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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조절 -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 내는 방법
권혜경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7월
평점 :
'감정 조절'. 제목을 앞두고 말 그대로 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이를테면 더위 때문에 더 민감하게 짜증이나 화를 내게 되는, 사소한 일이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기분이 상하고 불만을 표출하게 되는 감정조절장애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 추측했다. 막상 앞에 두니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 넓었다. 감정 조절의 개념에 대해 내 안에 있는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성장하며 겪어온 경험과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도록 도왔다.
들어서며 1장에서는 나와 같이 오해가 있었을지 모를 독자들에게 감정 조절의 개념을 설명해주고, 3장에서는 개인의 경험-유아기와 성장 과정이 끼친 영향을, 4장은 사회 문화적 배경과 사건이 끼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으니, 만약 자신 내면의 불안정함이나, 사회의 갈등과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했는가에 대해 이해해보고 싶다면 3, 4장의 내용이 흥미로울 것이다.
마무리하는 5장에서는 감정 조절의 해결책, 트라우마 극복과 내면의 치유를 돕는다. 이론적인 설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호흡과 신체의 이완, 명상, 수면 등 직접 실천하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고 있어 실용적이다. 마지막 장 뿐 아니라 각 장의 마지막(56, 113, 201, 311)엔 명상 실습을 실었는데, 저자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육성으로 해당 내용을 들으며 명상을 할 수 있다고 안내(65)되어 있다.
저자는 '안전/안전하다고 느끼는 감각'이 감정 조절에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우리 사회의 불안 요소가 몸과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사람은 안전한/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고, 상대방의 감정도 조절할 수 있는 상호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여겼다.
사실 처음 책을 손에 들고 목차를 살펴보았을때 가장 궁금했던 내용은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란 부제를 단 4장이었다. 우리사회가 겪어야 했던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전쟁이나 군부 독재 같은 수십수만의 죽음과 사상의 분열과 갈등 뿐 아니라, 자연재해나 각종 사고들로 인한 피해가 있다. 그중 안전과 관련된,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을 사건들이 남긴 트라우마가 사회 안전과 더 관련이 있다고 여기고 의식과 무의식에 무엇을 남겼는가 궁금했다.
책에서도 언급하는 대형사건들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세월호, 이태원까지. 특히나 저자가 '감정 조절'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228)는 세월호 참사는 보도가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좌절감, 분노와 슬픔, 사회에 대한 불신, 이마저도 이용하고 조롱하려 하는 부류에 대한 경멸 같은 것들이 얽힌 무력함과 세상에 대한 긍정을 소진해버린 듯한 탈력을 남겼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이 상처는 우리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이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가해자 및 관련자 처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피해자와 연대하는 시민의식도 더 고양되어야 할 것이다. 238"
우리사회에 부재하는 것은 진상 규명과 가해자 및 관련자 처벌이 아닐까. 강점기 이후 매국노에 대한 완전한 처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들이 기득권이 되어 쌓아올린 사회의 틀은 과연 잘못된 일을 끝까지 고쳐 처벌과 반성이 뒷받침하도록 되어 있을까.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을 대신한 보여주기 식 처분을 통해 덮이고 졸속으로 정리된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공분과 관심이 사그라들고 난 뒤에 '냄비근성'이라며 비웃고 스스로를 자조하도록 조장한다. 혹 잊지 않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보상을 얻으려 한다, 이용하려 한다며 매도해 넘긴다.
" 세대 간의 저주는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전대에서 누군가 잘못하면 그 죄가 자손 대대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다양한 문화에 걸쳐 통용되는 개념이다. 문자 그대로 보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전대의 잘못이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부모의 역할이 가정에서 매우 중요하고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로 풀어 볼 수 있다. 239"
마찬가지로 요즘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친일매국노 집안에 대한 공분이 거세지자 이를 두고 현대판 연좌제를 운운하며,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아무것도 모르는 후손에게 묻는다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본질을 흐리고, 드러난 과거를 다시 덮으려는 의도를 가진 행위이다. 한 개인의 자만이 스스로 일본인을 자처하며 매국 행위를 한 선대가, 타인의 신체와 생명을 가지고 비윤리적인 실험을 자행하는 후대로, 부정으로 쌓은 집안의 부로 만들어낸 거짓된 명예를 뒤집어 쓴 후대로 이어짐을 증명했다.
또 하나 4장의 내용 중에 눈에 띄었던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남아 선호 사상 및 남성 중심 사회에서 고착화되어 있었던 성관념이 깨어지며 나타나는 진통이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부 남성들은 사소한 좌절과 거절에도 과한 수치심과 분노 반응을 보이는데, 이 "자기애적 분노란 자기를 대단하다고 믿는 사람이 그 믿음에 위협당했을 때 보이는 폭발적 분노(298)"라는 설명에 '이들은 왜 이럴까'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리게 되었다.
애착 유형에 따른 성격 형성에 대해 알아보는 3장의 내용도 기대이상으로 흥미로웠는데, 유형별로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구분을 짓고 예시가 될만한 상황 설명도 있다. 덕분에 읽으면서 자신의 성향을 비교해서 맞춰보게 되고, 이런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은 없었나 떠올리며 읽게 된다. 성인 애착 유형 검사(175)를 해볼 수 있는 문항도 있으니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철수와 영희의 사례(186)가 너무나 전형적인 관계의 불화여서 뻔한 내용이지 않은가, 관계에 있어 굳이 이런 것들(결혼기념일 날짜, 식당 예약, 편의점을 다녀오거나 서재에 머무는 등의 사소한 일정, 애정표현)을 상대에게 설명해주고 알려줘야 하는 걸까 싶었지만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수긍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 우리사회가 갈수록 서로에게 날카롭고 상대의 작은 잘못이나 실수, 자신에게 끼치는 손해 같은 것들에 더욱 예민하고 과한 보복을 하려 드는 분위기를 띄고 있음을 공감할 것이다.
"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아주 사소한 스트레스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싸우기 방어기제가 반사적으로 또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사람의 뇌는 일반 사람의 뇌와 해부학적으로 다른 경우가 많다. 대개 이들은 오랫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온 경우가 많다 보니 위협을 감지하는 뉴로셉션이 지나치게 작동하고, 그 결과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되고, 지나친 스트레스 호르몬 방출의 결과로 해마의 크기가 줄어들어 경험을 처리하고 소화하기가 남들보다 더 힘들어진다. 그러면 남들보다 더 민감하게 위협을 감지하고, 또 이에 과하게 반응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89"
책을 읽으며 어린시절부터 또래와 경쟁하며 성장하는 한국 사회의 스트레스가 물질만능주의, 결과 지상주의 같은 가치와 함께 사회적으로 지키고 배려해야 할 도덕과 윤리를 무너뜨리고 혐오와 분열이 심화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살펴보니 개정증보판을 통해 다룬 세대 간 트라우마 대물림, 남녀 갈등과 여성 폭력 등의 내용에 특히 많은 공감을 하며 읽었다. 새로 다룬 주제들이 공교로운 시의성을 띄고 있는 것을 보아 저자가 초판 출간 이후에도 10년의 시간동안 끊이지 않고 사회 현상과 개인 내면의 불안에 대해 연구해 책임과 애정을 가지고 새로 담아내 독자 앞에 선보였음이 느껴져 충분한 응원과 감명을 얻었다. 위협과 불안에서 회복하는 일, 현상을 위협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자신을 더 잘 다루는 일,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 일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