을 언급했을 때, 구성원들이 이해하는 구체적인 의미는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갖는 추상어의 개념이 이렇게 다양해진 이유는 독서 인구의 소멸과 함께 영상 매체로의 급격한 쏠림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의 영상만 보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언론사의 영상만 구독하는 상황에서 영상 매체를 통한 구성원의 단결과 통합을 기대한다는 건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끝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간의 힘, 특히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다는 뜨거운 믿음,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기나긴 터널을 함께 건너는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믿음이다. 변화가 느리고 전망은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부디 서로를 향한 간절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기를."  (p.171)


정여울 작가가 글을 쓰고 이승원 작가가 사진을 찍은 책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팬데믹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지나온 기억을 떠올릴 테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따스하고 아름다웠던 환대의 순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 아물게 하는 사람의 온기와 다정을 모은 에세이이기 때문다. 1부 '따스하고 복잡하며 구슬픈 당신에게', 2부 '가장 아픈 시간은 끝났다', 3부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만 있다면', 4부 '사랑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다양한 종류의 환대에 대한 직, 간접적인 경험들이 소개되고 있다. 영상 매체와는 다르게 책이란 그래서 유익하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만 독자로 선택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조금씩 엇나가는 다양한 사례들이 가감 없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취사선택의 전권은 오롯이 독자에게 주어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추상어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정의'를 향해 수렴시킨다.


"우리는 자신의 가장 모난 부분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타인의 남다름을 이해할 뿐 아니라 기어코 남다른 삶을 콕 집어 살아낼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바로 여러분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요. 제 글을 사랑해주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계속 용기를 내어 쓸 수 있어요. 글쓰기는 작가만의 특권이 아니라 스스로 미숙한 아마추어라 믿는 사람의 열정적인 투쟁이니까요."  (p.11 '프롤로그' 중에서)


2026년에 맞는 첫 주말, 나는 딱히 내세울 만한 일도 없이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나는 후회나 반성 같은 건 따로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부터라도 나에게 조금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질책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호되게 나를 질책해 왔고, 수없이 많은 반성 속에 살지 않았던가. 이제는 그런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지 않기로 하자. 그런 작은 습관 한두 가지 고친다고 지난 삶이 바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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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몸을 앞질러 갈 때가 더러 있습니다. 성격이나 습관이라기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이랄까 아니면 강제적인 이끌림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지금처럼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의 어느 휴일, 지난해 10월이나 11월의 어느 날처럼 한껏 빈둥대며 몸이 원하는 만큼의 게으름을 피워 본들 하늘이 무너지거나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가정의 재정이 오늘 갑자기 파탄날 일도 아닌데, 나는 서둘러 일어나 의관을 정제한 후 책상 앞에 앉아 차분히 신년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고 맙니다. 불현듯 말입니다. 이런 일상을 원했던 것도 아니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빠져드는 것입니다. 삶이란 결국 어떤 일을 내가 하루 더 먼저 끝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하루 더 일찍 생을 마감한다면 결코 나아질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산책을 하다가 문득 아파트 화단의 조경수들을 보았습니다. 푸르르던 잎을 모두 떨구고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듯했습니다. 성마른 성격의 우리네처럼 어떻게든 이 계절만 견디면 좀 더 활동하기 좋은 다른 계절이 오겠지,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니라 자연은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입니다. 춥거나 더운 계절을 견디는 게 아니라 그저 담담히 흘려보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다른 계절과 다르지 않게 말입니다. 올해는 동장군을 핑계로 해돋이를 보기 위한 여행을 가지 않았습니다. 2025년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에도 나는 특별한 약속도 없이 조용히 귀가하여 특별한 의미도 두지 않은 채 일찍 잠들었던 것입니다. 여느 날처럼 말입니다.


제프 다이어의 에세이 <그러나 아름다운>을 읽고 있습니다. 글에도 박자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자신이 쓰는 글에 어울리는 특별한 박자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서 재즈를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작가는 마치 재즈 리듬처럼 문장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물건들이 탈색되고 있었다. 심지어 바깥 간판에도 창백한 초록빛 기운만이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이 점점 흰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큰 눈송이가 인도 위에 내렸고 나뭇가지를 뒤덮었으며 주차된 자동차들을 흰 담요처럼 덮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이라고는 없었고 그 누구도 다니지 않았으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도시가 이처럼, 한 세기에 단 한 번 잠이 든 그 시간처럼,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전화벨도 울리지 않았고 켜 있는 텔레비전도, 다니는 자동차도 없었다."  (p.54~p.55 '빌리 홀리데이의 또 다른 별명' 중에서)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한 해를 시작하려 합니다. 흐르는 시간을, 흘러가는 모습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려 합니다. 견뎌야 할 일이 있으면 견디고, 즐길 일이 있으면 즐기면서 말입니다. 화단의 조경수처럼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하게 그렇게 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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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 2026-01-03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내일 일은 난 모른다. 오늘을 살자. 욕심내지 말자. 버리고 갈 것만 생각하자.” 바뀐 다이어리 첫 장에 제가 써놓은 글귀입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무탈평안’ 하셔요~

꼼쥐 2026-01-04 16:45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는 박경리 여사의 묘소 길목 푯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쎄인트 님의 삶도 그렇게 홀가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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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익숙해지겠지만 새해는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다. 날짜를 말하거나 쓸 때에도 '2025'라는 이미 지나간 숫자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앞으로도 한동안 나는 '2026'이라는 숫자와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고 가는 한 해가 그러하듯 계절의 변화 역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잠시 금세 여름이 오고 그렇게 끝없이 더위에 헐떡이다 보면 가을인 듯싶다가 이내 겨울이 찾아오곤 한다. 너무나 긴 여름과 미처 계절을 감각할 새도 없이 흘러가버리는 여타의 계절들. 나는 이처럼 이상한 계절의 변화가 무척이나 낯설기만 하다. 이런 감각을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된 것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코로나라는 낯선 이름이 전 세계를 점령했던 2020년 초의 코로나 팬데믹 시기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으로부터 멀어지자 깨닫게 되는 사실들. 우리의 시야를 가장 흐리게 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존재하는 인간 이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오후, 시퍼런 냉기가 뚝뚝 흐르는 한파를 뚫고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그리고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을 마저 읽었다.


"나는 어렸을 때, 나중에 크면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쓰겠노라 생각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사랑 이야기를 쓰겠노라 생각했다. 멋지고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나중에 이제 그런 이야기는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고전 소설들의 핵심을 이루는 결혼 이야기 말이다.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이상 매력적인 줄거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마지막에 결혼에 골인한다고 해서 만사형통이 될 수는 없었다. 간음이 반드시 파멸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었고, 간통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었으며,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아를 해하는 열쇠도 아니었다. 문학은 그런 것들에 종지부를 찍었다."  (p.174)


소설의 화자는 맨해튼에 사는 소설가이다. 동창인 릴리의 죽음으로 인해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여러 명의 동창생들. 그리고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화자는 동창 친구 바이올렛의 지인인 아이리스 부부의 부탁으로 반려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게 된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아이리스 부부는 팬데믹 봉쇄령으로 발이 묶이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앵무새를 돌보기로 했던 한 대학생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만삭의 아이리스는 캘리포아에서 떠날 수 없었고, 급하게 '유레카'를 떠맡게 된 화자. 모든 관계가 차단된 시기에 '유레카'를 돌보는 일은 화자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아무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p.104~p.105)


화자는 뉴욕에 자원봉사를 온 한 의사가 거처를 구하지 못해 난처해하자 자신의 아파트를 내어주고 자신은 유레카가 있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돌연 사라졌던 대학생 '베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아오면서 화자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화자는 '베치'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던 까닭에 그와의 마주침을 최대한 피한 채 생활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탄 괴한과 마주친 화자는 그의 조롱과 위협으로 인해 외출조차 어려워지고 만다. 모든 게 순조롭지 않다고 여겼던 그 순간부터 '베치'와의 관계에 조금씩 숨통이 트인다. '베치' 역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나누고, 화자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네 통이나 사오는 등 서툰 방식으로 가슴을 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두렵긴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난 진짜로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간절히 원하는 건. 내가 실제로 가질 수 있는 것들 중에는요.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시간이 너무 많은 게 두려워요. 이렇게 모든 게, 모든 사람들이 엉망진창이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p.273)


<취약함(The Vulnerables)>이라는 원제를 갖는 이 소설은 팬데믹이라는 불확실한 시기에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취약함을 스스로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가치관을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몸을 도사림으로써 타인과의 깊은 관계 설정에 실패하기도 하고, 타인의 약점을 빌미 삼아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관계 맺기에 실패하기도 한다. 다정함이란 결국 나와 너의 '취약함'을 서로 애틋하게 여기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견고함은 상대방의 강인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가엾게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방 안에 갇힌 앵무새를 함께 돌보면서 발견하게 된 모든 존재의 취약함. 어쩌면 우리는 그 낮은 곳으로부터 관계를 맺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2026년의 첫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나는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출근을 했고, 가급적 외출을 삼간 채 하루를 보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이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조금씩 기온이 오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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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25년도 이제 오늘과 내일 단 이틀이 남았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세밑 무렵이면 언제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개중에는 꼭 필요한 고민들도 있을 테고, '굳이 지금?' 하는 의문이 절로 드는 생뚱맞은 생각들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밀린 숙제를 하듯 미뤄두었던 생각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버릴 건 버리고, 해결할 건 해결하기 위해 헝클어진 생각들을 정리합니다. 이런 시간이 닥칠 때마다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를 앞에 두고 곰곰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번 생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거창하게 역사적 소명이나 책무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하여 어떤 확고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남은 삶을 계속하여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삶을 살아갈 이유나 명분 같은 것이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내가 이번 생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아주 먼 과거에 이미 주어졌었거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먼 미래에 주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이번 생에서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영영 풀지 못한 채 그것을 다음 생으로 미루고야 말겠구나 하는 낭패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의 저변에는 현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인간은 코앞에 닥친 문제만 겨우겨우 해결하느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를 조망하고 해결하는 일은 손도 댈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말하자면 대다수의 인간은 현실에 매몰된, 어쩌면 현실을 현실로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시간 열외자의 입장으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계획할 수 없는 까닭에 내가 참여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암흑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40세 정신과 영수증>이 떠오릅니다. '정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이 40여 년간 모아 온 영수증과 그 뒷면에 적어 내려간 삶의 기록입니다. 정신 작가는 23세부터 매일매일 영수증을 모아 왔다고 합니다. 그 사이 모은 영수증은 2만 5천 장-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20대를 보내던 정신 작가는 어느덧 40대가 되었습니다. 30대엔 단 한 사람을 만나 단단한 일상을 꾸릴 것 같았지만 40대의 인생도 여전히 막막하고 흐릿하기만 합니다.


"설렁탕을 한 그릇 먹고/성당에 찾아가/감사기도를 하는데/눈이 시렸다//나의 아빠가/눈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엄마의 남편도 아니었던 것 같고/나의 아빠도 아니었던 것 같은/그의 삶에 눈이 시렸다// 2017년 9월 8일 오후 1시 48분/설렁탕/13.00$/GAMMEEOK"  (p.80)


내가 이번 생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아주 먼 과거에 주어졌지만 무심했던 내가 까맣게 잊었거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먼 미래에 주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코앞에 닥친 크고 작은 문제를 처리하느라 현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2025년 한 해에 풀어야 했던 숙제도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단 이틀을 남겨둔 2025년의 세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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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12-30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럴땐, 1주일, 한달, 일년이란 단위로 시간이 주어지는게 유익하단 생각이 드네요.

꼼쥐 2026-01-02 16:14   좋아요 1 | URL
보이지 않는 시간에 공간성을 부여함으로써 인간은 시간의 경과를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인간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서곡 2026-01-01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꼼쥐 2026-01-02 16:14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서곡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힐 2026-01-02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5년,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 했습니다.
2026년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열심히 읽겠습니다. ^^

꼼쥐 2026-01-03 07:09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 역시 마힐 님의 글을 읽으며 지난 2025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아름다운 글과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