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 - 세기전환기의 멜랑콜리
강덕구 지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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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읽고 쓰지 않아 비밀번호를 열번쯤 틀리고나서야 들어왔다. 어차피 쓰는 것들은 이런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다 비슷비슷하기 마련인데 이것이다 라고 예상했던 것이 한 번 틀리고나면 그 뒤로는 언젠가 한번은 써봤던 것들을 차례로 시도하다 결국은 보안문자도 몇번 실수하고 몇 배의 고생을 하고는 간신히 출입을 허가받는다. 결국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 답이니 안도와 함께 허탈함이 찾아온다. '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을 읽고나서도 비슷했다. 결국 다 읽긴 했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찾아오는 허탈함. 그보다는 아쉬움에 더 가까우려나. 


 책을 읽기 전에까지 책에 대한 기대가 좀 있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기대는 목차를 보는 순간 사그라들었다. "2부 21세기, 집을 잃은 영웅들 남자: 유아인, 하정우, 언니네 이발관, 검정치마, 직역하면..." 피로감이 끼쳐왔다. 서문이 다시 한 번 눈에 들어온다. "서문 당신의 실망스러운 비평가" 깊은 피로감을 안고 책장을 넘기면서 읽어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라고 생각해봤는데, 정지돈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서 결국 암담했다. 그 정지돈이 맞는지 찾아보다 결국 사건의 메일을 다시 복습하고야 말았는데 지질해져버린 이런 얘기를 왜 영웅이라 이름 붙여서 굳이 포장해놔야할까.


 저자의 어린 시절을 담은 도입부처럼 어떤 부분들은 흥미로울 뻔 했다. 하지만 잠시 작은 요소로 흥미를 끈다고 해도 이내 관심은 흐트러지고 만다. 미드 '빅뱅이론'의 주인공들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마니아들의 부산스러운 대화가 이리저리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페니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꽤 기대를 하고 있었던 탓에 결이 맞지 않는다는 말을 쓰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결국은 취향의 문제일수도 있다. 누군가는 공감을 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나는 아니었고, 이렇게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게 되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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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 워크 저널 - 내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여정
카일라 샤힌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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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더워서일까, 늦은 밤에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한 날이 계속 되었다. 더워서 혹은 빗소리 때문에 아니면 어쩌다 잠에서 깨고 난 뒤로 새벽 내내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냥 포기하고 책을 읽었다. 귀신같이 잠이 오길래 몇 번 유용하게 써먹었는데 재밌는 책이 걸리는 날은 밤을 새는 부작용이 있어 위험했다. 어쩌다보니 다른 소리를 하게 됐는데, '섀도 워크 저널'도 그 새벽시간에 읽은 책 중 하나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들을 보면 나 빼고 다 '섀도 워크 저널'하는 세계관이 따로 있는건가 싶게 유명하다. '아마존 종합 1위, 전 세계 30여 개국 출간, 22억 뷰의 인증, 전 세계 100만 독자가 선택한 내면 치유 혁명'! 이렇게 유명한데 왜 몰랐지 대체 뭐가 좋길래? 하는 궁금증과 잠이 잘 안오는 건 내 내면에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싶은 염려증이 콜라보 되어 책을 받아봤다. 


 새벽에 이 책을 주로 봐서 그런가 솔직히 이런 진지한 내용을 혼자 소화해도 괜찮을까 싶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리뷰를 쓸 때 내가 적어놓은 답변도 몇 개 같이 올려야지 생각했는데, 새벽감성 때문인지 질문에 대한 답을 채워 넣고나니 이 내용을 공개하기엔 너무 사적이라서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생각한 것, 느낀 것, 원하는 것이 이게 맞나? 내가 이런 답을 적어도 괜찮을까?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에 대해 몇 번이나 질문하고 점검하는 과정들이 생기면서 빈칸을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사람이 너무 무겁고 우울해지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 할 때도 있단 생각을 한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니체)'는 말도 있잖은가. 봉인해두었던 어둠의 심연이 깨어나려는 느낌을 받았다. 크큭.....


 읽었다라고 하긴 하지만, 이 책은 읽었다기 보다는 참여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알맞다. 빈칸도 채우고 글도 쓰고 할 일이 많다. 참여형 독서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어플로 나온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만들어서 책 마지막 부분에 큐알이 있었다. 종이보다 패드가 편한 독자들은 어플로 가시길. 책에 다양한 질문들이 있는데 나를 깊이 반성하게 했던 인상적인 질문을 꼽아보자면 하나는 '학창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누구였나?'다. 신기하게도 좋아했던 선생님은 딱히 특정이 되지 않는데 싫어했던, 나에게 불이익을 주었거나 상처를 주었던 선생님과 상황만 기억이 난다. 과거 선생님들께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하며 앞으로는 원한은 잊어도 은혜는 잊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나에게 화가 날 때, 어떤 혼잣말을 하는가?'라는 주제에서도 큰 반성을 했다. 화났을 때 하는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어플에 대한 얘기를 잠깐 했는데 중간에 명상을 위한 유튜브 큐알이 들어가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이 책을 읽었던 터라 마침 잘됐다 싶어서 찍고 들어가보니 차분하니 음악도 좋고 다 좋은데, 영어다. 사소한 것에는 연연하지 않고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가끔 심신을 휴식시키는데 쓰기로 했다. 크게 체감되는 내면의 변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직 채우지 않은 빈칸이 남아있어서인지, 내 안의 그림자와 아직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자신 안에 있는 그림자를 마주하고 치유하기라는 틀이 있는 책이니 잠이 오지 않는 새벽보다는 미라클 모닝 시간이나 여유있는 오후 시간에 긍정파워를 받으며 이 여정을 함께 하길 추천한다. 일기쓰기나 백문백답 같은 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야무지게 활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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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2024.하반기 - 제50권 2호
한국문학사 편집부 지음 / 한국문학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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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지를 종종 읽다가 한동안 멈춰있었다.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문예지는 벅찬 감이 있었는데 그보다 기간이 긴 편인 반년간지라 부담이 덜하려나 싶었다. 한국문학사에서 나온 계간지는 처음이라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짜임도 살짝 느슨해보인다. 그 점도 마음에 든다. 책의 앞뒤로 광고 붙은 곳들이 이과적이라 재미있었다. 현금지급기, 암호칩, 컴퓨터, 산업용 단말기, IT서비스 업체 등이 문예지의 후원이 되어주고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문예지를 만나보게 되었으니 읽어서 하는 응원보다 금융의 힘이 강하구나. 


 가장 기대했던 부분 중 하나가 '시'였다. 시는 긴장하고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시에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 이상 접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과제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특히 안도현 시인의 신작시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먼 옛날 답사를 통해 만나본 짧은 인연을 새삼 떠올리며 기대했다. 막상 접했을 때는 좋게 말하면 시인만의 색이고 아쉽다 하자면 신작의 신선함을 느끼기 어려워 기대만큼의 만족감은 아니었다. "새를 기다리며"의 6번째 연만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시인의 의도와 다르게 내게는 섬뜩하게 느껴져서 였다.


 오히려 평소에는 다소 어렵게 느꼈던 시평이 더 흥미로웠는데 시를 읽으며 어딘가 집어 말하기 어렵고 찜찜하던 부분을 정리해놓아 공감되었다. 더불어 재미있었던 것은 최다영 평론가의 시선이 뒤이은 박병두 시인의 시와 최동호 시인의 시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결국 시에서도 '연식'이 느껴진다는 것일까 세대 공통의 감성이란 것일까. 이실비 시인이나 조온윤 시인의 시를 20년 쯤 뒤에 다른 세대의 독자가 읽게 된다면 또 이런 느낌을 받게 될까.


 생각의 끝에 만나게 된 것이 공교롭게도 '대학생 창작교실' 소설 부분의 "늙음을 이뤄내기까지"였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소설에서도 중년인 윤희와 이십대인 딸 지아, 그리고 돌아가신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각자의 삶을 조금씩 보여주며 그 시절의 삶을 드러내는데 '남동생의 밥을 조금 뺏어먹어 아빠한테 맞은 여공의 삶 (252)' 같은 것은 흉내낸다고 느껴졌는데, 시급만큼 비싼 카페 케이크(253)나 감정 쓰레기통(259)을 연상하게 하는 관계 문제는 본인의 것 같았다.


 그 전에 '작가가 만난 최고의 고전'에서 "사랑으로 산다"는 제목으로 사랑이란 단어를 차고 넘치게 보고 온 탓에 " 엄마,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사랑 사랑, 거릴까. (p.254)" 하는 지아의 말에 또, 사랑!하고 질려버릴 뻔 했다. 읽다보니 내가 먼저 남녀간의 사랑을 떠올린 것이 편협했고 오히려 더 매몰되어 있었구나 싶었다. 대학생 작가의 글이지만 손보미 작가의 "동전의 양면"과 함께 재미있게 읽은 편이었다. "동전의 양면"은 다른 세대의 인물들이 우연히 만나 둘만의 세계를 공유하며 서로의 삶에 의미를 남기는 관계성을 잘 이용한 단편으로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한국문학사에서 그 이름도 직관적으로 '한국문학'이라는 반년간지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24년 하반기 호를 받고서야 알았다. 다른 얘기이지만 이런 문예지를 다른 출판사의 계간지를 통해 몇 년 간 받아본 적이 있어 '한국문학'을 봤을때 반갑고 또 어떻게 다른 느낌이 들까 궁금해졌었다. 계간지를 내면서 대인원의 서평을 모집하는 큰 기획을 여러번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 했는데, 읽는 사람을 길러내는 씨뿌리기 작업을 그만치 했다는 것이 '한국문학'과의 인연으로도 닿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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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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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사람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소설' 이라고 짧은 한 줄 평을 남겼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계속해서 괴로웠다. 내가 한 것은 질문이 아니라 변명이고 항의였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편에 선다. 아무래도 주인공의 시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서사에 몰입하고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멜라닌'은 나를 철저히 시선으로 만든다. 책에서 나오는 수많은 배경인물들 재일을 지켜보고 재일을 무시하고 재일을 구분짓는 시선이 나였다.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려면 가능하겠으나 대부분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가 기사로 접하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판단하고 비난하는 인터넷 대법관의 자세를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신념, 판단, 상식 등이 마땅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 는 평론가 신형철의 문장은 이런 현상을 꿰뚫는다. 평범한 나 자신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멜라닌'은 한국사회의 문제 그 자체이다. 그러면서 한국적이지 않다. 장애, 국제결혼, 인종차별,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한부모가정, 마약, 학교폭력, 이민자, 세대갈등, 정치, LGBT, 범죄 등등 생각나는 핵심 단어들을 늘어놓기만 해도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한 그릇 안에 섞여 담긴 것이 비빔밥을 떠올리게 하는데 한국적이지 않은 것들- 이민 가정의 생활상- 마저도 한국적인 방식으로 끌어안았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라고 하듯 어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을지 몰라 다 담아본듯하다.  


 "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p.7 "


 '멜라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도입부인 첫 문장을 제외할 수 없다. 어떤 비유적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피부가 파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주인공 재일은 한국-베트남 국제결혼가정에서 파란 피부로 태어났다. 재일이 겪게 되는 일들이 재일이 파란 피부를 가졌기 때문인지,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불분명하게 뒤섞여있다. 재일을 바라보면서 나와 재일을 구분지을 수 있는지, 나는 어디에 속해있고 그건 어느 정도의 위치로 셈이 가능한지 짐작해본다. 재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듯,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이 피부색은 나를 계급의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보낸다. 다수에 속해 있음이 정상성을 정의하는 세상에서 내 피부는 확연한 비정상이었다. 장애를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살가운 태도로 나를 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런 행동에는 반드시 동정과 연민 그리고 약간의 자기만족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음울한 기분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이유 없이 무시당했고 때로는 예고 없는 친절에 당황했다. p.24 "


 은연중에 내 피부가 파랗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소설속의 재일을 동정하고 연민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오늘 리뷰를 쓰기까지 연달아 보게 된 기사가 트렌스젠더가 여성부 운동 경기에 참가해서 순위권을 모두 차지했다는 것과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은근히, 하지만 노골적이고 전형적인 인종차별을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남이고 북이고 그냥 아무렇게나 불러버린 우리에게만 '역대급'인 무례가 저질러졌다. 시선을 사로잡은 기사들 안에서 나를 포함하고 있는 목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동시에 베트남인인 엄마가 피해자이고 상식적인 사람이고 한국인인 아빠가 가해자이고 몰상식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면모들이 불만스러웠다. 드러난 폭력성의 차이이지 상대방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 아닐까. 베트남에서는 정말 파란색과 상관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대비되는 구도를 위해 지나친 차이를 둔 설정이지 않았을까. 베트남 사람들도 파란 피부는 차별했을텐데, 결국 너를 버린건 엄마인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네 몫의 생활비를 벌어오는 건 아내에게 배신당한 아빠일텐데, 넌 그런 아빠를 버리고 엄마를 찾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신부를 돈으로 사오는 국제결혼의 문제점에 대해 많이 접해왔으면서도 막상 국적으로 나눠지는 '편'에 서려고 하는 마음이 드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스스로를 검증하는 질문을 한다. 편견과 차별은 옳지 않다. 폭력과 범죄는 근절되어야 한다. 당연한 말로 여기고 있으면서 자신의 입장이나 이익에 따라 기우는 마음은 잡기 어렵다. 하지만 재일아, 클로이는 목숨을 잃었지만 넌 살아있잖아. 넌 남자잖아. 넌 영어를 할 수 있잖아. 넌 젊잖아. 같은 구분들을 만들어내는 스스로의 얄팍함이 느껴질 때마다 껄끄럽다.   


 불편한 부분들이 흥미를 자극했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여지는 그대로 가져왔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런 점들이 전부 '멜라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으리라. 


 "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어둠이 내게는 안식처가 되었다. 빛이 없는 세상에는 색깔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이 검게 채색된 시간, 물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투명했다. 호수에 둥둥 떠 있으면 어둠은 정수리 위로 시커먼 입을 벌렸다. p170 "


 " 나는 더 이상 백인을 우러르지도, 흑인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선망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았다. 인간을 무채색으로 만들고 나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일터와 인간 관계에 지친 사람들, 애국심과 규율로 무장한 벙커에 숨어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p291 "


 어둠안에서 안식처를 발견한 재일이, 그 안에서도 서로를 향한 공격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으며 " 작고 어린 파란색의 개인 p.291 "은 성장했다. 그리워했던 것에 품었던 환상만큼 버리고 떠나온 것에 대한 이해를 갖는 파란색의 존재가 되길. 


 단숨에 읽은 장편은 오랜만이다. 만연한 혐오가 피곤해질때 그것이 외부에서 나를 공격해오는게 맞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비워내고 싶을 때 읽어보면 자극이 되어줄 만하다. 책을 읽고 언젠가 파란 피부의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잠깐 생각해보자. 혹은 어느날 피부가 파란색이 되어버린 스스로는 어떨 것 같은지. 그 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었던가. 자신의 안에 점으로 뭉쳐진 '멜라닌' 덩어리를 마주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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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아이들 꿈꾸는돌 39
정수윤 지음 / 돌베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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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결국은 혼자서 가야 하는 길. 누구도 대신 죽어 줄 수 없듯이 누구도 대신 저 강을 건너 줄 수 없다. 친구들은 이 땅에 남을 것이고, 나는 새로운 땅으로 떠나야 한다. 외롭고, 무섭지만, 그래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p 87 "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말이 좀 생소해서 찾아보았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로 '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원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한다.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문득 자연스럽게 실향민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낯설게 생각했는데 전부터 우리를 관통하고 있는 의식과 다름 없었구나 싶었다.


 소설은 머리를 땋듯 세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처음엔 좀 헷갈려서 여름과 설이의 이야기를 여러번 다시 읽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합쳐지게 될지도 궁금하기도 했고, 낯선 북한식 표현들도 많아 아래 달려있는 주석을 참고하며 읽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표현들이 의미를 어림짐작으로 알 것 같은데 우리가 쓰는 말보다 조금 더 거친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 많았다.  


 " 아니, 아랫동네 여성분들은 이렇게 혁명적으로 사람을 사귀시나. p137 "


 2023년 6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 북 영사관 가족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이 지나고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이 영사관 가족의 실종 사건을 다루며 그들이 한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했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뒤 러시아 공안 당국이 이들 모자를 체포하기 위해 모스크바 행 항공기를 강제로 회항시켜 공항에서 이들을 체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축구선수가 꿈이고 손흥민을 좋아하는 '한광민'의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 보았던 이 사건이 떠올랐다. 


 " 지우자. 비우자. 그리고 한 마리 물고기가 되자. 내게도 분명, 태어난 이유가 있을거야...... p154 "


 '민설'이 돼지우리에서 숨어지내다 가족들도 등지고 고향을 떠나와 갖은 고생 끝에 브로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여자가 부족해 돈을 주고 신부를 사오는 낯선 몽골 남자의 집이었다. 여성들은 탈북을 시도하며 브로커에게 속아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한다는 기사를 흔히 본 기억이 떠올랐다. 설이 강제로 남자에게 보내졌을때는 소름이 끼쳤는데, 죽을 각오로 저항해서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을땐 우유를 먹이고 먹을 것을 싸서 보내준 할머니의 마음은 또 어떤지 사람이 가진 복잡한 면면들을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 "대가로 뭘 원하죠?" 미카엘인가 하는 작자가 달짝지근한 미소를 보냈다. 실없이 왜 자꾸 웃는거야. 흥, 저런 달콤함에 속을 만큼 바보가 아니야, 난. "원하는 거 없어." "거짓말하지 말아요." 나는 다시 섬으로 눈길을 주며 난간에 몸을 기댔다. 인간들이 저 섬만큼이라도 솔직해지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게, 딱 하나 있기는 있어." 거봐, 내가 뭐랬어. "로즈(여름)의 행복." p142 "


 사람이 가장 무섭고, 또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파도의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며 마음을 저미고 감동을 준다. 여름이 미카엘을 만나 그의 선의를 믿기로 한 것, 광민이 배낭여행을 온 일행들과 우연히 만나 남한 대사관으로 가는 법을 전달받게 된 것, 설이를 팔아넘겼던 브로커 부녀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돌아와 함께 떠나기로 한 것이 그렇다. 결국 이들이 만나 함께 파도치는 바다에 서게 되기까지의 여정이 전부를 버리고, 걸어서 가까스로 닿게 되는 생에 대한 도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 고위층의 잇단 망명으로 혼란해진 북한 체제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고발'이라는 책을 낸 반디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재조명 되기도 했는데 '파도의 아이들'도 함께 관심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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