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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마음
서유미 지음 / 마음산책 / 2025년 3월
평점 :
“화분을 하나 들여놓는 건 어때?”
집이 좁은데도 앞쪽 베란다에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 엄마 집에서 상비약으로 가져다 놓은 알로에는 돌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 채로 시들다가, 결국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블라인드를 걷어놓으면 거실 앞쪽은 훤하다. 베란다에 쌓인 먼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쪽을 보고 있자면 가슴 한쪽을 차지하는 답답함은 사라지는데, 이상하게 허전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없어서 개운한데, 또 아무것도 없어서 마음이 허해진다. 이런 걸 외로움이라고 해야 할지 뭔지, 모르겠다. 한숨처럼 이런 마음을 꺼내놓으니, 지인이 고양이를 한번 키워보라고 한다. 생명체를 돌보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하니, 이번에는 화분을 하나 들여다 놓으라고 권한다. 고양이보다는 그나마 덜 힘들게 돌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베란다 쪽을 보면서 휑해서 허전한 것보다는 뭔가 하나라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겠느냐면서. 글쎄. 게으른 사람도 누구나 잘 키울 수 있다는 알로에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지게 하는 내가, 또 어떤 식물이라고 기를 수 있을까?
“지나가야 하는데, 잊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193페이지, 보내는 마음)
서유미의 소설 『보내는 마음』의 많은 주인공에게 다가온 일들이 마치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와서 무서웠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야 할지, 언젠가 내가 맞닥뜨릴 일이라고 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든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진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많은 일과 너무 닮아서 멍해졌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다들 비슷하게 가슴의 상처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덜 힘들기도 한데, 왜 매번 새로운 수위의 힘듦이 찾아오는 건가 싶어서 여전히 어렵기도 하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일을 겪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떠오를 것 같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방법으로 옷을 사들이고, 그 옷들이 쌓이다 못해 무너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내려놓는 마음은 무거우면서 슬펐다(「무너지는 순간」).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많은 것이 나를 떠나가도 이렇게 사들인 옷들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거라고 여겼을까? 그렇다면 다른 방식의 채워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아니다. 이렇게 쉽게 찾아질 대책은 아닌 듯하다. 그걸 알았다면 옷장에 걸어놓은 옷이 무너질 정도로 채워 넣지는 않았을 테지.
우연히 찾은 쉴 공간에서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돌아가는 것처럼(「숲과 호수 사이」) 마음 한번 활짝 열어놓고, 쏟아낼 것은 쏟아보고 비워진 곳에 채우고 싶은 것은 다시 채워서 일상을 버틸 힘을 주는 곳 하나쯤 만들어보는 거, 정말 필요하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알게 모르게 나에게 박힌 상처를 보듬는 방법을 찾는 일이 바로 이런 거라고. 작은 화분 하나 집안에 들여놓으면 어떠냐고 묻는 지인의 말이 계속 맴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뜻 드러내놓지 못하는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주는 무언가를 옆에 두고 보라고. 완전히 사라지는 상처가 아니더라도, 조금 옅어지는 상처의 흉터 정도로 머물지 않겠느냐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살아가는 일의 극히 일부분인 줄 알았는데, 사실 인간관계가 살아가는 일의 대부분을 주관하는 것 같다. 한 사무실에서 내 밥벌이만 해도 되는데 옆자리 동료와 잘 지내야 하고, 부모와 형제, 친구 사이의 갈등 역시 인간관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면서 사실 너무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넓은 관계의 사람들까지 나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도 너무 막연하게만 들려서 종종 버겁다. 그래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버틸 힘이 남아 있기도 할 텐데, 이마저도 너무 어려워서 이 계절을 보내는 게 힘이 든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머릿속은 복잡해서 그런가 보다. 매번 잘 넘겨왔으니 여기까지 왔을 텐데,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어려움으로 느껴지는 거 왜인지. 누군가 모든 것이 다 끝난 후로 나를 넘겨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이런 마음도 웃기기만 하다. 내가 해야지 누가 하겠어. 이 시간을 잘 넘어가기만 하면 그 후로도 괜찮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
「어떤 여름」의 주인공이 본인의 노력에도 풀지 못할 상황을 피해 더운 여름을 지내기 위한 곳으로 향할 때,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하나로 그 바람을 느껴야 하는 게 여전히 더워 보였는데, 낯선 곳에서 에너지를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상했다. 어쩌면, 이게 정상인 건가. 일상으로 돌아갈, 이 더위를 그대로 받아쳐 낼 수 있는 용기가 그녀 안에 담기는 것 같더라. 그래서였나. 이 소설집이 술술 읽히면서도 한 번씩 가슴에 콱 막히는 순간을 몇 번씩 넘겨야 했다. 왜 많은 것이 머물다가 떠나가고,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 입히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건지 묻고 싶기도 했다. 원래 그런 거라고,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냐고 답이 없는 질문과 푸념을 이어가다가도, 그래도 한 번쯤 명확한 답을 듣고 싶기도 했다. 그 답이 이해되든 안 되든 말이다. 연인과의 이별은 슬픈 거고, 사회의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건 다반사고, 누군가 돌보는 일은 고단하고, 이 많은 일 가운데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건 뽑아내기 어려운 상처일 테고. 우리 일상이 이렇다고 거울처럼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K가 떠나기 전까지 나는 옷장이 부족한 거라고, 저 옷들을 잘 걸어두고 아름다운 옷들을 새로 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가고 내게는 그것이 아름다운 옷일 뿐이었다. 그것에 몰두하는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K에게는 달라지고 싶다고,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K를 붙잡을 수 있으니까. (33페이지, 무너지는 순간)
얘도 이러네, 나도 그래서 힘든데 하면서, 누군가의 마음 깊숙한 곳을 섬세하게 듣는 시간이었다. 사는 게 왜 이러냐 하면서 한숨 토해내고 싶을 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로 남을 것 같기도 하다. 적당히 조용하게 쉴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런 곳에서 숨 한번 크게 쉬고 돌아올 수 있는, 전혀 이해 못했던 일들이 조금씩 이해되는 시간을 만들면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와 대화하는 일도 편안해지는. 그렇게 우리는 마음이 무너지고 많은 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점점 더 자주 이별하는 일을 겪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라고, 무너지고 헤어지는 것 사이에서 마음을 쉬고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애정 어린 것을 놓치지 않게 하는 이야기에, 속 시원하게 꺼내놓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대신해 울기도 했다. 사실은, 이 포근하고 따스한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울고 싶은 마음을 터트릴 수 있게, 누가 옆구리 좀 찔러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다시 회복하는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유난히 ‘돌봄’의 의미를 가진 상황들이 각 단편에 담긴 걸 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 과정을 걷고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위로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그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이상할 게 없다고, 그러니 다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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