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정해연 지음 / &(앤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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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일상이었다. 서둘러 아침 출근길, 등굣길을 준비했는데, 직장에서 한창 일하던 김혜정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무너졌다. 딸이 등굣길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말에 그럴 리 없다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닐 거라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딸의 시신을 확인하고 혼절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죽은 딸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 막 가슴이 봉긋하게 올라오는 신체에 웃음이 났던 딸의 몸이었는데, 딸의 가슴은 폭삭 내려앉은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뒤로 하고 현실의 문제는 해결해야 했다. 딸의 장례식을 치르고 멀리 보내주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이성과는 다르게, 그녀는 점점 딸의 죽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노균탁은 76세의 노인이다.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냈다.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핸들을 돌렸는데, 잠깐 정신을 잃었던 그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세상이 달라졌다. 그의 차에 10대 여학생이 치여 사망했다는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70대 노인인 운전하는 차에 10대 여학생이 사망한 사고는 사람들의 공분을 샀고, 피해자의 장례식장에서 무릎까지 꿇은 그는 그 자리에서마저 거부당한다. 딸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만나지만, 피해자를 위한 보상 방안을 의논하는 방식에서조차 그의 의견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줄거리를 알고 읽었음에도, 무거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는 사건이자, 앞으로 많은 이가 초고령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조심하며 운전한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나고, 누군가는 가해자,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처리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수습해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남은 사람들은 마음껏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한 사람을 보내는 일을 정신없이 치러낸다.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이제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는 걸 마주한다. 이 소설에서처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면 사망 후의 처리 문제가 있을 거고, 혹시나 질병으로 사망했다면 또 다른 문제를 처리해야만 한다.


죽음을 직면한 그 순간이 가장 슬플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었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것 같았는데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일들에 또 한 번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주변의 상황은 슬픔에 빠져있을 수조차 없게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찾아와 사과한다. 서로의 변호사끼리도 원만한 합의를 하지 못하자 가해자는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놓는다. 피해자는 그 공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하지만, 상대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주는 것 말고는 어떤 처벌을 내릴 수도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혜정의 딸이 70대 노인이 운전하는 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한숨만 푹푹 나왔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는, 나도 모르게 선입견이 먼저 튀어나왔다. 노인이 운전하면 모두 사고가 난다? 아니다. 교통사고 발생을 알고 보면 고령 운전자의 사고보다 다른 운전자의 사고가 더 건수도 많다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고령 운전자의 사고 요인이다. 운전하면서 사고가 일어날 요인들을 먼저 확인하고 조심하며 단속하고 예방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혹시라도 운전에 불안 요소가 늘어난다면 면허증 반납이라는 제도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면허증 반납이 답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고령 운전자가 운전하면서 생길 불안 요소를 낮출 수 있다면 면허증 반납도 하나의 방법이긴 할 것 같다. 나부터도 택시를 타면서도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운전하시면 나도 모르게 안전띠를 더 단단히 매는 건 사실이다. 운전을 너무 불안하게 하셔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린 적도 있다. 소설 속 가해자 노균탁은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운전대를 틀면서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다. 그가 밟은 건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러레이터였다. 노균탁이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던 나름의 사정은 있었지만, 이 사고 앞에서 그의 사정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고가 일어났고, 사람이 죽었다. 이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야 할 태도와 마음이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시아버지는 70대 중반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운전했을 정도로 운전에 베테랑이었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시면서 승용차와 트럭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면서 운전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7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눈이 불편해지시고 농사를 정리하면서 집안의 모든 차도 처분했다. 시골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 그런데도 본인이 운전하면서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를 대비하고자 과감히 차를 정리하는 걸 보고, 위험 요소를 안고 불안하면서 운전하고 사는 것보다 몸이 조금 불편한 게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노화는 도로 위에서 위험 인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노인은 운전하면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니 개인의 선택으로 운전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강요가 아니니 순전히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마냥 수월하지도 않으니, 차라리 스스로 운전하는 것을 계속하려는 마음도 들 테다. 오늘 운전대를 잡고서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내일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듣고 있자니, 계속 생각하자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반복으로 이 문제를 고여 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사회적 제도에 더 의지하게 된다. 면허증 반납으로 제공되는 금액의 변경이나, 노인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이 더 편한 시스템으로 변경되거나 하는 등의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시급하다는 생각만이 남는다. 나도 곧 노인이 될 테고, 지금처럼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살아가게 될 텐데, 단순히 나이 들어서 운전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이 문제에서 빠져있을 수는 없다.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서,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 만한 제도가 뭐가 있을지 계속 고민할 일이다.



#드라이브 #정해연 #고령운전 #사회적책임 #생명의가치 #죄의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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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동네 친구는 없지만 친근한 동네 도서관은 갑자기 찾아가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준다. 월요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김에 도서관에 잠깐 들러 책 구경을 하다가 온다. 화요일, 속수무책 흔들리는 마음의 혼란이 극에 달할 때 찾아간다. 수요일, 나만 이리도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느끼려 걸어간다. 목요일,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받으러 간다. 금요일, 온 세상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알아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될 때 찾아간다. 토요일, 돈도 없고, 딱히 약속도 없고, 빈둥대다가 시간 때우러 간다. 일요일, 맨얼굴에 막 주워 입은 옷 입고 책을 빌리러 간다. 나에게 도서관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마다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여행지다. (날마다, 도서관 9페이지)


423일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라는 건 알았는데, 412일이 도서관의 날이라는 건 이제야 알았다. 3월 말부터 도서관에 여러 가지 행사 안내가 공지되어 있던데, 그냥 날씨가 풀리고 해서 잠깐 이벤트처럼 행사하는 줄 알았다. 보통 책과 관련된 행사는 가을에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이런 봄에 갑자기 뭔 일인가 했다. 도서관의 날이었네. 찾아보니 2023년에 첫 번째 도서관의 날을 기념하였다고 하니, 몇 년 되지 않았구나. 익숙하게 들어본 적 없어서 몰랐던 거였네. 그래도 뭐, 이번 기회에 하나 알았다. 이제 해마다 412일에는 도서관의 날이라는 걸 알았고, 평소에도 잘 이용하던 도서관이 이날만큼은 더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지금 사는 집을 구할 때 조건 중의 하나가 도서관의 위치였다. 보통은 아이들 학교나 학원에 가까운 곳, 소아청소년과가 멀지 않을 것, 마트나 은행 등 생활권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하는데, 아이가 없는 우리에게는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도서관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느냐 하는 거였다. 뚜벅이인 내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를 연체하지 않고 반납하고, 필요한 책을 바로 대출하러 갈 수 있는지 하는 게, 어느 정도의 위치에 집을 구할 것인가 하는 기준이었다. 어쩌다 보니 도서관의 위치는 생각하지도 않고 남편의 출퇴근이 부담스럽지 않은 동네로 정하게 되었지만, 결국은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곳이었다. 근처에 마트와 은행이 있고, 가끔 커피를 마시러 나갈 수 있는 카페가 여러 곳 있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게 가까이에 걸어갈 수 있는 도서관이 세 곳이나 있다는 거다. 시립도서관 두 곳, 작은 도서관 한 곳이 있고 걸어서 1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다. Y 도서관은 주로 도서 대출과 반납, 가끔 커피 한잔 사 들고 가서 책 읽기에 편한 분위기다. 1층에 있는 북카페에 앉아 있다가 약속 시간 맞춰 나가도 좋다. B 도서관은 공부할 게 있을 때 주로 간다. 여기에도 1층에 북카페가 있는데, 거의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수험서 넘기는 소리도 그러려니 한다. 사실 작은 도서관은 폐관 시간이 너무 빨라서 잘 이용하지 못했다. 언젠가 주말에 가서 그곳의 분위기도 느껴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도서관의 풍경을 듣고 있자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많은 이가 공감할 수밖에 없다. 요일별로 일주일 동안 도서관의 분위기를 들려주는데, 이상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평일과 주말을 나누어서 분위기가 다르다는 건 알았는데, 요일별로 그날의 도서관 분위기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사실 어느 지역이나 도서관은 있기에, 이런 이야기가 새삼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도서관에 앉아 있다 보면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느껴지는 흐름이 있다. 유독 도서관에 가는 날이 있고, 연체하면서도 가기 싫은 날이 있다. 도서관의 여러 가지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지만 도서관마다 다르기도 하고, 어떤 목적으로 가느냐에 따라 도서관을 선택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도서관의 외관부터 특색있게 설계하기도 해서 무슨 관광명소 가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도서관이 어떤 외관을 가졌든, 도서관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쉼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지식의 창고가 되기도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각자의 쓰임에 맞게, 기분에 따라서 갈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지역의 시립도서관은 보통 월요일이 휴관이다. 그러니 저자가 찾아낸 월요일 아침 도서관의 풍경은 나에게 낯설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저마다 등굣길 출근길에 바쁜 시간이 지나고 오전에 찾는 도서관이라니. 생각보다 그 시간에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많았고, 익숙한 듯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이상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자리가 있음에도 꼭 앉는 자리에 앉는다. 그래야 마음의 안정이 된다. 혹시라도 항상 내가 앉는 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아 있다면, 이제 새로운 자리찾기가 시작된다. 어디에 앉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불안해야 하는가. 마치 인생 같다. 사는 내내 자기 자리찾기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도서관에서 자리 찾기처럼 어쩌면 인생은 적당한 자리 찾기 게임일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거리를 수없이 재가며 눈치 보고 분석해서 어느 자리쯤에 머물러야 하는지를 말이다.”(날마다, 도서관18페이지) 이 문장을 보면서 씁쓸했다. 그냥 인생이 그런 거려니 했는데, 마음 편하게 찾는 도서관에서조차 이런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니. 사는 게 참, 그렇네.


화요일의 도서관을 찾는 저자의 마음에 나의 경험도 얹어본다. 전날부터 남편과 싸워서 서먹했다. 퇴근 후 남편 얼굴을 마주하기가 싫었는데, 그 시간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집 근처 카페는 문을 닫았고, 설령 영업 중이라고 해도 저녁 늦은 시간에 오래 앉아 있기에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추운데 밖을 헤맬 수도 없고. 이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도서관이다. 화요일 저녁, 휴관일도 아닌 데다가 자료실은 10시에 문을 닫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더 늦게까지 있고 싶으면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학습 열람실로 가면 된다(독서실 칸막이가 있는 공부하는 곳). 사실 그렇게까지 늦게 도서관에 있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 시간에 나를 거부하는 곳이 없다는 게 기쁜 일이 아닌가. 저자도 그랬단다. , 웃겨. 세상에 도서관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단 말인가. 내가 낸 세금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게 기뻐서, 오늘도 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했다.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으면 또 핑계 삼아 도서관에 한 번 더 가는 거다. 좋아, 너무~ 좋아(‘폭삭 속았수다의 애순이가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좋다고 말할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평소 밤에 도서관 앞을 지나면서, 창문으로 비치는 불빛을 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3층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을 것 같은데, 2층의 자료실에서는 누가 도서관을 찾아 앉아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시간에 도서관을 찾고서야 알았다. 그 시간에 도서관 불빛 아래 앉아 있던 사람 중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었다고. 꼭 책을 읽고 싶어서는 아니어도, 갈 곳이 없어서 자리를 찾는 사람이 있다고.


도서관에서 교양 강좌를 들은 적도 있고, 그 강좌를 듣고 자격증을 취득한 적도 있다. 물론 민간 자격증이었지만, 일정 시간에 꾸준히 수업을 듣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런 기회를 이용하는 것도 좋았다. 어느 정도 출석률을 채워야 시험도 가능한 일이니, 그걸 도서관에서 강좌로 개설해주어서 좋은 기회였다. 생각보다 사람들 반응이 좋았는지, 일 년에 한 번 정도 같은 강좌가 계속 개설되고 있었다. 어떤 교양 강좌는 1회성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유명한 작가가 아니면 빈 좌석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는데, 데스크에 있던 사서가 책을 고르는 나에게 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더라. 그 주에 진행되는 추리소설 작가의 강연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신청자가 많지 않았나 보다. 신청은 진즉에 마감되었는데, 나더러 시간 되면 강좌에 오라고 했다. 도서관에 자주 가서 그분과 안면이 있기도 했지만, 아마 내가 대출하려고 손에 든 책이 추리소설이어서 옳다구나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기회로 강좌를 개설한 사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저조하니 난감했을 거다. 저자의 강연에도 빈자리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강의를 계속하게 되는, 어떤 강의에는 없는 시간 만들어서라도 참석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성별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는 여전히 배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아서다.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새로운 배움의 세계로 가는 발판으로 여기며 기뻐하는 사람, 배울수록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가며 더욱 겸손해지는 사람,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사람, 배워가는 삶 가운데 자신의 성장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사람. 나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 무명하더라도 도서관 강의를 계속하고 싶다(날마다, 도서관96페이지)” 저자의 진심이 도서관에 있었다.


주말의 도서관처럼 편한 곳이 없다. 조금 늦잠을 자고, 배를 채우고 조금만 더 뒹굴뒹굴하다가, 목 늘어진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나서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이다. 양말을 신는 것도 귀찮아서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혹시 모르니 가방에 생수 한 병 정도는 챙겨서 집을 나선다. 이런 날은 그림책을 한 권 골라서 읽어도 좋겠다는 마음에 어린이 자료실로 들어간다. 아차, 여기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양말이라도 하나 챙겨올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 가족 단위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옆에 그림책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한 권씩 읽어주는 부모의 목소리가 따뜻하다. 원래 음식물 반입 금지인데, 가방에서 슬쩍 젤리 하나를 꺼내 입에 넣는 아이를 보고 괜히 웃음이 난다. 몇 권쯤 읽었을까, 아이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어 있다. 바닥이 따뜻해서 잠이 슬슬 잘도 올 것 같다. 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아이를 깨워서 나가겠지. 어쩌면 도서관에서 나가면 저녁을 외식으로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하루의 모습이었다. 그 중심에 도서관이 있어서 괜히 더 즐거웠다. 주말 나들이의 장소가 되고, 아이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습관처럼 도서관을 가깝게 만들어주는 시간. 주말 낮의 도서관 풍경이, 태풍처럼 바람이 불었던 오늘의 추위를 데워주는 듯했다.


도서관의 날을 검색하다가 몇 권의 책을 더 발견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고, 지식의 요람이자 저항의 무대, 권력의 그늘, 누군가의 삶과 사랑이 지나간 자리가 되기도 하는 이야기가 가득한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우리나라에 이런 도서관이 있었나 싶게 처음 듣는 도서관이 많았다. 419 혁명기념도서관, 한때 안가(安家)로 사용되었다는 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 민주주의를 외치던 대학도서관 등 우리 역사 속 도서관을 탐험하는 시간이 될 듯하다. 나의 도서관은 낙타 등에 있어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이동도서관을 소개하고 있는데, 너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동도서관이 오지 않는다면 책을 구경할 수도 없는 환경이어서 안타까웠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낙타가 책을 운반하는 방식이다. 상상이 잘되지 않는데, 그래서 더 재밌는 책의 이동 수단이었다. 이렇게 이동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원할 때마다 책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오늘은 도서관 가는 날은 그림책인데, 엄마가 도서관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아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아빠를 만난다. 어떤 이유로 부모가 헤어졌고, 면접 교섭일을 지키듯이 아이가 아빠를 만나는 날, 만나는 장소로 도서관이 되었다. 아이의 환경은 슬프기도 했지만,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빠를 다시 데려오는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울컥해지기도 한다. 아이에게 도서관 가는 날은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여행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다른 이용자를 위해서라도 연체하지 않으려고, 나가는 길에 도서관에 반납할 책을 캔버스백에 담아두었다. 이 가방이 가볍게 돌아와야 하는데, 반납한 만큼의 책이 다시 가방에 채워져서 도서관에서 나오게 된다. 이것도 참 이상하네. 시간도 없어서 다 못 읽을 것 같은데, 이놈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또 다짐한다. 최대한 다 읽고 반납해야지. , 그래야지. 무심코 넘긴 그림책 한 페이지에서라도 배우는 게 있다면, 그게 책을 읽는 이유이자 의미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그러니 또 도서관에 가야 할 이유가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일상의 소박한 행복 하나를 추가하는 기분에, 즐겁다. 날씨도 좋아지는데, 도서관으로 향하는 산책길이 더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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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뭐라고.’

이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굳이 밥이 아니어도, 하루 세끼가 아니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고, 밥 챙겨 먹는 것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 많은데, 굳이 먹는 것까지 우선순위에 두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 몸무게 최저점이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먹는 일이 진심이 되었고, 전국 맛집을 찾아다니는 정도는 아니어도 시간이 생기면 뭔가 맛있는 것을 찾고 검색하며 가까운 곳을 돌았다. 고급스러운 메뉴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쉽게 먹는 칼국수 한 그릇에도 조금 더 맛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때부터 내 몸무게는 급상승하였고, 지금도 그 수치는 내려갈 줄 모른다. 맞는 옷이 없어도, 허리통이 두둥실 떠다닐 것 같아도 다이어트를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누구에게나 진심인 메뉴가 있다. 가끔 그 메뉴에 사연까지 담긴다면 세상 최고의 음식이 된다. ‘띵 시리즈에 소개된 모든 음식이 그럴 거로 생각된다. (‘띵 시리즈많이 읽었지만, 출간된 시리즈의 모든 책을 읽은 게 아니어서) 읽을 때마다 낯선 이에게 정이 샘솟는다. 우리 일상에 너무 깊게 스며든 온갖 메뉴에 이런 이야기가 담길 거로 생각한 적이 없는데, 살아가는 동안 겪은 많은 감정이 그 메뉴에 오롯이 담겨 나오는 듯하다. 오렌지주스나 갈아 만든 배로 해장한다는 말을 처음 듣고 놀라던 것도 잠시(해장음식 :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전국 팔도에 뿌리내린 해장음식이 너무 다양해서, 꼭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도 가서 맛보고 싶었다. 강원도의 달팽이(다슬기) 해장국, 제주도의 각재기(전갱이), 경상도의 복국이나 재첩국, 충청도의 날떡국(올갱이가 들어간다), 전라도의 설탕 국수, 서울과 경기도의 평양냉면 육수. 그런데 전라도에 사는 나도 설탕 국수로 해장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삶은 국수에 설탕을 뿌려 먹으면서 해장한다고? 이렇게 해장이 되나 싶을 정도로 놀랍고 놀라운 메뉴였다. 자고로 해장이란, 목으로 무얼 넘기든 개운하고 시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와아~ 진짜 각자의 해장 방식이 너무 다양했다. 평소 먹고 싶은 거 아주 많았는데, 여기에 해장 메뉴 추가요~


숙취에도 장점이란 게 있다면 오직 그것뿐이다. 반성하고, 쉬게 하는 것. 술을 마실 때야 언제나 즐거움뿐이다. 이 세상에는 맛있는 술,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고 하찮은 일로도 까르르 웃고 떠드는 친구들과의 시간은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천국이 따로 없다. 다만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즐거움과 정비례한 크기로 찾아오는 숙취가 괴로울 뿐이다. (해장음식, 110페이지)


윤이나 저자의 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역시 놀라운 라면의 세계였다. 평소 라면을 잘 안 먹어서 집에 라면이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요즘에는 귀찮은 한 끼 해결 목적으로, 언제 먹을지 모를 라면을 종종 사다 놓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유통기한 지나서 버린 적도 있다. (유통기한 넘긴 음식 그래도 먹는 편인데, 이상하게 라면은 날짜가 지나면 오래된 기름 냄새가 나서 못 먹겠더라) 라면에 진심인 저자의 다양한 라면 탐구가 인상적이어서, 이 책에 등장한 라면 이름을 적어두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라면이 있었다니, 비슷해 보여도 라면스프 하나에 맛이 너무 달라서 묘했는데, 면발부터 국물맛까지 너무 다른 라면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어졌다. 근데, 이 책에 소개된 라면을 언제 다 먹어보냐. 이거 다 맛보려면 몇 년은 걸릴 듯. ^^


이번 출간작 구내식당읽으면서 나도 한때 경험했던 구내식당(?)의 시간이 생각이 났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의 소도시인데, 1년 정도 관공서에서 기간제로 일한 적이 있다. 그동안에는 가끔 일하면서도 점심시간은 늘 일터 밖에서 해결해야만 했는데, 여기에서 일할 때는 구내식당이 있었다. 가격도 저렴했고, 밥 먹는 시간도 절약되고, 잠깐 점심시간에 쉴 시간도 생기겠구나 싶어서 좋았다. 메뉴? 그딴 거 필요 없었다. 집안에서 주방을 주로 담당하는 많은 사람의 최고 메뉴는 남이 해준 밥이다. 소박하게 마련된 구내식당에서 처음 밥을 먹을 때는 일단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고, 그다음에는 처음 보는 메뉴를 조리사님께 물어본 적도 있다. 그러다가 점점 배가 불렀는지, 메뉴에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 콩나물국에 콩나물무침? 어떻게 같은 재료 음식이 식판 위에 나란히 올려질 수가 있는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도 쉽게 이해하게 됐다. 집에서 나도 그랬다. 콩나물을 한번 사면 오래 보관할 수 없으니, 그날 다 해치웠다. 국도 끓이고 삶아서 무치기도 하고, 가끔 그날 저녁 메뉴가 김치찌개라면 찌개에 콩나물을 넣기도 하고. , 진짜 내가 배가 불렀구나. 인생 최고의 음식인 남이 해준 밥을 앞에 두고 말이다.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일하면서 점심시간은 단순한 점심이 아니다. 맛있게 열심히 먹고, 잠시 한눈도 팔면서 오후를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저자에게도 비슷하다. 일을 열심히 해도 회사를 무조건 사랑할 수 없는데, 밥벌이를 위해 매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살벌한 일터에 사랑하는 대상 하나쯤 저장해두고 그걸 위해 아침 출근길을 나서는 것도 괜찮잖아? 그렇게 만든 시간, 우리가 사랑하는 건 점심시간이었다.


저자의 구내식당에도 뭐 크게 다를 건 없었지만, 두 가지 메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거, 하루에 두 번씩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언론사 특유의 시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 부럽긴 하더라. 어쨌든, 저자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구내식당 사진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던 순간, 사람들은 그날의 메뉴 사진이 없으면 궁금해했다. 특별한 거 없는 단체 급식 사진에 이렇게나 궁금해한다고? 우리가 하루에 먹는 음식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열심히 사는 인생의 한 과정이었고, 그 음식으로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마감에 쫓기며 스트레스를 받아도, 사람과 일에 치이며 한바탕 울고 싶은 날에도, 소중한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저자에게는 구내식당이 있었다. 눈물을 삼키며 숟가락을 들어 올리고 다시 힘을 냈다. 거기에 기자가 일하는 곳이라는, 그곳에서 일하지 않으면 경험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분야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저자가 전하는 구내식당 이야기가 더 특별해진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전해지던 순간, 종이신문 마감 시간까지 어떤 기사가 그 기쁨을 채우게 되는지 들려왔을 때는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구독자에게는 기쁨의 소식과 놀라운 정보가 더해지는 순간이지만, 그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마치 깜짝쇼처럼 수상자를 미리 알지 못하니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 기자들이 이렇게 분주하게 보내는 짧은 몇 시간으로, 우리는 그 순간의 영광을 더 기쁘고 다양하게 만끽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문득 모든 게 다 귀찮아지면서 산란기의 연어처럼 구내식당으로 회귀한다. 이번엔 문 닫기 한 시간 전에 식당 입성. 매콤제육 장조림은 간이 잘 맞는 데다 부드럽고, 수제비는 쫄깃하면서 뜨끈하다. ‘이만하면 괜찮은 한 끼잖아!’ 하면서 다시 생각해본다. 아까 그 점심은 왜 그렇게 맛이 없었던 걸까. 출근하기 싫어 늑장 부리다 음식이 다 식었을 때야 겨우 식당에 도착한 일요일 당직자의 후줄근한 마음, 덩달아 후줄근해진 미각에 아무래도 그 책임이 있지 싶다. (구내식당, 78페이지)


구내식당이 단순하게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한솥밥을 먹는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노동의 장소이면서, 같이 부대끼고 울고 웃는 사람들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곳이라는 말이 이해되기도 하더라. 상사에게 까인 동료를 밥 한 끼로 위로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떡볶이 메뉴에 학교 앞 분식집을 떠올리기도 하는, 먹고 싶었지만 내가 만들기도 귀찮고 배달로 먹으면 식감이 떨어지는 메뉴에 나도 같이 먹고 싶었다. 길어야 한 시간 남짓, 삶을 채우고 고단한 밥벌이를 버티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집에 있으면 밥 먹기 귀찮아서 끼니를 거르거나 군것질로 대충 때우기도 했는데, 일할 때만큼은 점심을 전투적으로 먹었다. 그 점심 한 끼가 오늘의 모든 식사였던 날도 있었으니까. 주방 조리사님께 물어본 메뉴를 집에 와서 그대로 만들어서 먹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경험했던 구내식당은 점심을 해결하는 곳만이 아니라, 의외의 레시피를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구내식당 #띵시리즈 #지금물올리러갑니다 #나라잃은백성처럼마신다음날에는

#해장음식 #라면 #바게트 #에세이 #한국문학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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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마음
서유미 지음 / 마음산책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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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하나 들여놓는 건 어때?”

집이 좁은데도 앞쪽 베란다에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 엄마 집에서 상비약으로 가져다 놓은 알로에는 돌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 채로 시들다가, 결국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블라인드를 걷어놓으면 거실 앞쪽은 훤하다. 베란다에 쌓인 먼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쪽을 보고 있자면 가슴 한쪽을 차지하는 답답함은 사라지는데, 이상하게 허전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없어서 개운한데, 또 아무것도 없어서 마음이 허해진다. 이런 걸 외로움이라고 해야 할지 뭔지, 모르겠다. 한숨처럼 이런 마음을 꺼내놓으니, 지인이 고양이를 한번 키워보라고 한다. 생명체를 돌보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하니, 이번에는 화분을 하나 들여다 놓으라고 권한다. 고양이보다는 그나마 덜 힘들게 돌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베란다 쪽을 보면서 휑해서 허전한 것보다는 뭔가 하나라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겠느냐면서. 글쎄. 게으른 사람도 누구나 잘 키울 수 있다는 알로에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지게 하는 내가, 또 어떤 식물이라고 기를 수 있을까?


지나가야 하는데, 잊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193페이지, 보내는 마음)


서유미의 소설 보내는 마음의 많은 주인공에게 다가온 일들이 마치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와서 무서웠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야 할지, 언젠가 내가 맞닥뜨릴 일이라고 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든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진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많은 일과 너무 닮아서 멍해졌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다들 비슷하게 가슴의 상처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덜 힘들기도 한데, 왜 매번 새로운 수위의 힘듦이 찾아오는 건가 싶어서 여전히 어렵기도 하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일을 겪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떠오를 것 같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방법으로 옷을 사들이고, 그 옷들이 쌓이다 못해 무너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내려놓는 마음은 무거우면서 슬펐다(무너지는 순간).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많은 것이 나를 떠나가도 이렇게 사들인 옷들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거라고 여겼을까? 그렇다면 다른 방식의 채워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아니다. 이렇게 쉽게 찾아질 대책은 아닌 듯하다. 그걸 알았다면 옷장에 걸어놓은 옷이 무너질 정도로 채워 넣지는 않았을 테지.


우연히 찾은 쉴 공간에서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돌아가는 것처럼(숲과 호수 사이) 마음 한번 활짝 열어놓고, 쏟아낼 것은 쏟아보고 비워진 곳에 채우고 싶은 것은 다시 채워서 일상을 버틸 힘을 주는 곳 하나쯤 만들어보는 거, 정말 필요하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알게 모르게 나에게 박힌 상처를 보듬는 방법을 찾는 일이 바로 이런 거라고. 작은 화분 하나 집안에 들여놓으면 어떠냐고 묻는 지인의 말이 계속 맴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뜻 드러내놓지 못하는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주는 무언가를 옆에 두고 보라고. 완전히 사라지는 상처가 아니더라도, 조금 옅어지는 상처의 흉터 정도로 머물지 않겠느냐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살아가는 일의 극히 일부분인 줄 알았는데, 사실 인간관계가 살아가는 일의 대부분을 주관하는 것 같다. 한 사무실에서 내 밥벌이만 해도 되는데 옆자리 동료와 잘 지내야 하고, 부모와 형제, 친구 사이의 갈등 역시 인간관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면서 사실 너무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넓은 관계의 사람들까지 나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도 너무 막연하게만 들려서 종종 버겁다. 그래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버틸 힘이 남아 있기도 할 텐데, 이마저도 너무 어려워서 이 계절을 보내는 게 힘이 든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머릿속은 복잡해서 그런가 보다. 매번 잘 넘겨왔으니 여기까지 왔을 텐데,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어려움으로 느껴지는 거 왜인지. 누군가 모든 것이 다 끝난 후로 나를 넘겨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이런 마음도 웃기기만 하다. 내가 해야지 누가 하겠어. 이 시간을 잘 넘어가기만 하면 그 후로도 괜찮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


어떤 여름의 주인공이 본인의 노력에도 풀지 못할 상황을 피해 더운 여름을 지내기 위한 곳으로 향할 때,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하나로 그 바람을 느껴야 하는 게 여전히 더워 보였는데, 낯선 곳에서 에너지를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상했다. 어쩌면, 이게 정상인 건가. 일상으로 돌아갈, 이 더위를 그대로 받아쳐 낼 수 있는 용기가 그녀 안에 담기는 것 같더라. 그래서였나. 이 소설집이 술술 읽히면서도 한 번씩 가슴에 콱 막히는 순간을 몇 번씩 넘겨야 했다. 왜 많은 것이 머물다가 떠나가고,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 입히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건지 묻고 싶기도 했다. 원래 그런 거라고,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냐고 답이 없는 질문과 푸념을 이어가다가도, 그래도 한 번쯤 명확한 답을 듣고 싶기도 했다. 그 답이 이해되든 안 되든 말이다. 연인과의 이별은 슬픈 거고, 사회의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건 다반사고, 누군가 돌보는 일은 고단하고, 이 많은 일 가운데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건 뽑아내기 어려운 상처일 테고. 우리 일상이 이렇다고 거울처럼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K가 떠나기 전까지 나는 옷장이 부족한 거라고, 저 옷들을 잘 걸어두고 아름다운 옷들을 새로 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가고 내게는 그것이 아름다운 옷일 뿐이었다. 그것에 몰두하는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K에게는 달라지고 싶다고,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K를 붙잡을 수 있으니까. (33페이지, 무너지는 순간)


얘도 이러네, 나도 그래서 힘든데 하면서, 누군가의 마음 깊숙한 곳을 섬세하게 듣는 시간이었다. 사는 게 왜 이러냐 하면서 한숨 토해내고 싶을 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로 남을 것 같기도 하다. 적당히 조용하게 쉴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런 곳에서 숨 한번 크게 쉬고 돌아올 수 있는, 전혀 이해 못했던 일들이 조금씩 이해되는 시간을 만들면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와 대화하는 일도 편안해지는. 그렇게 우리는 마음이 무너지고 많은 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점점 더 자주 이별하는 일을 겪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라고, 무너지고 헤어지는 것 사이에서 마음을 쉬고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애정 어린 것을 놓치지 않게 하는 이야기에, 속 시원하게 꺼내놓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대신해 울기도 했다. 사실은, 이 포근하고 따스한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울고 싶은 마음을 터트릴 수 있게, 누가 옆구리 좀 찔러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평범하게살아가는 모습이니까, 다시 회복하는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유난히 돌봄의 의미를 가진 상황들이 각 단편에 담긴 걸 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 과정을 걷고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위로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그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이상할 게 없다고, 그러니 다 괜찮다고.



#보내는마음 #서유미 #마음산책 #짧은소설 #한국소설 #한국문학

#돌봄 #위로하고위로받는 #무언가에기대어살아가는 #다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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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크리스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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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즐거움에 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종교와 상관없는 사람도 누리는 휴일? 이상한 의무감이라고 해도 약속을 잡아서 좋은 날? 분명한 이유를 대기는 애매하지만, 당당하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요구해도 민망하지 않은? 그것도 다 어렸을 적 얘기인가 싶을 정도로,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이다. 이유가 없다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굳이 하루 세끼 안 챙기고 늦잠을 자도 좋고.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라고 해두자. 교회에 다닌다면 성탄 예배에 참석하기도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니 그냥 하루 푹 늘어지면서 행복한 날이다.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부모님이었다는 거, 정말 바라는 선물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지 못한 가정 형편을 알게 된 후로, 그냥 일 년 중 하루인,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로 남았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은 아니다. 누구라도, 혹시나 살면서 많이 힘들었다면, 이날 하루만큼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곤 하니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아마도 많은 사람의 이런 간절한 바람을 알았나 보다. 누가 읽어도 가슴 따뜻해질 수밖에 없는, 기억에 남을 만한 크리스마스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물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핀란드의 작은 마을에 있는 산타 협회로 세계의 산타 대표들이 모인다. 정기 산타클로스 회의였다. 이번에는 그동안 회장직을 맡은 미국 지부 산타클로스가 은퇴하면서 그 후임을 뽑는 자리이기도 하다. 회장이 후임을 지명하고, 다른 산타클로스의 반대가 없다면 그대로 임명된다. 그런데 회장이 지명한 사람은 여자였다. 갑자기 회의는 시끄러워지고 서로의 의견을 내놓느라 소란스럽다. 여자가 산타가 될 수 있느냐면서 논쟁을 벌이고, 각자의 생각을 토해내느라 바쁘다.


여자는 산타클로스가 될 수 없나? 이런 질문을 떠올려야 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그려온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여자를 떠올릴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이미지 속의 산타클로스는, 몸집이 크고 하얀 수염과 눈썹을 가진 남자 어른이었다. 여기 산타 협회에 모인 각국의 산타클로스들 역시 모두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여자가 산타클로스를 하겠다고 나타났으니 놀라기도 했겠지. 이런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지원자 토미 엄마는, 자기가 직접 만든 쿠키를 대접하면서 왜 지원하게 되었는지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생각이 옳다면서 큰소리를 내던 사람들은 잠잠해졌고, 토미 엄마의 지원 동기와 진정성을 알게 되고 그녀의 산타클로스 첫 임무를 조용히 응원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흐름이었다. 남자들만 계속해왔던 산타클로스를 여자가 한다고 나타난 것, 과정은 다소 소란스럽기도 했으나 모두가 이해하고 서로의 임무를 해내는 것만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다.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건 아마도 편견일 거다. 그동안 익숙하게 봤던 산타의 이미지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어 우리에게 각인되었는가. 처음 이들은 서양에서 만들어낸 모델이라고 하다가, 누군가 서아시아의 터키라고 증명하자 그들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미지에 금이 간다. 그러면서 한 명씩 자기가 맡은 구역이 일반적인 것과 다른 부분이 있기에 산타의 활동에도 다른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오세아니아에서 온 산타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때문에 산타클로스 표준 스타일에 따를 수 없다고 한다. 너무 더워서. ㅠㅠ 그래서 요즘에는 알로하 셔츠를 입고 서프보드를 타고 다니면서 선물을 나눠준단다. 하하. 상상만 해도 너무 즐겁지 않은가? 산타가 알로하 셔츠를 입고 보드를 타면서 선물을 준다고? 이거 너무 신나잖아! 아프리카 산타의 말은 또 어떻고. 산타클로스의 상징인 빨간색 옷이 아니라 초록색 옷을 입는다고 한다. 빨간 케이프를 두르고 다니다 보니 펄럭거리는 빨간 색이 사자에게 자극을 주어 공격당하기도 한다고, 마치 자연 속 보호색처럼 초록색으로 입는 게 안전하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버지의 위상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는 요즘에, 여자가 산타클로스를 한다고 하면 그나마 남아있는 부성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 급기야 산타가 부성의 상징하는 의미까지 언급되면서 저마다의 주장이 쏟아지고 더 소란스러워진다. 그리고 조용히 수습되는 과정에서 토미 엄마의 말에 그 자리의 모든 산타는 숙연해졌다. 부성이 아주 중요하고, 산타가 부성의 상징이라는 말도 맞겠지만, 부성을 부여받은 게 남성만은 아닐 거라고, 모성 역시 여성에게만 한정적으로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역할을 하는 데 있어 겉모습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회의에서 각국의 산타클로스는 자기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원칙을 깨는 상황도 설명한다. 아프리카의 산타는 검은 피부색 때문에 산타 이미지와 어긋난다는 말에 차별을 느꼈다고 했다. 무엇이 차별과 편견을 만드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했다. 원래, 당연히, 처음부터, 뭐 이런 말들로 우리 머리와 가슴에 심어놓은 고정된 생각이 ‘00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라는 인식이 된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책에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한 가지로 고정하지 않은 이유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뭔가? 산타클로스가 몰래 다녀가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사랑도 흠뻑 뿌려주고 가는 날 아니었던가. 외모가 어떤 산타클로스가 나눠주고 가도 문제 되지 않을 일인데, ‘누가어떤 모습으로 다녀가는지 꼭 구분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작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 일상에서 익숙(?)하게 이어져 왔던 많은 것에 당연함을 떠올리지 않고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더라.


이 책 읽다가 많이 반성했다. 오늘도 밖에서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혔는데, 생각해 보니 그때마다 상대방에게 원래 그래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더라. 세상에나. 나는 거의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함과 편견에 빠져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듬뿍 나눠주면 되는 거지, 산타클로스의 성별이나 외모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반드시 어떤 이미지를 갖춰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닌가. 토미 엄마가 흰 눈썹이 아니라고 하자 다른 산타가 방법도 알려주었다. 온몸에 밀가루를 뿌려!! ㅎㅎ 크리스마스에 흰 눈썹으로 루돌프 썰매를 타고 바쁘게 달렸을 토미 엄마, 여성이 아니라 그냥 산타클로스가 온 세상에 사랑을 뿌려놓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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