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파랑의 궤도
네이선 밸링루드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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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아마, 언젠가 지구를 뒤로한 채 새로운 별로 떠나야만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운명적인 예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지구와 비슷한 색을 가진 다른 별이 발견될 때마다 인류는 새로운 지구를 만들 수 있을지 가늠해보곤 한다. 마치 지구에선 자신과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만나면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도플갱어 괴담을 지구 또한 피해갈 수 없다는 듯이, 너와 같은 별을 찾게 되면 낡은 지구는 버리고 새로운 지구로 떠나갈 것을 꿈꾼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바로 그 어둡고 위태로운 희망을 닮은 이야기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에서 새로운 지구로 선택된 무대는 화성이다. 애너벨의 가족은 애너벨이 다섯 살 때 화성으로 이주해왔다. 아직 화성과 지구간의 이동이 가능하던 때 엄마는 외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혼자 지구로 돌아간다. 엄마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않아 행성 간의 신호가 끊기고, 이 '침묵' 이 후 지구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주선의 왕복도 끊긴다. 화성에 이주해 온 사람들의 삶은 점점 황폐해지고, 아빠와 애너벨은 오래된 설거지 용 엔진 왓슨과 함께 '마더 어스 다이너'에서 엄마가 남겨둔 음성녹음에 의지하며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날,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지고 애너벨의 세계도 깨어진다. 

 사람들은 기적의 광물이라 여겨지는 스트레인지를 채굴해 지구로 보내기 위해 화성으로 이주해왔다. 스트레인지를 가공해 얻어지는 엔진 첨가물은 엔진에 인격/지능을 부여(50)한다. 스트레인지는 엔진 뿐 아니라 채굴을 하던 디그타운의 노동자들의 성향과 행동 마저 냉담하고 산만하며 거칠게 변화시켰는데, 스트레인지에 노출돼 오염된 사람들의 눈은 초록빛이 되었다. 화성 이주민들은 '침묵' 속에서 화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과 고갈되는 자원, 스트레인지와 디그타운의 사람들, 사막의 광신도 집단인 나방족의 다름과 불가해함을 두려워한다.

"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공포와 외로움을, 우리가 무서웠기에 저질렀던 부끄러운 일들을 말이다. 10"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를 읽으며 누군가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일들이 결국 공포와 외로움에서 비롯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위기 상황에서 다른 사고와 입장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단절은 공포와 외로움을 낳는다. 다름에 대한 구분과 배척은 결국 혐오와 폭력으로 번진다. 뉴 갤버스턴의 사람들이 초록빛 눈을 가진 디그타운 주민들과 나방족에게 품는 불안과 불편은 연령, 성별, 소득, 교육, 인종, 국적 등 우리 사회에서 타인과 자신을 구분지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경쟁과 갈등을 품고 있는 것과 닮아있다.

" 나는 조가 샐리와 맞서 싸워주기를 기다렸다. 제발 그렇게 해주기를 속으로 빌었다. 어른이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며 다시금 소심해졌다. 204"

 깨어져 새롭게 깨어난 세계 속의 애너벨은 혼란과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마더 어스 다이너'는 침략됐고 아빠는 공격 당했으며 엄마의 음성 녹음이 담긴 소중한 실린더는 빼앗긴다. 하지만 그동안 애너벨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은 애너벨에게 일어난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들에 정당한 분노와 대응을 해주지 않는다. 어린 소녀에 불과한 애너벨에게 어른들은 이기심과 냉정함을 보여준다. 세상의 민낯을 보게 된 애너벨은 그에게 남은 친구 왓슨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그 안으로 뛰어든다. 

 우울 속에 침잠하는 아빠를 다시 깨우기 위해, 아빠마저 잃고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애너벨은 강도에게 빼앗긴 실린더를 되찾으려 사막으로 나선다.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은 애너벨은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굴복하는 대신 욕하고 저항한다. 때때로 애너벨이 모든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예민하다고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과함조차 위악과 허세로 가시를 세워 자신의 미숙함과 나약함을 숨기려했음이 느껴지곤 했다.  

 " 내 발로 소외를 택했으면서도 비이성적으로 속이 상했다. 난 저들이 누구인지 알기에, 게다가 우리 아빠와 내게 저지른 일이 있기에 증오가 치밀었지만, 동시에 저들이 날 자기네 사이로 끌고 가서 저녁을 먹여주길 바랐다. 내가 바라보는 저 어둠 속에는 사실 아무런 공포도 없다고, 그 어떤 수수께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로지 사랑과 온기와 단단하고 누구나 알만한 땅이 있을 뿐이라고 안심시켜 주기를 바랐다. 256"

 자신과 아빠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사막으로 뛰어든 애너벨은 냉정한 세상와 사람들의 날선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두렵고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애너벨은 세상에 나오기 전,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주어졌던 어른의 보호가 이어지길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한 번 깨어진 알의 껍질 속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길 선택한 애너벨은 오기와 저항으로 부딪혀 버텨 나간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 갓 부화한 작은 생명은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던 세상 안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 껍질을 깨고 나오려 몸부림친다. 껍질 밖 세상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겐 작은 균열일 뿐일 이 몸부림은 어린 생명에겐 더할 나위없이 최선을 다하는 저항이다. 애너벨 안의 약한 마음도 엇나가는 듯 보이는 거친 태도도 어느새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응원하게 만든다. 

 '침묵' 속에 놓여져 갈수록 궁핍해지는 화성의 환경, 스트레인지의 영향 아래 공격적이고 섬뜩하게 변해가진 엔진과 사람들에게서 열네 살 소녀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은 단지 엄마의 목소리가 녹음된 실린더, 오래된 설거지용 주방 엔진 왓슨, 그리고 아빠였다. 단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상처받은 어린아이였던 애너벨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소녀시절과 이별한다. 그 과정에서 이기적이고 냉정한 어른들의 민낯과 마주하고 거칠고 혹독한 세상의 현실에 눈을 뜬다.

 이제 막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애너벨은 과연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를 읽는 동안 화성이라는 미지의 공간 위에서 우리 삶과 닮은 공통점을 찾아 덧씌우기도 하고, 길을 떠나야만/떠남으로써 얻게 되는 성장을 응원하게 되기도 했다.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애너벨과 함께 헤매고 싸우며 읽게 되는 치열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애너벨과 왓슨은 빼앗긴 실린더를 되찾아 아빠를 구해낼 수 있을까. 스트레인지의 영향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주의 '침묵'은 깨어질 수 있을까. 애너벨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 "야, 벨.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니까 기분 좋냐?"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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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위의 만찬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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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함도 없고 뭐든지 깊이라고는 없는 탓에 좋아하기 때문에 잘 안다고 할만한 분야가 없다. 하지만 영화와 음식, 이 두 가지는 나름 긴 시간동안 관심을 가지고 좋아해왔다. 둘 다 여가로 즐기기에 접근성도 좋고 순수히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이라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다는 취미가 주는 낮은 문턱, 보편성도 좋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영화 속 음식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한 단계 더 상향시켜놓은 결과물이 아닌가. 영화도 음식도 책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름 위의 만찬]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가운 마음과 즐거운 기대를 품고 만찬을 즐겨보았다.
미리 덧붙이자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의 감자튀김(89)이 첨가물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이 피해야하는 메뉴라는 것이었다. 감자튀김 정도는 채식의 범위에 거뜬히 들어갈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아니었다니, 나중에 감자튀김을 사게되면 밀, 계란, 우유 등 첨가주의 문구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우리가 만나보았던 영화 속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음식을 떠올려보자. 요리와 음식이 주제가 되는 유명한 영화들도 있고, 한 장면 나왔을 뿐인데도 인상깊게 남는 음식도 있을 것이다. 가장 처음 나의 구미를 당긴 것은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는, 환상의 음식이었다. 바로 애니메이션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음식들이다. 실제 음식들 못지 않게 가장 먹고 싶은, 대표적인 꼽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애니메이션 속의 음식들은 실제로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더 맛있을 것 같고 궁금해진다. 재밌게도 이 상상 때문에 애니메이션 속의 음식을 실제로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여백이 남아 동경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진짜라면 바로 식품위생과에 신고하게 될 쥐가 만드는 <라따뚜이>나, 그야말로 환상 속의 음식인 <월레스와 그로밋>의 달 치즈, 흐린 날씨에 때때로 미트볼이 내리는 세상 말세인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강아지들의 데이트 맛집인 <레이디와 트램프>의 미트볼 스파게티, 하울 정식으로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음식들은 실제로 먹는 것보다 애니메이션 안에서 더 맛있어보인다는 치명적인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때문에 이들 영화를 비교적 어린 시절에 보게 된 영화팬들에게 이 음식들은 '단추 스프'처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노스텔지어의 접시로 새겨진다. 비슷하게 구현해보아도 영화를 보며 '상상'했던 그 맛과 추억은 따라잡을 수 없을테니. 

음식, 요리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진심과 집요함을 오간다. 하울 정식의 달걀후라이(64)를 이야기하다 달걀깨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디 아워스>로 넘어가는 과정은 재밌지만 슬쩍 질린다. 늘 싱크대 모서리에 달걀을 깨곤 했는데 이렇게까지 평평한 곳에서 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니 혼나는 것 같아 위축되면서 웃기다. 서양 식문화에서 달걀이 얼마나 중요한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는 방법 따위를 진지하게 강론하는 내용(246)을 읽다가 문득 최근에 본 <위 리브 인 타임(2026)>의 '달걀을 깨는 최고의 방법'이 떠올랐다. 한 접시에 달걀을 깨서 바로 담았다가 껍질이 섞이지 않은걸 확인하고 다른 한 그릇에 모아담는 그릇 두개 쓰기가 나온다. 그릇 하나만 사용하면 껍질이 들어갔을때 골라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달걀을 어떻게 깨는가 논하는 사소함이 가족의 유대를, 한 문화의 식생활을 보여주고, 어떨 땐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감정도 담아낸다. 

좋게 말하면 먹는 것에 진심이고 달리 말하면 과몰입한 저자가 가장 불쾌한 감정을 크게 드러낸 것 중 하나가 <황해>에서 하정우의 먹방을 이야기하며 '돌연 닭다리 100개 먹기'는 스턴트일 뿐, 먹방이 아니다(21)고 단언하는 부분이었다. 먹방에 대한 추구미가 처절하리만큼 단호해 당황스러웠는데 즐길 수 없을 만큼 과하게 지나치게 먹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도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면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휴게소 커피(204)를 통해 관계의 불행까지 예감한 <화차>다. 휴게소 음식들 대부분이 비슷비슷하고 또 맛있다고 이름 난 곳들도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휴게소를 들리면 꼭 커피 한 잔은 사는 편이라 휴게소 커피가 '맛없음의 새로운 심연을 활짝 열(206)' 정도란 말인가 놀라웠다. 이것도 생각해보니 커피는 종종 맛의 영역을 넘어선 그 무언가로 기능하도록 분류되지 않았나 참작되는 구석이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들 때문에 저자가 얼마나 음식에 진심인지 느껴질 때면 질리면서 재밌다.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없었던 음식도 있다. 바로, 짜장면. 한국 영화에 단골처럼 나오는 음식이라 <기생충>을 통해 유행했던 '채끝짜파구리'나 <김씨 표류기<2009)>같은 영화를 다루며 나올 법 하다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등장하지 못했다. <피그>를 이야기할 때 트러플오일을 넣은 짜파게티를 스치듯 언급하지만 '짜장'의 존재감에 비하면 빈약한 등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짜장면하면 <주유소 습격 사건(1999)>이 떠오른다. 김수로 배우가 맡은 배역 철가방은 짜장면을 배달하러 주유소에 갔다가 억울하게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이다. 영업 시간이 지났으니 주문을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했을 뿐인데 주인공들에게 두들겨 맞게 된 철가방을 통해 배달 업종 종사자의 고충이 드러나고, 이를 복수해주기 위해 모이는 동네 철가방 연합들의 '낭만의 90년대'스러운 의리가 한데 뭉쳐 사건을 키우는 역할을 코믹하게 수행한다. 무엇보다 짜장면도 맛있게 먹는다. 

또 하나 없어서 아쉬웠던 음식은 <아수라> 속의 육개장(138)을 읽으며 떠올린 미지의 음식, 미지의 문화 캐서롤이었다. 전부터 외국영화를 볼 때 상을 당한 집에 이웃들이 찾아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캐서롤을 주는 장면이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때로는 잔뜩 쌓인 캐서롤을 끔찍해하고, 때로는 아무렇게나 퍼먹다 슬픔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장면들에서 보이는 이 낯선 문화와 음식이 궁금했던 것이다.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주와 조문객 사이의 주고 받는 입장이 뒤바뀌어 있는 것이 동서양의 문화차이가 확연해보이기도 했다. 저자가 왜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내줄까, 하고 깊이 파고든 것처럼 왜 서양사람들은 캐서롤을 들고 이웃집 문을 두드릴까도 함께 이야기해줬다면 이 오래된 궁금증을 풀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읽기 전에 과연 저자가 꼽은 영화 속 음식과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영화 속 음식들이 얼마나 일치할지 궁금했다. 나라면 어떤 영화 속 음식들을 풀어내고 싶을까. <데몰리션맨(1993)> 주인공인 실베스타 스텔론이 2032년 냉동 감옥에서 깨어나 마주한 미래 세계의 하층민들이 쥐고기버거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2020년쯤엔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던 어린시절에 2030년쯤엔 쥐고기를 먹게 될지도 몰라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우리는 <설국열차(2013)> 속의 단백질 블록을 미래의 식량으로 그리고 있다. 원재료가 바퀴벌레라는 사실은 여전히 끔찍하지만 버거라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을 것이란 20세기와 그마저도 단백질 블록이라는 대용품을 만들어내는 21세기의 감성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이밖에도 <금옥만당(1995)>의 화려한 중식이나 <마틸다(1997)>의 달콤하고 진한 초콜릿 케익, <헬프(2011)>의 끔찍한 재료가 들어간 초콜릿 파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의 귀여운 하울 정식, <헬로우 고스트(2010)>의 눈물 젖은 미나리 김밥, <어벤저스(2012)>에서 영웅의 민낯을 보여주는 슈와마, <기생충(2019)>과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에서 상징적인 기능을 한 복숭아, <티파니에서의 아침을(1962)>을 더욱 시크하게 만들어준 커피와 크로와상, <사람과 고기(2025)>의 섪고 유쾌한 고기 한 상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꼽은 한 58개쯤 되는 음식 들 중에서 겹치는 것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61), 설국열차(114) 기생충(121)> 뿐이었다. 범위를 더 넓혔더라도 <올드보이>나 <라따뚜이> 정도만 더해졌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놓친 음식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특히나 최근의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수라는 진상하는 장면이 많았는데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스쳐보낸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음식이 단지 한 장면을 채우기 위한 소품이 아니라 인물과 시대를 표현하는 은유와 상징으로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필름 위의 만찬]을 통해 다시 배운다. 읽는 동안 때로는 시시콜콜하고 때로는 집요했지만, 풍요롭고 즐거웠다. 영화, 음식, 책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맛있는 책 [필름 위의 만찬]을 오늘의 후식으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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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스터 타이거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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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파라면 세상도 파래?" 
"나는 그대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어요." 
...
설날 널을 뛸 때, 단옷날 그네를 탈 때, 제 시선 아래 훤하게 트이던 세상을 계손향은 사랑했다. 그리하여 노월 또한 제가 사랑한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길 바랐다. 그대와 나는 같은 세상을 본다 하였으니. 88" 

책을 읽으면서 올해 초에 봤던 [광장]이란 영화가 생각났다. [광장]은 북한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 서기관으로 파견 온 보리와 교통보안원인 복주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냈다. 차가운 겨울의 평양 거리를 배경으로 둘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거리를 두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으로 산책을 대신하고, 같은 식당 안에서 다른 테이블에 각자 마주 앉아서 식사를 대신하고, 늦은 시간 혹은 다리 밑의 구석진 곳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만 대화를 나눈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1883년 미국에서 온 사절단 노월과 조선 한양의 기생인 계손향 사이의 연애담이다. 파란 눈과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서양인이 낯선 시대, 노월과 계손향도 다른 외모를 가진 노월을 신기해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며 함께 거리를 걷는다. 친구인 영월마저 계손향이 노월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폄하하고 비난하는 시선을 보낼 것이 염려되어 항상 주의를 준다. 이런 편견과 평가의 시선이 아직도 일부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영월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세간의 이목을 피해 서로의 마음을 나눠야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닮은 모습을 그린다. [광장]의 두 사람은 결국 감시자들에게 관계가 발각되어 보리의 체류 기간 종료를 고지한다. 처음부터 정해진 이별을 안고 있었지만,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현실 앞에서 보리는 복주에게 함께 떠날 것을 청한다. 마찬가지로 [안녕, 미스터 타이거]의 노월 역시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들이 고향에 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노월과 보내야하는 것을 아는 계손향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 월이의 목소리가 닿은 귓바퀴가 아직 간질간질한데, 월이의 손길이 닿은 손등이 아직 훈훈한데, 세상은 불 꺼진 듯 온통 적막하다. 사람이 난 자리가 이렇게 크다. 고작 한 사람 자리가 너무 크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온 세상이다. 229" 

시대과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안녕, 미스터 타이거]와 [광장]은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이국의 남성과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조선/북한의 여성이 주인공인 것, 외모부터 사고방식, 서로의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배경과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는 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차가운 현실 앞에서 겪게되는 좌절을 생생히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차별과 통제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곳이 되도록 왜 노력하고 꿈꾸어야 하는지 함께 느끼게 된다. 

노월과 계손향이 15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다면 보리와 복주같지 않았을까. 앞으로 시간이 더 많이 지나고 난 뒤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세상에서 어떤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는 차별도 금지도 통제와 편견도 없는 세상에서 마음 편히 사랑만 할 수 있을까. [안녕, 미스터 타이거]와 [광장] 문장과 영상으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표현을 만끽하며 조심스럽게 키워나가는 투명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니 꼭 함께 즐기고 비교도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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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 - 2026 뉴베리 아너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오브리 하트먼 지음, 마르친 미노르 그림, 황세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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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지 못한 영혼은 어디로 갈까?" 225"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의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말일까 다시 읽었다. 항상 같은 계절에 머무르는 숲, 생명이 살지 않은 숲에 죽었으나 영혼이 완전한 안식을 찾지 않은 여우가 살고 있다. 여우는 한쪽 눈을 잃고 귀도 상했으며 털도 고르게 남아있지 않아 사고가 났던 때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있는, 보기에 따라 무서운 혹은 혐오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여우의 이름은 클레어. 클레어는 죽은나무숲에 머무르며 길 잃은 영혼들이 가야할 곳을 안내해주는 길잡이다. 영혼들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나 있는 문들 중 자신에게 맞는 하나의 문을 찾아가야 한다. 금빛으로 빛나는 동쪽은 쾌락계, 즐거움을 추구하던 이들이 간다. 서쪽은 초록빛의 발전계로 노동과 봉사와 노력을 사랑한 이들이 간다. 북쪽, 평화계는 연푸른빛이다. 안식에서 기쁨을 찾는 이들이 간다. 그리고 진홍빛의 남쪽은, 고통계다.
클레어가 머무는 오두막에 길 잃은 영혼이 찾아오면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맞이해 영혼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살펴 더이상 길을 헤메지 않고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길을 잃은 영혼들은 지친 영혼을 달래줄 무언가를 갈구하며 특유의 갈증(22)으로 괴로워하는데, 길잡이인 클레어의 도움으로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문으로 가게 되면 다시 길을 잃고 헤매다 갈증에 시달리며 클레어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클레어는 이 일에 매우 전문가이다. 

" 클레어는 브릭베인의 쉰 목소리를 떠올렸다. 절대 죽은나무숲 밖으로 나서면 안 된다. 너한테는 여기가 제일 안전해. 94" 

상처입은 외모 때문에 다른 동물과 아이들에게 거부당하며 괴물이라 불리는 클레어는 늘 외롭다. 너무 괴로웠던 때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가족도 곁에 있어주지 않은 채 혼자였다는 것이 클레어를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였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상처받았다. 클레어는 버섯밭에서 키우는 각색의 버섯들과 특별한 '선장'에게 의지하며 길잡이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클레어가 너무나 싫어하는 오소리의 영혼이 오두막을 찾았다. 그리고 멈춰있던 클레어의 시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읽히지 않는 영혼,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오소리의 영혼은 어느 방향으로 보내도 다시 돌아온다. 오소리의 영혼이 갈 곳 없이 헤매는 동안 클레어는 오소리의 이름이 생강촉새라는 것을, 그에게 항상 쓸모없다고 질책하는 아빠와 독특한 이름을 가진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레어는 교활하고 못된 오소리를 싫어했지만 생강촉새는 달랐다.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챙겨주었다. 생강촉새가 오소리답게 오지랖 넓게 군 질문과 행동들은 클레어의 마음을 두드렸다. 클레어의 멈춰진 세상은 생강촉새와의 만남으로 인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쓸쓸하면서 따뜻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 우리가 눈 앞의 작은 것들에 매여 머물러있는 동안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괴로워하는 클레어를 보면서 제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는지,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낙담하기 전에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해보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상처가 남긴 흉터만 기억하다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하고 위로해주려고 했던 존재들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강촉새는 클레어를 두드린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얽매어있는 클레어에게 질문하고, 클레어가 아끼는 것들을 사랑하는 방식을 일깨워주고, 싫어했던 오소리와도 진짜 친구가 되도록 다가온다. 그리고 클레어가 미뤄왔던 길을 가도록 해준다.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를 읽고 아이들이 클레어에게 어울리는 문은 어떤 것인지, 어디에 도착했을지 생각해보고 나는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문으로 가고 싶은지 골라보는 독후활동을 해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더불어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통로, 유도 울타리, 버드 세이버 활용 예시를 함께 찾아보고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내용이 적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성인까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따뜻하고 환상적인 동화였다. 마지막까지 감동과 놀라움을 놓치지 않고 독자를 사로잡는 죽은나무숲의 오두막에 기꺼이 방문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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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매트 존슨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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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였다. 도시 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교외 지역도 보였다. 그 너머로는 숲의 녹색 지붕이 보였다. 고속도로가 신경망처럼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강줄기가 곡선을 이루며 도심지의 고층 건물 사이를 휘돌아 흘러가는 모습도 보였다. 42" 

어느날 갑자기, 아니 어느 순간 갑자기 세상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본인 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낯선,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곳으로 옮겨지는 사람들. 왜, 누가, 어떻게 이들을 이주시키는 것일까? '뉴로어로크'의 존재와 그곳으로 옮겨지는 사람들. 너무나 거대하고 이해되지 않아 읽을수록 궁금증이 커지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으며 몇 가지 질문들을 생각했다. 처음엔 우주와 외계의 존재를 궁금해했다. 그 뒤엔 삶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다른 세상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음에도 층을 나누고, 맹목된 규칙과 믿음을 만들어내는 이기심과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벗어남으로써 얽매임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드는, 멀어짐으로써 다시 살피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 '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첫번째 질문,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대상에게 우리는 어떤 의미일까? 우주와 외계 존재가 우리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만큼, '진실'에 대해 궁금해하는 만큼 우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야기할까. 우주의 어느 행성, -목성의 115여개 위성 중 하나인 에우로파(16)-에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고, 심지어 세차장, 칙필레(137)가 있는 '진짜' 도시의 형태 그대로 구현해두고 그 안을 인간으로 채우는 일을 실현할 수 있는 쪽에게 과연 의미가 될까? 우리에게나 경악과 흥미를 주는 것이지,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에게 있어 이런 사건은 그저 여흥거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가 개미굴을 관찰하거나 벌집을 찾아 꿀을 얻는 것처럼, 길 한편에 난 꽃을 반대로 옮겨 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을수록, '왜'를 생각할수록 지구에서의 인간이 우주에서는 타 생명체들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더 두려워하고 의심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답을 몇 가지 얻는다해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라고요. 그 답은 더 많은 질문만을 불러올 겁니다. 해답 없는 수수께끼라고요. 그걸 신경 쓰느라 남은 평생 정신이 나가버리거나 아니면 흐름에 순응해서 최대한 이 상황을 이용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곳 주민들처럼 사세요. 받아들여서 자기 삶을 꾸리라고요.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신들 모두 앞으로 이곳에서 살게 될 겁니다. 87" 

두번째 질문, 순응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결국 우리 앞에 놓여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뉴로어로크'에 거두어지는 것은 태어남과 그리 다르지 않게 보인다. 거두어짐과 태어남은 선택의 여지없이 존재하게/태어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전자가 지구에서 새로운 시작점으로 옮겨왔음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머리 강사의 조언을 우리 인생과 겹쳐보면 존재와 근원에 대한 질문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고 어울려 살아가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다만 이것이 진실을 외면한 도망침이었을때, 아무리 진짜처럼 보이는 새로운 세상으로 갔을지라도 거짓과 기만에 순응하지 말고 저항과 진실을 향해 나아가라는 메세지가 된다. 삶에는 순응하되 거짓에는 질문하고 저항하고 선택해야 한다. 

" 상륙한 순간부터 마음속 짐이 떠내려가는 것 같더라니까. 내 모든 스트레스, 모든 초조함, 모든 학자금 대출, 모든 신용카드 영수증이...... 그냥 흘러가버린 것 같았거든. 내가 여기 도착한 순간에 말이야. 거짓말은 안 할게.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몽롱하기도 했지. 그래도 지금까지 행복했어. 그러니까, 진짜로 행복했다고. 난생처음으로 말이야. 그건 장담할 수 있어. 처음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으니까. 233" 

세번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고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잃고서 새로 시작하게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해방감. 우리는 가끔 어떤 것들에 얽매인다. 그건 자신의 신념일수도, 돈이나 옷, 작은 액서서리에서 LP나 조립식 장난감, 캐릭터 상품처럼 물질적인 것들일수도,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기지개를 핀다는, 걸음을 걸을 때 오른발부터 내딛는다는 사소한 반복행동일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이 선택해서 얽매이는 긍정적인 것들이고 나쁘게는 빚이나 책임져야 하는 책무(내가 아니면 어떻게 돌아가나 싶은 업무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돌봐야 하는 가족일수도 있다. 이 얽매임은 절대로 벗어나서는 안될 것 같은 압박이나 강박이 되기도 하고, 우리를 자신의 삶에 발 붙이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많은 인물들이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뉴로어로크'에 거두어졌을 때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 '죽음의 5단계'*를 거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에이다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대해 말했다. 붙잡고 있는 것을 놓았을 때, 너무 소중해서 절대 버리거나 잃을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을 허무하게 놓쳤을 때 처음엔 충격을 받고 괴로웠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절대'라는 것도 없고, 그것 아니면 안될 것 같아도 또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세상이 달라지는 일 없이 살아가게 된다. 오히려 무엇에 그렇게 얽매여있었나 가벼워지는 기분도 들었던 것이라 에이다의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읽는 내내 대체 무엇이, 어떻게, 왜 하는 질문과 생각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것은 '뉴로어로크' 자체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고, 거두어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진 도시의 사회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진실을 직시하고 진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항하는 이들과 순응하는 수많은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라진 사람들과 숨겨진 비밀에 대해 마음껏 궁금해하고 의심하고 놀라며 읽어보면 좋겠다.


*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과 죽어감]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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