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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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또 하나의 ‘하영 시리즈‘로 이어지지 않을까 궁금해서 읽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추리 소설이라고 굳이 복잡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단순해서 심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오히려 설화 ‘여우누이‘가 더 흥미진진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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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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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를 누누(유모)라고, 여자는 남자를 셰리(소중한 아이)라고 부른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너무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까지 알고 나니 마음에 표현할 수 없는 지진이 일어났다. 헉 소리와 함께, 도대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뭘까 싶었다. 진짜야? 설마. 이쯤 되니 나이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처음 관계가 문제가 되는 거였나 괜히 걱정되기도 했다. 나이 차이? , 그럴 수도 있지. 레아와 셰리의 모친이 서로 친구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충격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내 아들이 내 친구와 연인이라고 생각해 봐. 선뜻 사랑으로만 이해 가능한지. 하아. 어쨌든, 스물다섯 살 셰리와 마흔아홉의 레아는 서로 연인 사이라는 게 사실이니까.


그녀는 이제껏 전혀 아쉽지 않았던 것들을 난생처음으로 헛되이 기다렸다. 그것은 젊은 연인의 신뢰와, 무방비 상태의 느긋함과, 고백과, 진심과, 조심성 없는 감정의 토로였다. 젊은 연인이 거의 부모에 대한 청소년의 감사와 흡사한 감정으로 성숙하고 든든한 여자 친구의 따뜻한 품 안에서 밤새도록 눈물과 고백과 원망을 주저 없이 쏟아내는 시간들 말이다. (56페이지)


6년 전 어느 날 밤, 레아와 단둘이 있게 된 셰리가 갑자기 레아에게 키스한다. 처음에는 어린 애 장난처럼 여겼을지 모르겠는데, 레아는 생각할수록 설렌다.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에 휩쓸린 레아는 다시 셰리에게 키스하고, 셰리는 레아에게 무너진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레아를 불러왔던 누누라는 호칭이, 이제는 그에게 쾌락과 욕망을 함께 나누는 대상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사랑하는 예쁜 연인을 보는 기분이 들지 않는 건 나뿐일까. 이 관계를 부정하거나 못 볼 꼴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둘을 보는 내내 크게 남은 감정은 불안이었다. 숨길 수 없는 감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지만, 주변에 비밀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애써 아는 척하지 않은 건 아닐까. 혹시 이 둘의 관계를 모르더라도, 언제 들킬지 몰라 좌불안석이었다. ‘네가 감히 내 아들과 이런 짓을?’ 갑자기 셰리의 모친이 나타나 레아의 머리채를 휘어잡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셰리의 모친 역시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마치 모두가 비밀 하나씩 숨긴 채로 자기만의 욕심으로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급기야 셰리의 모친과 레아는 셰리를 젊은 여성과 결혼시키고 만다.


그러니까 이런 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셰리와 레아가 한때 그저 소중한 아이와 유모였던 관계에서, 이제는 다 키운 아이 결혼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보이기를 원하기라도 했을까. 셰리는 결혼했고, 레아는 쿨~하게 셰리의 결혼을 인정했다.


진짜 쿨~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6년이라는 시간, 나이 차이를 무색하게 서로에게 더할 수 없는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한쪽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서 이별하는 게 쉬운 일이던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고 해도 말이다. 사랑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서 서로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연기해왔지만, 서로를 탐하는 욕망만 앞세워 보려고 했던 것 같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휘몰아치던 불안한 마음을 이제야 비로소 보게 된다. ,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하는구나, 우리 정말 사랑했구나. 언제 이별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만나왔는데, 문제가 있었구나.


언제라도 쉽게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마냥 가볍게 여겼던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네가 결혼하는 게,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셰리가 젊은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질투하지 않았는데,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든 레아였다. 마치 할 수 있는 건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 떠나보내고, 떠나고. 이제 우리는 그저 누누였고, ‘셰리였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가슴 깊이 묻어둔 말들을 삼킬 수 있는, 이별 따위 별거 아니라는 듯 표정 관리도 능숙한 어른이었다고. 다른 사람을 만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자기 육체가 증명하는 나이를 인지하면서 셰리를 잊었다고 착각한다. 아니, 레아는 그렇게 셰리를 잊고 잘살고 있다고 믿었을 거다. 내가 아무리 읽어도 레아는 처음부터 착각한 거였다. 레아만 그랬을까. 셰리 역시 결혼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했지만, 집을 나와 호텔에서 생활한다. 돈을 주고 산 사람에게 레아 이야기를 한다. ? 이게 뭐지?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셰리가 친구가 머무는 호텔에 같이 투숙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셰리와 같이 있던 그 사람은 그저 돈을 받고 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던 얘기를, 셰리는 마치 벽을 보고 얘기하듯 그 사람에게 레아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게 사랑이 아니야?


글쎄다. 이게 자존심인지, 마치 이 사랑의 끝을 알아서 미리 마음 단속을 한 건지 모르겠는데, 셰리가 결혼하고 몇 달을 떠나있던 레아의 마음도, 누군가를 붙잡고 끊임없이 레아 이야기를 했던 셰리의 마음도 알 것 같다는 게 혼란스러웠다. 결국, 아닌 척하던 마음은 더 숨길 수 없게 되고, 무너져내린다. 사랑한다고, 그 사랑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고,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 마치 자석에 끌리듯 매일 당신 집 문 앞을 서성이며, 떠난 당신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당신 옆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있었다고. 셰리의 울부짖음에 답답했던 나의 마음도 폭죽처럼 터지고 말았다. 진즉에 말하지, 오래된 연인을 두고 결혼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짓 따위 하지 말고, 이 결혼과 당신과의 관계 사이에서 고통스럽다고 말을 하지. 하긴, 말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할까? 사랑이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감싸 안아 줄 수 있느냔 말이다. 셰리가 레아의 민낯을 보면서 낯설어하고, 잠깐 사이에 다시 화장하고 돌아온 연인의 얼굴을 보고 안도하는 시선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레아가 줄곧 차고 있던 진주 목걸이. 그냥 레아의 옷차림에 어울리는 액세서리 정도로 여겼는데, 그 목걸이가 나이 든 여자의 목주름을 가릴 용도로 활용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젊은 연인 앞에서 조금이라도 나이 든 흔적을 보여주기 싫은(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기에) 마음은 괴로웠다.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서 줄곧 머물러 있던 불안감은, 애써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조건들 때문이었을 거다. 읽는 내내 그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전혀 편하지 않았던 마음은 소설의 시작에서 이미 그 끝이 보여서다. 내가 하는 사랑이 누구에게 환영받을 필요는 없지만,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그 시선에 저절로 움츠러드는 것도 모자라 춥기까지 하니 말이다. 아마도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괜찮은 척, 행복한 척, 현재의 삶에 만족한 척하면서 살아가겠지.


후속작 <셰리의 몰락>이 있다고 하니 거기까지 읽어봐야 하나 싶다. 궁금하긴 하네.



#셰리 #콜레트 #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 #소설 #녹색광선

##책추천 #프랑스문학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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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 - 중년의 불안을 쓸고 닦는 법
송은주 지음 / 시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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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음‘의 두려움이 요즘처럼 크게 다가 온 적이 없다. 살아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이유. 뜨거웠던 여름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뭘 하든,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저자의 이야기로 다시 새긴다. 멋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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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째, 엄마 집을 정리하고 있다. 말은 정리라고 하는데, 그래봤자 가끔 가서 오래된 것들을 몇 개씩 버리고 오는 게 전부다. 시간도 없고,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결정을 못 하기 일쑤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다 보니, 항상 마음이 급하다. 어제는 엄마 집에 남은 오래된 앨범을 들고 왔다. 무겁다고 낑낑대면서 정리하다 보니, 우리 남매가 자라면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오래된 편지를 버리기 전에 읽어보는 것처럼, 앨범에서 사진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면서 그 시절을 소환했다. 항상 여유롭지 못했던 형편에 어려웠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게 좀 슬프기까지 했다. 혼자 울고 웃다가 마지막 앨범을 정리하면서 마주한 사진들을 아주 오래 보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엄마였다. 오래전 엄마의 낡은 앨범을 버리면서 따로 챙겨둔, 엄마의 흑백사진.


사실 엄마 집에서 사진을 가져와서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오래전이었다. 갈 때마다 깜빡 잊고 그냥 왔는데, 이번에 잊지 않고 챙겨올 수 있었던 건 이 책 엄마만 남은 김미자때문이었다. 김중미 작가가 들려준 미자를 잊은 김미자 씨 때문에, 이름을 잃은 채로 살아온 엄마의 시간을 보고 싶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 엄마에게 남은 유일한 정체성이 엄마라는 것이, ‘엄마만 남은 김미자 씨가 슬펐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 88페이지)


아동 청소년 문학을, 사회의 어둡고 낮은 자리를 담아낸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하긴 했다. 이 작가는 어떤 삶을 지나왔을까 하고. 부유하고 여유가 넘치는 세월이 작가의 인생에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하곤 했다. 작가가 그동안 작품에 담아낸 이야기는 비슷한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자라면서 형편이 여유로웠던 적은 없으니 그러려니 하다가도, 주변 친구들의 환경과 비교될 때마다 한 번씩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런 철이 없는 말조차도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던 엄마의 마음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철이 너무 늦게 들었던 거지.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분할된 화면처럼, 작가의 이야기와 나의 엄마 이야기를 같은 화면에 두고 듣고 있었다. 작가의 조부모님, 외조부모님 이야기부터, 가족의 형편보다 이상을 좇아 살면서 자존심이 앞섰던 아버지, 그런 환경에서 자식들 키우느라 엄마의 역할에 온 인생을 담아낸 어머니가 각자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 자라면서, 마치 그 가난을 견디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여긴 작가의 마음에 미처 몰랐던, 엄마 김미자의 인생이 끼어든다. 어쩌면 김미자 씨의 인생은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여성, 엄마의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대신, 친척들과 형제들의 이야기로 엄마의 새로운 시간을 보게 된다. 한 번도 이 가족을, 엄마 곁을 떠난 적이 없던 가난은 경제적 궁핍함만 주는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가난하면 생활이 힘들고, 경제적인 어려움만 극복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더 싼 집을 찾아다니느라 이사는 잦아지고 그러면서 이웃들도 자주 바뀌었다. 언제 또 형편이 더 나빠져서 이사해야 할지 모르니 이웃과의 교류가 깊어질 수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사회적 고립은 계속되고, 깊어지곤 했으니, 이 또한 가난이 낳은 피해였다. 그때마다 작가가 배운 것은 연대였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이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엄마이야기는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이면서, 이렇게 선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견뎌내야 할 게 더 많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들더라. 동전 하나도 새로운 시절에 걸인에게 지폐를 내어주고, 어느 시인의 시구절을 읊는 마음도 알려주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여고생들의 상담사가 되기도 했던 엄마였다. 잦은 이사와 더 쪼그라들기만 하는 형편으로 그저 그런 김 씨와 밥집 아줌마가 되었을 때, 낡은 옷차림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함께 울고 웃을 이웃이 없었을 때, 급변하는 주변 환경과 개발로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마을이 사라지면서 낯선 외로움이 엄마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다시 산동네로 이사하면서 이웃을 만들고 긴장을 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의 요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식겁했다. 엄마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 이번 달 초에 내년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지원했고, 지금 그 선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 일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싶어서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다. 삼십만 원 남짓의 급여 때문만이 아니다. 한 달에 열흘 정도, 하루에 세 시간 정도, 몸이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든 일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아침에 나갈 곳이 있다는 게 일상의 낙이었다. 동네에 엄마가 아는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또 다른 분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라 그 사업에 참여해야 그나마 얼굴 볼 수 있다. 엄마는 일자리에 갈 때마다 내가 시골에서 가져온 감을 가져가서 나눠 먹고, 그래봤자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몸의 신호를 전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서 만난 분들에게 매일 안부를 묻는다. 그 시간이, 자기가 쓸모 있음을 느끼며 사람들과 얼굴 보며 얘기하는 그 순간이 나도 모르게 일상을 파고드는 외로움을 달래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외로움의 시간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더 큰 일이 벌어질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엄마가 인지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을 때, 두려움만큼이나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을 텐데, 그때마다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했을 텐데, 이제는 가까운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싶어서 말이다. 작가는 엄마의 중증 인지장애의 원인을 더듬으면서, 외할머니와 이모의 치매까지 생각해보면서 찾은 답은 다른 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들의 병은 유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겪어온 삶의 여정에서 이어져 온 유산 같다고 말한다. 엄마 김미자, 김미자의 어머니, 김미자 아버지의 삶까지 추적하며 그 이상으로 올라간다. 꿈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았던 시절을 견뎌내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내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부족해도 나누면 행복해진다는 경험을, 이런 믿음과 행복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기억할 일이다.


단순하게 작가의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로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의 과거를 되짚으며 엄마를 더 잘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엄마가 되기 전에 김미자로 살아가면서 품었던 모든 것을 듣는 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시절의 엄마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나니, 엄마만 남게 되었는지 이해되는 것조차 슬펐다. 낯설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모두 보고 겪을 김미자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인지장애가 있는 구십 노인인 엄마가 얼떨결에 딸의 허벅지를 쓰다듬고는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의 김미자라서 좋았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 307페이지)



낡은 사진 속 십 대의 엄마는 검정 교복 차림이었다. 처음 봤다. 1960년대 초반, 엄마의 십 대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어느 시절에나 볼 수 있는 여고생의 분위기였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교복 모습에 놀라는 것도 잠시, 엄마의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아침 등굣길에 나서는 엄마를 상상했다. 밥 굶어본 적 없이 여유롭게 살았다고 하니, 아마 엄마 인생에서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스물을 넘긴 엄마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빴다고 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당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엄마의 청춘을 담아보기도 했다. 사진 속 옷차림이 왜 이렇게 촌스럽냐고 했더니, 엄마는 아니라고 한다. 자기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였다고. ^^ 부릴 수 있는 멋은 다 부리고 다녔다던 그때, 그다지 말을 잘 듣는 딸은 아니었다고 하니 외할머니 속을 좀 태우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집안의 농사를 돕고 외할머니 살림을 도우면서 이십 대 초반을 지내고 있었다고 하니, 아주 철이 없는 딸도 아니었던 듯하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 이때 아빠가 아니라 여러 남자를 더 만나보고 결혼했어야 했는데... ㅠㅠ)


작가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삶의 궤적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피식 웃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시절의 엄마들이 이렇게 살아왔겠구나 싶어서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게 다 그런 건지, 자식 키우는 책임감이 이렇게 무거웠던 건지, 그래서 미자가 아닌 엄마만 남게 된 건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도 좋은 분명히 있다. 작가가 엄마와 할머니에게 배운 것들, 타인을 존중하고 곁을 내어주는 법을, 섬기고 배려하고 나누며 사는 삶의 행복을, 이 책으로 나도 같이 배웠다. 그리고 평소에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 준 많은 것(물론 좋은 것만)을 기억하면서, 또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사라져가는 기억을 오래 붙잡을 수 있도록, 내가 엄마에 대해 기억하는 게 지금보다 더 많아지도록, 더 자주 보면서 함께하는 시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뻔한 말을, 습관처럼 하는 다짐을 또 하면서 올해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엄마의 저 사진 속 포즈는 정말 시대물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엄마만남은김미자 #김중미 #사계절출판사 #에세이 ##책추천

#나는결코어머니가없었다 #어느날엄마에관해쓰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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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프리다 맥파든 지음, 정미정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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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저 사람 갈팡질팡 의심하고, 결국 나의 추리는 틀렸다. 진짜 범인을 찾는 일이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하지만, 이 소설이 가독성은 좋았지만, 그냥, 재미가 없다. 등장인물들도 매력이 없다. 이 작가의 작품을 더는 안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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