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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평점 :
" 미래의 내가 24개월 동안 매달 조금씩 도살당할 거라는 사실 같은 건 내 명석한 두뇌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저 총액을 24로 나누면 나오는 그 가벼운 숫자, 한 달에 밥 몇 번과 커피 몇 잔 값을 아끼면 되니까. 그 만만한 금액이 내 눈앞에 선명한 마법처럼 떠올랐을 뿐이다. 당장 내 수중에는 십 원 한 장 없어도 세상을 24조각으로 쪼개서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완벽하고 경이로운 경제학인가. 41"
아, 이 얼마나 날카롭고 지저분하고 잔인한 이야기인가.
어떤 이야기는 마치 쓰는 사람의 생을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나서 마음이 불안해질 때가 있다. '이자만큼 성실하게'가 그런 이야기였다. 수진이라는 인물의 속내와 행동, 배경을 고스란히 봐도 어떻게 왜 이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수진을 책 속에 담아냈을까, 뭘 알아야 써도 쓸 것 아닌가. 혹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자만큼 성실하게' 역시 한번에 쭉 써내려간 글은 아니겠지. 아무래도 저자와의 만남이 있다면 한번 쫓아가서 손을 들어 질문을 해야할까, 바보같은 생각이지 그럼 추리소설 작가들은 다 지하실 있는 집에 살게?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를 샅샅이 둘러볼 수 있는 구글맵을 켠 것처럼,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누군가의 삶도 검색해볼 수 있었을거야. 불안을 잠재우며 읽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재미있는데 재미를 느낄 수 없다니. 그런데 작가님 정말 아니죠, 덮인 책 표지를 보다 어딘가를 향해 괜히 간절한 눈빛을 보내본다. 너무 몰입해서 생긴 부작용이다.
항상 주인공에게 가장 이입하고, 좋아하는 인물을 고를 땐 주인공을 선택하곤 하는데 수진이는 글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었지만,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물인 것만큼은 맞다. 너도 잘못하긴 했는데 세상도 너한테 나빴던 것 같기도 하고, 안아주고 싶다가도 뺨을 때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수진이를 볼 때면 예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도박중독자의 가족>*이라는 웹툰이 떠올랐다. 아주 예전에 조금씩 연재가 될 때 봤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만큼 부담이 됐던 기억이 있다. 계속해서 도박을 하고 빚을 내고 또 도박을 하고 가족들의 돈까지 끌어다 쓰고 울고 고통받고 화내고 반성하다가 또 도박을 하는 지독한 굴레가 수진의 쇼핑 중독에서도 보였다. 게다가 자꾸만 빚을 갚아주고 돈을 보내주는 가족들마저 같았다. 중독자 본인이 아닌 가족/주변인의 입장에서 중독된 삶을 보고 싶다면 <도박중독자의 가족>도 추천한다.
" "100걸음당 1캐시."
사람들은 이 숫자를 비웃겠지. 고작 1원을 위해 무릎 연골을 소모하는 나를 비천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보라, 이것이야말로 니체가 그토록 갈구했던 힘에의 의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지금 1원을 줍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노동을 수치화하고, 그 비루한 수치를 다시 예술적 숭고함으로 치환하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수행중이다. 138"
읽으면서 자꾸만 돈쓰고 다니는 수진이도 싫었지만, 돈을 갚아주는 엄마도 싫고, 수진이를 까내리면서도 지금 연애하고 있을 때가 아닌 애를 데리고 결혼은 못하겠고 연애나 하자는 도윤은 더 싫었는데, 잘난 것도 없는 내가, 다를 것도 없으면서 그래도 수진이보다는 내가 낫지, 하고 걱정을 담은 척 수진이라는 인물을 평가하고 있는 것도 싫었다. 수진이는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살기라도 했지. 돈을 쓰는 일에도, 남들 앞에 서는 일에도, 글을 쓰는 일에도, 1원씩 10원씩 앱테크도 하고, 강의며 원고청탁이며 과외에 심사까지 일도 다, 열심히했다. 수진이란 인물은 그래, 연탄재. 마치 그만큼 뜨거웠던 적 없으면 함부로 차지도 말라던 연탄재*같았다. 불같이 타올랐던 흔적이 가득하지만 글쎄 가까이하면 검댕도 묻을까 굳이 차내버릴 생각도 들지 않는 연탄재였다. 차서도 안되고, 찰 생각도 안드는.
현실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소설은 재밌었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점점 마음이 술렁이고 불안해지는 소설은 처음 만났다. 너무 적지도 또 많지도 않은 "60만 5,000원 때문에(7)". 괜히 카드어플에 들어가 이번달엔 얼마 썼지, 훑어본다. 혹시 나도 뭐 사는게 중독 아닌가, 가끔 보면 필요없는 걸 보상심리로, 때로는 싸다고 그냥 사버리는 것 같은데 'KCP-NHN링크' 결제 항목이 너무 많아 초조했다. 진짜 망하고싶지만은 않은데 망하지 않고 버티는게 평균 이상은 되어야 가능할 것 같은 세상이니까. 이 초조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수진의 것이기도 하고 또 어딘가의 누구의 것이기도 한 것 같단 생각이 자꾸만 찾아왔다. 수진을 보다가 너무 남 욕하고 살지 말아야지 한다. 한문철 역대급 갱신이 떠도, A씨의 녹취록이 폭로 되어도, SNS 공론화가 올라와도 한번쯤은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어쩔 수 없었을 순간이 있었을거라 생각해보기로 한다.
망하지말라는 말은 늦은 것 같고. 죽지는 마, 망할년아. 욕은 하지 않기로 했으니 욕같은 응원을 한다.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돈이 나가는 어른의 삶, 소득과 소비 사이를 험난하게 넘나드는 밥벌이의 험난함을 같이 버텨내는 묘한 연대를 느끼며 이 이상한 소설 '이자만큼 성실하게'를 추천한다. 돈을 벌어도 빚을 지는, 열심히 살수록 막막해지고, 싫은데 안타깝고, 재밌는데 씁쓸한, 반대의 마음을 바쁘게도 오가는 동안 나의 추는 어디로 기울어져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다.
*이하진 작가 카카오웹툰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