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30주년 기념 도서 세트 - 전3권 김영하 30주년 30/3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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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제국 #김영하 #복복서가



 

명실공히 문학애호가로서 많은 소설을 읽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지금도 읽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읽을 것이다. 신간 소식이 들려오면 소설 분야부터 살펴보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SNS 계정을 자주 들여다본다. 김영하 작가의 30주년 기념 특별판은 내가 읽지 않은 책이어서 더 좋았다. 단편선과 산문선에 이어 대표 장편으로 빛의 제국을 실었다. 아마 작품이 처음 출간되었던 즈음에는 생소하지 않은 주제였을지 모르나, 지금에 읽어보니 생소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남파 간첩이 주인공인 다소 영화적인 스토리라는 점이다. 물론 최근 TV에서 남파간첩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오긴 했었다. 마치 상상력의 세계인 판타지를 다루는 듯한 소재라고 여겨질 정도다.

 



빛의 제국은 남파 간첩으로 살아온 김기영이라는 인물의 하루 동안의 번민을 담은 작품이다. 이십 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김기영은 어느 날 북으로 돌아오라는 귀환 명령을 받고 돌아갈 것인가, 돌아가지 않을 것인가, 서울 거리를 헤매며 고민에 휩싸인다. 저들과의 인연이 끊어졌다고 여겼으나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었던가. 복귀 명령은 잘못 배달된 편지 같았다. 열다섯 살 난 딸이 있고, 아내가 있는 그가 여기에서의 삶을 정리해야만 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내에게 향하는 그의 마음은 어린애다운 면이 있었다. 남편을 아무리 사랑한대도 자유를 버리고 굶어 죽을 수도 있는 북으로 갈 거라고 믿었던 것인가.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하니 딸아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표현을 보고는 그는 이상(理想)에 사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갈 테면 혼자 가라고 말하는 장마리의 의견에 동감했다.






 

장마리가 여자가 아닌 엄마였음을 깨닫는 장면이었다. 딸아이를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모두 장마리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했던 거다. 가족이란, 더군다나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나 싶다. 물론 장마리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남자애와 불륜에 빠져있었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엄마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가장 자신다운장편이라고 표현했다. 작가와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이고, 간첩이나 빨갱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어떤가. 간첩이 있기는 한가. 전 세계로 여행 다닐 수 있는 시대에 간첩은 낯선 단어다. 생각해 보면, 지금도 김기영 같은 인물이 없다고 보지도 못하겠다. 남파간첩으로 내려왔으나 별다른 지령은 없고, 그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으로 거주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영이라는 인물의 하루는 고통스러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를 감시하는 자, 그를 잡으려는 자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수 있다. 이토록 평화로운데, 북으로 돌아가고 싶겠나. 그의 번민이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귀환 명령을 받은 김기영, 연하의 연인에게 푹 빠져있는 장마리, 친구가 좋아한다는 남자애의 생일날 그의 집에 찾아가는 현미. 이처럼 세 명의 한 가족은 일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마주하고 허망하게 무너지는 하루에 마침표를 고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선택할 수 없는 것과 선택할 수 있는 것의 경계에서 한 가족을 통해 한국이 걸어온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인물들은 각자의 사건을 겪으며 비로소 삶의 통찰력을 키운다. 삶은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필사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썼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소중해지는 순간이 온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비로소 머물고 싶은 현재에 안착하게 된다.

 

 

#빛의제국 #김영하 #복복서가 #김영하30주년기념특별판 #한국문학 #한국소설 #산문선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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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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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나선 #히가시노게이고 #북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부랴부랴 이 책을 꺼내 읽었다.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계속 나올 줄만 알았는데, 그가 오랫동안 암 투병을 해왔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삶은 이처럼 허망하다. 죽음은 한순간이라는 것.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책을 읽었다.

 



투명한 나선은 갈릴레오 시리즈의 열 번째 책으로 유카와 마나부의 개인사가 나와 새로운 전환점을 도는 것 같다. 때로는 경찰 구사나기보다 더 정확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냉정한 판단력으로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인물이다. 바다에서 총상을 입은 익사체가 발견되며 소설의 시작을 알린다. 구사나기는 사건을 조사하던 중 유카와 마나부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를 찾아간다. 유카와는 구사나기의 바람과 달리 협조를 단칼에 거절한다. 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돕겠다고 약속한다.



 

시마우치 소노카는 왜 도피를 한 걸까. 마쓰나가 나에는 왜 소노카와 함께 움직이는 것일까. 네기시 히데미는 시마우치 소노카와 무슨 인연이 있을까. 서로의 관계를 보며 의문이 들고, 유카와의 행동조차 여러모로 궁금증이 생긴다. 아버지와 무덤덤한 관계, 마치 참회를 하듯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위해 집에 와 있는 장면 또한 나이가 들어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오십 대의 관조적인 남자가 보인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돌볼 수 없을 때,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구사나기와 유카와의 관계는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처럼 콤비를 이루어 소설이 진행된다. 하나의 사건이 생기고, 구사나기가 유카와의 도움을 요청하면 유카와는 못 이기는 척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사건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가 아무 말도 안 하면 그건 단서를 발견했다는 뜻이다. 물론 왓슨 박사와 유카와의 차이점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유카와만의 매력이 있다. 시크하면서도 절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그 무심함이 매력이다.

 



워낙 다작을 냈던 작가이기도 하여, 갈릴레오 시리즈 중 읽었던 책을 살펴보니 썩 많지는 않다. 그중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카와 마나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그가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 대학교수 겸 물리학자라는 점이다. 냉철한 판단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때로는 구사나기보다 앞서 추리하고 사건을 해결한다. 그래서 현재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유카와 마나부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유카와 마나부의 새로운 매력을 느꼈었는데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라니 안타까움이 크다. 이전보다 더 인간적인 면이 엿보였던 것만큼 더한 매력을 발산했을 텐데 말이다. 삶은 이처럼 의도치 않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숨겨두었던 진실이 드러날 때도 있는 법이다. 때로는 진실이 드러날까 조바심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네기시 히데미의 마음에 공감하는 이유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은 죽게 되어있다. 소설 속 죽음은 짜릿한 재미를 위한 책이지만 삶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상황이 다를 뿐이다. 독자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주인공을 보며 삶이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이번 작품에서는 단편 겹치다가 수록되어 있다. 유카와 마나부의 가족사가 나와 당황했던 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카와 마나부의 연구실에 구사나기가 다시 등장했다. 물론 새로운 사건이 발생해서다. 물론 새로 맡은 사건이 난항을 겪자 찾아온 것이다. 이제야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카와 마나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안타깝다. 전작들을 찾아 읽어 보는 수밖에 없겠다.

 

 

#투명한나선 #히가시노게이고 #북다 #미스테리소설 #갈릴레오시리즈 #일본소설 #일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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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6-08-27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달이 지났는데 오늘 알게됐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인데 암투병중인 것도 몰랐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없다니 슬프네요.....
 
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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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너머 #벤자민마이어스 #다산책방



 

광부가 될 운명이었던 한 소년이 길을 걷는다. 간단한 짐을 싸 살아보지 않은 곳,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배가 고프면 일을 해주고 먹을 것을 샀으며 풀숲에 방수포를 치고 침낭에서 잠을 잤다.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닷가를 향해 걷다가 한 오두막 앞에 섰다. 풀이 자라 오두막을 온통 덮고 있는 곳이었다. 커다란 개가 으르렁거리자 이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이 든 여자가 나타나 함께 차를 마시자고 했다. 소년이 구해온 쐐기풀차를 함께 끓여 마시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침낭에 누워 아침을 맞았다. 새로운 미래가 그 앞에 펼쳐졌다.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지나가는 소년이었을 뿐인데, 차와 저녁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친절을 베푼 여성은 덜시 파이퍼다. 개 버터스와 함께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먹을 것이 풍부해 보였고, 어떠한 주제에도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 덜시로부터 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비를 피해 오두막의 작업실로 갔던 날 그는 거기서 시집을 발견했다. 누군가의 체취가 묻은 공간에서 흔적이 묻은 물건들이 다수 있었다. 시선을 피하고 그 상황을 피하려는 덜시를 보며 말하지 않은 사연을 짐작했다.



 

삶은 저 바깥에서 내가 게걸스레 먹어치워 주기를, 허겁지겁 집어삼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각이 내 안에서 깨어났고, 도무지 만족을 몰랐으며, 나로서는 그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혹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깔려 익사하듯 죽어간 또래들을 위해서라도 내게는 삶을 탐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23페이지)

 






문학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경험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나의 삶을 점검해 볼 수 있다. 때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하여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의 삶에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지지부진한 삶 속에 문학은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안내자에 가깝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로버트의 앞에 나타난 덜시는 그에게 탄광 말고도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와 문학 혹은 철학을 말하고, 지금의 삶과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을 권한다. 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 가까운 삶의 현장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너는 오직 네가 원하는 대로만 삶을 살아야 한단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지 말고.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문턱에 서 있어. 나를 믿어보렴. 모든 순수가 사라진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자유,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언제나 노력해야 할 목표야. 미래가 불확실할지라도 그 미래를 거머쥐는 건 온전히 네 몫이야. (143~144페이지)

 



다소 작위적인 면이 없잖아도 문학이 가진 상상력에 반하게 되지 않나. 로버트가 자유를 향해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덜시 파이퍼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로버트를 일깨우고, 언제든 이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삶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자연에 대한 묘사가 뛰어났다. 로버트가 걸어온 길, 바다를 향해 펼쳐진 들판, 속삭이는 초원과 울룩불룩한 덤불 사이로 난 길, 돌담과 좁다란 울타리로 이어진 막다른 길. 이러한 장면을 작가는 꿈결 같은 풍경이라고 표현했다. 마치 그 장소에 있는 듯,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안에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이처럼 소설은 섬세한 장면 묘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짧고, 우리는 단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것. (315페이지)



 

네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는 덜시 파이퍼의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원할 수 있는 것. 우리 부모가 살아온 길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경험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아닐까 싶다.

 

 

#수평선너머 #벤자민마이어스 #다산책방 #소설추천 #문학 #도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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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56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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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한국어 #문지혁 #민음사




 

문지혁 작가의 한국어 시리즈를 읽어 오며, 작가를 응원하게 된다. 이를테면, 작가가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전임 강사로 채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소설 속 작가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마지막 편이라고 하는 실전 한국어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초보 아빠로서, 어른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가 문지혁이 등장해 오토픽션의 한 페이지를 보여준다. 자기의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형식이지만, 글쓰기 강의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문학에 관한 이해를 살펴볼 수 있다.




 

소설은 작가 문지혁이 대학 강의를 그만둔 후 새로운 학교의 강사로 지원했으나 임용이 안 되고 구청의 나도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 뽀개기수업을 맡아 진행한다. 수업 중에 술을 마시는 막걸리 아저씨를 비롯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 와중에 은혜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고, 은채에 이어 은호가 태어났다. 아이 하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둘째부터는 첫아이에게 걸었던 기대나 걱정, 고민이 없다. 무엇을 해도 예쁘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그러한 감정들을 표현하며 아이에게서 발견한 어릴 적 습관 등을 보며 다시 놀란다. 이를테면 물을 싫어하여 절대 물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은 것들 말이다.




 

작가 문지혁이 등장하는 관계로 독자는 이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실제 경험이라고 여긴다. 아내 은혜나 아이들의 에피소드는 실제인 것 같고, 글쓰기에 대한 강의,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작가가 설정한 소설 속 인물일 거로 보인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로 봐도 좋겠다. 한 아이가 태어나 자라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인간은 더디 자라는 존재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서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법.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을 배운다. 교사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강의하는 한편, 그들에게서 삶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간절히 원하거나 이루고자 하는 게 있지만 노력하지 않고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미래를 위해 언어를 배우고 학원을 다니는 등 열정을 쏟는 타인들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무엇인가에 매진한다는 건 포기해야 하는 게 생기는 법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이뤄내기란 도통 어렵다. 끈기와 노력, 열정이 부럽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중간에 힘들다고 지레 포기하지 않느냐 말이다. 시련의 시간을 이겨내야 가능하다는 것을 자주 놓친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끝말잇기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거부할 수 없는 끝말잇기다. 아이가 가진 어휘력을 총동원하여 배움을 익히는 것부터 글쓰기의 시작점이다. 단어는 어휘력의 기초다. 끝말잇기를 통해 아이와 함께 단어를 배운다. 다람쥐-쥐라기-기차-차도-도시락이 이어질 수 있고, 다람쥐-쥐구멍-멍게-게시판-판타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를 있게 하는 존재의 애틋함과 연민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나는 오토픽션을 좋아하는 독자인가 보다. 이기호 작가의 짧은 소설도 그렇고, 한국어시리즈를 쓰는 문지혁 작가의 경우도 그렇다. 아마 초급 한국어어가 아니었다면, 즐겨 읽는 오늘의젊은작가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문지혁이라는 작가를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초급 한국어를 읽었고,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 매력을 느껴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고 있었던 듯하다. 작가는 한국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고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은채와 함께 끝말잇기가 이어진 것처럼 은호와 끝말잇기도 이어질 것이다.




 

막걸리 아저씨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쓰기 수업 방해꾼처럼 보였으나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어른 학생이었다. 최대한 무감하게 표현했지만, 나는 울컥했다. 가족을 잃은 부모의 모습이, 흔적 하나라도 찾으려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였다. 자식은 자라서 부모의 곁을 떠나고,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훌훌 떠나는 존재가 아니던가.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저 사랑을 줄 뿐이다. 작가에게도 한국어 시리즈는 가족의 소중한 기억일 것이며, 아이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작품으로 온전히 남아, 소중해지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실전한국어 #문지혁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 #한국소설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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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다 아니다
김중혁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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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다아니다 #김중혁 #안온북스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 있다고 하자.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고 여기지 않은가. 만약 약간의 돈을 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 그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들과 시간을 보낸다면 갑갑한 현실 같은 거 잊고 말 것 같지 않은가. 다만 현실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가 될 듯하다. 분명한 게 꿈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세상만 존재할 것이므로 그렇다.

 



영화 <인셉션>이 생각났다.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영화의 잔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김중혁의 꿈이다 아니다를 읽었더니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꿈속으로 들어와 내가 가진 정보 혹은 기억을 훔쳐 갈 수도 있다. 나의 외모로 누군가에게 다가가 해를 끼칠지도 모르지 않나. 물론 중요 인물도 아니므로 훔칠 정보도 없겠지만, 꿈속의 세상과 현실이 맞물려 범죄에 이용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오랜만에 김중혁의 소설을 읽었다. 상상력의 세계, 꿈의 미래를 경험하는 듯했다. ‘달리라는 회사에서 드림 큐레이터로 일하는 주이창과 마이멘토모리에 언더커버로 활동하는 경찰관 주아연이 주인공이다. 주이창은 달리글라스를 끼고 잠에 빠지면 뇌파 데이터를 꿈 변환기를 통해 변환된 영상을 사용자들에게 돈을 받고 꿈 해설 서비스를 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갈라루팅을 이해하면 좋겠다.

 






갈라에서는 접속자가 자기 기억의 표면을 떠다니며 오래된 감정과 기억 속의 장면을 더듬을 수 있다. (중략) 루팅은 사람의 생애 기억과 인지 패턴, 감정 반응을 더 깊은 바닥에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한번 내려간 것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고, 한번 정착이 시작되면 되돌리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다. 갈라가 산 사람을 위한 휴식처라면, 루팅은 죽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안식처였다. (262페이지)

 



주이창과 주아연은 남매 사이로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생명유지장치를 하고 있는 상태다. 살아 있는 게 아니므로 그만 보내드리자고 하는 아연과 살아있는 사람을 어떻게 죽은 사람으로 치부하겠냐가 이창의 의견이다. 각자 꿈속으로 들어가 신세계를 경험한다. 꿈속에서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꿈의 세계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육신을 버리고 영원하기를 원하는, 즉 루팅을 선택한 사람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파는 세력이 있다는 거다. 그걸 알선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 약을 판매하는 자가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성 따위 쓰레기처럼 여기는 인간이 등장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가족을 꿈속에서 만난다면 행복한 일이기도 할 것 같다. 다정한 목소리, 웃는 모습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꿈속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AI로 죽은 사람의 모습도 나타낼 수 있는 시대다. 비록 상상의 세계라고 하지만, 꿈속에서 소통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꿈의 세계를 만든 자, 꿈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자, 상처마저 치유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고통을 아는 사람에게 꿈속에서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물어보면 하나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헷갈릴 법도 하지만 결국에는 꿈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과거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래를 향해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결국엔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일상이 지겨워도, 지겨움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내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일으킬 파장을 생각해 보면 살아갈 법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좋은 게 아닐까. 좋은 일이 생기면 꿈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꿈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꿈이다아니다 #김중혁 #안온북스 #SF소설 #한국소설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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