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세대 TURN 5
김달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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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이상 식욕! 플라스틱에 대한 탐닉으로 이성이 마비되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 

 시작이 어려웠다. 읽어야 할 책들이 몇 권 있었고, 그 중에는 오랜 시간을 요할 것 같은 책도 있고 도서관 대출기한이 끝나가 금방 반납해야 할 것도 있었다. '플라스틱 세대'는 그에게는 애석하지만 나에게는 다행히도 둘 다 해당되지 않았다. 거기다 다른 책들에 비하면 읽기도 편할 것 같아 뒤로 미뤄두고 나중에 읽어볼까 싶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하루가 거의 끝나갈 무렵, 뭔가를 제대로 시작하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장 읽어보다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속도감있는 빠른 전환은 몰입도 빠르게 만들었다. 재밌다. 재난물을 좋아하는 취향과도 맞았다. 

 " "웃기지 않아요? 연간 몇천만 톤씩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해서 환경을 망쳐왔던 인간들이 이제 그걸 다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는 게. 적어도 지구는 덜 아프겠어요." p36"
솔직히 좀 뻔하다고 생각한 면도 있다. 주로 인간이 파괴한 환경이 자연의 분노로 돌아와 그 댓가를 치른다는 메시지는 자연보호 표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선한 의도를 넘어서는 특별함을 갖거나 매력을 찾기 어려운 주제다. '플라스틱 세대' 역시 특유의 공익광고스러움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했다. 플라스틱을 먹는 이상식욕 증상이 나타났습니다,에서 끝나지 않고 세대로 이어지는 변화를 꾀했다. 이야기의 범위가 길어지면서 전개에 속도감을 더하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가끔 인류의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생각하곤 하는데,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조건은 무엇인지를 두고 신체와 심장, 폐 같은 장기를 대신하는 것이 인공물이라면 사람과 로봇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으로 두는가, 기억을 저장하고 학습을 보조할 수 있는 칩이 이용된다면 사람과 AI의 경계는 어떻게 되는가 같은 문제를 떠올렸다. '플라스틱 세대'는 새로운 진화를 맞이하는 인류를 상상하게 한다.  

 " 재현이 온라인에 남긴 증언은 과연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MZ세대라고 불리는 1990년대생을 중심으로 퍼진 알 수 없는 플라스틱 섭취 현상은 그동안 체내에 축적된 환경호르몬이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쳐 끝도 없이 플라스틱을 원하도록 세포 변형을 일으킨 결과였다. 그들의 뇌는 플라스틱을 음식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의 몸은 자기가 원해서 받아들인 것에 의해서도 쉽게 파괴됐다. 플라스틱으로 인해 죽어가는 해양 포유류의 전철을 밟게 된 것이다. p55 " 애석하게도 MZ세대들이 그 플라스틱 세대의 첫 걸음이 되었는데, 안타까웠다.  MZ라는 명명도, 그걸 대표하는 이미지도 기성세대의 마음대로 규정지어졌는데 플라스틱 세대로도 꼽히다니. 자원을 마음껏 써온 MZ보다 더 윗세대는 이상식욕이 발현하지 않는데, 빨대도 종이로 대신하게 되었던 MZ세대들은 플라스틱 빨대를 그리워했던 만큼 플라스틱을 먹고 싶어하게 된다. 영원히 고통받는 MZ 살려. 

 재난영화에서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주인공 집단이 늘 그러하듯, 이 이상식욕과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주인공 예인 역시 고단한 길 앞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야만 하는 주인공의 숙명을 안고 세대의 흐름을 거슬러 나아간다. " 예인은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을 강하게 결박한 경찰의 팔에 얼굴을 파묻고 매달렸다. 당신도 죽을 거야...... 비로소 예인의 중얼거림을 알아들은 경찰이 힘을 풀었다. 괜찮다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예인을 달랬다. "죽는다고요, 진짜 다 죽는다고." 예인은 현실감을 되찾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아니, 그것은 뒤늦게 찾아온 현실감이었다. p108 " 누가 모든게 안전하고 검증되었다는 말 대신 모든게 망가졌고 결국 다 죽을거라는 말을 믿고 싶겠는가. 듣기 조차 싫을 현실을 폭로한 예인은 재난의 중심으로 끌려간다. " 사람, 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은 완전히 풀려 있었다. 먹잇감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지고 차도로 뛰어들었다. 충희의 시선을 따라 이 광경을 함께 보게 된 예인이 차게 얼어붙었다. 충희는 예인에게 등을 내보이며 업히라고 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p156 " 좀비를 다룬 아포칼립스 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요처럼 책을 읽으며 플라스틱으로 인해 상실된 인간성과 치안이 무너진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인지의 순간은 부정과 함께하고, 진정한 혼란은 인식과 인정 사이에서 발생한다. 현실의 혼란에서 우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하겠지만. 

 하루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읽기 시작한 책은 다음날의 시작이라는 넉넉함을 맞이했다. 조금만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빠져들어 멈출 수가 없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남은 책장의 두께보다 읽은 책장의 두께가 더 두꺼워진 것 같았다. 그만큼 빨리 줄어드는 책장이, 어차피 조금만 더 읽으면 되니까 그냥 마저 읽어버리라고 부추겼다. 모자란 잠은 지금이 아닌 나중의 내가 감당하면 될 일이니까. 자연과 건강을 해치는 플라스틱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무뢰한처럼 생각했다. 다음날을 피곤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부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첫 장을 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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