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더위에 지친 많은 이들의 상상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가상의 세계를 떠돌던 가을은 아주 잠깐 현실에 착지하였다가 느긋하게 숨을 돌릴 만한 여유도 없이 스러져, 초겨울의 추위를 달가워하지 않는 많은 이들의 여운이나 회상 속에서 다시 유령처럼 떠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1년의 하반기를 장악하다가 크리스마스나 송년 회식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가을은 우리의 기억에서 길게 머무르는 계절입니다. 왔나 싶으면 어느새 사라지는 봄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입니다. 겨울 추위가 길고 매섭게 닥쳐올라치면 가을의 잔상은 유성의 꼬리처럼 더욱 길게 이어지곤 합니다.


무르익는 계절과는 다르게 최근 들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진보 진영 인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차가운 현실이 결코 달갑지는 않겠지만 계절의 순환도, 민심의 변화도 때가 되면 바뀌게 마련인 듯합니다. 회자정리라고나 할까요. 달도 차면 기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이유는 각자가 다를 테고, 서로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그 속을 뜯어보면 천차만별일 텐데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호사가들은 제 나름의 분석을 내놓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은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릴 방안을 궁리하는 게 아니라 어찌하여 연일 같은 진영을 향해 고강도의 공격을 멈추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게 중론입니다. 물론 진보 진영의 여러 인사들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던 건 사실이지만 이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무극파(무책임한 극단주의자)라는 둥 '능력도 안 되면서 큰 자리를 요구'한다는 둥 '혈세로 호사 누리면서도 서민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정치인'이라는 둥 연일 강한 어조로 비난한다는 건 대통령 자신이 속 좁은 좀생이 정치인이라는 걸 자인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니 대통령은 정당한 비판마저 참지 못하는 밴댕이 소갈딱지의 정치인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고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할 수밖에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대통령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왜 그런 미련한 짓을 계속하는가에 대한 10인 10색의 분석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일반적인 정치 평론가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물론 이것도 역시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일 테지만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에는 평생을 비주류로 살아온 대통령의 열등의식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주류, 대체로 그들은 보수지향적이면서 대대로 권력과 부를 누려왔던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갈망으로 대통령 자신도 그들 집단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그러자면 대통령은 자신의 비주류적 문화와 자신에게 내재한 열등의식을 말끔히 씻어내고 그 결과에 대해 주류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위 기득권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진보 진영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사상 역시 그들과 다르다는 걸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분세탁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동안 자신에게 덧씌워졌던 비주류적 신분을 걷어내고 주류 소망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진보 진영 인사들의 찌질함에 대해 한껏 비난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작금의 여러 말이나 행동들이 대통령 자신이 진보 진영의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기득권 집단에게 증명하고 있는 단계인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퇴임 후 당신들과 같은 집단에 속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겠지요.


대통령의 이와 같은 태도를 우리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주류에 속하고자 하는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말입니다. 다만 주류 집단의 이너 서클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성장 배경에서 습득한 그들만의 문화에 녹아들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을 통해 그 집단에 편입되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그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집단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걸 감안한다면 대통령 역시 지금보다 더 치열하고 비열한 짓을 서슴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 이면에 있는 원초적인 욕망을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가상의 세계를 떠돌던 가을이 현실에 착지한 이 짧은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요즘입니다. 백조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미운오리새끼의 철없는 행위에 마음 상하지 말고 이 아름다운 계절을 맘껏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알차게 사용하는 일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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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의 여름
루시 스티즈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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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주장에 의하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All Life is Problem Solving)'라고 귀결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생각할 때 도무지 삶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속성이나 행동을 그 누구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의 불행은 그곳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평생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지낼 뿐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게 모든 불행의 씨앗이다.


"삶은 한 치씩 꾸역꾸역 나아갔고, 그녀는 살아 있었다. 부당하게도, 미치고 팔짝 뛰게도 그녀는 살아 있었다. 어떤 날에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차라리 자신이 죽었더라면 좋았을걸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살금살금 흘러갔고, 매 순간 주위로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p.388)


영국 작가 루시 스티즈의 소설 <에티의 여름>을 읽었던 건 지난 추석 명절의 연휴 기간 동안이었다. 그닥 길지 않은 연휴였지만 오고 가는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꺼내 읽곤 했다. 학계에 몸담고 있던 평범한 연구원이었던 작가가 소설이 쓰고 싶어 1년 동안만 집필에 몰두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후 12개월 만에 나온 초고가 억대의 선인세와 두 권의 출간 계약이라는 이례적인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된 것도 놀랍지만 연구원에서 소설가로 전업한 지 단 1년 만에 한 편의 원고로 영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신인이 된 것 역시 경이적인 성과라고 하겠다.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섬세한 묘사 그리고 잘 짜인 구성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책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소설의 잔상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곤 했다.


"왜 시간은 거꾸로 흐를 수 없을까? 왜 이미 일어난 일을 전부 되돌릴 수 없을까? 지난 3년의 실타래를 다시 감아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으리라. 형과 어머니를 집에 가둬두고 온갖 방법으로 둘을 해치려고 모의하는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인생은 교묘한 함정을 너무 많이 감추고 있다."  (p.112)


소설은 신생 잡지사의 기자인 조지프가 유명한 은둔 화가 타르튀프로부터 달랑 "오라(Venez)"는 한 단어만 적힌 편지 한 장을 들고 그가 사는 프로방스 지역의 외딴 농가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20년, 전설적인 화가 타르튀프는 세상과 단절한 채 그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를 돌보며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은 조카인 에티뿐이었다. 에티는 조지프를 새 그림의 모델이라 둘러대며 집 안으로 들인다. 그렇게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오전에는 '오렌지를 든 청년'의 실제 모델이 되어 타르튀프의 화실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지만, 오후에는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소일할 수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이었다. 일곱 살에 엄마를 잃고 삼촌인 타르튀프의 삶을 보조하면서 외롭게 성장했던 에티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전쟁을 겪지 않았던 조지프. 두 사람의 상처는 다른 듯 닮아 있다. 타르튀프로부터 도망쳐 사랑하는 사람과 미국행을 선택했던 에티의 엄마는 끝내 죽음이 되어 돌아왔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어린 에티는 스스로의 힘으로 글을 익히고, 요리를 배우고, 삼촌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왔다. 삼촌은 에티의 완벽한 보조 덕분에 오직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그의 그림은 비싼 가격에 팔렸다. 반면 매사에 유능했던 형 루퍼트가 자진하여 전쟁에 나갔던 반면 조지프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대에 들어가 그림을 배운다. 전쟁이 끝나고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안은 채 귀가한 형과 독감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조지프는 미대를 그만두고 작가가 된다. 비겁한 겁쟁이라는 질타는 그의 마음에 온전한 짐으로 남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자랐던 에티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에티는 결국 전쟁이 한참이던 시기에 삼촌을 속이고 간호사로 참전한다. 그곳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던 중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와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시 삼촌 곁으로 되돌아온다.


"짓이겨진 몸뚱이를 보고도 몸서리를 치거나 숨을 헉 들이쉬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자부심의 징표였다. 그녀는 자신의 의연한 태도가 그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절대 손이 떨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움찔하거나 눈앞의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삶과 죽음이 떼려야 뗄 수 없이 뒤엉킨 현장이었다."  (p.364)


"아미르와 함께 언덕에 서 있던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엄마가 느꼈던 충동을 이해했다. 도망치고 싶은 욕망.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욕망. 엄마가 미국에 묻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죽어서까지 다시 생 오귀스트로 끌려왔다는 사실이 어딘가 서글펐다. 엄마는 끝내 생 오귀스트를 벗어나지 못했다."  (p.380)


타르튀프의 눈을 피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이해하며 사랑을 키워가던 조지프와 에티. '오렌지를 든 청년'이 완성된 후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던 조지프는 비로소 타르튀프의 비밀과 에티의 감추어진 재능을 발견한다. 그것은 어쩌면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 타르튀프의 비겁한 폭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유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삼촌을 보조하면서 허드렛일만 강요받았던 에티였지만 그녀는 끝내 자신의 힘으로 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삼촌의 눈을 피해 아슬아슬한 사랑을 일궈가는 두 사람. 에티가 타르튀프의 그림을 불태우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그 그림이 도매상에게 버젓이 인계되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조지프. 두 사람의 사랑과 불타버린 그림에 대한 비밀은 어떤 방식으로 밝혀질까?


가을이 깊어지면서 독서에 대한 열정도, 소소한 일상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욕심도 시나브로 옅어지는 느낌이다. 뜨거운 열기 탓에 바깥에서의 일상이 도통 궁금하지 않았던 지난여름과는 달리 숲의 변화도,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도, 저무는 햇살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어느 것 하나 궁금하지 않은 게 없다. 어제는 시골에 가서 떨어진 알밤을 한 되쯤 주워 왔다. 밤을 삶는 일도, 껍질을 벗겨 속살을 발라내는 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밤을 줍기 위해 피곤한 줄 모르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이렇게 밖으로만 나돌다 보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길 일이 도무지 없겠다 싶었다. 읽었던 모든 책에 대해 리뷰를 남길 자신은 없지만 가슴에 남는 어떤 책은 책을 읽었다는 작은 표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 문구의 스탬프를 찍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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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새 아침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런 급격한 변화가 그닥 반갑지 않은 듯 짬이 날 때마다 불평처럼 계절 이야기를 했다. 근처 공원에는 여름의 한 귀퉁이에서 불거져 나온 듯한 가을 한낮의 햇볕을 쬐기 위해 등이 굽은 할머니들이 모여들었고, 그런 할머니들 주변으로 먹이를 탐하는 비둘기 떼가 포릉포릉 날아들었다. 세월을 한참이나 거슬러 오른, 물기가 쏙 빠진 건조한 이야기들이 넋두리처럼 허공에 오갔고, 저마다 자신의 추억을 말하느라 누구도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다만 잎이 떨어지는 벚나무 위에 앉아 있던 박새 한 마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듯 이따금 고개를 까딱거리며 공감을 표하곤 했다. 세월의 무상함은 기온이 떨어지는 속도에 비례하여 쓸쓸하거나 허전한 느낌을 더해가는 듯했다.


짧은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더께로 쌓인 피로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많은 조언을 들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만족해하며 얼굴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날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나 역시 그들을 향해 억지웃음을 흘릴 수는 없었다. 제시카 아우의 소설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를 읽고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잔잔한 분위기 탓에 독자인 나 역시 깊이 가라앉는 경험을 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엄마를 생각했고 언젠가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어느 날,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 집에 단 한 가지 임무를 위해, 엄마가 한평생 쌓아온 소유물을 정리해 모두 치우고 꾸리러 언니와 함께 가게 될 것을 생각했다. 그 집에서 발견할 온갖 것들을 생각했다. 패물과 사진 앨범과 편지와 같은 사적인 물건도 있겠고, 꼼꼼하고 잘 정돈된 삶의 표지도 있겠지. 계산서와 영수증, 전화번호, 주소록, 세탁기와 드라이어 사용 설명서 같은. 욕실에 있을 반쯤 쓴 향수와 크림이 든 유리병과 용기. 엄마가 매일 치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길 그리도 꺼리던 의식의 흔적. 언니는 어김없이 질서정연한 자세로 임하며 간직할 것, 기증할 것, 쓰레기로 처리할 것, 세 가지 더미로 모든 걸 정리하자고 말할 것이다. 난 동의하겠지만 끝내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다만 그 이유가 감상이 지나쳐서일지 부족해서일지는 알 수 없었다."  (p.126~p.127)


요즘처럼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날씨에 산을 오르는 일은, 비가 적당히 내리는 날 등산을 하는 것에 비해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경사로에서의 마른 모래와 자갈에 쉽게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싹 마른 낙엽 더미도 사람들을 쉽게 넘어뜨리곤 한다. 선선하고 건조한 날씨가 등산에 최적인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복병이 언제나 숨어 있게 마련이다. 사실 중대한 부상은 최적의 조건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놓을 때 발생하곤 한다.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요즘, 긴장의 끈을 완전히 내려놓는 순간 오늘 아침 강원도 산지에 내려졌던 한파주의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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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0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능력있는 사람은 화수목 월차 사용해서 길게 휴가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요즘 같은 불황기에 구럴 베짱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해 집니다.
요즘 일교차가 심하니 꼼쥐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꼼쥐 2026-10-10 14:53   좋아요 0 | URL
요즘 낮과 밤의 일교차가 정말 심한 듯해요. 카스피 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저는 사실 어디로 이동하거나 여행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휴가를 길게 줘도 마땅히 할 일은 없는 듯합니다. 물론 집에서 책을 읽는 건 좋겠지만 말이죠. 그래도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갸, 직업이 뭐이가?
표재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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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하는 삶의 에피소드에는 언제나 자신이 즐겨 듣던 노래나 자주 보았던 드라마, 벽에 걸려 있던 그림 한 점, 우연히 보았던 영화나 연극 등과 결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몇몇 기억에는 그런 것들과 더불어 그 순간에 먹었던 특별했던 음식이 더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추억의 대부분은 그 시절에 유행하던 예술의 한 토막을 실마리로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컴퓨터 기억장치에 폴더의 이름을 지정하는 것과 같아서 수많은 기억 속에서 하나의 색인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이나 당시의 올림픽 공식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떠올리면 올림픽 기념우표를 손에 넣었던 친구의 뻐기는 듯한 얼굴 표정이 나도 모르게 재생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예술은 추억을 떠올리는 중요한 실마리 역할을 하면서 우리 삶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표재순 연출가와 같은 이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많은 추억의 색인표에는 그가 만든 작품명이 줄줄이 끌려 나올 테니까 말이다.


"경기장에 모인 10만 관중이 일제히 탄성을 쏟아냈다. 전 세계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22억 명도 숨을 죽였다. 한쪽 모서리에서 나타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그것은 하나의 점이었다. 빨간색 챙이 달린 흰 모자를 쓰고 하얀색 반소매 상의와 반바지에 흰 양말과 신발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소년이 오른손으로 굴렁쇠를 굴리며 움직였다. 능숙한 솜씨였다. 3분의 2지점쯤 갔을까? 소년이 멈춰 섰다. 굴렁쇠를 오른쪽 어깨 위로 올린 채 관중석을 향해 왼손을 흔들었다. 박수갈채가 잠실벌을 가득 채웠다. 소년은 다시 굴렁쇠를 굴리며 성화가 타오르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하나의 선이었다. 이 장면은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백미로 꼽힌다. 화려함도 웅장함도 기발함도 없어 보이는 굴렁쇠 굴리는 한 소년의 평범한 이 모습이 왜 그토록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걸까? 당시 나는 개회식 제작단장으로 총연출을 맡고 있었다. 모두가 감격스러워하는 열기의 현장 속에서 내 가슴은 새가슴처럼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p.31~p.32)


1937년 생, 구순에 가까운 원로 연출가 표재순의 자전 에세이 <갸, 직업이 뭐이가>의 서두는 이렇게 이 시대의 선명한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으로 시작된다. 음악극, 뮤지컬, 오페라, 마당놀이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던 무대 연출가였고, 서울올림픽, 한일 월드컵 등 국가적 행사를 진두지휘했던 거장이었으며, 평균 시청률 50%를 상회했던 '모래시계'를 탄생시킨 명제작자였고, 세종문화회관 초대 이사장 등을 역임한 문화행정가이기도 했던 표재순 연출가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추억의 몇몇 장면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가 메가폰을 잡았던 현장들을 생생하게 회고하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그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기억을 관통하는 추억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글에서 느끼는 감동이 아니라 자신이 불러낸 추억의 몇몇 장면을 통해 가슴 먹먹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출범 5년 차였던 신생 방송사 SBS는 '모래시계'의 대박에 힘입어 KBS, MBC를 따라잡으며 전국 방송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신영균 회장과 나 그리고 송지나 작가와 김종학 PD는 이 드라마를 정치 드라마나 시국에 편승한 그런 드라마로 만들려 했던 게 아니었다. 젊은 남녀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였다. 한 명은 깡패고, 한 명은 검사고, 이 두 친구가 좋아했던 여인이 등장하다 보니 시대 상황이 배경으로 나온 것인데, 의도치 않게 시국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비극과 혼돈이 공존하던 질풍노도 시기, 똑같은 시대적 상황이엇으나 한 번은 조직을 떠나야 했던 쓰라린 기억으로 한 번은 조직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환희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p.266)


'제1막 무대는 항상 예측불허다', 제2막 좋은 만남이 좋은 연출을 낳는다', 제3막 드라마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제4막 배우는 가도 무대는 남는다', 제5막 왕십리에서 DMZ까지, 모든 것이 무대였다'의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45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평생 기발한 아이디어와 참신한 구성을 기획하면서 살아온 까닭인지 책의 구성 역시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의 힘이 작동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명절 전후에 짬이 날 때마다 간간이 읽었음에도 너무도 빨리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작가의 책을 읽었던 게 아니라 작가와 함께 내 추억의 몇몇을 들춰보았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는 낭비가 참 많았던 것 같다. 'Wasted Life', 낭비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이면 연극, 뮤지컬이면 뮤지컬, 드라마면 드라마, 행사 이벤트면 행사 이벤트, 이렇게 외골수처럼 쭉 한길을 가야 하는데, 나는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다 하면서 갈지자로 걸어왔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 놓친 것이 많은 바보 같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갸, 직업이 뭐이가?" 장민호 선생이 나를 두고 이렇게 물은 건 그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p.449 '에필로그' 중에서)


누구에게나 100% 만족한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지나고 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남게 마련이다. 그러나 후회만 말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성공만 말하기에는 인생은 한없이 덧없다. 그러므로 나는 구순의 연출가가 들려주는 그의 성공과 실패에 집중하기보다 그가 참여했던 여러 드라마나 행사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어리거나 젊었던 당시의 내가 겪었던 추억들을 회상했다. 말하자면 나는 책을 읽었던 게 아니라 나에게 얽힌 추억을 읽었던 셈이다.


일본 나고야 아시안게임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는 중계영상을 보면서 매 순간 일희일비하는 듯 보이지만, 미래의 관점에서 지금을 본다면 그 영상 하나하나가 우리 기억의 색인표가 되어 보고픈 추억을 소환할 때 실마리로 작동할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저녁, 금메달을 목에 건 대한민국 국가대표 중 한 선수의 환한 표정이 우리들 각자가 겪었던 서로 다른 추억을 먼 훗날 마치 어제 일인 양 또다시 불러낼지도 모른다. 하나의 이벤트는, 시대를 이끌었던 하나의 예술은 우리들 각자의 추억을 소환하는 하나의 색인이 되는 것이다. 표재순 연출가의 자전적 에세이가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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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명절 연휴가 끝났지만 연휴의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듯합니다. 나이가 든 탓일 테지요. 전보다 운전을 많이 한 것도,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한 것도 아닌데 피로를 느끼는 강도와 시간은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걸 보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현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이 슬프거나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에 저으기 안심이 되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지독한 비관론자인 듯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어진 하루하루를 마냥 즐겁게 살아가는 낙천주의자에 가깝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우리는 흔히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누구나의 삶에도 딱 들어맞는 정확한 경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닥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나 역시 삶의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생이 인생을 풍요롭게 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헛되이 소모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곤 합니다. 나의 경험만으로 판단한다면 삶은 확실히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대통령의 정책이나 공약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을 아무리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고 해도 결국 정책의 수혜를 입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마나한 정책에 불과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속도를 강조하곤 합니다. 이를 보다 못한 여러 명의 여권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조언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쇠심줄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 바람에 지지율은 끝 간 데 없이 추락하고, 이를 고깝게 생각하는 정부와 여당은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되레 공격하거나 법적 조치 운운 하면서 겁박을 하고 있습니다. 마이동풍도 이 정도면 가히 역대급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속도를 강조하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본인은 자신의 노력을 몰라주는 국민이 야속하고 얄밉게 느껴지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국민과 싸우겠다는 태도는 보기에도 좋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중시키는 듯합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 나오는 일부 문장을 옮겨보겠습니다.


"남에게 잘난 척하고 고상한 척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품위 있는 지식을 지닌 뛰어난 존재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자랑을 늘어놓고 싶어 안달을 부린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종교의식이라도 되는 냥 그럴듯한 얼굴을 들고 우쭐대며 돌아다닌다. 그들은 자신 외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해 박수를 쳐주는 관객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  (p.207)


대통령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에서 "일상 속에서 댓글로, 메시지로, 전화로, SNS 글로 언론이 외면하고 유튜버가 조작하는 숨겨진 진실과 팩트를 알리고, 남의 글이나 기사 댓글에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것도 그 순간 우리가 원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실천"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다들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조언하는데 정작 본인만 아니다, 그러니 나의 우군이 되어 달라고 고집하는 모습은 참으로 딱해 보이기만 합니다.


바깥 활동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걸었을 뿐인데 나른한 졸음이 몰려옵니다. 추석 연휴의 피곤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조금씩 쌓여가는 기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주말에도 3일 동안의 짧은 휴가가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은 높고 지지율은 수척해지는 계절, 아슴아슴 졸음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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