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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 만약 엄마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다면 안나 같은 엄마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안나 역시 자신을 보면서 소년 같은 아들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46"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을 읽기 전에 책을 소개하는 카드뉴스를 보고 강렬한 흥미를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읽기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 양가적인 생각은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을 읽는 내내 따라붙어 왔다. 제목부터 저주와 축복이 서로 다르게 그러나 나란히 적혀있었고, 누군가의 상황, 삶에 대해 어느 한 갈래만으로는 바라볼 수 없도록 미묘한 불편함, 긴장감을 주었다.
" 누구에게도 타인을 함부로 단죄할 권리는 없다. 58"
우식이 두번째 자가격리를 할 때 찾아본 첫 연애상대가 '결혼해서 여섯 살 된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28)', 조카를 이용해 인플루언서가 되려는 형네 부부와 싸운 일(52), '더 빨래'에서 디지털장례 서비스를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도와 과거를 지우는데 주력한 일(56),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마태공의 중학생 딸, 그런 딸을 위해 루머를 만들어낸 아버지(88), 전쟁을 핑계로 어린 소년을 가둔 안나와 스스로를 벽장 안 안가에 가둔 소년 기준의 이야기는 이편이 나쁘다, 저편이 맞다는 식으로 분명하게 갈라내기 어렵다.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 무엇이 맞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지 모를 불분명함은 '벙커 1983' 텔레비전의 퀴즈 쇼에서 극대화된다. 난파선 게임, 트롤리의 딜레마,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누군가를 제외하고, 희생시키고, 죽이고, 죽는 선택지들이 우식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매번 '누구에게도 타인을 함부로 단죄할 권리는 없(58)'을 강조하는데 쓰인다.
당신의 선택이 옳은가, 당신의 선택이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는가, 당신의 선택에 그만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두드림은 인터넷이라는 접근성과 파급력이 좋은 수단 덕분에 너무도 쉽게 일방적으로 고발되고 제기되는 사건들 속에서, 스스로에게 마땅히 그만한 권한이 주어졌다고 믿는 대중들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다 잊혀지고 번복되었다가 사그라드는 수많은 과정들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이 지른 단말마 같았다.
코로나 때 자가격리를 하며 쓴 소설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래도록 집에 있으면서 처음엔 집에만 있으면 된다니 오히려 좋아 하다가, 몇 번이고 달고나커피 같은 것을 만들다 실패도 하고, 집에 있는게 이렇게 좀이 쑤시는 일이었나 의심하게 되면서 갇힌 사람과 가둔 사람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지도 몰라, 하고. 아포칼립스 세상 속 오직 두 사람만의 세계에 대한 쌉싸름함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전부터 세상과 사람의 다면성을 꿰뚫기 위해 준비된 이야기였다.
교차되는 우식과 기준의 이야기는 30년의 시간을 오가면서 가둬지고, 가두고, 머물고, 격리되는 사람들과 시간을 열람하도록 안내한다.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인 디테일이 살아있는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은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표지로 돌아가 제목과 그림을 마주했을때 비로소 '아!'하는 "소름 끼치는 순간"을 선사한다. 이 묘하고 낯선 이야기에서 사그라드는 계절의 음울하고 서늘한 기운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