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 탄자니아 여행그림책
나태주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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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만큼 번거롭고 귀찮기도 해서 나는 여행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는 건 늘 즐겁고 흥미롭다. 여행기에서 읽고 싶은 건 여행지의 정보보다는 다녀온 사람의 경험과 감상이 묻어난 고유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어서 더 기대하게 된다. 가본 적이 있는 곳의 여행기도 반가운 마음으로 읽지만, 몰랐던 곳이나 가까운 미래에는 갈 계획이 없는 곳의 여행기는 특히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는 나태주 시인이 탄자니아를 여행하고 돌아와 쓴 시집이다. 나는 탄자니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실제로는 표범이 살지 않는 킬리만자로와 표범이 살고 있는 세렝게티가 있다는 정도만 안다. 이렇게 낯선 탄자니아가 한 사람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니 도대체 어떤 곳인지, 또 시인이 시로 쓴 여행기는 어떨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네 가지 터닝 포인트 중에 확실히 마음이 가는 건 시인이 권한 독서와 여행이었다.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질병이나 실패와는 다르게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여행기를 읽는 건 독서와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말만큼이나 실현하기가 어려운 조언인 것 같다. 나도 시인처럼 이것저것 다 멈추고 싶어질 때가 있어서, 낯선 땅 탄자니아로 향하는 시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왜 하필 탄자니아일까 생각했는데, 그런 내 의문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책 속에는 시인이 그곳으로 향하게 된 배경과 과정이 다정한 시와 그림으로 담겨 있었다.



책 제목만 보고는 시인이 말하는 ‘그곳’이 어디일지 궁금했는데, 이 시를 읽으면서 ‘그곳’은 나에게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천국이었다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돌아보기 전에, 나중이 아닌 지금 여기가 천국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좋을텐데 쉽지가 않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시잖아요...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아닌 것도 같다. 보통 내가 싫어하는 걸 상대가 좋아한다고 하면 ‘으... 나는 그거 싫어’로 대화가 마무리되기 쉬운데, 시인은 그 싫어하는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시니, 결국 나는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대상을 좋아해보려는 다정한 노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좋아탈트 붕괴가 왔다. 



한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기적같은 일이지만, 잘 살고 잘 떠나는 것도 축복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시였다. 



탄자니아 여행을 담고 있는 1부의 시들도 좋았지만, 시인이 만난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는 2부 시들도 울림이 컸다. 고맙다 감사하다와 함께 나오는 말 중에 미안하다가 없다는 게 조금 의아했는데, 시를 읽으면서 미안하지 않은 사람이 미안한 사람이 되는 건 좀 얘기가 다르겠구나 하며 끄덕끄덕했다. 사과를 잘 하는 것도 좋지만 미안할 일을 안 만드는 게 제일 좋겠지.


탄자니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1부를 읽으면서 내가 킬리만자로와 표범과 세렝게티로만 알고 있었던 탄자니아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곳에서 혹은 어디에서든 사람이 살아가고,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쌓아간다는 게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시인의 다정한 글과 그림으로 만나 조금은 덜 낯선 탄자니아를 언젠가는 직접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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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 - 뼛속까지 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예술적인 문장들에 대해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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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에는 조지 오웰과 찰스 디킨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서 조지 오웰을 더 호의적으로 심도있게 다뤄서인지, 나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져서 올해 조지 오웰의 소설들을 읽을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다가 조지 오웰이 여러 시기에 다양한 주제로 쓴 에세이들을 모아 담았다는 이 책을 발견했다. 

<1984>, <동물농장> 같은 유명한 소설도 많이 남겼지만, 소설가이기 이전에 치열하게 치열한 에세이스트였던 조지 오웰이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다’고 선언하며 남긴 글이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쓰는 건 고통스러운 질병과 오래도록 드잡이하는 것처럼 끔찍하고 소모적인 투쟁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게 붙들려서 쓰기를 강요당하는 것이며 그게 아니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 글쓰기다.


책을 읽으면서 조지 오웰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 활동이라기보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투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작가는 자기 개성을 제거하려고 지속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재미있는 책을 쓰지 못한다는 것 역시 옳은 말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이 부분은 나한테 좀 어려웠다. 글이 작가라는 필터를 거치며 왜곡되지 않고 유리창처럼 독자에게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비유는 인상적이었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글에 드러나지 않는 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너무 화려한 수식어로 개성만 뽐내다가 정작 내용이 가리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멋대로 넘겨짚어 봤다.


우리 생각이 어리석기 때문에 영어는 추하고 부정확해지지만, 그렇게 지저분해진 영어 때문에 다시 우리 생각은 더 쉽게 어리석어진다.


조지 오웰은 언어의 몰락이 곧 생각의 몰락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글에서 모호한 추상어나 진부한 관용구를 남발하는 것을 특히 경멸했는데, 이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꼭 글을 쓰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결국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습관에도 늘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박력 넘치는 언어로 글을 쓰려면 용감하고 대담하게 생각해야 한다. 용감하고 대담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주류의 정치적 관념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


주류의 의견이나 대중의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언어’를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조지 오웰은 작가가 정치에 관여하더라도, 맹목적인 당파성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시민으로서의 양심을 지킬 때 비로소 박력 있는, 자기만의 문장이 나온다고 강조한다.


자기과시와 자기 연민은 소설가의 독이지만 이 두 가지를 너무 두려워하면 창조적 재능은 위축된다. 좋은 나쁜 문학의 존재는 예술이 두뇌 작용과 동일한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문학적 가치와 대중적 즐거움 사이의 오묘한 지점에 있는 책을 ‘좋은 나쁜 책’이라고 부른 것이 흥미로웠다. 지적인 완성도도 그렇지만 문학이 줄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도 중요하다는 이야기 끝에 예시로 든 작품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모든 글에는 프로파간다의 측면이 있으나, 오랜 세월 지속 되어온 책이나 희곡이나 시는 그 도덕과 의미만으로는 포섭되지 않는 어떤 잔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의 잔재이다.


메시지가 강한 글일수록 예술로서의 생명력을 잃기 쉽지만, 조지 오웰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적 잔재’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잔재가 남을 때 비로소 글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얻게 된다고 했는데, 조지 오웰 자신의 글들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이유도 그 잔재 덕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글도 어려운데 글 앞에 ‘정치’라는 말이 붙는 순간 어려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라서 정치적인 글은 섣불리 손 대기가 부담스럽고 조금 피곤하다. 조지 오웰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말하며, 중립이라는 안전한 곳에서 나와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 정직한 언어를 지켜낼 것을 권한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그 말에 따르는 건 쉽지 않지만, 조금씩이라도 책에서 강조한 내용을 글에 담을 수 있도록 조금씩 노력해봐야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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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에서 인간으로 -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인구위기 대한민국이 새롭게 나아갈 길
이철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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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나 신문에서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라는 기사를 심심찮게 접한다. 분명히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사실일 텐데도, 그후에 따라 나오는 국가 소멸 같은 극단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일종의 공포 마케팅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인구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그 숫자를 이루고 있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읽은 <인구에서 인간으로>는 인구 문제를 단순히 통계나 국가적 손실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개인의 생존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분석한 책이다. 여러 정책과 논의들 사이에서 혹시 놓치고 있는 인구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출생아 수 감소 문제에 관하여 아직 사람들이 모르거나 오해하는 내용이 많다. 합리적인 정책 수립에 필요하지만 아직 믿을 만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들도 적지 않다. 모두가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주장이 사실과 다른 사례들도 있다. 개인의 경험이 전체 국민의 일반적인 경험과 늘 같지는 않다.


이 책은 우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였던 인구 관련 담론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한다. 인구 문제를 논할 때 흔히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관 변화’를 원인으로 꼽지만 그것이 데이터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인지 묻고, 막연한 추측이나 개인의 경험을 전체로 일반화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출산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심각한 병의 증상 혹은 결과이다.


책의 앞부분에 용어와 관련한 양해를 구하기도 했는데,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라는 말로 바꿔서 쓰는 요즘 상황도 알고 취지에도 공감하지만 이 책에서는 학술용어로써 저출산을 사용한다고 미리 밝혔다. 저출산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원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폐가 드러난 결과나 증상이라고 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가계든 국가든 돈을 아끼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국민에게서 걷은 세금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돈을 써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따져 보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돈을 잘 쓰면 미래의 세수를 늘리고 재정지출을 줄일 수 있다.


저출산 대응에 막대한 예산을 썼음에도 효과가 없었다는 비판에 대해, 저자는 예산의 집행 방식과 실제로 거둔 효과를 더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예산을 단순히 ‘지출’로 볼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는데, 나도 이 부분은 공감했다. 인구를 더 늘리기 위한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지금 같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추세가 계속될 때의 대책에 더 많은 논의와 비용이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원 문제를 덮어두어 정책 의지를 의심받기 보다, 인구 문제 대응을 위한 지출이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그 편익이 다수 국민과 다음 세대에 공유된다는 사실을 납세자에게 설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러 인구 문제 관련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자금 투입보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문제라는 것에 나도 공감했고, 이 부분에 대한 공감대가 조금 더 폭넓고 단단하게 형성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태어난 사람 하나를 지키는 일은 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게 돕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미 태어난 사람을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출산을 장려하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다.


이 부분은 나도 자주 하는 생각이라서 특히 공감하며 읽었다. 여러 참사나 사건/사고들을 보면서, 늘어나야 할 인구만 계산기에 넣고 정작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삶은 제대로 생각하거나 지키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늘 생각했다. 인구수 회복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쉽지는 않겠지만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존엄과 행복을 지켜내는 방향으로 인구 정책이 시행되면 좋겠다.


출산율을 높이기에만 매달리기보다 어떤 사람이라도 원하면 자유롭게 자녀를 낳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출생아 수 감소로 나타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충격을 최대한 완화함으로써 국민 삶의 질이 유지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인구 정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책 전체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단순히 인구를 늘리는 방향만이 아니라 이 상황이 지속되었을 때의 대응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이 책은 인구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로만 다루고 있지 않고, ‘인구’를 논하기 전에 먼저 그 인구수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의 삶을 먼저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책에서 제시한 다양한 데이터를 보며 인구가 줄어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너무 급격하게 줄어들면 여러 사회 문제들이 있을 수 있으니, 사회적 제도나 장치가 준비될 시간을 벌 수 있을만큼 조금 더 완만하게 줄어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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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역습 - 인간 본성은 우리의 세상을 어떻게 형성했고, 구원할 수 있는가
하비 화이트하우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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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그렇듯 올해도 내 삶이 여러 면에서 더 나아지기를, 내가 속한 세상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며 새해를 맞았다. 충분한 정보를 얻고 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작년 말에 읽은 <넥스트 씽킹>을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이미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과거보다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지식이나 사고 방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어떤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번에 읽은 <인간 본성의 역습>은 내가 가진 의문을 함께 풀어나가는 책이었다. 저자 하비 화이트하우스는 인간의 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가 단순히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를 결속시키고 번영하게 했던 강력한 생존 엔진이었다. 하지만 이 소중한 엔진이 현대의 범지구적 위기 앞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집단의 구성원들과 행동을 같이 하려는 욕구에 있는 듯하다.


그동안은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걸 순응의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생존 전략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일상화된 의례가 시간과 자원의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인류가 발명해낸 가장 강력한 사회적 통제 수단 중 하나다.

절차를 행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 줄어들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줄어든다.


책에 나온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의례가 집단을 단단하게 묶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 비판을 유보하게 만드는 힘도 함께 지니기 때문에 저자가 언급한 양면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전을 본질적으로 종교 현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성전이라는 개념은 신앙보다 부족주의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족주의는 우리를 결집시켜줄 수도 있지만, 외집단을 극렬히 증오하고 잔혹하게 대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성전은 종교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부족주의가 깊이 작용한다는 걸 알고 놀랐다. 우리 집단의 가치를 보편적 진리로 신성화하는 순간 외집단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된 여러 사례들을 읽으면서, 세상의 많은 문제들에 생각보다 부족주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지금 당장 직면한 문제를 우선시할 뿐 아니라 환경이 가혹해질수록 더 근시안적으로 변해 단기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선천적인 성향을 물려받았다.


오늘날 지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족과 국가 차원에서 인류 전체 차원으로 의례 공동체의 규모를 훨씬 더 신속하게 확대해야 한다.


우리의 본성이 애초에 멀고 추상적인 위험보다는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 지구적인 문제에도 왜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인간을 낙관적으로만 보고 있지도, 절망적으로 보고 있지도 않다. 어느 쪽으로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파멸로 향할지 더 큰 협력을 하게 될지는 우리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결말을 남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인간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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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미래 과학 트렌드 - 한 권으로 따라잡는 오늘의 과학, 내일의 기술
국립과천과학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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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서점에 등장하는 다양한 분야의 다음 해 트렌드 분석 책들을 보고 연말이 왔다는 걸 체감하곤 한다. 서점에 아예 별도 코너를 만들 정도로 여러 종류의 트렌드 분석 책들이 매년 나오는데, 그중에서 내가 관심을 두고 꼬박꼬박 챙겨보는 시리즈가 하나 있다. 바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몇해 전부터 발간 중인 <미래 과학 트렌드>. 생명과학, 화학, 지구과학, 우주과학, 물리학 등과 함께 과학 문화와 벨상 관련 챕터가 따로 있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나 같은 과학 문외한에게는 살짝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아주 가끔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술술 읽혀서 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가볍게 쓱 훑어보기 좋다. <2026 미래 과학 트렌드>에는 어떤 키워드들이 담겨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아직도 사람은 완벽한 형태의 인공 혈액을 만들고 상용화하지 못했을까?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인공 혈액 연구는 인간이 우주에 가고, 인간의 생각을 빼닮은 AI가 생겨날 때까지도 완성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혈액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도, 혈액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글을 읽으면서 새삼 놀랐다. 어렵기는 하지만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서, 일본에서 최근에 혈액형 관계 없이 수혈할 수 있는 ‘보라색 피’를 개발했다고 한다. 상용화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 연구가 이대로 이어지면 머지않아 인공 혈액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식물의 멸종은 단순히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식물과 상호작용하는 곤충, 조류, 포유류 등 다른 생물군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쳐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는 농업 생산성 저하, 의약 자원의 감소, 기후 변하의 가속화로 이어져 결국 인류의 생존 기반을 위협한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를 줄이고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식물과 종자를 보호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식물 종자를 보관하는 ‘시드 뱅크’는 자주 들어봤지만, 각종 종자를 최후의 순간까지 영구저장하기 위한 시설인 ‘시드 볼트’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 낯선 말이었다. 시드 볼트는 전 세계에 딱 두 곳 있는데, 놀랍게도 한 곳은 우리나라에 있다. 보안시설이라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북 봉화에 있다는 백두대간 시드볼트가 영영 열릴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기생벌은 인류와 해충의 오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생물학적 해법이다. ‘기생’이라는 전략 속에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섬세한 지혜가 숨어 있기 떄문이다. 기생벌은 생태계 안에서 싸움을 택하지 않는다. 숙주를 완전히 절멸시키지 않는다. 숙주의 생존이 곧 자신의 생존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해충을 적으로 규정하고 ‘박멸’하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지속가능한 생태계와 미래는 절멸이 아닌 균형에서 시작된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아주 없는 편이 아닌데도 책을 읽다 보면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번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생벌’이었다. 생존을 위해 숙주를 살려두면서 기생한다는 이야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소름끼치기도 했다. 


미래의 천문학은 완전히 자동화된 관측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다. AI가 스스로 관측 계획을 세우고, 흥미로운 천체를 발견하면 자동으로 다른 망원경들에 알려 집중 관측을 요청할 것이다. 심지어 우주 탐사 미션까지도 AI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이번에도 AI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모두 다루고 있어서 앞으로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인간이 제대로 통제하며 활용할 수 있을지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AI를 떼어놓을 수 없는 분야들도 많은 만큼 활용할 때의 기준 같은 것들이 좀 명확하게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자와 자전거는 전혀 다른 시대와 상황의 기술이다. 하지만 둘 다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학기술이 사회를 이끄는가, 아니면 사회가 과학기술을 만드는가?’ 답은 분명하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릴 수 있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는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쓸지는 결국 우리 사회의 선택이다.


등자의 발명이 이후의 역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는데,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 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까웠던 초기 자전거가 아이들도 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교통 수단으로 자리잡기까지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학기술 그 자체는 도구인데 그걸 어떻게 쓸지를 정하는 건 사회의 선택’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의 청년 안창남이 ‘금강호’를 몰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는 조선인이 조선 하늘을 처음 비행한 순간으로, 5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그 장면을 목격했다.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의 자존이 꺾인 시기,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민족 자각의 상징이었다. 안창남의 이름은 민족의 자존을 깨운 과학 기술자로 기억되었다.


1940년 석주명이 펴낸 <한국산 나비 총목록>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학자가 과학 분야에서 영문으로 펴낸 유일한 연구서였다. 무엇보다 그는 ‘조선산 나비만 연구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해방 이후에는 나비의 우리말 이름 짓기에 앞장 섰으며 한국산 나비 248종의 우리말 이름을 직접 만들고, 정리하여 조선생물학회에 통과시켰다.


이번 책의 과학 문화 챕터에는 독립운동과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다. 어려운 시기에도 꿋꿋하게 연구를 이어가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연구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도 독립운동의 한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자연을 조선말로 연구하고 기록한다는 게 그 시절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아서 내내 뭉클한 마음으로 읽었다.


혁신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연구와 교육, 제도와 문화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성장은 파괴를 동반한다. 낡은 산업의 퇴장은 아프지만, 그 빈자리를 새로운 기술이 메울 때, 사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과학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건 좋은 일일텐데,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좀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라서 가끔은 너무 빨리 바뀌지는 말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에게는 조금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변화 과정이,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꼭 필요한 과정이니 무작정 거부감을 느낄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새삼 느꼈다.


최근 과학 연구의 경향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평소에 자주 들으면서도 정확한 개념이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희토류나 초지능 인공지능 같은 이야기를 이 책에서 찬찬히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먼 우주에 대한 내용도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플라스틱이나 요즘 건축 현장에 다시 등장한 공학 목재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책에서 먼저 만나본 키워드들을 내년에 뉴스나 다른 책에서 보게 되면 왠지 반가울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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