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노이즈
김현철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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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가 왔대요."
"무슨 신호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미친놈이 하는 소리를......" 12 잔존의 신호" 

요즘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가 안되는 일이 있을 때, 평범한 인간의 사고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이렇게 생각한다. '미친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면 내가 미쳤게...' 그럼 답답함도 울화도 세상을 반으로 나눠 갈라쓰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과 소망도 조금은 옅어진다. 정신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비급인 셈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양 구는 사람들의 거룩함이 꼴보기 싫어도, 저란 생각을 하고나면 좀 낫,긴 개뿔이 대체 미친사람들은 무슨 신호를 받는걸까 모르겠다. 아무튼 '한여름의 노이즈'를 읽는 시간은 이런 식이다. 사사롭고, 괜히 뭔가 분하고, 혼자 웃기고, 왠지 묘하다. 인상적이었던 단편들만 골라서 따로 추천해본다. 

잔존의 신호
현실적이라 어딘지 모르게 속이 불편해져 온다. 엉망이 되어버린 차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간접 피해자의 억울함, 하지만 피해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차마 제 분함은 더 꺼내놓을수도 없는 밀려남이 잡힐 듯이 그려졌다. 가해자는 교도소에서 히죽대고(20)있을텐데 피해의 선 안에 들어간 사람들만 사과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겁게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살짝 가미된 추리와 추적이 전환점이 되어준다. 괜찮은 시작이었다. 

소원
읽다가 진짜 소름 돋았던 순간은 " 오래도록 너희를 그리워했단 것도 모르나 봐. 한 해에 두어 번 보는 것도 어렵나 봐. 직접 너희에게 날아가고 싶어도, 썩어 가는 육체에서 스스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도 모르나 봐. 더는 묻을 땅덩어리가 없다고, 신발장만 한 선반 속에 우리를 처박아 두기 시작했을때, 우리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도 모르나 봐. 100" 하는 내용을 읽을 때였다. 아니 조상님 납골당은 뭐 한두푼 하는 줄 아십니까. 산 사람도 좁아터진 아파트에 층간소음 시달리며 삽니다. 훨훨 날아가고 싶으면 갈 것이지 어딜 찾아오고, 뭐가 얼마나 그리워서 한 해에 두어 번이나 보자고 하시는지, 이정도면 굿해서 성불시켜 드려도 무방해보이는데 갈 때 가더라도 로또 번호나 알려주고 가세요.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국 화장해서 자유롭게 보내달라는 요구였으니 불만이 좀 가라앉았으나 조상님들이 앞길을 잘 닦아주지 못할 망정 이런 식으로 나오면 좀 곤란하지 않은가. 내세에 좋은 연을 이어갈 생각을 하셔야지. 

신사기옥
" "네? 자, 잠깐만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아니, 사람이 죽은 건 안타깝지만 그게 왜  제 탓입니까!" 126"
우리나라는 참 사기에 관대하다. 심지어 속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적반하장 격의 잣대로 심판관 노릇을 하는 집구석 대법관들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신사기옥의 "사기 피해액을 피해자의 시간으로 환산......'사기특별법' 본회의 통과. 127" 라는 설정을 봤을때 그래, 평생을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라!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20만원을 위해 하루 100원씩 용돈을 모았던 피해자의 절박한 사정에도 형량은 총 2000일, 5년 6개월 밖에 안나왔던 것이다. 대실망.
게다가 가해자 손상희는 선고를 받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20만 원. 고작 소고기 한 접시 사 먹은 돈의 대가가 5년 6개월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부조리한 코미디였다. 128"고 소회한다. 반성과 갱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목숨에는 목숨이 가장 좋은 처벌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신사기옥의 노동 감형 체계는 뭔가 사람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면이 있어서 다시 수감되어도 게임에 로그인하는 느낌으로 수감생활이라는 퀘스트를 깨려고 들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흥미로운 단편이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오징어게임을 보는 것 같기도 한, 병신같지만 있을 법한 인물들이 그럴싸한 밑바닥 개싸움을 보여준다. 재밌었다.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켄치(214)' 얘기를 할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모두가 맥날이라 부르는 맥도날드를 혼자 맥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이 이야기가 오타쿠적 마인드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이마를 쳤다. 아아, 오타쿠가 또. 지나온 모든 길을 파괴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봤지만 언급하는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사람의 불운한 이야기는 처음이다. 좀 더 극단으로 치달았어도 재밌었을 것 같았는데 흐름이 갑자기 변하고 빠르게 정리 되어버린 느낌이라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 단편이었던 탓에 빵하고 터져나갈 순간에 갑자기 불발로 그쳐버린 불꽃을 손에 들고 어스름하게 해가 진 바닷가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만 미련없이 모래사장을 걸어나와 근처 파파이스 매장으로 찾아가 그 케이준 라이스인지 뭔지에 케챱을 비벼 먹겠지. 아직 파는 것 같다. '한여름의 노이즈' 읽을 때는 꼭 파파이스 가서 케이준 라이스 사와서 먹어보기로 하자. 

요즘 텔레비전들은 얇아서 수신이 불안정하거나 갑자기 작동이 잘 안될 때 '때려서 고친다'는 가정 내 기술자들의 손맛을 보여줄 방법이 없다. 브라운관을 통해 본다는 말이 이제는 사어가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한여름의 노이즈'는 가끔씩 몇 대 때려서 화면을 맞춰줘야 했던 그 옛날 티비의 노이즈, 갑자기 잡힌 해적 방송의 조악하고도 비현실적인 면모를 맛 보여 준다. 브라운관 티비 모르면 어쩔 수 없고. 생각해보니 뮤비같은데 레트로 한 맛으로 종종 나와서 다들 알 것 같다. 이제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고장나지 않은게 용한 오래된 티비에 나오는 믿거나말거나 한 재연 프로그램에 문득 시선을 빼앗기듯 보게 되는 책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면, 읽어보면 공감할 것이다. 부담없이 취향따라 긴 여름동안 한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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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 - 돌봄과 상실 너머, 다시 시작된 사랑의 모험
천희란 지음 / 김영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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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다시 인간과 인간을 잇는다. 그렇게 고양이가 떠난 자리에도, 여전히 고양이는 존재한다. 137" 

어렸을 때는 뭘 몰랐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 오히려 자꾸만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고 싶어졌다. 이쯤되면 책임을 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솔직하자면 빈 마음을 다른 존재로 채우고 싶은 그런 때였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는 너무나 잘 체득하게 되었다. 물론 친구처럼 가족처럼 함께하며 행복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또다른 상실이 반드시 있을 것이란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결정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남은 것은 두 번 다시는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친구들과는 함께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보다 앞서가는 친구들이 날 떠나가며 남은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좋아해서 종종 듣긴 하지만 가을방학의 <언젠가 너로 인해>라는 노래를 차마 부르지는 못한다. 노래방에서 갑자기 눈물이나 흘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를 만나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는 부분(31)에서는 이상하게 울컥해졌다. 그 조심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구구절절하게도 정말 구질구질하게도 훅 와 닿았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그 솔직함에 마음이 뭉그러졌다. 너와 같은 혹은 너처럼 사랑할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닮은 강아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연예인이나 다름없이 유명한 강아지들도 있고, 잘 훈련받아 똑똑한 강아지들도 많지만 너만큼 예쁘고 특별하고 멍충하고 귀여운, '우리 강아지'는 없었다. 키워보고서야 알게 된 이런 종류의 이별. 물론 고맙게도 이런 종류의 사랑이 있다는 것도 배웠지만 사랑이 큰 만큼 슬픔도 크기 때문에, 마음이 좁은 사람은 도저히 더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결심은 확고했지만 반려동물을 들이게 된 계기나 더이상 들이지 않기로 결심한 까닭같은 것들은 종종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는 이 죄책감, 상처 같은 것들을 최대한 이해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때로 정곡을 찔린듯 하면서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 디오는 미친놈이었다. 도저히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디오는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166" 

고양이가 열어준 세계 속에는 이별의 눈물바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깽이 디오와 만나 함께 살기를 시작하는 이야기는 혈기왕성한 아깽이답게 이리저리 튀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특히나 테오가 공동육묘를 하는 모습은 당황스러울만큼 놀랍기도 했다. 저도 응석받이이면서 어느날 들이닥친 갓난쟁이 동생을 어떤 마음으로 보살피기 시작한 것일까. 게다가 제가 나서서 디오를 돌보기 시작했으면서도 창가에 가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177)으로 육아 스트레스를 달랬다고 하니, 사람에게서 말을 배운 어린 고양이(193)의 엉뚱한 울음소리처럼 사람같은 비인간 동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읽다가도 갑자기 웃음이 난다. 

이런 비인간 동물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웃음이 나지만 그들을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에는 항상 경계심이 남는다. 책을 읽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 중 하나는 다시 소변 실수를 하게 된 루이에게 눈맞춤을 하지 않는 교정 방법을 썼던 때(67)였다. 나이 먹은 고양이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용변 실수를 하게 된 것이 고양이적으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용변 실수를 하고 수치스러웠을까, 실패에 괴로웠을까, 일부러 그랬다는 오해를 받아 억울했을까, 주인이 눈을 맞춰주지 않아 속상했을까, 어쩌면 고양이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했을까. 나이 든 고양이의 이야기를 눈물로 해석하는 것도 인간의 입장에서 고양이를 오해하는 방식일까. 

" 분명 인간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지식이 유통되는 과정은 훌륭한 보호자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한편, 반려하기 수월한 이상적인 고양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198" 

저자 역시 인간에 의해 인간의 영역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 비인간 동물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깊이 고민한 티가 났다. 인간의 생에서도 사고나 질병으로 긴급한 수술과 연명치료가 필요할 때 어떤 선택이 더 존엄을 고려한 것일까 의견이 분분한데, 하물며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지 못하는 비인간 동물들의 생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는 더더욱 어렵다. 비인간 동물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같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 냉혹하고 잔인한 셈 아래에서 같은 인간조차 거래와 학대의 대상이 되는 일이 존재한다. 그러니 이런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세상 안에서 비인간 동물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 권리와 생존의 합의를 논하는 길은 멀어보인다. 

" 비인간 동물이 거래되지 않는 세상, 학대받지 않고 본능에 가깝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세상이 도래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존재한다. 50" 

" 고양이는 인간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주위에서는 당연히 답을 알 길은 없다. 죽음이라는 관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양이가 스러져가는 몸을 인식하며 죽고 싶다거나 살고 싶다는 의욕을 느낄 가능성은 없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모든 결정권이 주어졌다 믿어도 되는 걸까. 45" 

하지만 갈수록 인식이 달라지고 있고, 한번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며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모르는만큼 다른 만큼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애완이었던 대상이 반려하는 존재로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도 유의미하다. 오죽하면 반려동물들이 한마디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고를 것이냐는 질문에 나의 만족감을 채울 수 있는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보다 상대의 안위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아프다는 표현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답이 더 많겠는가. 

욕심껏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를 엿보기 위해 책을 꺼내들었지만,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만큼의 극복은 실패한 사람일 것이다. 종종 귀여운 비인간 동물들에게 온통 시선을 빼앗기곤 하지만, 길을 걷다가도 불현듯 어딘가에 있는 비인간 동물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대뜸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을 줄 용기는 내지 못한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를 앞에 두고 나만 고양이가 없다며 박탈감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핸드폰 속에 저장해 둔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사진으로 귀여워하고 싶은 욕망을 달랠 뿐이다. 이 욕망은 책임보다 나약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다하는 반려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배려를 보여주는 비인간 동물들 모두에게 깊은 경외를 보낸다. 무슨무슨 법으로 사진 매일 열장씩 자랑해주기를, 버려지고 학대 당하는 비인간 동물들이 없도록 세상이 달라지기를 함께 바란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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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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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감성적인 이름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조금 신랄한 내용이나 냉소적일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었다.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라는 부제를 보며 반년쯤 전에 읽었던 [양양]이란 책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양양]은 가족 안에서 지워진 존재인 고모의 자취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로 가족들의 이름이 모두 새겨진 비석에 오직 고모의 이름만이 없음을, 그리고 아무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름없는 여자'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추적기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름의 빈자리에'를 앞에 두고 상실과 소외 같은 것들을 먼저 이어붙여 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름의 빈자리에'에서 만난 이름들은 대체로 감성적이고 조금은 애틋한 존재들이다. 때로는 불행하기도 하지만 그를 돌아보는 시선에는 온기가 맺혀 있다. 대상을 감싸안는 연민에서 가끔은 멀어지기도 하고 결국은 함께 머물며 기대기도 했다. 남다른 이름으로, 그리고 종종 불리고 싶은 이름을 붙여서 살아온 저자가 모아놓은 이름들은 사랑하는 이의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달라는 일치의 고백(94)이자,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의 첫 마디(84)이기도 하고, 영원히 떠나가는 이를 붙잡는 마지막 울림(132), 끝내 미결로 남아버릴 사랑의 이름(186), 오래된 필름 속에 박제된 젊음의 초상(234)이다. 

" 서래와 동점. 서쪽에서 와서, 동쪽으로 점점. 불교의 전래 경로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하셨다. 190" 저자가 <헤어질 결심> 속의 서래보다 십여년은 더 먼저 서래라는 이름을 선점했음을 또렷하게 밝힐 때마다 얼마나 큰 애착을 가졌던 이름이었는지 느껴졌다. 사실 보는 입장에서야 누가 먼저이건 큰 상관은 없는데, 가끔 우리는 이런 사소한 것들을 확실히 인정받고 싶을 때가 있다는 점에선 공감이 됐다. 다만 살면서 어떤 언어로든 쉽게 쓰여지기 어렵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이름을 가진 저자는 왜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려 했을까는 궁금해졌다. 이 '다른 이름으로 살아보기'는 다른 옷을 입는 것 같을까?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을까? 

'다른 이름으로 살아보기'는 낯설수록 쉽고 가까울수록 어렵다. 이름을 바꾼 사람들의 오랜 주변인들은 버릇처럼 원래의 이름을 먼저 찾는다. '처음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되었'*던 순간이 전부인양, 때로는 악의적이리만큼 꿋꿋하게 본명을 부르곤 한다. 하지만 낯선 이에게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이름 바꾸기'가 유행처럼 번진 때도 있다. 택배나 배달음식을 받을 때 주문자에 곽두칠, 문근철, 조덕출 같은 이름을 붙이는 꿀팁이 여성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것이다.* 여성임이 드러나 혹시 모를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기 쉬운 이름 대신 쎄보이는 남성적인 이름으로 불편한 상황을 피해보려는 시도였다. 이름이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정보와 공유하는 느낌이 있음이 새삼 와닿았다. 

저자와 비슷한 세대이긴 하지만 조금은 차이가 있다고 느꼈던 부분이 '리버 피닉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였다. 90년대 학번 정도의 세대가 가진 리버 피닉스에 대한 탐닉, 예찬, 감탄, 갈망의 정서(234)를 어렴풋이 엿본 것 같았다. 리버 피닉스보다는 호아킨 피닉스의 영화가 더 익숙하고,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라는 수식이 아닌 호아킨 피닉스의 형으로 소개되는 쪽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남매들이 리버, 레인, 섬머 일때 혼자만 호아킨이었다면 좀 섭섭하긴 했을 것 같다. "다들 보라, 노을인데 왜 나만 덕선이야!"* 하고 울부짖던 성덕선이 떠오른다. 

책에서도 소개된 [프랑켄슈타인](32)을 작년 처음 읽어보았는데, 그에 대한 감상이 저자의 딸과 같았다. 우선씨일지 민진씨일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같이 젊지 않아도 감상은 같을 수 있으니 피조물에게 느끼는 바가 갈리는 것은 온전히 나이탓은 아닐테다. 피조물의 마음이 악으로 채워진 원인이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아서,라는 온통 원망과 불평, 증오로 가득찬 태도에서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날 사랑해주지 않으니 널 고통과 불행 속에 빠뜨리겠다는 공격적인 대응을 우린 뉴스, 사회면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게 되지 않는가. 

이름이 가진 의미와 기능들을 찬찬히 음미해보는 시간이었다. 평생을 흔한 이름으로 무감히 지내왔는데 가끔은 내가 불리고 싶은데로 이름 붙여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달라붙은, 이제는 나와 구분되지 않는 익숙한 이름을 벗어내면 좀 더 가볍게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넌 착하고, 똑똑하고, 중요한 사람이야.*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응원해주는 것처럼 그 '이름의 빈자리에' 넌 어떤 이름으로든 불릴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특별한 책이었다. 


* 시 [꽃] - 김춘수
*'쎄 보이는 곽두팔 씨'가 필요한 세상 [아시아경제 20190404]
*드라마 <응답하라 1988> 2015
*영화 <헬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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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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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낮으로 실체 없는 대상을 향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쪽이 더 광신도 아닌가? 이 아이돌이란 사람들은 자기가 파는 환상에 도리어 자기가 묶여 있는 상태란 거다. 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이 환상이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54"


 그러니까 좀, 무서워요. 무서운 것이다. 지하철 1호선 광인과 케이팝을 연결 시킬 수 있는 사람의 케이팝이란 뭘까. '펑펑'이 정말 좋았다. 재미로 따지자면 올해 벌써 6월인데, 그 전으로도 후로도 '펑펑'을 넘어설 콘텐츠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거야, 싶다. 너무 재밌긴한데 한편으로는 수치스럽다. 어릴적에 익혀둔, 봐선 안되는 간행물을 슬쩍 몰래 넘겨보고 안본척하던 스킬을 써서 몰래 봐야 할 것 같은 책이다. 읽다가 혀를 여러번 빼물고 내두르고 씹어야 했는데 하나같이 강렬한 감각들이 휘몰아쳐댄 탓이다. '거울 치료를 위해 태극기부대를 찾아가(26)'는 이 판에는 대체 어떤 자만이 살아남아 있는 것일까.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은 알지만 이 극단의 방법을 스스로에게 쓸 줄이야. 지금은 괜찮으신지 안부를 묻게 된다. 혹 독을 독으로 치료하려다 중독된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되고. 


 사실 평생에 있어 케이팝 소비를 해왔겠지만 진짜 '소비'를 한 적은 없다. 저자가 '듣는 음악'을 주장한 것과 비슷하다. 들어왔지만 보고 소비하는 것에 더 집중된, 전복된 듣기처럼. 소비없는 소비를 한 라이트팬은 어릴 적엔 잡팬으로 불렸고 나이들고 나서는 머글이 되었다. 유재석의 멜론 탑100 귀 이야기에 맞아, 내가 그래! 하고 무릎을 쳤다. 물론 요즘은 아이돌 노래는 잘 듣지 않을 나이까지 됐다. 케이팝의 띵곡은 90년대에 이미 완성되었지, 안경 척! 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그 시절엔 대중가요를 잘 몰랐으면서도. 그렇지만 평생을 봐온 케이팝 휀걸들의 삶이 바로 내 친구이고 이웃의 이야기여서 '펑펑'을 읽으며 약간이나마 공감하고 또 대리 수치도 느낄 수 있었다. 


 " 케이팝의 진정성은 누가 뭐라 해도 무대로 완성 되는 법이다. 76"


 '펑펑'의 케이팝 역사가 너무 찐해서, 찐이라서, 읽다보니 그냥 아는 것을 쓴 것인지 쓰기 위해 알아간 것인지 궁금해졌다. 오소녀(124), 거북이 빙고의 숨은 리스너(223) 디테일에 깜짝깜짝 놀랐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 걸스데이 여자대통령'은 왜 없지?) 저자는 얼마나 케이팝에 인생을 갈아 넣은 것 입니까. 돌보다 더 오래도록 그 바닥에서 구르며 산업 그 자체가 되어버린 휀 더이상 걸도 아닌 늙크크의 슬픈 초상("아줌마, 언제까지 케이팝 판에 기웃거릴 건가요?" 213)이 여기에 있었다. 문장이 괜히 비장해지는 것이 '펑펑' 읽다가 얼마나 케이팝 보법에 절여진 건지 감도 안온다. (그런데 소녀야 언제까지 젊을거니? 내년에도 젊어? 후년에도 젊을꺼니? ... 그렇겠지. 좋겠다 소녀야 아줌만 갈게 넌 평생 케이팝 하렴.)


 얼마나 위험한 책인지. 솔직히 재밌게 읽기는 했는데, 주변에 읽어보라고 꼭 소매넣기 찔러주고 싶은 책인데, 읽을때는 혼자서만 몰래 읽고 싶은 그런 책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의 이야기를 풀면서 "닥쳐 제발... 넌 수치심이란 것도 없니? 30"했다지만 그쪽도 신화 누드집 돈 모아서 사봤다는 얘기 했잖아요. 칼머리(40)얘기하면서 이반 문화 오픈했잖아요. 왜 케이팝 얘기하면서 귀여니랑 김종국을 안양의 소울(246)로 묶냐구요. 읽으면서 왜인지 수치스러움으로 고통받는 독자도 배려 좀 해주시겠어요? 과거는 다 불태워 묻어버리기로 사회적 합의를 하면 안될까 싶었다. '펑펑'에는 정말 다양한 곡과 가수들이 솔직하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재밌는 점은 묘하게 샤이니에게는 낯을 가린다는 느낌이 든다. 짐승돌엔 덕질하면서 '누난 너무 예쁘다'며 노래하는 소년과는 좁히지 못하는 거리가 있다니, 오히려 불미스럽다.


 암튼 '하투하팬 7명, 이즈나팬 7명, 미야오팬 7명, 리센느팬 7명 도합 10명인 세계관' 속의 우리 케이팝 휀걸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시라. 고일대로 고여진 휀걸끼리 독서모임 혹은 싸움이든 할 말이 가득 쌓일만한 콘텐츠 아닐까. 솔직히 머글 눈에는 그저 웃기고 재밌는 추억은 방울방울이었는데 찐팬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면이 보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떤 역사는 누구의 입장에서 쓰여졌는지에 따라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비장). 다른 사람 후기랑 저자 북토크 현장이 이렇게 궁금한 책은 또 처음이다. '펑펑'은 북토크라기 보단 팬싸라고 해야되는게 아닐까. 책 사면 저자 포카라도 랜덤으로 증정하라! 여담이지만 덕질에는 뭘 잡고 시작하냐에 따라 소나무 같은 취향이 생긴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평생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슴돌이었는데 요즘은 코르티스가 늙크크의 눈에 밟힌다. 갈아탈수도 있나? 빅히트도 다시보면? 이런 흐름 어색하지 않은 분이라면 '펑펑' 꼭 읽기, 약속.


 '펑펑' 읽고 다른 사람 후기 궁금해서 찾아왔으면 같이 감상 달려주기 입니다. 꼭. 케이팝 좋아하시면 '펑펑'하세요.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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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이창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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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차례의 선거가 지났다. 언젠가부터 선거는 '심판'으로 불리고 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투표의 의미를 잘 살려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이 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맞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대체 왜 자꾸 대표자를 뽑는 일이 '심판'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일까.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우리가 심판자로 뽑은 대표자들이 내놓은 정책이 왜 실패하는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정치'라면 우리의 심판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인지 연관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솔직히 읽기 전에는 독서에 왜 실패하는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일상에서 접했던 사회 문제들을 예시로 끌어와 읽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 재밌었다. 왜 이런 시위를 했는지, 어떤 문제를 말하고 싶었는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으로 접근했는지, 연결해 읽으니 나에겐 체감되지 않던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왜 "노동 빈곤층의 확산, 인구 구조의 급변, 기후위기 대응(246), 국민연금 개혁(120), 의료 개혁(266), 장애인 이동권(53)" 등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가 개선되는데 어려움이 생기는지 바탕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정책의 효과가 현장에 안착하려면 최소 10~15년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이는 이념과 정권을 초월한 지속성과 일관성이 담보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부의 정책이 폐기되는 우리의 정치 풍토에서, 이러한 '백년대계'를 기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48 / 거시적 문제에 대한 정책 비전을 포함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국가 비전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97 / 가장 뼈아픈 실책은 '선제적 경고'의 부재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 내다보고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뒷북만 치는 처방에 그쳤다는 뜻이다. 200" 

그동안 치열하게 진영 싸움이 지속되면서 어느쪽이 정권을 잡는지에 매몰되어 있던 우리나라의 현실 상 장기적인 계획과 실행이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눈에 드러나 공론화 된 것으로 한 지역의 성공적인 대표로 자리잡은 표어와 상징물 조차 소속 정당이 다른 시장이 당선되고 나서 순식간에 폐기해 버리는 치졸한 전임자 공로 지우기, 세금 낭비 같은 것들이 대놓고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 그저 자리 뺏기와 승자 되기에 매몰되어 이미 시민들의 생활에 자리잡은 친근한 이미지마저 지우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을 보면, 시민의 의견과 삶에 대해서 고려하거나 눈치조차 보지 않는 태도가 만연함을 느낀다. 다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가 중장기 전략 연구를 위해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중장기 미래 전략 연구에 본격적인 착수하는 개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 일방으로 기울어진 정책 생태계의 균형을 되찾으려면 정부의 철학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용자 단체는 스스로 공적 책임을 수용해야 하며, 노동계는 대안적인 정책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사회는 이 거대한 권력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냉철한 감시자로 거듭나야 한다. 258 / 시민이 일상에서 스스로 배우고, 의견을 나누며, 공동체의 미래를 직접 설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는 시혜적 정치를 넘어 시민이 직접 이끄는 정치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책 생태계 혁신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356"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의 선택으로 재밌게도 보수 텃밭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진보 진영의 당선자가 나온 사례가 있다. 울산 시도지사 선거의 배경인데 전 당선자가 울산 지역의 버스 노선을 실제 교통상황과 환승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탁상행정으로 개선해 불필요한 환승과 외곽지역에 사는 고령층의 교통 불편이 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생활에 밀접한 문제가 생기가 후보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커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제 1 정책으로 내세운 후보가 당선이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정책을 원하는지, 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의사를 표명하는지 잘 드러난 사례라 생각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을 '집값' 같은 문제로 뭉개고 든 지역도 있지만. 

저자의 서문을 읽으며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다행히 다시 안정의 궤도에 올라섰다. 16"는 문장에서 쓴웃음이 나왔다. 책에서도 '2025년 서부지법 폭동(320)'에 대한 예가 있었는데, 이번 선거 이후로 다시 밀집하기 시작한 집단이 2024년 겨울의 밤을 마치 시기하여 따라하기라도 하듯 강남 지역 복판에서 식음료 물자를 받고 방한 용품을 요청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안정의 궤도를 이야기하기엔 이르다. 물론 윤 정부 기간 동안 다방면으로 손을 댄 문제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멈춰질 수 있어 다행이었으나 불거져나온 분열과 갈등, 혐오는 진정되지 못한 상태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어둠은 빛의 그늘 아래에서 짙게 꿈틀거리고 있고,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궤도는 흔들리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시민의 감시와 위기 대처 능력을 발휘해 극복해냈다는 성과도 잠시, 그 어떤 이성과 사리도 경제/돈의 만능주의 앞에서는 쉽게 힘을 잃는다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탈력감을 느끼게도 된다. '정책이 왜 실패하는가'를 이해하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왜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그 안에서 정당, 언론, 지식인, 사회단체, 시민 등 구성원들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살피며 감각의 균형을 새롭게 잡을 수 있었다. 급변하는 기술의 발달, 양극화와 분열 앞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를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공부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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