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마음이 자라는 나무 11
타라 설리번 지음, 이보미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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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초콜릿 뒤에 어린이 청소년 노동의 민낯이 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움과 향기에 가려진 진실을 듣는다. 우리, 같은 지구에 사는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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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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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돌봄의 역할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를 간병했던 게 엄마와 나의 일이 되었던 건, 다른 가족의 강요는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그랬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함께 사는 이가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웠다. 아버지의 옆에 있던 엄마와 내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엄마와 나는 그 일을 다른 가족에게 떠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여겼다. 후에 비용적인 문제까지 발생했을 때는 가족이 함께 의논하고 해결했지만, 그 이상의 것은 함께하지 못했다. 오롯이 함께 사는 이의 몫이었다. 그게 당연한가?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게 왜 당연히 엄마와 나의 몫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도 나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몸이었다. 아내라는, 옆에 있다는 이유로 자기 돌봄도 어려운 사람이 다른 이를 돌봐야 한다는 당연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어쩌면 다른 돌봄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의 전작 이완의 자세로 여탕에 드나드는 여성의 삶과 내밀한 속내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여성이 감당해왔던 돌봄을 듣게 되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돌봄이 왜 여성의 몫이 되었는지, 혹은 돌봄을 준비하는 것조차 여성의 책임이 되었는지 묻는다. 이 소설집에 담긴 열 편의 이야기는 한 집안의 여자가 책임지는 돌봄, 오늘을 사는 엄마의 역할이 만들어낸 돌봄, 고령화 시대에 감당해야 할 노인의 돌봄을 말한다. 그 어느 것도 우리 삶을 피해갈 수 없다. 집안의 문제는 해결해야 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나이 들어가는 당연함을 비껴갈 수도 없는 게 우리 삶이다.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돌봄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첫 작품 대추에서부터 마음이 쓰려왔다. 할머니를 돌보는 외숙모는 묵묵히 돌봄을 행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집의 대추 맛을 바라던 할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외숙모의 아들이자 할머니의 손자인 영석뿐이다. 남의 집 담을 넘어서까지 구해온 대추의 의미를 할머니는 모르리라. 엄마의 힘듦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아들의 마음. 단지 그것뿐이었다. 할머니가 당연하게 여기는 며느리의 돌봄이, 손주에게는 엄마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당연했을 테다. 경자에서 경자가 시대와 다른 여성의 인생이었다고 함부로 여기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경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욕하던 경자의 삶이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거다. 경자의 삶을 욕하던 이들은 집안의 남자였는데,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건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원하던 대로 살지 않는 집안의 여자를 욕하고, 그들이 저지른 문제를 해결하라고 등 떠미는 것 역시 집안의 여자들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그 마음은 ()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흐르는데, 평생 식구들의 뒷바라지에 인생을 바친 큰엄마의 부고에 주인공은 올케언니를 원망하는 듯 말한다. 큰엄마의 희생으로 이 가족은 평안했으며, 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 큰엄마는 주인공이 겪는 시집살이를 오히려 두둔했다.


미야. 큰엄마 말 들어라. 나 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웃게 된다. 결혼해서 여자는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지만 다 안다.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주면 부처님이라도 알아주신다. (65페이지, ())


이미 돌봄의 문제는 첫 번째 장에서 그 시작과 불평등을 확인됐다. ‘한 사람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문제였던 거다. 그때와 지금,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돌봄의 영역에서 얼마나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두 번째 장에서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돌봄의 속내를 보여 준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화려했던 여성의 삶이 돌봄의 실패로 가해자(?)처럼 살아가게 하는 연주의 절반. 잠깐 사이에 아이가 발코니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시모는 그 탓을 며느리의 죄로 여겼다. 만만한 게 애 엄마라면서. 이혼 후에도 연주는 아이를 잃은 슬픔과 스스로 죄인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로 위로받곤 했다. 화자인 는 육아의 고충과 위험에서 긴장하고 살지만, 연주는 자기 삶을 찾아간다. ‘만만한 애 엄마의 돌봄 세상을 자기 삶을 찾아가는 돌봄으로 채우는 것만 같다. 비슷하게 조리원 천국은 여성의 삶이 모유 수유를 잘하는 경쟁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세계를 말한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아왔는데,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다른 경쟁에 빠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돌보는 마음은 출산 이후의 아이 돌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보모를 구하는 어려움에서부터 아이를 맡긴다는 이유로 저절로 이 되어 고개를 숙여야 하고, 경력단절이 될까 봐 스스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마음먹기도 어려운 순간이 절망적이다. 보모의 소소한(?) 절도 행각까지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게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금액을 지급하고도 안심하거나 만족할 수 없는 육아 문제는 엄마 혼자 전전긍긍해야 하는 돌봄의 세계였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못하는 그 마음은 내 이웃과의 거리로 절망까지 심어준다. 쇼핑몰 핫딜을 찾아다니는 이웃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자기의 배려가 자신에게 박탈감을 심어준 것을 느낀다. 100원을 아껴서 생활하는 이가 10억짜리 집의 소유주라니, 4천 원짜리 마스크 한 장이 별거인가 싶어서 나눠줬던 게 전세살이의 이유가 되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이렇게 쏟아지는 불안과 불편의 감정은 오롯이 여성, 엄마의 몫이 된다.


당신은 대한민국에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 2년 쓸 수 있는 조식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6개월, 도합 9개월밖에 못 쉬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른 직원들 눈치가 얼마나 보이는 줄 알아? 기훈 씨 말대로 2년 쉬다 오면 기존 팀으로 복귀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까지 못마땅하면 당신이 육아휴직 해.” (151페이지, 돌보는 마음)


언니는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육아 휴직이 끝나갈 무렵 언니는 복귀를 고민했다. 당연히 다시 회사에 나가겠다고 했던 처음의 마음은 점점 어려워졌다. 보모를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고, 비용이 상당했다. 언니가 받는 급여의 거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했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를 생각했고, 이렇게 어린아이를 두고 나가야 하는 마음을 걱정했다. 결국, 언니는 복귀를 앞두고 퇴직했다. 2년쯤 후에는 둘째 아이까지 태어났기에 당분간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기는 더 어려워졌다. 너무도 당연한 흐름이었다. 형부는 일하고,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하게 언니 몫이 되어 두 아이를 돌보는 생활이었다. 외출은 물론이고 가끔 우리가 가면 같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크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언니는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아이 돌봄에서 벗어나도 된다고 여겼기에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언니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느라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일하기 시작한 거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육아의 문제는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가 되는 건 선택이었지만, 육아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경제적 능력까지 상실하게 되어 우울증까지 생긴다.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살피게 되고, 무능력한 자신을 탓하기에 이른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느냔 말이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모습은 이제 새롭지 않다. 입원의 분례는 치매에 걸린 남편에게 맞아가면서도 자신이 돌봐야 한다고 믿는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처럼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요양 시설에 입원시키고 오는 마음이 불편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특별재난지역의 주인공 역시 요양 시설의 아버지를 돌보고, 미혼부 아들이 놓고 간 손녀를 돌보느라 고단하다. 딸은 아들과 차별하며 키웠다고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배우고 살아온 대로 아이를 키웠을 엄마에게 돌아온 건 원망이라니. 하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이다. 딸이 느꼈을 서러움은 엄마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테다. 독신주의였던 여자가 불쌍한 남자를 만나서 돌봐야겠다고 여긴 태풍주의보, 이상하게도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나 싶으면서도, 이런 돌봄을 선택한 여자의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빠 부부처럼 잘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렇게 보이기 위해 누군가는 얼마나 많이 희생했을지 당신은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 부부가 지금은 각자의 삶을 바란다고.


오늘이 누구 생일이가?”

대수가 물었고, 식구들은 서로 눈빛만 교환하고 대답이 없었다.

식사나 하이소.”

분례가 대수의 컵에 물을 따라 주며 말했다.

오늘 당신은 그곳에 가게 될 거라고, 그곳이 당신의 마지막 장소가 될 거라고,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 나중에는 그곳에 가게 될 거라는 말을 아무도 대수에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구들 오랜만에 다 모이 가꼬, 오늘 기분이 윽수로 좋다.” (224페이지, 입원)


어떤 형태의 돌봄이든,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안 그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집에서 보여 준 이야기도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돌봄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처럼 돌보는 마음은 다양했다. 자기가 원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복수하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당연하게 해왔던 습관처럼... 그때마다 누군가의 희생은 필요하다. 육체의 노동으로 하든 돈으로 지급하든, 한 가정을 지탱하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도 확인했듯이, 돌보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세상의 모습 또한 다양했다. 인구 절감의 위기에 출산을 독려하면서도 경력단절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엄마가 출산했으니 육아의 담당도 엄마의 몫이 되는 흐름이 당연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이어져 왔다. 거기에 노년의 돌봄까지 아내와 엄마의 차지가 되어왔다. 여성의 의무와 책임은 왜 이렇게 거대해졌나. 특히 코로나 19 상황은 그 돌봄의 책임을 더 무겁고 크게 만들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돌봄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당황할 지경이다. 누구나 감당해야 할 돌봄의 문제가 유독 여성의 삶에 가득해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그 흐름과 이유를 알게 되는 게 서글펐다. 세월을 거슬러 시작되었던, 여성의 돌봄 노동이 여전히 이어져 왔다는 게 아프기만 하다. 그 크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여성은 가족과 아이, 가정 내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 먼저 차출되듯 선택되는 묘한 상황이 불편하면서도 애틋한 내 마음이 뭔지 궁금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돌본다는 기쁨, 이 돌봄으로 자기 인생의 변곡점이 생겼다는 원망, 같은 상황에 같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서로 완전 다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질투와 열등감, 본인 말고 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절박함까지.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기에 이 돌봄의 세계에서 버티는 사람들이다. 힘껏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의 엄마가, 내 가족이, 내가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의, 나를 돌봐줄 이들의 이야기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공감하고, 너무 몰라서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듣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무시를 견디는 엄마를 보며 살았던 내가, 엄마를 존중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무시하며 살았다. 결코, 당신의 삶에 나를 끼워 넣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나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간병에 오랜 시간과 노동을 감당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가족에 희생당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나고 보니, 나 역시 엄마를 돌보면서 그 돌봄의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당연하게 다가온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불편함을 치워버리고자, 엄마가 나를 돌봤듯이 이제는 내가 갚아야 할 일이 되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제 혼자 남은 엄마를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형제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갹출해서 저축하고, 엄마에게 생기는 문제를 같이 의논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내가 혼자 생각하는 돌봄의 순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계속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이 소설 속에서 많은 가족이, 여성이 맞닥뜨렸던 순간을 상상한다. 이미 겪기도 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다시 그 순간을 마주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여성의 삶 역시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근본적인 삶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돌봄 노동에 참여하든 돈으로 해결하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문제 앞에서 생각해야 할 게 마음이라고. 나를 보살피고,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지금 내가 찾아야 할 돌봄의 이유는 바로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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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들키지 않은 경험이 당신에게 있는가? 예를 들면, 어렸을 적에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탕 하나 훔쳤는데 들키지 않았다던가, 시험에 커닝했는데 아무도 못 봤다던가, 뭐 그런 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살인은 다르다. 이런 중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다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저질렀는데 여전히 그 범인을 알 수 없다면 우리는 무서워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살인이 범죄소설을 따라 한 모방범죄라면 그 공포는 더 크지 않을까? 즐기려고 읽는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살인을 만들어줄 선생이 된다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피터 스완슨의 작품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연쇄 살인이 등장한다. 처음부터 연쇄 살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나씩, 그 범죄를 추적하다 보니 이건 한 사람의 소행일 거로 여긴다. 그 중심에 범죄소설이 있다. 범인은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범죄소설의 내용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서점에서 일하는 주인공 맬컴이 과거의 어느 날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글 하나가 마음에 걸린다. 그는 추리소설 마니아이면서 추리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을 운영한다. 그가 과거에 그 서점에서 일할 때 책 좀 팔아보겠다고 정리해서 올렸던 리스트가 이 살인사건의 중심에 있던 거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다. 때로는 살인이 아니라 자연사로 보이게 하는 능력도 있다. 누군가를 죽이고, 혹은 의심받는 상황이 닥쳐도 결국은 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완벽한 살인 아닌가? 그러다 보니 이 소설들을 따라 하는 사람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소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의 범인 말이다.


범인은 왜 이 소설들을 따라 했을까? 블로그에 이 목록을 올려놨다는 이유 하나로 맬컴은 은근히 용의자가 된다. 처음에는 나도 맬컴이 범인이 아닐까 계속 의심했는데, 의심할만하면 의심이 풀리고, 의심이 풀릴만하면 의심이 되는 마음이 반복되더라. 진짜로 범인은 누굴까. 급기야 맬컴이 용의자로 지목되자 나 역시도 그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짙어졌다. 그의 인격이 두 개여서 사람 좋은 서점 주인과 연쇄 살인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 그런데 그 의심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가 범인인지 목격자인지, 아니면 그거 블로그에 글 하나 올려놓고 억울하게 의심받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모방범죄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현실에서도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는 종종 있었고, 그들은 마치 환상 속을 거니는 것처럼 범죄 사실을 말하곤 했다. 따라 하면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실패할 리 없을 것처럼 말이다. 그게 사실인지 알 수 없다. 지금도 미제 사건은 많겠지만, 누군가는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사건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소설의 범인이 간과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지점인 듯하다. 잡히지 않을 거라는 확신, 이 살인이 계속되어도 좋다는 즐거움을 한꺼번에 이루려는 듯 자신만만하다. 한 번의 살인은 두려움과 설렘을 주었지만, 점차 그의 인생에 활력소가 되었을 테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계속되면 그 두려움도 사라진다. 즐기는 수준에 이르지는 않을까? 누군가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만족감을 느낄지도 모르지. 이 소설의 범인도 그럴까? 사건들에 다가갈수록 사건 자체보다는 범인의 심리에 집중하게 된다. 왜 이런 살인을 계속 저지르고 있는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쩌면 다음 피해자는 맬컴 자신이 될지도 모르니까.


피터 스완슨의 전작들을 봐도 그렇지만, 이 소설 역시 가독성은 좋다. 계속 읽어본 작품들의 분위기가 비슷해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반면 어느 정도 기본 독자는 확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새끼를 치는 책이라 그런지 더 궁금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설에서 언급된 다른 소설들을 찾아보게 된다. 살인의 방법이 된, 추리소설의 고전처럼 남아있는, 따라 해보니 정말 완벽한 살인이 될 것만 같은 소설들. ^^ 제목도 익숙하고, 어디선가 한권 이상은 분명 읽어봤을 목록이 되시겠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덫, A.A. 밀른의 붉은 저택의 비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살의, 제임스 M. 케인의 이중 배상, D. 맥도널드의 익사자,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등은 물론이고 이 외의 작품들도 단서로 등장한다.


이 중에 몇 권 읽으셨는지? ^^ 목록을 보고 고개가 푹 숙여졌다. , 추리소설 좋아하는데, 이렇게 유명한 책들인데? 이 중에 읽은 게 딱 한 권, 그마저도 내용이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이거 꼭 확인하고 싶은데, 이 소설들 속에서 정말 맬컴이 소개했던, 범인이 원했던 완벽한 살인이 가능한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데 지금은 알 수 없네. ㅠㅠ 의지가 불끈 솟는다. 기어코 다 읽어내서 확인하고야 말리라.


소설의 내용대로 살인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일까 궁금했다. 범인은 소설의 내용대로 절대 잡히지 않은 완벽한 살인이 될 건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게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현실에 적용해도 똑같은 결말을 마주할 수 있을지. 읽는 나도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도 있을지,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을 수 있을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은 읽으면서 상상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지만, 간혹 이 소설의 범인처럼 그가 그 상상을 현실로 이뤄낼 수 있다고 믿으면 대책이 없다. 정상에서 벗어난 그 사고를 멈출 수 있는 건 범인을 검거하는 것뿐이다. 그에게는 나름 이 살인의 당위성도 있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골라서 죽이는 것이니 그다지 죄책감도 없다. 쓰레기 취급받을 정도로 나쁜 사람을 죽이곤 했다. 물론 처음에만 그랬다. 살인이 계속될수록, 점점 맬컴의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로써 분명해졌다. 범인은 맬컴을 겨냥한 거다. 그에게 보라고 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기분이다. 한쪽에서 당기면 끌려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반대편에서 확 끌어당기면서 메롱하는 느낌. 그러면서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와 감춰진 진실들이 이 소설을 더 복잡하고 촘촘한 짜임으로 만든다. 뒤늦게 들려오는 진실들은 이 살인사건들과 얼마나 연관이 되어 있을지, 완벽해 보이는 범죄소설이 현실에서 어떻게 이용될 수도 있는지 묻는 것만 같다. 눈에 보이니 따라 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누군가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도구가 된다. 들을수록 완벽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이어지고, 누군가는 정말 죽어 마땅한 존재로 남아있다는 게 놀랍다. 분명 살인은 범죄인데, 그 범죄의 피해자들이 죽었다고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 우리가 느끼는 법 감정이 여기에서도 통하는 것만 같다. 범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범죄의 피해자가 악인이라면 우리는 피해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걸까? 때로는 이 아이러니한 관계가 단순해지기도 한다는 걸 알겠다. 악인은 누군가 처벌할 수도 있고, 그 처벌을 은밀하게 감춰주고 싶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의 독자는 나와 비슷한 고민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죽어 마땅한 이들을 죽여도 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그래도 살인은 범죄이니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싶은 정의를 외치는...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꼭 하나로 결정되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이 소설의 묘미는 고전으로 불리는 추리소설을 복기하는 것이면서, 살인사건이 계속되면서 드러날 진실에 시선이 머무는 게 아닐까. 작품을 재현하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뿐만 아니라, 살인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작품을 비틀고 응용하면서 살인을 더 교묘하게 변형시킨다. 그러면서도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노력으로 작품을 헌정한다. 소개된 작품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확인하면서 감탄하고, 함부로 범인을 단정할 수 없는 미스터리에 빠지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 이제 이 소설의 살인 도구(?)로 이용된 작품을 확인할 시간이다.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그 범죄의 바다에 빠져 즐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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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1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픽쳐 읽을때 그런 느낌?이었어요
영원히 잡히지 않기를...^^

구단씨 2022-05-13 16:0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맞아요. 잡히는 것보다 어떤 사람들을 죽이는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신소재 쫌 아는 10대 - 석기부터 나노까지, 소재로 쌓인 문명의 탑 과학 쫌 아는 십대 10
장홍제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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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양한 소재가 우리 삶을 누비고 있다고? 호기심이 소재라는 주제와 만나서 화학으로 말한다. 따로 놓고 보면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화학과 일상과 공학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신소재 개발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변화시키는 게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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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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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온라인 설문 조사에 응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이와 성별을 선택하는데, 언젠가부터 마주한 설문 조사에서 그동안 2개였던 성별 항목이 3개였던 적이 종종 있다. 남성, 여성, 선택하지 않음. 익숙하게 남성과 여성 중에서 고르면 되는 성별이 3개가 되었다는 게 처음에는 놀라웠다. 점점 그 항목을 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성전환하거나 혹은 같은 성을 사랑하거나 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런 시선은 아니었을 테다. 놀랍고, 이상하고,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볼 때 이상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점점 알아간다. 우리가 이성을 사랑하듯, 지금의 성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듯, 나와 다른 이가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면 되는 일이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소우와 아이 커플은 여행지에서 소우의 친구 다쿠마와 그의 연인 사이카를 만난다. 우연히 만난 두 커플은 소우와 다쿠마의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워하면서 여행지에서 같이 지낸다. 처음 아이가 사이카를 봤을 때는 제법 도도하고 냉랭한 분위기여서 거리감이 있었는데, 여행 이후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아이와 사이카는 서로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가 된다. 이십 대 초반, 성인이 된 이들의 새로운 우정은 돈독하고 깊어진다. 일반인으로 단순한 일을 하던 아이와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사이카는 서로의 환경은 달랐지만, 제법 친해진다. 이제는 소우와 다쿠마와 상관없이 둘만의 우정을 쌓기에 바쁘다. 거부감 있던 첫인상은 언제였냐는 듯,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돈독한 관계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다쿠마가 사이카와 헤어졌다는 말을 듣는다. 바로 어제 만난 사이카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은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 걸까. 어떤 순간에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사이카는 아이를 마음에 담았다. 여행지에서 이후에 자주 만나면서 자기 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고백했다. 사랑한다고. 입을 맞추고 안고, 온몸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처음 아이는 사이카의 행동에 당황했다. 사실 아이는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소우와 연인이 되었고, 별일 없다면 두 사람은 곧 결혼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사이카의 고백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 고백 때문이 아니었다. 사이카의 고백과 동시에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그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매몰차게 거절하면 되는 일인데, 중요한 건 사이카의 마음을 점점 받아들이는 아이 자신의 마음이었다.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건 이미 그 사랑에 빠져들었다는 거 아닐까?


아이가 혼란스러워할수록 이 소설을 읽는 나의 마음도 불안해졌다. 각자의 애인이 있던 상황에서 어떻게 정리가 될까 싶어서 말이다. 소우와 다쿠마는 선뜻 둘의 사랑을 인정해주고 애인의 자리에서 깔끔하게 물러날까 궁금했다. 어떻게 이 마음을,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사회의 시선은 아직 이 사랑을 예쁘게만 바라볼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헤쳐나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아이와 사이카는 두 사람의 사랑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소우와 다쿠마가 인정하고 물러났음에도, 두 사람은 당당하게 서로의 사랑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사랑했고, 각자의 일을 응원했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하루하루 감정을 쌓아갔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위태로워 보이기만 했던 건, 아마도 내가 가진 시선 때문이겠지. 타인의 사랑, 누구나 사랑이 같은 모습을 아닐 거라고 알면서도, 인정하면서도 시원하게 이 사랑을 바라볼 수 없던 건, 나 역시 그 사랑을 바라보는 많은 이의 시선에서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지.


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서부터다. 동성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많이 들을 수도 없을 지극히 사적이고 드러나지 않은 표현일 것 같았다. 서로 입을 맞추고 몸을 만지고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는 이미 이들의 사랑을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하는 마음 너머에 서로의 육체에 닿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부분에서였다. 보기만 해도 좋은데, 입 맞추고 그 피부에 닿고 싶은데, 저 표정 저 행동 하나에 반해버렸는데, 이 마음 그대로 육체로 표현하고 나누었으면 좋을 텐데... 같은 성의 연애가 아니라, 그냥 서로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보면 되는 일이다. 이 마음이 사랑이라고 인정하면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이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 연애를 공개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서 부딪힌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배우 사이카의 활동에 제약이 될 두 사람의 관계를 사이카의 소속사에서 정리한다. 공개되어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기 전에, 사이카의 경력에 방해되지 않게 미리 잘라낸다. 아이는 이 사랑을 위해 잠깐 물러난다. 소문이 잠잠해지면, 곧 사이카에게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소속사의 의견에 따른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흐른다.


읽으면서 누구나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당신의, 나의 사랑은 어떠했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게 된다. 이 사랑을 오래 지키기 위해 지금 잠깐 물러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오래 만나지 못해도 그 마음 변함없이 지킬 수 있는지, 나를 거부하는 상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이기에 나를 더 보듬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이 사랑을 위해 이렇게 애써왔는데, 보지 못해도 이 마음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것도 몰라주고 나를 향한 원망만 쏟아내는 상대를 품어줄 마음이 나에게 남아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의 그런 의문에 답을 내려주듯,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의 사랑을 어떻게 복기하는지 증명한다. 오직 가슴에 자리한 사랑만 꺼내놓는다. 과거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나눴던 사랑을 기억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어떤 이유도 필요 없이, 그저 계속되는 사랑에만 집중한다. 이십 대 초반의,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에 경험했던 그 사랑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청춘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세월을 이기고야 만 사랑에 관해 말한다.


그동안 퀴어 소설을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완독하거나 깊게 읽으면서 그 사랑을 헤아려보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는 사회에서 점점 그 시선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알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현실 속 동성의 사랑은 이럴지도 모른다는 솔직한 느낌을 받았다. 사랑은 이런 거지. 이렇게 진하고, 솔직하고, 다정하고, 배려하는 마음. 사랑을 나누는 상대가 누군지, 성별이 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사랑이면, 그거면 된 거다. 원래 사랑은 그런 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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