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선인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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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이, 작가의 문장은 쉬웠다. 잘 읽히는 데다, 착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니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 주인공이 잠시 내려놓았던 삶의 의미를 찾게 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재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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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둑 성장기 위픽
함윤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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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았으려나, 사소해 보여도 누군가의 소중한 무엇이 사라진다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바늘 도둑은 소도둑이 되지 못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결말 같았다. 차게 식은 커피를 들이켜며, 어디로 가야 할지 ‘그것’이 알려줄 때까지, 사미는 공항의 카페에 앉아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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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거의 그렇더라. 시간이 이렇게 흐르는 줄 몰랐다가,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들어오니 여러 알라디너님들의 상반기 결산 포스팅을 보고 알았다. , 벌써 올해의 반년이 지났고, 많은 사람이 상반기 동안 또 많은 책을 샀거나, 읽었구나. 오래된 습관처럼, 별로 다를 거 없는 일상처럼 책을 옆에 두고 지내는 날들이 좋아 보였다. 책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더 놀라웠던 건, 다들 정말 많이 읽으셨구나 싶었다. 시간이라는 핑계를 대고, 일상이 번잡스러워서 책 근처에도 못 갔다는 변명이 민망할 만큼, 많은 분의 독서력이 부러웠다.


사실 읽은 책의 기록은 짧게라도 리뷰나 100자 평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그마저도 귀찮아서 남기지 않은 게 많았다. 그게 마음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읽은 책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한다. 찾아보니 나는 올해 상반기에 제대로 읽은 책이 8권 정도 되고, 한 달 평균 1.3권 정도의 책을 읽은 게 되더라. ㅎㅎ 세상에나. 대충 훑어 읽었거나 읽다가 만 책이 읽은 책보다 훨씬 많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나의 일상이,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는데, 그래도 좀 섭섭했다. 내가 책을 이렇게 안 읽고 살았구나 싶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고 누가 달려와서 때리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습관처럼 자꾸만 책을 옆에 두고 한 페이지라도 넘기고 싶은 이런 마음이,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이 공간에서 내 맘대로 확신하게 된다. ^^


그런 아쉬운 마음에 나의 올해 구매리스트를 좀 뒤져봤다. 오호~ 올해 상반기에 내가 구매한 책은 모두 12권이고, 한 달에 두 권 정도 구매한 셈이다. 그렇게 구매한 12권의 책 중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죄책감은 뒤로 하고, 그래도 꾸준히 책을 사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기쁘게 했다. 산 책은 읽지 않았으나, 올해 읽은 책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다. 도서관에는 계속 간다고. 후훗~ 소박하지만, 책에 대한 애정이 아직 계속된다는 걸 스스로 확인한 것만 같아서 괜히 자화자찬 중이다. 이 공간의 다른 분들이 올린 리스트 보면서 나의 상반기 결산이 참 초라하고 부끄럽지만, 다시 예전의 리듬으로 빨리 돌아서 책 읽는 일상을 되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이미 경험한 사람도 있겠지만, 습관이 무섭다고 안 읽으니 더 안 읽게 된다. 가벼운 잡지마저 잘 읽히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는 외출할 때 나의 가방 속에서 책이 없는 경우도 많아지고, 어느 일정의 대기시간에는 휴대폰에 먼저 손이 가더라. 언제 이렇게 됐지? 진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지난 주말 도서관 나들이에서 조금은 가볍고 몰입도는 적당히 괜찮은 책들을 집어 왔다. 술술 읽히는 소설 말이다. 단편집이라 좀 망설이긴 했는데(이상하게 나는 단편집의 집중도가 떨어지긴 해서), 여름이니까 무서운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한 번도 본 적은 없는데, 가까운 지인이 <심야괴담회> 광팬이라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시간 날 때마다 TV든 휴대폰으로든 틀어놓고 지낸다고 했다. 혹시라도 결방되면 화가 난다고 말할 정도로 좋아하던데, 그런 무서운 이야기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해서 평소 가까이하지 않던 분위기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무서운 이야기,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 무속신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어왔는지, 그 무속신앙이 인간의 이기심에 어떻게 악하게 이용되기도 했는지.


한국무속 앤솔러지라고 이름 붙여진 골고루 먹고 가시게는 오래된 무속신앙이 어떻게 사람을 살리고 어떻게 비극으로 치닫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네 명의 작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무속과 장르 소설을 결합하여 내놓은 이야기는 재밌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이거 진짜 오랫동안 내려온 무속신앙의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김아직의 사람 고기를 내어드리니라는 이미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마을에 닥친 불행을 걷어내고자 시작된 굿판에 찾아온 귀신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낸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인다. 수귀 설화 연구차 찾은 강변마을에서 주인공이 우연히 참여한 뒷전굿의 결말이 반전을 일으키면서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일들, 인간의 마음을 아우르는 방식이 참 다양하구나 싶다. 정명섭의 금단의 술법이 주는 교훈은 의외로 단순하다. 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 자기 가슴에는 대못이 박힌다는 가르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억울하게 막내아들과 손녀딸을 잃은 무당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는 무엇일지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다른 신분의 사람은 할 수 없는, 인간에게 적용해서는 안 될 굿으로 억울한 죽음의 진실 속 가해자들에게 공포를 선사한다.


문화류씨의 대운의 기운을 내리소서는 평소에 내가 가졌던 궁금증의 답을 본 것 같았다. 주인공은 매년 대운굿을 받으며 본인의 권력과 부를 축적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운굿을 진행하던 중 무당이 피를 토하며 죽었다. 다른 무당을 데려와도 마찬가지, 주인공은 대운굿에 참여하는 무당이 모두 죽자 점점 불안해진다. 지난 대운굿의 유효기간이 다 끝나간다. 그 전에 다음 해의 운을 지켜줄 대운굿이 제대로 마무리되어야만 하는데, 도대체 어떤 무당을 불러와야 이 대운굿이 완성될 것인가. 읽으면서 좀 웃기면서 신기하고, 진짜 이런 굿의 효험이 있다면 누구라도 대운굿을 하고 싶지 않을까. 대운이 들어오는 시기에 굿을 하라는 건데, 그럼 또 그 대운의 시기는 어떻게 알 수 있지? 최하나의 한밤중의 고사상은 우리 주변의 좀 색다른 종교(?), 일반적으로 사이비라고 불리고 이상한 방식으로 교인들을 끌어들이며 신을 가까이하게 하는 시작이 어떻게 열리는지 보여준다. 인간의 불안한 마음을 더 부추기면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고 나약해질 때를 알고 파고드는 방식에 누구라도 홀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상에 이런 종교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종교가 많고, 정말 종교라고 불릴 수 있는 종교는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더라.


골고루 먹고 가시게와 비슷한 흐름으로 가는 게 전혜진 작가의 연희 이야기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 속의 주인공은 한국 사회에서 억울하고 또 억울해서 한이 맺힌 여성들이라는 거다. 주인공 연희는 가족의 교통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고, 친할머니는 그녀에게 집안을 망친 여우 새끼라며 욕하고 쫓아냈다. 교통사고가 정말 이 어린아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음에도, 연희의 할머니가 퍼붓는 욕이 낯설지 않다. 무당인 이모의 손에 거둬진 연희가 신내림을 받고 섬에서 지내고 있을 때 할머니가 욕하면서 쫓아낼 때 한 번도 연희를 붙잡지 않았던 큰오빠의 연락으로 또 다른 사건들이 시작된다. 다섯 편의 이야기 속 피해자들은 모두 여성이고, 이들은 가정과 사회, 학교에서 폭력과 차별을 겪으며 오갈 데 없는 현실 속에 있었다. 남편의 시한부 생명에 숨을 불어넣고자 남의 아기에게 액운을 씌우려는 여자, 자녀의 성공에 목숨 걸고 광기에 휩싸인 여자(드라마 참교육 생각나더라), 여성을 상대로 한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묻지 마 범죄의 잔인성을 더 말해 무엇하리. 친부의 성폭력에도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의 일들이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안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말해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억울함만 쌓인 여성들의 살풀이를 함께 하는 이가 주인공 연희였다.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 법이 있고, 이성과 상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인데도 어떤 상황에서는 마치 그 상식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이기심을 드러낸다. 딸이니까, 가족이니까, 너만 좀 참으면, 이런 식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아가곤 한다. 그렇게 희생당한 이들의 억울함이 그냥 그렇게 쌓인 채로, 누구도 풀어주지 못하는 상태로 남아 있다. 그대로 끝인 것 같은 이야기에(현실 속 우리는 그렇게 지나간 일로 여기기 쉬워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역할을 연희가 하고 있었다. 이들이 죽어서 귀신이 되고, 이 귀신들이 무슨 인간을 해치면서 복수하는 게 아니라, 사실 가해자들에게 닥치는 불행과 고통은 인간에 의해 반복되는 악의 고리일 뿐이라고. 성별을 떠나서, 남의 가슴에 상처가 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하는, 세상 사는 방식으로 이기심이 우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읽게 된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요즘 자주 반성하는데, 진짜 착하게 살자. 호구나 바보가 되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상대가 상처받을 거 뻔히 알면서 나만 생각하는 모른척하는 방식이 앞서지 않게 말이다.



거기에 읽고 있는 책 몇 권 더 있는데,


버지니아 페이토의 빅토리안 사이코3분의 1 정도 읽고 있다. 저택의 가정교사로 간 위니프레드 노티의 활약(?)이 심각하다. 첫 페이지 열자마자 독자를 반기는 문장이 세 달 안에 이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이다. 도대체 왜? 얼마나 죽이려고? 저택의 주방에서 요리하려고 둔 동물을 뜯어먹으며 피가 질질~ 어흑. 생고기를 그렇게 먹는다는 말이야? 어떤 방식으로 이 저택과 사람들을 초토화할지 모르겠지만, 이걸 광기라는 말 말고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제대로 미친 자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중.


모니카 김의 눈알이 제일 맛있단다는 몇 페이지 읽다가 포기했다. 하아, 앞부분에서 마주했던, 생선의 눈알을 씹어먹는 장면에 페이지를 더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도전해볼까 하다가, 도저히 안 되는 마음을 괴롭히기 싫어서 그냥 포기. 예전에 회 먹으러 갔다가 얇고 맛있게 떠진 회 접시의 한족에 같이 올려진 생선의 머리. (지금은 아니지만, 아주 예전에는 회 접시에 생선의 머리가 그대로 같이 올려졌었다) 동그랗게 뜬 그 눈을 잊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그렇게 좋아하는 회를 먹지도 못했다지. 이 책은 다시 읽지 못할 것 같다.


정돈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김호연의 서울의 선인이다. 쉽게 읽히면서도 이야기 속 착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게 되는 김호연의 신작. 그의 소설 속에서 악인을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착하다고 미리 말해주는 건가? 김호연 작가의 출간작을 다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은 독자이니, 이번 신간도 반갑게 환영하는 중. 그리고 비비언 고닉의 연애 시대의 종말은 제목부터 좀 날카롭게 들린다. 이벤트로 받은 책인데, 진짜 궁금하고 기대된다. 사랑이, 연애가 뭘까 싶으면서도, 사랑이 우리 인생을 충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사랑이나 연애의 경험이 만들어가는 라는 인간이 더 궁금했던, 낭만적 사랑에 관심 없는 1인으로 고닉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덥다. 주방의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엄마가 부탁한 누룽지가 완성되어가는 중이고(사서 먹는 누룽지를 싫어하심 ㅠㅠ), 계속 비가 온다고 게을리했던 빨래가 세탁기에서 돌고 있다. 도서관에서 온 희망 도서 비치 알림 문자에 반가움도 잠시, 이 더위와 꿉꿉함에 어떻게 현관문을 나서나 싶어서 자연스럽게 내일로 미뤄진다. 덥다고 저녁 식사에 밥 대신 캔맥주가 자리를 차지한 지 일주일이 넘어간다.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들 빨리 마무리하고, 개운하게 씻고 마주할 저녁 시간을 기다린다. 여름날의 더위에 시원한 캔맥주와 책과 에어컨 바람만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또 있을까. 답답하게 하는 일들을 잠시 뒤로 하고, 오늘 저녁만큼은 좀 즐거워야겠다.











#골고루먹고가시게 #연희이야기 #빅토리안사이코 #눈알이제일맛있단다 #서울의선인

#연애시대의종말 #비비언고닉 ##책추천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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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6-07-0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도 골고루 먹고 가시게>, <연희 이야기>, <빅토리안 사이코>, <눈알이 제일 맛있단다>, <서울의 선인>까지 쭈욱 읽고 있어요!!! 대박!! <골고루 먹고 가시게>랑 <연희 이야기>는 읽었고, 눈알도 저도 생선 때문에 조금 멈칫거리고 있구요. <연애 시대의 종말>까지 구비해야겠습니다!!^^

구단씨 2026-07-10 08:27   좋아요 0 | URL
오마낫~!
골고루 먹고 가시게. 재미 있었어요.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또 전혀 무시하지 못할 현상들이 많이 있기에, 무속신앙에 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서울의 선인. 읽고 있어요. 늘 그렇듯, 작가님 문장이 발랄해요. ^^

잠자냥 2026-07-0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 더위에 셀프 누룽지! 고생하십니다...
하반기엔 더 재미난 책들 많이 깊이 있게 읽으시길 기원합니다! ㅎㅎ
(<연애시대의 종말> 읽으시면 거기 나오는 책들 중 또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 있을 것 같아요~)

구단씨 2026-07-10 08:26   좋아요 0 | URL
네.... 소박하게 효도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연애시대의 종말.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해요. 다 사지도 못하고 다 읽지도 못하겠지만,
보관함 속으로 들어갈 목록은 늘어날 테니까요. ^^
 
훔친 여자
알레샤 디케마 지음, 김현수 옮김 / 북플라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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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일하는 로라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자기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엄마와 동생들, 집안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버지는 자기 편이 되어줄 수도 없다. 독립해서 살고 있지만 늘 돈에 쪼들린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책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바라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긴 올까? 카페에서 일하는 게 유일한 생계 수단인 그녀에게, 어느 날 인생 전환을 맞을 기회가 온다.


설마 그게 기회일까 싶지만, 손님으로 온 테오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카페에 오는 손님 대부분은 그들이 원하는 메뉴를 얘기할 뿐, 그 외의 말을 걸어온 적이 없다. 그런데 테오는 달랐다. 그녀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그녀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누군가와 이렇게 얘기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매일 같은 시간, 테오는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와서 늘 같은 메뉴를 시킨다. 그리고 카페 문을 나서면서 윙크도 던진다. 어라. 지금 테오가 로라에게 작업 거는 거?


이제 그녀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테오를 찾아보고, 그의 집안, 배경, 그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고 놀란다. 넘사벽 신분의 차이,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물인 그의 아내가 나타난다. 뭐야, 아내 있는 남자가 작업을 걸어온 거야? 윙크는 왜 날려? 이런 의문도 잠시, 고를 것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하나였다. ‘괜찮아. 그에게 아내가 있지만, 나는 그를 유혹하고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 내 인생을 바꿀 마지막 기회야.’ 로라는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그와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로라는 이름을 바꾸고 SNS에서 그의 아내의 일상을 훔쳐보며 접근하며 친구가 된다. 점점 그들의 세상에 스며든 로라는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다. 거짓말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이제 로라의 가짜 인생은 진짜가 되어야만 했고, 유일한 목표를 이루는 것밖에 없다. 테오. 그만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줄 유일한 길이었다.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로라의 자신감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외모가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럴 이유도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가끔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이런 자신감을 뿜어대는 여성을 볼 때 궁금하긴 했다. 누구라도 눈길을 한번 주지 않고 못 견딜 만큼 평소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살았나? 아니면 로라처럼 기를 쓰고 노력하면서 인생 전환점을 맞을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이게 아니면 죽음뿐이라는 각오로 덤비게 되는 건가. 뭐든 열심히 사는 건 좋지만, 이런 방법이 도덕적으로 욕을 먹는다고 해도 기어코 해야만 한다고 작정했다면, 해야지 뭐. 어쨌든, 로라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테오에게 접근하고, 테오는 그의 아내에게 모른 척하면서 로라와의 관계를 은근히 즐긴다. 그리고 테오의 아내, 아스트리드는 이들의 관계를 알까, 모를까?


하도 책을 안 읽었더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좀 읽어야겠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 끝이 어찌나 무거운지, 진짜 한 페이지 읽는 일조차 어렵더라. 좀 가벼운 이야기를 만나면 좀 괜찮을까 싶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비밀을 갖고 있다기에, 로라의 허무맹랑한(?) 자신감과 계획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읽어보긴 했지만. 가독성은 좋다.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간다. 아내를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처럼 구는 테오를 볼 때면 가끔 어이가 없으면서, 테오와 로라의 긴장되는 장면에서는 <탐정들의 영업비밀> 보는 기분으로, 상류사회로 편입하려고 발버둥 치는 로라의 욕망을 걱정하면서 읽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하나 같이 의심스러워서 언제쯤 그 비밀이 드러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진실이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모두가 거짓말쟁이 같다. 남의 비밀을 그렇게도 궁금하고 파헤쳐서 떠벌리고 싶어 하면서 말이다.


결말이 좀 의외이긴 했다. 어떤 수단으로 부를 축적하며 가문을 완성하고, 각자의 이익에 맞게 살아가는 게 인간의 민낯이겠지만, 이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끝이 보이기에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죄책감 없이 뻔뻔했던 테오도, 남편을 너무 믿었던 아스트리드도, 남의 남편을 빼앗아 나의 행복으로 만들고 싶었던 로라도,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 살아갈 때 벌 받을 거라는 걸 알았으려나. 무엇보다 위험의 시작은 남의 것을 탐냈던 로라였으니, 내 것이 아니면 욕심내지 말고, 착하게 살자. 괜히 욕심부리다가 위험하게 살 필요는 없잖아?



#훔친여자 #알레샤디케마 #북플라자 #추리소설 #소설 #외국소설 #스릴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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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곱명의 아버지들 -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독하게 끔찍한
안드레브 발덴 지음, 이민희 옮김 / 마인드큐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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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상은 성장의 시간 내내 긍정의 사고를 부른다. 언젠가 진짜 아빠가, 지금 가짜 아빠들의 나쁜 기억을 소멸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은 삶의 희망이 된다. 그게 전부였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어른이 된 나의 눈에 이 이야기는 순수하거나 즐겁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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