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아, 알사탕이 달고 맛나지야? 그란디 말이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로 다 제맛이 있지야. 알사탕이 아무리 달고 맛나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독한 것이제. 유순하고 담박하고 부드러운 맛을 무감하게 가려버리제. 다른 맛들과 나름의 단맛을 가리고 밀어내 부는 건 좋은 것이 아니제.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 - P32

"아가, 사람이 나이 들면 다 주름지고 닳아지고 흙이 되는거시제. 그랑께 눈이 총총할 때 좋은 것 많이 담고 좋은 책 많이 읽고, 몸이 푸를 때 힘 쓰고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거제이. 손발 좀 아낀다고 금손 되겄냐 옥손 되겄냐. 좋을 때 안쓰면 사람 베린다. 도움 주는 일 미루지 말고 있을 때 나눠야 쓴다잉. 다 덕분에, 덕분에 살아가는 것인께."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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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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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었을 7명의 흑인여성들은 폭력과 차별로 얼룩진 현실에도 서로를 끌어안는 연대의 힘을 보였다. 반면 그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차별과 침묵은 씁쓸한 사람의 이면을 느끼게도 했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한 용기를 주고 묵인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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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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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흙냄새와 메마른 열기로 가득 찼던 8월의 어느 날.
숲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에도 더운 열기로 달궈진 흑인 남녀의 몸을 차마 식혀주진 못했다.
오후의 태양처럼 빛나던 풋풋하고 앙큼함을 품은 설레임으로 가득 찬 그 시절속에 흑인 남성 ‘부치’와의 기억을 떠올려 보는 어느새 중년이 되버린 한 여성.

과실치사 사건의 가해자가 된 아들의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고, 살던 집에서 나와 과거에 살았던 곳으로 이사를 온 ‘매티’가 그 때의 향을 맡으며, 마음 속에 묻혀 두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녀가 서 있는 이 곳은 도시의 자유로움을 좇아 하나 둘 떠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달리고, 버스가 밟는 땅 위에서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곳이었다.


비 온 뒤 진득해진 땅을 밟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서로 엉겨붙어 치열하게 사는 어른들. 뿌옇게 김이 올라오는 냄비에서 끓고 있는 훈제 돼지고기 냄새와 날리는 먼지까지 보이는 것 같은 세밀한 문장들이 이 책에 금세 빠져들게 만들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곳의 시절과 풍경과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그 시절의 향에 너무 취한 것일까. 곧이어 모든 것이 산산조각을 내며 절망감으로 무너지게 만드는 일이 생기고야 만다.


이 책은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이 시작된 직후의 미국 북부 도시의 빈민가 ‘브루스터플레이스’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동성애 혐오, 사회적 격차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7명의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하여, 그 특징답게 서로가 연결되어 저마다의 사연과 생각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여러 관점을 동시에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뱃속에 아기를 품고 미혼모의 삶을 택해 집을 나와야만 했던 ‘매티’는 이제 중년 여성이 되어, 살아온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위태로운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에게 모진 삶을 지탱하는 힘을 불어 넣어주며 살고 있다.

그 안에는 모성애가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남성들에게 얻지 못한 삶의 희망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구축해 나가려는 진취적인 삶의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고난이란, 절망만 주는 게 아니라 용기도 주는 것인지 모두들 각자의 방식대로 맞서서 살아가고 있었다. 풍족하지 못한 생활 뒤에 따라오는 역경 속에서도 순간의 평안을 주는 ‘종교’가 있었으며, 등을 두드려주는 ‘자매들’이 있었으며, 자신의 헛된 욕망 앞에 질척거리는 대신 체념이란 빠른 선택으로 지켰던 ‘자존심’이 있었다.

북쪽 끝에서 불어오는 자유를 실은 바람에도 낡은 아파트에 사는 그녀들이 잃지 않았던 것은 서로를 향한 손길과 마음이었다.

과거에 집을 나와 추운 겨울 날, 오고갈데 없는 ‘매티’와 자신의 품에 안긴 어린 아기를 따뜻한 보금자리 속으로 품어준 ‘이바 할머니’처럼 ‘매티’가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성들에게 보여준 이타심이 참 따뜻했다. 그 어떤 지위와 환경의 반짝임보다도 멋있고 대단하고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모진 세월과 자신의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음에도 굳건하게 그들을 끌어안는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 인물이다.

특히, 아기를 잃고 영혼마저 죽어버린 듯 상실과 슬픔에 힘들어하는 여성 ‘시엘’을 위해 그녀의 어머니 대신, 그녀를 버리고 간 남편 대신, 상처의 고름을 씻겨 내듯이 목욕을 시켜주고, 그녀가 고통의 신음을 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 그 슬픔을 밖으로 쏟아낼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모습에서는 참으려고 해도 목이 뻐근하고 아파오는 통증을 느끼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중산층의 자녀로써 풍족한 삶을 버리고 빈민층 거주지역 브루스터로 이사를 온 여성 ‘키스와나 브라운’은 흑인 인권운동에 열심인 혁명적인 여성이다. 허름한 이 아파트와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그녀는, 현실적 조언을 하는 엄마와의 갈등에도 팽팽하게 맞선다. 물론, 딸을 사랑하는 만큼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기에 현실 모녀(?)의 불꽃튀는 대화는 힘들이지 않고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삶의 고통과 아픔의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조금씩 차지했을 그들의 우정.
이렇게 서로 버팀목이 되어 지낼 수 있었던 그 힘은 무엇일까?


조금만 세대를 올라가도 잔혹한 노예무역으로 강제이주 당하며 유럽인들의 노예가 되고, 백인우월주의 속에서 유대감을 가질 수 없었던 흑인들이, 이 열등감과 설움을 이어받아 어느 한쪽 귀퉁이에서 더이상 떨어져 나갈 수 없기에 서로가 서로의 손과 발목을 묶어 단단한 큰 덩어리로써 연대를 구축해 나가려는 ‘한’이 그 힘을 만들어낸 것일까?


누군가는 찬란한 시기 속에서 부를 축적하며 배를 채웠겠지만, 그 속에서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고 파는 물건처럼 지냈어야 할 생명의 존엄이 사라진 피눈물의 시기를 겪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마음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똘똘뭉쳐 이어나가려는 이유가 오로지 ‘생존’을 위한 투쟁이란 것은 가슴아픈 일로써 떠올려 지지만, 때때로 아픔과 설움이 만들어 낸 ‘연대의 힘’일지언정 그들의 단단한 결속이 부럽기도 하다. 사실 우리들의 현 삶은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사람들과는 점점 다른 형태와 가치관으로 멀어져가고 있다. 이들처럼 ‘상호 부조’하며 사는 것이, 어느 순간 점점 불편하고 때론 부담으로 느끼며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게 되버리지 않았나.

(물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의 결속은 그 무엇보다 빠르긴 하다. 우리들은 오랜시간 지켜 봤으며,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는 듯,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성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성애를 향한 차별을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내쳐지는 레즈비언 커플 ‘테레사’와 ‘로레인’ 이 두 여성을 향해 이기죽거리는 사람들.
물론 모든 이들이 비난을 하고 차별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침묵’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차별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공동체의 결속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국적이나 인종도 상관 없이 악순환이 돌고 도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참 씁쓸하다.

자신들이 오래도록 일궈 놓은 울타리의 안락함을 침범 당한 듯, 새로운 이들의 유입에 배타적으로 대하는 무리들은, 우리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삶에서는 꼭 인종이나 사회적 지위, 성 정체성 등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여러 이유가 만들어 낸 ‘차별’이 존재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그려놓은 허상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은 누군가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심판대 위에 올려진게 내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편견과 차별에서 오는 상처는 깊다.
그 상처를 더욱 곪아가게 하는 것은 침묵이 아닐까.
현재를 받아들이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만이 최선인 것일까.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써 이들이 겪은 사연들은 분명 갈길이 멀게 느껴지는 막막함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모두를 끌어안는 ‘매티’가 있고, 다듬어지지 않은 공동체 속에서도 분투하며 소외된 구석에서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끌어 올리는 ‘키스와나’가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차별을 당하는 상처입은 ‘로레인’에게 말벗이 되어주던 ‘벤’과 같은 존재가 있었기에 현실의 좌절감에도 모든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열정과 베푸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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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고향 집, 헤어질때 어머니가 흘리던 눈물, 그리고 아직도 쓰리고 아픈 등과 다리에 남은 상처만큼이나 욱신욱신 쑤시고 심장이 두근거리던 아버지와의 고통스러운 불화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매티는 그저 푹신한 등받이가 있는 좌석에 머리를 기대고 ‘시간이 그만 정지해 버렸으면’하고 바랐다. 단지 자신은 바로 이 버스에서 새로 태어났으며 과거의 모든 것과 앞으로 일어날 일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싶었다. - P50

시간은 말이 없고 아리송하여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날마다 조금씩 사라지지도 않는다. 한평생이 거품처럼 사람을 현혹시키는 투명한 파도를 타고 홀러가다가 이따금 기대하지 않았을 때 제멋대로 의식 위로 튀어 올라 물보라를 일으키는 한편으로 시간은 소용돌이치며 사람의 마음속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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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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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외로움이 묻어나는 첫 문장이었다.

(P. 11) 그 기억의 편린들은 좀처럼 휘발되지 않을 것 같고, 어느덧 나의 일부분으로 스며든 듯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왜 어떤 순간들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남은 생을 고스란히 들여도 소거할 수 없는 얼룩을 남기고 떠나버리는 것일까. 어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찰나의 순간에서 느낀 감정들을 섬세하게 풀어낸 문장들을 발견하면, 금세 내 삶에서 축적된 감정들과 맞닿아 보며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8편의 단편으로 엮인 이 책은 보통의 연애와 만남 그리고 일과 퇴사 같은 일상에서 분출되는 감정들을 담고 있다.


“ 뭐 그걸 꼭 겪어봐야 아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말들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 겪어봐야 안다. 큼직하게 나눈 카테고리 안에서의 예측 가능한 감정 말고, 촘촘하게, 굳이, 기어코,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그 사람의 연약한 감정 세포 하나하나를 어떻게 겪어보지 않고 다 알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이 책은 그 섬세한 표현들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그 사람의 감정에 접근할 수 있었다.

(P. 98) 나는 손을 뻗어 낙하하는 빗방울을 쥐어보려고 했다. 추락의 궤적을 자꾸만 낚아채려고 했다. 쥔채로 입술 가까이 가져와 봤을 때에야 내가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실 나와 다른 부분들이 많았다.
모두가 뜯어 말리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 새로운 삶을 위해 주저없이 퇴사를 하는 모험적인 사람들.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모든게 다 공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쿨럭’하고 나오는 기침을 가슴과 목의 날카로운 쓰라린 통증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갑갑했던 가슴 속을 긁어주는 시원함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 없다.

사랑의 관한 부분은 거의 동성간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의 관한 부분은 개인의 존중되어야 할 자유의 몫으로 생각하기에 나에겐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에 가닿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보고 판단하기엔 광활한 우주 앞에 인간은 요만한 먼지일 뿐.

물론, 수용하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그 기다림이 무척이나 외로웠을 사람들의 ‘고민’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고, 불편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그 날의 계절들을 품은 문장들은 생생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좌절감을 느끼는 등장인물의 쓰린 감정들은,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P. 101)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옷깃에 인 보풀을 발견하고는 무십코 잡아당겼는데 그게 쭉 늘어나기만 하고 끊어지진 않아서 아이씨 뭔데, 하는 채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알 듯 말 듯 주변을 멤돌다 없어져 버리는 관심이나 위로 말고, 걱정이나 두려움에 싸여있는 어두컴컴한 방안에 있는 누군가가, 온기를 머금은 아늑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서로가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게 당연한 ‘보통의 일상’을 누릴 수 있길. 더이상, 특별하게만 비춰지는 사랑이 아닌,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가 있는 그저 평범의 사랑으로서만 비춰지며 자신이 택한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경험하지 못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경험해 보는 것 어떨까.

한 걸음 내디기가 참 어렵고, 매 순간 무너짐으로 시끄러운 속을 달래야만 했던 나와, 어떤이들이 마음의 고통을 나눠보며, 그 속에 갇혀 있는 막막함을 어루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로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심의 위로와 손길을 ‘사람’에게서 채우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로 스스로에게 더 상처를 내고, 문을 닫아 버렸던 사람들이 한 손에 쏙 잡히는 작은 ‘책’으로부터 조금씩, 촘촘하게, 차곡차곡 구멍이 나 버린 마음을 채워 보는 것이 때론 충분한 온기를 얻게 된다는 걸.

이 또한 어느 정도의 현실이 받쳐줘야지만 가능하다는 불신의 마음으로 또 한번 낙심하더라도, 나와 닮은 인물과 내 마음을 닮은 구절에 생각지 못한 ‘치유’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을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걸.


어떤 간절함이 느껴지는 등장인물의 떨림과 주저, 깊게 내쉰 숨으로 가득 찬 방 안에 공기만으로도, 나는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어딘가 관심이 필요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아닌 척 해보이는 이별 뒤에 한 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사람을 떠올리는 그리움에서 살짝 ‘찌질미’를 느끼게 하는 모습들이 꽤 마음이 갔다. 그런데 만일 그 이별의 사유가 서로의 식은 사랑이 아닌 사회의 억압과 사람들의 시선에 의한 포기라면 좀 슬플 것 같다.

은은하게 속 터지게 하는 묘한 신경쓰임 대비 정작 본인은 나른해 보이기도 했던, 아니 그런 척 해 보였던 등장인물의 모습에는 ‘피식’ 웃기도 했다. 꼭 쓸쓸하고 헛헛함만이 아닌, 친근하면서도 익숙한 사람들의 관계 속 그 안에서 아직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을 저자의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이 책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을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 한정된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새 삶을 살기 위해 과감히 퇴사를 하고 떠나버리기도 하고, 후회도 하고 헤매기도 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담은 걸로 보였으니까.


기억에 남는 문장들과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이미지들이 많지만, 특히 <고요한 열정>편에서 누나 ‘연수’가 많이 떠오른다.
상처를 입은 남동생 ‘연후’가 집을 떠난 뒤, 본인도 외로움과 통증이 있음에도 누나 ‘연수’는 동생을 찾으러 다닌다. 그가 느꼈을 감정들을 헤아려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던 존중의 마음이 참 뭉클했고 고마웠다.
외면하지 않아서 말이다.


생경한 계절의 풍경에서, 급한거 없이 느긋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지나가다 눈에 띈 상점에 진열된 여러가지 물건들에서 과거를 떠올리 듯, 사람의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조금은 쓸쓸했던, 그리고 공허함과 과거의 그 날들이 남긴 후회가 느껴지기도 했던 <우리는 같은 곳에서>였다.


(P. 154) 어째서 나 같은 삶에는 단 하나의 예시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들은 대체 어떠한 생을 견디다가 이렇다 할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것일까. 나는 그들처럼 소거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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