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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사치 - 가족을 이루는 삶이 특별해진 시대의 가족
진미정 지음 / 김영사 / 2026년 3월
평점 :
" 결혼한 삶도, 결혼하지 않은 삶도 눈총받는 사회. 그게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8"
티비 프로그램 시청 목록이 겹치는 바람에 가끔씩 재밌고 민망했다. 아이돌 서바이벌을 봤던 중년인이라 저자의 고백과도 같은 책의 시작을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게다가 아이돌 서바이벌을 보면서 떠올리는 것이 군부대 예능이라니 대체 얼마나 옛날 사람이고, 뜬금없지만 또 납득이 되는 연계인지. 생각해보니 한국사람에게 이 가족관계, 관계성은 꽤 큰 매력 요인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한 아이돌 서바이벌에서 가족과 전화통화를 할 때 오가는 대화가 얼마나 친근하고 재미있는지*에 따라 보는 이들의 호감도가 놀랍도록 달라진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시청률과 투표에 양심과 영혼을 팔아버린 제작진이 '가족서사' 요소를 넣은 이유가 있겠구나 의심하던 차에 책에서도 통계와 함께 합리적 근거를 내놓았다. 무서운 방송국놈들.
거기다 '나는 솔로(103)'라는 프로그램이 언급되니 비슷한 세대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연애 프로그램들은 모르겠지만 '나솔'은 연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실험이나 다름 없어서 인기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연애를 관찰함으로써 설렘, 썸, 낭만, 오글거림을 대리 체험(108)"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 저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아니 저런 사람이 또 있다고? 저런 상황에? 저런 언행을 한다고? 를 대리 체험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연프를 보고 대리만족을 한다는 추측으로 "결혼, 출산을 물론 연애와 섹스까지도 거부하거나 피한다는 청년세대 담론은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115)"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했다. 오히려 내가 벗어난 리그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간군상을 관조하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희망을 찾는다는 것보다는.
"흔히 가족은 정서적 단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생산과 재생산의 단위다.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니 가족 전반의 기반이 흔들리고, 공고하다고 생각했던 핵가족 모델도 흔들리게 되었다. 60"
흥미로웠던 사실 중 하나는 IMF 이후 늘어난 가족해체이다. 지금 유례없는 비혼과 저출생의 시대에 단군 이래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못 사는 첫 세대가 등장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이 영 우연만은 아닌가보다. 흔히 결혼을 하려는 이유 중 하나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를 꼽는데 요즘은 그 심리적 안정보다 개인의 생존이 더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니,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부터 챙기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소박하게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소망(87)"이라고 하면 전에는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요즘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평범함과 남들처럼 산다는 것의 기준이 보통 이상으로 조정된 듯 하다.
통계의 허점을 들어 이혼율과 한부모가정, 1인 가구의 어마어마한 증가 지표로 사용되는 통계의 오류와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꽤나 이건 아니다 싶어 담아두고 있었던 주제였는지 어조가 강했다. 조목조목 예를 들어 잘못된 점을 짚어주는데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정말 이혼 많이들 하던데,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그동안 접했던 잘못된 통계의 해석이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81)"는 만큼 스스로의 사고도 굳어 있구나 깨달았다. 명확한 근거를 들어 설명해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할만 하다. 그동안 왜 이렇게 착각하기 쉬운 통계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기를 논해도 방치되었던 것일까, 이를 본 사람들의 인식에 무의식적으로 동조 의식이나 부정적인 견해가 생기기 쉬운데 적극적으로 정확한 연령, 시기별 통계를 반영하지 않았나 궁금해졌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저자와 비슷한 세대라 생각도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닐까 예상했었는데 각자의 경험과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 크게 느껴진 것이 "'3대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유행이라는데, '드림 렌즈, 치아 교정, 성장 주사'(157)"라며 언급한 내용이었다. 듣고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기는한데 처음 듣는 유행어였다. 저자는 결혼하지 않은 삶은 결혼한 삶보다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의구심이 들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비혼의 길로 접어든 사람은 남은 생애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결혼과 출산이 안정된 삶으로 등치되는 것은 생애과정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95)" 니, 오히려 결혼과 출산이야말로 '등골 브레이커'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변칙적 요인들로 점철된 길이 아닌가. 혼자의 삶은 오직 자신의 문제만으로 삶을 끌어가면 되지만 타인과 함께하는 삶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타인의 문제가 내 삶에 함께 끼어들 수 밖에 없다. 이는 기존의 생애과정 모델일 뿐 새로운 생애과정의 모델과 비교했을때 안정된 삶으로 등치되는 것이라 확언할 수 없다.
또 하나 "패드립이 반칙34"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대 구분을 해야하는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무너지면서 혹은 조롱과 저급한 문화가 빠르게 어린 세대에 흡수되면서 패드립을 더이상 선을 넘는 행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확장해 받아들이지 않는 세대가 생겨난 것이다.** 딸과의 일화(47)를 통해 젊은 세대의 가족 구성 형태에 대한 민감도를 새롭게 인지했던 경험을 풀어낸 바 있지만, 저자가 이 또다른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의 존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삶의 어느 순간을 지나오면서 친구라는 관계를 경시하게 되기도 하는데, 생존에 아무 필요도 없는 이 관계가 생존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C.S. 루이스(191)***의 말을 인용하면서 친구의 중요함, 필요성을 다시 보게 만들고, 가족의 형태를 더 넓게, 다르게 본다는 것이 이렇게 확장될 수 있구나 깨달았다. "자신이 선택한 관계로, 관계의 의미와 지속이 자발적 의지에 달려 있는 이 관계가 생의 후반으로 갈수록 중요해진다(190,191)"고 강조한다. 많이 공감가기도 하고 깨닫는 바도 있는 내용이었다.
"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굳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깎아내릴 필요 없다. 11"
어떤 내용엔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어떤 내용은 모로 기울인 채 이런저런 생각을 늘여보기도 하며 읽었다. 모두 다 같은 마음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재밌게 읽고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처음 마주하고 끝까지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맨 앞에 적어두었던 문장인데,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굳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깎아내릴 필요 없다'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딪힘들을 완화시킬 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기준으로만 생각해서,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다름을 틀림으로 두려고 해서 필요치 않은 다툼과 문제들이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있지 않은가. 세상과 사람들의 변화를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좋은 계기를 주는 책이었다.
*나 하루 다섯 끼 먹잖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은
** [창간 기획-혐오를 넘어](1) ‘엄마’를 욕하며 노는 아이들…교실이 ‘혐오의 배양지’가 되었다. 경향신문. 20171010
'고인 능욕' '패드립' 넘치는 교실···언제까지 "어쩔 수 없다"고만 할 건가. 한국일보. 20250909
*** 우정은 생존에는 아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정은 생존에 가치를 부여한다. C.S.루이스 <네 가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