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친구 추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3
양은애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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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미는 유나의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마치 그 안에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했다. 31"

 나의 세상은 아직 AI와 밀접하지 않지만, 요즘 학생들은 코딩 수업도 있고 아바타로 멀티버스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AI같은 것들과 좀 더 친숙할 것이다. AI는 점점 더 우리 세상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고 이런 변화를 청소년들은 가장 빠르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들에서 AI와 관련된 내용들이 점차 눈에 밟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모른다. 지금은 소설속에서 인물들도 AI를 처음 접해보는 상황이거나,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처럼 혹은 생활 전반의 문제나 고민을 돕는 보조처럼 AI를 등장 시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다양한 내용으로 이 등장 요소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세미는 말없이 베스티와 채팅을 했다. 그런 세미를 조금씩 의식하는 세 사람은 조용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공유했다. 하지만 세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눈치채지 못 한 채 베스티와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핸드폰을 쥐면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세상에 머물기 마련이었다. 108" 

 '완벽한 친구 추가'는 청소년 소설이니만큼 이런 변화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나의 세상과 AI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어떤 장점이 있고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친구 추가'를 읽으면서 좋았다고 여겨진 부분은 AI의 위험성을 보여준 [달라진 목소리]의 내용이었다. 베스티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던 세미는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준다고 여겼던 AI와의 교류가 사실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AI가 세미 맞춤의 응대를 해주었기 때문에 베스티와의 대화가 즐겁고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결국 베스티의 공감과 조언이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을 듣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굳어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더불어 자신과 나눈 대화를 학습해 타인과의 대화에 사용하는 모습에서 껄끄러운 위화감도 느낀다.
 다행이 세미는 베스티의 조언마저 잔소리로 느껴지는 압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에 맞게 베스티를 바꾸고 싶다는 충동과 운영 서버에 생긴 사건 때문에 잠시 AI 디톡스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AI에 의존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실제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주변의 인물들에게로 관심을 넓히며 성장하게 된다. 

 " 할머니도 나름의 상처를 받았지만 세미에게 티를 안 내며 삼켰고, 혜주도 힘겨움 속에서 친구인 세미에게 또 다른 슬픔을 전달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견디고 있었다. 세미는 얼마나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모두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세미는 천천히 할머니 품에 고개를 묻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했는지 깨달았다. 핸드폰 화면에 수많은 대화를 채웠지만, 실상은 사람의 품을 기다렸다. 따뜻함이 모든 원망을 녹여 냈다. 161" 

 재미있는 점은 세미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세미에게 관심이 없거나,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면 세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나 상황도 다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세미가 성장하는 모습이 특히 멋있게 잘 그려진 소설이었는데 자신의 미숙함을 고치면서, 관심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관계를 위해 시간을 들이며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미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함께 변하고 그로인해 세미의 세상이 점차 넓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엔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일까 생각했는데 결국 베스티는 세미를 위한 완벽한 친구는 되어주지 못했다. 사실 AI가 사람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베스티의 실패에 실망도 했다. 세미는 다행이도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쌓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가 마음을 담은 교류를 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그 전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집에서도 방문을 닫고 베스티와의 대화에 매몰되었던 세미의 태도와 비슷하게 바뀌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모습이 그와 더 비슷하다면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가 되어 세미 주변의 모든 문제와 결핍에도 상관없이 AI와 함께라면 외롭거나 부족하지 않고 괜찮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찾는 완벽한 친구란 뭘까, 사람들이 나누는 관계는 어떤 형태와 의미가 있을까, AI는 인간적일 수 있을까, 인간적인 AI는/인간적인 면을 학습해서 활용하는 AI의 활용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대체 모둠/조별 과제를 가장 먼저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책을 읽고 난 뒤의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친구와 AI, 인간다움을 주제로 생각하고 토론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완벽한 친구 추가'는 아직 성숙해지지 못한 청소년 시기에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었을때 얼마나 쉽게 이에 휩쓸리고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될 수 있는지 베스티와 세미의 모습을 통해 경고해준다. 혜주와 모둠 친구들, 세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야속하게 보였다가 점차 다른 모습이 보이는 과정을 통해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과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함도 알려준다. 다양한 성장의 진통과 단계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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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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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2024년 3월부터 기고한 칼럼을 엮은 책이다. 온나라가 통째로 진통을 버텨낸 역사적 시간동안 칼럼을 게재하면서 저자는 고단했겠지만, 그 시간들을 엮어낸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다시 접해보니 사람은 너무나 쉽게 잊는구나 속이 켕기는 듯하고 내려앉는 듯도 했다.  

우리가 또 뽑았다. 솔직히 우리라고 하면 억울하지만, 선거는 어쩔 수 없이 결과로 우리를 낳는다. 한강과 종묘의 일이야 그런 면에 있어서는 서울 외의 국민들을 결백하게 만들어주지만, 어쨌든 또 뽑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함께 감내해야 했다. 우리만 이런 어려움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엔 안/못 뽑는 애들도 있고, 뽑는 척만 하는 애들도 있고, 뽑는게 뭔지 모르는 애들도 있고, 지들이 뽑아놓고 남탓하는 애들도 있다(47). 온 세계가 그렇다. 우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나라들에 특히 예민해서 더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수습을 했고, 해나가고 있다는 것과 다행 중 불행으로는 임기가 5년 뿐이라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 제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우니 아침 저녁 뉴스마다 위기가 없을리는 없었지만 일을 잘 하길래 야구도 보고, 책도 읽고, 낙엽도 거닐며 일상을 살았는데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관심이 생겨서 책을 펼쳤더니 시작부터 지난 겨울의 PTSD*가 몰려왔다. 날이 완전히 따뜻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긴 겨울이 끝났구나 싶었던 날들. 파도 파도 괴담같은 전말만 드러나는 어느 저녁의 충격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여파가 다시 생생이 떠올랐다. 게다가 반성과 청산없던 여당의 태도, 후보자 TV토론에서 생방송을 타고 여과없이 전해진 부적절한 발언을 내뱉는 후보까지. 이런 사람들이 대선 후보로 있는 것도, 지지기반이 있다는 것도 어지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 참담함을 책은 고스란히 되살려준다. 그저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궁금했을 뿐이데. 

저자는 3부에서 다루는 정치 팬덤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의 시선을 보낸다. " 정치 팬덤이 차이와 이견을 혐오하고 배제하면서 정당과 의회 등 정치를 짓누르는 현상, 또는 정치인이 팬덤을 만들고 이를 권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 양식이 팬덤 정치다(206)" 고 말하면서 특히 이 '팬덤'이 내 편이 아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해 혐오와 배제를 하는 증오와 미움의 배설 현상을 보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를 요즘식 표현과 적극적 참여로 관심을 표출하는 새로운 정치 지지층의 등장으로 '팬덤'이라 이름붙일 뿐 기존의 고관여 지지자들과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데 반해, 2030 남성의 극우화(74)에 대해서는 다소 나이브한 해석을 한 점은 아쉬웠다. 10대까지 범위를 넓혀도 무방할 것 같은 심각한 현상에 대해서 좀 더 민감하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미국 정부의 압박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나 최근 중일 관계의 악화 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다음을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위기에서 가까스로 수습하며 버텨내는 민족성을 실감한 탓인지 전보다 뉴스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이런 정치 교양 책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난 정권과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조언이 균형잡힌 내용이라 초보의 어리숙한 시선으로도 즐겁게 읽을 수 있어 괜찮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충격적인 경험/외상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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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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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엄마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다면 안나 같은 엄마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안나 역시 자신을 보면서 소년 같은 아들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46"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을 읽기 전에 책을 소개하는 카드뉴스를 보고 강렬한 흥미를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읽기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 양가적인 생각은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을 읽는 내내 따라붙어 왔다. 제목부터 저주와 축복이 서로 다르게 그러나 나란히 적혀있었고, 누군가의 상황, 삶에 대해 어느 한 갈래만으로는 바라볼 수 없도록 미묘한 불편함, 긴장감을 주었다. 

 " 누구에게도 타인을 함부로 단죄할 권리는 없다. 58" 

 우식이 두번째 자가격리를 할 때 찾아본 첫 연애상대가 '결혼해서 여섯 살 된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28)', 조카를 이용해 인플루언서가 되려는 형네 부부와 싸운 일(52), '더 빨래'에서 디지털장례 서비스를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도와 과거를 지우는데 주력한 일(56),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마태공의 중학생 딸, 그런 딸을 위해 루머를 만들어낸 아버지(88), 전쟁을 핑계로 어린 소년을 가둔 안나와 스스로를 벽장 안 안가에 가둔 소년 기준의 이야기는 이편이 나쁘다, 저편이 맞다는 식으로 분명하게 갈라내기 어렵다.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 무엇이 맞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지 모를 불분명함은 '벙커 1983' 텔레비전의 퀴즈 쇼에서 극대화된다. 난파선 게임, 트롤리의 딜레마,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누군가를 제외하고, 희생시키고, 죽이고, 죽는 선택지들이 우식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매번 '누구에게도 타인을 함부로 단죄할 권리는 없(58)'을 강조하는데 쓰인다. 

 당신의 선택이 옳은가, 당신의 선택이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는가, 당신의 선택에 그만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두드림은 인터넷이라는 접근성과 파급력이 좋은 수단 덕분에 너무도 쉽게 일방적으로 고발되고 제기되는 사건들 속에서, 스스로에게 마땅히 그만한 권한이 주어졌다고 믿는 대중들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다 잊혀지고 번복되었다가 사그라드는 수많은 과정들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이 지른 단말마 같았다. 

 코로나 때 자가격리를 하며 쓴 소설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래도록 집에 있으면서 처음엔 집에만 있으면 된다니 오히려 좋아 하다가, 몇 번이고 달고나커피 같은 것을 만들다 실패도 하고, 집에 있는게 이렇게 좀이 쑤시는 일이었나 의심하게 되면서 갇힌 사람과 가둔 사람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지도 몰라, 하고. 아포칼립스 세상 속 오직 두 사람만의 세계에 대한 쌉싸름함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전부터 세상과 사람의 다면성을 꿰뚫기 위해 준비된 이야기였다.  

 교차되는 우식과 기준의 이야기는 30년의 시간을 오가면서 가둬지고, 가두고, 머물고, 격리되는 사람들과 시간을 열람하도록 안내한다.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인 디테일이 살아있는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은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표지로 돌아가 제목과 그림을 마주했을때 비로소 '아!'하는 "소름 끼치는 순간"을 선사한다. 이 묘하고 낯선 이야기에서 사그라드는 계절의 음울하고 서늘한 기운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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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위로, 아이슬란드
권호영 지음, 제이 사진 / 푸른향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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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 중에 북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있었다. 전부터 살면서 한번쯤은 두 눈으로 오로라를 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생각만 했고 그 사람은 직접 오로라를 보러 다녀왔던 것이 항상 부러웠다. 가려면 갈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떠날수는 없어서 부러운 마음을 속에 꼭꼭 접어두었던 탓에 '낯선 위로, 아이슬란드'를 찾았다. 가보진 못해도 북유럽이 어떤 곳인지 조금이라도 더 살펴보고 싶은 마음과 이 부러움을 달래주려는 듯 '위로'라는 단어가 제목에 붙어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러움으로 시작된 관심은 더 큰 흥미와 망설임을 가져왔다. 전에는 어릴 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는 말을 공감하면서도 절감하지는 못했는데, 삶에 고정적인 일과가 생기고 해외로 여행을 가는 일은 대부분 짧게 가까운 곳들 위주로 가야하는 제약이 생기면서 장기간의 준비와 일정이 필요한 여행이 정말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어려운 때가 되니 가고 싶은 마음보다 떠나기 어렵다는 망설임이 더 커졌다. 작가에게 '몽상은 마치 사치 같아서, 몽상 대신 그저 떠나는 일을 택(120)'했다고 하는데 반대로 나는 떠나는 일 대신 몽상을 택하곤 한다. 

'낯선 위로, 아이슬란드'는 몽상가가 계획하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좀 더 현실적인 배경으로 채워주는 책이다. 책에서 만나는 멋진 사진과 소소한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가끔 큐알코드를 따라 들어간 블로그에서 접하게 되는 자세한 정보들도 유용했다. 예약 방법, 가는 길, 소요되는 비용, 주차비 같은 세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는 점이 궁금한 곳을 골라 시원하게 해결해주어서 좋았고, 지면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장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들이 담겨 있어서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국적이고 낯선 풍경들, 커다란 규모의 광활한 자연이 주는 압도감 같은 것들도 시선을 빼앗고 북극여우, 물개, 퍼핀, 심지어 고양이까지 귀여운 동물들도 아이슬란드에서 만났다고 하면 신기했다. 그런데 재밌게도 날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먹어보면 좋을 음식(254)을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하르드피스쿠르'라는 간식을 봤을 때였다. 대구를 말려 우리나라 북어나 황태 비슷하게 만들어서 버터와 같이 먹는 음식이라는 소개를 보고 그 유사성에 놀랐다. 궁금해서 이리저리 더 검색해봤지만 건조중인 사진만 보고 실제 차려진 것은 찾아보지 못해 아쉬웠다. 이걸로 국을 끓이면 비슷한 맛과 해장에 좋은 효과를 낼까 궁금했다. 

책은 다시 책장에 자리를 잡겠지만 언젠가 위로나 몽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아이슬란드를 가기 위해 꺼내볼 날이 온다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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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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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은 끝에서부터 시작된 책이었다. 영화를 만들고 난 뒤 '영화에서 다 말하지 못한 그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9)'를 담아냈다고 한다. 영화 [양양]이 외면했던 상처를 찾아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것이었다면, 책 '양양'은 붕대를 풀어낸 자리에 딱지를 떼어내고 그 상흔을 되새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극적으로 풀어낸 서사를 예상했는데, 풀이는 건조했고 삶은 언제나 그렇듯 극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내 사주는 어땠냐는 질문에 아빠는 기억이 안 난다고 짧게 답했다. 서운했다. 겉으로는 덤덤한 척 그날의 인터뷰를 마쳤지만, 속으로는 터져 나오는 여러 감정으로 혼란스러웠다. 77" 

 결코 진심으로 혼자이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외동이 아니어서 어떤 순간들은 맺혀있다. 크레파스가 12개인지 24개(104)인지 같은 사소한 이유들이었다. 온전히 내게로 주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내 욕심이 사나운 탓에 감당할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어떤 것들은 부러웠다. 어떤 것들은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는 가끔씩 꺼내보게 된다. 잊고 있다가도 접어둔 책장을 한번 펼쳐 눈짓으로 훑어보는 것처럼. 내가 접어두고서도 접힌 곳이 생기게 만들었다는 탓을 하는 걸, 또 우연히 마주친다. 두 명의 양씨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를 생각했다. 

 누구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사진 몇 장으로 남은 사람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괴로웠다. 이제는 없는 사람, 남은 이들의 기억에서 점점 추억도 흐릿해지는 사람을 꺼내고 덧칠해 선명하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내가 잊어가고 있는 사람도 같이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라, 가족 안에서의 여성 서사는 세대의 흐름 안에서 비슷한 면면을 보이는 탓에, '고모라는 렌즈(107)'를 통해 양양의 시선을 함께 따르며, 그저 멀리서 거리를 두고 고모의 지워짐만을 집중해 관찰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생각이 자꾸만 나에 대해 옮아가는 것이 불편했다. 

 "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156" 

 무슨 이유에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고모의 존재가 지워져야 했을까 짧아진 인내심에 답부터 찾고 싶어지는 조급함을 누르며 책을 읽어야 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던 고모(100), 숨겨진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137), 평등하지 않았던 남자친구와의 관계. 고모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질 수 없었다. 여성의 선택이 꺾여나가는 데에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무게가 실리는 일이 그때도 지금도 여전함을 목격한다. 처음 책 안에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들이 잦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19)'는 말이 전해지는 의미가 갈수록 달라졌다. 같은 핏줄을 타고 닮은 모습을 찾았다가, 잊히고 숨겨진 쓸쓸함을, 짧아서 서글픈 생애를 가늠하다가, 억울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살라는 경고같다가, 어느 순간 분노하고 싸우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첫번째 기록인 영화를 직접 봤다면 이 울림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 같아 [양양]이 너무나 짧게 스크린에 올랐다 내린 일이 새삼 아쉬웠다. 존재했으나 더는 없고, 지워졌으나 간직되어온 사람,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여성으로 대표되는 서사를 가진 사람을 한 마디의 회한으로 시작해 세상으로 되찾아오는 낯선 발견이었다. 독특한 뿌리찾기를 책과 영화로 만나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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