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품 남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오정화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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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남매 #야기사와사토시 #문예춘추사

 




야기사와 사토시의 작품은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으로 먼저 만났다. 책과 사람 이야기가 짙게 묻어나는 작품으로 진보초 헌책방을 어슬렁거리는 나를 상상해본 소설이었다. 최근 피로 이어지지 않는 가족을 말하는 작품이 많아졌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이루는 현재 사회의 풍경 때문일 것이다. 야기사와 사토시의 이번 작품 모조품 남매는 어머니 아버지가 다른 의붓남매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이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이다 가문의 요이치와 유카리는 부모님의 재혼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대학생이던 요이치는 도쿄의 대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초등학생이던 유카리와 살기 위해서였다. 요이치는 의료품 제조업체에 다니며 경제를 책임지고, 요리 등 음식은 유카리가 만들기로 했다. 부모님이 구매한 50년 된 가옥에서 단둘이 살고 있다. 어느 날 집안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다. 고양이에게 다소 무거운 다네다 씨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살기로 했다. 쉬는 일요일이면 요이치는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게 좋다. 일요일이 끝나가면 일요일이 저물어가는 걸 아쉬워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 공감의 미소를 짓는다.

 






어느 날 갑자기 남매가 되었다고 우리는 모조품 남매라고 일컫는다. 유카리는 오빠를 위해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는데 요이치의 회사 후배는 이를 가리켜 애매(愛妹) 도시락이라고 말하며 부러워한다. 우산을 챙기지 않은 요이치를 위해 마중 나갔을 때 한 소년이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유카리는 자기의 우산을 건네준다. 새어머니 사치코 씨의 유품이라 소중히 간직하던 하늘색 우산이었는데 말이다. 마음을 나눠준 유카리와 요이치를 만나러 온 소년 무사시와 마리에의 인연을 이어가는 에피소드가 퍽 다정하다.




 

소설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 없을뿐더러 요이치와 유카리를 배려하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 물론 남매는 거절하지만 말이다. 유카리의 학교 친구 하세가와 또한 소중한 친구다. 무사시와 마리에 그리고 밭일을 하다 열사병에 걸린 옆집 할아버지의 밭을 직접 일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어린 사람들이 채소를 가꾸고 새까맣게 탄 모습을 보며 서로 웃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만약 일이 끝나고 녹초가 되어 돌아왔는데 집이 캄캄하다면 굉장히 무미건조한 기분이 들 것이다. 집에 불이 켜져 있고, 냄비에 따뜻한 카레가 있고, 아침에는 좋아하는 계란말이가 들어간 도시락이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82페이지)

 




부모님이 가족이 되기로 하고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유카리는 오빠에게 이쑤시개로 된 하늘색 깃발을 건네주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치 부적처럼 지갑에 품고 다니던 요이치는 유카리에게 힘이 필요할 때 그 깃발을 건네주었다. 소중히 간직하던 부적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서로의 등불이 되어주는 남매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넘치지 않게 보살핀다. 삶의 목적을 서로에게 찾는 남매를 발견하게 된다. 학교를 그만두고 의붓여동생을 돌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때로는 힘든 일도 있겠지만 서로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챕터별로 주제를 정해 남매의 이야기를 한다. 네 계절을 지나며 주변 인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일상을 살아간다. 모조품 남매는 누가 봐도 진짜 남매가 된다. 소소한 기쁨이 가득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행복이 아닐까 하고 읊조리는 남매에게서 가족의 의미를 새긴다. 가족이라는 형태로 진짜 가족이 되는 과정에서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요이치와 시카노 선생님의 미래도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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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도 없는 사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백수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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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도없는사이 #시몬드보부아르 #RHK



 

시몬 드 보부아르는 소르본 대학 시절에 만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계약결혼하며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연인이자 지적 동반자로 평생을 함께 한 일화로 유명하다. 역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 작가인 보부아르의 삶에서 아홉 살에 만난 친구 엘리자베스 라쿠앵, 일명 자자라고 불린 그녀를 앙드레라는 이름을 주인공으로 하여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유작으로 그녀의 입양 딸인 실비 드 보부아르에 의해 공개된 소설이다. 자자를 앙드레로, 시몬은 실비로 이름을 바꿔 둘도 없는 친구에 대한 기억을 문학이라는 장르로 부활시켰다. 보부아르의 작품에서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자자와 나눈 편지를 수록했는데, 자자를 가리켜 둘도 없는 사이라고 자주 일컬었다. 소설가 백수린 때문에 알게 된 작품으로 작가의 유려한 번역으로 만날 수 있어 더 소중하다.

 



소녀시절의 친구는 남자와는 상관없이 사랑에 가까운 우정을 나눈다. 서로 애틋해 하고 마치 연인처럼 자주 만나 친구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이 이성과의 사랑 못지않다. 사랑과 우정의 그 경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어린 시절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동감할 만하다.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좋아해 주길 바랐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둘도 없는 사이에서 앙드레(자자)는 실비가 아홉 살에 처음 만나 스물한 살 갑자기 죽을 때까지 우정을 나눈 친구다. 형제자매가 많은 앙드레가 여성으로서 집안의 모든 일들을 해치워야 할 때, 앙드레를 만나지 못하는 실비의 안타까움이 작품에 자주 나타났다. 앙드레가 좋아했던 소년과 이별,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사랑했던 파스칼의 관계에 대한 앙드레의 어머니 행동을 실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앙드레가 가족을 중요시하고 엄마에 대해 숭배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앙드레를 향한 실비의 감정이 드러났다. 만나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가족 혹은 일 때문에 단 5분간의 시간을 할애할 뿐인 앙드레를 향한 실비의 애틋함과 안타까움 같은 거 말이다.



 

모두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앙드레를 사랑했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사라진 앙드레를 찾는 갈라르 부인을 보고 느낀 감정이다. 다르게 보면 앙드레에게 동생들을 챙기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약혼이 아니면 멀리 떠나보내는 등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도 주체적인 삶을 사는 실비와 가족에게 떠밀리는 앙드레의 성격이 드러난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부분을 보면 누군가의 딸로 사는 것보다 ''로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것 같다.

 



자자는 무엇 때문에 죽었나. 얼핏 보면 사랑의 상처 때문이 아닐까 여겼는데 바이러스에 의한 뇌염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의무가 그런 역할을 했을 거로 보았다. 온전한 나로 살지 못한 앙드레에 관한 안타까운 감정이 묻어났다.



 

소설 뒤편에 자자와 시몬이 나눈 편지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을 다녔던 장면이 이 소설을 쓰게 되는 이유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고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작품으로 나타낸 결과는 이렇듯 많은 독자를 감동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나의 어릴 적 친구와 놀았던 기억들, 오래도록 내가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가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좋아했던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과거의 기억들과 멈춰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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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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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죽을수없는최고령사교클럽 #클레어풀리 #책깃


 

나보다 스무 살 정도가 많으면 늙은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나도 조금 있으면 그 나이가 될 거면서, 마치 영원히 그 시절에 있을 것처럼 군다. 뒤돌아서 후회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이 든 사람 특유의 아집이 싫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우리 미래의 모습을 미리 경험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는지 보고 배운다.

 



클레어 풀리의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은 일흔이 넘은 이들의 주민센터 복지관을 지키기 위한 활약을 통해 삶의 통찰을 배울 수 있는 소설이다.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는 복지관 운영자와 이제 다른 사람과 클럽을 통해 삶의 변화를 꾀하는 대프니, 아트, 윌리엄, 애나, 루비와 십대 후반의 미혼부 지기가 주요 인물이다. 지기는 대학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위해 학교 선생님이 과외 공부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델 복지관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시간이 끝났을 때 누군가 카일리를 맡아주어야 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대프니는 지기가 공부가 끝나는 시간까지 카일리를 돌봐주기로 했고, 대신 지기는 대프니에게 인터넷 데이트 방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삶을 향해 발을 내딛을 준비가 시작되었다.







 

다른 누군가와 친구를 만들지 않았던 이들이 리디아의 사교 클럽에서 만나 삶의 변화를 이루고자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프니의 활약과 배우였던 아트, 아트의 친구인 파파라치 윌리엄 등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삶의 연륜이 있는 이들은 지난 삶을 통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안다. 다르게 보면 통쾌하다. 지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을 때 해결해주는 대프니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기에 지기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단번에 해결해내는 걸 보면 말이다. 무언가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는 것 같다. 또한 리디아가 처한 상황에서 한 가족의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개인으로서 혼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여성에게는 옷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옷장에서 디올을 꺼내주며 한마디 한다. "디올은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거장이었죠. 패션은 시시한 게 아니에요. 갑옷이에요. 디올을 입으면 당신은 세상과 맞설 수 있어요. 보여요?"라고 말이다.

 



누군가의 어머니도 아내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바람피우는 남편을 자기 때문이라며 자책하는 리디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대프니는 오죽할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 아닌 바로 나임을 강조한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스스로 강해지고, 누구에게든 맞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의회에서는 노인들을 무시했다. 예산 때문에 센터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각자의 방식으로 의회를 찾아가기도 했으며,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기념 연극을 준비하여 많은 사람에게 복지관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했다. 노인들과 아이들이 한데 모여 연극을 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압권이다. 타인과 말하는 걸 거부했던 아이 러키는 이제 자기 의사를 조금씩 표현할 수 있었고, 그 역할을 매기 대처라는 개가 도왔다. 그러고 보면 동물은 어린이와 어른들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런 공동체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못한 부모의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고, 친구가 없는 고령자들에게는 말벗이 생기며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돕다 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은 점점 사라지지 않겠는가.

 



통쾌하고 유머스러운 작품이었다. 과거에 대프니가 어떤 일을 했든 지금의 대프니를 응원하게 했다. 지기와 카일리의 미래를 위한 방편을 마련해주고 리디아에게는 혼자 일어설 수 있는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었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연륜에서 오는 삶의 통찰과 유머, 위트가 살아 있어 나이가 들어도 인생의 행복을 위해 힘쓰고 노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이런 노인 사교 클럽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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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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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문학동네

 

둘이 의미하는 것은 애인이며, 넷이 의미하는 것은 가족, 셋은 친구였다. 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을 들어보자. 세 명의 친구는 트라이앵글처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도드라진 부분을 다듬어주는 관계라고 한다. 때로는 나와 맞지 않은 부분에 속으로 탓하다가 내가 부러워하는 부분이 보이면 감탄한다. 세 사람 중 이 사람과는 이런 부분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부분이 맞아 삼각형의 형태가 된다. 고등학교 시절 따로 또 같이 세 명이 친하게 지냈다.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어서, 불편한 부분도 그 사람의 본심을 알게 되면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이 모여 삼각형을 이루듯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이었다.



 

김화진 작가의 동경은 아름다운 표지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 다시 봄과 여름을 맞으며 각자의 관계에서 세 명의 친구가 되는 과정이 꽤 인상적이다. 주인공이 저마다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우리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혼자서 웃었을 것이다. 친구와 있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해서였다.

 





아름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아름은 사진 찍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인형 리페인팅 작업이 시들해질 무렵 그런 마음의 표시를 늦게 출근하고 갑자기 연차를 내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선배이자 강사였던 인아에게 그만둔다는 말을 망설였던 마음 또한 이해됐다. 쉽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아름을 지켜보는 인아 또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름과 인아, 인아와 해든, 해든과 아름, 세 사람은 각자와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내가 하지 못한 행동이나 표현 방법을 동경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사진 예술을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라 사진을 찍는 사람의 따뜻한 시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빛이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 사람의 모습을 찍고, 깨진 도자기 조각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인아의 모습은 예술가만의 특징이 있었다. 배우면서 성장해가는 아름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시크하게 행동하는 해든도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사진에 대한 자부심과 예술적 감각을 지닌 사진 예술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던 시간이었다.



 

따로 또 같이 지내면서 수술 때문에 입원한 인아를 해든과 아름이 차례로 방문하며 이들의 관계는 변하기 시작했다. 각자에서 셋이 함께하는 관계로 변한 것이다. 아마도 함께 삿포로 여행을 떠나며 급변했다. 셋을 이루는 삼각형의 고리가 마음에 든 것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조금씩은 성향이 다른 법이다.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나 행동을 해도 다른 점 때문에 관계를 유지해간다. 아름과 인아, 해든도 그런 관계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하고 있는 일이 지루할 때 때로는 다른 일을 도모하면 더 열정이 생기지 않겠는가.



 

인형 리페인팅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 캐릭터로 변신한 피규어를 찾는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갖고 싶은 마음, 취향의 다양성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책을 읽고 검색해봤더니 다양하게 리페인팅된 인형이 나왔다. 좋아하는 배우의 얼굴과 귀여운 아기, 애니메이션 캐릭터까지 있어 소장해도 괜찮을 듯 했다. 그리고 책점을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책점은 고민이 있으면 그걸 생각하면서 책에 손을 올려놓고 아무데나 펼쳐보는 거다. 맨 처음 들어오는 문장이 그 사람의 것이다. 재미 삼아 한번 해볼까 하고,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책을 펼쳤더니 네 완성된 작품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생각해 봐. 그것이 어떤 효과를 낳을까?’라고 나온다. 무슨 의미일까.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된 생각과 재능이 있기에 인형 리페인팅하는 직업도 생겨났을 것 같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작업하는 광경이 매력적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일이지 않나. 굳어져 있던 마음 근육을 넓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양한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아름다운 삼각형의 고리를 만들어가는 성장통을 함께 즐겨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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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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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지키다 #장바티스트앙드레아 #열린책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네 번째 장편소설로 왜소증으로 태어난 석공예가 미모와 아름다운 비올라의 성장과 자유 그에 따른 투쟁을 다룬 작품이다. 세계 3대 문학상인 2023년 공쿠르상을 수상하여 걸작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감동적인 소설이다.



 

파시즘 혹은 독재는 역사 속에서만 있는 단어인 줄 알았다. 그에 가까운 것을 실제로 겪어보니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자유가 쟁취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노고와 핍박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목적으로 가지고 움직인 사람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다시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었다. 방심하는 사이에 반복될지도 모르는 환경에 처하고 보니 개개인의 감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녀를 지키다를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누군가가 부르짖는 주장에 현혹되면 더 깊이 빠지는 모양새가 되며 자유를 위한 갈망을 부를 뿐이라는 거다. 누군가는 그 사상이 정착되지 않게 제재하고 강조해야 하는 법이다.






 

미모 비탈리아니는 왜소증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돕다가 석공예 재능이 있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 죽은 후 어머니는 가산을 팔아 그를 조각가인 삼촌 치오 알베르토에게 보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알베르토는 위대한 조각가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미모의 재능을 탐내고 질투했다. 산피에트로 성당의 피에타상이 그를 조각으로 이끌었다. 조각상을 바라보는 그를 발견한 사제 돈 안셀모는 피에타가 슬픔에 잠긴 어머니라는 뜻이라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밤, 묘지에 갔다가 새빨간 입술의 비올라 오르시니를 만나 삶이 변화한다. 비올라와 미모는 서로의 존재를 이끌어주는 관계에 가깝다. 비올라는 미모가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까지 책을 읽히고 단련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미모는 비올라 곁에서 그녀가 자유를 갖도록 응원하는 상호보완적인 존재가 되었다. 미모 비탈리아니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라는 이름이었으나 미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48페이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왜 유폐했는지 그 과정을 찾는 여정을 다룬 소설이라 해도 되겠다.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파시즘이 난무하는 시대에 정치에 빠진 오르시니 가문의 아들과 그를 지켜보는 정치인들, 그리고 가족들. 자유를 갈망하는 비올라, 위대한 조각가로 이름을 날리는 미모. 이 둘의 삶의 투쟁을 말한다. 미모가 주인공인 동시에 미모가 바라보는 비올라가 이 소설의 중심을 이끌어간다. 비올라로 말하자면, 서재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었으며 그런 만큼 지식이 풍부했다. 대학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부모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연습을 했으며 미모와 친구들은 이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녀는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갈망했다.

 



삶의 자유, 개인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이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그 꿈을 이뤄냈다. 한때는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했지만, 미래를 위해 잠시 돌아갈 뿐이었다. 파시즘에 빠진 인물을 지키는 방법 또한 아주 간단하다. 그를 고발하는 것. 감옥에 잠시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유를 향한 길임을 깨닫는 일이었다.



 

지치고 힘든 일상에 단비 같은 책이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통찰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수도원의 담장 아래 헐떡거리는 숨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자의 지난 삶의 반추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를 묻는다. 또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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