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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비의 시간 - 생명 사랑으로 이어진 17년의 기록
김성호 지음 / 지성사 / 2024년 8월
평점 :
저자가 생물학과 교수를 지내긴 했지만 새를 전공하진 않았다. 동고비라는
새를 관찰하게 된 것은 전공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상황에서 비롯한 우연한 기회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기회에 대해 책의 들어가는 말과 처음 글 ‘동고비를 만나야 했던 이유’라는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처음 그는 큰오색딱다구리가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을 보았다.
그는 큰오색딱다구리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주어 어린 새끼새들을 키우고 마침내 새끼새들이 둥지를 떠나가는 것을 보고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저자의 관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번식을
끝내고 비어 있는 딱다구리 둥지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파낼 능력이 없는 다른 많은 생명체에게 더없이 귀한 선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중 하나라 동고비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새였다. 동고비는
딱다구리의 옛 둥지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에 맞게 다시 꾸며서 사용하는 재미있는 새였다. 이를테면
입주 전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고비가 딱다구리의 둥지 입구를 좁히기 시작한 첫날부터 어린
새 여덟 마리를 잘 키워 둥지를 떠나기까지의 80일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동고비와 함께 한 80일>이라는
책으로 발표한 것이 15년 전이다. 80일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동고비를 만난 시간을 2년이라고 한다. 이 책을 난 이후에도
더 알아야 할 것들이 남아있었고 다른 여러 마리의 동고비에서 다름과 차이를 확인하고 싶었고 그 내용을 보태어
15년 후 이 책 <동고비의 시간: 생명
사랑으로 이어진 17년의 기록>을 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이전에 동고비와 함께 한 80일의 내용에 실렸던 동고비가
딱다구리의 빈 둥지에 자기들의 둥지를 짓는 과정에서부터 짝짓기, 알 낳기와 알 품기, 어린 새 키우기 (육추), 어린
새 둥지 떠나기 (이소) 과정과 함께, 둥지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둥지 다툼 과정을 관찰한 내용이 들어있다. 둥지
다툼을 벌이는 생물에는 딱다구리, 다람쥐, 하늘다람쥐, 청설모, 벌, 소쩍새, 찌르레기, 원앙, 큰소쩍새, 파랑새, 호반새 등이 있는데 벌이나 다람쥐 같은 것들도 딱다구리가
만들어 놓은 둥지를 탐낸다는 사실은 뜻밖이었다. 그만큼 딱다구리가 만들어 놓은 둥지는 쓸모가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다.
동고비가 딱다구리가 만들어놓을 둥지를 발견하고 차지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둥지의 청소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둥지를 이용할 지언 정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청소부터 하고나서, 비로소 진흙을 물어 날라 자기들의 둥지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딱다구리가 주로 둥지를 짓는 나무 수종은 어떤 것인지, 둥지의 높이는 어떠한 지, 어느 방향으로, 어떤 방법으로 짓는지, 자세하게 관찰한 내용이 들어가 있고 그만큼 사진도 많이 실려 있어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동고비가 딱다구리의 둥지를 다시 수리하는 데 쓰는 재료는 진흙이 첫번째, 그
다음으로 쓰는 재료가 나뭇조각, 그리고 얇은 나무 껍질이었다. 이
얇은 나무 껍질이 알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거의 한달에 걸쳐 둥지를 완성한다. 그리고 비로소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놀라운 점은 동고비가
짝을 먼저 정하고 이들이 함께 둥지를 찾아 재보수를 하여 완성을 한 후에 짝짓기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새도 이런 순서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 안 했다.
동고비를 관찰하며 가장 큰 기쁨의 순간을, 첫째, 어린 새의 첫 먹이를 가져와 먹일 때, 두 번쨰는 어린 새가 잘
커서 둥지 입구로 첫 고개를 내밀 때, 세 번쨰는 둥지의 모든 새가 아무 탈 없이 보금자리를 떠나 진정한
자연의 품에 안길 때라고 한다. 생각만 해도 뭉클해진다.
이런 과정들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실려 있다. 그 사진들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동고비 둥지 앞에서 보내야 했을까.
내가 제일 뭉클했던 순간은 어린 새의 둥지 떠나기, 즉 이소 과정을
보면서이다. 부모와 어린 새가 헤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떠나 가는 과정. 사람은 잘 못하는 과정을 새들은 자연스럽게 해낸다.
새가 한번에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데 새끼들을 성장 차이가 거의 없이 골고루 키워내는 재주도 신기하다. 동시 부화와 균등한 배식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알이 나오는 순서가
있지만 그 알들을 순서대로 부화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에 부화하기 때문에 성장 차이가 거의 없고 부화한 새끼새들을
어느 한 개체에게 치우치지 않게 균등하게 먹이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니라 먹이를 가장 간절히
원하는 어린 새에게 먼저 주는 것이다. 고개를 가장 높이 드는 새이다.
딱다구리에 의해 한번 만들어진 둥지를 두고 여러 생물들에 의해 둥지 다툼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한 둥지를 오랫동안
관찰하여 둥지를 차지하는 생물들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보여주었다. 아홉 번 주인이 바뀌는 둥지도 있었다. 아마 수년에 걸쳐 일어난 둥지의 역사일 것이다. 동고비가 정신없이
진흙을 물어 나르고 있는 둥지가 있는 나무를, 시설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베어버려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날의 아픔도 있었다.
둥지를 짓고 있는 동안에 다른 새들에게 둥지를 점령당하여 둥지를 빼앗기기도 하고 짓던 둥지가 무너지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을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감동을 받고 동고비 정신이라고 부른다. 저자가
그랬다면 책을 읽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동고비의 번식 과정을 알게 되면서 생명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자식을 낳아 길러 내보내는 과정은 새라고 해서 사람보다 못할 게 없고 숭고함에 차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17년을 동고비에 관심을 두고 관찰해온 저자에게도 존경심이
든다. 그건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혼자 날아서 둥지를 떠난 새는 처음 부터 먼거리를 날지 못하고 둥지에서 가까운 나무 가지까지 날아가 앉아 있으면, 부모 새가 먹이를 물어다 준다. 마지막 서비스이다. 오른 쪽의 튼실해보이는 새가 새끼새이고, 왼쪽의 헐벗은 듯 보이는 새가 부모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