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생각이 좋다는 게 무엇인지 이 책 읽고 다시 새겼다. 자기 임무에 충실한... 이 책은 분량도 적고 가방에도 쏙 들어가서 휴대하기 좋지만,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무게감이 있기도 하다. 이 분야를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혹은 작가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면 좋은 지침서가 되기도 하겠다. 무엇보다 독자에게도 만족스러운 책이 아닐까 한다. 나는 진짜, 궁금했거든. ^^


독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한다는 온라인 서점 엠디. 나는 진짜 단순하게 생각했다. 작가는 글을 쓰고, 출판사는 그 글을 책으로 만들고, 서점은 그 책을 판다. 이렇게 생각하면 단순한 과정으로 보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거. 글을 쓰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테다. 출판사가 책을 만드는 일도 참으로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서점에서 책을 파는 일 역시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홈쇼핑의 뒷이야기를 들으면서 엠디의 고단한 업무를 본 적이 있는데, 서점의 엠디도 마찬가지였다. 출간된 책만 파는 게 아니었다. 물론 기본 중의 기본은 책을 파는 일이겠지만, 독자가 책을 주문하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단순 과정이 아니었다는 거다. 특히 요즘에는 책파는 게 아닌 곳이 바로 온라인 서점 아니었던가.


엠디. 그들의 업무도 다양했다. 특히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한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다. 누구나 비슷하게 9시에 일을 시작하는 게 당연한 거로 알았기에, 온라인 서점의 고객센터도 9시부터 전화 연결이 되었기에 말이다. (문의 사항 있으면 시계 보면서 전화기에 번호 누르고 9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되었음. 시간 잘못 맞추면 상담 연결 바로 안 되어서 화가 나기도 했기에) 그런데 8시에 업무를 시작한단다. 고객이 주문한 책과 재고 확인은 물론 출판사 발주까지 마무리해야 오전이 끝난다. 이들의 일은 대부분 전화 통화로 이루어지고 만나야 할 사람, 해결해야 할 회의도 많다.


, 무슨 책 파는 일이 이렇게 복잡한가 싶었다. 거기에 요즘에는 서점에서 책만 파는 게 아니지 않은가?! 굿즈를 샀더니 책이 따라왔다는 말, 낯설지 않다. , 나 정말 이런 얘기 굳이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한때 온라인 서점에서 주는 컵에 미쳐서 책을 정말 많이 샀다. 읽고 싶어서? 아니, 컵 받고 싶어서. 근데 받고 보니 또 아까워서 컵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 상자 포장 그대로 아껴두고 쌓아두고 있던 게 10년이 넘었고, 엄마가 맨날 내다 버리라고 하실 때마다 이 귀한 것을 왜 버리라고 하느냐며 싸우고, 근데 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애물단지 아니겠나. 그랬다. 나는 이 컵들을 바라보고 모셔두기만 했다. 그러다가 엄마랑 싸우기를 몇 년. 이번에 이사하면서 그 컵을 죄다 가지고 와서 잘 쓰고 있다. 맞다. 컵은 무언가를 따라 마시면서 사용해야 그 의미가 있다. 그렇게 나는 10년도 훨씬 넘은 컵을 이제야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튼튼하다. 아마도 깨질 때까지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처음부터 엠디의 업무가 이런 건 아니었을 거다. 온라인 서점이 처음 생기면서 편집자라는 이름으로 일을 시작했다는 저자.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그 당시에 엠디로 일하는 건 지금보다 입사 구멍이 좀 넓었던 것 같다. 이력서와 도서 리뷰 몇 편으로 심사했다고 한다. 온라인 서점의 시작은 독자인 나에게도 눈이 확 뜨이는 판매점이었다. 시골에 살면서 서점 찾기도 어렵고, 서점에서 모든 책을 다 파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할인해서 판매해주는 곳이니 얼마나 좋았던가. 무료배송이 할인해주는 책을 파는 곳이 생겼다는 건 책이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단비 같았을 거다. 그런 시장에서 책을 판매하는 이들의 업무가 점점 확장되었던 건 온라인 서점의 역할이 달라지면서부터다. 그리고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온라인 서점과 독자 역시 마음 자세를 바꾸어야 했다. 일정 부분 이상의 할인은 금지되었고, 우리가 목숨 걸고 사수하고 싶었던 공짜 굿즈도 이제는 돈을 지급해야만 내 것이 된다. 경품의 규모도 같이 변했으니, , 슬프고 슬픈 일이다.


무엇보다 온라인 서점의 메인 화면에 보이는 책 추천 카테고리. 나도 한 번씩 클릭해보고 들어가 보는 곳이다. 새로 나온 책, 오늘의 책, 베스트셀러, 거기에 로그인까지 한 상태라면 개인 맞춤형 추천까지 해주는(아마도 이건 AI?) 정도이니 어느 정도는 만족스럽다. (이 맞춤형 추천이 100% 내 취향은 아님) 암튼, 이렇게 주기적으로 바뀌는 화면을 만드는 이도 엠디라고 한다. 이런 것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엠디의 업무를 간단히 여겼다. 말 그대로, 책을 팔기 위해 뭐든 다 하는 사람이 되어 그 공간에 파묻힌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고, 새로 나온 책을 읽고, 책을 팔기 위한 전략에 빠져든다. 굿즈를 위한 시장조사와 회의를 하거나, 신간의 매출을 위해 추천 리뷰도 작성해야 한다. 책을 많이 팔기 위한 온갖 이벤트 기획 역시 엠디의 몫이다. 수많은 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그들의 일이기도 하지만, 눈곱만큼이라도 책이 좋아서 뛰어든 곳일지도 모르지만, 그들 역시 경쟁이라는 시장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엠디의 많은 역할을 내가 다 적지는 못하겠다. 너무 많아. 많아도 너무 많아. 누군들, 자기 일이 단순하거나 쉽지는 않을 테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 엠디의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 그저 책이 좋다고 읽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엄두를 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고단해 보였다. 그래도 좋으니까 하는 거겠지? 그들의 업무 중에서 나는 이게 정말 궁금했는데, 그 많은 책을 다 읽고 소개하는 걸까 싶었다. 비록 소개하지는 못하더라도 많은 책을 접해야 그들의 안목도 넓어지고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아야 책을 걸러내는 역할도 할 것인데, 도대체 그 많은 책을 언제 읽느냐 하는 거였다. 그 비밀은 정말 간단했다. 저자가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에 맞게 책을 골라서 소개해주는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책을 실제 출간된 책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내가 지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책을 꾸며내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 된다. (아하. 끄덕끄덕) 세상의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고, 부득이하게 읽지 않은 책(읽다가 만 책)을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 방법도 꽤 유용하다. (나도 이런 적 있음. ㅠㅠ)


어쩌면 남녀노소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소통하는 이 시대에, 종이책을 팔고 있다는 것만큼 아날로그적인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의 서점은 웹 속에 존재하지만, 이 모니터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한다. 비록 우리와 고객과의 만남은 온라인에서 이뤄지지만, 책을 통해 이뤄지는 행복과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도 도달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일은 실재하는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책 파는 법 169페이지)


읽다가 보면 엠디의 영역이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실 그 영역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금 그들이 하는 일도 어쩌면 내일 달라질지도 모른다. 내일 또 책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변화하는 시장에 맞게 엠디도 독자도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소개 글의 한 문장처럼, 엠디의 하루가 고달플수록 독자의 만족도는 올라간다. 엠디와 독자가 서로 눈에 보이는 존재는 아니지만, 온라인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책을 팔고 책을 사는 위치에서 서로가 원하는 걸 위해, 만족하기 위해 존재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다. 아마 온라인 서점의 시작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나도 온라인 서점 이용자가 되었을 거다. 내 기억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이용자로 온라인 서점을 겪어온 나의 시간과 온라인 서점 엠디로 살아온 저자의 시간이 비슷할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온라인 서점의 변화를 똑같이 보아왔으리라. 그 변화 속에서 만족한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다. 그래도 매 순간 독자가 요구하는 것을 새기고 반영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저자의 글로 보인다. 물론 그 노력은 책을 팔기 위한 궁극적인 임무와 목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대상인 독자의 만족도를 위한 일이라는 것도 맞다. ‘내돈내산의 만족을 위한 독자의 요구는 아마도 계속되겠지. 그렇기에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도 엠디의 일이겠지. 고단하고 힘들겠지만, 책을 매개로 한 당신과 나 사이의 만족도를 위해 계속 애써주기를. (미안합니다. 역시 저도 책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이기에, ‘내돈내산책의 만족을 항상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부디 책 읽는 것을 부담스러운 활동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거다. 사람들은 책 좀 봐야 하는데하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책을 읽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도 심심찮게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서 정작 책에 대한 기억은 방학 내내 추천도서 목록을 읽고 독후감 몇 편을 써냈던 선에 멈추어 있다면 어찌 독서가 행복할 수 있을까? 어찌 독서에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책을 읽는 것은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 아무 부담 없이, 그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이 생각은 서점에서 일하기 전이나 일하고 있는 지금이나 변함없다. (책 파는 법 73페이지)


책을 가까이하면서도 다 알지 못했던 하나의 세상을 본 것 같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다 알지 못한다. 병원에 수없이 드나들면서도 의료진의 입장을 다 알 수 없던 것처럼, 책으로 엮인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전에 읽었던 출판 관련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일상이 된 온라인 서점 속 엠디의 세상도 재밌다. 일로 보면 그저 자기 밥벌이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독자로 살면서 책을 파는 공간의 이야기도 즐거웠다. 이런 이야기, 우리가 직접 부딪히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자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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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5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엠디가 일하는 범위가 엄청 넓군요. 굿즈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ㅎㅎ 리뷰를 보니 책을 좋아하더라도 그게 직업이 된다면 그렇게 즐겁지 않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ㅜㅜ

구단씨 2021-04-17 22:18   좋아요 1 | URL
네. ^^
저는 굿즈만 담당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는 줄 알았어요. 독립된 부서로 굿즈를 목적으로 일하는... ^^
근데 참 도서 엠디가 많은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지문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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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나를 공격하는 모든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그 폭력에 맞서 싸우며 이길 것 같은데. 우리는 생각만큼 그 폭력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싸우고 이기고자 애쓰지만, 타인의 시선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에 또 무너진다. 당사자가 겪은 아픔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이해할 수 있다고... 타인이 보는 피해자의 삶은 또 다르다. 발버둥을 치다가 무력해지는 마음이 아픈 것을 보지 못하고, 그저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하는 것 또한 폭력이라는 걸 모른다. 어쨌든, 때로는 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이 싸우고 이겨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좌천되듯 시골의 경찰서로 발령받은 형사 규민은 산에서 실족사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 한눈에 봐도 실족사였다. 여자였고, 팔과 다리는 뒤로 꺾여 있었다. 시신의 발견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죽은 여자의 구두와 유서도 발견되었다. “증오하면서 사랑한다. (25페이지)” 여자의 유서는 간결했다. 그 간결함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찾아내는 것 또한 형사의 일이었다. 곧 여자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죽은 여자는 오기현이었고, 며칠 전에 여자의 언니 윤의현이 실종 신고를 한 것도 확인되었다. 형사는 윤의현에게 오기현의 죽음을 알리고 사인을 말해주지만, 오기현의 아버지 오창기에게도 시신 확인을 했지만, 이상하게 실족사로 처리하기에는 미심쩍다. 더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오기현 주변을 탐문하지만, 속 시원하게 드러나는 정황이 없다. 그러면서도 오기현이 자살이나 실족사는 아닐 거로 믿는다. 그 와중에 드러난 오기현의 가족사와 오창기 주변 인물들이 숨기는 그 마을의 분위기를 파악한다. 거기에 윤의현의 주변을 의심하는 것 역시 놓치지 않는다.


소설은 두 가지 시선에서 진행된다. 죽은 오기현을 중심으로 사건 해결에 나서는 형사의 시선이고, 오기현의 언니 윤의현의 일상을 비춘다. 얼핏 윤의현이 대학에서 강의하는 일이 전부일 것 같으면서도, 그녀의 학생이 담당 교수의 성추행 피해자로 등장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권력의 편에 서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피해가려고 했던 강사가 왜 마음을 바꿔 학생의 편에 서서 도우려고 했는지 의아했다. 같은 여자여서 그런가, 아니면 학생들의 성추행 피해에 모른 척했던 태도를 반성하는 거였나. 그것도 아니면 학교를 떠날 생각에 이런저런 눈치를 볼 게 없어진 건가. 윤의현의 의도가 무엇이든 학생들 편에서 성추행 교수를 벌하려는 모습에 기운이 났다.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나를 도와줄 수 있다면 의지하고 도움받고 싶으리라. 권력의 상하 관계에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려니 모른 척 넘어가기에는 상처가 너무 컸다. 그 상처를 드러내고 치료하기에는 앞으로의 삶이 고단해질 것을 알기에 괴로웠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졌던 그때 윤의현이 힘을 보탠다. 학생들이 그 성추행의 근원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한편으로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시선은 묻어두려고 애쓰던 또 다른 폭력을 발견한다.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인생의 순간들에 쳐들어온 폭력은 기를 쓰고 벗어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어린 오기현은 오창기의 딸로 살면서 아버지를 혐오했다. 이 가족의 역사를 살피던 형사는 오창기는 물론 마을 사람들이 숨기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야 했다. 마을 유지이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쥐고 있는 오창기의 권력은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음에도, 누구도 선뜻 오창기의 폭력과 횡포를 말하지 못했다. 그들이 입을 열면 닥칠 불행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형사는 성이 다른 오기현과 윤의현 자매, 오창기와 마을 사람들의 비밀, 화원의 관리인 신명호와 오창기 가족, 윤의현과 성추행 피해 학생의 연대, 윤의현의 성공을 만들 영화사 관계자 등 얽히고설킨 이들의 모든 관계를 풀어야 했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고, 형사가 풀어가는 사건이 하나로 귀결되면서 마주하는 진실이 놀라울 뿐이다. , 이런 결말, 이런 끔찍함, 이런 상처, 이런 복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오히려 그 진실을 몰랐으면 덜 아팠을까 싶을 정도로 아프다.


누구나 상처를 앓고 산다. 크고 작게, 치유하거나 묻어두면서. 하지만 그 상처를 끝내 드러내지 못하고 아프게 살아가기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성폭력 등 다양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외면당하는. 이 소설에서는 누군가의 폭력이 더 섬세하게 그려진다. 사건을 추적하고 서술하는 인물들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어서 더 섬세하게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끔찍하고 더 고통스러웠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까지 꺼낼 수 있었던 건 한 발 떨어져서 보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건 우리가 타인의 상처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닿지 않은 상태로 지켜보고 있기에, 내 일이 아니어서 모른 척하기 쉽고, 권력에 고개 숙이기도 하는 인생사에 비굴해지기도 하면서. 하지만 계속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진실의 대가 앞에서 다시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마치 이 소설이 보여준 죄와 벌처럼 말이다.


서로 다른 시선과 방향에서 접근하는 전개가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했는데, 소설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보이는 것들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예상한 게 전부 맞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와 닿았기에 차근차근 그 목소리에 다가갔다. 구석구석에 숨겨놓은 속임수가 진실을 찾아내는 단서가 되어 흥미롭기도 했다. 인간의 욕망이 일으키는 일들을 지켜봐야 했지만, 용기 낸 자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정의를 마주하는 일은 감동이었다. 세상의,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마무리에 용기를 갖는다. 우리가 겪는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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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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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맞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면 그 상처를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괜찮다고, 잊으면 그만이라고, 곧 잊힐 거라는 믿음을 갖기도 하지만, 사실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잊힌 것 같다가도 무심결에 불쑥 튀어나오는 기억과 감정일 테다. 그러니 우리 마음은 안정되지도 않고, 울분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방법을 찾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모습에 절망하며 법을 의지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법은 우리가 바라는 공정과 정의를, 법칙에 따라 판결했음에도 법 감정을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법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대로 처단하고 싶은 바람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사회 정의가 실현되지 않음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집행관이 된다. 현실의 솜방망이 처벌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며 그들만의 심판을 계획한다.


저 세상에 보낼 인간쓰레기들의 명단은 차고 넘쳤다. (94페이지)

수천만 명 중에, 쓰레기를 전담 처리하는 청소부가 몇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정의를 이루지는 못해도 이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142페이지)


권력형 부패 사건을 다루는 사회부 기자, 부패 정치인과 비리 공직자를 공격하는 역사학 교수, 항명 사건으로 옷을 벗은 전직 특수부 검사 출신의 변호사, 국방부 비리 사건을 폭로한 퇴역 군인…… 하나같이 부패와 비리에 맞서는 인물들이다. (269페이지)


집행관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 시작을 알리는 어느 초여름이었다. 역사학자 최주호에게 고등학교 동창 허동식이 찾아온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본 적 없는 동창생의 방문이 의아했지만, 최주호는 별 의심 없이 허동식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며칠 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하자 최주호는 거대한 사건에 휘말렸음을 인지한다. 일본으로 도망갔던 노령의 고문 경찰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살해되었다는 뉴스에, 그 죽음의 모습이 처참했던 것에 온 국민이 놀란다. 동시에 국민은 그 죽음에 정의를 외친다. 나라가, 법이 처단하지 못했던 존재를 그들이 처단하며 국민의 울분을 감싸 안은 것이니까. 현장에 남은 증거는 없었다. 다만 특이한 방식으로 죽은 이에게 걸맞은 살해 도구가 있었을 뿐이다. 죽은 이가 살아생전에 했던 그대로, 희생자들의 원한이라도 풀어주듯이, 일제강점기의 고문 도구를 사용해서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죽은 이의 등에 새겨진 의문의 숫자. 이쯤 되면 이 죽음은 온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안다. 나라가 해주지 못한 복수를 그들이 해주었으며, 죽은 이는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이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경찰과 검찰은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고, 국민은 적폐 척결이라며 환호한다.


자기도 모르게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최주호는 놀랄 수밖에. 그들이 최주호의 칼럼과 저서를 그대로 인용하여 사람을 죽였다. 최주호가 일제강점기 고문 방식과 친일파 척결을 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며 쓴 글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찾아온 허동식의 부탁한 자료는 그대로 누군가의 죽음에 쓰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거대한 사건에 연루된 최주호는 혼란스럽다. 한편 검찰 수사팀의 우경준 검사는 이 사건에 목숨을 건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다른 희생자가 생길 것을 예감한다. 죽은 이의 몸에 새겨진 숫자는 살인자들의 메시지였으며, 단순한 숫자에 머물지 않음을 알게 된다. 법이, 나라가 처단하지 못하고 희생자들이 무혐의나 무죄로 벗어난 법률 조항이었다. 어디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그러니 살인자들은 국민의 분노를 대신하여, 정의와 공정이 사라진 세상에 외치는 목소리로 한 몸이 된다.


그들은 형벌을 집행하는 데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았지. 힘이 세든 나이가 많든 부자든 간에 똑같이 집행했던 거야. 죄를 지으면 누구나 법대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389페이지)


안다. 아무리 국민의 법 감정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이 살인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국민이 환호하는 현상을 무시할 수도 없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속이 들끓었으면 이 살인을 환호하며 박수를 쳤겠는가. 합당하게 법의 처벌을 받지도 않고 누구 보다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부패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이 많았으면 그러겠는가 말이다. 살인자들은 자신을 집행자라 부르며 그들의 임무(?)를 계속한다. 인간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사명을 가진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건 당연하므로. 국민을 기만한 죄를 지은 자들을 응징한다. 그들이 지은 죄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에 딱 맞는 집행의식을 치른다. 공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정의를 찾으려고 애쓴다.


들여다보면 집행관들 역시 살인함으로써 법을 어기며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지만, 이들의 죄를 있는 그대로 묻고 싶지 않아지는 게 인간의 감정인 듯하다. 현실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법의 심판이 어느 순간 우리의 가슴에 묻히면서 쌓여가는 분노와 울분은 어디로든 터져나가지 못한다. 그저 말로 분노하고, 뉴스를 보면서 한숨이 커지는 일이기에. 그래서일까. 열 명의 집행관이 우리 마음을 대신해주듯 사회악을 처단하는 모습을 보면 은근한 희열까지 느껴진다. 아무나 골라잡지도 않는다. 탄탄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집행의 대상자를 추린다.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지금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법이 그들을 어떻게 풀어주었는지 정리하면서 후보군에 올린다. 연쇄살인을 기획하면서 검찰의 추적에 웅크리기도 하지만, 집행관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다. 듣다 보면 소설 속 이야기에 멈추지 않을 일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느끼고 겪는 부조리와 정의가 사라진 세상을 다시 보면서, 상상력과 가슴을 쪼이는 전율을 느끼며 읽게 되는 소설이지만, 묘한 통쾌함에 집행관들의 계속된 심판을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권력의 면죄부를 뺏는 건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말이다.


검찰에게 집행관들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저지르는 살인에 손톱만큼의 공감도 없었을까? 수사를 지휘하는 우경준을 제외하고 다른 수사관들은 이 사건을 추적하는 게 임무이면서도 이 사건을 사건으로만 볼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의 혼란을 조금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야 하지만, 집행관들의 살인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동기가 있기도 하다는, 아이러니한 공감을 찾는다. 국민을 대신한 복수이면서,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심판의 모습이 바로 집행관들의 살인 아니었을까. 물론 집행관들 개개인의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큰 의미 없이 그들만의 이유로 집행관으로 참여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들의 살인이 그냥 살인으로만 머물지 않을 거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감정이 아닐 것 같다.


소설은 집행관들의 청소 작업과 검찰 수사대의 임무를 지켜보는 재미도 주었지만, 이 집행관들의 실체를 찾아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이들이 왜,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보면서도, 혹시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더 있을까 하면서 찾는 긴장감도 있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소설로 즐기면서도 소설 속 주인공들과 사건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도 놓칠 수 없다. 씁쓸하면서도, 소설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짜릿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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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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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없는 여행. 얼핏 낭만적으로 보이는 여행이기도 하다. 목적지가 없이 떠나고 발길 닿는 곳에 머물 수 있다는 건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만한 여유가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말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느긋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매우 급하게 쫓기던 일도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어쩌면 안식년을 맞이하듯 긴 호흡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주인공 질버만이 떠난 여행도 그랬으면 부러웠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에게 이 여행은 원하지 않은 여정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도망이었고, 독일을 떠도는 난민이었다. 외워두었던 기차 시간을 잊지 못하는, 자유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자가 되었다.


잔인한 밤이었다. 1938, 수정의 밤 사건. 나치 돌격대와 지지자들은 유대인을 공격한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약탈한다. 이게 다 합법이라는 게 더 놀랍다.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 오토 질버만에게도 약탈의 밤은 찾아왔다. 나치 당원들은 질버만의 집에 쳐들어오고 부순다. 다행히 질버만은 그 위기를 피하고 도망쳤지만, 그날 이후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내는 오빠 집으로 피신했고, 그의 집은 다 부서진 상태로 방치됐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도 체포되고 자유를 잃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한순간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한곳에 계속 머물 수도 없었다. 기차를 타고 독일을 떠돌며 매 순간 긴장하며 지냈다. 아니, 이건 지냈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어느 곳이든 발을 내디뎠지만, 그 어느 곳이든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부유했던 그의 삶은 이제 독일을 떠도는 도망자로 전락했고,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어디로도 갈 수 없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기차를 타고 있으면 안전할 거로 믿고 끝없이 티켓을 끊고 기차를 배회한다.


독일인의 외모를 가진 그가 유대인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그나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계속 떠도는 거였다. 그의 인생에서 이런 시간을 상상이나 했을까? 부유한 사업가로 살던 그가 급히 재산을 처분해 도주해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계속 도망가면서도 긍정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 자신이 유대인으로 사는 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곧 아내도 만나고, 파리에 있는 아들이 그의 망명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불행이 길지 않을 거로 여겼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유대인을 보면서 나치 당원의 시선을 가지기도 했다. 자기 여권에 빨간색 ‘J’가 크게 쓰여있음에도 말이다.


질버만의 여행이 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위태로웠던 건, 그의 외모와 여권의 ‘J’ 때문이다. 일단 그에게는 여행을 계속할 돈이 있었다. 가진 재산 전부를 처분했지만, 그 돈은 그에게 행운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 하다. 이 여행을 계속할 자금이 되었지만, 언젠가 그게 잡힌다면 그 돈은 모두 몰수당할 테니까. 그의 외모가 아무리 유대인 같지 않다고 해도 그의 여권에 표시된 글자는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그는 여행하면서도 여행자로 불리지 못했다. 도망자이거나 난민이거나. 그가 기차표를 끊고 계속 다른 기차를 옮겨 타고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역시 둘 중 하나였다. 나치의 열성 당원이거나 독일군 장교이거나 그처럼 불안에 떨며 도망을 다니는 유대인이거나. 나치 당원은 아니어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는 시민이거나, 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수단가이거나. 그가 독일의 도시를 떠돌며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그의 안에 머물던 분노를 표출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지만, 그 어디로도 떠나거나 머물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독일에 갇힌 채로 여행하는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베를린에서 함부르크, 함부르크에서 베를린, 베를린에서 도르트문트, 도르트문트에서 아헨, 아헨에서 도르트문트,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끝없이 계속 움직이는 여행자. 나는 이미 이주했어. 독일 철도로 이주한 거지. 난 지금 독일에 있는 게 아니야. 이건 아주 큰 차이라고. 그의 여행 음악과 같은 바퀴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안전해. 지금 움직이고 있잖아. (214페이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여행하는 질버만의 모습을 비추는 이 소설은 그의 여정 이상을 보여준다. 그는 갑자기 들이닥친 나치 당원들을 피해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의 모든 순간을 비굴하거나 희생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의 지금 위치는 탄압을 받는 유대인이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본가였다. 기차의 일등칸을 이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가 도망치는 중에도 의아했던 것은 그가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혹시 그가 마주친 유대인들과 연대라도 하지 않을까 했던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그는 다른 유대인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이 상황이 되기 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독일어판 발행인의 설명을 보면, 작가 보슈비츠의 배경에서 비롯된 시선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아버지 역시 부유한 사업가였고, 그 자신도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건 질버만과 같다. 그래서인지 유대인이어서 낙인이 찍히기 전까지 유대인이라는 게 그의 가족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상기하면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소설에서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은 다양하게 담겨 있다. 나치 당원이 보는 유대인, 독일인 장교가 보는 유대인, 일반 시민이 보는 유대인, 유대인이 보는 유대인. 반대로 모든 독일인이 열성적인 나치 당원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바로 앞에 앉아서 대화하고 있지만, 그들이 자기를 신고할 거로 여기며 불안하지만, 실제 그들은 질버만을 신고할 생각도 없고 그의 여정을 안타깝게 여기기까지 하는 걸 보면 모두 같은 시선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다.


끝이 없는,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 즐거울까? 아닐 것이다. 여행은 어딘가로 향하는 목적지가 있어야 하고, 돌아올 곳이 있어야 즐겁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끝없이 부유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질버만의 여행이 고단하고 불행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그 스스로 여행을 끝내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마음이 읽힌다. 끝도 없는 여행을 멈춰야만 그가 살 수 있었을 테지. 그의 터전인 독일 안에서 머물 곳이 없고 끝날 수 없는 여행은 그를 미치게 했다.


질버만은 저녁 식사를 하려고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슈타인을 초대했어야 하는데. 그는 메뉴판을 살피며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그의 유대식 코가 두려웠어. (63페이지)


소설은 끝났지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수많은 여행자(질버만)가 남았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전쟁, 싸움, 여러 가지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오늘도 세계를 떠도는 난민. 오늘 봤던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난민의 예외에 어린이는 받아준다는 규정을 이용하는 이들을 봤다. 이걸 이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부모의 간절함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만이라도 살리겠다고, 높은 국경의 담장 너머로 아이를 떨어뜨리는 그 손끝의 바람이 보인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낙인을 찍는 과정이 그대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소설 속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내가 견디기 위해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겠다는 질버만의 말은, 한편으로는 나와 타인을 구분하며 이 불행에 나를 포함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바라지 않았던가. 질버만의 체포되지 않기를, 누군가 그를 숨겨주기를, 그의 불행이 어서 끝나기를. 그러면서도 내밀지 못한 손이 부끄러워지는 건, 누군가의 절망에 용기 내지 못한 마음이아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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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혜경 작가의 소설을 기다리고 있다.

"사소한 그늘"


<책 소개 글 옮겨옴>

이혜경의 네 번째 장편소설. 1970년대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 자란 세 자매의 이야기다. 다정하고 정밀한 시선으로 삶을 슬픔을 껴안는 소설가 이혜경은 <사소한 그늘>에서 차분한 서술과 유려한 이미지로 세 자매의 일상 속 희로애락을 그려 낸다.

경선, 영선, 지선 세 자매는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그 시절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결혼이라는 같은 선택지에 다다른다.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욕망을 저버리고 꿈을 포기한 채. 좌절과 순응을 배운 어린 시절은 세 사람에게 짙은 그늘로 남는다.

그 그늘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력한 엄마에 대한 기억이고, 여성의 역할을 가정 안으로 제한하는 사회의 분위기이기도 하다.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에서 시작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가정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어지는 세 자매의 삶에 드리운 그늘은, 오랫동안 사소하게 여겨졌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핀 시리즈로 나온 소설은 읽을 기회를 놓치고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 작품은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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