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
한수정 지음 / 희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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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가족인 삼촌의 죽음은, 수영에게 실직과 빚을 남겼다. 삼촌의 장례를 치르는 게 억울한 건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낀 삼촌을 잘 보내드려야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할 도리를 다하고 남은 게 현실을 걱정하는 일이었으니, 그런 수영을 누가 내려다보기라도 한 듯이 공동묘지의 구인 공고를 보게 된다. 마침 장례식이 끝나면 삼촌이 묻힐 곳이었다. 일도 구하고 삼촌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을 거라, 고민 없이 면접을 보고 그곳에 취직하게 되었다.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이 있을까? 죽은 후에 내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지옥이든 천국이든 간다는 게 정말 맞는 말인지 알고 싶었던 적이 있다.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보는데,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잘 살아야 지옥의 뜨거움을 맛보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더라만,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살아진다더냐. 죽음 이후의 시간을 살아보지 못했으니, 알 수가 없지.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공동묘지를 상상한 적도, 상상할 이유도 없었는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있었다. 아버지는 시립 묘지에 묻혔다. 설날이나 추석, 기일에 한 번씩 찾아가거나 시간 될 때 잡초를 정리하러 가곤 했다. 물론 항상 낮에 갔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시간이 애매하면 다음 날로 방문을 미루곤 했다. 어두워지면 무서우니까. 낮에 방문한 그곳에서 종종 다른 묘지의 방문객을 보기도 하고, 관리인을 마주치기도 했다. 길게 머물러야 10분 이상이니까, 그곳의 관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내가 지켜볼 겨를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 궁금하긴 했다. 혹시 밤에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말이다. 아마, 무섭긴 하겠지?


24시간 운영하는 공동묘지. 근무하는 직원들의 업무를 모두 경험하는 수습 기간을 잘 마치면, 수영은 정식 직원이 된다. 주간 근무와 특별 1조 근무, 특별 2조 근무, 야간 근무를 경험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쉽지 않았다. 만만하게 생각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다양한 성향과 사연을 가진 직원이 있을까 하면, 무덤을 찾아오는 방문객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수영이 이대로 3개월을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 읽다 보니, 이거 묘한 매력이 있는 장소가 아닌가.


무덤을 관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때를 맞춰 물을 줘야 하고, 매번 섬세하게 살피면서 벌초도 해야 한다. 사무실과 화장실 등 건물 관리와 무덤을 잘 관리하는데 사용하는 장비들 점검하는 것도 필수다. 방명록 확인은 기본이고, 방문객과 마주치면서 대화를 하게 되면 근무일지에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 방문객이 적어낸 건의 사항도 확인하고 해결해야 한다.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와 잘 지내는 것도 중요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동윤이 일을 가르쳐주면서 보여준 호의, 부소장으로 불리는 상원의 시니컬한 응대에도 이미 따뜻한 마음을 읽어버렸다. 마지막에 만난 선주가 처음부터 세워놓은 벽에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 벽은 잠깐 사이에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뭐든 진심이 통할 때, 이유 없이 세워놓은 벽은 사라지지 마련이니까. 어느 정도 적응하니 공동묘지에서 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정해진 일정표에 맞춰 마음을 다해 소화해내면 되었다.


어려웠던 건 방문객과의 대화, 그걸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누군가 멍하니 무덤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봉분에 사람 키만큼 올라온 풀을 정리하지 말라는 요구도 의아했다. 매일 다른 사진을 들고 와서 죽은 남편에게 보여주고 가는 여성도 있고, 어린 동생을 먼저 보낸 슬픔을 가슴에 묻은 형의 사연도 안타까웠다. 이상하게 자주 망가지는 가로등은 야간 근무의 긴장감을 높였고, 밤에 도깨비불과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이 스산함에 소름을 더해주기도 했다. 설마 귀신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생기더라만. 밤에 근무하는 일을 마냥 쉽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아무래도 일하는 곳의 특성이 이러한지라 더 집중하고 살펴보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있자면, 살아가는 일이 참 당연하면서도 고단해 보이기도 한다. 마음을 나누며 즐겁기도 하면서,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겠더라. 옆에 있을 때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상실을 경험하는 순간 너무 소중했다는 걸 조금 늦게 알게 되는 일. 이런 것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게 현실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도, 종종 잊곤 하는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이야기였다. 비슷한 슬픔을 겪은 사람들, 이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갈까 궁금할 때 서로 마음을 나누며 치유하고 위로받는 장면들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 장면 저장하는 것도 같고, 서로 다른 성격에 어떤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꿋꿋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모습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다고.


수영이 모든 근무조를 다 체험하며 수습 기간을 잘 마칠지, 만약 정직원이 된다면 어떤 근무조를 선택할지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몇몇 장면들은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공동묘지의 일과를 이해하기도 했다. 이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죽은 자의 무덤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관리해주고, 방문객(주로 유족이겠지만)의 마음도 헤아리는 게 그들의 역할이라는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겠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니, 가끔 그곳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곳에 묻혀 누군가 기다리는 이를 생각하게 되는, 지금까지는 내가 방문객으로 찾아가는 곳이었다. 언젠가 내가 죽어 어딘가에 묻혔을 때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으로, 혹시 그곳에 묻힌 사람들과 모여서 수다 떨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도깨비불이랑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나는 걸까?



#지루할틈이없는무덤관리인의하루 #한수정 #희유출판사 #소설 #한국소설

##책추천 #치유 #위로 #살아가는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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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2 - 하우스메이드의 비밀
프리다 맥파든 지음, 황성연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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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나 비슷한 걸까. 전과를 가진 사람을 편견 없이 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1편에서 불행한 한 여자를 도우며 자신의 재능(?)을 뽐냈던 밀리. 밀리의 팔자가 뭔가 달라졌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2권을 펼쳤다. 하지만 밀리의 전과는 여전히 그녀의 직업 구하기에 발목을 잡았다. 웬만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신원조회가 필요한 일은 아예 지원서조차 넣기 힘들었다. 구직 사이트에 자기 이력을 등록하고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이, 신원조회가 필요하지 않은 조건으로 누군가 자기를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는 일이 계속됐다. 한 달 월세를 걱정하며 지내기를 이어가고 있었던 거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그녀가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고, 자기가 옳다고 믿으며 구해줬던 여성들의 입소문과 그녀의 전공이 결합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성과가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현실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날들에 행운처럼 밀리에게 새로운 고용주가 나타났다. 뉴욕 맨해튼, 부자 동네의 펜트하우스에서 코인스탁의 CEO 더글러스가 그의 아내 웬디를 위해서 집안일 해줄 사람을 찾던 것. 재산이며 외모, 아내를 사랑하는 다정함까지, 더글러스는 나무랄 게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밀리가 그의 집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에도 한동안 그의 아내 웬디를 보지 못했다. 웬디는 몸이 좋지 않아서 2층의 손님 방에서 쉬고 있다며, 그 방에 접근하지 말라는 더글러스의 주문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웬디가 아픈 줄 알았는데, 이 집에서 일하는 동안 밀리는 이 부부의 드러나지 않는 생활을 보게 된다. 곧 웬디의 구조요청 신호를 알아챈 밀리는 기꺼이 웬디를 돕기로 한다. 그동안 밀리가 몇 명의 여자를 구해왔듯이, 이번에도 그래야만 했다. 웬디를 이 지옥에서 꺼내줘야만 했다.


1편과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밀리와 한 팀을 이뤄 활약했던 엔조의 소식은 없었고, 밀리는 썩 괜찮은 조건의 변호사 브록과 연인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접점이 어디였을까 궁금할 사이도 없이, 밀리의 미래가 환하게 밝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두 사람의 연애를 지켜보게 된다. 살인 전과가 있는 여자와 변호사의 만남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의아하기도 했지만, 뭐 만나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쨌든, 브록은 밀리와 빨리 같이 살고 싶어 했고, 밀리는 자기의 비밀을 아직 브록에게 말하지 못한 것을 괴로워한다. 자기에게 살인 전과가 있다고 브록에게 말해야 하는데, 적당한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가 지금처럼 밀리와의 미래를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하기 전에 말해야 했다. 그녀에 관해 다 알고 나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변함이 없다면, 그때는 브록과의 먼 훗날까지 그려봐도 좋으리라.


밀리의 용기가 많은 여성을 구해줬듯이, 그녀는 보이는 그대로 마음이 정하는 대로 움직였다. 대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죽음에 가까이 닿아 있는 여성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웬디를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녀를 더글러스에게서 구해내지 않으면 밀리 역시 그 펜트하우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해왔던 대로, 한 생명을 구하는 마음으로 해냈다. 웬디를, 구해냈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여성들을 도왔다. 항상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항상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여성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할 때면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391페이지)


이번에도 밀리의 선택은 기대했던 결과를 낳았을까? 이렇게 밀리의 활약을 보여주는 시리즈가 계속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1편을 끝냈고, 2편의 흐름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밀리의 선한(?) 의도가 전해지면 좋은데, 누군가는 사람의 선한 의도를 이용하려고 들기도 한다는 게 씁쓸하더라. 죽어야만 끝나는 일이 있다. 나는 밀리가 구해준 여성들이 이런 생각을 자주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떤 고통 앞에서, 내 의지와 노력으로 그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내가 죽음으로써 그 고통도 끝날 테니까. 그래서 자기가 죽는 어느 날을 상상하며 버티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녀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듯 도움을 주었던 밀리의 진심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가지 못했음이 아쉽다.



#하우스메이드2 #하우스메이드 #프리다맥파든 #북플라자

#소설 ##책추천 #추리소설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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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첫차의 운행 시간이 다르겠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탔던 첫차는 새벽 6시 반이었다. 그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거의 7시였다. 여름은 그나마 나은데, 시골의 겨울에 7시는 아직 캄캄한 밤이었다. 그래도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고 싶어서, 머리가 따라주지 못하는 공부에 그래도 성의를 보이고 싶어서 일찍 등교하곤 했다. 그때 이후로 새벽 첫차를 탈 일은 없었다. 그저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을 뿐, 버스가 조금 밀려도 시간을 꽉 채워서 움직이곤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그 이른 시간에 나만 버스에 타고 있던 게 아니었다는 거다. 그리고 세월이 더 흘렀고, 거의 이십 년 전쯤이었던가. 서울에 종종 다니던 때다. 친구가 퇴계원에 살았고 거기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을 보고 다녔던 적이 있다. 새벽 여섯 시쯤 친구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나와서, 강변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움직였는데, 거의 죽을 뻔했다. 아침 7시도 안 되는 시간에 지하철은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사람이 꽉 찼고, 겨울의 추운 날씨에 지하철 안의 히터는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서 화장실에서 구토하고 변기 위에 앉아서 한참을 기대어 있던 기억. 며칠을 그렇게 다니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동이 트기도 전,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첫차를 타는 이 사람들은 어디로 그렇게 바삐 가는 걸까. 예상했겠지만, 이들은 어느 건물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해낸다. 건물의 청소부, 밤새워 근무한 이와 교대하는 경비,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사 등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지키는 필수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긴 연휴에 아파트 쓰레기장의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만 봐도 이들이 해내는 노동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연휴 동안 쉬었다고 해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연휴가 끝나면 밀린 일이 산처럼 쌓여 있을 테니까. 단지 해야 할 일의 양이 많아서 힘든 건 아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순간이 생길 때마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상황 때문이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 그들을 아줌마나 노인네로 부르며 낮게 보는 사람들 때문에, 분명한 휴게시간임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을 따지지 못해서, 편하게 밥 한 숟가락 뜰 공간조차 없어서 괜한 서러움에 눈물이 난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 자리가 비워진다면 많은 사람의 일상을 지켜내지 못할 테니까.


어느 날 갑자기 학교 급식실 파업으로 엄마들은 도시락 준비에 당황하기도 한다. 도로의 한쪽에 쌓인 쓰레기가 치워지지 못해서 지저분해질 때도 있다. 모두가 퇴근한 건물의 안전은 누가 지키려나. 제조업의 한 부분이 멈춘다면 생활필수품의 어떤 건 사용하지 못할 거고, 고장이 난 자동차의 부품은 또 어디서 구하게 되는 걸까. 근로자, 혹은 노동자.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많은 사람이 노동자로 살아간다.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데, 왜 투명 인간 취급당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자리가 다 비워진다고 생각해 보면 끔찍한데 말이다. 힘 있는 자의 목소리는 잘 들으면서, 왜 전쟁 같은 일터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지. 이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이 6411번 버스에 타는 사람들인 텐데, 바로 우리인데 말이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의 말로 알게 된 6411번 버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버스를 검색해 봤다. 서울에 살지 않는 내가 알 수 있는 버스가 아니어서 더 궁금했다. 평일 기준 12분의 배차 간격, 신정동과 선릉역 사이를, 새벽 345분에 첫차가 운행된다고 한다. 정말이었다. 그 시간에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운행하는 버스가 한번 돌고 오면 거의 세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에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은 숨 한번 돌릴 사이도 없이 바삐 움직인다. 일터로, 혹은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많은 정책이 새롭게 도입되고 사라진다. 그 정책들이 직접 적용되어야 할 대상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전해지는 걸까. 그 목소리가 무시당하고 힘을 갖지 못해서 늘 약자의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그런 어려움을 직접 지켜보면서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윤지영 변호사도 있었다.


직장갑질119’의 대표이자 노동인권 변호사인 윤지영 저자의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다. 사실 피해자가 혼자 법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어려웠을 듯하다. 저자의 전문적인 지식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도 있었고, 처음 접하는 내용도 있었다. 아니, 근로자에게 성별로 다른 정년의 나이를 적용하는 곳이 국정원이었다. 현장 실습생의 실습은 어디까지인지 따져 물을 수 있을까. 파견 노동자들에게 대놓고 성희롱해도 누구 하나 그게 잘못인지 알지 못하는 회사라니. 그날의 기록들이 아니었다면 증명하지 못했을 택시 기사의 사납금 사건은 어떤 계산법으로 나온 금액인가. 비정규직 PD의 업무는 어디까지였을까. 말도 못 할 사연들이 가득했다.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섭기까지 했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는 건 너무 잘 알았지만, 이 책을 읽고 오랜 시간 동안 싸워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피해자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 게 법으로 싸워야만 하는 거라면, 이들이 선뜻 법으로 싸우고자 결심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노동자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존엄을 지키는 게 노동법이라는데, 노동자가 법정에서 이 노동법을 주장하는 현실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 건지. 그 과정에서 노동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저자의 고군분투가 이 책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보다 더 몰입해서 빠져드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어질 정도였다. 누구라도 이 책 속 사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억울하고 기가 막히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힘 있는 자들이 법을 앞세워 싸우고자 할 때 저자와 같은 조력자가 없다면 이 싸움의 결말이 어떨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저자에게 다가온 사건이 이 정도였다면, 법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미리 포기해버리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읽으면서 분노가 일었고, 저자와 같은 이들이 있어서 용기를 잃지 않는 순간은 또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이 책 속의 피해자들이 미리 겁먹고 포기하지 않고 저자를 찾아왔던 것처럼, 피해를 보상받고 노동의 현장에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이야기에 저절로 힘이 난다.


51. 공식적으로는 근로자의 휴일일지만, 남편은 회사 노동조합의 일정에 맞춰 집회에 갔다. 태풍급의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약속된 일정에 참여한다고 휴일을 반납했다. 특별한 주제를 이유로 만들어진 자리는 아니었다. 근로자의 날을 기념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정도인 것 같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서울이 아니라 옆 도시로 가는 거여서 하루의 절반 정도 시간을 보냈지만, 곧 있을 임금 협상과 함께 무거운 일들을 앞둔 때여서 그랬는지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자기에게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언제쯤 아무 근심 없이 아침 출근길을 나설 수 있을까. 다행인 건 저자와 같은 노동변호사와 많은 인권운동가, 노동의 가치와 억울함을 대신 표현해주는 작가들, 이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방송인 등 많은 사람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주고 있다는 거다. 더 많은 당사자가 용기 낼 수 있게, 노동자의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을 이야기로 남아주길 바란다.











#첫차를타는사람들 #안녕하세요한국의노동자들 #보이지않는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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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노란상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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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맥파든 지음, 김은영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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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맥파든의 하우스 메이드2가 출간되었다고 하기에, 몇 년 전 읽을 기회를 놓친 이 책을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펼쳐 들었다. 세상에나, 이런 몰입감의 책 오랜만에 읽어본다.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 나는 있는 그대로, 읽은 문장 그대로의 내용만 생각했다. 이런 반전은 생각 못 하고 말이다. , 추리소설 제대로 읽은 지 오래되어서 그랬나 보다. 몰랐어. 이런 결말을 볼 줄은...


밀리는 전과를 숨긴 채 부잣집 가정부로 입주한다. 안주인 니나는 밀리가 자기 집에 어울리는 최적의 가정부라는 칭찬도 아끼지 않은 채로 그녀를 고용하는데, 막상 니나의 집에 입성한 밀리는 놀랄 뿐이었다. 이런 쓰레기장이 있을 수가. 면접 때 봤던 이 집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놀랄 시간도 없었다. 이 일을 못 하게 되면 더는 갈 곳도 없었으므로, 니나의 비위를 맞추며, 말도 안 되는 상황도 견디며 이 집에 정착한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밀리의 다락방이었다. 그녀가 머물 곳은 이 집의 다락방인데, 하나 있는 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문도 밖에서만 잠글 수 있었다. 니나는 마치 잘못 지어진 다락방처럼 설명했지만, 다락방의 열쇠를 주면서 밀리를 안심시켰다. 거처가 없어서 차 안에서 살았던 밀리에게 몸을 뉠 수 있는 곳이 생기자 이 방의 의심스러운 부분은 금방 잊힌다.


니나의 남편 앤드루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남자였다. 잘생기고 자상하고, 돈도 많다. 가족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그런 남자가 왜 니나 같은 여자와 사는 거지? 몸집은 계속 부풀어 오르고, 머리카락은 염색도 안 하고 엉망이고,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들고, 자기 멋대로인 여자와 함께 사는 앤드루를, 밀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병을 앓고 자기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듯한 니나의 행동은 이 집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앤드루는 니나를 이해하고 감싸주기만 했다. 밀리는 점점 니나의 남편 앤드루에게 마음을 두지만,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남자라는 생각에 가슴에 품기만 한다. 가끔 이 집의 외국인 정원사 엔조가 밀리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눈빛을 보내지만, 밀리가 그 경고를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의 다락방 문이, 열리지 않았다.


모든 게 발각된 줄 알았다. 이 집 사람들이 밀리의 과거를 알게 되고, 그녀의 거짓말이 괘씸해서 그녀를 다락방에 가둔 거로 여겼다. 아니었다. 다락방 문 너머의 사람은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그녀를 가두었고, 그동안 해왔던 대로,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조종하려고 했다. 기가 막히고, 여기서 또 한 번의 교훈을 얻는다. 겉모습 멀쩡하고, 누가 봐도 최상의 조건을 누리는 사람들이, 그 여유로움과 완벽함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살아가는 게, 보이는 모든 게 다 진실은 아니라고. 친절하고 자상한 모습 뒤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사이코패스의 본능을 숨기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했지만, 인간은 누구나 비슷한 거 아닐까 싶기도 했다. 보기와는 다른 모습을 갖고 사는 거, 어떤 계기나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그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며 살아갈 일은 없을 거라는 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가장 좋은 모습만 보이며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면 그만이고, 서로의 목적에 맞는 시간만 함께하면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누구도 이 집의 비밀을 모를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인지 내가 제대로 파악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다음이었다. 밀리의 다락방 문이 열리지 않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어떻게 그 문을 열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이 집 안의 또 다른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게 되었을 때는 밀리의 최후를 떠올리기까지 했다. 아무도 없었다. 사이코패스 가해자와 다정한 연인을 생각했던 피해자만 남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소설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사이코패스가 사이코패스를 낳는, 세상에서 이상한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하게 되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한숨과 함께 그런 악인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했다. 그렇지. 선하고 열심히 사는 인간들이 뭘 잘못했다고 계속 피해자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살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왔는데 반납 문자가 왔다. 미뤄두다가 반납 마감일 전날에 읽게 되었는데, 몇 시간이 그냥 휘리릭 지나갔다. 안 읽고 반납했으면 후회했을 뻔했다. 이 소설이 왜 후속편이 나와야 했는지 충분히 이해되더라. 올해 말 영화 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하니 더 궁금해진다. 2권도 도서관 대출 완료!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던지 현기증이 났다. 그제야 니나가 왜 나를 이 집에 강력히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니나는 진짜 내 모습을 알고 있다. 어쩌면 나보다 날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요.” 리사가 칼을 제자리에 꽂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녀의 파랗고 커다란 눈동자가 불안해 보였다. “밀리, 도와줘요.” (386페이지)




#하우스메이드 #프리다맥파든 #북플라자 #하우스메이드2

##책추천 #소설 #추리소설 #사이코패스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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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4-29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엇 하우스메이드2 사러 갑니다. 슝 =3=3=3=3

구단씨 2025-05-06 23:34   좋아요 0 | URL
오오오~ 다락방 님 마음에 쏘옥~ 들어야 할 텐데요.
저는 아직 2권을 펼치지 못했어요. 마음은 벌써 마지막 장인데,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하경식 옮김 / 모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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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의 8할이 내 지분이야. 너는 내 프라이드고! 내 인생이고!”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금명은 첫사랑 영범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영범의 엄마에게 상처받는다. 영범과 만나는 내내 자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영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범과의 미래를 꿈꾸었던가 보다. 그러다가 영범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순간이 왔다. 영범 엄마의 저 말에, 자기 부모님이 더는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이별을 결심했다.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운 영범 엄마는 아들의 미래까지 정해주려고 한다. 마치 자신의 계획만이 정답인 것처럼, 자기의 노력을 당연하게 보상받아야만 했으므로. 물론 드라마니까, 영범 엄마의 노년은 나쁜 계산을 해왔던 인생에 대해 당연한 대가를 치르는 것 같았지만, 사실 우리가 아는 많은 부모가 영범 엄마와 비슷한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안다. 내 아이가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기에, 아직 어려서 잘 모르니까 부모가 잘 인도해 주어야 틀리지 않은 길로 갈 거로 믿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것도 이미 알고 있다. 부모가 안내하는 길이 모두 옳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성공을 거두길 원해요. 본인들이 믿는 성공이요. 최고의 대학에 가고, 최고의 직업을 얻기를 바라죠.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기 아이가 실패한다면-백업 선수로만 머물거나 감독에게 혼나는 것-그 책임이 학교에도 있다고 생각해요.” (17페이지)


부모의 옳은 양육방식이라는 기준은 과거나 지금에나 비슷했던 것 같다. 내 자식을 부족한 거 없이 키우고 싶고, 최고의 것만 주고 싶은 마음. ,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진 환경이라면 가난이라는 험난한 환경을 맛보여 주는 것보다 낫겠다 싶지만, 환경이 풍요롭다고 그게 옳기만 한 걸까. 마이클 루이스의 10대가 무기력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나이에 흔히 겪는 사춘기 정도로 여겼다. 그 시절 또한 금방 지나갈 테니까,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럭저럭 그 시간을 잘 지나면 또 다른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이클은 그때 한 사람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왔던 방식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경제적 여유로움과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듯 살아지는 날들이 의미 없었음을 알게 되면서,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배운다.


어느 날 야구부 감독 피츠가 등장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딱히 노력할 필요도 없고 굳이 열정도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던 마이클에게 피츠의 등장은 전혀 다른 일상을 그리게 한다. 야구부 훈련에 소리치는 사람, 경기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사람, 끈기와 열정을 끓어오르게 하는 사람. 운동에 소질이 없던 마이클은 경기의 긴박한 상황에서 피츠의 부름을 받고 공을 던진다. 누가 봐도 질 것이 뻔해 보이던 경기였다. 9회 말 1아웃, 주자는 1루와 3루에 있는 상황. 피츠는 무엇을 보고 마이클을 마운드에 오르게 했을까. 너 말고는 내보낼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듯한 피츠의 눈빛에서 마이클은 무엇을 읽었는지, 이기고 말았다. 그때 알았다. 죽을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일, 피를 토하듯 치열하게 싸우는 게 무엇인지를. 그럭저럭 살아지는 인생에서, 목표한 것을 이뤄내려고 힘껏 달리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를. 피츠는 감독으로서 당연히 팀의 우승을 이뤄내야 했을 테고, 선수들 역시 팀의 우승의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게 목표였을 텐데, 피츠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팀의 선수들에게 상대팀들과의 경기는 그냥 놀이, 운동이었다. 경쟁도 싸움도 아니었다.


마이클이 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에 지난 후에 들은 소식은, 피츠의 열정이 부모들의 과보호와 충돌하면서 피츠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거였다. 사립학교의 부모들은 많은 금액을 학비로 내고 있었고, 학교의 야구부에 속한 아이들의 부모는 생각한다. 돈을 많이 내니까 내 아이가 경기에 나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건가? 경기를 나가는 자격 조건이 왜 돈이어야 하는가. 실력으로 보여주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건데 말이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 신세인지, 왜 러닝을 많이 시켜서 힘들게 하는지 따지는 지경에 이른다. 부모들과 선수들은 피츠의 훈련에 불만을 표하면서 그의 과도한(?) 열정을 비웃는다. 피츠가 바라는 거, 피츠의 역할은 자기가 맡은 팀을 잘 꾸려서 경기에서 이기게 하는 거였다. 그러려면 선수들은 경기에 임하기 위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팀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싸워야만 한다. 경기에 나갈 자격을 스스로 갖춰야 하는데도, 부모의 지나친 사랑은 자기 아이를 영원히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의 시간에만 머물게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게 흔한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가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 하지만 또 그대로 다 해주면 안 되는 게 부모의 자세라는 것을 간과해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을 막기도 한다.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완성되게 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저자 자신이 직접 경험한 마음을 들려주는 이 책이 꽤 무거웠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시간이 흘러가게 놔두는, 그렇게 흐르다 보면 저절로 커 갈 텐데 무슨 노력이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배경을 가진 이들이 어떤 어른이 될지 상상이 안 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저자는 그냥 되는 대로 살던 아이에서 목표를 가지고 그걸 이루기 위해 피땀 흘리는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게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일인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서 이뤄낸 어떤 것은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경기는 더욱 팽팽해졌고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배우는 중이었다. 이제 피츠의 말들은 공허하지 않았다. 뼈에 새겨질 정도로 깊은 감정이었다. (91~92페이지)


부모가 무조건 제공하는 사랑의 방식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피츠가 선수들을 훈련하는 방식이 옳다고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 자신의 삶에 열정과 노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맞지 않을까. 때로는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잠시 쉬며 안도할 수도 있지만,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매 순간 경쟁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부모의 적당한 관심과 지원, 조력자의 엄격함, 스스로 찾은 방식의 노력이 잘 어우러졌을 때,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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