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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평점 :
한동안은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응시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는 책 위주로 독서를 진행하였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가볍게 훑고 지나갈 목적으로 집어 들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한국사 초심자를 위한 한 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이라고 요약 가능하다. 일단은 조선 왕조만을 다룬다. 1대 태조 이성계부터 27대 순종까지 모두 대상으로 삼는다. 개론과 부록을 포함하여 500면 정도의 책으로 다루어야 하므로 임금 개인별 분량은 많지 않다. 개중에 업적이 풍부한 임금은 좀 더 내용이 많고, 단명한 임금은 소략하다.
구성은 군주마다 동일하다. 한 면으로 해당 군주에 대한 개략적 소개를 한다. 이어서 세자 시절부터 재위 기간 굵직굵직한 시기를 구분하여 개인사와 업적, 일화 등을 풀어놓는다. 마지막에는 마인드맵을 통해 시각적으로 깔끔하게 압축 정리한다. 본문은 독자가 흥미를 갖도록 해야 하므로 되도록 쉽고 간략하며 흥미를 유발하는 문체를 사용한다.
무엇보다 조선의 임금을 모두 호랑이에 비유하여 각자 특징적인 약칭을 부여하는 게 이채로우며 재밌다. 즉, 태종은 진짜 호랑이, 세종은 위대한 호랑이, 연산군은 미친 호랑이, 선조는 도망간 호랑이, 영조는 최장수 호랑이 등으로 표현한다. 작명하기도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뽑아냈다.
한국사를 교과서 중심으로 배우다 보면 아무래도 공적이고 업적 위주로만 알게 되는 이 책에서는 사적 생활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 요즘에야 여러 방송매체에서 다루는 교양 역사 채널이 대개 이런 경향을 따르지만 이 책이 나온 시점에서는 신선한 접근이었으리라.
세종은 한마디로 신하들 입장에서는 악덕 사장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당시에도 노조란 게 있었다면, 신하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단식투쟁을 했을지도 몰라요. (P.113)
세종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임금이지만, 그만큼 신하들의 역량을 최대한도로 부려 먹은 임금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강조한다. 문종 부인의 동성애 사건은 흥미 차원에서 넣었다고 보면 된다. 단종 임금이 왕위를 빼앗길 수밖에 없던 배경에 대한 분석은 역사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숙종이나 순조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단종과는 다른 처지였다.
약 10년 동안 조선 왕실에서는 소헌왕후, 세종, 문종의 줄초상이 이어진 것이지요. 단종의 입장에선 자신을 지켜주던 큰 기둥 3개가 한꺼번에 쓰러진 거예요. (P.155)
조광조와 중종의 어긋난 관계, 최악의 군주인 선조와 인조, 그리고 정조의 성과를 단번에 물거품으로 만든 정순왕후를 향한 매서운 비판은 단순히 사실 나열과 흥미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 아님을 웅변한다. 물론 일부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혜경궁 홍씨와 특히 고종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폐비 윤씨에 대한 성종의 증오는 워낙 역사소설과 사극에서 익숙해서인지 무엇이 진실에 가까울까 궁금하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간과하였던 역사적 사실도 짚고 있는데, 측우기의 발명자가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라는 것이다. 임금으로서는 짧게 재위했지만, 세자 시절만 30년을 보내고 세종 후년에는 실질적으로 정사를 이끌었던 비운의 임금.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우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준 정종이 사실은 허수아비 같은 허약하지 않고 무인 기질이 있는 인물인 점도 의외다. 한편 경복궁 이름의 뜻풀이에서 오류가 있는 점은 옥에 티라고 하겠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사극 속 문종은 언제나 병약하고 아들 걱정만 하는 아들 바보로 그려지고 있어요. 조선의 왕들 중 행적이 가장 과소평가 된 임금이 바로 문종이라고 봅니다. (P.144)
조선 왕조는 이씨의 국가였다. 성군이든 폭군이든 아니면 혼군이든 명군이든 모든 임금은 어쨌든 이씨 성을 가진 인물들이다. 백성은 오로지 성군이 나오기만을 하늘에 기댈 뿐이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이론상으로는 특정 최고 지도자의 자질을 운에 맡길 필요가 없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고 지도자의 자질은 중요하다. 누군가는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시점의 저자 심정이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을 당시 내 심정도 마찬가지다.
그건 바로 우리 모두가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가능한 일일 겁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세종을 선택할 수도 있고, 연산군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P.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