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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 헤티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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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마흔 살이 된 마당에 여전히 출생지를 떠나지 못하고 쥐가 들끓는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며 적금이라고는 땡전 한 푼 없이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 먹고사는 아이 없는 이혼녀라니. 내 결혼이 결딴났을 때 아빠가 건넨 조언을 실천하지 못한 모양이다. 앞으로는 정신 똑바로 차려라. 정신 똑바로 차리는 대신에 나는 계속해서 삶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35페이지)


책 소개 글 보다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를 언급해서 섣불리 내용을 추측했다. 아이 문제는 언제나 답이 없는 화두가 되기에, 누구도 속이 시원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주인공이 겪는 이 혼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로 여겼다. 막상 읽다 보니, 아니었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하나의 질문이 아니었다. 책의 초반부에서 언급된 위의 말처럼, 거의 마흔 살을 살아오는 동안 자기가 이뤄낸 것이 없고 무엇 하나 분명하게 드러낼 수 없는 인생에 관해 무거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 실라 헤티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게 소설이든 에세이든 장르가 중요한 건 아닌 듯하다. 문장 속에서 전해지는 솔직하고 투명한 감정과 고민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누구나 고민한다. 적당한 나이, 적당한 위치. 이 나이 정도면 이 정도는 이뤄놔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 그 기준이 각자 다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이 정도로 가고 있으니까. 이때쯤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 흐름에 편승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 분위기에 휩쓸리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닌데도 쉬지 않고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누군가 정해놓은 보편적인 삶에 속하지 않음이 잘못된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글쎄, 자랑할 만한 커리어도 없고,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에서 결혼도 늦었고, 아이도 없고, 앞으로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도 않은 나는 이 다른삶을 얼마나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남들의 시선 따위 관심 없다고 말하곤 했는데, 속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상처받는 유리멘탈이라, 얼마나 감당이 될지 모르겠다.


현대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는 과거보다 덜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과정은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나의 친구는 결혼한 지 10년 차인데, 그 친구에게는 위로 오빠가 둘 있다. 오빠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결혼을 절실하게 여기지도 않는 듯하다. 이 친구에게도 아이가 없다. 친구의 부모님은 곧 팔순이신데, 주변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화가 나서 들어오시곤 한다. 다들 자식 자랑, 손주 얘기에 바쁜데, 자기는 나이 오십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둘이나 있고, 손주도 없어서 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다는 거다.


저자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화자인 는 같이 지내는 파트너가 있지만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이대로 아이 없이 지내야 할지, 아이를 낳아야 할지 여전히 고민이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데, 가임기도 끝나가는데, 어떻게든 결정해야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을 텐데.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한다. 스스로 선택한 작가의 삶이 옳은 건지, 자기가 지금 쓰는 작품이 얼마나 인정받을지, 정말 아이를 원하는 건지, 아이를 원한다면 이유는 뭔지, 아이가 있는 게 작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묻고 또 묻는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을 동전점을 치면서 찾는다는 게 의아하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뭔가 아이 같은 기준으로 오늘의 문제를 바라보는 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현명하다고 해야 하나,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 싶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감정을 가진 누군가의 조언이나 의견이 아니라, 아무 감정 없이 오직 보이는 그대로만 전해주는 동전점이 진짜 객관적인 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 하는 고민은 우리도 똑같이 겪는 문제이면서 그 어떤 답도 100% 안심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는 오르고, 내 집 마련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고, 폭염에 혹한에 일상을 지내는 일은 버거울 때가 많고, 육아는 힘들고 돈도 많이 든다. 특히 여성에게는 여기에 한 가지 더 얹어진 선택의 문제가 따라온다. 경력 단절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하나의 다짐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과 답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 당연함(?)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까지 추적하게 되면서, 이어지는 저자의 한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출산하지 않기로 한 다짐을 누군가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고충, 어머니가 되지 않고 작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더해야 한다니.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고민하고 결정했을 때 남성도 가 하는 걱정을 똑같이 할까?


아이를 낳지 않는 대신에 어떤 일을 할지 원대한 계획을 덧붙여야 해. 대단한 과업이어야만 하지, 그리고 자기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 그 삶을 시작하지도 않았더라도 설득력 있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이 좋을걸.” (72페이지)


하지만 나이가 들며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머니가 되어보지 않고서도 내가 충분히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의 경험을 글로 오롯이 담아낼 수 있을까? 삶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점차 여겨지는 그 경험을 해보지 않은 채로?” (240페이지)


그러니까, 여성으로 살면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을 때, 그 이유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거다. 누구에게? 이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은 결정에 궁금해하는 모든 사람에게. 여성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삶을 당연하다는 관습에 다른 방향을 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니.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많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결정을 누구에게 이해시켜야 한단 말인가. 출산이 한 여성의 삶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만들지 않고,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에서 경험한 많은 부분이 인식하게 하는 임신과 출산의 문제를 다시 보게 하는 거다. 출산이 인생의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들이 포기해야만 했던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 결국 살아온 모든 시간을 통틀어 얼마나 많은 강요와 같은 포기를 해야만 했는지를. 그래서 의 동전점이 오히려 신뢰가 생길 정도다. 주변의 간섭으로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오는 과정 내내 증명하듯 보여준 엄마와 할머니의 삶으로 배운 결정이었다. 아이를 낳는가 낳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로 보게 된다.


나는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나는 그냥 사람이다.” (202페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뻔하다. 다른 삶에 환상을 품는 대신에 진정한 내 모습으로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현재 삶에 충실하기. 환상의 날개를 실제 삶에서 펼치는 것이다. 처음으로 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어찌나 흥분했는지, 마치 자기 자신과 섹스를 하는 듯한 성적 흥분에 가까웠다.” (16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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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무레 요코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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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좁은 집이 더 좁아지는 느낌에 살펴보니, 짐이 늘었다. 작은 방 하나가 짐으로 가득 차서 뭔가 자꾸 쌓여만 간다. 할인한다고 한꺼번에 구매한 음료수, 명절에 필요해서 미리 구매해둔 선물들, 중고 거래로 내놓으려고 얼마 전에 정리한 물품들, 여름이 지난 지가 언제인데 제대로 자리를 못 찾아줘서 헤매는 선풍기(, 이 물건은 다시 자리를 잡을 사이도 없이 조만간 다시 거실로 나오게 되겠군. ㅠㅠ), 그리고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집안의 온갖 살림들. 하나씩 정리한다고 하는데도 변화가 없다. 뒤돌아서면 모든 게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들 정리해 놓은 것만 봐도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깔끔하던데, 비슷하게 한다고 하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한편으로는 그들의 방식을 다 따라하자니 게으른 내가 쫓아갈 수가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정리도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알겠더라. 그래도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으니 어떻게 하긴 해야겠는데, 어쩐다.


요즘 내가 관심 두는 주제와 딱 맞아 떨어져서 홀리듯 집어 들게 된 책이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버리지 못하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느낀 결론은 하나다. 눈앞에 보이는 뭐가 없어야 정리가 되고 깨끗하게 보인다는 것. 나름 필요해서 하나씩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텐데, 꺼내어 보면 그게 꼭 자기 자리는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연을 듣고 있자니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나 이 공간에서 내보내야 하는 물건이 대부분이라는 해결책을 찾는다. 그 방법만이 해결이라는 건데, 그 결정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버리자니 아쉽고 갖고 있자니 짐이 되는 묘한 반복이 계속된다. 여러 번 고민해도, 아무리 다른 방법을 찾아도 답은 하나다. 버리는 것.


그럼 다시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 버리는 기준 역시 각자 다르다. 미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거나, 아쉽고 또 아쉬워서 오랜 시간 또 망설이거나. 이 책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가 나름 사정이 있는 정리가 되겠는데, 그중 압도적인 답답함은 책벌레와 피규어 수집가의 신혼집 논쟁이다. 제목만으로 이미 상황을 눈치 챘을 거다. 책이 가득한 여성과 피규어가 온 집안을 차지한 남성의 결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들이 결혼하려고 구한 집은 각자의 모든 짐을 가지고 들어가기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서로의 짐을 줄이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성에게는 수집하듯 모았던 책이 많았고, 남성에게는 오랜 세월 애지중지 아끼면서 보살핀 피규어가 그 주인공이다. 여성이 고민 끝에 과감히 책을 정리하는 데 반해, 유리 진열장까지 맞춰서 피규어를 진열해 놓은 남자는 피규어 정리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급기야 주변 사람들에게 피규어 보관을 부탁하지만 누구도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다. 여성은 남성이 피규어 정리를 미루자 함께 사는 일도 미루는 상황에 이른다.


평생 아끼던 물건을 버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그 유명한 말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이다. 뭔가를 떠나보내지 않으면 새로운 걸 얻을 수 없는 법(148페이지, 책벌레와 피규어 수집가의 신혼집 논쟁)이라는 말은 진리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하나의 선택이 다른 것의 포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하는데, 물건 정리도 마찬가지다. 남성이 결혼을 앞두고 자기가 혼자 살 때의 환경을 100%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이 결혼이 완성될 것이다. 피규어 정리가 어느 정도 완료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다는 여성의 선전포고가 결혼을 두고 하는 협박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끼던 것도 때로는 놓아주어야 하는 위기가 닥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양보해야 하는 부분도 생기는 게 인생이라고.


때로는 오래된 것들 속에서 추억을 느낄 수도 있지만(버리지 못하는 언니, 버리려는 동생), 그렇게 쌓인 것들 속에서 머물기만 하다가 나아가지 못하는 인생일 될 수도 있다는 것. 오늘의 웃음만으로 단순하게 사는 듯한 동생이 오히려 머뭇거리는 언니에게 과감하게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황이, 언니에게도 틀에 박힌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보게 하는 시선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정리하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일에 머무는 건 아닌가 보다. 평생 엄마를 힘들게 한 아버지의 방에 침입(?)하면서 정리하고 찾아낸 것들로 이 가정의 새로운 관계를 찾는 사람들도 있고(남편의 방), 사라진 며느리의 방을 정리하게 된 시아버지의 일탈 같은 하루에 가슴이 뚫리기도 하는(며느리의 짐정리) 이야기에 정말 다양한 관계들이 있구나 싶다. 주인이 없는 방을 들여다보는 일, 그 방에서 찾아내고 싶은 이야기는 많겠지만, 결국 그 무엇도 찾지 못하고 빈 방의 문을 닫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그 방의 주인과 물건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연결 고리, 세월의 흔적으로 이어지고 싶으면서도, 물건을 버리면서 의미 없는 감정과 관계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읽게 된다


아들보다 가까이 사는 딸을 종종 부르던 엄마의 부탁은 정말 놀라웠다.(쌓아두는 엄마) 같이 살지 않기에 엄마의 집 구석구석을 살펴볼 겨를이 없던 딸은, 방 한 칸을 완전히 짐으로 가득 채운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지진이 날까 봐 비축해둔 식량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고, 그중 어떤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이었다. 도저히 한 사람의 식사로 처리할 수 없는 식품들을 나눠주고 폐기하기에 이르는데, 이렇게까지 했던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자기가 구입한 식품을 잊고 있다가 또 사기도 하고, 무슨 식품인지도 모른 채로 구입하기도 하는데,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도 비슷한 경험이 많기에 주인공의 엄마를 나무랄 수는 없는데, 이 정도로 쌓아두면 눈에 보일 텐데 왜 몰랐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불안한 마음에 눈앞에 뭔가 가득 쌓여 있을 때 안심이 되는, 뭐 그런 건가. 이런 거 보면 우리 엄마랑 비슷하기도 하다. 부족하게만 살아왔던 시절의 기억에, 겨울이 되기 전에 쌀과 연탄을 창고에 가득 채워 놨을 때 비로소 안심이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필요 없어진 물건을 가득 집어 들고는 봉투에 집어넣고 매듭을 단단히 묶었다. ‘아깝다는 말과 감정까지 함께 버릴 생각이었다. (25페이지, 못 버리는 언니, 버리려는 동생)


단순히 물건을 쌓아두기만 하거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게 기억이든 시간이든, 물건에 사로잡힌 세월 안에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때로는 상처 받은 마음이기도 하고, 본인이 즐거웠던 흔적이기도 하다.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위기와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애매하게 붙잡고 있던 관계를 끊어내는 다짐이기도 하고, 후회하기만 했던 과거와의 이별이기도 하다. 뭐가 됐든 붙잡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버리는 방식이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 몇 가지만 남겨두고 과감하게 버릴 목록에 넣어지는 것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쓰레기봉투에 가득 담아지는 것을 보면서 내 속이 시원해지더라. 마치 내가 쌓아두고 정리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 책 속에서 다 처리해주는 느낌이랄까. 나도 누가 와서 눈이 시원하게 다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버릴 것인지 놔둘 것인지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그냥 눈앞에서 사라지게 말이다. 마치 갈팡질팡하는 불안한 마음을 붙잡아주는 것처럼, 정리되지 못하는 것들이 깔끔하게 제 자리를 찾아 놓여 있을 때,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된 것만 같은 착각이라도 좋으니까. 에혀~



#버리지못하는사람들 #무레요코 #라곰 #소설 ##책추천

#감정버리기 #의미없는관계정리 #후회의찌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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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실버 센류 모음집 2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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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1950년대에 태어나서 2025년을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시대에 익숙한 문화에 몸이 적응했고, 그렇게 살아오는 과정이 당연했겠지.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는 먹어가고, 그만큼 세상은 변화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나이 먹어가는 속도와 비례하듯, 점점 더 빨라지는 듯하다.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저절로 알아지는 삶의 경험과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를 마주해야 했다. 현금이나 토큰, 승차권으로 타고 다녔던 버스는 이제 카드 한 장의 알림음으로 요금을 대신한다. 내가 버스 토큰 세대가 아니었던지라 이런 얘기가 나에게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매체로 보던 어떤 장면들은 나에게도 없는 경험이고, 내가 아는 현재의 또 다른 역사 같은 기분이다. 아마 오늘의 어떤 장면들은 훗날에 역사의 한 장면으로 소환될지 모른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낯선 경험과 비교하듯이 말이다.


실버 센류 모음집 첫 번째 작품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의 후속 작품이 나왔다. 그냥 편하게 펼치면서 웃어보고 싶었는데, 비슷한 내용의 구절이 여러 번 보여서 놀라면서도 우울했다. 우리 모두 생김새나 사는 곳은 달라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다. 일상 곳곳에 놓인, 언젠가부터 우리 일상에 너무 익숙한 셀프문화. 음식점에서도 물과 추가 반찬은 셀프, 주유소에서도 셀프 주유, 학원에 가서도 출석 체크는 모바일로 셀프. 찾아보면 셀프 아닌 게 거의 없을 수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용하기 심란한 게 셀프 계산대가 아닐까?


셀프 계산대 앞

얼어붙은 사람들

죄다 할배들

(39페이지)


셀프 계산대

날 보고 다가오려

준비하는 직원

(93페이지)


할 줄 몰라요

가까이도 안 가요

셀프 계산대

(94페이지)


이 짧은 문장들이 왜 이렇게 슬프게만 들리는지. 사실 다이소나 마트 계산대는 이용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내가 고른 물건 바코드만 찍어 옮기고 계산하고 내 장바구니에 담아서 나오면 끝이니까. 하지만 나 역시도 이용하면서 처음에 많이 떨렸던 게 셀프 계산대였다(공포의 키오스크 말이다). 단순하게 커피 한 가지만 주문해도 되는데, 원두나 샷 등 추가 옵션을 고르라는 것도 어리바리하면서 잠깐 주춤거리게 될 때가 있다. 그중 가장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가게 되는 건 패스트푸드 셀프 계산대. 특히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의 주문은 무슨 옵션이나 추가가 그렇게 많은지, 소스 종류는 또 뭐고. 그냥 알아서 다 만들어주면 안 되나? 대학에 들어가고 처음에 힘들었던 게 시간표 짜는 거였는데, 패스트푸드 셀프 계산대 앞에 처음 섰을 때 기분이 딱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갑자기 일상의 모든 것이 셀프인 시대를 맞닥뜨린 게 아니라 서서히 변화하는 세상 속 셀프 문화였다고 생각하는데, 어르신들이 마주한 셀프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앞에 놓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더라. 낯설고, 어렵고, 막막하고, 그래서 주문을 포기하고 뒤돌아서기도 하는... , 이 상황 이 마음이 너무 공감하게 되는 이 순간이, 슬프다.


이미 이 시리즈의 분위기는 알고 있기에 새로운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이 짧은 글에 공감하게 되는 마음의 떨림은 어쩔 수가 없더라. 모른 척하고 싶은데, 처음 듣는 말처럼 놀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나의 엄마가 살아가는, 몇 년 후 내가 살아가야 하는 노년의 일상이 이런 모습이라는 걸 미리 보는 느낌이다. 어른답지 못하게 늙어가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 책 속의 짧은 구절들은 어르신들이 경험한 삶의 해학이 그대로 담겼다. 마냥 무겁게 느껴질 법한 삶의 순간들을 재치 있는 문장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나이 드는 것도 막을 수 없고 노녀의 일상이 크게 다르지도 않게 살아가야 한다면, 이렇게 유쾌한 자세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마냥 우울하게만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웃으면서 지내는 날들을 만들어야겠지. 진짜, ‘어쩔 수 없음을 대하는 자세는 긍정적뿐인가 싶기도 하다.


들었던 것 같은데

알았던 것 같은데

했던 것 같은데

(79페이지)


늦은 오후에 엄마한테 걸려온 전화로 심란했는데, 잠깐 이 책 읽으면서 우중충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엊그제부터 갑자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당장 병원에 갈 수 없으니 무릎 보호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항상 놓인 자리에 있어야 할 무릎 보호대가 보이지 않자 여기 저기 집안을 뒤져가며 찾기 시작했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자 나에게 전화를 한 거다.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 짜증이 났는데, 짜증을 표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한숨부터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항상 자기가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두었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물건을 찾는 일은 종종 있었고, 엄마가 찾는 물건을 내가 찾아주곤 했다. 내가 지금 엄마 집으로 갈 수 없으니 이 분실(?) 사건을 해결해줄 수도 없고, 엄마의 아픈 무릎은 계속 아픈 채로 있어야 하니, 참 답답하다. 그만 찾고 집 근처 약국에서 새로 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나중에 다시 전화해보니 내일 새로 산다고 하면서 그냥 파스를 붙였단다. 아니, 약국이 먼 것도 아니고 집에서 걸어가면 1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 사용하던 무릎 보호대도 못 찾고, 무릎은 계속 아픈 채로 있어야 하고, 내가 그걸 어디에 두었을까 하면서 머리 아픈 채로 오늘 밤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에휴. 진짜 한숨이 가득한 날들이다.


이 책 유쾌하고 웃긴데, 읽으면서 웃긴 했는데,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니 그냥 또 우울해지는 게 현실이네.



#실버센류모음집 #그때뽑은흰머리지금아쉬워 #사랑인줄알았는데부정맥

#노년의일상 #셀프 #변화하는세상이무서워 ##책추천 #포레스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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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내가 이 자격증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머릿속에서 이게 현실인가 싶은 생각이 잠깐 머물기도 했다. 그럼 내가 이 분야로 일을 하려고 그랬을까 싶지만 딱히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 일을 모르는 거라서, 언젠가는 내가 이 자격증으로 밥을 먹고 살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뭐든 배우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보통은 2~3개월 과정으로 이론 수업을 듣는데, 나는 다른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2주 정도 이론 수업을 듣고 하루 실습을 하고 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초스피드로 수업을 듣다 보니 따로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배우는 동안 재미있었다. 이미 내가 현실에서 겪은 사례도 많았고, 요양보호나 간병, 장기요양제도에 관한 여러 가지 행정적 내용에 관해 알게 되는 부분도 유용했다. 자격증 취득이나 시험 준비 여부를 떠나서, 시간이 되면 이 수업은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 정말 일상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처음 학원에 등록했을 때 사전 조사를 하는데, 이 자격증 취득 목적을 적으라고 했다. 다양한 답변 중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가족 요양이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니, 어느 날 엄마가 지금보다 더 몸이 불편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조금이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막상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스럽기만 할 것 같다. 이미 아버지 때 한번 경험했었고 또 다시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피해갈 수 없다면 이 위기를 잘 넘어가는 것만이 답인 것 같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선택한 것 중 하나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었다.


대만의 한 만화가가 12년 동안 부모님을 돌보며 임종을 지킨 과정을 담아낸 만화 나의 독박 간병 일지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간병이란 단어가 일상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찾아보던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유독 눈길이 머물렀던 부분은 독박이란 말이었다. 누구나 가족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고, 간병이 필요한 상황 역시 너무 많았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독박이란 단어가 주는 우울과 분노는 경험한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었기에 듣고 싶었다.


나도 비슷하긴 하지만, 저자에게도 아무런 준비 없이 간병인의 삶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달아 암에 걸리면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저자가 부모의 주돌봄자가 되었다. 그 중에서 갑자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힘들었다고 한다. 육체적 힘듦과 정신적인 피로감은 저자 자신의 일상도 피폐하게 만들었다. 고통에 뒤척이는 환자 곁에서 함께 잠 못 드는 시간을 보냈고, 환자가 느끼고 분출하는 분노까지 받아내야 했으니 오죽했을까.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투명한 상자 안에 갇힌 것 같다고 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어느 날 나에게도 찾아온 갑작스러움이 이 상황과 다르지 않았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심근경색으로 입원하게 된 아버지는 다른 환자들보다 상태가 나빴다. 오래된 당뇨병과 여러 가지 합병증을 앓고 있던 상태에서, 병원에서 금지하는 것만 골라서 하는 아버지의 몸은 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빠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심근경색이 왔으니,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중환자실에 있던 시간이 길었다. 어느 정도 회복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기까지의 대학병원 병실에서의 생활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아버지가 대학병원 퇴원과 동시에 요양병원으로 옮기면서 내가 병실을 탈출했을 때는,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왜 누군가에게 간병은 독박으로 찾아올까. 각자 나름의 사정은 있다. 저자의 오빠들은 따로 살고 있었고 집에 잘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다 한번 와도 손님처럼 잠깐 머물다 갔다. 저자의 언니는 육아와 직장생활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언니가 시간 날 때마다 와서 저자와 교대하듯 간병을 했다. 저자의 엄마는 옆에서 같이 아버지를 간병할 수 있었지만, 엄마 역시 암 치료를 받는 환자였다. 그러니 아버지의 간병은 대부분 저자의 몫이었고, 또 그게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받아들이면서 간병 생활을 이어나갔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부모와 아들 딸, 이렇게 다양하게 가족이 구성되어 있는데, 왜 돌봄이 이 가족의 여성에게만 주어진 역할일까. 저자의 말처럼, 아마도 시대적 배경이 그 이유가 될 듯하다. 여성의 가사 부담이 컸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픈 가족이나 어른을 간병하고 책임지는 돌봄자 역할은 딸이나 며느리가 맡았던 것처럼, 많은 가정에서 아직도 이 분위기는 쉽게 변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우리 집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은 직장을 옮기거나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났고, 부모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살았던 자식은 나였다. 두 사람 몫을 해야 했던 엄마의 고단함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엄마의 고됨을 같이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노인이 된 엄마가 노인이 된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으니 당연하게 내가 그 몫을 해야 했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보니 나에게 남은 건 우울감과 분노였다. 가족이니까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왜 이 고됨을 나 혼자 해야 하는가 싶은 마음이 뒤섞였다. 그렇다고 다른 형제자매가 모른 척한 건 아니다. 나름의 도움이 되어주었지만, 이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오롯이 나와 엄마였으니. 엄마와 나는 마치 전쟁터의 전우처럼 지냈다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 조금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환자였던 아버지의 자리에 엄마가 있고, 나는 여전히 이 가정의 돌봄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나의 독박 간병 일지의 저자 미아오가 아버지를 보내고 다시 어머니의 돌봄자가 되었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보니, 현실적으로 간병을 말했을 때 보답은 없고 고통과 상처만 가득한, 결과가 정해진 여정이라는 표현도 있더라. 돌봄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쉽게 호전되지 않고, 어쩌다 한번 오는 다른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듣는 게 일쑤라고. 그때마다 상처는 배가 되어 고통스럽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지저분하게 이게 뭐냐고 정리 좀 하라는 말 한 마디에, 도대체 정리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던 적도 많다. 늘 잠이 부족해서 어지럽고,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어디 머리 기대고 눈 좀 붙일 데가 없는지 찾는 게 일인데, 이 공간에 스며들지 않은 사람이 쉽게 뱉는 말에 받는 상처는 육체적 고단함보다 더 고통스럽게 가슴에 꽂힌다. 이 돌봄의 역할에 같이 참여해야 할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팔순이 넘은 엄마는 거의 일 년에 한번 정도 병원생활을 하게 되더라.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불편하고, 멀쩡하게 잘 걷다가 넘어져서 손등 뼈가 골절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냥 웃음만 났다. 별 수 있나, 병원에 갈 짐을 챙겨야지. 여행도 잘 안 가서 구석에 놓아둔 캐리어를 꺼내서 짐을 싸기 시작한다. 항상 병원이 춥다고 말하는 엄마이기에 1인용 전기장판과 작은 담요 한 장, 멀티탭, 일회용기, 생수, 각티슈와 물티슈, 속옷과 수건 등 이제는 익숙한 입원 물건들을 챙겨 넣고 캐리어 지퍼를 닫곤 했다. 올해가 시작하자마자 또 병원행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아서 지켜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다행인가. 아니면 언제 또 나빠질지 몰라서 가슴 졸이는 시간을 지내는 게 더 힘든 일인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저자의 꿀팁이 유용하니, 각 가정에서 잘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첫째, 부모님이 건강할 때 진지하게 가족회의를 해라.

(쉽지 않다. 의견도 다 다르고 사는 형편도 달라서 해결 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미리 이야기를 해 두어야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덜 당황하게 된다. 완벽한 해결 방식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될 테니 평소 이 부분에 관한 의논은 자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둘째, 쑥스럽더라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라.

(, 진짜 쑥스럽긴 하다. 그래도 좋은 말,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나도 아직 사랑한다고까지는 말 못 하는데, 약간 느끼한 말도 곧잘 한다. 진심은 말하지 않으면 그대로 잘 전달되지 못한다.)

셋째, 부모님의 정기 건강검진을 꼭 챙겨라.

(12월 말에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았고 이상소견이 보여 2차 검사까지 받았다. 조직검사를 받으러 가야 할 것 같아서 대학병원에 미리 예약까지 해 놨었다. 다행히 2차 검사에서 더 나쁜 게 보이지 않아서 대학병원 예약을 취소했지만, 이미 안 좋은 걸 확인했으니 주기적으로 다시 검사를 해보자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검사를 받고 안 좋은 결과를 확인하고 또 다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피가 마른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직장인이 아니어도 2년에 한 번씩 기본 건강검진 거의 무료로 받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꼬박꼬박 챙겨서 건강 상태 확인하자.)


간병의 경험담을 통해 이미 마음 다짐을 했어도, 간병을 지속하기 위한 자세를 만든다고 해도, 어디 이 간병이란 놈이 쉽겠는가. 그래도 우리가 피해갈 수 없다면, 독박이든 함께하든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다면, 좀 더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이미 저자와 같은 시간을 겪어온 내가 느끼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너무 생생했다. 저자의 경험담이, 저자의 방식이 완벽한 답은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같은 경험을 해야 한다면 먼저 한 사람의 조언이 도움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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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3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16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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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작가의 신작을 종종 만나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초기 출간 작품들에 손을 대고 있다. 누구나 처음이 있는 것처럼, 작가에게도 첫 작품이 있을 텐데, 이제까지 만난 정해연 작가의 작품들은 초기 출간작들과 최근 출간작들 사이에 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 어떤 작품이든 만나다 보면 재미의 정도는 다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재미의 정도를 따지기 보다는 기존에 만나왔던 작품들과 다르게 조금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일상 미스터리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은 정차웅은 봉명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시니컬한 태도로, 삼선슬리퍼 질질 끌면서 다니는데도 거슬리지 않는다. 그 자체가 패션처럼 보일 정도이니, 우중충한 아파트 분위기 안에서 유일하게 빛이 나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특히 싫어하는 것은 오지랖,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가 어쩌다 보니 아파트의 온갖 사건사고에 그의 기지를 발휘하면서 은근슬쩍 참견하고 있던 거다. 알고 보니 그의 정체는 전직 형사, 그것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탁월한 능력을 뽐내던 형사였다. 무슨 사연으로 형사를 그만두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해결에 큰 역할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봉명아파트는 사람들이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는 임대아파트다. 아파트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CCTV만 있었어도...’ 뭐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 대 달아도 되겠지만, 회사에서 설치해주지 않는 이상 누구도 개인 돈을 들여 이 아파트의 안전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아파트에서 계속 사건이 일어난다. 한밤중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도둑이 들고, 방문교사로 일하며 이 아파트에 사는 여성이 실종되어 시신으로 발견되고, 아파트 입주자가 아닌 사람이 아파트에서 자살하기도 한다. 누가 엘리베이터 안에 오줌을 싸놓는 것도 화가 나는데, 급기에 오줌은 똥으로 변하면서 엘리베이터 오물 사건의 정점을 찍는다. 또 누군가는 집안에 있는 상태로 사망했는데 침입 흔적조차 없으니 사건 해결에 난감해진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아파트 업무보다 더 거슬리고 피해가고 싶은 대상이 있다. 바로 아파트 부녀회장이다. 지나치게 잘 생긴 그의 얼굴을 위 아래로 훑으며 말을 거는 이 아줌마를 보면 불러도 못 들은 척 돌아간다. 그를 두고 수위를 넘나드는 성적인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 이들을 어떻게 하지도 못 하고 죽을 맛이다. 그 와중에 전 직장 동료인 형사 강주영과 마주치면서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하다. 어쩌다가 이 아파트에는 이런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왜 매번 담당 형사는 강주영이며, 관리소장의 기분에 따라 몸을 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의 촉은 죽지 않아서, 형사 강주영이 담당하는 사건마다 은근슬쩍 실마리를 제공하고, 그의 추리에 신중을 더한다.


아마 강주영은 그가 왜 형사를 그만두었는지 모른 채로 궁금증이 쌓여가던 중에, 이 아파트의 사건들을 기회로 그의 비밀을 듣고 싶었을 거다. 나도 궁금했다. 그는 왜 형사를 그만두었을까. 나름 사연은 있겠지만, 마치 천직처럼 사건 해결을 잘 해 왔던 그가 갑자기 그만두었을 때는 이유가 있겠지 이해하면서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 이 사연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야 풀리긴 하는데, 단순히 한 사람의 비밀 같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는 개운함보다, 마치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한 마디 들을 기분이랄까. 어떤 일 앞에서 마치 내 탓인 것처럼 자책하면서 살아갈 필요도 없고,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니, 잘 추스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마치 우리 의무인 것처럼 말이다.


괜히 형사가 아닌 것 같다. 그가 하는 추리마다 그럴싸한 배경이 있었고, 읽으면서도 당연하게 흔적을 놓치고야 마는 게 나라는 독자라면, 조용하게 사건의 이면을 보면서 해결하는 게 정차웅이었다. 사람마다 가지고 사는 사연들이 어두웠지만, 이야기는 흥미롭고 유쾌하게 사건 해결에 다다른다. 특히 엘리베이터 오물 사건은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누가 볼 수도 있는데, 어떻게 아무도 못 본 사이를 틈에 오줌과 똥을 그렇게 싸고 다니는지.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의외의 이유로 똥 사건의 배경을 듣고 나니 진짜 웃음만 나더라는. 교묘한 트릭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아파트라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사연들이었기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일상에 미스터리라는 요소가 더해지니,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내는 오늘이 참 평범하면서도 복잡하게 흘러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 누구나 자기만의 사연, 이유는 있는 거니까.


가볍고 유쾌하게 읽히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읽는 동안, 몇 편 계속 이어지는 드라마를 상상하기도 했다. 주인공은 전직 형사 정차웅, 배경은 그가 정체를 숨기듯 새 인생을 시작한 봉명아파트,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정차웅,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건 해결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숨은 브레인, 뭐 그런 설정을 머릿속에 그리며 읽는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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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코지미스터리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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