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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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정을 전달받기도 전에 그 감정을 느끼기를 요구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글을 만날 때가 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보통의 날, 유난히 감정이 잘 다루어지지 않는 날에 아직 정리되지도 못한 감정들이 톡 하고 튀어나온 글이라면 오히려 더 좋다. 아는 척하고 싶다는 유혹을 참을만큼. 이상하게 그 마음에는 내가 끼어들어도 될 것만 같다. 그런데 소설에서만큼은 조금 다르다. 뭘 느껴야 하는지 알아채는 식으로 읽게 만드는,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 감정에 먼저 도달해버린 듯한 문장을 만나면 김이 좀 샌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읽은 아시아 제바르의 글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냥 인물이 그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견디는지를 따라가게 할 뿐이었다. 무언가를 더 느끼라고 재촉하지 않으니 나도 내 속도대로,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글로 접한, 식민 지배를 겪은 인물들은 대체로 지배자의 언어로 자기 감정을 말해야 할 때, 분명 자기 감정인데 자기 말이 아닌 듯한 순간,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그 순간부터 감정조차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어지는 비참함을 들여다보도록 했다. 그래서 <프랑스어의 실종>이라는 제목에 갸우뚱했다. 알제리 작가가 쓴, 알제리 남자의 이야기인데? 사라진 건 프랑스어가 아니라 아랍어 쪽 아닌가. 모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를 배우고 글을 써야 했던 사람에게, 그 프랑스어마저 사라졌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라도 있었던 걸까.

20년 전 알제리를 떠난 베르칸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일하며 한 여자를 만났고, 서로 사랑했고, 결국 이별을 통보받았다. 글을 쓰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글쓰기에서도 멀어졌고 자신의 성장소설을 쓰겠다던 계획도 몇 년 전 접은 상태다. 자신의 기억과는 사뭇 달라진 고국에서 베르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자신의 이야기도 조금씩 꺼내놓는다. 그런데 이 소설의 시점 변화가 참 독특하다. 베르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도 어느 순간 제3자의 시선으로 넘어간다. 알제리에 와서 친해진 어부 라시드와 대화를 나누다가 현재에서 자연스럽게 과거로 흘러가기도 한다.

“난 여섯 살이었네.” 베르칸이 다시 말을 잇는다. “프랑스 학교 2학년이었지. 그날의 카스바 거리에서 나는 우리 국기를 보았다네, 처음으로 말이야!” (p. 43)

“우리는 누구나 학창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지…. 그런데 그 시절에 대한 내 추억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날 밤의 꿈에서 벗어난다) 프랑스 선생에게 짝 소리가 날 정도로 뺨을 맞은 거라네!” (p. 44)

아버지는 독립전쟁이 발발하고 알제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 하나뿐인 형도, 베르칸 자신도. 그런 기억을 품고 있는 베르칸은, 이제 알제리 사람들의 눈에 그저 돈 많은 외국인으로 보일 뿐이다. 어느 정도 갖춰진 생활을 했던 프랑스에서의 삶을 접고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무언가를 써야만 했던 것 같다. 그는 글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방문객으로 찾아온 한 아랍 여성을 알게 된다. 모든 걸 다 잊기 위해 떠났었지만 다시 돌아왔다는 나지아. 첫 만남이라는 낯선 분위기 속에서도 서로의 시간을 빼앗으려 할 생각은 없지만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또 듣고 싶어 하는 그 드러내지 않는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서 너무나 조심스럽게 새어 나왔다. 시간은 소리도 없이 흐르는 듯했고, 나지아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 안에는 알제리의 복잡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독립운동에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민족해방전선에 의해 암살된 할아버지와 그 뒤에 남겨진 가족들의 삶까지. 베르칸과 나지아가 떠올린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독립전쟁과 죽음, 그리고 알제리 국기를 그렸다는 이유로 맞았던 한쪽 뺨이었다.

동류를 향한 끌림이라고 해야 할지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베르칸이 나지아에게 마음을 여는 데에는 언어가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헤어진 프랑스인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프랑스어로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했다면, 나지아에게는 굳이 애써 번역하지 않아도 됐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언어로 옮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나지아가 들려주는, 이제는 잊어버려 정확한 뜻조차 알 수 없는 사투리와 희귀한 단어들. 가깝고도 어딘가 멀게 느껴지는 그 말들을 듣는 일이 베르칸에게는 묘한 편안함이었을 것이다. 말을 고르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 앞에 있다는 것. 말과 몸과 생각 사이에 번역이 필요 없는 순간. 애쓰지 않아도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 베르칸이 나지아에게서 느낀 편안함이란 어떤 경계도 의식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그 순간에 빠져도 된다는 것이 아니었을지.

알제리 독립전쟁을 거쳐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맞은 1960년대와 1990년대 초의 알제리를 오가며, 베르칸의 삶과 기억을 따라간다. 베르칸이 자신의 성장소설 <청소년>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열다섯 살 소년으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1960년 12월 11일 알제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중시위를 묘사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잔인한 장면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어린 베르칸이 그 나이에 느꼈을 민족주의적 열망과 흥분을 고스란히 따라가게 한다. 맨몸으로 뛰쳐나온, 아직 사춘기도 벗어나지 못한 아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것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에 눈이 젖어 붉어지고,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무질서 속에서 손도끼 하나를 얻어 들고, 자신보다 더 앞에 서 있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베르칸. 그리고 그들은 암담한 열광 속에서 외친다.

“알제리인의 알제리!” (p. 179)

베르칸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식자공으로 일하다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던 이야기를 나지아에게 들려주는 장면은, 프랑스어가 그에게 무엇이었는지가 처음으로 보였다. 당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좀처럼 꺼내지 않았는데, 어느 날 한 신참이 토론을 시작하며 프랑스어로 ‘라익(laïc)’이라는 단어를 내뱉는다. ‘세속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세속적, 합의, 대표자 회의, 내각처럼 독립 이후의 사회를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들이 그들에게는 낯설었다. 가장 어린 축에 속했던 베르칸은 그때 독립만을 꿈꾸고 있던 자신들에게 정작 독립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고 논의할 언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베르칸에게 프랑스어는 단순히 모국어의 자리를 대신한 고통의 언어라기보다는, 자신을 지배한 세계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그 세계를 넘어가기 위해 익혀야 했던 언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프랑스어를 붙들었던 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쏟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일찍 알았던 것처럼, 어린 시절 고문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상대에 대해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견디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었을 만큼 베르칸이라는 인물은, 자신이 겪은 일을 감정적으로 폭발시키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언어로 다시 정리한다. 거기에서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밀어내지 않고 말없는 소통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던 베르칸과 나지아의 첫 만남처럼 말이다.

나의 카스바, 나는 그곳으로 돌아간다. 나는 다시 살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선 내 가슴이 뛴다. 나는 그곳에서 잠들고 싶고, 언제나 안에서 회상하고 싶고, 언제나 바깥에서 달리고 싶다. 그래,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그렇듯이 그날도 비록 내가 다른 곳에 있을지라도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이다…. (p.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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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8-27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제목도 리뷰도 뭐랄까. 곰돌이 님만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아 너무 좋네요.

곰돌이 2026-08-27 21:25   좋아요 0 | URL
저만의 분위기라고 하시니, 그 분위기가 뭘까 살짝 궁금도 하지만... 제가 저를 알잖아요. 분위기는 개코나 암것도 없습니다. (감히 다락방님의 생각에 토를 답니다.ㅋㅋㅋ) 그래도 좋다고 건네주셔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에게 와닿았던 그 순간의 감정이 다락방님께도 닿은 걸까 싶어 기분은 매우 좋다는!

얄리얄리 2026-08-2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다 읽고 잔향이 남아서 다시 한 번 읽어 보는데, 두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독립전쟁이 발발하고 알제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
˝독립운동에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민족해방전선에 의해 암살된 할아버지˝

베르칸의 아버지를 투옥한 쪽은 프랑스였을 것 같네요.
만약 그렇다면 프랑스(베르칸)와 알제리(나지아)에 의해 고통당한 두 사람이 각각 자신에게 고통을 준 언어를 익히고 말하면서 살아가고 살아왔다는 것이네요.
그래서 제게는 ‘견딘다‘는 말이 주는 여운이 작지 않게 느껴졌나 봅니다.

곰돌이 2026-08-27 21:28   좋아요 0 | URL
베르칸이라는 인물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였어요. 다른 아랍 가정과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작가의 성장 환경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고요.

독립을 둘러싼 여러 갈등과 당시 알제리의 상황이 소설에 아주 잘 담겨 있습니다. 오히려 작가는 그 안에서 역지사지를 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어쨌든 베르칸에게 프랑스어는 쉽게 놓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모국어를 쓸 수 없어 배워야 했고, 또 프랑스어를 쓰는 지식인이었기에 떠나야 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러면서도 프랑스어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글로 옮길 수 있는 언어이기도 했고요. 결국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그 사이에서 견디는 사람에 가까워 보였기에, 저는 이 소설을 ‘견디는 삶’에 마음을 두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읽는 동안 깊이 빠져 읽었는데, 얄리얄리님 덕분에 이 책에 대한 기억과 여운이 배가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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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언어와 살아가기 위해 배운 언어 사이를 부유하는 베르칸. 그는 견딘다. 그 견딤을 자신이 붙든 언어로 옮겨 적는다.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인물의 그 후의 삶이 궁금한 소설을 오랜만에 만났다. 견디기만 하는 삶 말고, 알제의 파도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글을 써내려가는 그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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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책이 도착해 박스를 열어 볼 때마다 어찌나 후끈한 열기를 가득 품고 있던지, 거의 구해내듯 책을 꺼낸 것 같다. 한동안 책 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책장에 새 책들을 옮겨 보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어느새 아침으로는 습하지만 조금은 선선해졌고, 또 이때쯤이면 눈길이 가는 이야기가 생긴다.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라는 책을 만났다.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에 대한 경고를 담은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환경 서사시라는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201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적힌 띠지를 떼어내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는데, 예상한 것보다 더 좋았다. 단순히 ‘좋다’라고 말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차지만, 이 두툼한 책을 읽는 동안 내게 무언가 닿는 순간이 많을 것 같다는 섣부른 확신 같은 게 들었다.

자연을 의식하며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나무는 늘 나무였고, 산은 늘 산이었다. 계절은 알아서 바뀌었고, 나는 그 곁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늘 거기에 있었다. 당연했다. 아니, 당연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결락이라는 말이 내 삶에 들어왔고, 아무것에도 위안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지려 마음을 쓰지 않았으니 애쓸 일도 없고, 애태우지도 않았다. 내가 너무 구름 위를 걷는 듯 살아왔던 걸까. 상실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경계 너머의 것이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는 기억에서도 지워졌지만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는 것만은 분명한 그날, 걷다가 저 멀리 보이는 울창한 산을 바라봤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거짓말이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이는 그 산은, 보기만 해도 속이 답답했다.

그렇게 걸었고 또 걸었다.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그제야 안다.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아 잊고 있었던 것들을. 냄새도 맡아보고, 소리도 들어보고, 방향도 바꿔보라고. 자연은 내다볼 줄 안다. 그러니 나는 자연에 빚을 졌다. 자연만이 아니다. 책에도 빚을 졌다. 지금은 꼭 이유가 있어야 책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면 읽고 싶어지고, 읽고 싶으면 또 펼친다. 그 사이 어딘가에 의리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이제 아주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지나간 순간의 숨을 다시 쉬는 날이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오래 붙들고 있진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된 나에게, 그때의 나와 내가 해보았던 여러 시도를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이.


리처드 파워스 <오버스토리>

오버스토리. 숲의 지붕을 이루는 나무들의 층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뿌리, 몸통, 수관, 종자’로 이어지는 목차를 보니, 나무 한 그루를 들여다보듯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소설인 걸까. 전후 사정도 알지 못하면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있었다”라는 이 짧은 첫머리를 읽고, 어디라고 정확히 짚을 수 없는 곳에서부터 찌르르해지면서 나의 묵힌 감정들이 올라왔다. 자연에 기대어 본 적이 있기에 조금 더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왔는가 보다. 그때의 나는 분명 이 책을 읽을 생각조차 안 했을 테지만, 지금은 읽고 있다.

어떤 여자가 바닥에 앉아 소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다. 나무껍질이 여자의 등을 인생처럼 딱딱하게 누른다. 솔잎은 허공에 향기를 뿌리고 나무 한가운데에서 전해지는 힘이 나직한 노래를 부른다. 여자의 귀가 가장 낮은 주파수에 집중한다. 나무는 말이 존재하기 전의 말로 이야기를 한다. (p. 13)

뒤이어 “신호가 여자의 주위로 씨앗처럼 떨어진다”는 문장에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고, 당장에 눈에 띄는 것은 없었지만 천천히 비집고 나오고 있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며, 아주 조금은 가상히 여겨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책 속의 죽음을 읽으며 누군가를 잃었던 때를 떠올렸다. 글쎄, 그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만한 말은 잘 모르겠다. 그저 어쩌지 못하겠는 마음을 책을 통해 다시 마주하니 조금 힘들었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라는 책 때문이다.


예니 에르펜베크 <모든 저녁이 저물 때>

갈리시아의 한 작은 도시, 유대교 여성과 기독교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여덟 달 된 아기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 속하는 일 앞에서 아기 엄마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 장례를 마치고 아직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곤 했던 그녀의 발치에는, 이제 한 친구가 가져다 놓은 음식 그릇이 놓여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할머니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다. 다시 딸의 엄마일 뿐이다. 이야기는 어머니가 오래전 겪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딸이 이제 조만간 깨닫게 될 사실을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p. 24)

그런데 작가가 이야기를 참 묘하게 끌고 간다. 한 장면을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아주 작은 틈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른 결로 옮겨간다.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꽤 마음을 잡아끌고 매력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마음이 슬픈데, 아름답다. 너무 알겠는데, 어디서 읽어본 적은 없다. 이러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 <레 망다랭>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돌아가다>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들과 동성애자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내가 파리에 정착하게 만든 두 가지 큰 이유였던 것 같다”는 부분을 읽고 밑줄까지 그어 가며 궁금해했다. 보부아르를. 누군가의 글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과, 그 글이 실제로 삶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 아닌가. 출신 계급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성적 지향은 평생 감춰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았을 그가 보부아르를 읽고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자신의 삶을 전부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의 그 표정이, 짧은 문장 안에서도 다 들여다보이는 것만 같았다.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게 된 자의 해방감이. 나도 보부아르를 펼쳤다. 여러 책 중에서도 <레 망다랭>을.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앙리는 ‘희망’이라는 뜻의 신문사 <레스푸아>를 운영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앙리와 그의 동거녀이자 전직 가수인 폴이 사는 원룸에 작가 뒤브뢰유와 그의 아내 안, 딸 나딘을 비롯한 사람들이 모인다. 전쟁이 끝나가는 시기,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술과 음식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뒤브뢰유는 앙리에게 자신의 정치적 활동에 함께할 것을 권한다. 신문사를 계속 운영하는 한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앙리도 잘 알지만,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늘 똑같은 얼굴들, 똑같은 환경, 똑같은 대화, 똑같은 문제들, 변하면 변할수록 더욱 비슷해지다니. 결국 살아 있는 채로 죽어가는가 싶은 것이다. (p. 22)

“나는 생각하는 것을 반드시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해. 조직에 매이지 않은 채 말이야.” (p. 36)

서로 다른 생각으로 충돌하고, 사랑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초반부만 읽어서 다 짐작할 순 없지만, 정치와 이념을 둘러싼 이야기라 읽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릴 줄 알았는데, 결국은 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생각보다 흥미롭게 읽히고 가독성도 괜찮다.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처음 만나는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는 작가라는데, 몇 쪽을 읽는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담담한데, 어딘가 착잡한 기운이 감돈다는 것.

힘들었던 기숙사 생활을 끝내고 장교가 된 조반니 드로고는 첫 부임지인 바스티아니 요새로 떠난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나 활기가 느껴진다기보다는 미래에 큰 기대도 없어 보이고, 심지어 헛헛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길을 나선 그는 어디에 있는지도, 얼마나 먼지도 모르는 요새를 찾아 계속 산을 오른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마부에게 요새의 위치를 묻자, 뜻밖의 답이 돌아온다.

“이 부근에는 요새가 없어요.”

불안감이 밀려오지만, 그가 잘못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렇게 한참 더 올라 마침내 거대한 군사시설과 마주한다. 황량하고 냉랭한 건축물. 이번에는 정말 요새인가 싶었는데, 또 아니다. 걸인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곳은 이미 십 년도 넘게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이라고 한다. 거센 바람까지 불어닥친다. 잠잠해지고 난 뒤 다시 길을 나서고, 마침내 사람이 눈에 보인다. 오르티츠라는 이름의 대위였다. 인사를 나누던 중, 대위가 드로고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굽니까?”

드로고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무 뜻 없이 던진 평범한 질문이었을 텐데, 왜 이 말이 드로고에게는 대답하기 두려운 질문이었을까.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라도 온갖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와 쉽게 입을 떼기 어려웠을 것 같다. 드로고에게도 그랬던 건 아닐까. 이어 대위에게서 또 한 번 예상 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드로고의 목적지인 바스티아니 요새는 더 이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곳이라는 것.

저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어 보이는 저 건물과 흉벽, 포대와 탄약고 뒤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아무도 지나쳐간 적 없다는 돌투성이 사막의 북쪽 왕국은 어떠할까? 어렴풋이 기억하건대, 지도에서 국경선 너머 광활한 지역에는 몇 안 되는 지명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새의 높이 정도라면 몇몇 마을이나 초원, 하다못해 집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아니면 오직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의 황량함뿐일까? (...) 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요새 입구에 발조차 내딛지 않고 다시 그가 떠나온 평야로, 그의 도시로, 익숙한 옛 생활로 내려갈 수만 있다면! (p. 21)


버나딘 에바리스토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흑인 여성 최초로 부커상을 받은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작품이다. 열아홉 살 딸을 둔 오십 대 여성, 자칭 전투력 넘치는 중년의 베테랑 ‘앰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앰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구 도미니크에게로 시선이 옮겨가고, 또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가족과 친구, 과거의 시간까지 닿는다. 한 사람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둘러싼 다른 삶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열두 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삶의 모양들을 하나씩 만나게 될 것 같다.

한 사람을 내가 본 모습 하나, 그 단면으로만 기억하는 건 어쩐지 아쉽다. 지나고 나서야 후회로 남는 순간들이 있어서일거다. 누구나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시간이 있고,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니까. 그런데 참 웃긴 것이, 소설 속 인물을 바라볼 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깊이 들여다보려고 하면서, 현실에서는 영 그러질 못한다.


아무튼, 오늘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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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8-23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버스토리>가 맘에 꽂히네요.
자, 이제 색깔별로 꽂아볼 시간입니다. ㅎㅎ

곰돌이 2026-08-23 12:00   좋아요 0 | URL
이대로 색깔 찾아 쏙쏙 채우기만 하면 될 것 같죠? ㅎㅎ 고스란히 들어가 줄 만큼만 책장이 넉넉하면 좋을 텐데요... 흑흑

자목련 2026-08-23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버스토리>아름다운 문장과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기억하는 소설이에요.
나란히 발맞추는 책들, 경쾌하고 즐거워 보입니다!

곰돌이 2026-08-23 12:01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자목련님이 남겨주신 글과 산뜻한 책 사진, 이미 다 보았지요. ㅎㅎ 처서매직은 없지만, 가을로 점점 기울어져가고 있어서인지 어딘가 차분하면서도 잔잔한 이야기에 손길이 가요!

Falstaff 2026-08-23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돌이님 글도 참 잘 쓰셔요. 세상에 이런 일이! 전부 재미나게 읽은 책이라 내 마음까지 므흣하네요.

곰돌이 2026-08-23 12:02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의 첫 칭찬에는 (혼자 가슴에 새겨둠 ㅋㅋ) 앞으로 더 열심히 읽어보라는 응원의 뜻이라 생각하며 흥분을 간신히 가라앉혔는데요. 이번엔 못 참습니다!!! 폴스타프님의 글을 읽고, 고른 책으로 책장을 채우는 경우가 많으니 (이미 아시죠? ㅋㅋ)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이제 머쓱할 지경이네요.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계속.

다락방 2026-08-23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돌이님 글도 참 잘 쓰셔요.2 저보다 먼저 폴스타프 님이 말씀해주셨네요. 저도 딱 그 댓글 달려고 했거든요. 곰돌이 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고, 이게 알라딘이다 싶어요. 크- 계속 써주세요!

다락방 2026-08-23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버스토리 저도 사둔지 한참 된 책입니다! (안읽었지만..)

곰돌이 2026-08-23 18:0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 첫줄에서 폴스타프님 목소리(제가 상상한 그의 음성이...ㅋㅋ)가 들리네요. 큰 의미고 뭐고 없이 재미만으로 읽을 때도 많지만, 속에 들어찬 무언가를 좀 덜어내고 싶을 때, 내 이야기를 써 보고 감정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는 그 시간만으로도 얻는 게 넘 많아서 겁없이 이어가고 있네요. 제가 잘한 일 중 하나이기도 해요. 큭. 그런데 이렇게 곰 한 마리의 마음을 후끈하게 해주시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이 순간을 잔뜩 누리리! ㅎㅎ <오버스토리>는 제가 먼저 읽어볼게요. 다락방님은 잃시찾도 읽으셔야 하고, 넘 바빠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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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과 <더러운 아이>가 가장 와닿았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돕고 싶으면서도 내 일이 되는 건 싫은 마음.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끝내 그러지 못하는 마음. 그런 솔직함이 현실의 끔찍함과 만났기에 화자의 후회와 분노, 연대까지 나란히 따라갈 수 있었다. 가까운 마음으로 읽는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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죔레는 거기에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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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과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도입부에 확 빨려 들어가 100쪽을 쭈욱 읽어버리게 만든 <사탄탱고>의 매력에 빠졌던 작년의 그 짜릿함을 기억한다. 황폐한 마을, 곰팡내 가득한 방,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던 그 음울함이 아직도 잔재처럼 머릿속에 콱 박혀 있는데, <죔레는 거기에>를 펼치자 웬걸, 점심으로 먹을 감자국수를 만드는 한 노인이 나온다. 예상 밖이다. 뭔가 소박하고 인간미도 느껴지고, 첫인상부터 내가 알던 작가의 느낌과는 꽤 다르다. 그런데 또 가만히 읽고 있으면 이 편안함 속에 놓치기 힘든 미세한 긴장감이 있다. 대체 이 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역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도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몰입해서 읽다 보니 결국 이러나저러나 역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이 맞긴 하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과도 거리가 멀어 사람도 거의 살지 않는 산 위의 집에서 살아가는 올해 아흔두 살의 은퇴한 전기 기술자 요제프(요지 아저씨)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전기 기술자와 유랑 가수, 전직 교사, 퇴역 군인 등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더 이상한 건 모두가 그를 “폐하”라고 부른다. 요제프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온 왕위 계승자라는 것이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집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를 헝가리 국가의 기틀을 세운 중세 마자르계 왕조, 아르파드 왕가의 마지막 후손으로 여기며 왕으로 추대해 왕정복고를 이루려고 한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고, 정치적 계산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가 더없이 좋은 상징이기도 하다. 영 느낌이 싸하다. 어쨌든 숱한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요제프는 왕좌에 오르는 일에 별다른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정작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랑했던 사람들, 가족, 그리고 한 인간으로 살아온 긴 세월에 관한 기억들이다. 무엇을 잃었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무엇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지.

처음에는 요제프가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은둔자 같은 노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국회와 대주교, 유럽연합 관계자, 독일 대통령에게까지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논리를 끊임없이 세상에 던졌다. 자신을 왕위에 올리든지, 아니면 그에 걸맞은 존엄을 인정해 연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답은 오지 않는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요제프 역시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헝가리. 요제프는 독일 병사들의 무덤 6천 기를 찾아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 훈장에는 당시 헝가리가 겪어야 했던 복잡한 역사도 함께 담겨 있다. 그런데 왕위 계승자이자 전쟁 영웅이었던 노인의 현실은 영 빠듯하다. 가진 돈의 거의 전부를 전기료로 쓰면서도 그는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며 전기난로를 사용한다. 전기료가 그렇게 부담스러우면서도 왜 굳이 전기난로를 고집하는 걸까. 그건 그렇고 잔뜩 모여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곁들인 와인 탓인지, 세월이 무거워진 탓인지 이내 잠에 들어버린 요지 아저씨. 거대한 역사와 한 사람의 초라한 일상이 한 몸 안에서 겹쳐 보이는 모습에 착잡함을 느끼며 눈길을 거두기 어려운데, 역사학자 버디지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요제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한 말을 꺼낸다.

“우리에게는 아르파드 왕가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이 좋은 서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왕이 필요하고, 당신은 바로 그 자리에 딱 맞습니다.” (p. 68)

여기서 ‘좋은 서사’라는 말이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요지 아저씨에게 지금 왕좌에 오르는 일보다 더, 더,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된 가족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다. 해 질 녘 테라스에 앉아 늦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평온한 일상. 그 아름다운 풍경 너머로, 늘 목에 큰 가시가 박힌 듯한 심정으로 살아온 건 아닐까. 눈앞의 풍경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리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았을 것만 같다.

더 이상의 전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여러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저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움직이듯 세상과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한 요지 아저씨의 시선과 말을 따라가면 될 뿐이다. 사뭇 진지함이 오가는 상황에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읽다가 난데없이 입에서 어이없는 실소가 터지게 만들기도 하는 이야기에 웃어? 울어? 말어? 싶은 순간들. 최대한 웃음 포인트를 살리고자 했다는 번역가의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고, 즐기기만 하면 됐다. 에구, 이렇게만 말하고 끝내는 것이 아쉬워, 기억에 남는 이야기 조금만 더 담고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요지 아저씨가 오늘날의 삶에서 사라진 도덕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직해지시오, 용감해지시오, 인내하시오, 그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 이러한 고귀한 원칙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도우시오, 이것이 단순한 이성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바이며, 이것만 따르면 충분하고, 다른 어떤 지침도 필요하지 않소.” (p. 161)

요지 아저씨가 말하는 삶의 원칙은 거창한 교리나 신념이 아니라, 의외로 단순했다. 정직할 것, 용감할 것, 인내할 것. 그런데 이게 참 별것 아닌 말 같으면서도 쉽지가 않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기, 두려워도 해야 할 말을 하기, 금방 달라지는 게 없어도 조금 더 견디기. 다 아는 이야기인데 막상 내 일이 되면 또 달라진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고 있는데, 매번 그쪽을 선택하며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저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는 쪽으로 기울여 보는 거다, 오늘도.

사람이 평생을 살아도 그 인생 안에 도저히 들어맞지 않는 일이 항상 하나쯤은 있어요, (p. 274)


이 책의 번역가 김보국 님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죔레는 거기에>의 경우 외국어로는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한다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선뜻 번역 의뢰를 받고는 덥석 번역을 맡겠다고는 하였으나, 헝가리 내에서 작품 관련 논의를 살펴보던 중, <사탄 탱고> 이후 점점 더 난해해지는 크러스너호르커이 작품의 정점이라는 어느 독자의 댓글을 읽고, ‘큰 나무에 도끼가 제대로 물렸다’라는 헝가리 속담이 떠올랐다.”

번역가에게는 처음으로 이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는 호사였다면, 독자인 나에게는 그 번역을 통해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한 여름날의 즐거움이었다. 헝가리를 사랑하는 번역가가 헝가리를 사랑하는 요지 아저씨의 마음을 헤아리고, 헝가리를 사랑하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글을 우리에게 전해준 것 같은 느낌. 헝가리를 향한 마음이 한 사람에서 또 한 사람을 거쳐 내게까지 건너온 것 같다. 작가의 또 다른 매력, 아름답기까지 한 문장을 만날 수 있었고, 요지 아저씨와 그의 심장, 죔레까지 한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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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8-12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책이 2권 있는데 아직 못 읽고 있어요. 재미는 없는듯한데...별5개라니!! 안보면 안될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곰돌이 2026-08-12 13:32   좋아요 0 | URL
읽는 데 문제는 전혀 없는데, 개인적으로 <죔레는 거기에>는 라슬로 작품을 좀 읽고 마지막쯤 에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다보면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이나 <헤르쉬트 07769>가 떠오르는 장면들이 직간접적으로 (조금) 나오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이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노인이라 그런지, 크러스너호르커이가 그동안 써온 세계와 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쭉 떠오르는 그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아, 뭔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일렁이는 감정을 조금 더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소장하고 계신 책 중에 당연히 <사탄탱고>가 있으실 테니, 혹시라도 그 책이 별로라면 이 책까지 읽게 되진 않으시겠지만 ㅋㅋㅋ 괜찮으셨다면 이 책은 무조건 추천이요.

이상 돌팔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