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
한수정 지음 / 희유 / 2025년 2월
평점 :
유일한 가족인 삼촌의 죽음은, 수영에게 실직과 빚을 남겼다. 삼촌의 장례를 치르는 게 억울한 건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낀 삼촌을 잘 보내드려야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할 도리를 다하고 남은 게 현실을 걱정하는 일이었으니, 그런 수영을 누가 내려다보기라도 한 듯이 공동묘지의 구인 공고를 보게 된다. 마침 장례식이 끝나면 삼촌이 묻힐 곳이었다. 일도 구하고 삼촌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을 거라, 고민 없이 면접을 보고 그곳에 취직하게 되었다.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이 있을까? 죽은 후에 내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지옥이든 천국이든 간다는 게 정말 맞는 말인지 알고 싶었던 적이 있다.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보는데,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잘 살아야 지옥의 뜨거움을 맛보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더라만,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살아진다더냐. 죽음 이후의 시간을 살아보지 못했으니, 알 수가 없지.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공동묘지를 상상한 적도, 상상할 이유도 없었는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있었다. 아버지는 시립 묘지에 묻혔다. 설날이나 추석, 기일에 한 번씩 찾아가거나 시간 될 때 잡초를 정리하러 가곤 했다. 물론 항상 낮에 갔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시간이 애매하면 다음 날로 방문을 미루곤 했다. 어두워지면 무서우니까. 낮에 방문한 그곳에서 종종 다른 묘지의 방문객을 보기도 하고, 관리인을 마주치기도 했다. 길게 머물러야 10분 이상이니까, 그곳의 관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내가 지켜볼 겨를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 궁금하긴 했다. 혹시 밤에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말이다. 아마, 무섭긴 하겠지?
24시간 운영하는 공동묘지. 근무하는 직원들의 업무를 모두 경험하는 수습 기간을 잘 마치면, 수영은 정식 직원이 된다. 주간 근무와 특별 1조 근무, 특별 2조 근무, 야간 근무를 경험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쉽지 않았다. 만만하게 생각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다양한 성향과 사연을 가진 직원이 있을까 하면, 무덤을 찾아오는 방문객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수영이 이대로 3개월을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 읽다 보니, 이거 묘한 매력이 있는 장소가 아닌가.
무덤을 관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때를 맞춰 물을 줘야 하고, 매번 섬세하게 살피면서 벌초도 해야 한다. 사무실과 화장실 등 건물 관리와 무덤을 잘 관리하는데 사용하는 장비들 점검하는 것도 필수다. 방명록 확인은 기본이고, 방문객과 마주치면서 대화를 하게 되면 근무일지에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 방문객이 적어낸 건의 사항도 확인하고 해결해야 한다.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와 잘 지내는 것도 중요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동윤이 일을 가르쳐주면서 보여준 호의, 부소장으로 불리는 상원의 시니컬한 응대에도 이미 따뜻한 마음을 읽어버렸다. 마지막에 만난 선주가 처음부터 세워놓은 벽에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 벽은 잠깐 사이에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뭐든 진심이 통할 때, 이유 없이 세워놓은 벽은 사라지지 마련이니까. 어느 정도 적응하니 공동묘지에서 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정해진 일정표에 맞춰 마음을 다해 소화해내면 되었다.
어려웠던 건 방문객과의 대화, 그걸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누군가 멍하니 무덤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봉분에 사람 키만큼 올라온 풀을 정리하지 말라는 요구도 의아했다. 매일 다른 사진을 들고 와서 죽은 남편에게 보여주고 가는 여성도 있고, 어린 동생을 먼저 보낸 슬픔을 가슴에 묻은 형의 사연도 안타까웠다. 이상하게 자주 망가지는 가로등은 야간 근무의 긴장감을 높였고, 밤에 도깨비불과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이 스산함에 소름을 더해주기도 했다. 설마 귀신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생기더라만. 밤에 근무하는 일을 마냥 쉽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아무래도 일하는 곳의 특성이 이러한지라 더 집중하고 살펴보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있자면, 살아가는 일이 참 당연하면서도 고단해 보이기도 한다. 마음을 나누며 즐겁기도 하면서,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겠더라. 옆에 있을 때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상실을 경험하는 순간 너무 소중했다는 걸 조금 늦게 알게 되는 일. 이런 것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게 현실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도, 종종 잊곤 하는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이야기였다. 비슷한 슬픔을 겪은 사람들, 이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갈까 궁금할 때 서로 마음을 나누며 치유하고 위로받는 장면들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 장면 저장하는 것도 같고, 서로 다른 성격에 어떤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꿋꿋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모습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다고.
수영이 모든 근무조를 다 체험하며 수습 기간을 잘 마칠지, 만약 정직원이 된다면 어떤 근무조를 선택할지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몇몇 장면들은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공동묘지의 일과를 이해하기도 했다. 이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죽은 자의 무덤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관리해주고, 방문객(주로 유족이겠지만)의 마음도 헤아리는 게 그들의 역할이라는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겠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니, 가끔 그곳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곳에 묻혀 누군가 기다리는 이를 생각하게 되는, 지금까지는 내가 방문객으로 찾아가는 곳이었다. 언젠가 내가 죽어 어딘가에 묻혔을 때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으로, 혹시 그곳에 묻힌 사람들과 모여서 수다 떨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도깨비불이랑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나는 걸까?
#지루할틈이없는무덤관리인의하루 #한수정 #희유출판사 #소설 #한국소설
#책 #책추천 #치유 #위로 #살아가는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