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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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자신과 함께 유치한데 왜 재밌지 의아함이 따라붙었다. 첫 시작부터 당당히 밝힌 장르가 뭐였더라, 'SF논픽션'이었다. 강경한 어조로 강조하길래 그게 그렇게 특별하기라도 하나 싶었는데, 유치한데 결국은 그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니 그의 선택이 맞았다. 전달 방식을 달리하면 달리 걸려드는 독자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처음엔 파닭이니 하는 말들도 너무 사변적이고 이런 형식의 글에서는 큰 매력이 안 느껴진다고 세모눈을 하고 봤는데, 이상하게 자꾸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궁금해졌다. 머리말부터 '어른들을 위한'이란 것이 붙어서 수상했는데, 이런 걸 다 예상해서 쳐 둔 그물이었을까. 속는 걸 알면서도 재밌게 속아넘어가는 기분이다. 거기에 환경에 대한 깨달음까지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으니 안 넘어갈 이유도 없다. 방학 기간을 통해 책을 읽히고 싶다면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를 선택해서 함께 읽어보자. 

어린시절에 자연 다큐를 보면 보통은 세상에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있다는 소개의 내용이었다. 이들이 혹독한 환경과 엄중한 섭리 아래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이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는 내용의 다큐가 많았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일까. 책에서 북극곰들의 사냥 방식이 바뀌었다고 한 다큐멘터리(74)를 언급해 떠올랐는데, 몇 해 전 '북극의 눈물'을 보다 북극곰이 위태롭게 헤엄치며 사냥하려는 장면에서 더는 보고있기 괴로워 그만 보고 싶었다.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시청을 그만두고 죄책감과 동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는데, 그런 체험들은 일상에서의 불편으로 조금씩 남겨졌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런 직접적인 고통은 적었다. 전달 방식이 부드러운 것은 좋지만 그 부드러움이 충격에서 오는 각인과 변화를 둔화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 책에서도 실제적인 충격을 전달해주었던 것은 한 사진이었다. 투발루의 마을이 물에 잠겨 어린 아이를 데리고 물을 헤치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담긴 사진(154)은 여행지로 유명한 물의 도시들이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보다 강렬한 충격과 위기를 전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신경쓰이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오직 단 하나의 바나나 품종(165)만을 먹고 있고, 그 품종이 취약해지게 되면 지금까지 알던 단 하나의 바나나 맛과 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 "이러다간 우리 사과를 못 먹는 거 아닙니까?" 99" 하는 질문에서 내심 깜짝 놀랐다. 머리 속에서 하던 생각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그게 이 상황에서 날 법한 생각이던가, 고작 내 입에 과일이 하나 들어가고 말고의 문제로 이 상황을 바꿔버려도 되나. 저 멀리 있는 사람의 생활 기반이 모두 무너져내린다는데도, 제 입에 들어갈 것이 신경쓰이다니 사람이 이렇게 이기적이고 어리석어서 자꾸만 이러다 진짜 큰일이 난다고 반복해서 위기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리라. 

"거북이 콧구멍에서 빨대 빼는 유튜브 영상은 그만 보시고, 빨대를 종이로 바꾸든지 재활용하든지. 108" 엊그제 읽었던 일본 작가의 책에서 종이 빨대에 대한 불평을 보고는 종이 빨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공통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종이 빨대가 내 죄책감을 덜어주는 수단 중 하나여서 음료에 녹아 뭉개지거나 말거나 종이 빨대를 좋아했던 어둠의 종이 빨대단이라 이 부분에서 격한 공감을 했다. 대형 커피 체인이 다시 종이 빨대에서 플라스틱 빨대로 바꾼다는 발표를 한 뒤로 어딘지 마음이 답답했는데 다시 종이 빨대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물범이 사라지면 북극곰도 없다. (216)'는 사실을 물범들도 아는데 기후 위기가 곧 인류의 위기라는 것을 사람들이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는 가르침을 강제하거나 행동을 강요하는 내용은 아니다. 읽으면서 이야기가 이렇게 변화구를 때려도 되는가 싶은 부분도 있었다. '치킨해방전선'과 연대해서 같이 행동하기까지 했으면서 떨어지자 마자 치킨버거를 먹는 홈스와 왓슨의 모습에서 의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소고기를 먹는 일'이 끼치는 영향을 시종 언급하는 것을 보니 슈퍼 저탄소 소를 이용한 그린 워싱(250)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되나 싶다. 지구 곳곳을 누비며 세상의 문제를 파악하며 다니지만 홈스와 왓슨이 그저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점점 마음에 걸렸다. 뭔가를 더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것 참 문제군요. 사실은 이랬군요. 하며 알려주고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일이 반복되자 이야기 안에서라도 도움을 주길, 어느 문제 하나라도 해결해주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편함을 그대로 두고 누가 해결했으면, 괜찮다고 넘길 수 있도록 부채감을 덜어주길 바란 것이 씁쓸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재미있지 않는 내용을 담은 묘한 책이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어른에게도 필요한 책이니,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생활 속에서 변화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독후활동까지 해본다면 좋겠다.
... 그런데 30대 6의 경기가 기후변화의 참사(117)이라면 6한 놈들은 어디 빙기에서 야구하나? 6한 놈들의 위기고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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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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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하다 이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멸종을 앞둔 위기종처럼 보인다는 말을 했다. 결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인 세상에서 자라오다 도착해보니 아무도 결혼하지 않는 세상에 온 것 같아 낯선데, 몰려오는 사람들의 무리가 너무도 당연히 결혼하지 않는 상식을 말하는 것 같아 자칫하다간 그 전의 세상에서도 이 후의 세상에서도 밀려나버릴 것만 같단 이야기였다. 그래서 '필연적 혼자의 시대'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낯선 세상에 불시착해버린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남과 비교해서 부족하거나 결핍이 있는 것을 못견뎌하는 세상에서 왜 사람들은 유독 '전통적 가정'의 형태만은 잃어도 괜찮아하는걸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세뇌되어 왔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혼자 살 수 있고, 혼자 사는 삶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을 끝낸 것 아닐까. 외부조건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일정 기준을 넘어섰을때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공식이 깨지고 새롭게 수정된 결과값이 나온 것이다. 이 변화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이루도록 판단내렸던 계산값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어쩌면 애초의 목표가 달라져 새로운 계산법으로 내린 결과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런 분석이나 이유같은건 필요없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왜 결혼을 하지 않을까, '왜'로 시작하는 질문들은 전 세대의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전에 결혼이 때가 되면 당연히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그냥 안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인 것이다. 왜 결혼을 하는가에 남들이 다 하니까, 종의 유전자를 후대로 잇기 위한 본능이니까 같은 오래된 답들처럼 남들도 다 안하니까, 이 종이 이제는 자연히 사라지게 될 흐름이니까.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마 저자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생각하기로 이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부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임과 조건에 대한 부담.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내가 너를 책임질 수 있을까, 영원하지도 않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유로 이 관계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게다가 결혼으로 인해 엮이는 관계들도 부담이다. 결혼도 되돌리기 어려운데, 출산은 더더욱이다. 이렇게 멀리 생각하지 않아도 책임을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과정 마저도 부담이다. 취업하고 차나 집을 마련할 돈을 모으고, 한 가구의 가장들이 되기에 거쳐야 할 조건들이 많다. 없으면 없는대로 꾸려나가면 된다지만 부족할 바에야 차라리 없는게 더 낫다고 '낳음 당했다'는 표현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 내가 만난 1인가구들도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카페, 버스, 빨래방, 그리고 자기만의 방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타인의 존재는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은 백색소음으로 떠돌았다. 110"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고독한 현대 미국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호퍼의 그림과 1인가구들의 일상속의 뷰가 닮아있다는 점을 역설했는데, 그렇다면 저런 장소들에서 대체 타인과 어떤 관계맺기를 해야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어서 의아했다. 카페, 버스, 빨래방, 자기만의 방에서 너무나도 타인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에 타인이 고려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들의 특징이라고 규정될 수 있는가. 이들에 대한 어떤 규정들은 결과를 위한 규정같이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조카바보(281)'같은 것도 형제자매의 자식이어도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 조금 더 관심이 가고 예뻐할 뿐이지 프레임만큼 애정을 쏟지 않는다거나 사실 큰 교류나 관심이 없다는 입장인 사람들도 다수 보았다. 이들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 가족은 장시간 노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존재다. ...중략... 혼자 사는 노동자들은 이런 요구를 받거나 걱정 섞인 잔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언뜻 보면 이는 자유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시간과 공간을 다시 일에 투입하다 보면, 이들의 일상은 자신도 모르게 일에 잠식당한다. 브레이크 없는 자유는 결국 멈출 수 없는 질주가 된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업무용 인생이 된다. 61" 

이 부분에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1인 가구의 가장들은 무엇보다 스스로가 이끄는 가정에서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을 다시 노동에 투입하다니, 요즘은 정해진 값어치 이상의 노동,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업무는 거부하는 '새로운 보통'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인터뷰 대상의 연령층이 너무 높게 고정되어 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개인의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있어 가사노동은 피할 수 없는 화제였다. 밥이라는 것이 대체 뭐길래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어렵다(29)"는 답이 혼자 살 때 가장 어려운 점 1위일까. 결혼을 해서 가족이 있으면 식단의 균형이 저절로 잡히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이들이 떠올린 균형 잡힌 식사라는 것은 어쩌면 엄마와 살 때 제공되던 엄마의 가사노동의 결과(엄마 아니면 플랫폼 111)였을지도 모른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겼을 때 아이 식사를 챙기기 위한 변화를 염두에 두었을 수 있지만, 그 역시 엄마의 가사노동 결과일 것이다. 그러니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을지도(25).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는 말. 사실, 엄마들도 이 새로운 세대를 키울 때 비슷한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분명 결혼해서 가정을 잘 꾸리고 살아가라는 바람도 있었겠지만,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결혼함과 동시에 사회적인 자신을 멈추지말고 돈을 벌어서 스스로 쓰며 살아가라는 바람도 강하게 담았다. 그동안 지속되어 온 여성의 삶에 대한 의문과 저항이 두 세대의 바람으로 묶여 지금 진통을 겪으며 결과로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혼자서 살아가기로 했을까, 앞으로 우리가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책을 앞에 두고 많이 생각해보며 읽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혼자로 존재하되 함께 가는 방향을 모색하여 나아갈 필요성을 크게 느끼며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읽었다. 어떤 내용들은 나의 체감이나 생각과는 다르기도 했지만, 어떤 내용들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바탕을 짚어낸 듯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뭐든지 혼자 해내는 새로운 시대에 대해 발빠르게 파악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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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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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동시에 숨기고 있던 의문, 부끄러움을 낱낱이 드러내놓은 기분이었다. 일터 앞에 있는 대로는 대부분의 시위자들이 향하는 목적지로 이어져있어 큰일이 있을 때에는 거의 항상, 그리고 때때로 이러저러한 문구가 새겨진 깃발과 조끼를 갖춘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곤 했다. 길고 지리한 사람들의 행렬과 소음, 물이나 화장실을 찾아 들어오는 방문객들을 창 밖으로 바라볼때면 옆에서 불평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화장실을 찾아 어디까지 들어와서 불편하다거나, 하루종일 너무 시끄럽다거나, 퇴근할 때 길이 막힐 것 같다는 그런 작은 불편이었다. '바깥의 저 사람들이 하나씩 달고 있는 '노동'이라는 단어, 우리가 그거잖아요. 우리 휴가가 보장되고, 연봉이 오르고, 고용이 보장되는 게 저 불편에서 왔어요.' 그들과의 사이를 벌릴 용기도 없어 속으로 웅얼거리고는 "소시민"답게 오늘 퇴근하고 어떤 일정이 있느냐며 말을 돌리곤 했다. 이런 자신의 비겁함이나 그나마 선하고 싶다는 욕망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드러내도 될까 그런 복잡함을 품고 책을 읽었다. 

칼럼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이라 한편의 분량이 길지 않고 대체로 명확한 주제가 드러나 읽기 편하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도 나도 알고 있는 우리 세상의 이야기를 한번쯤은 도마 위에 올려놓아 보자고 건네는 듯 하다. 그만큼의 가벼움으로 읽고 넘기기만 해서는 안되겠지만, 확실히 부담은 덜했다. 트렌스젠더나 돌봄노동, 다문화와 난민,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난민 문제, 동물보호법, SPC 제빵공장 노동자의 죽음 같은 사회와 개인 문제에서 123사태, 부정선거 논란, 부동산 대책, 코인과 주식 같은 정치와 경제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가 다뤄진다. 

" 여성 노동자들은 파업 기간 내내 '떴다, 아지메 부대'를 자처하며 치열하게 싸우고 먹였다. 그러다 희생양이 됐다. 정리해고 후 노조에 직고용됐는데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임금이 줄고 신분도 열악해졌다. 함께 해고된 남성 노동자들은 복직됐다.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복직을 노사 협의에서 다뤄달라고 노조에 요청하자 노조 대의원대회는 거부했다. 107" 

읽는동안 여성의 문제가 많이 눈에 띄었다. 책 안에서도 김장 버티기, 제사 폐지를 주장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나 살림 밑천으로 쓰인 수많은 여성들의 삶, 그리고 돌봄노동의 현실까지 다양한 여성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제고 대체될 수 있고 가장 변화가 없는 환경과 조건에서 여성들의 노동은 계속되고 있다. 어느 건물에나 있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에게 휴게 공간이 없어, 화장실 한 칸을 막아 그 안에 청소도구를 두고 청소노동자 역시 그 화장실 칸 안에서 쉬고, 밥을 먹는다. 매일 화장실을 이용하면서도 타인의 상황을 눈여겨보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까지 눈치채지조차 못했다. 거기다 노동 투쟁의 현장에서조차 지워지고 배제되는 여성의 권리가 암담했다. 투쟁을 하면서도 동료들의 밥을 차려먹어야 했던 이들은 가정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집안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하고 당연스러운 노동을 또 해내야겠지. 거기서 우리는 또 얼마나 벗어났을까. 

" 한 여성이 '바깥일'을 하려면 다른 여성의 돌봄노동이 필요하고, 누군가 김치 담그기에서 해방되자면 누군가의 고단한 노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엄마표 김치'라는 그리운 말이 실은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이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하는 말"이라는 걸 깨우쳐준다. 303" 

사투리에 대한 이야기(116)가 나왔을 때 예전에 나도 경상도 출신 사람들 특유의 사투리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 생각났다. 다른 지역 출신 사람들은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말투로 고향을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유독 경상도 출신의 사람들은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그 의문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관심있게 읽었다. 전에는 왜 그럴까에만 생각이 그쳤다면 요즘은 사투리를 쓰거나 쓰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는 일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서울 중심적인 행태가 불편하다고 여겨지는데, 고작 억양이나 말투같은 것으로 왜 고치지 않을까 왜 고칠까 생각하는 것조차 그 배경이 어떠하든 불필요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떤 기준에 대한 잣대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 게 과연 옳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우리가 과거에 당연시했던 가치들이 지금은 잘못이었고 무지였음을 깨닫곤 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아주 나중에 세상의 판단 앞에서 어떻게 해석될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솔직하자면 어떤 주제들은 반발심과 같은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분명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변화의 흐름에서 갑자기 멈춰서서, '이 방향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어' 하고 깨닫게 되는 일도 있었다. 오히려 그때는 미숙했고 지금의 전환이 더 맞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불과 10여년 전 쯤만 해도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결혼도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미래가 이렇게 가깝게 다가올지 몰랐다. 인간의 모든 역사에서 당연한 본능이라고 여겨졌던 큰 줄기 하나가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나아가기로 한 방향이 맞다고 어느 누가 정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의문 앞에서도 결국 나아가야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변화를 손에 넣을 수 있음을 알지만 요즘의 진통을 떠올려보면 이 앞이 가려던 곳이 맞을까 의문을 떨칠 수 없게 된다. 

" 문학의 쓸모는 타자에 대한 공감이라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젠더나 섹슈얼리티의 타자, 심지어 비인간 타자에게는 관심이 가도, 계급적 타자에게는 그러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진보적이며, 약간의 기부로 부채감을 퉁치고 마는 패션 좌파가 된 것은 아닐까 자문하고 있었다. 261" 

스스로를 좌파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이 문장에 이르러 큰 공감을 했다. 처음엔 바로 앞을 막아서고 집요하게 눈을 마주하는 낯선이를 상대하는 기분이 들어 어쩐지 불쾌하고 피하고 싶었다. 이게 당신의 모습이라고, 티비 앞에서는 세상이 어쩌려고 그러냐며 말을 얹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선 글쎄요,하고 말을 뭉개고 생각나면 가끔 이리저리 기부를 했다가도 길에서 서명을 받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기는 일이 망설여졌다. 공감은 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그런 자신의 모습을 들킨 기분으로 문제 앞에 서는 일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선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에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만 하는 약함을 꼬집는 것 같았다. 잘한 것이 없어도 잘하고 있다고 위로받고 싶은 욕심까지 들킨 기분이었다. 그 나약함과 욕심 덕분에 어떤 주제 앞에선 공감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는 사람과 자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과연 언제까지 이 흐린 구역에서 있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마음 속에 의문과 불안을 품어보았던 사람이라면 '앎과 삶 사이에서'가 거울과 쐐기가 되어줄 것이다.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답을 구하는 길을 가자고 말을 건네오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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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뇌과학 - 더 나은 관계를 위한 4단계 뇌 최적화 전략 쓸모 많은 뇌과학 15
에이미 뱅크스.리 앤 허시먼 지음, 김현정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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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연구는 외로움이 사람을 가장 빨리 죽이고, 쉽게 병들게 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경고한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이것이 과학적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문제는 그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6" 

책에서 말하는 CARE 프로그램은 " 타인을 대할 때 얼마나 평온한지Calm, 타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수용감을 느끼는지Accepted, 타인의 마음에 얼마나 공감하는지Resonate, 이런 관계를 통해 얼마나 활력을 얻는지Energized 파악할 수 있(11)"는 체계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뇌과학을 어떤 방식으로 인간관계에 적용해 문제적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 관심을 갖고 살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CARE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서도 문화적 차이라는 장벽없이 적용 가능한지도 의문을 갖고 지켜보았다. 

이제까지 우리는 관계 안에서 스트레스가 생겨난다고 여겼다. 물론 맞다. 나와 다른 타인과의 관계는 항상 좋을 수 없고, 한정된 목표를 가지고 경쟁하듯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타인은 스트레스 요인이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쏟고, 챙기고, 살피고,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조차 심력과 체력을 요하는 일이라 사회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타인을 끊어내거나 그조차 여력이 나질 않으면 자신을 살피길 멈추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관계의 뇌과학'에서는 "사회적 고립은 당신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33)"며 사회적 고립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한다. 우리는 그동안 반대 방향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도피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 신경을 잇는 경로는 충분히 자극을 받지 못하면 점점 약해져 신호를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감사한 재능을 잘 유지하려면 복잡한 거울 신경계를 계속 자극해야 한다. 75" 

갈수록 우리가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부족한 사회가 되어간다며 한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저 문장에 있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과거에 비해 덜 촘촘해졌다. 과거 우리는 이웃과 허물없이 지내고 타인과 좀 더 무람없이 교류했다. 하지만 지금은 채 열 걸음 정도가 되지 않는 아파트 이웃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대중교통에서 옆에 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 들고 있는 짐을 무릎 위에 올려 들어주겠다고 말을 거는 일 같은 것은 없다. 누군가에게 신경을 기울이고 교류하는 일을 불필요한 접근이라 여기면서 자연스럽게 전에 비해 자극을 덜 주고받게 된 것이 아닐까. 

MBTI의 대유행 이후 타인과 교류하고 싶지 않은 소극적인 태도를 I 유형이기 때문이라고 핑계대며 인간관계의 폭이 좁고, 관계를 맺는 것보다 끊는 것을 더 쉽게 해온 자신을 원래 그게 더 좋고 편한 사람으로 여겨왔는데 '인간관계의 뇌과학'을 읽으며 사실은 그게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 때 책은 그 또한 해결 방법이 있다고 말해준다. 약해진 자극으로 기능이 멈추었다고 해도 반복된 훈련으로 굳어진 경로에 다시 자극을 전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의 뇌는 변할 수 있고, 달라진 뇌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법도 바꿀 수 있다. "환경이 변하면 뇌의 경로도 달라진다. (95)" 

앞부분의 내용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4장부터 시작된다. 스스로에 대한 진단도 4장에서 마련된 항목으로 확인해 볼 수 있으니 일단 본론부터 내용을 시작해야 마음이 편한 성향이라면 4장부터 책을 읽어도 좋겠다. 전부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문답해야 하는 상황에서 진짜 자신의 현상황과 스스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제대로 구분해내고 있는가 고민하곤 했는데, 책에서 이런 문제점을 짚어주는 내용이 나와서 (지나치게 오래 생각하지 말고 본능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일부 문장에 정확하게 답하려고 애쓰다 보면 관계의 참모습을 '속이게' 된다. 118)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렇게 점수가 나오는 문항들은 높은 점수를 원하는 속마음때문에 자신을 속이기 더 쉬울 것이다. 

물론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점수를 매기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개선법 중에서도 '관계 마음챙김 명상(188)'같은 것들은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관계 역설에서 나오는 내가 숨기고 있던 것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보는 훈련(225)은 시도해보기 조차 어렵다. 누구나 비밀은 있고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영역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조차 '내 진짜 모습을 알면 나를 거부할 거야(225)'라는 생각 때문에 숨기는 본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방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되살펴보기도 했다. 이 솔직함이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고 삶을 가볍게 만들 것이라는 낙관은 다소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책에서 [굿 윌 헌팅]이나 [죠스]같은 영화를 예를 들며 설명할 때가 있는데 이때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를 제시해보고 싶었다. 

책의 첫 부분에 짧은 꼬리 원숭이 실험(20)에 대해 나오는데 그 내용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뇌는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행동에도 마치 자신의 것인양 모방하는 거울 효과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이어져 폭력적 이미지에 노출되는 빈도를 줄여야 함을 강조하는 조언을 보니 크게 이해되었다. 일부 이용자들에게는 여전히 반발을 사겠지만 책에서는 "전쟁이나 범죄를 주제로 하는 게임(259)" 역시 "당신이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당하고 있기라도 한 듯 몸과 뇌가 폭력 장면을 그대로 모방한다는 사실(259)"에 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솔직하자면 코미디 장르의 영화보다는 비급 정서의 고어영화를 즐겨보곤 했는데 앞으로는 좀 달라져야겠단 생각도 하게 되었다. 

뇌와 인간관계 위주로 여러 조언이 있었는데 말미에 들어서면 건강한 뇌를 위한 관리 방법도 있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내용이라 9장의 핵심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물을 마셔라, 신체와 뇌를 함께 훈련하라(운동을 통한 신경전달물질 분비, 뇌유래신경인자 분비 증가), 오메가3 지방산을 섭취하라, 충격으로부터 뇌를 보호하라(물리적 충격), 햇볕을 쬐라, 잠을 충분히 자라(성인 하루 7~8시간), 뇌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라(블루베리, 아보카도, 통곡물, 콩 등), 뇌 훈련 프로그램을 활용하라, 마음에 드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라.' 등이 있다. 간단하고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인 것 같지만 다시 한 번 왜 이런 생활방식을 가져야 하는지 곱씹을 수 있는 설명이 함께 있어 유용했다. 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서 냉장고에 붙여 놓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머리로 하지 말고 가슴으로 하라는 말이 세상을 강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인간관계의 뇌과학'이라니, 결국 또 머리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하는 걸까 궁금함을 품고 책을 읽었다. 생각해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도 결국 지능이다'는 주장도 맞는 말이었다. 짧은 꼬리 원숭이 실험에서처럼 타인의 행동과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것이 뇌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보통 마음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그 곳으로 생각과 느낌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머리였다. 마음이 아닌 머리의 훈련과 전환을 통해 문제를 바꿀 수 있다는 관점이 변화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었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왜 갈수록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고 느끼는 것일까, 스스로가 고립의 길로 걸어가고 있으면서 왜 외롭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건강한 인간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조언이 될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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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2026.상반기 - 제52권 1호
한국문학사 편집부 지음 / 한국문학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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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상실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26년 상반기 한국문학을 읽는 동안 때때로 많은 눈이 내렸고, 얼마간은 깊이 추웠다가 날이 좀 풀리는 듯한 날에는 젖은 거리에 뿌연 입김이 서린 듯 흐렸다. 안미옥 작가의 [겨울의 일들] 그 자체와 다름없었다. 여행을 떠난 친구의 이야기를 읽다가 반대로 여름에 떠난 사람의 일을 떠올렸다. 나는 먼 발치서 가끔씩만 그를 보았고, 그 사람은 나를 알지 못한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던 그 사람의 일은, 건너건너 전해들은 소식으로 남아 이렇게 이따금씩 떠올리게 된다. 그 소식을 몰랐다면 나 역시 여전히 그가 어딘가에서 그답게 있을 것이라 여기며 잊었을까. 그래 어쩌면 잊었을지도. 

" 아이에게 종종 말한다. 이제 몇 년 더 지나면, 엄마나 아빠보다 친구가 더 소중해지는 때가 온대.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지는 때가 온다고 해. 그때도 종종 엄마에게 친구랑 있었던 일들, 즐거웠던 일들, 슬펐던 일들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혼자만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마음을 나눠주면 좋겠어. 20" 

그 애는 아직은 모를 미래이지만 그 시간동안 어른이 된 나 역시 그랬었다. 내가 생각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비밀로 남겨두고 싶은 일들을 친구와 나누던 때가. 그 다음, 그 다음은 누군가를 사랑했었다. 그리고 요즘은 이상하게도 자신으로 돌아왔다. 갈수록 자신을 파고드는 것이 가장 어렵고 또 중요하게 생각된다. 나를 다 사랑하고 난 다음도 있는 것일까? 언젠가 또 이 다음을 알게되는 날이 오겠지, 그럼 그때는 그런 내 마음을 엄마에게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신작 소설 조경란 작가의 [절차]에서도 떠난 누군가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과정이 계속되었다.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희미한데 없는 사람들로만 둘러싸인 기분이 들었다. 겨울이란 계절이 그런 것일까. 차갑고 서투른 멜랑콜리를 눈처럼 녹여 삼키며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 나를 사랑하고 난 다음이 되는걸까 생각했다. 내가 밖으로 나설 때 '갈게요'하고 남긴 인사 뒤에서 엄마도 뭔가를 헤아리며 계속 기다리고 있는걸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고. 다만 엄마의 기다림이 "몇 시간 아니고 한 시간(75)"처럼 느껴지길 바란다.  

상실이 없는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묵은 공기를 환기시키듯 현실에서 한국문학과 웹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상반기에는 긴 겨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첫 절기인 입춘처럼 피어나는 문화에 대한 시선도 있었다. 해외에서 한국문학의 수요가 크게 성장했다는 결과값은 매번 더 크게 되풀이되는 '책을 읽는 사람이 없다'는 위기론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솔직하자면 소설의 웹툰화, 웹툰의 영상화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지만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공이 검증된 작품을 재생산하여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시장의 움직임에는 그만한 바탕층이 있을 것이다. 

2026 한국문학 상반기호를 읽기 전에 가장 기대가 됐던 것이 '비평의 눈'이었다. 마침 천선란 작가의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를 읽고 있던 때였다. 막상 읽고보니 이미 읽은 책보다 아직 못 읽어 본 [멜론은 어쩌다]의 제목들이 자꾸만 더 눈에 띄었다.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같은 제목이 주는 키치한 호기심을 어떤 독자가 거부할 수 있겠나 싶었다. " 아밀은 파국 이후가 아니라 이미 조금 달라져 있는 세계에서 이야기를 시작 (235)"하고 " 천선란의 세계는 이미 되돌리거나 회복될 수 없고 (235)"다는 구분처럼 천선란 작가의 세계보다 더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점도 흥미를 더하는 요소가 될 만 했다. 

이제 막 첫번째 달을 지나보냈을 뿐인데, 상반기를 끝내버린 기분이 든다. 매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난다고 불평하면서도, 아직 한참 멀리 있는 것 같은 여름을 상상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어쩌면 다음엔 한국문학의 위기라 끌어올려지는 남작가 기근 현상, 남작가로서 작품활동을 할 때 거쳐야 하는 자기 검열에 대한 분석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다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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