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사이
케이티 기타무라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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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처음 듣는 작가인 케이티 기타무라의 <친밀한 사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서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원래 리뷰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따끈따끈할 때 써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기록을 위해 기억을 더듬어 가며 리뷰를 써본다.

 

주인공 여성은 여러 가지 언어에 능한 통역사다. 최근까지 뉴욕에 살던 주인공(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머지 가족은 싱가폴로 가고 자신은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통역사로 취직되어 헤이그로 이사했다. 문득 이 소설에서 이름 없는 주인공의 익명성은 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모름지기 이름이 누군가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마련이니까. 어느 의미에서 주인공은 미국 작가들이 선호하는 국외자(expatriate)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헤이그에서 통역사로 일하면서 이런저런 '친밀감'을 동반한 관계들을 맺어간다. 아마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여전히 국외자 신분이기 때문에 예의 적정 수준의 친밀감을 넘지는 않는다.

 

독자는 주인공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일하는 통역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예상했던 대로 모종의 임무가 주어진다. 그것은 서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의 독재자로 반인도적 범죄를 필두로, 다양한 죄목으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을 위해 통역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빛과 어둠은 있는 법이지. 민간인 학살과 불법 체포와 구금 등 예상되는 독재자들의 일반 형태를 그는 그대로 따른다. 재판에 앞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무고한 독재자를 풀어 달라는 시위에 나선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그래.

 

주인공은 헤이그 출신의 부유한 남성 아드리안과 썸을 타는 중이다. 그는 아내와 이혼 과정에 있다. 무언가 깨끗하게 주변 정리를 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으면 좋을 텐데. 리스본으로 간 아름다운 아내 개비와 아이들을 쫓아 아드리안은 헤이그를 잠시 비우고 주인공에게 자신의 아파트에 와서 지내라는 제안을 건넨다. 주인공이 새로운 애인 아드리안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상대방인 아드리안이 느끼는 자신의 가족과 전(?) 아내에 대한 친밀감을 넘어서지 못하는 느낌이다. 결국 주인공은 다시 한 번 자신이 결국 국외자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

 

한편, 독재자는 자신의 모국어인 아랍어 통역 대신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통역을 의뢰한다. 게다가 독재자는 자신의 변호사로 개비의 지인이자 아주 유능한 것으로 알려진 케이스를 선임한다. 이런 불편한 관계의 설정은 뭐랄까, 불편한 사이에서 피어나는 친밀함을 목표로 한 그런 빌드업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기타무라 작가가 모델로 삼은 독재자가 누군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코트디부아르 출신 로랑 그바그보라고 한다. 모국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에에서 무려 박사 학위를 받은 인텔리 출신 정치인이었다. 소설에서 독재자가 아랍어 통역 대신 프랑스어 통역을 고수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한 때, 민주화투사였던 인사가 독재자로 변신해서 선거에 불복하고 나라를 내전의 수렁에 빠뜨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그바그보는 전직 국가수반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사법재판소 법정에 서기도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유딧 레이스터르의 <젊은 여자에게 돈을 건네는 남자>라는 그림을 찾아 보기도 했다. 현대에 사진이 이미지와 상징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면, 근대에서는 회화가 그런 역할을 했다. 작가의 설명으로 보는 그림과 직접 보는 것의 차이는 명확하게 다가왔다. 케이티 기타무라는 그림의 심부에 "존재하는 불일관성"이 직조하는 긴장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소설에서는 과연 어떨까?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독재자를 반인도적 범죄로 기소하고 재판을 진행했지만, 다수 증거와 증인들의 실체적 증언에도 불구하고 소추관들은 인용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도덕적으로 독재자는 분명 유죄였지만, 법리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바로 이런 불일관성이야말로 작가가 <친밀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그바그보 역시 현실세계에서 무죄 판정을 받고 풀려나는데 성공했다. 정의의 불일관성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모양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서의 친밀감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느끼는 어떤 친밀감이 더 나은 관계로 이끌어 간다는 보장이 없다. 주인공 역시, 재판소 통역관 일을 마치고 또 다시 부유하는 이방인이 된다면 지난 일 년 동안 쌓아올린 친밀감 역시 모래성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 친밀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일까.

 

<친밀한 사이>는 케이티 기타무라의 네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프린스턴 출신으로 무려 문학 박사이기도 하다. 어려서는 발레를 배우기도 했다고. 다음달에 신간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소설이 출간 예정이라고 하는데, 플롯을 보니 상당히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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