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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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물리적으로 접근성이 가장 좋은 물건인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가장 먼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집과 사무실에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을 마치 때 지난 과제인 양 떠안고 살면서도 단 한 줄의 문장도 읽지 않은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이 허다하니 때로는 책이 하나의 벽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나를 옥죄는 삶의 난제들이 밤잠을 설치게 할 때면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어느 작가의 글귀들이 잠들었던 신경세포인 양 나를 일깨운다. 책은 그렇게 머릿속에 차곡차곡 순서대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몸속 하나하나의 세포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정혜윤 PD의 에세이 <책을 덮고 삶을 열다>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위태로운 순간을 대비하여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늘 그와 같은 순간에 자신이 읽었던 책을 먼저 호출하고, 불러온 책의 한 대목을 주문(呪文)처럼 외며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곤 한다. 책은 그렇게 우리의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가 필요한 순간에 짠 하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다. 작가 역시 수십 년간 라디오 프로듀서를 하면서 맞닥뜨렸던 수많은 재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를 붙잡아주었던 책의 힘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는 작가가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이 오롯이 삶의 현장으로 옮아 와 흔들리는 자신을 지켜주었던 지난 경험의 이야기이자 그와 같은 책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다.


"원치 않는 재료가 널린 거친 작업장에서 삶을 빚는 나의 작업 방식은 언제부터인가 책을 섞는 것이었다. 슬픔에다 책 큰 스푼 듬뿍, 외로움에도 책 두 스푼, 실망에도 책 한 즙 쭉. 두려움에는 책 한 국자. 쓰디쓴 재료에는 감미로운 책 한 그릇. 나는 온갖 재료에 책을 섞는다. 이렇게 많은 삶의 재료가 있는데 여기서 아무 좋은 것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할 때도 책을 섞었다. 이를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하는 말 같은 것.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요." 나는 음식을 먹듯이 책을 흡수했고 거기서 영양분을 취했고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재료(현실)를 다루는 나의 방식이고 내 인생의 작업 비밀은 내가 책과의 혼합물이라는 점이다."  (P.32~P.33)


작가는 이 책에서 이자크 디네센, 허먼 멜빌, 제프 다이어, 이탈로 칼비노, 배리 로페즈 등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이름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이나 관념으로만 떠돌던 그들 대문호의 작품을 현실에 섞는다. 한겨울 경찰차에 막혀 남태령을 넘지 못하던 농민들 곁을 함께 지켰던 시민들, 무안공항에서 있었던 비행기 폭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돌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세월호 유가족, 눈물이 흐르던 고래의 얼굴을 기억하는 원양어선 항해사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읽었던 어느 작가의 문장 속으로 스며든다. '바베트의 만찬', '모비 딕', '그러나 아름다운', '호라이즌'...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P.179~P.180)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무작정 책만 읽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은 멀리하면서 오직 세상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사람의 정상 체온인 36.5도에 이르게 된, 가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자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내 이웃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더해져 빛나는 미소가 되었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이웃의 슬픈 눈물에 같은 양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아는 것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에 건드려지는 부분을 '존재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든다. 마음이 운명과 관계를 맺게 만든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나를 변하게 할 힘이 있다. 나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나는 슬픈 사람의 아름다운 자아를 사랑한다. 아무리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아름다움은 여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P.90~P.91)


점심을 먹고 집 근처의 공원을 거니는데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엔 푸른빛의 냉기가 흐르고, 공원에는 어제 내린 눈이 가득한데 저 비둘기 떼는 어디에서 오늘의 허기를 달랠 수 있을까. 나는 사라져 가는 비둘기의 잔상을 눈에 담으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온기를 잃은 겨울 햇살이 눈밭에 부딪혀 부서진다. 산다는 게 저토록 힘든 일인가,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바삐 서두르지 않아도 집은 차츰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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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자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쏟아지는 눈발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뒤섞입니다.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날씨입니다. 나는 저녁 약속을 취소한 채 애꿎은 하늘만 원망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오히려 잘됐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한두 시간의 만남을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을 지체할 생각을 하면 그것도 못할 짓입니다. 휴일을 휴일답게 보낼 생각이면 오늘처럼 조용히 집에서 머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날씨를 핑계로 말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저에게도 이따금 인생상담을 요청하는 후배들이 더러 있습니다. 엊그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옆구리에 서너 권의 책을 들고 나를 찾아온 후배는 새해를 맞아 뭔가 계획을 단단히 세운 듯했습니다. 그가 내 앞에 펼쳐놓은 책은 주식 관련 서적 한 권과 두 권의 자기계발서였습니다. 그는 올해부터 경제 관련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신이 선택한 자기계발서의 지침에 따라 잘못된 습관도 뜯어고칠 생각임을 거창한 포부처럼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왔음을 밝혔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자기계발서에 대해 지나치다 싶은 거리 두기를 해 왔습니다. 그런 처지에 새해 들어 자기계발서를 읽고 자신의 낡은 습관을 버리는 것은 물론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유형의 자신으로 변모해가고자 하는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 듯 느껴졌습니다. 제가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는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와 비교하여 신체적, 정서적 특징도 다르고,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환경도 다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지 등 모든 여건이 다른데 저자가 요구하는 일체의 행동 지침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회의적이고, 만일 이것을 절반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독자 스스로가 느낄 실망이나 좌절감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따라 하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들은 또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대개 저자가 이룩한 인생 전체에 대한 노하우이자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한두 가지의 가벼운 팁이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낮은 등급의 기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생 전체에서 얻은 수많은 노하우와 기술을 저자처럼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것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조건이 상이한 독자 개개인이 그 많은 기술을 습득하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느낌입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소설 한두 권을 읽거나 철학책 한 권을 읽는 게 낫다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 소설은 적어도 자기계발서처럼 수많은 인생 노하우를 빼곡하게 적어 놓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한두 가지의 주제를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 정도의 인생 지식은 누구나 쉽게 깨닫고 습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철학책 역시 많은 그리고 쉽게 깨우치기 어려운 현학적인 지식들이 가득 담겨 있을 듯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 권의 철학책에서 하나의 인생 노하우만 습득하여도 성공적이라 하겠습니다.


인생상담을 받기 위해 저를 찾았던 후배는 저와의 상담에서 별 소득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지 않았을까 싶어 제가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엔 찬바람만 스쳐갑니다. 내리던 눈도 그치고 주차장엔 하얗게 쌓인 눈이 오싹한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 저녁 약속을 취소한 탓에 주저리주저리 말만 길어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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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1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르니까요. 요즘 나한테 찾아오는 후배는 모두 신세타령 삼아 술 한 병 들고 독거노인이 살고있는 원룸 임대아파트로 찾아오곤 합니다. 그저 오는 사람 난 반갑기만 하지요.

꼼쥐 2026-01-11 17:15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부럽습니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는 저는 술 잘 드시는 분이 늘 부럽습니다. 저 역시 술이 잘 받는 체질이었으면 후배들이 술을 사들고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잉크냄새 2026-01-1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계발서 출판업계에 ‘18개월 법칙‘이라는 정설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계발서를 구입하는 사람은 이전 18개월 이전에 자기계발서를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겁니다. 자기계발서의 자기위로성 한계라고 할까요.

꼼쥐 2026-01-11 17:19   좋아요 0 | URL
그런 정설이 있군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실 자기계발서는 우리니라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투어 읽힐 수밖에 없고, 남들이 놀고 있을 때 나는 그나마 자기계발서라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안정제로 작용할 듯합니다. 결과가 어찌됐든... 그 기한이 18개월이라는 게 씁쓸하지만 말이죠.
 
제임스
퍼시벌 에버렛 지음, 송혜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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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을 모르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귀동냥일망정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름. 어수선했던 초창기 미국에서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삶에서도, 그가 쓴 작품 속에서도 언제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기에 그는 언제나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톰 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을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소년의 모험담은 재미와 흥분을 넘어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동생 시드와 함께 폴리 이모의 집에 얹혀살면서도 기죽지 않고 행동하는 톰 소여나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모험적인 일상을 살아가던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나는 지금도 '헉'이나 '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타임머신을 타고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아스라하게 먼 수십 년 전의 그 시절로.


"날이 밝아지자 헉이 강도들의 약탈품이라 부르는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헉은 이 모험에 완전히 신이 나 있었다. 나는 그 점에 감탄했고, 사실을 말하자면 부럽기도 했다. 목매달려 죽거나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할 염려가 없는 세상에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다는 것이 부러웠다."  (p.95)


퍼시벌 에버렛이 쓴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 헉의 시점이 아니라 흑인 노예인 짐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제임스'는 짐의 본명이다. 제임스에게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고, 그들은 모두 왓슨 부인의 노예다. 독학으로 글을 읽는 것은 물론 쓸줄도 알았던 제임스였지만, 그는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인 양 흑인의 방언을 흉내내며 지냈다. 백인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다른 지역으로 팔려갈 거란 사실을 알게 되자 미시시피강의 잭슨섬으로 달아난다.


"나는 가족을 떠나 숲으로 들어갔다. 대낮에 탈출을 시도하는 건 멍청한 일이겠지만, 그들이 언제 나를 데려가려고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달리지 않았다. 달리기는 노예에게 절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도망칠 때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더글러스 부인의 뒷마당을 지나서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강으로 향할 때까지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침식되어 깎여나간 강둑 아래쪽에 기대어 기다렸다. 대낮에 위험을 무릅쓰고 강 위로 나갈 순 없었다."  (p.53)


잭슨섬에서 헉과 우연히 조우한 제임스는 헉과 함께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면서 제임스는 자신이 간직했던 비밀 한 가지를 헉에게 털어놓는다. 헉 자신도 믿을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결국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제임스의 아내 세이디와 딸 리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팔려간 상태였다. 제임스는 딸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다시 그레이엄 목장으로 향하게 되고...


"모르겠어요. 아마 희망? 희망은  웃긴 거니까요. 희망은 계획이 아니죠. 실은 그냥 속임수예요. 농간 같은 거죠." 여자는 마지막 음절을 길게 늘여서 말했다. 마치 그 소리를 즐기는 것 같았다. "당신이 희망의 한쪽 손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희망은 다른 쪽 손으로 막대기를 들고 당신을 찌를 거라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뾰족한 막대기로요. 당신이 짐을 나르고 망치로 못을 박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당신을 원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들이 당신을 원하는 건, 당신이 돈이기 때문이에요."  (p.359)


책은 곳곳에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제임스의 생각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헉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를 처음에는 내가 알던 친숙한 이름들이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소설의 중반 이후부터는 제임스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당시의 흑인 노예의 생활상을 아픈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노예 감시인 홉킨스가 흑인 노예 케이티를 강간하는 장면은 끔찍했다. 어떻게 같은 인간끼리 서슴없이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 자행된 흑인 노예에 대한 인권 유린의 실상을 다룬 소설을 지금껏 읽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나는 소설의 끝부분에 묘사되고 있는 몇 줄의 짧은 문장을 나는 왜 그토록 읽기 힘들어했던 것일까.


2026년 새해 들어 두 번째 맞는 주말.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간간이 비가 내린다. 그리고 궂은 날씨에 더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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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나서기 어려운 자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넉살이 좋고 유들유들한 성격의 사람도 내키지 않는 자리는 언제든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대개 얼굴을 마주하기 힘든, 관계가 불편한 사람이 한두 명쯤은 참석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무리 불편한 자리일지라도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는 그 시간만 견디면 된다는 생각으로 참석하게 되지만,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할 사이라면 참석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나와 사이가 껄끄러운 사람의 참석 여부를 모임이 있을 때마다 묻는다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나빴던 관계를 복원하는 일인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야 말이죠. 나도 이따금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 주십사 초청을 받게 되면 그와 같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개인의 사적인 모임도 이럴진대 대통령이나 외교관처럼 국가를 대신하여 어떤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의 부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요 며칠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지난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의 행보에 비하면 괄목상대의 변화이겠습니다만 그게 어디 매 순간이 즐거워서 임했던 것이겠습니까. 물론 대통령이라는 큰 권한을 주었을 때는 그에 맞는 의무가 함께 주어지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윤석열이나 김건희가 했던 외교 행보를 되돌아볼 때 그들은 정말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국가의 명예나 이익보다는 그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재명이 당선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소한 무렵의 이맘때면 일 년 중 가장 추울 때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추위는 때론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독서법의 고전'으로 불리는 에밀 파게의 저서 <단단한 독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자기애, 잡다한 정열, 소심함, 불만족한 정신. 이런 것들은 독서의 주적으로, 언제나 우리 안에서 비롯된다. 그 수가 많음을, 상당히 흉물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  (p.202)


책에서 작가는 느리게 읽기와 거듭하여 읽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허다한 현실과 마주하며 살고 있는 까닭에 느리게 읽기는 강조하되 거듭하여 읽기는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2026년의 1월도 벌써 7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누군가에게도 안녕을 전하고픈 저녁입니다.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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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7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1-10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이야기장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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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책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책을 읽는 일이 어렵다 보니 자연스레 책 읽기의 무용론도 뒤따른다.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한 미흡한 자기 합리화이자 책을 읽지 않는 자신에 대한 구차한 자기변명에 가깝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람에 독서의 무용론이 마치 정론처럼 대접을 받는 처지에 이르고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그런가?' 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이따금 귀를 기울이게도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을 포함한 몇 안 되는 독서인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글 속에는 풍부한 상징과 은유가 깃들어 있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사려 깊고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우주 속으로 진입하는 티켓이다. 기적은 늘 디테일 안에 있다. 감동도 늘 디테일 안에 숨어 있다. 꾹 참고 끝까지 읽어야만 끝내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p.57~p.58)


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처지도 아니다 보니 나에게도 가끔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이 당도하곤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어찌나 줄었던지 그런 질문을 받아줄 이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독서의 효용이랄까, 책을 읽는 목적이랄까 아무튼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의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독서를 통하여 추상적인 단어의 개념을 구성원 모두에게 정의에 근접한 방향으로 통일시킬 수 있음을 독서 효용의 1순위로 꼽곤 한다. 이를테면 자유, 평등, 사랑, 권리, 차별 등 우리가 나열할 수 있는 많은 추상어가 있지만 구성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는 열이면 열, 다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현상은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의 힘이 강해지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더라도 누구는 남녀 간의 짙은 애정행각이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행위를 '사랑'이라고 믿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적적인 몇몇 사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동체 내에서 일반어로 '사랑'을 언급했을 때, 구성원들이 이해하는 구체적인 의미는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갖는 추상어의 개념이 이렇게 다양해진 이유는 독서 인구의 소멸과 함께 영상 매체로의 급격한 쏠림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의 영상만 보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언론사의 영상만 구독하는 상황에서 영상 매체를 통한 구성원의 단결과 통합을 기대한다는 건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끝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간의 힘, 특히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다는 뜨거운 믿음,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기나긴 터널을 함께 건너는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믿음이다. 변화가 느리고 전망은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부디 서로를 향한 간절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기를."  (p.171)


정여울 작가가 글을 쓰고 이승원 작가가 사진을 찍은 책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팬데믹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지나온 기억을 떠올릴 테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따스하고 아름다웠던 환대의 순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 아물게 하는 사람의 온기와 다정을 모은 에세이이기 때문다. 1부 '따스하고 복잡하며 구슬픈 당신에게', 2부 '가장 아픈 시간은 끝났다', 3부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만 있다면', 4부 '사랑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다양한 종류의 환대에 대한 직, 간접적인 경험들이 소개되고 있다. 영상 매체와는 다르게 책이란 그래서 유익하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만 독자로 선택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조금씩 엇나가는 다양한 사례들이 가감 없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취사선택의 전권은 오롯이 독자에게 주어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추상어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정의'를 향해 수렴시킨다.


"우리는 자신의 가장 모난 부분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타인의 남다름을 이해할 뿐 아니라 기어코 남다른 삶을 콕 집어 살아낼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바로 여러분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요. 제 글을 사랑해주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계속 용기를 내어 쓸 수 있어요. 글쓰기는 작가만의 특권이 아니라 스스로 미숙한 아마추어라 믿는 사람의 열정적인 투쟁이니까요."  (p.11 '프롤로그' 중에서)


2026년에 맞는 첫 주말, 나는 딱히 내세울 만한 일도 없이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나는 후회나 반성 같은 건 따로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부터라도 나에게 조금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질책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호되게 나를 질책해 왔고, 수없이 많은 반성 속에 살지 않았던가. 이제는 그런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지 않기로 하자. 그런 작은 습관 한두 가지 고친다고 지난 삶이 바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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