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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 - 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전하는 “서두르지 않는 삶”
피에르 쌍소 지음, 강주헌 옮김 / 드림셀러 / 2023년 8월
평점 :
여러분은 사적인 영역을 어떻게 관리하고 계시나요? 매일 만나는 사람이지만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지는 않나요? 이런 마음은 ‘사회생활’이라는 명목 아래 개인이 감안해야 할 부분으로 일컬어집니다.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는 항목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회사에서는 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조하는 걸까요?
회사에서 사원은 부서에 따라 각자 다른 업무를 수행합니다. 한 부서의 성과나 실패는 다른 부서에 영향을 줍니다. 만일 마케팅 부서에서 잘못된 카피 문구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상품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인식합니다. 상품뿐만 아니라 회사 브랜드 이미지까지 부정적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매출이 하락합니다.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집단에 손해가 발생하는 셈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에서는 회의를 실시합니다. 사원의 업무와 회사의 업무가 따로 놀지 않도록 관리하는 셈입니다. 회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면 자신이 맡은 업무를 확실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다른 부서의 보고를 똑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의 업무와 동료의 업무를 융합해서 공통 목표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업무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위의 사례는 공적 영역입니다. 회사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려고 같이 움직이는 장소입니다.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며 이익을 얻는다면 충분한 장소입니다. 그런 장소에서 사적 영역을 끌어오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누군가의 가정사, 누군가의 연애, 누군가의 대인관계는 공적 영역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입니다. 이런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많겠지요.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요. 때로는 자신의 사적 영역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오갑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얽히면서 감정의 기복이 생깁니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당연히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책임을 다해 업무를 처리합니다. 업무에는 마감일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최상의 결과물일까요? 그럴 확률은 낮습니다. 그렇다면 회사에서는 사원의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사람은 성향이 있습니다. 크게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나누어지지요. 100%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파악하는 자료로서 참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성향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꼼꼼히 검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오류가 생기면 보완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잇습니다. 업무 방식이 다르니 업무 우선순위도, 업무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마감일을 잘 지킵니다. 공적 영역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합니다. 사원들은 사적 영역을 나누지 않아도 같이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시스템입니다.
물론 사적 영역을 공유하는 것도 좋을 수 있습니다. 사원들은 사적 영역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공통 화두인 업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눕니다. 업무의 진행상황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조언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성향을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과 업무 방식이 다를 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장점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 사원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결과를 내놓으려는 과정을 비웃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방식이 당신에게는 비효율적이라도, 그 사원에게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공적 영역에서는 업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업무 이외의 다른 이야기 때문에 대화에 서투를 수 있습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원은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걸어갑니다. 걷기 어렵다면 기어서 나아갑니다. 자신이 맡은 바를 이루기 위해서.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며’ 나아갑니다. 당신 역시 그렇지 않나요? 감당하는 무엇이 있지 않나요? 심지어 정을 나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은 괜히 정을 나눴다고 후회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시선을 그 사원에게 보내고 있나요?
이런 현상은 사회에 생긴 모든 집단에서 벌어집니다. 반드시 정을 주고받아야만 집단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지낼 방법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 방법을 선택했다고 해서 소문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