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이렇게 살이 찔 수 있다는 걸 새롭게 확인하는 날들이다. 매일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다. 그냥 맛있는 것을 조금(?) 먹었을 뿐인데. ㅠㅠ 조심했어야 했다. 워낙 운동을 싫어하니 먹는 것으로 몸을 조절하며 살아온 인생이라, 그래, 그 맛있는 것(!)을 멀리했어야 하는데, 그걸 못 해서 이 몸뚱이가 되었다. 남편은 지금 자기가 결혼한 여자가 아니라 새로운 여자가 옆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여동생은 왜 이렇게 살이 쪘냐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입던 옷이 맞지 않으니 더 큰 옷을 사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몇 년째 옷을 거의 사지 않았다. 몸이 커지니 여름의 더위를 견디기가 더 힘들어지고, 희한하게도 몸이 살찌니 손과 발까지 커진 듯하다. 매일 신던 슬리퍼도 꽉 끼네. 하아. 이번 여름의 이른 더위와 폭염, 폭우 속 꿉꿉함을 더 힘들게 견디는 중이다. 앞으로도 운동으로 몸을 만들지는 못 할 것 같은데, 다시 먹는 것을 조절하는 수밖에 없는데,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진짜 힘들다. 이런 몸으로 고민이 많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게 위로라면 위로가 될까.
“이곳에서는 뚱뚱해도 놀림받지 않고 비키니를 입을 수 있습니다. 뚱뚱해도 옆 좌석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행기를 탈 수 있습니다. 뚱뚱해도 어깨를 움츠리지 않고 자유롭게 길거리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빅토피아, 8페이지)
키 165cm, 몸무게 110kg의 고도비만 엄희지. 평범한 여고생이 몸 때문에 현실에서 주눅이 들어 산다. 사람들이 자꾸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다. 뚱뚱한 몸이 아닌 날씬한 몸으로 변신한 애프터의 세계에 살고 싶지만, 아마도 이번 생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찾은 곳, 날씬한 사람은 입장할 수 없는 메타버스 빅토피아에서 친구를 사귀고 존재감을 느낀다. 어느 날 빅토피아의 이벤트가 열린다. 무려 1등 상품이 ‘언리밋 테테크’라고, 메타버스에서 맛만 느끼고 바깥 현실에서 아무것도 안 먹으면 쉽게 살을 뺄 수 있는 미각 동기화 시스템이다. 이걸 구매하려고 하면 3천만 원이 든다. 헉. 3천만 원으로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살을 뺄 수 있다면 좋겠지만, 3천만 원이 흔하게 가지고 있는 돈도 아니고, 그 돈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쓸 수 있는 금액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 이 경쟁에서 이기고 1등을 차지해서 ‘언리밋 테테크’를 상품으로 받고 애프터의 몸으로 살아가야지. 전투력 상승이다.
소설 『빅토피아』의 설정은 그냥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날씬한 몸으로 살고 싶은 우리의 갈망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청소년 대상 소설인데도, 중년의 시간을 사는 나에게도 솔깃한 제안이긴 하더라. 미친 듯이 싸우고 이겨서 내 몸을 살이 찌기 전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성시경 오빠 도와줘요~) 그래서 희지는 이 싸움에서 이겨 1등을 차지하고 애프터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비수를 꽂은 것은 남편이었다. 지난달 시아버지의 장례식 때 있었던 일이다.
“큰일인데.”
남편은 자꾸 그 소리를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뭐가 큰일이야?”
“오늘 회사 사람들이 많이 조문 온대.”
“그러면 감사하지. 다들 바쁜데 일부러 장례식에 와주시는 거잖아.”
“회사에서 내 아내는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한데 말이야. 내 동기나 상사도 우리 결혼식 때 말고는 당신을 본 적이 없으니 그러고도 남지. 미안한데 노리코, 잠깐만 어디 좀 숨어 있으면 안 될까?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남편의 눈은 진지했다. 충격이다 못해 쓰러질 뻔했다.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 19페이지)
남편이 저렇게 얘기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정말 놀라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장면이다. 가키야 미우의 소설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에서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은 각각 다른 상황에 놓여 있지만, 살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건 비슷하다. 노리코는 갑자기 찐 살 때문에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우울하다. 예쁘다는 소리만 듣고 살다가 갑자기 살이 찌니 자신감이 바닥이다. 어렸을 적부터 먹는 것을 좋아하고 뚱뚱했던 고기쿠는 파티시에가 되고 싶지만, 아버지가 강요하는 삶 때문에 고통스럽다. 그동안 뚱뚱한 사람을 혐오하면서 살아왔던 도모야는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자기 절제를 못 하고 먹어대기만 하는 뚱뚱한 몸이 되어 있었다.
뚱뚱한 몸이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고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어떤 이유로든 살이 찌면서 이들의 인생이 바뀌었고,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기 어려워졌다. 불안감은 터질 것 같았고, 자기 인생인데 자기 의지를 담지 못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나부터도 살이 찌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곤 한다. 맛있는 것을 보면 행복하지만, 먹고 나면 금방 또 우울해지는 과정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 몸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그렇게 흐르니 세상의 민폐족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대로 놔두면 안 될 것만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은 나의 인생, 나의 미래라는 커다란 삶을 파괴하는 일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이 순간을 바꾸기 위해 달라졌다. 뭔가 시작하면서 용기를 내고 있었다.
플럼은 뚱뚱하다. 그녀의 낮아지는 자존감은 위의 두 소설 속 주인공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회사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이유를 상기하며 하루하루 희망을 품는다. 월급을 꾸준히 모아서 수술해야 하니까. 곧 그녀의 몸에 머물던 지방은 사라질 거고, 날씬한 여자가 되어 그녀의 원래 이름 얼리샤도 되찾고, 그녀가 바라던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 소설 『다이어트랜드』의 플럼이 정말 수술해서라도 날씬해질 것을 기대하며 읽었다. 열심히 월급을 모은 보람과 꿈을 이룬 완성의 순간을 같이 기다렸다. 하지만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데, 플럼이 어느 회사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플럼이 날씬한 몸으로 변해가면서 진짜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슬프게도 이건 해당 프로그램을 주최한 회사의 상술이었고, 여러 가지 사기성 이벤트였던 거다. 한참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플럼은 날씬한 몸을 얻기 위한 의지를 잃지 않는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은 망했지만, 아직 그녀에게는 수술이 남아 있으니까.
처음에는 뚱뚱한 플럼의 날씬해지려는 계획을 지켜보는 재미로 흥미로웠는데, 중간에 한 명씩 등장하면서 그들과 어떤 조화를 이루며 흘러갈까 싶은 기대감이 생기더라. 얼굴 반쪽이 화상 흉터로 자리한 새너, 아름다운 여배우에서 비만의 아이 엄마로 변한 말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던 리타, 비밀이 가득해 보였던 줄리아, 칼리오페라는 성을 만들고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과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베레나. 그동안은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플럼, 아니 얼리샤. 그리고 제니퍼. 제니퍼의 등장은 세상 모든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 게 행복한 일인지, 자존감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보여주면서 소설의 느낌은 점점 무거워진다. 무거워지는 만큼 진지하고, 우리가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체중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 되돌아올 것이었다. 나는 온갖 일들을 겪었음에도 겉으로는 예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달라져 있었다. 나는 변신을 거쳤다." (다이어트랜드, 318~319페이지)
어느 단식원의 코치 봉희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봉희는 단식원에서 사라진 회원 운남을 찾으러 다니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단식원은 ‘Y의 마지막 다이어트’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이 운남이었기에, 반드시 운남을 찾아야만 했다. 체중을 30kg 넘게 감량한 운남은 이 프로그램의 최적인 주인공이었다. 현재 운남의 몸무게 50kg대 초반이 되었고,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한 다이어트 아닌가? 이 다이어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로 운남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스스로 사라져 이 프로그램 관련자들을 곤란하게 한다. 특히 운남의 코치 봉희는 이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급기야 운남을 찾으러 그녀의 고향까지 갔지만 허탕을 치고, 오히려 운남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온다.
‘얼마나 처먹으면 이렇게 되냐? 무거워서 이거 어떻게 들어?’ 죽고 싶었지만, 바로 죽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죽으면서까지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삶의 끝에서조차 존중받지 못할 거란 게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에요. 죽으면 끝이라는데, 웃기죠?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254페이지)
제목부터 비장한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우리가 비만에 대해 어떤 인식을 뒀는지 솔직하게 보여준다. ‘살이 찐 몸이 낮은 신분’이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듯하다. SNS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시선을 빼앗기고, 누군가 눌러주는 ‘좋아요’와 ‘팔로워’ 수에 일희일비하는 삶.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 시선에 모든 인생을 걸어서도 안 된다는 걸 자주 잊기에 소설 속 상황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타인이 보내는 시선에 상처받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그 상처에 누군가는 목숨을 걸기도 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이 소설은 그 목소리의 대변인이었다. 당신의 시선과 한 마디에 누군가는 상처 입고 좌절하며 생을 놓아버릴 수도 있다는, 그 상처의 주인공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그 주인공은 당신이 될 수도 있다. 단식원에서 사라진 운남의 존재를 다시 확인했을 때, 우리는 이 우스꽝스러운 프로그램의 결말에 만족하고 안심하게 된다. 당당하게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이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 빛이 난다는 걸 확인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다.
몸에 관한, 다이어트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비슷한 경험과 괜히 혼자 상처받은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건강 때문에라도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걸 아는데도, 이 몸으로 사는 게 얼마만큼 힘든 일인지 계산해 보기도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에 행복한 게 먼저인지, 손과 발까지 뚱뚱해진 내 몸을 관리해야 하는 게 먼저인지.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내 몸은 적당(?)했다. 불편함이 없었다. 맹장 수술 전에 초음파 검사를 받는데, 의사가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었다. 초음파 기기로 배를 눌러서 봐야 하는데, 양쪽 골반이 자꾸 기기에 걸려서 아프겠다고. (이런 날이 나에게도 있었다고. ㅠㅠ) 하루에 한 끼를 먹어도, 이틀에 한 끼를 먹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밥을 먹는다는 건,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배고플 때 먹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남편을 만나고 자꾸만 뭘 먹으러 다녔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혼자 먹기 어색할까 봐 같이 먹던 게 점점 습관이 되어 몸무게가 자꾸 늘었다. 입이 터졌다고 하는 그거 말이다. 평소 거의 안 먹던 사람이 한번 입이 터지니 그 터진 입을 꿰매지 못하고 오늘까지 이어진 거다. 먹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어 좋아해야 할지, 예전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걸 슬퍼해야 할지, 참...
다음 주에는 남편의 휴가가 있다. 평소 더운 날에는 움직이기 싫어서 휴가가 있어도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처리하러 다니곤 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몇 개의 병원 진료와 검진을 예약했고, 평일에만 가능한 은행 일정을 정해놓았다. 엄마 집과 시골에 한 번 다녀오면 짧은 휴가가 다 끝나겠지만, 아쉽지는 않다. 그 일정들 사이에 맛집 투어가 있기 때문이다. ^^ 평소 어느 식당의 어떤 메뉴가 맛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메모하고 저장해 두었는데, 이번 휴가 기간에 그 맛집들을 다녀오기로 했다. 메뉴도 소박하고 그동안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시간이 안 맞고 귀찮아서 포기했던 음식을 먹으러 간다. 여전히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지만, 맞는 옷이 없어서 한 번씩 우울해지지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있으려니 기분이 좋아진다. 매번 음식을 앞에 두고 고민한다. 이 음식을 먹는 게,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옆에 있는 이가 말한다. 이 순간만큼은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고. (아휴, 이 인간은 그러다가 내 몸이 이렇게 되었다는 건 잊었나 보다)
그래, 다음 주까지 맛있게 먹고 8월부터는 살을 조금만 빼자. 올해 안에 병원 검진도 받아야 하니, 괜히 검진하고 안 좋은 결과 나와서 계속 약 먹어야 하는 것보다 낫겠지. 소박하게 감량 목표는 한 달에 3kg? 될까? 되게 해야지. 이유와 목표가 생겼으니까. 예전의 몸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건 어려워도, 옷 크기를 지금보다 한 크기는 줄어야 내 몸이 건강해진 걸 확인할 수 있을 듯해서. 내 몸을 내가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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