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더위에 에어컨을 끼고 살았다. 그 결과는 다들 알겠지만, 전기요금 폭탄이다. 이번 달 관리비 고지서 보고 화들짝. 예상하긴 했지만, 참 많이 썼다. 평소에 이렇게 전기요금을 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하는 손이 후들후들 떨리더라. 6월에 사용한 게 8월에 청구되는 방식이고 여름 고지서는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서너 달은 더 떨리는 마음으로 고지서를 받아들 것 같다. ㅠㅠ 매년 여름에 사용하는 전기량이 다른 계절보다 많긴 하지만, 전기요금으로 따져보면 평균 사용하는 요금보다 5천 원 정도 더 나오는 수준이었다. 에어컨을 쓰는 데도 이 정도밖에 안 나왔다고? 여름이니까 더운 건 당연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여름에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정말 더우면 약하게 설정된 찬바람 정도? 그런데 올해 여름은 시작부터 괴로운 더위였다. 밖에 나가면 뜨거운 햇살에 등짝이 탈 것 같고,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에어컨부터 켰다. 그렇다고 밤에 끄고 잘 수도 없었다. 문제의 그놈, 열대야. 이제는 정말 헤어지고 싶은데 아직 멀었다는 듯이 바짓가랑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미친 듯이 쏟아진 비에 손 흔들며 찾아온 더위의 절친인 습기까지. 이 꿉꿉한 습기라도 좀 사라졌으면 좋겠구먼. 아무래도 여름 다 가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더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서 책장이 더 잘 넘어갈 것 같지만, 아니었다. 더우니까 자꾸 뭔가를 더 마시게 되고, 어디서 숨어있는지 모를 습한 기운이 피부에 닿아서 손끝의 땀이 잘 마르지도 않는다. 손에 책을 들고 있어도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는 더디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기라도 하면, 살짝 졸린 기운이 돌아도 금방 손에서 책을 내려놓는다. 아무런 죄책감이나 아쉬움이 없이 말이다. 그래서 겨울보다 여름의 독서량은 훨씬 줄어든다. 나의 경우에 그렇더라. 이번 여름이라고 뭐가 다르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도서관에 신청한 책들 반납하기 전에 읽으려고 애쓴 흔적이 조금 남았다. 열대야와 싸우며, 더워도 한 페이지만 더 넘기겠다고, 그러려면 가독성 좋은 추리소설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쳤다. 읽고 보니 취향이 아니었던 책도 있었고, 정말 재미없던 책도 있었다. 다른 독자의 후기가 좋건 나쁘건, 책이 가볍든 무겁든 상관없이, 이 지독한 열대야에서 조금이나마 나를 견디게 해주었던 책들을 저장하는 중이다.



<급매 106101>

이미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급매로 나온 물건이 이유가 없을 리 없다는 의심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 같은 조건의 다른 집보다 싸게, 급하게 팔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는 거다. 얼마나 급했으면, 얼마나 안 팔릴 것 같았으면 그 가격에 내놓았을까. 층간 소음에 시달리던 부부가 급매로 나온 솔숲아파트 106101호를 홀린 듯 계약한다. 찾아다녔던 1, 시세보다 저렴한 집, 임신을 준비하고 있으니 아이가 태어나면 이 정도의 공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계약하고 입주했다. 그 후로 이 집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이런 불행이 정말 우연일까?

예상했듯이 이 집에는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은 먼저 살다가 나간 사람들을 괴롭혔다. 누군가의 안부를 물으며 잘 살고 계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의미였는지 새삼 알게 된다. 이 집을 둘러싼 기묘한 소문과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에 관심 없이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도 느끼게 된다. 잘못하고 살았으면 반성하고, 남의 가슴에 상처를 줬으면 진심으로 사과하자. 말도 안 되는 욕심에 여러 사람에게 고통 주는 가해자로 남는 게 즐거울 리 없지 않은가. ‘급매에 현혹되지 말고, ‘급매의 사연에 무심하지도 말자. 이유 없이 발생하는 일은, 거의(아마도?) 없다.



<주와 연>

소개로 쓰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설정부터 이야기가 흘러가는 과정, 마지막 반전까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었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이런 식의 복수, 신선하잖아.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와 그 여자에게 복수하고자 그들의 자식으로 태어난 주인공. 이미 한번 살아봤던 십몇 년의 생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지겹기도 했겠지만, 자기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번 생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갈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그들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계획이 완벽하게 마무리될지도 궁금했고 말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미 살아본 시간이 반복되니 내가 우위에 있을 것 같잖아. 너희들이 아직 모르는 걸 나는 다 알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든든한 백이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두려운 것 없는 시간을 살아갈 것 같지만,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있으니 그게 또 인생 아니겠나. , 진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건 마지막 반전이었다. 주인공의 복수가 완성되어가는구나 싶을 때, 튀어나온 또 다른 이의 복수 같은 결말. ‘내 마음, 내 상처를 너는 무시했지. 그러니 너도 내 마음 그대로 받아보면서 살아 봐. 인생 2막을 만들어낸, 지금의 너처럼.’ 그런데 말이야. 나는 좀 궁금하고 속상한 게, 살면서 누구 미워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게 하라고? 그냥 상처받은 채로 놔두면, 저절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없어져?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인기몰이할 것 같다. 회귀물이 실패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이 작품이 회귀물은 아니어도 인생 다시 시작한다는 거로 생각하면 비슷한 설정이니 낯설지는 않을 듯.



<개의 심장>

이 책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내가 언제 이 책을 샀었나 싶게 이번에 기증으로 보내려는 책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ㅠㅠ 산 줄도 몰랐던 사실보다, 이 책 내용이 다시 떠올라 살펴보니 드는 생각, 진짜 무섭구나. 1920년대의 러시아가 배경이다. 떠돌이 개는 우연히 자기를 사랑해주는 주인을 만난다. 주인은 개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 주었고, 개는 주인의 보여주는 사랑에 반한다. 사실 주인은 오랫동안 해왔던 연구의 완성을 위해 개를 수술시키려던 거였다. 개에게 인간의 뇌와 고환을 이식하고 수술 예후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 어디까지가 인간의 연구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욕심일까 궁금했다. 이 소설도 비슷한 의문과 서늘함을 주는데, 문제는 개에게 이식된 인간의 뇌가 어떤 작용을 해도 좋은 결말이 나오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 생각이었다. 개는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떠돌이 개로 살던, 거리의 부랑아 같은 습성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최소한으로 갖추어야 할 예의조차 없는, 외모가 인간이어도 인간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쯤 되니, 독자도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 상태가 계속되어서도 안 되고, 계속될 리도 없으니까. 주인이 예상하지 못한 수술의 결말이 이 정도인데, 이 나쁜 상황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 무서운 건 이 실험(?)의 의도였다. 인간 본성을 교정하겠다며 개에게 이식수술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창조물이 완성될 거로 믿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었으니까.

세상 가장 위험한 건 역시, 인간이었나.



애증의 <프리다 맥파든>

이제는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신간 소식에 한 번쯤은 기웃거리게 되는 작가. 올해 출간작을 찾아보니 11권이나 된다. 아직 올해가 다 지난 것도 아닌데, 다른 본업도 있다는데 이 정도의 다작이 가능한지 놀라울 뿐이다. 그동안 써 놓은 것이 몰아치며 쏟아져 나오는 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에너지가 부럽긴 하다. 올해의 그 많은 출간작 중에서도 분명 페이지를 펼친 게 있다. 다시 안 읽어야지 욕하면서 덮고서는, 스리슬쩍 또 손을 대고 있으니 이 무슨 마음인지, . <세입자>, <더 티처>, <친애하는 데비에게>, <대리모>까지 4권이나 손을 대고 말았다. 문제는, 이번에는 펼치는 족족 완독하지 못했다. 초반부 읽다가 덮고, 어쩌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건 기억도 못 하고. 이제 정말 그만 읽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 귀찮아서 그냥 두었던 신간 알림도 취소하고, 책장의 책도 정리하면서 작별을 고해야 할 작가로 남을 듯하다. (이렇게 말해놓고 또 읽으면 어떡하지? 연예인의 은퇴 번복 인터뷰라도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 작가 작품 대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는 게 이제야 떠오르네. 엄마가 평일 저녁 7시 조금 넘어서인가부터 저녁 9시까지 채널 바꿔가면서 3편의 일일드라마를 보시곤 한다. 얼마 전에는 병원 진료 때문에 우리 집에서 주무신다고 오신 적이 있는데, 그날 저녁에 그렇게 드라마 3편을 연이어 보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났다. 옆에서 말동무해드리려고 같이 앉아서 보는데, 아 진짜, 너무 웃긴 거다. 드라마 제목과 채널만 다를 뿐, 내용이 다 똑같아. ㅎㅎㅎ 몰랐던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본방송 사수하면서 같이 보고 있으려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생각해보면, 내가 즐겨보는 다른 장르의 드라마나 예능도 다 비슷할 텐데 말이야.



8월 한 달 동안 읽은 책이 10권은 넘은 듯하다. 대충 페이지를 넘기거나, 흐르는 땀을 잊을 정도로 푹 빠져 읽었거나. 그중 대부분은 한국 추리소설이었고, 괜히 가슴이 섬뜩해지는 이야기였고, 자주 만나지 않는 작가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설정과 문제 해결 과정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이라는 걸 알아서인지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나 역시 착한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상처받는 내 마음만 보이는 인간이라 그런지, 복수의 설정에 더 애정을 쏟으며 읽게 되더라. 언젠가부터 중간이나 적당히가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모가 난 구석이 더 많아지는 것도 사실인데, 살면서 자꾸만 이기적으로 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배려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 무서워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호의를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걸 느끼고 싶어서 자꾸만 이야기를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어떤 결말에서 한 번씩 반성하고 마음을 쓸어내리는, 아직 내 마음속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남아 있는 거라고, 그렇게 안도하고 싶어서라고 안심해 본다.



거의 두 달 동안 타 죽일 것 같은 햇살과 열대야에 지쳤는데, 거기에 폭우가 합세했다. 내가 사는 이곳은 크게 가뭄이나 홍수 같은 거 없이 조용한 곳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폭우에 잠기는 곳이 생겼다. 어젯밤에도 미친 듯이 쏟아지더니, 새벽부터 사이렌 소리에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라. 지역 카페 게시글에는 폭우 피해가 넘쳐났고, 한밤중에 주차된 차를 빼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다행히 우리 아파트는 지대가 살짝 높아서 물에 잠겼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비가 내릴 때마다 이런 피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불안하긴 하다. 더위와 습기에 짜증스러운데, 피해당한 일을 회복하려고 안달복달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친 이들의 마음을 알아서. 아직 끝나지 않은 비는 지금도 폭우 예보와 안전 안내 문자를 쏟아내고 있다. 더는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이 여름이 더 나쁘게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열대야사라져! #급매106101#주와연 #개의심장 #프리다맥파든

##여름책 #추리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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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충 사육 준수 사항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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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트럼펫을 불었지만, 그게 생계를 유지해주지는 않았다. 정한은 잊고 있던 현실을 직시하고 트럼펫을 내려놓는다. 막막했다. 예체능의 바다에 있던 그가 어디로 헤엄쳐서 갈 수 있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그가 발 디딜 곳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국가 지원 사업인 식용 곤충 재배의 기회가 주어진다. 때가 되면 갚아야 할 빚이지만, 그에게 3억 원이라는 대출금도 준단다. 이 큰돈이 그가 새롭게 태어날 발판이 되었다. 식용 곤충 재배할 준비를 마친 그가 전에 없던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언젠가 인간의 먹거리가 될 식용 곤충, 일명 빵충사육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루 2시간 정도 관계 기관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면서 매일 반복된 일정을 소화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빵 맛이 나는 이 벌레는 맛도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아니, 근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건 맞잖아. 진짜 딱 봐도 무슨 애벌레가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빵이, 그 이름마저 빵충이라는데, 선뜻 손이 갈 수 있을까? 배가 고플 때는 손가락도 빨아먹을 만큼 먹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 솔직히 표지만 봐도 이걸 먹는 거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책 소개 글을 보고 이게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다시 봐도 영 적응하기 어려운 비주얼이다. 암튼, 이 빵충 사업은 정말 잘 됐다. 사람들의 호기심과 만족감을 채워주었고, 홍보도 잘 되어 이대로라면 돈을 쌓아두고 사는 인생이 계속될 것 같았다. 밥벌이도 못 한다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던 가족들에게 명절에 선물도 사 들고 방문했다. 살면서 이렇게 만족스러울 때가 또 있었을까. , 행복해. 반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정한이도 행복했다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곤충을 식용으로 일상화할 수 있을까? 물론, 이미 여러 가지 곤충을 먹는 장면이 낯설지는 않은데,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설정이 그저 상상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되나 싶은 거부감이 생기기도 한다.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바퀴벌레를 양갱으로 만들어서 먹는 장면을 보면서 속이 울렁거렸는데(바퀴벌레 양갱을 먹는 사람들은 그들이 먹는 양갱이 바퀴벌레로 만든 건지 처음에는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 곤충들이 단백질 풍부한 흔한 먹거리가 되는 게 실현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빵충 사업으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주인공, 같이 이 사업에 선정된 이들을 보면서도 마냥 긍정적인 결말을 생각할 수 없었다. 원래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이들에게 주어진 행운이 조금이라도 어긋날 때 그 본성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사업이 잘되니까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이 이 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다 보니, 수요는 한정적인데 공급이 늘어나고 빵충 가격도 하락한다. 한 달 최저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돈이 쥐어지자, 처음 빵충 사업에 참여했던 정한과 동기들은 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위반하면서 자이언트 빵충의 재배에 뛰어든다. 그리고 점점 그 준수 사항을 벗어나는 범위가 커지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분위기가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무슨 방탄복처럼 연상되는 빵충 번데기, 그 번데기에서 나오는 냄새는 무엇이기에 성충을 홀리고 있는지, (더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까 봐 여기서 그만) 빵충 사업으로 풍요로웠던 표정들은 이제 피 칠갑을 보고 뒤로 자빠지면서 살길을 찾느라 애쓴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먹고 사는 게 어렵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생업이 되고, 그게 돈이 되면서 생계에 지장이 없는 정도라면 금상첨화겠지. 하지만 그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현실이다. 정한이 오랜 시간 트럼펫을 불면서,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적은 돈을 벌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건 잠시 현실을 잊은 채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현실을 마주했을 때는, 발버둥 치는데도 벗어날 수 없는 실패의 늪이었다. 인생의 처음 주어진 행운처럼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고 성공 가도를 달릴 때는 독자인 나도 같이 신났다. 이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봐야 같이 으쌰으쌰 살아갈 맛이 나는 거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목숨을 건 전쟁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때는 숨 차는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것뿐이었는데 왜 이렇게 흘러가지? 주어진 규칙을 성실하게 지켰는데, 나중에 보니 그 규칙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했을 때는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인생 실패도 겪어보고 잘못 살아온 시간에 속죄도 했는데, 사랑 하나만 믿고 새로운 시작에 뛰어들었는데, 왜 세상은 내가 그리는 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 건가. 살아보겠다고 욕심 좀 부린 결말이 이렇게 처참해도 되는 거냐고.


내 취향의 소재는 아니었지만, 너무 흥미로웠다. 많은 관객이 봤다는 영화 <부산행>도 나는 그저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취향은, 괴물이 나오고 뭐가 막 잡아먹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그러니 열차 안의 좀비들이 그냥 웃기게만 보였겠지. 그런데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말았다. 그놈의 빵충, 인간의 먹거리를 대신해줄 단백질 덩어리의 변화가 어떤 결말로 최후를 맞이할지 궁금해서 말이다. 처음 빵충 사육의 성공을 보면서 주인공과 같이 기뻐했고, 어제까지 망한 인생 좀 피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이 어디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상기해주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주인공의 인생이 변화하는 것만큼 빵충이 변화하면서 일으킬 또 다른 사건이 기대되면서 긴장감이 몰아치더라. , 진화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었구나. 진화하는 만큼 욕심이 다양해지고 커진다는 것 역시 어느 개체나 비슷하게 적용되는 본심이었다는 걸.


저자의 말처럼, 사육종으로 살면서 야생종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길러지듯 수동적으로 좀 편하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길들여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살면서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겪는 순간들이었다. 정한의 말대로 그가 마지막에 붙잡은 게 미래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고붙잡았으니,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살아온 인생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이 한 편씩 들려올 때마다 리듬을 타는 듯했던 이야기는, 다양한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게 한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봤던, 삶의 궤적이 그대로 비쳐서 누구 하나 미워할 수도 없게 하는 게 참, 아이러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재난 영화인가 싶었는데, 세상살이의 잔인한 교훈으로 가득한 이야기였네.



#빵충사육준수사항 #김혜영 #안전가옥 #안전가옥오리지널 #소설

#한국소설 #공포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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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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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을 안 쓰는데 매달 카드사에 내는 돈은 늘 비슷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이자가 늘어 있었다. 이제 보니 대출 이자까지 얹어 카드 할부 이자. 이자의 이자가 새끼를 갔다. 그리고 고정비, 병원비는 계속 나갔다. 통신비도 나갔다. 교통비도 나갔다. 연애는 해야 하니까 가끔 마시던 커피값도 나갔다. 구라 안 치고 그것 말고는 진짜로 쓰는 게 없었다. 어디서 돈이 새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나는 빨간 펜을 들고 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봤다. 소름 돋게도 다 내가 쓴 돈이 맞았다. 할부로만 240만 원이 고정비로 나가니 당연했다. (124페이지)


아무런 소득이 증명되지 않아도 카드를 발급해 주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에게도 활짝 열린 문으로 다가와, 신청서 한 장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지금 이 물건을 사고 싶은데 현금이 없어도 살 수 있고, 다음 달 결제일까지 시간도 있고, 그 시간까지 이 물건값을 충분히 만들 수 있잖아? 노프라블럼. 그러니까 이 물건을 지금 사도 돼. 사고 싶은 물건이 너무 큰 금액이어도 괜찮았다. 우리에게는 그 돈을 나누어 갚아도 된다는 할부가 있으니까. 엄마가 집에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고, 매달 2만 원씩 내던 거 생각해봐. 별거 아니었잖아. 조금씩 내면서 결제 완료했잖아. 그렇게 될 거야. 순서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물건 먼저 받고 돈을 내도 되는 일이었다.


족한 거 없이 자랐던 수진의 인생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다. 머슴처럼 일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일해도 받는 월급의 액수는 같았다. 더 나은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이 바닥이 다 그런 건가 싶어서 망설일 즈음, 문제가 뭔지 알았다. , 일을 잘 할 수 있는 노트북이 나에게 없던 거구나. 노트북을 사야만 했다. 하지만 값은 비쌌고 지금 받는 월급으로는 노트북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그때, 회사 로비에서 마주친 젊잖은 언니들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조건 없이 카드 발급, 비싼 값의 물건도 24개월 할부로 구매 가능하다는 말에 수진이 카드 발급 신청서를 쓰는 게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수진이 빚더미에 앉아서 내려올 줄 모르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


할부, 좋지. 지금 100만 원이 없어도 100만 원짜리 물건을 살 수 있고, 부담도 적게 나눠서 내도 된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나도 경험한 적이 있다. 나눠서 낼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에 고민하던 물건을 결제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걸 사도 괜찮은 걸까? 너무 비싼데.’ 하던 고민의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다행히도, 그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눈앞에 다가온다는 것을 제법 빨리 알게 되어 카드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습관을 들였지만, 솔직히 카드 할부의 매력은 큰 것 같다. 지금은 무이자 할부만 가끔 사용하곤 한다. 수진이 마치 기막힌 발견을 한 것처럼 할부의 매력에 빠져들 무렵,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분명 산 게 없는데, 내가 내야 할 돈은 지난번에 구매할 노트북의 할부 금액뿐이었는데, 왜 매달 내야 할 돈은 이렇게 많은 거지. 적어도, 왜 줄어들지 않는 거지? 계속 돈 내고 있었잖아. 그때 수진은 몰랐다. 할부의 매력에 빠져서, 노트북뿐만 아니라 나눠서 내면 된다라는 믿음으로 계속 사고 있었던 것을. 게다가 할부로 갚아도 된다는 신용은 공짜가 아니었다. 할부 이자가 있었다. 원금을 아무리 나눠서 내도 거기에 얹어지는 이자 수수료를 더하니 원금보다 비싸지는 건 당연했다. 그때부터는 매달 결제일에 연체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싸움이 시작됐다.


돈도 안 벌면서 왜 돈을 자꾸 쓰는 거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수진도 나름 일하는 어른이다. 시로 등단했고, 시를 써서 먹고살았다. 처음 등단했을 때는 기뻤다. 시인이 되다니. 상금까지 준다네. 시상식에 갈 옷을 고르면서 카드를 긁었다. 상금 받으면 낼 거니까.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하려고 카드를 긁었다. 낭독회에 입고갈 옷이 지난번에 입은 옷과 같을 수는 없으니 또 카드를 긁었다. 옷에 맞는 가방과 신발까지, 겨울에는 또 명품 외투까지 장착하느라 수진의 카드는 쉴 시간이 없었다. 수상도 했으니 작가들 모임에도 참석해서 한턱 거나하게 내기도 했다. 시를 쓴다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어른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는 게 없어 보였다. 다만, 순수문학을 한다는 것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수진은 몰랐을 뿐이다.


수진의 일상에서 돈을 안 쓸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는 이유는 넘쳐났다. 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 여러 가지 쇼핑이 필요했다. 좌절감에 무너지는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밝은색 립스틱을 샀다. ‘예술적 영감이 필요하다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 수시로 긁어댔던 카드의 위험은 자존감이 바닥날수록 보상받아야 하는 마음으로 둔갑하곤 했다. 그렇게 시작된 마음 치료가 점점 이유도 모를 쇼핑으로 이어졌다. 왜 샀는지도 모를 빨간색 구두가 6개월째 상자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진의 방은 온갖 택배 상자가 쌓여있고, 겨우 몸 하나 뉠 자리만 만들어졌다. 뜯지도 않은 상자들 속에 있는 물건은 상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그 물건들의 가치는 매달 달려오는 카드 결제일의 긴장감 속에 있었다.


카드를 긁는 순간 우울은 증발하지만, 영수증이 날아오는 순간 불안은 복리로 증폭된다. 그러면 다시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또 다른 결제를 실행한다. 2,900만 원은 내 뇌가 저지른 오류의 합산이자, 내가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던 시간들의 물리적 부피였다. (74페이지)


이상하다. 수진이 빚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빚을 갚기 위해 미친 듯이 자기 시간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왜 쌓이는 게 없을까. 그렇게까지 했는데 빚은 줄어야 하고 시간은 여유가 생겨야 할 것만 같은데 말이다. 그 빚을 갚겠다고 편의점 알바에 시간 쪼개 큰돈 되지도 않는 강의를 뛰고, 영혼 없는 글까지 써가면서 돈을 채우고 있는데도, 남은 빚이 줄어드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수진이 애인에게 보고하듯 빚 갚아가는 과정을 얘기하는데, 이상하게 화가 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유가 어찌 됐든 수진이 그 빚을 책임지겠다고 노력하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수진이 갚은 액수나 남은 빚의 금액에만 방점을 찍은 그의 말이 너무 잔인하게 들렸다. 최소 연봉 7천에 모아둔 돈이 4억이나 된다는 그의 입장에서,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여자의 빚과 소득이 부담된다는 사실을 이해 못할 것도 없는데, 어떤 상황에서의 노력보다 눈앞에 남은 문제의 현실만이 계산된다는 게 슬펐다. 물론 처음 소비 습관을 잘못 들인 수진의 책임이 가장 커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만 따진다면 인간은 누구나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보기 좋게 포장되거나 돌려 말하는 부드러움이 없는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이렇게 촌철살인 하듯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말이 차라리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이런 소재, 이런 과정을 담은 이야기가 따뜻하게 들리면 안 될 것 같다. 혹시나, 다시 잘 될 거니까 또 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반복될까 봐. 그런 안심에, 남들의 시선 먼저 생각하며 치장하고 괜찮은 척하느라 자기 인생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까 봐. 동시에 순수문학의 세계를 엿보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작가의 길이 쉽지 않다는 마음에, 그런데도 그 길을 가고 있는 누군가의 고단한 일상을 추측해보기도 한다. 언젠가 봤던 어느 작가의 칼럼도 생각난다. 집필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작가는 천운이라고, 많은 작가가 생계를 꾸리려고 글쓰기 외의 직종에서 온갖 일을 한다고. 운이 좋아 등단하고 책을 내도 용돈으로 쓰기에도 부족한 인세, 책이 증쇄를 찍는 경우도 드물고, 몇십 년 전과 똑같은 원고료는 최소한의 물가상승률조차 반영되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도 신인 작가 공모가 계속 열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글로 인정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먹고사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가 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 이상과 현실에서 미친 듯이 싸우다가, 결국 현실에 타협하고 마는 결과를 선택하게 되는 자연스러움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일상이 느슨해져 채찍질이 필요하거나, 뼈 때리는 말로 현실을 직시하고 싶거나, 막연하고 여유롭게 보낸 이상적인 오늘에 정신이 번쩍 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펼쳐보기를 추천.



#이자만큼성실하게 #이소호 #교유서가 #한국소설 #소설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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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위픽 클래식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박정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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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고, 내 안에서 들끓던 그 많은 감정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름 붙일 수 없었다. 아니, 만약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야 했다면, 그것은 오직 지나이다였을 것이다. (74페이지)


열여섯 살 블라디미르는 이웃집에 이사 온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 스물한 살의 지나이다는 가난한 집안 배경 따위 무시할 만큼 매력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뭐 다섯 살 연상쯤이야 문제가 안 되겠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순진한 열여섯 살 청년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였다. 그녀를 둘러싼 여러 명의 남자가 그녀를 우러러본다. 그녀가 이 남성들을 갖고 노는 것이 눈에 훤해 보이는데도, 이 자리에 있는 남성들은 오직 그녀의 마음만 얻을 수 있다면, 그녀의 손등에 입맞춤 한번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배경이 탄탄해서 누구라도 탐낼만한 남성들이 여성 한 명을 둘러싸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봤는데, 아 그냥 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녀의 매력은 뭘까. 도대체 그녀의 아름다움은 어느 정도이기에, 이 남성들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저녁마다 그녀의 집에 모여서, 그녀의 눈길 한번 받아보고자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 거냔 말이지. 누구보다 블라디미르의 대혼란은 그녀의 인성 따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그녀 자체로 모든 게 허락되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불타올랐다.


위에서 인용한 문장처럼, 블라디미르의 마음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게 첫사랑이라는 걸까. ‘내 안에서 들끓던 그 많은 감정에 이름 붙일 수 없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이유도 모른 채로, 오직 이 모든 혼란은 지나이다라는 이름 하나로 정의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지는 않았을까. 그런데도 이 감정의 흐름을 멈출 수 없는 건, 처음 경험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거다. 이거 뭐지? 미칠 것 같은데, 보고 싶어서 그 집 담벼락을 기웃거리고, 그녀의 방 창문 불빛이 언제 켜지나 확인하고, 그녀가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치는 일에 가슴이 무너지고. 다른 조건 없이 오직 그녀 하나만 바라보는 마음이 너무 곧아서 그 순수함에 나도 함께 취하고 싶기도 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장면들이었다. 공작 집안이면서도 돈이 없어서 생계에 부담이 될 정도이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변변한 음식이 없는데도 매일 찾아오는 손님에게 문을 활짝 열어두고, 아무 자리에서나 소리 지르는 어머니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돈이 없다고 징징대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의 체면은 어디쯤 머물러 있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이런 현실 속에서도 좀 더 교양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품위 있는 거로 생각했는데, 그녀가 이 남자들을 모아두고 자기가 어느 남자의 배경에 손을 뻗어야 하는지 재고 있는 게 그대로 보였다. 남자들 역시 오직 그녀를 향한 사랑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여자와 연애 한번 하고 싶었을 뿐인지, 이 여자의 배경 중에 돈 빼고 모든 게 만족스러웠을지 알 수는 없으나, 그녀나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이나 서로 비슷한 마음으로 머릿속 계산기를 막 두드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들 가운데 어색하게 섞인 블라디미르의 순수한 마음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싸움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설상가상 그가 마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상대는 그녀의 집 거실에 모인 남자들이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누군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깔끔하게 그녀를 향한 마음을 접어야지.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접어진다면 그건 또 사랑이 아니겠지.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미칠 즈음,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후 그 충격은 엄청났다. 어느 정도 의심스럽고 긴가민가했던 나도, 그 의심이 사실이 되었을 때 놀라긴 했다. , 열여섯 청년의 마음을 어떻게 다독여줘야 그의 인생에서 이 충격을 지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사랑을 겪으면서 소년이 남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그대로 보인 것은 좋았으나, 그 시대에도 인간은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구나 싶어서 씁쓸했던 건 어쩔 수 없더라. 가난에서 구원해줄 남성을 찾아 헤매는 듯하면서도 그 와중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찾는 지나이다의 모습도, 블라디미르가 겪었던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민낯도, 그렇게 겪은 사랑이 지독하게 흔적을 남기는 것도, 고통이나 상처보다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겨질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사랑인 걸까.


오랫동안 보관함에 있던 책을 이제야 꺼내주었다. 너무 유명한 고전이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은 예감에 펼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책은 왜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언급됐을까. ‘첫사랑이라는 말랑말랑한 단어에 무게감 있는 의미가 담겨 있기라도 했을까. 정말 오랜만에 얼마나 순수한 마음을 마주할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했다. 어쩌면 이 책은 집 나간 지 오래된 나의 연애 세포를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나에게 이 책은 쉽지 않았다. 주인공이 하는 사랑이, 아니 내가 아는 첫사랑이 이 정도의 혼란한 감정이었던 건지 의문이 들었다. ‘첫사랑을 떠올리면 저절로 수줍어지는 마음 따위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 알 턱이 있나.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설렘 폭발일 줄 알았는데, 유감이지만 이 소설의 결말까지 보고 나니 사랑과 전쟁 고전판 같았다. 와장창, 폭풍처럼 몰아치던 사랑이 깨지고 나니 인생의 커다란 산 하나를 넘은 기분으로 블라디미르를 보게 된다. 다 끝나버린 사랑에 마치 제 사랑이 왜 당신에게 필요했던 건가요?’라고 묻는 듯한 이 녀석, 다음 사랑은 또 어떤 모습이려나. 안타깝게도 집 나간 나의 연애 세포는 돌아오지 않았으나,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좋았다. 그저 이 소설의 끝에 함께한 이장욱 작가의 고급진 해설에 전혀 닿지 못한 나의 후기가 부끄러울 뿐.



#첫사랑 #이반세르게예비치투르게네프 #위픽클래식 #소설 #문학 #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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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연
청예 지음 / 래빗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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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내게 물었지. 사랑이 이뤄지는 날인데 왜 웃지 않느냐고. 가슴 아래에 숨긴 대답은 간단했다. 사랑이 아니니 웃질 않아요. 아랫입술을 깨물고 전력을 다해 뛰었다. 옥상 난간 너머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팔을 펼쳤다. 저녁 하늘을 활주로 삼아 비행했다. 추락에 필요한 시간은 단 5. 곤두박질친 머리가 땅과 부딪을 때 수박이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뼈가 부서지는 통증과 질금질금 새어 나오는 뻘건 핏물이 내게 물었다. 이제 무어승로 다시 태어나고 싶니. (17페이지)


이런 복수. 정말 재밌겠구나 싶었다. 어설픈 용서가 의미 없다고 믿는, 용서한다고 고통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나는 한 사람으로, 괜히 좋은 사람인 척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내 상처는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용서하고 화해하래, 왜 자꾸 잊고 지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감정 역시 여러 가지로 좋을 리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 용서할지 말지, 복수할지 말지, 이 고통의 소멸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던 자기 마음 아닌가? 자신과 엄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바람난 아버지, 그 아버지가 새로 꾸린 가정의 아이로 태어나서 그들에게 고통을 선사하리라.


무당의 부적 한 장으로, 오주희는 계모의 딸 오연린으로 다시 태어난다. 17년간 살아온 전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 있던 건 아니다. 오주희에게는 아버지에게 똑같이 버림받은 엄마가 있었으니까. 엄마를 생각하며 선택했다. 아버지와 계모에게 철저하게 복수할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오연린으로 환생한 두 번째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 오주희 모녀에게 고통을 준 이들을 모두 벌하겠다는 거였다. 아버지, 계모, 무당인 계모의 어머니. 이미 한번 살아본 17년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다시 태어났으니, 이 아이는 영재 대접받았다. 남들이 처음 배우는 것을 이미 습득한 채였으니 이번 생의 처음이 얼마나 쉬웠을까. 사실 오연린이 살아갈 시간은 17년 플러스이기도 하지 않은가.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가장하여 교묘하게 계모와 외할머니를 괴롭혔다. 아버지가 한눈팔았던, 계모가 기억하는 여자의 이름을 언급하고, 외할머니의 품 안에서 마냥 아이처럼 굴었으나 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법을 정확하게 알았다. 어른들은 아버지의 과거, 계모가 깨부순 남의 가정사를 비밀에 부쳤으나 아이는 모르는 척 언급하면서 이들의 평온한 삶에 풍파를 일으킨다.


복수는 말이야, 당했다는 사실을 평생 못 잊게 만들어야지. 복수는 사건이 아니라 기억이라고.” (95페이지)


이런 설정이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흥미롭긴 했다. 너무 궁금했다.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대상의 아이로 태어나다니. 두 사람은 자기 자식이 마냥 예뻐서 물고 빨고 할 것이고, 이 아이의 영특함에 천재가 태어났나 싶을 기쁨에 찬물을 끼얹을 타이밍을 재고 있다는 것이.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아니면 아이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괴롭힐 때 받는 고통의 순간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오연린이 언제쯤 이 모든 사실을 밝힐 것인지 궁금해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읽다가 생각해 보니, 보나 마나 이 부부가 삶의 안정과 풍요로움을 느끼며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을 때 터트리지 않을까 싶었다. 알게 모르게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이 미세한 틈을 무시하고 모른 척하며 넘어가곤 하면서 잊을 때, 애써 무시하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눈앞에서 펼쳐졌을 때. 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좌절과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복수를 다짐하고 목숨을 버렸던 의미가 새겨지는 거 아닐까. 현실 나이에 17년을 더해 살아간다고 해도 아이다. 이 아이가 계획한 복수를 마무리까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할 무렵, 오연린과 비슷한 복수심을 가진 박은정이 등장한다.


오연린은 박은정을 동정하기도 하면서, 자기 복수의 조력자로 옆에 둔다. 은정을 보면서 마치 자기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은정이 가진 복수심에 자기도 조력자로 함께 한다. 영악한 아이 둘이 함께하니 어설프게만 보였던 복수가 점점 완전해져 가는 게 보인다. 아이의 공격으로도 인간의 마음이 흐트러지고,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고, 자기 스스로 파멸할 수 있구나 싶어서 새삼 놀라웠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이렇게 때려 맞을 수 있다는 게,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이 되어 스스로 무너뜨리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 비슷한 복수심을 가진 두 사람이 한편을 넘어서서 한 몸이 되려고 애쓰는 힘이 굉장했다. 복수가 완벽해지는구나 싶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함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떤 균형이 깨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 서로가 가진 복수심을 해결하려고 뭉친 사람들 같았는데, 한쪽이 밀고 들어오는 힘이 너무 셌다. 오연린은 한편이 되는 것으로, 박은정은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이들이 향해 가는 목표가 달랐던 거다.


간단하지 않았다. 복수가 쉽지도 않았다. 처음 계획대로 가지도 않았다. 사랑과 애정이 상처받아 탄탄하게 새겨진 복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로 무너질 거였으면 죽음을 불사하고 다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복수가 진행되는 동안, 틈틈이 묻게 된다. 이 선택이 맞는 건가? 이대로 끝까지 가도 되는 걸까? 박은정의 맹목적인 사랑이 점점 오연린의 숨통을 조이게 될 때, 또 다른 인연 이현이 다가온다. 오연린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보고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 이현의 사랑 방식에 경험하지 못한 편안함을 느낀 오연린은 박은정과의 관계, 그동안 해온 복수, 앞으로 더 미워할 사람들, 많은 것을 향한 생각이 변해간다. 또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걸까. 지금 이 상황이 온전하게 맞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또다른 선택과 답을 찾아야만 했다.


사랑이 문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의 기준이 달랐고, 계모가 아버지를 선택한 것도 사랑이었다. 딸의 행실을 바로잡아주지 않고 그대로 결혼을 진행하게 한 계모의 어머니가 선택한 것도 딸을 향한 사랑이었으리라. 오주희가 엄마를 위해 복수를 다짐하며 죽음을 선택한 것도 사랑 때문이었는데, 정말 이 모든 게 사랑이 맞긴 한 건가. 각자가 믿는 사랑을 위해 선택하고 다시 태어났음에도, 그 누구도 사랑을 완성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마치 형벌을 받는 것처럼 고단하고 힘들었다. 복수를 선택해서 다시 태어난 삶은 끊을 수 없는 인연의 굴레를 또 촘촘히 엮고 있었다. 읽으면서 복수의 통쾌함을 다 즐기기도 전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름 모를 불안감은 소설의 결말에서 확인하게 되면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내 맘대로 복수를 꿈꾸며 다시 태어났고, 그대로 착착 이뤄질 것 같았던 복수의 끝이 이렇게 두려울 수가. 역시 거울 치료가 답이었던가. 아니면 복수하면서 누군가에게 준 상처가 자신을 조금씩 파먹고 있다가 이렇게 눈앞에 나타난 건가. 복수하겠다고 맺은 인연들은 때로 저주가 되어 되돌아온다.


살면서 내내 경험하게 될 사랑, 용서, 복수의 끝은 우리 생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지 묻는다. 피폐해져도 복수를 완성하고 뒤돌아보지 않을 것인지, 상대가 고통스러워하는 게 그대로 보이는 데도 내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지, 그런데도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주와연 #청예 #래빗홀 #한국문학 #한국소설 #추리소설 #복수의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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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26-08-06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 책 주어갑니다.!

구단씨 2026-08-24 23:42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