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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자는 고백 - 십만 권의 책과 한 통의 마음
김소영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평점 :
책을 둘러볼 때 내가 유심히 보는 것은 담당 편집자가 마음을 담아 썼을 상세 페이지의 책 소개와 누군가의 짤막한 추천사다. 누군가의 생각을 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초고부터 읽고 다듬어 마침내 완성해낸 편집자의 글도 그렇지만, 짧고 강렬한 추천사를 읽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그 책을 일단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사는 속도가 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장바구니에 책이 계속 쌓이기만 할 정도로 나는 누군가가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글을 찾아 읽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나 평론가 혹은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이나 추천을 모아 낸 책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나온 <같이 읽자는 고백>은 심지어 책과 닿아있는 사람들이 한 권씩 책을 추천하는 편지를 엮은 책이라니 읽기 전부터 두근두근했다.

이 책에 수록된 57편의 글은 큐레이션 서점 책발전소에서 운영하는 ‘이달의 큐레이터’가 북클럽 회원들에게 책 추천과 함께 보내는 편지다. 그러니까 북클럽 회원이 아닌 나는 원래 읽을 수 없는 편지인 건데, 이렇게 책으로 나오면서 나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추천 도서들 중에 나도 잘 아는 책이 있는가 하면, 아주 낯선 책도 있어서 어떤 기준으로 추천을 하셨을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빡빡한 기준에 놀라는 한편, 큐레이션을 받는 입장에서는 너무 행복한 기준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라면 어떤 책을 추천할까 잠시 망상을 해보기도 했는데, 추천사를 써본 적 없으니 수월하겠다 싶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떠올렸는데 이건 너무 베스트셀러라서 아웃인가... 하면서 의미 없는 고민을 계속했다.

나도 소설을 읽을 때마다 살아본 적 없는 인생을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고 깊이 있게 묘사할 수 있을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신형철 평론가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추천하면서 남긴 글에 많이 공감했다.

사실 나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2010년에 (지금은 절판된 버전으로) 샀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다. 너무 좋은 책이라고 추천한 친구가 슬프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는 바람에 바로 못 읽고 순서를 미루다 보니 2025년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을 추천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움직여 올해는 넘기지 말고 읽겠다고 다짐했다.

기본적으로 작가들은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다 보니 추천하는 모든 책이 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주워 담게 되는 부작용(positive)이 좀 있었다. 정세랑 작가가 추천한 <노마드랜드>도 그런 책이었는데, ‘세밀한 초상화를 모아 지도를 만드는 종류의 작업’이라고 소개하면 이걸 어떻게 안 읽어요...

나도 비슷한 이유로 누군가한테 책을 추천하는 게 늘 부담스러워서 이 부분을 읽으며 내 마음을 좋은 글로 풀어서 적어놓은 것 같다고 느꼈다. 이렇게 책 추천을 부담스러워하는 윤가은 감독이 추천한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도 아니나 다를까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담으려고 보니 이미 담겨 있어서 놀랐다. 너 진짜 적당히 해라... 하면서 이 책도 올해를 넘기지 않고 읽겠다고 다짐했다.

여러 추천글을 읽다가도 유독 덕후 티가 심하게 나는 글은 더 즐겁게 읽었는데, 나한테는 김혼비 작가와 김민경 편집자의 글이 그랬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한 번씩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화르륵 흥분하는 찰나가 글에서도 느껴져서 좋았다. 김혼비 작가는 미스터리 장르 덕후인데, 어릴 때 만난 (역시나 미스터리 찐 덕후인) 서점 주인과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감동적이기도 하고 덕후들의 생태란... 하며 좀 웃기도 했다. 김혼비 작가의 말처럼 ‘가장 다정하고 귀엽고 뭉클한 트릭’이었다. 그래서 추천한 책이 뭐냐면요, <미스터리 가이드북>...

이어서 등장한 찐 덕후는 김민경 편집자다. 민음사tv를 즐겨 보시는 분이라면 익숙한 이름일 텐데, 나는 세문전 월드컵을 보면서 팬이 되었다. 이미 유튜브에서 여러 책을 소개했던 터라 어떤 책을 추천하실지 궁금했는데, 판타지 장르를 들고 나타났다. 김혼비 작가가 미스터리 덕후라면 김민경 편집자는 판타지 덕후였던 것. 너무 세계관이 방대할 것 같아서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한 머글들을 이영도 월드로 끌고 가기 위한 올가미를 짰다고...

그리고 글을 다 읽고 나니까 아무래도 올가미에 걸린 것 같았다. 그 짧은 글 안에서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일단 이것부터 읽어 보시죠.’ 하는 식으로 추천을 해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는 건 좋은데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어서 좀 막막한 마음도 들었다.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면서 재능과 성실에 대해 이미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이 책에서 다시 한번 같은 생각을 했다. 그냥 날 때부터 글을 잘 썼을 것 같은 사람도 이렇게 꾸준히 써왔기 때문에 잘 쓰게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그(!) 이슬아 작가의 스승이 쓰신 <활활발발>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최은영 작가가 나도 좋아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추천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진실을 직면할 용기가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읽은 것까지 같았다. 나는 2024년에야 이 책을 읽었고, 작년에 읽은 책 중에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이 책을 댈 정도로 마음에 깊이 남았다. 읽는 동안도 읽고 나서도 한참 마음이 힘들지만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에서 내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이미 있는 책을 발견하면 더 반가웠는데, 이연실 대표(이자 편집자)의 추천 책인 <궁금한 건 당신>도 그랬다. 정성은 작가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인데, 나도 읽어 보고 싶어서 체크해놨는데 이번에 추천 글을 읽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참고로 이 책에는 정성은 작가의 추천 책도 수록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이번 달의 큐레이터와 추천 책이 궁금해서 책발전소를 검색해봤다가, 문보영 시인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추천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이렇게 모아서 읽는 것도 즐겁고 좋았는데, 계절과 시기도 감안한 추천 책과 글을 실시간(!)으로 읽고 싶을 것 같아 앞으로 책발전소도 종종 체크하게 될 것 같다. 읽을 책들이 자꾸만 쌓여서 어쩌나 하는 즐거운 고민은 미래의 나한테 맡기기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