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시호도 문구점 2
우에다 겐지 지음, 최주연 옮김 / 크래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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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시호도 문구점 시리즈 2권이 국내에도 출판되어 있기에 읽었습니다. 출판사 크래커를 통해서 긴자 시호도 문구점 시리즈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긴자 시호도 문구점 2>에서도 긴자하면 떠올리기 어려운 소소한 문구가 사람들의 일상에 어떻게 스미는지 보여줍니다.

 

데쓰오 지다가 유용하게 쓴 단어장, 하루나와 미하시에게 아이디어를 준 가위, 오가와가 회사에서 받은 명함, 료코가 겐에게 받은 책갈피, 토미가 할아버지에게 받은 색연필. <긴자 시호도 문구점 2>에서 다루어진 문구입니다.

 

2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배려입니다. 단어장은 다른 사람의 기록을 물려받아 자신에게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가위는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사용하기 쉽도록 각각의 사용 방식에 맞는 제품이 나옵니다. 명함은 업무, 직책을 정해주어 맡은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해줍니다. 책갈피는 손쉽게 사용할 수 있어서 실용적입니다. 색연필은 자신의 마음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도구입니다. 1권에서는 다카하라 겐의 배려가 돋보였다면, 2권에서는 문구 자체도 배려 역할을 합니다.

 

또 주목할 점은 챕터 군데군데 문구점과 다카하라 겐의 연관성을 숨겨 놓았습니다. 다카하라 겐이 어린 시절부터 문구점에서 지내게 된 이유, 어린 시절 문구점에서 지내면서 겪은 일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문구점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할아버지가 중요한 존재 같습니다.

 

이 책을 문구와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또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때, 화면을 터치하지 않고 터치펜을 활용하는 사람, 블루투스 기기를 활용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디지털 기기는 화면 터치만으로 조작이 가능한데 전자기기 회사는 터치펜을 만들고, 블루투스 기기를 만들까요? 종이에 직접 손으로 끄적끄적 하던 세대, 그 감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는 세대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용하는 것들은 달라도 경험하고 싶은 감각은 같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 그 감각을 찾는 재미도 있습니다.

 

만약 긴자 시호도 문구점 시리즈가 계속 출판된다면 문구점과 다카하라 겐의 과거는 물론이고, 디지털 기기와 문구의 조화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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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이라는 세계 -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양필성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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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AI에게 질문합니다. 그 결과를 보고 의문을 가지거나 다른 방법으로 재조사를 한 적 있나요? 여러 결과를 종합해서 정리하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나요? 물론 어떤 사항에 대한 콘텐츠를 읽으며 사고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확인하고 싶은 콘텐츠도 많습니다. 당연히 요약본에 손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선택은 정보를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으므로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 특유의 사고 과정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생각할 필요는 있습니다.

 

저자는 시험으로는 실제로 해당 분야에 정통해 별도의 준비 없이도 합격한 사람의 수준을 가려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시험은 정해진 범위 안에서의 사고만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9) 확실히 그렇습니다. 시험은 범위가 있습니다. 그 범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패턴에 맞춘 문제풀이와 암기력으로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범위도 패턴도 없습니다. 100100010000년 단위로 생각하면 패턴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은 그보다 짧습니다. 휙휙 바뀌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배움을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이는 세상 모든 이의 공통점입니다. 모든 세대는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의 변화가 자신이 겪은 변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고 느낍니다. 변화를 이끌던 사람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상황을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로 달랩니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을 여러분은 어떨 때 사용하나요? 혹시 자신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과 지혜와 마주할 때 사용하지 않나요? 굳이 새로운 분야까지 알 필요는 없다며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런 분이야말로 <독학이라는 세계>를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독학은 성적을 위한, 자격증을 위한, 승진을 위한 결과를 얻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많은 어른이 의문을 품는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43) 의문이 생기지 않으니 독학을 해야 할 필요성도 없지요. 그저 세상의 흐름에, 권력자가 만든 흐름에, 디지털 세상이 만든 흐름에 몸을 맡기며 흘러갑니다. 당연히 다른 동물과 비교되는 인간만의 특징 스스로 생각하고 지금까지 없던 견해나 추론을 만들어내는 능력(26)을 잃는 셈입니다. , 저자는 거대한 흐름을 그냥 순응하는 태도를 걱정하는 셈입니다. 아무리 흐름이 거대해도 그 흐름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 지식과 정보를 접해야 합니다. 이 흐름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할지 사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래 세워둔 기준이 거대한 흐름이 요구하는 대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기준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이유에 사고 과정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외주화한 셈입니다.

 

저자는 명저의 내용을 처음부터 덮어놓고 맹신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유명한 학자가 제시한 이론이 곧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171) 또한 교양은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윤리적인 태도로 완성된다고도 말합니다.(120) 이는 인간이 직접 명저에도 의문을 던져야 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AI의 결과를 무조건 믿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사이트 검색 결과든, AI의 답변이든, 권위자의 말이든, 명저의 글이든, 인간의 글과 말이든 세상의 변화와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플랫폼에서 알아낸 결과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디지털이 쏟아내는 결과가 윤리적, 도덕적, 세계적, 사회적 선을 넘지 않는지 판단도 해야 합니다. 그 끝에 자신의 의견이 생깁니다. 이 과정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독학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밟힙니다. AI에게 물으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를 일부러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책을 읽고, 며칠이고 몇 주고 탐구해 볼 것을 권하는 책이다.(5-6) 저자는 해당 분야에 정통하는 독학 방법을 이야기한다고 밝힙니다.(9) , 이 책은 암기를 잘 하는 방법, 문제를 빨리 푸는 방법, 지식을 쉽고 빠르게 습득하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한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의 주요 구성 중 일부는 독자에게 스스로 사고해 볼 기회를 줍니다. 주장을 펼친 뒤, 이런 글이 있다며 툭 내어줍니다. 그 글이 끝난 뒤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합니다. 독자들이 글을 읽고 생각한 결과와 저자가 생각한 결과를 비교할 수 있는 셈이지요. , 독자에게 참여를 유도하는 구성입니다. 독자는 자신이 체득한 지식에 따라서 저자와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때, 그냥 책을 덮지 않고 저자는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의문을 지닌다면 당신은 저자가 말하는 독학의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이제 독학의 세계에 들어가 봅시다. 자료를 찾아보고 읽으며 종합하여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 보세요. <독학이라는 세계>를 디딤돌로 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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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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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2019년도에 1쇄가 출간되고 2024년에 14쇄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그만큼 독서에 힘을 써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2019년도에는 전자책 서비스가 큰 시장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2026년 읽을거리는 다양한 형태를 띱니다. 크게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으로 나뉩니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은 주로 디지털 기기로 책을 구매하고 디지털로 책을 읽거나 듣습니다. 일상이 바쁠 때 시간 틈틈이 읽을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참 편리합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 뒤에 숨은 복병이 하나 있습니다. 깊이 읽는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깊은 독서란 우리의 배경 지식, 유추, 연역, 귀납, 추론으로 합성하여 저자의 숨은 가정과 해석, 결론을 평가하는 것을 말합니다.(104) 국어 시간을 떠올려 보세요. 글 한 편을 참 다양하게 분석합니다. 시대적 배경, 작가의 삶, 문장 표현의 특징, 등장인물의 성격과 언행... 이외에도 다른 각도가 존재합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그 각도들을 모두 종합하여 책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깊은 독서라는 뜻입니다.

 

어크로스 출판사 홈페이지에 번역된 저자의 인터뷰를 보면 우리의 삶은 디지털 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있고, 역행할 이유는 없다고 밝힙니다. 깊은 독서를 할 수 있다면 매개체의 종류는 상관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자는 인쇄물 읽기에서 배운 유추와 추론의 기술을 온라인 콘텐츠에도 적용하게 해줄 학습 전략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264) 우리는 시시각각 정보가 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방금 접한 정보가 사실인지, 올바른지 판단할 근거를 찾는 과정을 쉽게 포기합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참조할 내용도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 있게 정보를 취합하고 근거를 찾아내어 자신만의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인지적 끈기가 강한 사람입니다. , 인지적 끈기란 자신만의 해답을 내리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런데 인지적 끈기를 이어나갈 여지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디지털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온라인 검색 결과 값이 광고성 글인지 논리와 근거를 갖춘 글인지 진짜 후기인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인지적 끈기를 이어나갈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이 등장합니다. 인공지능 모든 온라인에 올라온 글들을 분석해서 순식간에 요약본을 제공합니다. 인지적 끈기를 키우는 과정을 인공지능이 처리해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지적 끈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기존의 글을 도덕적, 사회적, 법적 선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학습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이 담긴 글도 학습 자료가 됩니다. 그런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선을 지키고 있는지, 논리 과정이 올바른지, 신뢰할 만한 지 판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최소한 자신이 알아본 분야와 관련된 지식을 일정 수준을 지녀야 합니다. 지식을 일정 수준까지 쌓으려면 글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 글을 깊이 읽고 종합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물론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글을 읽을수록 탄력이 붙습니다. 과거에 읽었던 책 내용도 떠오릅니다. 그 내용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메모하는 습관까지 곁들인다면 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겠지요. 글과 글이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깊이 읽기가 이루어집니다. 인공지능의 결과와 결과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 때, 인공지능의 활용도가 높아지겠지요. 저자는 그 훈련을 독서를 통해서 할 수 있다고 말한 셈입니다.

 

저는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도 깊이 읽으면 인지적 끈기를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책 리더는 기본적으로 밑줄 긋기, 메모 작성 등의 기능을 제공합니다. 이 기능을 잘 활용하면 자신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고,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로 어떻게 기록을 남기면 좋을지 알 수 없다면 <디지털 제텔카스텐(데이비드 카다비/데이원)>을 먼저 읽는 걸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디지털 독서로 기른 인지적 끈기를 인공지능 활용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인지적 끈기를 불편으로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속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이 고려되지 않은 시간 축약은 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을 지키는 디지털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인지적 끈기도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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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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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적극적이다. 이 말을 듣고 여러분은 어떤 특징을 떠올리셨나요?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주위에 물어보며 스스로 해결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 이외에도 여러 특징이 있겠지요. 그래도 학생으로 범위를 좁히면 위에서 언급한 사항이 주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니를 보면서 적극적이어 보이는 학생의 이면을 본 기분이 듭니다.

 

IMF 시기, 제니 가족은 미국으로 떠납니다. 제니 가족은 낯선 언어, 낯선 문화, 낯선 사람 사이에 툭 떨어집니다. 제니 가족의 생활은 한국보다 미국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니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제니는 학생입니다. 제니가 살아남아야 할 장소는 학교입니다. 학생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들은 동양인 학생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 시선을 극복하려고 제니는 노력합니다. 미국 학생에게 친숙하게 별칭을 만듭니다. 영어에 영어로 맞받아칩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축구부에 들어서 운동을 잘하는 멋진 동양인으로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이 정도면 제니는 꽤 적극적 성격입니다. 미국 학교를 다니는 동양인 학생이 아니라 미국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되려고 노력한 셈입니다. 이 과정을 단순히 적응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이게 나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잃는 건 아닐까요?

 

자신을 뜯어고치는 제니 앞에 한나가 나타납니다. 한나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다르게 발음할 때마다 정정합니다. “해나가 아니야. 한나야.” 어설픈 영어로 한나가 매번 이름을 정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니의 생각처럼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일까요? 만약 한나가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 싶었다면, 어떤 모습을 지키고 싶었을까요? 어쩌면 자신의 불행에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제니의 관찰에 따르면 한나는 영어 실력이 낮습니다. 교우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립니다. 장소와 시간을 랜덤으로 자주 웁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한나는 혼나거나 괴롭힘을 당할 때는 울지 않습니다. 제니와 대화를 나눌 때도 한나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어.’ ‘나도 잘 하고 싶어같은 말을 합니다. 한나는 자신이 놓인 상황이 제3의 시선으로 봤을 때 불행임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나는 그 불행 속에서 버티고 있고, 직접적 불행 앞에 울지 않는 모습이 의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힘들어도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매번 자기 이름의 발음을 정정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제니는 한나를 바라보며 억울한 감정을 느낍니다. 제니는 자신을 뜯어고쳤기 때문입니다.(81) 제니는 한국에서 생긴 자신의 모습 중 유일하게 운동하는 모습을 지킵니다. 그 외는 전부 환경에 맞게 바꿉니다. 그런데 한나는 자신의 모습을 전부 유지하며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제니는 한나의 그런 모습에 짜증을 느낍니다. 그러나 말미에는 한나를 두고 내가 너나 걔네를 위해 한나랑 절교하는 일은 없어. 너희들이 한나를 받아들이게 만들 거야.’(238)라고 말합니다. 제니는 한나는 자신이 포기했던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를 보며 제니는 자신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공간과 사람을 갈구하는 자신을 느낍니다. 그러나 제니는 이미 자신을 뜯어고쳤으므로, 한나를 통해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제니와 한나의 대비. 이 대비는 적응을 적극적 노력 이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 자신이 놓인 상황과 맡은 역할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 자신의 본모습을 바꿔야 하는 셈입니다. 이 지점을 제니라면 수용하고, 한나라면 망설이겠지요. 우리는 제니와 한나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당신의 저울추는 어디로 기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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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존재
뤼카스 레이네벌트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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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한 마디로 축약하면 폭력적인 모노드라마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화자의 감정, 화자가 상상해 보는 의 일상, 화자가 추측해 보는 의 생각과 마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마음이 왜 폭력이냐고요? 화자와 의 관계를 대등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수의사입니다.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연령대가 높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선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어른입니다. 그에 반해 는 어린아이입니다. 선에 대해 배우고, 감정에 대해 배우는 중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는 방식과 방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과 감정을 정의조차 못하는 사람이 서로 대등하게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화자는 수의사입니다. 수많은 동물을 돌봅니다. 동물의 상태를 살핍니다. 동물의 욕구를 조정합니다. 동물과 사람의 욕구 차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화자는 자신이 에게 느끼는 감정이 선을 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화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언행에 대한 의 감정을, 생각을 추측합니다. 마치 가 화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고,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고 기정사실화합니다. 추측도 아닙니다. 화자 혼자서 펼치는 모노드라마입니다. 모노드라마에서 가 직접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는 단서는 없습니다. ‘는 철저히 화자의 모노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모노드라마는 화자가 에게 휘두르는 폭력입니다. 화자는 그 폭력을 현실에서 휘두릅니다. 독자가 이런 감정선을 감당해야 하는지 의문을 들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의 문체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쉼표로 문장이 줄줄이 엮여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감정선을 이어나갑니다. 화자의 광기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짧은 호흡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새로운 독서 호흡을 선사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읽으려는 이에게 다른 형사 소설을 많이 읽은 뒤 읽기를 추천합니다. 보통 형사 소설에는 피해자, 범죄자, 형사가 등장합니다. 형사는 범죄자가 숨긴 증거를 쫒아 범죄자를 밝혀냄으로서 피해자를 구제합니다. 형사 소설은 대체로 이 패턴을 따릅니다. 물론 형사가 범죄자와 연결되어 있거나 범죄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진실이 밝혀지고 처벌을 받는 구조입니다. 이런 형사 소설은 범죄자의 심리를 단편적으로 다룹니다. 형사 소설을 통해서 수의사 같은 감정선을 지닌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한다는 선을 세운 뒤 읽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가장 사랑하는 존재> 같은 범죄자의 심리를 세밀하게, 심지어 미학적 문체로 표현한 작품을 읽으면, 범죄자인 수의사의 심리에 끌려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 속 수의사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끝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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