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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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아갈 수 없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행복과 불행이란 것의 극명한 대비를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이 불행한 현실이 앞으로도 자신을 옥죄고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것만큼은 안다.
세상과 사람이 그걸 분명하게 알려준다.

나오키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떻게 배를 채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구린 냄새를 풍기는 술집 전단지 한 장도 그냥 넘겨볼 수 없다. 그런 나오키를 담임 선생님인 우메무라가 한 식당에 데려가 저녁을 사주며 그 식당에서 일하기를 권한다.

(P. 61) “점장하고 아는 사이야.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만 아르바이트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네가 괜찮다고 해야겠지만.”

생계와 연관된 돈벌이라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을 나오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며, 의사를 물어봐 주는 선생님의 세심함이 감사하다. 스치듯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했던 ‘존중’의 마음을 나오키는 처음 느꼈봤을 것 같아서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오키에게 남은 식구는 형 츠요시 한 명 뿐이다. 형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죽도록 일만 하다가 육체적, 정신적 피로로 돌아가시게 된 어머니 대신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대학을 가라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이 고스란히 이어받아 동생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모든 게 다 닮아있었다.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이일저일 해 온 게 화근이었던 걸까.
몸이 망가져 츠요시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
가난하다고 해서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삿짐센터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온화한 얼굴로 넉넉하게 사는 할머니를 떠올린다.
조금 훔친다고 해서 타격을 입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 같은 사람을 용서해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나오키는 형을 기다리며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경찰이다.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다음 날 텔레비전에서 낯선 표정을 한 형의 모습 밑으로 ‘홀로 사는 부유층 여성 살해’라는 자막이 보인다.

불행하게도 형의 죄는 연좌제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만으로도 형벌과 다를 바 없는 나오키의 인생은 누군가의 입술에서 자신의 이름이 다정하게 불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고, 알 수 없었던 삶의 방향은 불행을 가리켰다.

‘형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다 끔찍하기만 하구나’라는 생각으로 서로 만나는 것이 되려 고통이었을 나오키는 형 면회 가기가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나 하나 먹여 살리겠다고 자신의 몸을 혹사시킨 형을 원망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게 자신과 형 생각을 하는동안 정작 피해자 생각은 못했다.
그저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다.

나오키에게 행복은, 차츰 열리다가 닫히는 문처럼 말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 같아도 살다 보면 실낱같은 빛줄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남들과 똑같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그 순간만큼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고 보통의 사람으로 사는 기분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 당연한 일을 즐거운 일로 여긴다는 게 서글플지도 모르지만,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살아가는 자체만으로 나오키는 더 바랄게 없을 거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서 응원을 받을지도 모른다.
알다가도 모를 일처럼 악인으로 여긴 이가 호인이 되는 상황에 설지도 모른다. 물론 그 또한 누군가에게만 주어지는 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을 나오키에게서 앗아갈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P. 220) 나오키는 자신이 묘한 희망을 품게 되는 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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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의 연습이 끝난 뒤 멤버들과 싸구려 술집에 가서 한잔할 때가 나오키에게는 가장 편안했다. 여자 이야기,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대한 불평, 패션 이야기. 이 세상 다른 젊은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나오키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끼어들 수 있었다. 츠요시 사건 뒤로 처음 맛보는 청춘의 시간이었다. 멤버들은 나오키가 오랜 시간 접하지 못했던 세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실어 나르는 바람이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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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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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오래도록 많은 사람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을 느꼈고, 불분명한 길 위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는 낯설지 않은 외로움까지 모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신념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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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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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현실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하는 일을 멈추었다.
그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만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나에겐 그게 가장 최선이었다.
다른 세계를 생각해 볼 여력 조차가 없기도 했고.

그런 내가 박솔뫼 작가님 책을 읽으면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상상도 마음껏 해 보고,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나대로 등장인물과 내 식대로 이야기를 만들어가 보는 재미를 느껴보곤 한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은 후에도 애정이 무척 많이 쌓인다.

희한하다.
힘있게 화이팅 넘치는 목소리로 기운 북돋아 주는 이 하나 등장하지 않는데 왠지 기운이 난다. 심지어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그 상상 속 일들을 들려주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이를 발견하면 하나도 헤매지 않고, 하나도 외롭지 않고, 하나도 희미하지 않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기억하려고 애쓴다고 뭐라 하는 이 없고, 그저 ‘우리 다 똑같아’라며 곁을 내 주기에 내 마음은 그 무뚝뚝한 다정함을 향한다.

(P. 13) 1월 1일의 새벽 아직 덜 마른 머리를 빳빳한 침대 위에 누이며 모든 멀고 생생한 이들이 잠깐 온양에서 잡힐듯이 가까워오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다소 엉뚱한 상상이라고 해야 될까?

후지산에 있는 주카이숲에 가기로 한 친구들이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안 가기로 했다는데, ‘나’는 친구들이 숲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과는 ‘다른’상황에서 사는 모습을, 그것도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말이다.
이 책의 표제작 「우리의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된다.

친구들을 향한 애정 섞인 평범한 상상일 뿐인데,
왜 인지 아련함을 느꼈다.
계속 ‘나’를 따라가보면 알 수 있으려나.


‘나’는 새해를 맞이 한 후지노에서 ‘사쿠라이 다이조’라는 텐트 연극을 하는 연출가이자 연극인을 만난다.
극장이 아니라 텐트를 치고 공연을 하고, 공연이 끝나면 텐트를 걷고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 극장을 다니며 공연을 보는 시대에 텐트공연을 하는 이유가 뭘까.

1970년대 우치게바(내부 투쟁)로 친구들을 잃은 그가 학생운동의 여파로 버려진 곳 탈락된 곳을 향해 텐트를 치며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떠나기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나아가 광주로 가 한국 역사까지 체험했다고 한다.

사회 격변기에 한 장의 천 조각으로 외부와 내부를 갈라놓고 텐트 극을 열었던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1980년 그날의 광주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지만 분명한 신념을 지닌 사쿠라이 다이조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모습에 여러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P. 17) 뭔가를 강한 신념을 가지고 오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매번 끊임없이 이걸 왜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그때 직접 듣게 되었다.

저자의 소설에는 잊히고 있는 잊지 말아야 할 사람, 사건, 장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그 ‘반복’의 이유가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서 더 재미있게 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상상한 ‘나’의 모습과 텐트를 치고 공연이 끝나면 원래 없었다는 듯이 텐트를 철거하고 또다시 텐트를 치는 사쿠라이 다이조의 공연까지 어딘가 맞닿아 보였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없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오래도록 많은 사람과 기억해내기 위해 애쓰는 마음, 지치지만 지치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는 낯설지 않은 외로움까지 모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P. 16) “매번 할 수 있을까? 이걸 왜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한다. 안 해도 나에게 아무 지장이 없는데 왜 하는 것일까. 매번 왜 하는지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생각하면 괴롭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항쟁하다가 희생되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함으로써, ‘기억하는 마음’이 연결된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련함을 느꼈나 보다.

‘나’와 사쿠라이 다이조와의 만남은 의미가 컸을 것 같다.
마음의 어지러움이 있어 고민의 길에 서 있을 때, 그런 나를 다시 움직이도록 이끌어주는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힘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 ‘드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문장을 읽었을 땐, 모든 게 불투명할지라도 그 안에 ‘나’의 강한 신념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우리의 사람들」이었다.

(P. 31) 크고 울창한 나무들 너무나 선명한 푸른색들 모두는 정해진 길을 따라 걷지만 저 너머에는 누구도 찾기 힘든 곳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막연히 알 수 있었다.


내겐 모든 말이 자연스러움으로 여겨졌다.
“나 이제부터 기억할 거야. 생각할 거야”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기억하고 생각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건널목의 말」의 ‘나’가 호텔에서 정리된 침대에 누웠을 때 무언가를 떠올리듯이, 우리도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중 그 사이사이 ‘작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후지산에도 가고 광주극장도 가고 부산호텔도 가니까 말이다.

생각이 많은 내게 ‘나’의 말이 적당한 안정감을 줬다.

(P. 52) 따라붙는 말에 대한 불안들도 일단은 간단하게나마 나는 이런 것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어. 라고 쓰고 그래도 왜인지 떨치지 못한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말을 땅에 묻는 일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쓴다. (중략) 말을 땅에 묻고 그 말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낙엽이 썩어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집니다.

지금 현재 나에게 있어 ‘사라지는 말’이 주는 의미는 긍정이다.
사람의 부재가 준 고통이 다른 어느 것보다 크지 않아서인지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말을 머릿속에 채워 이고지고 살기에는 내 머리가 너무 무겁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불안의 말을 땅에 묻고,
내가 좋아하는 그 계절이 오길 기다려본다.

알 수 없는 내일을 기다리며, 어딘가에 있을 내가 지금과 아주 다르지는 않은 나일지라도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P. 55) 대부분의 꿈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나는 적어도 나는 내가 있었다면 내가 했다면 좋았을것에 대해 그것은 허황된 꿈과 바람이지만은 않고 사실 했을 법하지만 왜인지 아련한 것들에 관해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월이 오면 나는 일을 하고 걷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갑니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은 꿈을 기록하는 것과 늘 연결되게 됩니다.


「농구하는 사람」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농구경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가 등장한다.
그들끼리 아는 경기 중의 예의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늘 운동장에서만 뛰어서 러너의 예의라는 것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에 읽은 최인훈의 「광장」을 떠올린다. 4.19에 관한 생각이 담긴 작가의 말을 읽고 상쾌함을 느꼈다고 한다.

눈으로 보고 겪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때를 떠올린다는 것이 어쩌면 아득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농구의 대해 아는 게 없는 ‘나’가 커다한 농구공을 만져보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럽지 못한 손으로 그때의 분위기를 더듬거려볼 뿐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생각한다.
그때의 사람들도 지금 우리의 사람들처럼 스치듯 지나간다.

(P. 73) 쉽거나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고받으며 걸었다. (중략) 가끔 뛰고 뛰다보면 농구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고 축구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고 천천히 걷는 사람 맨손 운동을 하는 사람 우리는 모두 잠깐씩 스쳐 지나간다.


「이미 죽은 열두 명의 여자들과」는 끔찍한 현실을 담았다.

다섯명의 여자들을 강간 살해한 김산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이미 죽은 여자들과 그와 범행수법이 비슷한 살인자에게 살해당한 일곱 명의 여자들까지, 총 열두 명의 여자들이 그를 다시 죽인다.

그에게 죽음의 고통을 반복하다가 서서히 옅어지는 자신을 느끼며 사라진 여자를 표현한 문장들에 목이 막혔다.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말문이 막힐 만큼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서도 아니고, 죽은 사람이 현실도 아닌 복수를 백번 천 번 한들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도 아니었다.

너무 원해서다. 너무 원해서 목이 막혔다.

어두운 밤거리를 뚫고 집으로 무사히 들어온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아무 탈 없이 돌아오게 된 것으로 여겨질 만큼 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너무 공감하며 읽었다.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온몸이 굳는 긴장과 극도의 공포감으로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쿵 하고 맥없이 풀려버린 다리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가슴과 함께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벌벌 떨었던 일을 나도 경험했기에 소설로써만 읽히지 않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서로서로 목격자가 되어 보호하는 눈빛을 보내도 이제는 신경이 예민해져 눈빛의 의도도 불분명하게 느끼게 돼 버렸다.
그럼에도 보호의 눈빛과 서로의 팔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주는 그 손길이 필요하다.

정말로 무서웠던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택시 안과 밤거리에 겁을 먹었다는 ‘나’의 말에 나 역시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내 잘못도, 당신 잘못도 아닌데.

(P. 106) 이미 죽은 자들이 말한 것은 나는 그런 것이 전부 남아 있을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풀과 가지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은 것은 나중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이며 다른 길로 걷게 해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이 누구를 살릴 수도 있다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숨을 한 번 고르고 마음도 추슬러 보라는 듯이 가붓하고, 즐기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도 기다리고 있다.
괜히 이곳저곳 다니며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만나고 싶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게 만드는 문장을 만나, 생각지 못한 산뜻한 미소도 지어볼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이 책보다 먼저 장편으로 만나 본 「미래 산책 연습」은 내가 무척 애정 하는 작품이라, 또 만나서 반가웠다.

보통의 일상 그 속에서도 발길이 닿는 대로 천천히 산책하듯이 세상을 들여다보며 눈에 들어오는 사람, 건물, 풍경 속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아픔을 느끼고, 고통을 기억해주는 따뜻함이 참 좋았다.
다 읽고 나니 장편으로 만났던 <미래 산책 연습>에 ‘수미’도 보고 싶고, ‘나’도 보고 싶고, ‘윤미언니’도 보고 싶어진다.


나는 이른 새벽 혹은 늦은 밤, 작은 조명 하나 켜고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책 속의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하는 게 전부인데, 박솔뫼 작가님 책을 읽을 때면, 이 사람들의 대해 당장에라도 움직이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조금 수다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리뷰가 길어진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얼른 마쳐야겠다.

나는 내 삶 사는 거에만 열중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서 내 가족 아닌 누군가를 떠올리고, 또 그들을 위한 다른 세계를 상상해보는 일조차 생각도 못 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나마저도 잠시 이들과 함께하는 동안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고, 기분 좋은 뿌듯함을 느껴봤다.

감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만져질 수 있다는, 그 가능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P. 176)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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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의 일본으로의 밀항에 대해 읽다가 자식 여럿 가족 여럿을 밀항시키기 위해 수십번을 일본과 한국 사이를 오갔던 한 아버지에 관해 읽었다. 글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그의 자식의 밀항 경험이었으나 그의 증언에서 그의 아버지가 모든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세번의 밀항 시도 끝에 성공한 그의 경험을 미루어 밀항을 계획한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자주 일본과 한국 사이를 오갔을지 매번 어떤 고생을 하였을지 잠시 헤아려보았다. 한편 우리가 읽는 그 시대 사람들의 글은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이고 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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