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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충분히 사로잡아서 구매한 소설집이다.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낸 소설로 천천히 읽고 완독하여도 쉽게 보내지 못한 소설집이다. 소도시와 대도시 삶은 매우 대조적이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소도시의 라이프 스타일이 익숙해지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훌쩍 여행을 떠나는 여행지가 조용한 여행지가 되고 있다. 작가도 여행지에서 경험한 장면들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설명한다. 
소와 돼지의 부산물을 받아먹는 독수리를 사람과 비슷한 자태라고 관찰한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진중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노아라는 개신교 이름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데 지방 공무원이 직업인데 민원인이 드러낸 불안의 근원이 자신의 이름이었다는 것도 상기한다. 다른 종교에 예민함을 불안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성이 공존하고 수용하고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이분법적 사고로 구별하고 차별하는 사회적 문제까지도 함께 짚어보게 된다. 노아라는 이름을 지은 부모의 기대감으로 바라볼 수 여유와 이해보다 다름이라는 차별적 시선이 깊게 자리잡고 있음이 민원인들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적은 무엇인가. 적이라고 단정 짓고 살아가는 인간적 한계를 민원인들의 불안한 모습, 천문대에 거주하는 선화라는 인물, 녹원의 타이어를 의도적으로 파손하고도 개의치 않는 표정 없는 얼굴의 소년, 무엇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녹원이라는 동료 공무원 직원에게서 보여준 소설이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적은 누구이며 어떻게 명명되어 삶의 뿌리를 이루었는지 고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모호한 태도로 친절하지 않는 인간의 한계를 인물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적을 찾게 하고 그들의 대면하는 인간이 보여주는 이중적인 모호함을 보여준 소설이다. 
모든 책에서 구원은 적의 공습 뒤에 찾아왔다. 적이 온다는 것은 긴긴 괴로움으로 뭉쳐진 기다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기다림이 끝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156
적의 공습을 기다린 사람들은 구원을 찾고자 했고 구원을 찾고자 기다린 긴 괴로움으로 뭉친 하나의 세계가 어떤 자태로, 어떤 향기로 응집되었는지 여러 인물들의 거짓된 말과 태도, 표정이 없다고 느낄 정도의 얼굴로 살아가고 모호한 태도로 구원을 기다린 사람들에게 다시 질문하게 되는 작품이다. 
선명하고 맑고 아름다워야 하는 삶이지만 이 세계 너머의 구원을 기다리며 혼탁하고 어둡고 불투명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구원을 기다리는 태도인지 거듭 질문하게 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 혼자만 살아남기를 의도하는 '악취나는 의도'가 구원으로 반의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종교의 진정한 의미, 방향성을 잊고 자신만의 구원을 구축하고 대립하고 분쟁하는 사회적 문제의 중심에 종교가 자리잡고 있음을 떠올리면서 책장을 덮게 된다. 지금 도래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독수리처럼 소와 돼지의 부산물을 먹는 종교인이 되지 않도록, 동료 직원에게도 모호한 태도로 친절하지 않는 녹원의 모습까지도 적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는 인물로 남는다. 
            
            
            
            
            
            
            | 무엇 하나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 P144
독수리 / 소와 돼지의 부산물을 받아먹었다. - P126
묘하게 사람다운 면이 있었다. 둥글게 구부린 어깨나 축 늘어뜨린 목 등이 특히 그랬다.  - P126
모든 책에서 구원은 적의 공습 뒤에 찾아왔다. 적이 온다는 것은 긴긴 괴로움으로 뭉쳐진 기다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기다림이 끝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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