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생공부 - 천하를 움직인 심리전략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나관중 원작 / PASCAL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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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어렵다고 느끼는 건 바로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보아도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 그것은 곧 내가 예측하는 상대방의 반응이 항상 어긋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작 문제는 나의 예측과 다른 상대방의 반응에 짜증이 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세상이 내가 예측하는 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세상은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항상 불만투성이의 갈등 국면만 초래할 뿐이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 직책이 올라갈수록 인간의 심리나 행동에 대해 기술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한참이나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인간관계를 점검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 지식을 진즉에 배워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난 후에나 겨우 움직이는 것이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사람에게 있는 공통의 본성이나 중복되는 특성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것처럼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이에게 늘 짜증이나 내고 나의 생각만 고집하였던 것은 얼마나 유치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었던가. 가수 양희은의 에세이 <그럴 수 있어>를 읽으면서도 나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직장이나 비즈니스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명확히 알고, 적절한 조언을 받아들이며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장기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 自知者明)", 즉 남을 아는 지혜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p.145~p.146)


인문학자 김태현이 엮은 <삼국지 인생 공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삼국지> 속 인물들이 당시에 처했던 상황적 배경을 살펴보고, 그들의 심리와 결단을 추적하며, 그로 인하여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사실 과거의 역사나 고전 문학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현대인에게 맞는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엮은 책은 지금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어떤 한 인물의 영웅담에 가까운, 말하자면 그 인물의 언행이나 지혜를 모은 잠언집에 가까운 책들이었다. 그러나 김태연의 <삼국지 인생 공부>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이 남긴 명문장을 발췌하여 그 말이 나온 배경과 의미, 그것으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설명함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는 현대에 맞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음은 물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강구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고 하겠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각자의 '인생 삼국지'를 치르고 있습니다. 경쟁과 협력,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조조처럼 결단하고, 유비처럼 사람을 모으며, 제갈량처럼 최선을 다하고, 사마의처럼 인내를 갖고 세상의 흐름을 파악해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끝에 다다라서는 결과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고, 그 과정에서 진심을 다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p.350 '에필로그' 중에서)


사실 '삼국지'는 하도 많이 들어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책이지만 원작자인 나관중의 '삼국지'보다는 만화가인 고우영이나 국문학자 고정욱, 소설가 이문열, 역사학 강사 설민석 등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고 각색됨으로써 오히려 원작자인 나관중의 원본 '삼국지'는 구시대적 유물이 된 느낌이다. 게다가 '삼국지'는 주로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대강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원작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을 찾는 일도 쉽지 않게 되었다. 책이 귀하던 과거에는 거실 장식장을 꾸미기 위한 장식용이든 아니면 삶의 지혜를 배우기 위한 용도이든 웬만한 집에서는 '삼국지' 한 질이 보란 듯이 꽂혀 있어서 어린 시절에 '삼국지'를 읽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는데 말이다.


""언필행, 행필과(言必行, 行必果)"는 자기 신뢰를 세우는 핵심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작은 실천들은 내면의 자존감을 키워주며, 남들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아무리 작고 소박한 말이라도, 끝까지 지켜낸 말은 사람의 신뢰를 얻고,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p.243)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식보다는 지혜가 필요할 때가 많다. 결국 우리는 책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할 수는 있지만,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경험과 노력에 달렸다고 하겠다. 새로 입사하는 젊은 후배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 세상이 심히 걱정되고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듯한 이기주의적 관점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과연 개인주의라고 치부하는 게 옳은 일일까. 나는 가급적 젊은 후배들에게 잔소리처럼 들릴까 우려하여 일체의 조언을 삼가는 편이다. 사실 조언이라는 건 말이 좋아 조언이지 사람들과의 관계만 악화시킬 뿐 장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조언을 마음을 터놓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젊은 사람들이 읽고 곰곰 생각해 볼 만한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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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통과하는 일 - 비전, 사람, 돈을 둘러싼 어느 창업자의 기록
박소령 지음 / 북스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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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겨울 님의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우연히 시청하게 됨. 자기 계발 분야에서 창업과 성공을 다룬 서적은 많이 보았으나 자신의 실패를 기록한 서적은 보지 못하였던 바 책의 내용이 몹시 궁금했음. 한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로 살았던 10년 동안의 기록은 생각보다 술술 읽혔던 것은 물론 중간중간 멈추어 서서 생각에 잠기게 했음. 책의 목차는 각각의 장(章)이 아닌 장면(Scene)으로 나누어 저자가 생각할 때 가장 인상 깊었던 10개의 장면을 다루고 있으며, 각 장면은 그 당시 저자의 기록을 옮겨 놓은 '나의 기억'과 그에 대한 저자의 '지금의 생각'을 병기하고 있음.


2. 저자는 책의 구성을 창업에서 매각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상으로 배치하지 않고 끝과 시작을 앞부분에 배치하고 있음. Scene #1 '창업자가 그만둘 때', Scene #2 '창업자가 시작할 때', Scene #3 '펀드레이징', Scene #4 '공동창업', Scene #5 '전시 CEO로 산다는 것', Scene #6 '자원배분의 문제', Scene #7 '레이오프', Scene #8 '주주 관계의 본질', Scene #9 '끝을 향한 여정 Part 1', Scene #10 '끝을 향한 여정 Part 2' 등의 소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창업과 실패로 마감되었던 자신의 실패에 대한 기록을 가감 없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음.


"지금 돌아보면 '문화를 바꾸고 습관을 바꾼다'는 말은 계몽주의적 이상주의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에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 나였기에 사업을 시작했고, 이 말에 가슴이 뛰고 설레는 사람들이 팀원으로, 저자로, 고객으로, 하나둘 모이고 모였던 것이 회사의 사업 초기였다."  (p.50)


3. 지식/정보 콘텐츠를 유료로 구독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던 2015년 당시에 전문가와 현업인을 필자로 하여 정기구독 모델인 '퍼블리 멤버십'을 비롯해 6개 서비스를 출시하며 빠르게 성장하였던 저자는 마치 성공 스토리의 전형처럼 비기도 했지만 당시에도 저자는 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으로 어찌할 줄 모른 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음. 더구나 저자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주변 사람들과 상의하며 끝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단지 기록을 읽는 것만으로도 절절한 심정을 느끼게 했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결국 창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매일매일 답을 내야 하는 일이라고. 그렇기에 지난 10년을 보내며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 낸 '나 자신'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흉내 낼 수도 없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기도 하다."  (p.76~p.77)


4. 책을 읽는 내가 한 명의 독자로서 저자에 대해 놀라워했던 점은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이 읽었던 많은 책을 인용하거나 언급했다는 사실, 자신의 회사나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듯이 당시에 저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게 아닐까 싶었음. 그런 모습이 없었더라면 끝까지 저자를 도왔던 소라, 소희, 광종 역시 일찌감치 회사를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나 역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다 보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는 친구도 있고, 일찍 사업에 뛰어들었던 친구들 중에는 크게 번창하기도 하고 더러 쫄딱 망한 친구도 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대개 돈과 시간을 버렸으면 사람이라도 남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음.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과 경험을 얻은 듯하여 보기 좋았음.


"이 책의 메시지를 하나로 응축한다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깨닫게 된 10년의 여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누구인가'에 창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모든 결정이 연동된다.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어야만 후회를 최소화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p.329 '에필로그' 중에서)


5. 나는 사실 이 책에 대한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책을 읽었음. 그러나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좋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고 깨우쳐야 할 많은 것들이 이 책 속에 압축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됨. 더불어 나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나의 생각을 쓰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답례의 인사를 하려 함. 삶을 이어가는 모든 이들은 그에 필요한 '희망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함. '희망비용'이라 함은 복권 구입비일 수도 있고, 주식이나 가상자산 혹은 부동산의 매입 비용일 수도 있고, 그마저도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그 비용으로 지불할 수도 있음. 아무튼 우리는 삶의 유지에 필요한 '희망비용을' 지불한 대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은 채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름. 그러나 종국에는 죽음을 통하여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됨.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최종적인 실패자일지도 모름. 삶에서 우리가 통과하는 크고 작은 실패를 통하여 우리는 어쩌면 죽음이라는 가장 큰 실패를 두려움 없이 통과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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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어둠은 짙고 무거웠습니다. 밤을 밝히는 도심의 꺼지지 않는 조명들도, 내 손안에 들린 작은 손전등도 새벽 어둠을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였습니다. 어제 아침 거칠게 불던 바람은 잦아들었습니다. 어제의 바람이 등산로에 남겨 놓은 나뭇가지며 색이 바랜 잎사귀들이 패잔병이 남기고 간 유품처럼 내내 덧없었습니다.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뚝 떨어진 기온 탓인지 밖으로 드러난 손끝으로부터 새벽 냉기가 올라왔습니다. 인근에 펼쳐진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신새벽부터 철근을 자르는지 절단기 소리가 요란합니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매캐한 쇠비린내가 속을 뒤흔들고, 경사진 길을 내려가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듯 비틀거렸습니다. 새벽의 고요가 공사장의 소음으로 인해 조금씩 깨어지고 있었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외투가 조금 두터워졌습니다. 여전히 녹색이 우세한 가로수의 계절감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잠깐의 추위도 견디기 어렵다는 듯 어느 한 곳 빈틈이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맨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견디기 힘들었던 추위도, 숨이 콱콱 막히던 여름도 막상 지나고 나면 때론 그리워지게 마련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살아온 점점의 시간들이 폐허처럼 보일지라도 마음에 쩍쩍 금이 가는 날이면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안리타의 에세이 <리타의 정원>을 읽고 있습니다. 안리타 작가의 작품 중 두 번째 읽는 책입니다. 안리타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작가가 쓴 어떤 책이라도 한 권쯤 손이 갔던 사람이라면 작가의 글맛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히 오늘처럼 날씨가 춥고 가슴이 몽글몽글 초겨울의 허무로 뒤덮이는 날에는 안리타 작가의 글 한 대목쯤 나즉나즉 읊조리고 싶어집니다.


"어여쁜 풀꽃 하나 만나게 될 때면, 하늘을 바라보고 숨을 쉴 때면, 시계가 닿지 않는 산 너머 능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멈춰버린 마음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영원의 시간은 이 순간 내 마음에 원래 그렇게 잇는 듯하다. 자유와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숨 쉬는 지금에도 있는 듯하다."  (p.106)


한낮 기온은 조금 오른 듯합니다. 사람들의 얼굴 근육도 풀렸는지 알듯 모를 듯 미소가 번집니다. 겨울로 가기에는 조금 이르다 싶었는지 하늘빛은 여전히 가을을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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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29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같이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특히 새벽 등반하실적에 옷을 든든하게 입고 산에 올라가셔야 될거 같아요.

꼼쥐 2025-11-01 11:28   좋아요 0 | URL
아침 기온이 조금 낮기는 하지만 그래도 산에 오르다 보면 아직은 땀이 나기도 합니다. 너무 덥게 입으면 오히려 담이 많이 나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구요. 저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보온은 필수죠.
 
AI는 인간을 꿈꾸는가 -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를 묻다
제임스 보일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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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어떤 용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보편 언어로 변모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보통의 사람들에게 일상어로 쓰이는 것도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는 데에는 더욱더 긴 시간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그랬다. 물론 지금도 과학계의 몇몇 사람들만 사용하는 과학용어가 쉽게 일상어로 전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은 우리의 일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전문영역으로 취급되던 여러 분야의 장벽이 일거에 무너뜨린 것은 물론 각 분야의 지식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편입되게 하였다. 전문가입네, 하고 으스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현상이 결코 달갑지만은 않을 터, 대중의 지적 수준이 향상됨으로써 자신의 권위는 비례적으로 낮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이 아마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 AI)이 아닐까 싶다. AI로 통칭되는 이 단어는 이제 산골 벽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일상의 보편 언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온 AI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이 책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두 가지 접근 방식을 토대로 구성된다. 첫째, 매우 다양한 여러 맥락에 따라 경계선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저 한 가지 관점에만 치중할 때보다 훨씬 더 이 사안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사안에 관한 논쟁은 삶의 한 측면이나 학문의 한 분야에만 오롯이 국한되지 않으며, 사회의 철학, 법률, 예술, 역사, 도덕 전반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논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공상과학소설 및 영화에서부터 윤리학까지, AI 관련 기술에서부터 의식에 관한 철학까지, 헌법을 둘러싼 논쟁에서부터 법정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각종 소재와 자료를 살펴볼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인격에 관한 다각적인 논쟁들과 매우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는 이러한 접근법은 '인간' 및 '인격체'의 정의를 둘러싼 혼란 가운데 일부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p.66~p.67 '서문' 중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는 별개로 AI로 인한 인간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상존하는 건 사실이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이러다가 AI를 탑재한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을 복종시키고, 결국에는 인간이 AI의 노예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번역이나 통역, 의료나 법률, 코딩 등의 전문 분야에서 인간보다 더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임으로써 이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직업을 잃고 실업자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등은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불안과는 별개로 AI의 등장으로 인해 촉발된 논쟁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인공지능이 '감정과 자의식'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인간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어떤 기준으로 인간을 분류할 것인가? 의 문제, 그렇다면 인격체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 등은 법률적 판단과 더불어 철학이나 윤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도덕적 지위를 구분하는 경계에 존재하는 깊은 바다를 항해할 때, 인격에 관한 이론들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바다를 안내하는 지도의 역할을 해줄 수 없다. '인공지능에 어떠한 지위의 법적 인격을 부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 역시 우리의 삶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급박한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인공지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 후에 인격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때는 질문의 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우리의 관점이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p.254 '인공지능' 중에서)


듀크대 로스쿨 석좌교수인 제임스 보일이 쓴 이 책 <AI는 인간을 꿈꾸는가>는 비인간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반려견이나 반려묘 등 인간이 아닌 동물에 대해서도 그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확장하여 왔으며, 그와 동시에 생명체가 아닌 법인에 대해서도 법적인 권리를 인정해 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어떠한가? 구글의 엔지니어인 블레이크 르모인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컴퓨터 시스템이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요소로 언어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면 인공지능은 이해력과 지능을 기반으로 언어 구사도 능숙한 까닭에 인간으로 보아야 할까? 만일 우리가 비생물인 인공지능에 인격권을 부여한다면 생명이 있는 다른 개체, 이를테면 혼종 동물, 키메라, 형질 전환 개체에게도 인격을 부여해야 하는가? 이런 방법으로 범위를 무한정 넓혀가다 보면 우리는 과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냉정하고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선은 어디에서 그어지게 될까?


"우리가 새롭게 받아들일 의식이라는 개념의 의미에서부터 기술 발전의 속도와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너무나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미래이기도 하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존재, 즉 고차원적 지능 및 의식을 갖추고 추상적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인격체'들이 이 행성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존재는 이미 나타났는가? 아니면 앞으로 나타나게 될까?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러한 미래에 도전할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p.522 '결론' 중에서)


자제분들과 떨어져 시골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대화 상대를 찾지 못해 하루에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보내는 날이 많다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러나 AI의 등장으로 인해 수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거나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라고 알려주는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척척 말해주는 AI가 오히려 자식보다 낫다는 말을 더러 하기도 한다. 농담처럼 말이다. 그러나 AI와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고 외로움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정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다가 자신이 가진 재산을 모두 AI에게 상속하겠다는 노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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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인근의 공원에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야자매트가 깔린 공원 둘레의 산책로에는 운동복을 입고 뛰거나 걷는 사람들로 붐비고, 공원 한편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하려는 몇몇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그 옆에 마련된 간이 족구장에서도 코트에 공이 꽂힐 때마다 서로 함성을 지르며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공원 여기저기에 놓은 벤치에는 노인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그런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습니다. 공원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의 한 손에는 반려견의 목줄이 들려 있었습니다. 여전히 초록이 우세하지만 공원의 나무들도 이제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언뜻언뜻 보이는 딱새와 까치와 비둘기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남유하 작가가 쓴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읽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겠지만 마음이 약한 나로서는 차마 읽을 수가 없어서 책꽂이 한켠에 고이 꽂아 두었던 책입니다. 여전히 나는 읽을 수 없는 부분을 차례로 건너뛰며 몇몇 꼭지를 겨우 읽을 뿐입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무조건 걸었다. 미세먼지가 심하면 마스크를 쓰고 걸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걸었다.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며 울면서 걸었다. 사람이 없는 길을 골라 걸었다. 간혹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울음이 저절로  잦아들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걷고 울다 떠오른 말이 있었다. 슬픔을 걷다."  (p.251)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고통이 찾아올 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특별한 처방전을 펼쳐들곤 합니다. 나는 속으로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삶(my life)'이 펼치는 서사다.'라는 생각을 마치 세뇌를 하듯 몇 번이고 되뇌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뇌를 한 채 바라보면 나의 삶이 펼쳐지는 모습은 마치 내가 예전에 읽었던 누군가의 평전이나 전기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로부터 나의 삶을 분리시키는 방법은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매우 극단적인 처방인 셈입니다.


반면 니시 가나코가 쓴 에세이 <거미를 찾다>는 낯선 타지에서 작가 자신에게 찾아온 유방암 발병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아주 담담히 사실적으로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거미를 찾다>와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번갈아가며 읽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두 권의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을 듯하기 때문입니다.


"수술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바깥은 아직 한밤중이었다. 7시까지는 물을 마실 수 있어서 끓인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수술 후에는 팔을 올릴 수 없으니 앞이 벌어진 옷을 입는 편이 낫다고 들었다. 그래서 전날에 준비해 둔 면 소재로 된 흰 잠옷을 입었다. 일본에 있는 친구 리사가 보내준 것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편지를 써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p.188~p.189)


우리가 사는 삶은 시간에 맞서 투쟁하는 투쟁의 기록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각각 다르고, 주어지는 환경도 서로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시간에 맞서 싸우게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 그 사실이 무서워 주춤 물러설 때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나와 내 시간의 싸움에 개입할 수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의 분투가 필요한 고독한 싸움일 뿐입니다. 아까운 10월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나는 공원 산책로를 남들처럼 몇 바퀴 돌았을 뿐입니다. 산책을 하듯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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