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소설, 잇다 7
강경애.한유주 지음 / 작가정신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강경애와 한유주의 조합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떠올리며 '바라건대'를 읽었다. 사실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전에 읽어보았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던 '소금'과 '원고료 이백 원', '지하촌' 같은 단편들이 이 내용이 어떻게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았었지 싶게 어느 샌가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강경애 작품 속에서 그저 살아나가는 것이 괴로움과 얽혀 고통과 매한가지나 다름없는 군상은 자잘한 충격과 짙은 불쾌감을 주었다. 보고있기에 괴로운 가난, 빈대와 파리가 들끓고 헐벗은 아이들이 고름과 오줌을 입에 넣는 집, 좌절과 압박을 못이겨 분풀이로 일삼는 폭력 그리고 태어나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너무나 쉬운 죽음들이 도처에 널린 삶은 세상에 대한 연민을 얼마나 더 쌓아야 거부감을 밀어내고 박애의 시선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몰래 애를 낳고도 미역국을 좀 먹어봤으면 하고 그도 아니면 끓인 물이라도 마셔봤으면 하는 본능적인 욕구, 생 파뿌리를 캐다 씹어내는 삶의 끈질김. 모든 것을 탁 놓고 죽고 싶을 생각이 들다가도 밥을 먹어야겠다, 밥을 먹고 나니 전과는 또 다른 기운이 돎을 깨닫는 모습은 욕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자 그 욕구로 인해 살아내는 삶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남편도 두 아이도 잃고 젖을 먹여돌보던 남의 자식이 그리워 울면서 죽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약함이면서 동시에 죽지 않고 살아가는 강인함이 된다. 이 극복은 모든 것을 놓으려 할 때, 잃었다고 여겼을 때 매번 제 곤궁함을 알면서도 밥을 챙겨주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일자리를 챙겨 보살펴주는 이웃(용애 어머니)이 함께 돕는다. 

이웃의 극복을 위해 도와나서는 박애를 두고 강경애는 '원고료 이백 원'에서 좀 더 분명한 어조로 강조한다. 다만 부인이 벌어 온 원고료 이백원을 두고 뺨을 때리고 한밤에 부인을 쫓아내던 남편과 이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신을 받아줄 데가 없을 것만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잘못을 비는 부인의 모습, 물질의 쓰임을 가장 필요한 사람을 돕는데 쓰겠다는 그 숭고한 정신에 가장 가까운 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없다는 것이 현재와의 단차가 느껴지는 점이 있다. 지금보니 그 불같은 화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대한 분풀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버려질까봐 두려워 떨면서 돈 벌더니 남편을 우습게 안다며 손을 들었던 남편을 이해해주던 모습에선 전에 몰랐던 아쉬움도 있지만 과거의 사정을 현재의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느껴지는 '피로함을 그에게 토할 것이 아니었다.(27)'* 

장애를 가진 탓에 동네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동냥을 하러 다닐 밖에 달리 제 구실을 못하면서도 누군가와 가정을 꾸려보고자 노력하는 칠성 역시 수없이 꺾였어도 미래를 그리는 희망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칠성의 희망은 때로 열망이 숨겨지지 않을만큼 강렬해서 보고있기 애처로와 불쌍한 마음과 앞날이 캄캄한(154) 생각이 들어 아무말 하지 않고 그저 두고 보는 것으로 호위(224)를 대신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봉염네를 집에 들여주었던 호위(64)처럼. 강경애의 글이 삶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적나라하고 수치스러운 밑바닥을 몸에 들러붙은 것처럼 고스란히 드러내놓았다면 한유주의 글은 삶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듯 바라봄으로써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의 안위를 살피게 되는 마음, 마치 잠든 듯한 저 편의 여자를 지켜보고, 인천을 가야 하는데 수원행을 탄 아이를 신경쓰고, 가방을 든 채 휘청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묻는다. 

강경애의 인물들의 삶과 한유주의 인물들의 시선에는 시공간이 불러오는 단차가 어지러울 정도로 크게 가르고 있지만 사람과 삶에 대한 연민과 긍휼이 가진 온도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삶이 차고 각박한 냉소 위에 올려졌을때 어딘가에 있을, 있다고 믿으며 버티게 해줄 박애의 온도를 가리킬 이정표가 '바라건대'안에 담겨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강경애와 한유주의 세계가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답을 내리며 책을 덮었다.


* " 그 순간 봉염의 머리에는 선생님이 하던 말이 번개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가슴이 터질 듯이 끓어오르는 불평을 어머니에게 토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딸만 그르게 생각하고 덤비는 그의 어머니가 너무도 가엾었다. 그의 어머니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봉염이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없으면 딴 남은 그만 두고라도 제 속으로 낳은 자식들한테까지라도 저런 모욕을 받누나'하는 노여운 생각이 들며 이때까지 가난에 들볶이던 불평이 눈등이 뜨겁도록 치밀어 올라온다.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펄로 키드 미래그림책 200
라스칼 지음, 루이 조스 그림, 밀루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세상은 앞만 보며 달려갔고, 지나간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누구도 무엇도, 그 힘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지요. " 

'버펄로 키드'를 앞에두고 이미 세상에 없는 새 카우아이오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토착새인 카우아이오오는 오오과 종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작은 새로 1987년 마지막으로 발견된 수컷 오오의 짝을 찾는 울음소리 녹음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다. 2000년 카우아이오오는 공식적으로 멸종 선포 된다. 이 마지막 오오가 남긴 울음소리 녹음은 '다시는 오지 않을 암컷을 부르는 소리' 코멘트와 함께 인간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생태계 위기를 참담한 마음으로 되새기게 한다. 한때 박제사였던, 그리고 '버펄로 키드'로 남은 잭 본햄의 이야기는 남획되어 멸종 위기에 처했던 북아메리카의 커다란 들소 버펄로를 두고 몸길이 약 20센치 남짓의 카우아이오오와의 닮은 점을 찾게 만들었다. 

버펄로가 멸종되기 전에 잡아 박제를 만들어 보관하려고 길을 떠나온 박제사가 버펄로와 함께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목격한 수많은 뼈의 무덤과 가죽이 벗겨진 채 버려진 버펄로의 몸을 통해 박제사는 새로운 박제 대상에 대한 흥분과 기대의 마음 대신 생명에 대한 의미와 소명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늙고 커다란 야생 버펄로와 마주하게 된 순간 그 눈에서 확신을 얻게 된다. 동물의 그 눈,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떠올리다보니 아프리카에 갔을 때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을 맞이하던 얼룩말을 본 기억이 났다. 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던 몸을 가르는 독특한 털 무늬보다 더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건, 파리가 날고 축축한 눈물이 고여 핏발이 선 얼룩말의 눈이었다. 한 생명과 강렬한 조우를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자연이 그 앞에 선 인간을 어떻게 압도하는지 경험하는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지나보내지 않고 그 안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던지고서야 박제사는 버펄로 키드가 되었으리라. 

'버펄로 키드'는 마지막 버펄로가 울음소리를 남기기 전에 그 심각함과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담아낸 아름답고 강렬한 생명력을 품은 그림책이다.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야 할지 아이는 물론 어른 독자에게도 짧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버펄로 키드'를 읽는 동안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그림책이 생각났는데 함께 읽어보고 사라진, 사라지는 것들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의 숭고함과 가치를 깨닫고 자연과 생명의 끈질긴 회복력이 주는 놀라움과 감동을 더불어 느껴본다면 좋겠다. 

" 마지막 나무가 쓰러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히면 
사람들은 그제야 알게 될 거야, 
돈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 시팅 불" 

*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 글 / 프레데릭 백 그림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한국 엄마에게 -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민낯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너는 내 사랑하는 소중한 아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한국의 여성들을 외면했을까? 346" 

정확한 기억이 있다. 스무살 때 홍대에 갔다가 한국홀트아동복지회 건물을 보고 뭐하는데지? 하고 가벼운 의문을 가졌다가 일행이 입양기관이라고 알려준 말에 가벼운 충격과 같은 인상이 남았었다. 그 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오는 부끄러움, 입양기관이라는 말에 따라붙는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인 감상 같은 것들이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인식 이후에는 의식이 따라왔다. 어쩌다 기관 이름이 보이는 기사나, 입양과 관련된 사건들이 크게 불거져 나올 때면 전보다 조금 더 길게 눈길이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는 유리된 감각으로 낯설게 보았고 입양에 따르는 돌봄/양육자의 부재와 구원/시혜적 대상으로의 인식 같은 전형적인 감상에 머물렀다.
그러다 1980년대 활발히 진행된 해외 입양이 효자 수출 품목이나 다름없는 외화 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도 고아로 둔갑시켜 졸속으로 입양시켜 버리는 등의 문제가 고발*되면서 입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이고 고착적인 인식이 깨지는 일이 생겼다. 가난한 나라의 어려운 사연이 있는 아기들이 부유한 나라의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은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를 원하는 가정,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생물학적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순진한 믿음은 대체 누가 만들어냈을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양을 인도주의적 선행으로 여겼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부부와 노르웨이에서 더 나은 삶을 약속받은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라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을 받아들인 가정들은 대체로 충분한 지원이나 준비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사실상 운에 달린 일이었다. 246" 

게다가 입양의 과정만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입양 이후의 생활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고발이 연이어졌다.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외국의 유명 감독인 우디 앨런이 입양한 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고발과 함께 마찬가지로 딸인 한국계 입양인 순이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저 부유한 서구 가정으로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돌봄,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학대 등의 위험에 놓여서도 아무런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을 입양아동들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하지만 '입양 산업'에 얽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우디 앨런과 순이의 스캔들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놀랍도록 짧고 적었다. 

" 수십 년이 흐른 뒤, 구매력을 지닌 서구의 부부들이 원하는 아기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선호하는 조건을 가진 여성을 대리모로 선택할 수 있었다. 미리 수정한 자신의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그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163" 

입양이라는 수단을 버린 서구의 '아기를 원하는 개인과 가정'은 그보다 더 비인도적인 여성 착취를 거래로 삼기 시작했다. 이 징그러운 아기 쇼핑을 적당한 댓가를 주고 받은 거래 명목으로 전시하는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SNS***로 지켜보게 된 사람들은 '차라리 입양을 하라'며 비난한다. 책을 읽기 전 그 비난이 언뜻 대리출산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대안은 입양에 대한 맹목적이고 느슨한 믿음,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진보 성향의 잡지 <더 프로그레시브>든 1월호 표지에 '한국인이 만들고, 미국인이 산다'라는 충격적인 문구를 실었다. 이 잡지는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입양 사업을 통해 매년 1500만에서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비평가들은 입양 사업을 두고 민간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제 외교'라고 불렀다. 100" 

이 돈벌이 산업을 위해 여성들은 입양 기관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했고, 기관은 생물학적 부모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때로는 동의조차 없이 입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내질 곳과 예비 보호자에 대한 검증과 준비 교육은 물론, 입양 후의 관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가 한국의 입양 사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2011년 한국은 경제규모 17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해외 입양 1위 자리에 올랐고, 2020년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순위에 꼽혔다. 2025년 여전히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체계적 관리****를 주장하는 등 인간과 삶에 대한 존중과 한국 사회 안의 문제적 인식 개선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는 적었다.  

물론 모두가 마치 쇼핑을 하듯 혹은 시혜적인 마음으로 과시하듯 해외의 아이를 구매한 것은 아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의 저자처럼 아이를 원하는 상황에서 기관의 안내를 신뢰하고 입양을 결정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입양 산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에 알게모르게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 입양 산업의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보고도 망설였으며(237), k98-135 현이 겪을 인종 차별과 미시적 공격, 그리고 배제와 소외의 경험(188)에 무지했다. 그가 의지할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K-1112-유경/셀마를 입양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위화감이 드는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중학생 때 한국행을 권유하자 한국에 관심이 없다며 뉴욕에 가고 싶다고 했던(166) 현은 대학 진학 후 스스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석증을 앓고 난 뒤 자신의 유전적 질환을 찾아보다 마주한 기록없음 앞에서 "꼭 알아내고 싶어요."(220)라고 다짐한다. 그 후 연락이 닿은 생물학적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직접 방문하기에 이른다. 어느 4월 1일 토요일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관광객 일행의 모습이었을 그들의 방문(331)을 떠올려본다. 스스로를 사과 바구니 안의 바나나,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존재라 생각하던 사람이(209) 자연스럽게 바나나 상자 속에 있다는, 길을 묻고 자연스럽게 사과가 아닌 바나나를 향해 '우리'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감각이 어떠했을까. 

책을 읽을수록 처음 느꼈던 건조한 문장들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아동의 최선의 이익', '입양인들의 서사를 대리하거나 빼앗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루어졌음이 느껴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파고든 입양 산업과 생물학적 모친, 입양인, 입양 가정과 사회 문제를 내밀한 고백과 더불어 아울러 낸 책의 모든 이유가 그의 아이 현을 위해서였다는 것에 마음이 울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사는 세계는 한정적이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눈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외면하지 않는 것, 볼 수 있으나 보지 않았던 세상을 보려하는 것, 본 것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로 인해 나의 세계를 넓히는 것을 경험토록 해주는 시간이었다. 

" "제 서류에 동의서가 있나요?"
네가 물었다.
"아니, 없단다." 387"


* "전두환 정권, '아동 수출'로 한해 200억 벌었다"
[심층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2.입양의 정치경제학 ②
20170912 프레시안 전홍기혜
** 우디앨런 근황에 순이 프레빈에 관심 UP “동거했던 배우 미아 패로우 양녀…치명적 스캔들” 20130830 아시아투데이
우디 앨런 “한국서 거리의 고아였던 순이, 나와 결혼 후 꽃 피워”
20160505 아시아투데이 
*** 대리모의 출산일에 '출산 연출'사진을 찍은 매건 트레이너
10명 동시 대리모 출산으로 논란을 일으킨 갈립 오즈터크
인도, 우크라이나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 출신의 여성들이 대리모 산업에 내몰려 공장과도 같이 대리 출산을 행하고 있는 현실 - KBS1 세계는 지금 20120602
“한국서 아이 입양해오던 미국, 이제는 전세계 대리모 출산 천국” 20140707 경향 
**** 美입양 한국아동 수, 17년만에 다시 부끄러운 세계 1위… 왜? 20111121 조선
세계 아동 수출국 3위 오명 벗을까…변화하는 '해외입양' 20230511 복음기도
국가·지자체가 입양 체계 관리…아동 수출국 오명 벗을까? KBS 9시뉴스 202507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 취향과 안목이 부가 되는 희소성의 경제학
윤성원 지음 / 김영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보석을 살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눈앞의 화려함에 마음이 앞설 때다. 277" 

예전에 다이아몬드에 더이상 예전과 같은 가치가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뒤로도 비슷한 전망은 계속되었고 금 시세가 끝도 없이 오르는 최근 흐름에 비해 다이아의 가격은 랩다이아의 품질 상승으로 하락 방어선 없이 가치가 계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평이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작은 보석함 안에 놓아둔 그보다 더더욱 작은 나의 다이아가 떠올랐다. 보증서까지 알뜰살뜰하게 잘 보관하고 있는 그 다이아가 살때는 손이 떨리게 만들더니 사고나니 마음이 떨리게 한다. 금 가치는 오르고 보석의 가치는 떨어진다는 세상의 말과 달리 금 대신 보석을 산다는 제목의 책을 보고 한동안 가만히 작고 작은 나의 다이아를 생각했다. 기다려, 저 책을 읽어보고 너의 가치를 드높여(?)줄게. 

" 지금 놓치면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소유를 통한 과시,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본능... 이것들이 진짜 가격이었다. 88" 

나의 작고 작은 다이아의 가치를 높일 방법은 소유주인 나의 서사를 쌓는 방법 외에 달리 없다는 사실을 초장부터 깨닫고 들어가야 했다. 이건, 이 방법은 틀린 것 같아. 보석에 이야기가 쌓이고 그 내력이 분명하다면 같은 값어치의 보석보다 더 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은 언뜻 매력적이었다. 어떤 유명인이 수십억을 들여 경매에서 샀다거나, 왕실이니 황실이니 하는 곳에서 가지고 있었던 내력(프로버넌스 provenance)을 가진 보석 이야기를 읽다보면 재밌기도 하다. 사라졌다가 우연한 계기로 수집가의 눈에 띄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는데, 8년 동안 주방 찬장에 들어있던 러시아 황실 달걀(48) 이야기를 읽다보니 한편으로는 이 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고물상이 그 달걀을 벼룩시장에서 샀을 때 그의 눈에 달걀은 금값 500달러쯤의 현실적 가치가 매겨졌을 뿐이다. 그러니 값을 좋을대로 부풀리기 마련인, 그것도 우리와 먼 시장의 역사와 선호에 치중된 결과물이 아닌가 의심과 회의도 들었다. 

게다가 감정 기관마다 산지 판정이 갈리고 어느 기관의 감별서인지에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100)고 한다. 일반인이 진입하기에는 좀 어려운 구석도 있고 그 가치를 어떻게 보는지는 고무줄처럼 늘었다가 줄어드는 미심쩍은 면도 있어 보였다. 심지어 어떤 상자(티파니의 블루박스 162)에 담기냐에 따라서도 그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작고 작은 다이아를 살 때 우신에서 감정을 받은 것을 살지 GIA 감정서가 있는 것을 살지 잠깐 고민했던 기억이 났다. '나중'을 고려해서 GIA 감정서가 있는 것을 선택했는데 글쎄, 수십 수백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영원한 다이아가 내게 소유될 짧은 기간동안 나중을 고려할 일이 있을까 싶어진다. 그나마 다이아의 경우는 국제 기준가가 되는 '라파포트 가격표(108)'가 있지만 유색 보석에는 그도 없다고 하니 보석이 아니라 사람(역사, 사건, 운, 타이밍)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문장을 세상에 던진지 80년이 넘었다. 이제 그 '영원'의 의미가 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수십억 년의 지질학적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그 반지와 함께할 삶의 시간이다. 200" 

처음 이야기했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를 책의 4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다이아의 가치 하락에 대한 불안을 드러냈지만 투자 시장에서의 보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를 읽으며 오해했던 부분이 있다면 고치고, 새롭게 알게 되는 세계가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이런 막연한 불안과 궁금증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지 강연이나 방송, 인터뷰 등의 자리에서 랩그로운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 떠올렸던 랩그로운과 천연 다이아와의 경쟁은 '상업용 시장(171)'에 국한된 정보였고 '희소 시장'은 이와 분리해서 봐야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상업용 시장이 전체로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두고 이제 다이아의 가치는 하락한다/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일반 소비자에게 가까운 시장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실구매를 고려한다면 흐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172)고 책은 조언한다. 

이 아름답고 한정적인 욕망의 시장을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5장에서 나온다. 투자에 있어 자연스레 따라오는 금을 살 것인가, 보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249)도 나오고, 고맙게도 그렇다면 과연 보석은 어디서 살 수 있는가를 알려주기도 한다. 예전에 이베이같은 온라인 사이트로 원석을 구매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애정과 열정을 가진 사람의 길에도 " 산지 시장은 낭만적인 직구 현장이 아니라, 프로들이 칼을 품고 마주하는 판에 가깝다. 68"는 경고가 떠오를만큼 사건과 사고와 사기가 많았다. 감별서의 보증에도 허점을 이용한 기망(266)이 있으니 보기엔 재밌지만 뛰어들기엔 두려운 세계였다. 보석을 고를때 피부톤이 웜톤인지 쿨톤인지 따지는 내용도 나오는데 한참 MBTI가 유행할때는 아마 MBTI별 맞춤 보석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재밌었다. 소장과 투자로써의 보석을 고려하고 있다면 5장 내용을 눈여겨보면 도움이 되겠다. 

보석의 가치를 높이는 것 중 하나로 그 안에 담긴 내력이 주요하게 작용한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보석이 인류사에서 어떻게 그 가치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3장의 내용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보석의 내력이 가치를 더한다는 것에 잠시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보석에 사랑의 약속이나 인어의 눈물같은 별칭도 붙이고 브랜드에도 왕의 보석상이나 로마의 관능(163)같은 정체성을 내세우는가 보다. 서사와 의미가 이렇게 물질의 가치를 올리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는 것을 보니 재미있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반짝반짝 하는 것들을 홀린듯이 바라보길 좋아했던 까마귀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고,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 마젤 우 브라하** 79" 

* 다이아 원석 가격 1년새 40% 급락…"인조 다이아 수요 급증 영향" 20230904 금융소비자뉴스 기사
** Mazal u'Bracha 행운과 축복을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 - 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
N. K. 제미신 외 지음, 조던 필 엮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 사람 심장을 보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내가 훔친 거 112 또 하나의 존재" 

서문에 나온 '토옥(oubliette)'의 개념이 나온 영화를 2024년에 즐겁게 본 기억이 난다. 이쪽의 상황을 감옥 안에서는 보거나 들을 수 있는데 감옥에서 지르는 비명은 외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에 영화 '히든페이스'가 떠올랐던 것이다. 조여정 배우만의 캐릭터 성과 매력이 잘 드러난 인상적인 영화였다. '겟 아웃'에 나오는 침잠의 방이라는 소재가 인상적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사용되는 토옥과 같은 숨겨진 공간의 쓰임도 확인해보면 좋겠다. 

'아기 강탈자들의 침공'은 SF와 호러가 접목되었으면서 초반에 만난 단편들 중 가장 가독성이 좋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단편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떤 단편들은 불안정한 화자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반영해 이해하기 어렵거나 주어진 것들이 진실일까 의심하게 되는 면들이 섞여 있었다. 19편의 단편들 중 '아기 강탈자들의 침공'은 외계 존재들의 공격성이 드러나는 기괴하고 섬뜩한 장면들과 혼란스러운 대치를 속도감있게 전개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해 '라시렌'과 함께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가장 많이 기대해 본 작품이었다. 

앞서 언급한 '라시렌'은 " 물속에 혼자 있는 여자를 믿으면 안 돼. 130" 같은 경고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물귀신 같은 공포적 대상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인어라는 환상적 존재의 원형-디즈니가 꾸며낸 빨간머리의 공주가 아닌 사람을 꾀어내 홀리는 괴물, 사악한 존재-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환상적인 면모를 가진 이야기여서 이 기묘한 존재와 "하나를 주지 않으면 셋 다 가져간다(131)"는 경고이자 선언의 반복은 무섭다기 보다는 마치 동화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편 '건방진 눈빛'의 제목은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에서 주인공 OJ가 광고 촬영장에서 주의사항을 전달할 때 보이던 태도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백인 앞에서 흑인의 시선이 부적절해 보이지 않도록 눈을 내리떠야 한다는 인종차별을 역으로 흑인 경찰의 왜곡된 시선에서 보이는 환각처럼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단편들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마법(33 / 57 / 371 /476)'은 조던 필 감독의 '놉'에서 '나쁜 기적'으로 표현되는 불길하고 불온한 사건, 증표를 뜻하는 듯 했다. 마법을 주로 긍정적인 느낌으로 연상하게 되는 편이라 부정하고 불온한 것으로 쓰이는 차이가 독특하게 여겨졌다. 

" 존중하지 않을 나라에서 존중을 얻기 위해 그가 바친 희생을 알기 때문이었다. 세계 대전에서 싸움으로써 노블과 흑인들은 자신을 증오하는 세상에 애정을 구걸했다. 그러니 어쩌면 흑인 칸에서 그가 받는 시선과 묵례는 존경이나 경의가 아니라 동정일지도 몰랐다. 428" 

이 블랙 호러라는 장르는 조던 필의 영화가 신선한 방식으로 충격과 공포를 전달해주었던 것처럼 확연한 개성과 함께 또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최근 개봉을 앞둔 한 영화 안에서 동양인 캐릭터를 전형적인 인종차별적 요소를 담아 이용한 것을 두고 이들이 저지르는 혐오에 우리가 얼마나 관대하고 감수성과 인지가 부족한지 지적하는 경각의 목소리도 나왔다. 흑인들의 대응이 과하다고 말하는-그러나 양쪽 모두에서 혐오와 차별을 당하는- 아시안의 입장에서도 우리가 인정과 호의를 구걸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19편의 단편들은 저마다 불쾌함을 가지고 있다. 왜 불쾌함을 주는가 생각해보면 그 안에 자리한 폭력성, 혐오가 그늘 속에서 우리의 눈과 마주칠 때 본능적으로 드는 거부감의 영향인 듯 하다. 사람을 인격적 존재가 아닌 사물이나 가축처럼 다룰 때, 더이상 사람의 마음이 남아있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대상이 위장을 하고 있을 때. 블랙 호러 장르는 그들이 당해온 차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인간성에 대한 메시지를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강조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 단순히 파격적이고 잔인하기만 한 이미지로 점철된 공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를 흥미롭게 읽는 동안 조던 필의 영화 또한 다시 해석해 볼 만한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