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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평점 :
『재이』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재이 #조남주 #문학동네
가난을 수치로 여기는 시대다. 가난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옷을 사고 가방과 신발을 산다. 몇 개 되지 않은 물건을 새것처럼 보이게 닦고 관리를 한다. 어느 드라마에선가, 돈이 없어 중고 명품을 사서 입고 다니는 인물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의문이 들었지만, 현실은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가난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이 경우는 명품을 알고 있다는 가정이고, 만약 명품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면, 명품을 카피한 옷을 입고 다녀도 알지 못한다. 그걸 아는 순간 수치심에 빠진다.
조남주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에서 여성의 지위와 차별, 편견에 대한 글을 써 영화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엔 정재이라는 여성을 통해 가난에 관한 계급과 신분 상승에 대하여 말한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돈이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한 불편함이 따를 뿐이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주류의 문화에 낄 수 없으며,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으로 움츠러든다. 내가 알았던 환경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깨닫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이상 가난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원가족의 생활을 감춘다. 작가는 정재이를 통해 정면으로 가난을 등장시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달과 가까운 곳에 산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조금 읽다 보면, “나는 달과 가까운 곳에 살았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달동네에 살았던 과거의 정재이와 흔들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창 너머로 둥그런 달이 보이는 곳의 52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43층에 사는 정재이의 신분의 격차를 알 수 있게 된다. 살아온 과정을 책으로 써 작가이자 강연가가 된 과거의 재이를 돌이켜보는 내용이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재이가 홍영신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음악 수업 실기 시간에 리코더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실기 만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재이의 상황을 알게 된 홍영신 선생님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추천해 주었다.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니고, 대학교 3학년 때 해외문화탐방도 다녀왔다. 장학재단의 은행에 취업해 장학 사업을 하는 업무를 맡아 왔다. 재이에게 좋은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어 다가왔고, 도움을 주었지만, 재이는 모든 사람과 인연을 잘라냈다.
내가 겪은 빈곤은 거짓이 아니다. 나는 내 삶 속에서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깨달았고, 내가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고의 영역 안에서, 실행하고 책임질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부끄러움도 진심이고, 부끄러움이 부끄러운 것도 진심이다. 이 모든 복잡한 마음들이 뒤엉켜 서로를 침범하거나 훼손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그 방법을 찾고 싶다. 비슷한 괴로움을 끌어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면, 나도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다. (218페이지)
강연장에 갔을 때 질문했던 동년배의 여성이 있었다. 같은 재단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았다고 했다. 책을 쓴 재이와 달리 주변 사람들 모두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부모님 밑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잊고 싶은 기억일 뿐이라고 했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겠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말을 안 할 뿐이라고 말이다.
작가는 재이의 가난을 여러 작품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가난을 감추지도 않았고, 가난에 관한 강연을 하며 부끄럽지 않다는 재이의 생각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에서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품위 있게 손님맞이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재희네 집에서 간식이나 밥을 먹을 때 감격하거나 과분해하지 않았던 일화를 떠올리게 했다. 바꿀 수 없는 지난 시간과 흔적들을 숨기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저변에는 빈곤과 결핍을 감추고 싶었으리라.
『사람, 장소, 환대』라는 작품을 읽으며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던 그가 어렴풋하게나마 해답을 찾았던 작품이라고 했다. 나를 짓누르는 그림자의 존재가 나인지, 쌍둥이의 그림자였는지 알 수 없었던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듯, 재이에게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덜컹이는 사다리, 내 몫의 의자가 없는 테이블’을 마주한 우리의 불안한 마음들을 들여다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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