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희망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79페이지)


노인과 돌봄, 나이 들어 살아가는 일에 생각하곤 한다. 요즘 나의 고민과 힘듦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이기에 생각이 저절로 그쪽으로 기운다. 충분히 겪어봤기에 이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병처럼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릴수록 고달픈 마음은 매번 그 수위를 경신한다. 현실에서 아무 경험해도 이 감정을 공유할 사람은 많지 않다.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는 그 이치를 또 한 번 확인하는 셈이다. 그래서 읽어봤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현실을 바꿔줄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느라 답답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음을 감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찾고 싶을 때 펼치게 된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이 정도로 마음의 위로가 되고 있다는 안도감 같은 거, 그걸 찾고 싶었던 듯하다.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처음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어떤 마음을 찾고 싶어서. 단순히 재미로, 시간 보내기로 책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어떤 상황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 둘 곳을 찾다가 발견한 게 책이었다고. 비슷한 맥락으로 읽게 된 게 이 책이다. 작가는 책이 마음속 깊이 들어와 삶을 바꾼 순간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어떤 순간에? 그건 각자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나는 좀 알 것 같다. 불안한 우리의 마음에 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유명한 강사의 몇 마디 조언보다, 순간적으로 와 닿았던 한 문장의 힘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책의 문장을 기억하려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 몇 마디 덧붙이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자기만의 마음을 담은 문장이 계속될 수 있기에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들린다. 우리가 찾고 싶은 것이(그게 무엇이든, 얼마나 큰 것이든),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것이기에 말이다.


작가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나의 예상보다 길게 언급해서 좀 당황하긴 했다. 처음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리고 어떤 순간을 경험하면서 그 책이 주는 삶의 방식이 매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한 개인이 사유하는 그 책의 서사에 대해 듣는 일도 괜찮았다. 유명한 요리사의 자신감 정도로 여겼던 바베트의 만찬이 그렇게 우아한 결말이었던가 싶었고, 요리사의 손으로 예술이 불태워지면서 비로소 자유의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이 의미 있게 들려왔다.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작가들의 공통점을 떠올리며 그 작가들을 연결하는 방식이나 생각도 좋았다. ‘그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 내적인 추진력, 우리 삶이 중심축 삼아 빙빙 도는 핵심, 앞으로 나아가게 혹은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지배적인 그 어떤 것, 이를테면 행동과 선택의 패턴 같은 것을 예리하게 파악했다. (107페이지)’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해준 레이첼 카슨의 바다의 가장자리, 시간과 에너지가 만들어준 내 자리의 힘과 가능성을 발견해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존 버거가 알려준 연민과 사랑 가득한 저항과 연대에 관하여.


책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향하게 한다는 걸 새삼 듣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한 문장을 곱씹으면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누구이고 싶은지 알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을 전파한다. 그렇게 우리가 책을 읽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 붙이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닮아간다고 말한다. 너무, 괜찮지 않나? 읽은 순간으로 멈춘다면, 그저 그런 취미 생활로 끝날 수도 있는데, 그 순간이 이어지면서 우리 삶이 계속된다는 말이, 계속 우리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것 같아서. 사실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이 책 읽으면서 어느 순간에서는 괜히 혼자 울컥한 적도 많았다. 그 이유를, 그 마음을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적을 수가 없다. 표현력 부족에,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어휘력 부족까지. 부끄럽지만, 그랬다. 내가 왜 이런 마음인 줄도 모르고 울컥해서 한밤중에 잠 못 드는 시간이 계속되는 게 힘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책이네.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는 게, 낯설거나 새롭거나 유혹적인 어떤 것인가를 받아들이면서 느리게 서서히 어쩌면 영원히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빠르게 갑자기가 아니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손바닥 뒤집히듯 바로 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달라지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거울로 마주한 내 표정이 달라져 있는 것을 기뻐할 수도 있다. 우울과 상실에 빠져 둘러보지 못한 주변이 보일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보나, 책을 읽어서 손해 볼 것도 없다. ‘문장들을 붉은 실 삼아 가슴의 상처를 꿰매려고 할 때찾아오는 삶의 변화를 이야기하게 되는 게, 그게 책이라는 게 괜히, 기쁘다. 한동안 읽지 못한 책이 어디로 도망갈까 봐 조급하던 마음마저 치유되는 듯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펼쳐도, 삶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남을 거라는 믿음에 안심이 된다.


특별히 소중하게 간직하는 책이 있다는 것은 마음을 다른 것, 자신이 가치를 부여한 어떤 것들로 채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 읽기는 낯설거나 새롭거나 유혹적인 어떤 것을 받아들이면서 느리게 서서히, 어쩌면 영원히 변하는 과정이다. 책 읽기는 이렇게 삶에 개입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대면하고 돌아보고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뜻깊은 일로 여기고 삶과 연결시킬 때 독서는 독자의 고유하고 창조적인 경험이 된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75페이지)










#책을덮고삶을열다 #정혜윤 #녹스 #에세이 #문학

#바베트의만찬 #모비딕 #그러나아름다운 #호라이즌 #바다의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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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기윤슬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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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게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은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어느 정도 이타적인 태도로 살아야 하는 건 맞지만,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그 이타심을 발휘해야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자기가 취하는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자신을 위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인지 더 궁금해진 하더라.


주인공 현주의 오늘은 행복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았고, 괜찮은 집안의 남자 석현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 행복을 계속 유지하기만 하면 인생 탄탄대로 그대로 달려가면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나타나 현주의 행복을 흔들고 있었다. 현주가 그렇게 잊고 지내고 싶었던 과거의 시간을 불러와 현주 앞에 펼쳐놓는다. 아니라고,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던 적도 있지만, 고의가 아니었으니 자기 잘못은 없다고 스스로 세뇌하듯 잊은 세월이었다. 어린 시절, 현주의 엄마가 재혼할 거라며 남자와 남자의 딸을 데리고 왔다. 현주 눈에는 마냥 한심해 보이는 이 남자가 자기 아빠가 될 자격은 없을 거로 여겼고, 그의 딸 역시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무시했다. 특히 그 남자의 딸 유미는 현주를 친언니처럼 따르며 사이가 좋은 자매 흉내를 내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었던 현주는 참고 살았다. 자기 나름대로 이들을 이용해 가면서 말이다.


대학에 합격하고 현주는 살던 곳을 떠나왔다. 그곳을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고, 더는 자기 인생에 그 시간을 포함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인제 와서 이런 협박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누굴까. 누가 현주를 협박하면서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자꾸 언급하는 걸까.


소설은 현주가 그 협박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에서 그녀의 주변 인물, 약혼자 석현과 오랜 세월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던 종욱 선배와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주의 고백 같은 시선과 엄마의 재혼남과 그의 딸 유미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때야 퍼즐이 맞춰진다. 아마도 그럴 줄 알았지만, 어느 정도의 뒤통수에 마치 내가 주인공인 삶조차 내 맘대로 될 수는 없는 건지 의욕이 꺾이기도 하더라. 아니면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의 속내를 그대로 알면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고, 상대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 살아야 하는지 불안하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보인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내 인생의 곁에 두기 싫을 때 내칠 수도 있는 건데, 현주는 그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왔던 것뿐인데, 왜 이런 결과를 맞이해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녀의 의도와 행동이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도 현주와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 인생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내 인생부터 챙기자는 마음으로 삶의 방향을 정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미필적 고의는 법률 용어 중 하나로,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어떠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주가 자기가 빠져있다고 여긴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행동을 누군가는 미필적 고의가 아니었냐고 묻는다. 어떤 상황이 나쁘게 될 것을 예상했음에도, 굳이 나서서 말리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방관함으로써 생긴 결과에 자기 인생이 피어나게 했다는 게, 정말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기만 한 걸까. 유미는 그곳에 가고 싶었을 뿐이고, 현주는 그곳에 가라고 했던 것뿐이고, 그곳에서의 일은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던 거 아닌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순간을 비웃듯, 완벽한 행복을 만들려고 했던 그 순간에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는 듯했다. 예상하지 못한 진실을 마주한 반전은 참 씁쓸했고, 내가 상대의 마음을 갖고 놀았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게만 보였다. 사는 게 내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기운 빠지기도 한다. 많은 것을 가진 내가 이긴 것 같지만, 언제든 나를 무너뜨릴 약점을 들킬 수도 있다는 게 생존의 민낯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 생존의 방식에서 우리는 언제든 미필적 고의를 저지를 수 있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에 보이는 무심함이,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면서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저지른 미필적 고의는 없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지를.


#미필적고의 #기윤슬 #한끼 #소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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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행복합니다
김가지(김예지) 지음 / 책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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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날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학생들 시험과 상관없는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지만, 조카들이 있다 보니 아주 남의 일도 아니다. 지난 추석 명절에는 고3 조카가 전화했다. 중간고사와 수능시험, 수시고사를 앞두고 할머니를 보러 가지 못한다면서, 시험이 끝나면 보자고 했다. 이놈의 시험은 언제 끝이 있으려나. 이 나이를 먹고도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시험을 볼 때마다 공부하기 싫어서 괴롭다. 계약직이나 단순 업무 아르바이트하더라도 서류 심사와 면접까지 통과해야 하는 걸 보면, 아마 죽을 때까지 시험 보고 평가받는 일이 끝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조카와 통화하면서 마지막 인사로 건넨 말은, 지나간 일에 미련 두지 말라는 거였다. 혹시라도 시험을 못 봤다고, 점수가 몇 점 부족하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이게 말이 되는지 아닌지, 이상하게 그것마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어쩌랴.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는 법이니.


이 책은 제목 때문에 펼쳐보게 됐다. 청소일을 하는 게 뭐가 어떻다고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까지 나와야 하는지 궁금했다. 말 그대로다. 청소일이 뭐? ?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인데, 그게 왜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의 어떤 인식, 청소 일은 많이 못 배우고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일로 보이는 걸까? 20대의 젊은 여성이 청소일을 하는 게 낯설긴 한가 보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꿈을 위해서 나아가는 그 과정을 묵묵히 걸어가는 저자의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누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볼 때마다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곤 했다. 역사 속 위인도 아니고, 지금 자기 상황을 열심히 사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부모의 좋은 환경,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으니까. 그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생각하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저절로 알게 되더라. 사람의 상식적인 태도는 가방끈과는 무관했고, 돈이 많다고 다 예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건 시간과 마음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저자는 그림만 그리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림만으로는 일상에서 지출되는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투잡은 기본이 되어야 했다. 그때 청소일을 시작했다. 이른바 요즘에 종종 듣게 되는 N잡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이 가득했을 때, 저자는 엄마가 하는 청소 일을 같이하게 됐다. 혹시 엄마가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은근히 각인된 세상의 편견을 무시하고자 한다. 안정된 생계를 위해 청소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책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자기 몫을 살아가면서 밥벌이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귀하고 또 귀하다는 것. 그런데 세상이 내놓으라는 답은 그것과 달랐다. 이미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는 어떤 기준이 답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디 내놔도 감탄할 수 있는 명함을 가지는 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속상하다.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해서. 그래서 이 책이 의미 있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어떤 길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꿈을 꾸다가도 방향 전환을 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던 것을 후회만 할 텐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가끔은 익숙하지 않은 길로 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진 않겠지만, 이게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불안하지 않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른 선택의 삶을 원하면서도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 선택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일 수도 있다. 내 인생에, 내 선택에 선을 넘어 참견하려는 오지라퍼들의 입김에 나도 모르게 움츠려둘 때가 있는 걸 보면. 그 선택이나 답은 지금 바로 알 수 없거나, 시간이 지나야 확인하거나 확신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내심이 필요하다. 선택하는 당사자도, 옆에서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도. 그러니 각자가 원하는, 진정한 나의 삶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좀,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기를.


수능을 앞둔 조카는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수학 교사를 하고 싶은지 수학을 연구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혹시 또 수학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릴지도 모르지. 어쩌면 학교에 다니다가 또 다른 선택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자기가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저자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현실은 청소일을 하고, 청소일로 소득을 올리고 그 여유로 그림 그리는 것에 만족하게 된 것처럼,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가능성도 충분히 크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 못지않게 그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는 이모의 기도를 담아, 지금 눈앞에 놓은 과제인 수능시험을 응원한다.



#저청소일하는데요 #김예지 #책폴 #에세이 #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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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때 있죠. 노을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때. 여기선 그 시간을 북새라고 그래요. 나 시집왔을 때 어머님이 알려준 말인데 그때는 옛날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니 요즘엔 정겨워서 좋아요. 북새에 강변 하늘을 바라보면요, 누가 저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칠해놨을까 싶어요.”(뜻밖의 우정, 69페이지)


우리가 걷는 모든 시간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급성으로 찾아온 질병이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노년의 시간을 거치며 죽음과 가까워진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을 만나는 게 아니면 시간의 흐름에 맡겨 놓은 것처럼 죽음의 문을 향해 걷고 있는 거다. 오랜 기간 아버지의 투병이 아니었다면, 매달 출석 체크하듯 병원을 찾는 엄마의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노년을 겪는 사람이나 죽음과 가까운 상황에 관해 잘 몰랐을 거다. 지금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경험했거나 지금도 경험하는 그 순간을 그래도 조금을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서늘하다.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몸이 아프고 마음은 쓸쓸해지고, 자식들은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고,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과 이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어떻게 유쾌하기만 할 텐가. 딱히 할 일이 없어서 TV만이 유일한 친구가 되는 일, 그게 노년의 시간이라면 나도 그 시간을 만나고 싶지는 않을 듯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어르신이 그렇게 지내고 있다. 나의 노년도 그런 모습일까?


뜻밖의 우정』을 쓴 김달님 작가는 내가 알듯 말듯 한 노년의 모습을 누구보다 많이 봐온 사람으로, 그들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도 있겠다. 태어나서 줄곧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면서 가장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었다는 것은, 작가의 전작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느끼기는 했다. 그런 느낌을 이런 방식으로 시도할 것을 알지 못했을 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노년을 지내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 시기를 사는 모습이 다들 비슷할 거로 여겼는데,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일흔여섯의 정열 어르신은 래퍼 연습생이 된 것으로 마치 한을 풀어낸 것처럼 좋아했다. 순자 어르신은 중년에 시작해서 예순여섯 살에 검도 6단의 고수가 되었다. 영화와 책으로 일상을 꽉 채우는 승기 어르신은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홍자와 옥순 어르신은 같이 노인 돌봄 일하면서 마치 여고생 단짝이 된 것 같았다. 트로트 아이돌의 활발한 활동을 지켜보면서 삶의 활력을 찾은 선자 어르신의 바람이 계속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작가가 만난 많은 노년의 삶이 내가 아는 모습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었다. 아니, ‘모습이 아니라 그 마음을 듣는 게 낯설었다고 해야겠다. 아마 누구나 갖는 일상을 바라보는 마음이었을 텐데, 노인이라고 그 마음이 다를 거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나 보다. 생각보다 유쾌하게, 축 처지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즐거웠다. 우리 대부분, 각자의 일상을 그렇게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지내기도 하지만,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오래된 바람 하나 이뤄가면서 만족하는 삶. 시대가 그래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우선이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잠시 잊힌 꿈이 너무 오래 잊히기도 했다. MBTI ‘슈퍼 I’인 내가 그들의 일상을 보는 마음이 좀 떨리기도 했다. 노래를 쫓아 아이돌을 따라다닐 수 있지도 않았고, 운동하겠다고 체육관을 찾아가는 것도 선뜻 떠올릴 수 없는 일이다. 랩은커녕 문화센터 노래 교실에 가볼 생각도 못 하는 심장을 가졌고, 좋아하는 책도 무슨 하루 루틴처럼 읽어내지 못하는 게으름은 덤으로 갖고 있으니, 나는 그들이 보여준 일상의 방식과 다른 방향의 루틴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닮고 싶은 마음이 있다. 노년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안 되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야겠다는 거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힘들겠다는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일보다,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비록 그게 무모한 시도라고 할지라도 해봤으니 됐다는 시원한 기분을 느껴보는 것.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가는 내과 병원이 있다. 나도 항상 같이 가서 선생님을 만나곤 하는데, 환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라서 선생님이 괜히 우스갯소리로 대화를 시작할 때도 많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다른 아픈 데는 없는지 물으면서 다른 이상이 없으면 평소와 같은 약을 처방해주신다. 그러면서 인사를 하신다. “어머님, 다음 달에 꼭 오세요. 또 만나요.” 그러자 엄마가 흥칫뿡 하면서 대답하신다. 병원에 오는 게 뭐가 좋다고, 또 만나자고 하냐고. 그러니까 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매달 꾸준히 오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다음 달 안 오고 또 그다음 달 안 오고 그래서 알아보면, 돌아가셨다고. 어떤 면에서 어르신들이 꾸준히 다니는 병원에 매달 정해진 약속처럼 방문하는 일은, 그 어르신의 생사를 확인하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가 독거노인 안부 묻기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딪힌 그 순간, 어떤 어르신 이름에 두 줄이 그어진 채로 사망하셨다는 표시에 당혹스러운, 더는 이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아니라 일주일 사이에 세상과 이별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인 거다. 그래서 이 마음을 더 알고 싶어진다. 작가가 권하는 독거노인 안부 묻기봉사활동 참여에서 보고 알고 느끼게 되는 게 더 많아질 거라는 건 확실하다. 내가 향해 가는 그 시간, 지금 그 시간을 살아가는 이에게 관심 두며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말이다.


작가님은 아직 모를 거예요.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하루가 어떤 건지. 그분들에겐 어쩌면 작가님과 나누는 통화가 하루의 유일한 대화일지도 몰라요. 오늘 아침엔 무얼 먹었고, 지금은 무얼 하는지, 오늘 하루 기분은 어떤지,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누구와 나눌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든 즐겁게 나눠주세요.” (뜻밖의 우정, 198페이지)


어쩔 수 없는 순간이 늘어나는 게 노년의 시간이다. 중년을 살아가는 나도 많이 느끼는데, 나보다 더 나이 든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은 더 많겠지. 엄마가 소화가 불편해서 내과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결과는 나이가 들어서 위장도 늙었다는 말이었다. 눈이 침침해서 찾은 안과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 말에 절망이 앞서곤 했다. 엄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연장자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행동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노년을 향해 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나의 노년을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집안에서도 자기 주변을 정리하지 않고 모든 걸 늘어놓은 채로 살아가도 이상하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 나도 그런 모습으로 늙어가지 않을까 싶은 어색함도 있지만, 지금 가장 가까이서 보는 엄마의 현재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듯하다.


이미 작가의 전작을 읽어서 그런지, 작가가 노년을 주제로 이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전작보다 더 피부로 와닿는 노년의 시간을 이야기해주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노년의 시간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 걸까. 어쨌든 확실한 건, 우리가 그 시간을 만나지 않고 생의 끝에 닿을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러니 누군가가 앞서 걸었던 그 시간, 곧 우리가 걸어갈 그 시간을 모른 채로 살아가지는 말자는 것


사실 이 책 때문만은 아니라, 요즘 특히 노년과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 이유가 있긴 하다. 이제 팔순을 넘긴 엄마가 더 노쇠해지는 게 더 눈에 보이기도 하고, 그만큼 병원에서는 어떤 치료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내 몸이 불편한데 그 불편함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한 건 나뿐만 아니라 환자 본인이 가장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늙어간다는 게 이런 걸 그냥 받아들이라는 말 같아서 괜히 섭섭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거기에,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까운 이를 보고 있자니,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는 걸 너무 잊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 애써 내 몸의 늙어감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게, 이제는 더 부정할 수 없기도 했다. 몇 년 전에 노안을 진단받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게 예전처럼 마냥 편하지 않다. 책 읽으면서 늙어가는 할머니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그게 불가능한 일이 되면 어쩌나 지레 걱정부터 앞선다. 좋은 생각만 할 수 없던 요즘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또 요즘에 같이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을 떠올려 보니, 다른 이들이 전하는 노년의 시간, 상황, 마음을 들으면서 사는 일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들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정할 수 없게, 언젠가 마주할 내 모습을 미리 보는 건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안 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좋아하는 것을 해보는 시간 준비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쌓인 하루가 나의 노년을 채울 테니...












#뜻밖의우정 #내가알던사람 #노년을읽습니다 #즐거운어른 

#즐겁게늙어가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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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넬슨의 <블루엣>

2024년에 작가의 다른 작품이 한 편 더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되었다.

절판되어 독자의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중고 가격이 고가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 궁금하다.

파란색이 불러낸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들려올지...

절판된 상태로 독자가 고가의 중고책을 찾아다니게 만들었다고 하니, 더 궁금해지네.

 


 







체사레 파베세의 <아름다운 여름>

당장 읽지 않아도, 언제 읽을지 몰라도 사게 되는 책이 녹색광선 출간작이다.

책을 수집하듯 사게 된다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왜인지 꼭 갖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이상스러운 마음.

거의 일 년에 두 권 정도 출간되는 듯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예쁜 책, 갖고 싶은 책으로 만들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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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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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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