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야간열차의 유리창에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있을까요. 어둠이 내려앉은 차창 밖의 먼 풍경으로부터 나의 시선을 그렇게나마 가까이 두고자 했던 어설픈 행위. 뽀얗게 변한 유리창에 엉성하게 그려진 어떤 형체는 차라리 이별의 무게 혹은 그리움의 한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선이 멀어질수록 가슴속 빈자리도 커져가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휑하게 뚫린 가슴을 차곡차곡 채워갈 것임을 그 시절에도 나는 잘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멀어지려는 나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붙잡기 위해 성에가 낀 유리창에 형체도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문득 떠오르는 어떤 이름 석 자를 써보거나, 흩어지는 성에를 붙잡기 위해 반복하여 입김을 불어넣기도 했던 것입니다. 삶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행복한 삶을 자신만 모르는 채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시절에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이십 년 만에 다시 온 침묵은 예전처럼 따스하지도, 농밀하지도, 밝지도 않다. 처음의 침묵이 출생 이전의 그것에 가까웠다면, 이번의 침묵은 마치 죽은 뒤의 것 같다. 예전에는 물속에서 어른어른한 물 밖의 세계를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딱딱한 벽과 땅을 타고 다니는 그림자가 되어 거대한 수조에 담긴 삶을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것 같다. 모든 언어가 낱낱이 들리고 읽히는데, 입술을 열어 소리를 낼 수 없다. 육체를 잃은 그림자처럼, 죽은 나무의 텅 빈 속처럼, 운석과 운석 사이의 어두운 공간처럼 차고 희박한 침묵이다." (p.19)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을 다시 읽는 동안 나는 야간열차에서의 어두운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마치 전시 포로병의 소지품을 면밀히 검색하는 군 수사관의 시선으로 보고 또 보았던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 속에 내가 미처 몰랐던 어떤 큰 비밀이라도 숨겨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 역시 소멸해가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보다 유난히 소리에 민감했던 여자는 열일곱 살 겨울 무렵 갑작스레 말을 잃고 맙니다. 그렇게 말을 잃고 살아가던 여자의 말문을 다시 틔워 준 것은 낯선 외국어였던 한 개의 불어 단어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혼을 한 여자는 아홉 살 난 아이의 양육권마저 빼앗긴 채 다시 말을 잃고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말을 다시 찾았던 과거의 기억에 기대어 그녀가 선택한 마지막 희망이 희랍어였습니다.
"이따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기보다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낀다. 따뜻한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밥이라고 느낀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물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자신이 결코 밥도 물도 아니라고, 그 어떤 존재와도 끝끝내 섞이지 않는 가혹하고 단단한 물질이라고 느낀다. 침묵의 얼음 속에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건져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주에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의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 단어들뿐이다." (p.59)
여자가 듣는 희랍어 강의의 강사 역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한 남자입니다. 가족들을 모두 독일에 두고 십수 년 만에 혼자 한국에 입국하여 희랍어를 가르치고 있는 남자는 앞을 볼 수 없다는 마흔을 일이 년 앞두고 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지켜보면서 여자의 침묵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소설은 그렇게 목소리를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과거가 교차하면서 두 사람의 삶을 응시합니다.
"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오래전 아이였을 때,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해도 되는지 알 수 없어 어스름이 내리는 마당을 내다보았던 것을 모른다. 바늘처럼 맨몸을 찌르던 말言들의 갑옷을 모른다. 그녀의 눈에 그의 눈이 비쳐 있고, 그 비친 눈에 그녀의 눈이, 그 눈에 다시 그의 눈이...... 그렇게 끝없이 비치고 있는 것을 모른다. 그것이 두려워, 이미 핏발이 맺힌 그녀의 입술이 굳게 악물려 있는 것을 모른다." (p.183)
우리가 잃어가는 게 비단 말語과 시력뿐이겠습니까. 다소의 시차는 존재하겠지만 언젠가 소멸하게 될 한시적인 현상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영원히 존재하는 궁극적인 그 무엇에 새길, 혹은 영원에 약조하고픈 하나의 징표로 남길 만한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모두 소진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사랑이 됐든 연민이 됐든 말입니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한시적인 현상계에 사는 여리디여린 존재임을 소설을 통해 일깨우고 있습니다. 야간열차의 유리창에 아주 잠깐 남아 있었던 나의 입김처럼 우리 모두는 기억하기도 어려운 찰나의 순간을 살다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