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멎는 밤(feat. 코골이) -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작지만 무서운 침묵
유제원 지음 / 좋은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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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사는 사람이 코를 곤다. 처음부터 그랬냐고?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쩌다 한 번씩. 그냥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한번 코를 골았던 게 점점 빈도수가 높아지는 듯하다. 원래 비염이 있는 사람이고 갑작스러운 코골이가 무슨 문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병원에 가보기도 했다. 새벽부터 줄 서서 접수해야 만날 수 있는 의사가 있는 곳이었다. 온전히 하루를 비우고 기다림에 지쳐 쓰러져갈 즈음 의사와 대면했다. 비염은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고, 현재 환자 상황이 크게 어떤 치료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코골이 상담. 콧속에 무슨 통로가 있단다. 이게 숨을 쉬는 것과 연관된 건데, 그 구멍이 양쪽의 크기가 다른 상태이고, 그것 때문에 코골이가 심해지거나 얕아질 수 있었을 거라고. (남편은 오래전에 큰 사고를 당했고, 그때 거의 전신 수술에 가까운 치료를 받았는데, 그 사고로 코뼈도 부러졌던 터라 코가 곧지 못하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어느 쪽으로 옆으로 누워서 자는 게 편한 잠을 이룰 수 있다고 조언해주었다. 이 사람의 코골이 역시 지금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정도도 아니라고 판단되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것. 궁금하면 수면다원검사도 해볼 수 있지만, 그것까지도 마구 추천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결론은 지금의 코골이가 심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거다.


사실 옆에서 같이 자면서 견딜 수는 있다. 이 사람이 눕기만 하면 코를 고는 것도 아니고,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가끔 소란스러울 뿐이니까. 조금 피곤하다거나, 술을 한잔 정도 했을 때나. 순전히 궁금증 때문에 만났던 의사가 저 정도의 언급을 하니 이게 심각한 건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 제목을 보고 갑자기 심각해졌다. ‘숨이 멎는 밤이란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작지만 무서운 침묵이라니. 어쩌면 좋으냐. 많은 사람이 코골이를 단순하게 여긴다고 한다.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아버지도 평생 코를 골았고, 제부도 눕기만 하면 코를 고는 사람이라,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반대로 생각하면 코를 골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 차이를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했을 건데, 왜 코를 안 고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까.


저자는 피곤해서 그렇다는 말을 믿고 있으면 진짜 병을 놓칠 수 있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위험한 말이라고. 단순하게 보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술 한잔한 날에 코골이가 심해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은 일시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변화일 수 있단다. 하지만! 이게 매일, 몇 년째, 숨이 멎거나 다시 쉬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수면무호흡증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고, 온몸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병이라고 말이다. 여기에 몇 가지 오해를 확인해봐야 한다. 살이 쪄서 그렇다고, 마른 사람은 괜찮다고 여기거나, 애가 코를 고는 건 크면 괜찮다고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신호다. 진짜 문제는 이런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 그러니 앞서 말한 증상이 심해지고 반복된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고 치료하면 훨씬 좋아질 수 있다고 하니 잘 살펴보길 바란다.



그래서 코골이는 못 고치나요? 아니다. 고칠 수 있단다. 맞춤형으로. 코골이의 원인은 너무 많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할 수 없기에, 코골이 원인에 따라 맞춤 전략으로 치료하는 게 핵심이다. 가장 먼저는 생활 습관을 잘 조절하여 좋아질 수 있다. 양압기 같은 기구를 사용할 수도 있고, 구개확장기 같은 구강 장치를 이용할 수 있다. 때로는 수술적 치료도 필요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전문적인 진단으로 치료 방법까지 이어져야 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치료할 수 있는 병이고, 생활 습관 개선으로 기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니,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생활 습관 개선으로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하다. 수면의 질이 일상생활의 질을 높여준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으로 편한 잠을 이루기 어렵다면 주저하지 말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숨이 멎는 밤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숨이멎는밤 #유제원 #코골이 #코골이치료 #수면무호흡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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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눈부셔서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모르는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여름 다음의 계절이 아닌, 곧 시작될 겨울을 예고하는 날씨에 마음이 더 추워진 듯하다. 어제 모처럼 생긴 여유에 아파트 놀이터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 바쁘고 피곤하다고 노래하면서 살다 보니 못 봤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놀이터 한쪽에 자리한 은행나무 잎이 진한 노랑으로 물들었고, 단풍잎은 금방이라도 타버릴 듯한 붉은색이 되어 있었다. 그러네, 가을이었네. 몰랐다. 조금 더 덥고, 조금 더 서늘하고, 그저 아침에 나갈 때 점퍼를 챙길까 말까 하는 생각만 했는데, 계절이 이렇게 흐르고 있었다.


다 지나간다, 기운 내라, 다 잘 될 거다. 너무 잘 아는 뻔한 말들이 귀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이런 말들이 눈앞의 현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쯤 듣고 지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머뭇거리고 싶을 때 말이다. 요즘 나의 일상이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일까. 평소 같으면 손이 가지 않았을 이 책들에 오늘은 잠깐 마음을 내려놔 볼 수 있었던 건, 내일 다시 시작될 한 주의 마음이 정돈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에서다. 오랜만에 찾은 도서관에서 신청한 책을 받아들고 나오다가 이상하게 눈길이 갔던 자리에, 이용자들이 읽고 반납한 도서를 놓아두는 자리에 쭉 늘어선 책들이 있었다. 한 사람이 빌렸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읽고 반납한 책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걸까. 상처받고 힘든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많은 사람이 지금 위로의 한 마디가 필요했던 걸까.



이왕이면 둥글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 무슨 일이 생기든 조금 더 배려하며,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 근심과 걱정이 휘몰아칠 땐, 결국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대담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 책임감의 무게를 애써 버틸 줄 아는 것. 그렇게 성숙하게 살아가는 것.” (남에게 좋은 사람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 227페이지)


그래서 병이 났다. 그저 그러려니 하지 못해서, 둥글게 살아가지 못해서.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참 싫어하는데,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순간은 너무 자주 찾아왔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했다. 그러니까 별것 아닌 이런 일들을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아야 하는데 성격이 그러지 못해서. 지난달에는 예정에 없던 지출이 있었다. 우리 집 한 달 소득 이상의 금액이었다. 어쩔 수 없는 지출이었고, 그만큼 오래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었지만, 막상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벌어지는 일은 알면서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번은 소비할 수 있는 지출이었으니 그런 날도 있는 거지 하면 될 것을, 필요한 지출이었으니 살아가는 날들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지나가면 될 것을, 머릿속은 갑작스럽게 구멍 난 금액을 채워 넣어야 하는 계획으로 다시 분주해졌다. 그래봤자 뾰족한 다른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ㅎㅎ 별 수 있나. 그저 살던 대로 열심히 살면서, 평소의 소비 습관대로 또 살아가면서, 조금 더 아껴가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그러면 되는 일인데, 왜 속에서는 안달복달 불안함만 남은 것인지. 이런 마음을 다독여줄 어떤 문장이 박혔으면 싶어서 페이지를 또 한 장 넘겨본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좀 나아질 테니 하면서.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너무 많은 것을 곁에 두려고 하면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진다. 가끔은 내려놓기도 하고, 또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무겁게 걸어가지 않았으면 싶다.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가벼울수록 멀리 갈 수 있으니까. 떠나보내고 내려놓아도 괜찮다. 모든 걸 짊어지고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 버리고 놓아주고 잊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신선한 기분. 뭐든 될 것만 같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159페이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단 한 번의 삶, 61페이지)


언제부턴가 누굴 옆에 두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에게 닿지 않을 때도 많았고,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시절 인연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한때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관계였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로 끝난 인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사람 관계에 어느 정도 느슨해졌다고, 언제 끊어질지 모를 마음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일주일에 2~3일 같이 일하고 있다. 겪어 보니 이 사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많은 순간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점점 그 성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는 거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나란 인간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서 어디까지 지켜봐야 하는 건가 싶어서 고민이 많아진다. 그 사람과 나,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일터에서 보이는 태도 때문에 나는 물론이고 주변이 불편해지는 걸 몇 번 보고 나니, 이 문제에 대해 언젠가는 대화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더라. 분명 유쾌하게 받아들일 문제는 아닐 테고, 내가 이 말을 꺼내는 순간에 이 사람을 다시 안 보고 살 수도 있겠다는 다짐이 아직 서지 못했다. 이 사람과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나쁜 마지막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생각해보니 이런 바람도 너무 과한 욕심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 어떤 마음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은 내려놓고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너무 많은 것을 곁에 두려고 애쓰지 말고, 내려놓기도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가볍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을 찾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기대감이 너무 컸나 싶기도 하고. 역시, 살면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였던가 보다. 아직 까지는 그렇더라.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고 애쓸수록 마음의 짐은 오히려 더 무거워진다. 피하는 것이 무조건 비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야 가벼워지는 짐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몰아붙이지 않고 때로는 느슨하게 자신을 다루는 것. 그것도 충분히 용기 있는 선택이다.” (어른의 품위, 87페이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전에 조금 일찍 나를 쉬게 하는 일. 쉬는 것도 감각이다. 그 감각을 무시한 채 앞으로만 나아가면 나만 흐려진다. 누구에게 강요받지 않고 내 선택으로 결정해서 멈췄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 내가 생각하는 휴식의 방법이다.” (어른의 품위, 92페이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아주 사소한 것도 잘 정리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라고 여겼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최고의 것만 향해 가고, 좋은 것만 갖고 싶은 노력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정말 사소한 순간 하나도 잘 끝내고 싶었다. 다 잘하고 싶은 마음, 그게 얼마나 사람 속을 태우는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일주일에 2~3일 일하면 나머지 시간은 정말 여유로울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엄마를 살피러 다녀오면 하루가 지나가고, 가끔 한 달에 서너 번쯤 엄마와 병원 투어를 하면 또 하루가 사라진다. 또 어떤 날은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다.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들은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갈까 하고 말이다. 이번 달에는 또 예정에 없던 병원 일정이 늘어나 있었고, 시어머니의 병원 일정까지 챙기게 되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 내일 하루는 좀 늦잠을 자고 밀린 은행 일을 보고, 시간이 남으면 혼자 커피라도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잠이 든 게 어젯밤에 세운 계획이었는데,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시간을 빠듯하게 사는 건 아닌데, 왜 항상 시간이 없다는 말이 입에 붙어있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고단했다. 몸이 먼저 알아채는 고단함은 잠잠했던 대상포진으로 표시를 냈고, 마음마저 물렁물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도 못 하고 종일 호되게 앓았다.


내가 해야 한다고 여기던 일들이 사실은 내가 아니어도 되었던 것을,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그 순간은 흘러갔을 것을, 왜 내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마음을 볶아댔는지. 안 된다고, 싫다고, 핑계든 거절의 말이든 하면서 피해도 괜찮았던 것을 왜 못하고 그랬는지. 그래도 조금은 시간 여유가 되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마음의 짐이 무거워지는 것도 모른 채로,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순간이 올 것처럼 위태로웠던 것도 무시한 채로 말이다.



우리는 다 알면서 못 하곤 한다. 하다 보면 하게 되고, 일어서다 보면 걷게 되고, 잘하기 전까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 안다. 사는 동안, 살아 있으면, 살아가다 보면 또 살아지게 된다는 것을. 아는 대로 배운 대로 해 오던 대로 이겨 내면 된다는 것을. 결국 잘 이겨 내리란 것을 안다.”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12페이지)



주말이라 도서관은 5시에 폐관한다. 5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자료실에 놓은 의자에 앉은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시간에 빠져있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저마다의 목적에 맞게 선택한 책의 문장에 빠져있는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그들 틈에서 내가 오늘 이 책을 만났던 것은 의외의 인연이기도 하다. 평소에 자주 만나던 책들이 아니었기에, 그 뻔한 말들이 싫어서 화가 날 때도 있었기에. 잠깐이었지만, 그 문장들에 눈길이 머물렀던 순간은 좋았다. 거추장스러운 마음 한 조각 떼어내서 한쪽에 던져둘 수도 있었고, 변덕이 죽 끓듯 이랬다저랬다 하는 마음을 한 번 더 살필 수도 있었다. 이 순간이 지나고 금방 또다시 잊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고달파질 때마다 한 번씩 생각날 것 같기는 하다. 살짝 등을 한번 두드려주는 것처럼, 잊었던 다짐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나를 먼저 돌보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나이를 먹고, 참 새삼스럽다. 그걸 몰라서 고민하고 있다니. 아니, 고민보다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못 했던 것, 상대방을 먼저 살피느라 내 마음 그대로 표현하는 데 주저했던 것을 드러내는 일을 이제부터라도 잘해야겠다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주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도, 내가 책임지고 감당해야 한다고 여겼던 어른들의 존재도 잠시 잊고, 잠깐이라도 나를 먼저 챙기고 돌보는 일을 해야 할 때라고 말이다.


주말 잘 쉬었으니, 다시 시작되는 내일을 잘 준비해야겠다.











#어른의품위 #내가죽으면장례식에누가와줄까 #단한번의삶

#남에게좋은사람보다나에게좋은사람 #위로가필요해 #또한번의다짐 #나를먼저살피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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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ZM 2025-11-10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저도 다른 누구보다 내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ㅎㅎ인간관계에 지쳐있는데 글 보고 댓글 남겨봅니다^^

구단씨 2025-11-11 19:50   좋아요 1 | URL

이쯤 되니, 기대를 안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봐요.
그 사람에 대한 기대보다, 인간에 대한 기대였나 싶기도 하고요.

2025-11-20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단씨 2025-11-27 17:59   좋아요 0 | URL
제가 5년쯤 전에 대상포진 처음 걸렸는데, 진짜 죽는구나 싶었어요.
오래 치료 받고 주사도 맞고 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대상포진이 가끔 오긴 오는데, 거의 느낌 없이 왔다 가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몸이 힘들었나 봐요. ㅎㅎㅎ

추워지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몸도 마음도 포근한 연말연시 지내세요. ^^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희망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79페이지)


노인과 돌봄, 나이 들어 살아가는 일에 생각하곤 한다. 요즘 나의 고민과 힘듦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이기에 생각이 저절로 그쪽으로 기운다. 충분히 겪어봤기에 이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병처럼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릴수록 고달픈 마음은 매번 그 수위를 경신한다. 현실에서 아무 경험해도 이 감정을 공유할 사람은 많지 않다.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는 그 이치를 또 한 번 확인하는 셈이다. 그래서 읽어봤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현실을 바꿔줄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느라 답답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음을 감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찾고 싶을 때 펼치게 된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이 정도로 마음의 위로가 되고 있다는 안도감 같은 거, 그걸 찾고 싶었던 듯하다.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처음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어떤 마음을 찾고 싶어서. 단순히 재미로, 시간 보내기로 책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어떤 상황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 둘 곳을 찾다가 발견한 게 책이었다고. 비슷한 맥락으로 읽게 된 게 이 책이다. 작가는 책이 마음속 깊이 들어와 삶을 바꾼 순간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어떤 순간에? 그건 각자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나는 좀 알 것 같다. 불안한 우리의 마음에 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유명한 강사의 몇 마디 조언보다, 순간적으로 와 닿았던 한 문장의 힘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책의 문장을 기억하려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 몇 마디 덧붙이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자기만의 마음을 담은 문장이 계속될 수 있기에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들린다. 우리가 찾고 싶은 것이(그게 무엇이든, 얼마나 큰 것이든),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것이기에 말이다.


작가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나의 예상보다 길게 언급해서 좀 당황하긴 했다. 처음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리고 어떤 순간을 경험하면서 그 책이 주는 삶의 방식이 매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한 개인이 사유하는 그 책의 서사에 대해 듣는 일도 괜찮았다. 유명한 요리사의 자신감 정도로 여겼던 바베트의 만찬이 그렇게 우아한 결말이었던가 싶었고, 요리사의 손으로 예술이 불태워지면서 비로소 자유의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이 의미 있게 들려왔다.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작가들의 공통점을 떠올리며 그 작가들을 연결하는 방식이나 생각도 좋았다. ‘그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 내적인 추진력, 우리 삶이 중심축 삼아 빙빙 도는 핵심, 앞으로 나아가게 혹은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지배적인 그 어떤 것, 이를테면 행동과 선택의 패턴 같은 것을 예리하게 파악했다. (107페이지)’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해준 레이첼 카슨의 바다의 가장자리, 시간과 에너지가 만들어준 내 자리의 힘과 가능성을 발견해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존 버거가 알려준 연민과 사랑 가득한 저항과 연대에 관하여.


책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향하게 한다는 걸 새삼 듣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한 문장을 곱씹으면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누구이고 싶은지 알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을 전파한다. 그렇게 우리가 책을 읽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 붙이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닮아간다고 말한다. 너무, 괜찮지 않나? 읽은 순간으로 멈춘다면, 그저 그런 취미 생활로 끝날 수도 있는데, 그 순간이 이어지면서 우리 삶이 계속된다는 말이, 계속 우리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것 같아서. 사실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이 책 읽으면서 어느 순간에서는 괜히 혼자 울컥한 적도 많았다. 그 이유를, 그 마음을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적을 수가 없다. 표현력 부족에,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어휘력 부족까지. 부끄럽지만, 그랬다. 내가 왜 이런 마음인 줄도 모르고 울컥해서 한밤중에 잠 못 드는 시간이 계속되는 게 힘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책이네.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는 게, 낯설거나 새롭거나 유혹적인 어떤 것인가를 받아들이면서 느리게 서서히 어쩌면 영원히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빠르게 갑자기가 아니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손바닥 뒤집히듯 바로 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달라지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거울로 마주한 내 표정이 달라져 있는 것을 기뻐할 수도 있다. 우울과 상실에 빠져 둘러보지 못한 주변이 보일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보나, 책을 읽어서 손해 볼 것도 없다. ‘문장들을 붉은 실 삼아 가슴의 상처를 꿰매려고 할 때찾아오는 삶의 변화를 이야기하게 되는 게, 그게 책이라는 게 괜히, 기쁘다. 한동안 읽지 못한 책이 어디로 도망갈까 봐 조급하던 마음마저 치유되는 듯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펼쳐도, 삶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남을 거라는 믿음에 안심이 된다.


특별히 소중하게 간직하는 책이 있다는 것은 마음을 다른 것, 자신이 가치를 부여한 어떤 것들로 채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 읽기는 낯설거나 새롭거나 유혹적인 어떤 것을 받아들이면서 느리게 서서히, 어쩌면 영원히 변하는 과정이다. 책 읽기는 이렇게 삶에 개입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대면하고 돌아보고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뜻깊은 일로 여기고 삶과 연결시킬 때 독서는 독자의 고유하고 창조적인 경험이 된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75페이지)










#책을덮고삶을열다 #정혜윤 #녹스 #에세이 #문학

#바베트의만찬 #모비딕 #그러나아름다운 #호라이즌 #바다의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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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기윤슬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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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게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은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어느 정도 이타적인 태도로 살아야 하는 건 맞지만,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그 이타심을 발휘해야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자기가 취하는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자신을 위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인지 더 궁금해진 하더라.


주인공 현주의 오늘은 행복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았고, 괜찮은 집안의 남자 석현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 행복을 계속 유지하기만 하면 인생 탄탄대로 그대로 달려가면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나타나 현주의 행복을 흔들고 있었다. 현주가 그렇게 잊고 지내고 싶었던 과거의 시간을 불러와 현주 앞에 펼쳐놓는다. 아니라고,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던 적도 있지만, 고의가 아니었으니 자기 잘못은 없다고 스스로 세뇌하듯 잊은 세월이었다. 어린 시절, 현주의 엄마가 재혼할 거라며 남자와 남자의 딸을 데리고 왔다. 현주 눈에는 마냥 한심해 보이는 이 남자가 자기 아빠가 될 자격은 없을 거로 여겼고, 그의 딸 역시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무시했다. 특히 그 남자의 딸 유미는 현주를 친언니처럼 따르며 사이가 좋은 자매 흉내를 내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었던 현주는 참고 살았다. 자기 나름대로 이들을 이용해 가면서 말이다.


대학에 합격하고 현주는 살던 곳을 떠나왔다. 그곳을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고, 더는 자기 인생에 그 시간을 포함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인제 와서 이런 협박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누굴까. 누가 현주를 협박하면서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자꾸 언급하는 걸까.


소설은 현주가 그 협박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에서 그녀의 주변 인물, 약혼자 석현과 오랜 세월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던 종욱 선배와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주의 고백 같은 시선과 엄마의 재혼남과 그의 딸 유미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때야 퍼즐이 맞춰진다. 아마도 그럴 줄 알았지만, 어느 정도의 뒤통수에 마치 내가 주인공인 삶조차 내 맘대로 될 수는 없는 건지 의욕이 꺾이기도 하더라. 아니면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의 속내를 그대로 알면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고, 상대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 살아야 하는지 불안하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보인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내 인생의 곁에 두기 싫을 때 내칠 수도 있는 건데, 현주는 그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왔던 것뿐인데, 왜 이런 결과를 맞이해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녀의 의도와 행동이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도 현주와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 인생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내 인생부터 챙기자는 마음으로 삶의 방향을 정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미필적 고의는 법률 용어 중 하나로,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어떠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주가 자기가 빠져있다고 여긴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행동을 누군가는 미필적 고의가 아니었냐고 묻는다. 어떤 상황이 나쁘게 될 것을 예상했음에도, 굳이 나서서 말리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방관함으로써 생긴 결과에 자기 인생이 피어나게 했다는 게, 정말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기만 한 걸까. 유미는 그곳에 가고 싶었을 뿐이고, 현주는 그곳에 가라고 했던 것뿐이고, 그곳에서의 일은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던 거 아닌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순간을 비웃듯, 완벽한 행복을 만들려고 했던 그 순간에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는 듯했다. 예상하지 못한 진실을 마주한 반전은 참 씁쓸했고, 내가 상대의 마음을 갖고 놀았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게만 보였다. 사는 게 내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기운 빠지기도 한다. 많은 것을 가진 내가 이긴 것 같지만, 언제든 나를 무너뜨릴 약점을 들킬 수도 있다는 게 생존의 민낯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 생존의 방식에서 우리는 언제든 미필적 고의를 저지를 수 있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에 보이는 무심함이,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면서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저지른 미필적 고의는 없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지를.


#미필적고의 #기윤슬 #한끼 #소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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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행복합니다
김가지(김예지) 지음 / 책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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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날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학생들 시험과 상관없는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지만, 조카들이 있다 보니 아주 남의 일도 아니다. 지난 추석 명절에는 고3 조카가 전화했다. 중간고사와 수능시험, 수시고사를 앞두고 할머니를 보러 가지 못한다면서, 시험이 끝나면 보자고 했다. 이놈의 시험은 언제 끝이 있으려나. 이 나이를 먹고도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시험을 볼 때마다 공부하기 싫어서 괴롭다. 계약직이나 단순 업무 아르바이트하더라도 서류 심사와 면접까지 통과해야 하는 걸 보면, 아마 죽을 때까지 시험 보고 평가받는 일이 끝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조카와 통화하면서 마지막 인사로 건넨 말은, 지나간 일에 미련 두지 말라는 거였다. 혹시라도 시험을 못 봤다고, 점수가 몇 점 부족하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이게 말이 되는지 아닌지, 이상하게 그것마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어쩌랴.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는 법이니.


이 책은 제목 때문에 펼쳐보게 됐다. 청소일을 하는 게 뭐가 어떻다고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까지 나와야 하는지 궁금했다. 말 그대로다. 청소일이 뭐? ?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인데, 그게 왜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의 어떤 인식, 청소 일은 많이 못 배우고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일로 보이는 걸까? 20대의 젊은 여성이 청소일을 하는 게 낯설긴 한가 보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꿈을 위해서 나아가는 그 과정을 묵묵히 걸어가는 저자의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누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볼 때마다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곤 했다. 역사 속 위인도 아니고, 지금 자기 상황을 열심히 사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부모의 좋은 환경,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으니까. 그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생각하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저절로 알게 되더라. 사람의 상식적인 태도는 가방끈과는 무관했고, 돈이 많다고 다 예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건 시간과 마음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저자는 그림만 그리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림만으로는 일상에서 지출되는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투잡은 기본이 되어야 했다. 그때 청소일을 시작했다. 이른바 요즘에 종종 듣게 되는 N잡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이 가득했을 때, 저자는 엄마가 하는 청소 일을 같이하게 됐다. 혹시 엄마가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은근히 각인된 세상의 편견을 무시하고자 한다. 안정된 생계를 위해 청소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책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자기 몫을 살아가면서 밥벌이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귀하고 또 귀하다는 것. 그런데 세상이 내놓으라는 답은 그것과 달랐다. 이미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는 어떤 기준이 답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디 내놔도 감탄할 수 있는 명함을 가지는 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속상하다.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해서. 그래서 이 책이 의미 있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어떤 길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꿈을 꾸다가도 방향 전환을 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던 것을 후회만 할 텐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가끔은 익숙하지 않은 길로 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진 않겠지만, 이게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불안하지 않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른 선택의 삶을 원하면서도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 선택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일 수도 있다. 내 인생에, 내 선택에 선을 넘어 참견하려는 오지라퍼들의 입김에 나도 모르게 움츠려둘 때가 있는 걸 보면. 그 선택이나 답은 지금 바로 알 수 없거나, 시간이 지나야 확인하거나 확신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내심이 필요하다. 선택하는 당사자도, 옆에서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도. 그러니 각자가 원하는, 진정한 나의 삶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좀,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기를.


수능을 앞둔 조카는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수학 교사를 하고 싶은지 수학을 연구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혹시 또 수학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릴지도 모르지. 어쩌면 학교에 다니다가 또 다른 선택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자기가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저자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현실은 청소일을 하고, 청소일로 소득을 올리고 그 여유로 그림 그리는 것에 만족하게 된 것처럼,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가능성도 충분히 크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 못지않게 그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는 이모의 기도를 담아, 지금 눈앞에 놓은 과제인 수능시험을 응원한다.



#저청소일하는데요 #김예지 #책폴 #에세이 #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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