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명 : 클래식이 사랑을 말하는 법 출간기념 북콘서트 - 노예진 피아노 콘서트

일시 : 2026년 10월 26일(월) 19:30

장소 : 삼익아트홀

연주 : 노예진 (피아노)

진행 : 이다솔 (아나운서)      * 서민수 (저자)

프로그램

  - 리스트, 사랑의 꿈 3번

  - 슈만-리스트, 헌정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 중 1악장

  - 쇼팽, 연습곡 Op.10, No.12 "혁명"

  - 리스트, 발라드 2번 B단조

  - 리스트, 노르마의 회상


* 세줄평

모 온라인서점에서 펀딩을 진행했던 북콘서트다. 평소 듣고 싶었던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책값에 약간만 보태면 되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프로그램도 연주자가 가장 선호하는 곡들이다. 저자와의 토크, 연주자와의 토크가 있지만, 무엇보다 연주가 핵심이다. 한 마디로 노예진의 파워풀하면서 감정이 분출하는 연주는 일품이다. 확실히 낭만적 스타일, 게다가 리스트에 잘 어울린다. 공연장이 아쉬울 뿐이다. 앵콜로 저자와 함께 네 손을 위한 곡을 연주하여 한층 뜻 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공연명 : The Class+ 인다코 콰르텟

일시 : 2026년 10월 23일(금) 19:30

장소 : 신영체임버홀

연주 : 인다코 콰르텟 (Quartetto Indaco)

       - Eleonora Matsuno, Ida Di Vita (바이올린)

       - Jamiang Santi (비올라)

       - Cosimo Carovani (첼로)

프로그램

  - 라벨, 현악 사중주 F장조 M.35

  - 푸치니, 국화

  - 멘델스존, 현악 사중주 3번 D장조 Op.44, No.1


* 세줄평

멘델스존과 라벨의 순서를 바꿨다. 첫소절을 듣는 순간 라벨의 음이 넘실거린다. 2악장에서 피치카토의 향연은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경험이었다. 푸치니의 '국화'도 진한 상념을 들려준다. 멘델스존의 경쾌함과 낭만적 향기는 청자의 심정을 편안하게 달래준다. 인다코 콰르텟은 특이하게 첼로의 소리가 두드러진다. 그래서일까 전반적으로 콰르텟의 사운드가 풍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류재화 옮김 / 아모르문디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문학 평론가이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면 제법 여러 권의 책이 출판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프란시스코 고야에 관한 여타 미술 분야의 도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고야를 화가의 차원이 아니라 사상가로 인식하고 그의 사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떤 방향으로 발전했는지를 탐색한다.

 

고야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괴테나 50년 후 등장한 도스토옙스키에게도 뒤지지 않는 심오한 사상가였다. (P.33, ‘고야, 사상가’)

 

고야가 살던 시대를 살펴봐야 그의 그림과 이 책에서 보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고야는 괴테, 베토벤과 동시대 인물이었고,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기를 온몸으로 관통하였다. 평민의 신분에서 출발하여 왕실 수석화가로 출세하였지만, 계몽주의 성향을 지닌 개혁 세력과도 끈끈한 친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술 애호가는 고야의 회화 작품, 특히 거대하고 화려한 프레스코화, 태피스트리 밑그림, 초상화를 일반적으로 선호한다. 말년의 ‘검은 그림’도 그 충격적 주제와 색감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저자는 ‘검은 그림’을 제외한 일반적 회화 작품은 거의 거론하지 않고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것은 고야가 예술가이자 사상가로서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지 않은 그림이라고 판단해서다. 그것은 생활인으로서 고야가 생계와 출세를 위해 외부의 주문에 응하여 그린 상품일 따름이다. 물론 그것들 가운데서도 다른 화가와는 구분되는 고야만의 독자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유명한 왕실 가족 초상화를 고야처럼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누가 또 있겠는가.

 

저자는 고야의 삶과 예술세계에서 세 번의 격변이 찾아왔다고 기술한다. 첫 번째는 청각 장애의 발발, 두 번째는 알바 공작부인과의 실연, 세 번째는 나폴레옹의 침공과 스페인 독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풍파의 시대 상황.

 

병과 새로운 장애로 인해 이제 주문받은 그림이 아닌 다른 것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오로지 내적 필요성과 표현 욕구에 추동되어 그리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실로 중대하여, 모든 편지에서 언급된다. (P.66, ‘병과 그 영향’)

 

성공적인 화가로서 잘 나가던 고야를 멈춰 세운 청각 장애는 고야가 자신의 외부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업적 수요에만 따라 그리던 그림에서 스스로의 내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알바 공작부인과의 실연은 다른 책에서는 지나가는 수준으로만 다루고 그의 그림 세계에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요소다. 토도로프는 실연 이후 고야가 이성의 억제에 숨죽였던 비이성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험하고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일련의 마녀 그림, 정신이상자, 감옥 등을 그린 그림과, 판화집 <변덕들>이 그러하다.

 

1797년 봄, 감정적 단절은 그를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세계로 향하게 만든다. 그후로 그는 바로 그 자신을 표현하고자 애쓰게 된다. 상상적 형태들이 고삐가 풀린 듯 그의 붓 아래로 몰려든다. (P.85, ‘치료와 재발, 그리고 알바 공작부인’)

 

나폴레옹과 스페인 독립 전쟁, 이후 페르난도 7세의 집권은 정치사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다. 계몽주의 개혁 세력과 보수적인 귀족과 종교의 반동 세력의 대치는 프랑스 군대의 침략으로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념적으로는 프랑스를 지지하지만, 애국심으로는 프랑스에 저항해야 하는 모순에 처한 개혁 세력의 고뇌, 프랑스군의 폭력적 지배가 보여 주는 계몽주의 이념의 한계, 페르난도 7세의 집권 이후 표출하는 반동 정치의 혼란. 여기서 고야는 무지, 종교, 미신, 광기와 같은 비이성의 폭력성과 더불어 이성의 폭력성도 경험하면서 어느 한쪽도 긍정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부닥친다. 인간성을 향한 의문과 불신, 고발을 폭로하는 대표 작품이 판화집 <전쟁의 참화>이다.

 

고야는 이제 계몽주의 사상이 침략과 억압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폭력을 막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계몽주의 사상의 이름으로 나폴레옹 군대는 폭력을 자행했다. [......] 이성의 잠만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각성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P.160, ‘나폴레옹의 침략’)

 

고야 말년의 ‘검은 그림’ 창작 동기와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저자는 이것을 치유 목적의 그림으로 이해한다. 그가 겪은 인간성의 불신과 혐오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그림을 그린 후, 그는 귀머거리의 집을 떠났다는 것이다. 일종의 미술치료인 셈이다. 판화집 <어리석음>도 같은 맥락으로 인식한다.

 

고야가 검은 그림들을 누구하고도, 심지어 친구들과도 공유하려 하지 않은 것은, 이 그림들을 창작하는 행위가 곧 자기 치유의 작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찬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은 그림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바로 그 그림들을 그렸다. (P.253-254, ‘두 번째 병, 검은 그림, 광기’)

 

치유의 덕택일지 고야 말년의 작품은 보다 밝고 긍정적이다. 주제와 색감, 표현 면에서. 보르도에서 그린 <젖 짜는 여인>이 주는 우아함과 평온함이 눈에 띈다. 활기차고 웃음 띤 노인이 춤을 추거나 맨발로 그네를 타는 말년의 데생 작품은 해탈과 초월의 느낌마저 자아낸다.

 

저자가 고야의 예술세계에서 특히 놀라워하면서 주목하는 점은 공식적 그림과 비공식적 그림 창작을 긴 세월 분리하여 병행하였다는 사실이다. 공식적 세계에는 미술관에서 많은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대다수의 화려한 작품이 속한다. 왕실과 귀족 초상화, 마하 연작, 그리고 1808년 5월 연작이 그러하다. 비공식적 창작에는 판화집, 데생집이 속한다. 오늘날 사상가로서 주목받게 되는 작품은 후자의 영역이다. 특히 저자는 고야의 데생에 주목한다. 단순히 밑그림의 도구가 아니라 일기와도 같이 고야의 내면 사고와 감정을 반영하는 실제적 표현 수단으로 인식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야처럼 이원화된 예술세계를 병행한 예술가는 없었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를 잘 알지 못한 때에 다른 유명한 화가와 비교하면 그에 관한 책이 시중에 상대적으로 많이 나와 있다는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장애를 극복하고 드물게 장수하며 안주하지 않고 회화와 판화라는 두 영역에서 독보적인 자취를 남긴 점. 나아가 명성이 당대에 국한된 게 아니고 근현대에 와서 더욱 높아갔다는 점, 위대한 예술가를 넘어 사상가로서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는 점을 볼 때 그에 관한 세인의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사상가 고야를 집중 조명하고 있는 의미 깊은 역작이다. 특히 <변덕들>과 <전쟁의 참화>를 깊이 있게 검토하고 주요 작품을 상세하게 분석함으로써 독자가 놓치거나 간과하기 쉬운 개별 판화를 유심히 살펴보고 이해의 심화를 가능케 한 점은 무엇보다도 커다란 덕목이다.

 

세상은 건강/병, 이성/광기, 낮/밤, 빛/어둠처럼 명확한 대립을 이루는 범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고야는 그림을 통해 그 둘의 상호 침투성과 불가분성을 보여 주고자 애쓴다. 둘을 나누는 경계는 투과성을 띤다. 이성과 비이성은 인간의 특성이며 똑같은 지위에 있다. (P.120, ‘‘변덕들’의 해석’)

 

책 내용이 비교적 전문적이기에 화가 고야를 비로소 알고자 하는 초심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화가 고야의 삶의 전반을 추적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창작 영역도 저자의 관심 범위 밖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도판을 수록하였지만, 언급하거나 분석하고 있는 그림 전체가 아니기에 다소 불친절하고 아쉬운 면도 존재한다. 다만 고야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거나, 몇 권의 관련 책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인간성과 나아가 사회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과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의도하고 지향했던 결과라고 개인적으로 이해한다.

 

고야가 예견했고 토도로프가 증언하듯, 우리가 경계해야 할 위험은 뚜렷한 경계 없이 부유하는 ‘미몽’과 ‘꿈’, ‘마술’과 ‘주술’이 아니라, 전체주의 같은 국가적 장치로 일제 소탕하는 가면 쓴 ‘이성’이다. (P.327, 옮긴이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강변의 조문객 ㅣ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록작>

폴란드인의 사랑

보이지 않는 소녀

악마의 눈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

변신

유프라시아

강변의 조문객

순례자들

꿈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더라도 고딕, 모험, 환상 문학을 선호하는 듯싶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9편의 단편의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개인과 사회의 일상적 단면을 표현하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악마와 초현실을 다루거나 전쟁, 모험, 난파를 소재로 삼기도 하고 타국을 지역적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등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기서도 영국을 제외하고 이탈리아, 그리스, 스위스, 프랑스가 등장한다. 시대적으로도 중세와 현대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의 또 다른 장편인 <최후의 인간>은 하물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먼저 인상에 남는 단편은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와 <변신>이다. 전자는 불멸의 영약을 마셔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 사람의 이야기인데, 누구나 다 바라 마지않는 영생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님을 말해준다. 나만 홀로 청춘인데, 가족과 친구 모두가 늙고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면, 누구를 사랑하고 교감을 할 것인가, 어차피 그들도 곧 이별할 텐데. 그런 면에서 불멸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할 것이다. 카렐 차페크의 <마크로풀로스의 비밀>과 제재 면에서는 비슷하다.

 

죽음을 바랐지만 절대로 죽지 않았다. 불멸의 인간. 야망도 탐욕도 생기지 않았고, 심장을 괴롭히는 열렬한 사랑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나만큼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기에 사랑은 나를 괴롭게 할 뿐이었다. (P.119,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

 

후자는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연상시킨다. 그림자든, 육체든 자신에게 속한 고유의 것을 악마와 거래한 치명적인 대가를 여기서 보여준다. 귀도는 방탕한 생활의 극단에 내몰려 보물 상자를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몸을 사흘간 빌려주기로 거래한다. 신의를 지킨다면 그것이 악마이겠는가. 귀도의 몸을 쓴 악마는 개과천선을 위장하고 약혼녀와 결혼식을 치르려 하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영원한 파멸인 동시에 줄리엣의 선한 영혼마저 타락시키는 씻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세상사의 우여곡절은 인생을 결코 평탄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연인 간, 가족 간 무수한 이별과 곡절이 중첩되어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제자리에 돌아오게 될 때 그것은 우연이자 기적이 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비극적 결말로 귀결될 수 있지만 때로는 해피 엔딩을 맞이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악마의 눈>과 <순례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자는 그리스의 해안가를, 후자는 스위스의 산악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모험과 약탈, 은혜와 원수, 복수가 켜켜이 쌓이는 가운데, 악마의 눈으로 불리는 흉포한 산적 드미트리는 어릴 때 죽은 줄로 알았던 딸과 손주와 재회한다. 기사 부르크하르트는 사랑하는 딸이 적대적인 이웃 영주의 아들과 비밀 결혼을 하자 배신감에 칩거 생활을 한다. 세월이 흘러 늙은 영주는 모든 은원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화해하고자 하나 이미 방안이 없다. 순례자를 가장한 외손주의 방문과 외손녀와 젊은 공작의 결혼은 독자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주는 쫄깃함과 행복함을 안겨준다.

 

본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남녀 간 사랑이야말로 문학과 예술의 근원적 제재가 아니겠는가. 이 책에서도 <폴란드인의 사랑>, <보이지 않는 소녀> 그리고 <꿈>이 이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작가의 성향답게 아름답고 순탄한 사랑이 아니다. 음모와 모험, 유령과 환상, 고딕풍의 분위기가 이야기 전반을 감싸고 있어 소재의 진부함을 색다르게 다루고 있다. 전자는 이탈리아, 가운데는 영국, 후자는 프랑스를 각각 지역적 배경으로 한다. 특히 전자와 후자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전쟁, 프랑스의 종교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현실감을 부여한다. 내용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다채롭게 흘러가지만 결말은 동일하다. 사랑의 성취와 승리!

 

그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가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여인을 안았다. 보이지 않는 소녀가 바로 로지나였다. (P.67, 보이지 않는 소녀)

 

그는 위험천만한 침상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그녀의 새털 같은 몸을 떠받았다. 그녀가 눈을 뜨고 연인을 보았다. 운명의 꿈을 꾸는 내내 자신을 지켜보았고 자기 목숨을 구해 준 연인을. (P.248, 꿈)

 

나머지 단편인 <유프라시아>와 <강변의 조문객>도 작품 간 유사성을 지닌다. 이 역시 사랑을 다루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이 주는 슬픔과 영향이다. 전자는 그리스 독립전쟁, 후자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전자는 적군에 납치당한 여동생을 구출하지만 누이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오빠, 후자는 난파당한 배에서 먼저 구출되기를 거부하고 끝내는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회한에 사로잡힌 딸. 콘스탄틴과 클라리스/엘렌은 누이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 사람은 무모할 정도의 용기를 전장에서 발휘하고, 클라리스/엘렌은 외딴곳 오두막에 홀로 고적한 은둔의 삶을 영위한다. 두 작품 모두 그들 주위에 머물렀던 사람의 목격과 증언 형식을 취하고 있다.

 

클라리스/엘렌의 슬픔이 독자에게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 육친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자책과 비난과 자기부정의 철저성이 자아내는 극단적인 비극성에 있다고 하겠다.

 

병과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던 경험이 내 절망에서 독을 빼 주었어. 네가 본 슬픔과 번뇌는 누그러진 아픔과 경건한 희망으로 녹아내렸지. 난 이제 비참하지 않아. 이제는 말이야! (P.194, 강변의 조문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공연명 : 195회 아트엠콘서트 - 김정은 리사이틀 "선율에 마음을 싣고"

일시 : 2026년 10월 15일(목) 19:30

장소 : 신영체임버홀

연주 : 김정은 (피아노)

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프로그램

  - 스카를라티, 소나타 C장조 K.502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C장조 K.545

  - 드뷔시, 전주곡 제1권 중 4곡 '저녁 대기 속에 감도는 소리와 향기'

                                12곡 '음유시인들'

  - 하이든, 변주곡 F단조 Hob.ⅩⅦ:6

  - 쇼팽, 환상곡 F단조 Op.49


* 세줄평

다채로운 곡을 감상할 수 있는 유쾌한 공연이었다. 전반부에서는 모차르트의 친숙한 소나타가, 후반부에서는 하이든과 쇼팽이 중심을 이룬다. 쇼팽 곡도 좋았지만, 생소한 하이든 작품이 더욱 흥미로웠다. 기대보다 꽤나. 내게 드뷔시는 아직은 가깝지 않다. 공연 못지않게 연주자의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