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한 자리 차지하고는 있지만, 내내 읽을 기회를 놓쳐 ‘머무는 중’으로만 있던 세계문학 단편선 몇 권을 뽑아 들었다. 이 덩치들에게 숨통도 틔워줄 겸. 올해 안에 몇 권이라도 완독해 봐야지, 혼자 다짐을 실컷 하다가 이게 또 다짐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지만, 다짐씩이나 필요하다. 몇 편 읽고 덮어도 좋고,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 돌아와도 좋고, 이 책들과 조금 느슨하게 지내볼 생각이다.


랭스턴 휴스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외 40편>

「떳떳한 코라」에는 멜턴이라는 아담한 마을에서 40년을 살아온 코라가 나온다.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 그녀를 사람들은 흑인, 검둥이라고 부른다. 스튜더반 집안의 잡부로 일하며 개처럼 취급받아도 코라는 견딘다. 나가봤자 더 가난한 백인 집에서 학대받을 게 뻔하니까. 망할 아버지는 주정뱅이에다가 딸린 자식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감에 코라는 아이였을 때부터 놀 시간조차 없이 지내왔다. “예, 마님.”을 입에 달고 순종하며 지내는 코라가 백인 노동자 조와 짧은 사랑을 나누고 임신하지만, 그가 떠나고 혼자 낳아 키운 아이마저 백일해에 걸려 품에서 떠나보냈을 때서야 신에게 악다구니를 해 본다. 그래서 주인마님의 딸 제시를 속으로 제 딸처럼 여기며 사랑으로 보살폈는데, 제시마저 그 집안의 위선과 거짓에 둘러싸인 채 죽게 된다. 그동안 참고, 보고, 알고 있었던 것들이 장례식장에서 더는 눌러지지 않는다. 오래도록 꾹꾹 눌러두었던 말들이 결국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아가씨, 내가 잠깐 할 말이 있어요.”

이 단편선에 담긴 이야기들은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면서도 누군가를 줄곧 짓눌리는 사람으로만 두지 않고, 그렇다고 반대편 사람들을 악역으로 세우지도 않으면서도 사람을 좀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경매에 부친 소년」에서는 예술과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가던 백인 부부가 집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이 죽은 뒤, 그녀의 사촌인 흑인 소년을 집에 들이게 된다. 잘해준다. 친절하다. 그런데 그 친절 앞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 한 발 물러서고 싶어진다. 선의라고 하기엔 어딘가 미심쩍고, 악의라고 하기엔 또 너무 멀쩡하다. 그래서인지 이 부부에게는 늘 이상한 이물감이 남는다. 흑인 예술에 관심이 많은 부부는 영감을 얻기라도 한 듯 아이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곡을 쓴다. 이렇게만 말하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노예를 그려보고 싶었다며 그림의 제목마저 ‘경매 부쳐진 소년’이라고 붙이질 않나, 속옷을 벗어달라고 하질 않나. 이들이 아이에게 보인 애착과 관심이 너무나 기괴하다. 여기서 만만치 않은 인물이 하녀 매티다. 다루기 힘들어졌다며 주인부부가 내보낼 생각을 하자 그녀가 받아친다.

“우리도 당신들 백인들의 멍청한 짓거리에 염증이 나던 참이에요!”

부부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만큼 맹랑한 말. 매티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말. 차별, 억압 등 익숙한 이야기를 가져와, 익숙한 사람을 만들어내지 않는 거, 당연한 스토리 안 만드는 거, 이게 매력이다.



허먼 멜빌 <선원, 빌리 버드 외 6편>

작년에 이 책에 실린 「꼬끼오! 혹은 고귀한 수탉 베네벤타노의 노래」를 읽다가 허먼 멜빌이 보통 입담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서야 알아버리고는, 선뜻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비딕>을 샀건만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맨 처음에 실린 「바틀비」를 읽어봤다.

화자는 변호사다. 자신의 법률 사무소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필경사 몇 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건물이며 직원이며 자기 성격까지 한참을 설명한다. 자신을 꽤 좋은 고용주라고 생각하는 이 변호사의 관찰력이 빛나는 온갖 설명과 변명을 잘만 듣고 있다가도 내심 속으로는 ‘아니 그래서 바틀비는 언제 나오는 건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반적이지 않은 듯 보이면서도 그렇다고 주변에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변호사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해석하고, 혼자 이해하고, 또 납득이 안 돼서 머리를 굴리고, 속은 속대로 타는데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느라 하루 에너지를 다 쓰는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집에 가면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서, “으으……” 영혼 빠져나가는 앓는 소리 내면서 잠들진 않을지ㅋㅋㅋ 이 와중에 드디어!!! 바틀비가 등장한다. 조용해 뵈는 바틀비가 새로 들어와 변호사는 너무나 만족스럽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참으로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진다. 피식 대다가 의아스럽고 답답하다가 착잡해지고 씁쓸함까지 맛보게 된다.

아, 행복은 빛을 불러들이고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즐거운 곳이라고 여기는 반면, 불행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잠복해 있어서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병적이고 어리석은 머리가 빚어낸 망상임이 분명한 이런 서글픈 상상은 바틀비의 기벽과 관련된 좀 더 특별한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뭔가 이상한 것들을 발견할 것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무정한 낯선 이들 사이에서 하늘거리는 수의에 싸여 누워 있는 바틀비의 창백한 모습이 떠올랐다. (p. 35)



윌리엄 트레버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맨 처음에 실린 「욜의 추억」은 시작부터 묘했다. 호텔 테라스에서 깜빡 잠든 미스 티처가 눈을 떠보니, 산책을 나간 친구 미스 그림쇼가 앉을 자리에 낯선 남자가 와 앉아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미스 티처는 차마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퀼런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대뜸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스 티처는 그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준다. 나였다면 진돗개 하나 발령과 동시에 이 사람이 계속 앉아 있으면 어쩌지, 해코지하면 어쩌지, 나중에 따라오면 어떡하지, 아마 온갖 걱정과 추측부터 하느라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을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내 앞에 앉아 있게 되는 이 상황 자체를 이렇게 오래 두고 보지도 않았을 거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지?’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왜?’를 따지고 있을 틈조차 주지 않으니 말이다. 퀼런이 욜에서 보낸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줄수록,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이 상황을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다. 미스 티처가 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왜 낯선 남자의 사정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등등, 이 모든 걸 판단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들어준다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만큼. 이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미스 그림쇼의 등장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여기서 흥미롭게 들여다본 것은, 미스 티처가 퀼런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 아주 사적인 마음과 그 마음을 옆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끊어버리는 미스 그림쇼에게서 느끼는 미묘한 불편함이었다.

“우리는 추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윗옷 어깨에 비듬이 내려앉은 지저분한 낯선 남자의 존재만으로도 짜증이 나 있는 미스 그림쇼에게 아무렇지 않게 껄껄대며 말하는 퀼런. 마치 ‘당신이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군’ 하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가벼운 대답 정도만 해주는 미스 그림쇼. 그런데 그 ‘가벼운 판단’이 미스 티처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아직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았는데 누군가의 아픔을 이미 자기가 아는 도식 안에 넣어버리는 모습에 실망한 것 같기도 했다. 이쪽도 저쪽도 이해는 갔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비난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막상 내가 아끼는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가볍게 바라보는 모습을 마주하면 어쩔 수 없이 실망하게 되는 그 감정. 희한하게도 별 감흥 없이 읽어내려 간 줄 알았는데, ‘나란 사람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충분히 흘러갈 시간을 주었던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듣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전처럼 낯선 사람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내가 맞닥뜨릴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한 묘한 어긋남이 「탁자」에서 이어진다. 지극히 계산적인 유대인 가구 중개업자 제프스는 탁자를 사고파는 일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추측하고, 그들의 삶을 짜맞추며 거의 확신까지 한다. 상상은 자유. 게다가 돈도 안 들고. 그런데 짐작을 사실처럼 굳혀버리는 일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사는 게 바빠 남의 일에 관심도 없고 신경 쓸 필요성을 모르겠다며 무심한 얼굴로 마음속으로 중얼거릴진 몰라도, 조각조각 쪼개서 들여다보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참 관심이 많다. 문제는 자기 안에서만 완결된 해석을 붙들고 내 짐작은 틀림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그 생각을 어느 순간 사실처럼 믿어버린다는 것. 이런 심리를 드러내고 끝이 나버린다면 아, 뭐야 싶을 텐데, 제프스에게서 느껴지는 건 뜻밖에도 그의 고독과 결핍이었다.

제프스는 눈을 감은 채 마음속으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넓은 빅토리아풍 집에 홀로 서 있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그의 집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 달이 흐르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구는 단 한 점도 없었다. 그는 팔고 또다시 샀다. 그는 카펫을 깔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가 온전히 제 것으로 소유한 거라고는 예전에 누군가가 아무런 가치 없는 물건이라고 일러 준, 오래된 라디오 하나밖에 없었다. (「탁자」, p. 46)

조금 더 황당하고 조금 더 긴장하며 읽게 만든 「펜트하우스」는 런던의 한 건물에서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 중년의 독신 여성 윈턴의 이야기다. 그녀가 사는 건물의 꼭대기층에는 돈 많은 런카 부부가 살고 있다. 그 집에서 일하는 비안카가 식료품점에서 만난 윈턴에게 펜트하우스 구경을 부추기고, 윈턴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개와 함께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게 된다. 수줍음이 많아 15년을 외롭게 지낸 윈턴이 먼저 다가와준 비안카의 손길을 저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마침 수도를 고치러 와 있던 관리인 모건까지 합세해 칵테일을 마시는 세 사람. 그런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던 모건이 꽃병을 깨트리고, 카펫 한가운데가 큼직하게 젖어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뭔가 이럴 줄 알았어 싶은 일이 기어코 벌어지니 속이 탄다. 어휴. 게다가 오늘은 런카 부부의 펜트하우스를 잡지에 싣기로 한 사람들이 오기로 한 날. 당황스러운 윈턴 앞에서 모건과 비안카는 깔깔대고, 모건은 윈턴이 데려온 개가 꽃병을 깨트렸다고 하자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 그 뒤로도 짜증 나고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나랑 윈턴만 쫄려 죽게 생겼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비안카와, 관리인으로 지내며 여러 세입자의 못 볼 꼴을 다 봐온 탓에 분노와 억한 심정으로 가득한 모건. 이런 두 사람을 보며 윈턴은 나이도 훨씬 많고,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사람”(p. 71)인 자신이 이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느끼기라도 한 건지, 온갖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곧이어 펜트하우스 주인 부부와 잡지사 사람들이 도착하고, 서로를 이해시키고 오해를 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윈턴이 이 집에 발을 들일때 부터 왜인지 그냥 제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천만 번 했던 내 속도 점점 끓어올랐다.

재미? 글쎄. 집중하느라 손톱을 잘근거리며 읽게 만드는 그런 재미는 아마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 이 한 권도 다 읽지 않은 터라 대단히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느낌상 그렇다. 그런데 왜 자꾸만 그 한 장면, 그 잠깐 느껴진 분위기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무심히 뽑아내는 한마디와 그 순간의 감정 속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마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굳이 재미를 찾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주는 것 같다. 「펜트하우스」의 윈턴만 해도 내내 외롭게 지내다가 타인의 손길에 15년 만에 용기를 냈다. 처음으로 남들처럼 평범하고 소소한 즐거움에 어렵게 한 발 내딛어 본 날, 그야말로 개떡같은 일에 휘말린 거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럼 그렇지. 살던 대로 살지, 내가 무슨.’ 이런 자괴감에 다시 몸을 움츠리진 않을까. 그런데 또 누가 알아. 사람이라면 아주 진절머리가 나서 ‘아, 됐다. 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거야!’ 할지도 모르지.

윌리엄 트레버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때문인지 궁금했었다. 그의 글이. 몇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건, 이해가 필요한 여러 상황 속에서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는 거다. 인물의 말에 담긴 뉘앙스가 어느 순간 ‘아, 이거’ 하고 확 읽히면서 내가 알던 그 마음을 알아보게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한 번씩 붙잡히기도 한다.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다가도 어느 순간 공기를 확 제압해버리는 문장이 툭 등장한다. 그 갑작스러움에 쓸쓸했고 서글펐고, 때로는 간사했고 오만했고 외로웠던 그때의 내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불려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나의 곁이 필요한 때가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러던 중 최근에 받아든 헤르만 브로흐의 <현혹>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나에게 속하지 않고 인류에게 속해 있는 무한성, 어제를 지워버리고 내일만을 인정하는 무한성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시시한 일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일이란 이제는 인식하는 일이 아니고 살기, 함께 살기, 필요할 땐 가끔 도움을 베풀기이다. 나의 내일이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어제를 구원하고 싶은 모양이다”


8월이 가고, 9월이 왔다. 지나가고, 새로 왔다.
새로 온 것 중에는 책도 몇 권 있다. 그리고 커피까지. 드립백, 오랜만이다. 알라딘에서 커피를 사는 건 처음이다. 디카페인은 제외하고 싱글 오리진으로만 고르다 보니 종류가 몇 가지밖에 없어, 일단 종류별로 골라봤다. 궁금하니까. 이제 차가운 컵을 쥔 손의 시원함보다 온기를 찾게 되는,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계절에 다다르긴 했나 보다.

그래도 아직은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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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9-21 0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 작가 책 저도 가지고 있어 중복되어 반갑네요. 사다놓은지는 한참인데 아직 읽진 못했어요. 한때 현대문학 단편선에 꽂혀 수집?해 보리라 다짐한 적 있었는데 여적 세 권밖에 못 모았어요. 읽지도 않는데 구입만 해서 뭣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ㅋㅋ 근데 곰돌이 님 리뷰 읽다보면 아, 다시 모아야 하는 건가? 또 들썩여지기도 하네요.ㅋㅋㅋ 그나저나 알라딘 커피 많이 구입하셨네요? 드립백인가보죠? 하긴 드립백은 갯수가 적어 금방 다 먹어지긴 합니다. 저렇게 쟁여놔야 한 달은 마실 수 있겠어요. 저는 한여름에도 뜨라떼를 마시는 편인데 아직도 아아를 마시다니…많이 젊으시구나! 생각했습니다.ㅋㅋㅋ 제 주변 젊은이들?은 제가 뜨거운 커피 마시는 걸 보고 안 더우세요? 하며 깜짝 놀라곤 하시길래 아, 내가 엄청 나이를 많이 먹었나보군! 그런 생각을 올해부터 하게 되었거든요.ㅋㅋㅋ 그래서 따뜻한 커피를 마셔도 주변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계절이 다가와 참 좋네요.^^ 그리고 즐거운 독서의 계절인지, 방해의 계절인지 모를 계절. 가을! 곰돌이 님께는 즐거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좋은 가을이 되셨음 싶네요.^^

곰돌이 2026-09-21 08:10   좋아요 1 | URL
책장에 언젠가는 읽어야 할 텐데, 라는 마음의 짐이 느껴지는 책들 많으시죠? 저는 세계문학 단편선 몇 권,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이 있는데요. 뭔가 스스로 작정하지 않으면(?) 안 읽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시작해보자!! 해서 가장 얇은 것들 위주로 꺼내봤어요. 몇 편씩만 읽어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나무님도 맛있는 커피 호로록 마시면서 윌리엄 트레버 슬쩍 만나보세요. 요즘 날씨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 맞다! 잃시찾 읽고 계신 나무님이시다. 그럼 덩치들에게 눈길이 가기란 쉽지가 않을.... 그럼, 더 천천히 더 느긋하게 즐기면 되겠어요. 그런데 굳이 마음을 먹지 않아도 계절의 변화나 혹은 어떤 감정의 기복에 따라 전혀 생각도 안 했는데 알아서 손에 잡히는 책이 있는 것 같아요. 점점 날이 썰렁해져서 그런지 뭔가 바스라지는 낙엽 같은 건조한 이야기도 조금씩 생각나요. 체호프의 단편도 올해 한 번 읽어보려구요. 차곡차곡 뭔가 자꾸 쌓이기만 한다. ㅋㅋ

정말 오랜만에 드립백이었어요. 다 마셔보진 못했는데, 예가체프 G1 게뎁 첼첼레 괜찮더라고요. 부모님도 드리고, 저희 언니 가방에도 몇 개 쳐 넣어주고 ㅋㅋㅋ 그러다 보면 한 달도 못 갈 것 같아요.

아, 월욜이 좋기란 거의 희박한데, 오늘은 나무님 덕분에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시작을 하게 되네요. 진짜루요. 흑..

다락방 2026-09-21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는 오늘 언급하신 책 중에서 랭스턴 휴스가 관심이 갑니다. 저는 인종차별, 그리고 디아스포라 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거든요. 그런 글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실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물론 관심이 있지만, 문학으로도 읽고 싶어요. 덕분에 오늘 알아갑니다.

역시, 곰돌이 님의 서재에 오는 일은 즐겁습니다. 좋은 글과 함께 좋은 책을 알아가니까요. 계속 써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좀 더 자주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반드시 하나씩!! 어때요?

곰돌이 2026-09-21 09:50   좋아요 0 | URL
오늘은 이 곰이, 다락방님과의 공통점을 찾아낸 날이네요. 저 역시 인종차별, 디아스포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서인지 많이 읽어보려고 하고 있어요. 깊이는 얕지만, 꾸준히 손길이 가요.

이따금 책을 핑계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 것이 전 여전히 ‘내가, 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또 그때마다 당근을 손수 입에 물려주시기까지 해 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직접적으로 알려드릴까요? 뭔가 범접하기 어려운(?)분들이 많은 이 공간에서 저처럼 보통의 사람들도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대한 주저함을 조금씩 덜어내는 계기가 주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그 날의 하루와 감정을 책임지기도 한단 말이죠!

그런데, 삶과 운명은 다락방님께 땡투까지 해서 구매한 건데, 저 책 갖고는 계시죠? ㅋㅋ

다락방 2026-09-21 10:11   좋아요 0 | URL
당연히!! 갖고 있습니다!! (읽지는 못했지만요. 속닥속닥)

yamoo 2026-09-2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 허먼 멜빌 현대문학사판 2권에다가 현혹이라니.. 거기다가 제노의 의식까지...4권이 겹치네요!! <삶과 운명>3권도 주문했습니다!ㅎㅎ

곰돌이 2026-09-21 14:08   좋아요 0 | URL
yamoo님과 감히 책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버리겠습니다. ㅋㅋ 최근에 올려주신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도 궁금했던 작품이었는데, 리뷰 올려주셔서 뭔가 해소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지금 언급된 책들 중에서도 몇 권 먼저 읽고 리뷰 써주시면 좋을 텐데요...

rainbass 2026-09-22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돗개 하나를 아는분과 커피한잔 하고 싶습니닷!! 우리 축구얘기도 해봐요. ㅋㅋ

곰돌이 2026-09-22 05:23   좋아요 1 | URL
세상이 숭해서 경계부터 하게 된 곰. 그러나 rainbass님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자, 앉으시죠!
 
르 몽스트르 Le Monstre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박철호 옮김 / 제철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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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든 낯선 상황이든, 두려움이든 욕망이든 인간은 무언가에 잠식되어갔다. 어리석음과 폭력, 무력함을 실은 대사와 관계의 아이러니를 담은 여백. 짤막한 서사와 서늘한 대사가 유독 힘을 발휘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함축된 의미를 건조하게 던지는 방식에 공명하지 못한 순간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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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데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85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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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 뒷좌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봤다. 정말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그들 대부분은 서로 단절된 채,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삶이라는 건 다양한 목적을 좇아, 수많은 근심과 함께 흘러가는 것일 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속사정은 알지 못한다”

서른여섯 살 마야. 이혼했고 열네 살 아들을 키운다. 양육비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생활비와 학비는 혼자 감당한다. 문학을 좋아해 한때 소설을 써보려고도 했다. 먹고살아야 했고, 돌봐야 할 아들이 있었고, 일은 쉴 수 없었다. 그렇게 마야는 원해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시작에는 석 달 전 이스탄불 공항에서 만난 87세의 독일계 미국인 막시밀리안 바그너가 있었다.

어떤 얼굴은 웃고 있어도 슬픔을 숨기지 못한다. 마야가 공항에서 마주한 얼굴이 그랬다. 여행 가방과 바이올린 케이스를 나눠 든 노교수. 지치고 슬픔에 잠긴 듯한 눈빛, 그러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 이전에 만나던 손님들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마야는 금세 알아챘다.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이스탄불 대학에서 외국인 손님을 맞이하고 수행하는 계약직 공무원인 그녀에게 손님을 마중 나가는 일은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바그너가 묵을 숙소로 향하는 택시 뒤로 낯선 차 한 대가 계속 따라붙는 게 아닌가. 우연일까. 이 교수가 혹시 스파이는 아닐까. 뒤따르는 차는 정보국 차량인 걸까. 갑자기 요원들이 들이닥쳐 교수를 납치하는 것은 아닐까. 공상하기 좋아하는 마야의 머릿속에는 벌써 위험한 이야기가 한 편 펼쳐진다.

하루는 바그너의 제안으로 둘이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대화는 1930~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히틀러 정권을 피해 이스탄불로 온 유대인 교수들과 그 시절 튀르키예를 둘러싼 국가 간 정보전의 역사가 바그너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그런데 그는 왜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갔고, 하필 59년 만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온 걸까. 마야의 의구심은 커지기만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행의 정체도 드러난다. 정보기관 소속이라는 세 사람이 총장실에서 마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바그너 교수의 모든 말과 행동을 보고하라는 것.

어느 날 이른 새벽, 바그너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디를 가려는 걸까 싶었는데 목적지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이스탄불 북쪽 흑해 연안의 쉴레였다. 쉴레 부근에 이르러 바다가 보이자, 바그너는 차를 세우게 한다. 언덕 뒤에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바이올린 가방과 ‘나디아에게’라는 글귀가 적힌 화환을 들고 내린다. 강추위 속,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는 흑해 해변으로 87세의 노인이 바이올린 가방과 화환을 들고 걸어간다. 언덕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야와 운전기사는 두 눈을 의심했다. 바그너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화환을 바다에 던진 그는 눈보라 속에서 아름답고 서정적인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도 돌아올 답은 알 수 없는 사람처럼, 그는 같은 곡을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곡은 같은 곳에서 자꾸 막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또 그곳에서 멈춘다. 왜 하필 이 추운 날 바다까지 찾아왔는지도, 왜 바이올린을 켜는지도 아직 알지 못한다. 그저 매서운 바람과 거센 파도 속에서 어디론가 소리를 보내고 있는 바그너의 모습만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 바다는 계속 파도치는데, 이 노인만 그곳에 붙들려 있다.

아, 길고 긴 하루가 참으로 고단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일에 놓인 건지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는 일만 잔뜩 안고 있는 마야는 온몸이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 피곤에 절은 머리를 뉜 베개가 눈물로 젖어버린다. 꿈속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 오빠, 할머니와 함께했던 평온한 날을 보낸다. 온몸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이 편안함. 깨고 싶지 않은 꿈. 그런데 마야에게는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르메니아인이었던 할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강제 이주와 학살을 피해 다른 이름과 종교로 살아야 했다. 크림반도의 튀르크계 주민 후손인 외할머니에게도 숨겨야 할 과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으로 넘겨질 위기에 놓였고,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한 사람은 아르메니아인이라는 뿌리를 숨겼고, 또 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숨겼다.

나치와 유대인, 독일 학자들의 망명, 튀르키예의 역사와 문학까지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콕콕 박히면서 책장이 쉼 없이 넘어갔다. 이상하게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아니면 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마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 사람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들어야 할 것 같은 마음.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거대한 역사나 이스탄불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뜨면 버스에 몸을 싣고 지랄맞은 직장으로 향해야 하는 사람.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과의 거리를 좁힐 기회만 엿보며 나름 무진 애를 쓰고, 이 녀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엄마이면서도, 시간이 조금 남으면 괜히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하고, 삶의 의무에서 잠시 벗어나면 뭔가 더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 대단히 평온할 것도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마야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서인지, 이 소설이 꽤 가까이 느껴졌다. 솔직하고 불평도 많지만 그런 마야가 나는 좋았다. 어쩌다 생기를 보이면 내 가족일처럼 반갑기까지 했다.

마야는 힘들 때면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바그너를 만나면서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찾아가는 일이 되었다. 가족에게 묻혀 있던 이야기에서 튀르키예의 역사까지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결국 쓰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가 생겼다. 무엇이 그녀를 다시 쓰게 만들었을까. 곧 마야가 탄 비행기는 보스턴에 착륙한다. 그 전에 글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나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내가 어떤 주제에 관해서 쓰고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튀르키예로 망명 온 독일 교수에 대해서 쓰고 있다고 답했다. 그녀는 놀란 듯 그런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라고 했다” (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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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데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85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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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에서 자꾸 멈추는 곡이 있다. 87세의 노교수 바그너는 눈보라 속에서 그 곡을 몇 번이고 다시 연주한다. 못다 한 연주와 못다 한 이야기는 어쩌면 같은 것이었을까. 어디론가 소리를 보내던 그 겨울의 바그너처럼, 마야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라도 닿기를 바라며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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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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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그럼 나를 나이게 하는 건 이름일까 기억일까 지식일까. 포로가 된 베네치아인과 그를 빼닮은 오스만 학자는 삶을 캐묻고 지식을 나눈다. 이상하다. 서로를 읽고 써내려갈수록 나와 타인을 가르던 경계는 흐려진다. 책장을 덮고 질문 하나를 던져봤다. ‘나’라는 말은 뭘 딛고 해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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