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명 : 강보라 바이올린 독주회

일시 : 2026년 5월 8일(금) 19:30

장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연주 : 강보라 (바이올린), 김은찬 (피아노)

프로그램

  -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8번 E flat 장조 K.380

  -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 Op.45

  - 엘가,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Op.82


* 세줄평

세 곡 모두 비교적 자주 듣는 작품은 아니다. 연주자는 전체적으로 섬세한 스타일로 작품을 해석한다. 모차르트 곡에 배어있는 은근한 슬픔을 잘 드러내며, 그리그 작품에서 격정과 열정에 가려 놓치기 쉬운 세밀한 사운드에 집중한다. 엘가의 곡은 바이올린의 진한 사운드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데, 극도의 섬세하고 미묘함에서 거친 열정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작품을 이끌어나가 흥미롭다. 몸만 덜 피곤했어도 한층 좋았을 텐데, 비몽사몽을 헤맨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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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말러리안 시리즈 9 - 말러 교향곡 8번

일시 : 2026년 4월 30일(목) 19:30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홀

지휘 : 진솔

연주 : 말러리안 오세크스트라

독창

  - 이윤정 (소프라노)

  - 김수정 (소프라노)

  - 장혜지 (소프라노)

  - 김세린 (알토)

  - 정수연 (알토)

  - 박승주 (테너)

  - 이승왕 (바리톤)

  - 전태현 (베이스)

합창 

  - 국립합창단

  - 부천시립합창단

  - 위너오페라합창단

  - 김포시립소년소녀합창

프로그램

  - 말러, 교향곡 8번 Eb장조, "천인"


* 세줄평

말러의 천인 교향곡 실연은 처음이다. 곡 특성상 실연이 자주 없기에 말러리안 프로젝트의 후원회도 가입하고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1부는 다소 실망하였다. 우주가 진동하는 듯한 울림을 기대했건만, 생각보다 음량이 작고 관현악과 합창이 서로 섞여 혼탁함마저 자아냈다. 이것이 실연의 한계인가 아니면 연주 규모가 작아서인지 또는 내 좌석의 치우침 탓인지 알 수 없다. 그냥 체험 자체만으로 만족하자라는 심경이었다.

2부는 훨씬 안정감있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총주의 비중이 작고 독창이 활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악의 뛰어난 활약, 합창의 적절한 반주, 악단의 충분한 협연. 중간에 아쉬움도 있지만 여유롭게 마음을 다잡은 탓인지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다. 특히 후반부의 구원에 이르는 빌드업과 마지막 터뜨림에서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음반으로는 알 수 없는, 그래 이 맛이지.

진솔과 말러리안의 쉽지 않은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수개월 후 인천시향 공연을 다시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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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길
레이너 윈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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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마다 걷는다. 그럼에도 마음먹고 걷는다는 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러닝족에게 러너스 하이가 있다면, 워킹족에게는 워커스 하이가 있다고나 할까. 그것은 전자의 쾌감과는 결을 달리한다. 오히려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지럽던 머리가 가뿐해지며, 들뜬 감정이 차분해지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제주올레길 완주, 국토대장정 같은 장거리 걷기가 나름 지지층을 얻고 있으며 해외로 눈을 돌리면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 오래전에 읽은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실크로드 대장정, 수년 전 읽은 <와일드>(셰릴 스트레이드)가 다룬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그리고 여기 이 책의 주인공이 걷는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 등. 이러한 길이 걷는 이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줌에도 꿋꿋이 존재하고 있음은 단지 완주했다는 정복욕만은 아닐 것이다.

 

영국 남서부의 해안을 따라 걷는 1,000km의 코스. 젊고 건강한 때, 별다른 삶의 고민이 없을 때 걸었다면 비록 육신은 힘들더라도 더할 나위 없는 흥미롭고 즐거운 트레일이었을 것이다. 레이너와 모스 부부는 그렇지 않다. 설상가상이란 표현은 이런 상황을 묘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용어이리라. 경제적 파산과 모스의 불치병이 동시에 닥쳤고, 몇 푼만 손에 지닌 채 살던 집과 농장에서 쫓겨난 50대 부부.

 

그리고 이제 저 문밖을 나서게 되면 모든 것이 다 과거의 일로 남게 될 터였다. 그동안 가꿔온 삶이, 인생이 다 끝나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P.17)

 

이들에게 떠난다는 것, 즉 무작정 걷는 행위는 불가항력이자 유일한 선택지다. 머무른 채 노숙자가 되고 모스의 죽음을 속절없이 지켜볼 게 아니라면, 그들은 떠나야 한다. 어디론가?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를.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모스와 더불어 레이너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또 다른 노숙의 길을 떠난다.

 

아무리 미친 짓이라고 해도 우리는 해내야만 했다. 만일 이 길을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이번 여름을 넘어 계속해서 펼쳐질 미래와 그 미래에 있을 모든 일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스도 나도 그런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P.66)

 

이 책의 미덕은 우선 대다수 독자에게 생소한 영국의 SWCP를 전면적으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마인헤드에서 랜즈엔드를 거쳐 풀까지 이르는 영국 지도상 남서부 끝자락 해안 길을 걷는 코스. 마인헤드에서 랜즈엔드까지 해안이 높고 날카로운 절벽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대서양의 맹렬한 바람과 파도가 절벽을 때려서 생긴 수많은 코브(cove). 랜즈엔드에서 풀까지, 특히 풀에 가까워질수록 흰색의 토양이 우세해 백악기라는 명칭을 낳게 되었다는 사실도. 랜즈엔드는 우리네 땅끝마을과 같은 의미인 게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하다.

 

SWCP가 지나는 길에 있는 영국 남서부의 여러 도시와 마을의 독특한 매력도 흥미롭다. 우리는 영국이라고 하면 런던을 우선으로 떠올리게 된다.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으면 데번과 콘월이 어느 쪽에 붙어 있는 지명인지 모를 정도다. 이렇게 영국 지방과 소도시의 존재와 특색에 대한 정보도 유익하다.

 

모스 부부는 팔자 좋게 배낭여행을 떠난 게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지급되는 보조금에 의지하여 음식과 물품을 구비해야 하기에 누가 봐도 궁핍하고 초라한 여행자의 외양이다. 세탁과 목욕을 자주 하기 어려우니 꾀죄죄한 행색에 냄새마저 풀풀 풍기는 그야말로 노숙자다. 여정에서 부닥치는 사람들 가운데 친절한 사람도 있는 반면 이들에게 거리를 두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해야겠다. 중산층에서 일순간에 하층민으로 몰락한 모스 부부는 이러한 처지를 더더욱 뼈저리게 절감한다. 노숙자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허술한 정책, 노숙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일반 대중의 인식 등.

 

무엇보다 모스 부부를 괴롭힌 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앞날이다. 날이 갈수록 처지는 모스의 건강에 대한 끊임없는 염려. 모스의 향후 부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레이너의 근심. SWCP를 완주할 수 있을지, 완주하고 나면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한 심정. 여정 내내 레이너를 괴롭히는 건 육신의 고통보다는 이러한 심적 번민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 인생의 주인이었고 우리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지배하고 있었다. 등에 배낭을 짊어지자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리는 다시 걷기로 결심했다. 그 선택과 함께 할 수 있는 자유를 붙들기로 한 것이다. (P.354-355)

 

<와일드>와 마찬가지로 결국 이 책도 모스 부부의 눈부신 미래를 보여주지 않지만, 적어도 시커먼 어둠과 잿빛의 어슴푸레함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모스는 의사의 예상과는 달리 육체적으로 강인해졌고, 미래 설계를 위한 생의 의지를 표명하고 선택한다. 추운 겨울을 피해서 걷기를 중단하고, 레이너가 친구의 농장에서 수개월간 더부살이를 하면서 양털 깎기 노동을 통해 번 돈은 미래를 향한 종잣돈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선택은 일견 무모하였지만 걷기를 통해 무너지지 않는 삶의 태도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낙담한 채 그대로 주저앉았더라면 모스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며, 이 책도 당연히 세상에 나오지 못하였을 터이므로.

 

내 안의 정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길을 한 걸음씩 지나갈 때마다 내 안에서는 뭔가가 점점 더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P.383)

 

이 책 역시 온라인 마켓에서 새책 같은 헌책을 고르면서 싼 맛에 장바구니에 추가하였던 책이다. 원체 이런 유형의 책을 좋아하였기에 적어도 실망해서 집어던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5백 면이 넘는 두툼한 분량임에도 어려움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부부가 지나는 패스의 여정을, 구글맵을 통해 시각적으로 확인하여 뒤따를 수 있어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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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신지혜 피아노 독주회 - Hommage Series Ⅱ: "Schumann loves Chopin"

일시 : 2026년 4월 24일(금) 19:30

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

연주 : 신지혜 (피아노)

프로그램

  - 쇼팽, 야상곡 Op.15 No.1 

  - 쇼팽, 야상곡 Op.15 No.2

  - 슈만, 쇼팽 야상곡 Op.15 No.3에 의한 변주곡

  - 쇼팽, 발라드 1번 Op.23

  - 쇼팽, 발라드 2번 Op.38

  -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


* 세줄평

쇼팽과 슈만이 단순히 교분이 있다고만 알고 있었다. 서로 작품 헌정을 주고 받고, 슈만은 변주곡을 쓸 정도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강한 낭만성과 과격한 정념의 표출보다는 정서와 구조, 표현의 정확성을 더 잘 알게 해주는 연주다. 역시 <크라이슬레리아나>가 들려주는 슈만 특유의 양식과 상념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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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
프로코피우스 지음, 곽동훈 옮김 / 들메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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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세계사 수업 시간에 주목받는 인물이다. 황제로서 업적이 뛰어나기에 특별히 대제라는 호칭을 사용할 정도니. 그는 일시적이지만 지중해를 다시 로마의 내해로 만들었고, 서양 3대 법전으로 손꼽히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였고, 성소피아 성당 같은 불멸의 건축물을 남겼다. 그는 로마제국의 영광을 마지막으로 재건하였고, 그의 사후 동로마는 결코 이전의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불세출의 영웅이자 제왕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그런데 프로코피우스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비사>에서 은밀히 밝힌다. 이 책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동시대 인물로서 <전쟁사><건축론>으로 황제와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찬미했던 공식 역사가가 남긴 일종의 비망록이다. 원래 이런 유형의 기록이라면 공식 역사서로는 남기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드러낼 수 없던 진실과 숨겨진 일화를 기대하기에 흥미진진함과 아울러 상당한 사실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프로코피우스는 이 책에서 황제와 황후, 장군에게 무자비한 인신공격을 퍼붓는다. 정복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완전한 애처가이자 공처가로 부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주변 사람 모두를 포기할 정도의 바보라고 밝힌다. 부인이 그 정도의 사랑과 헌신을 받을 만하다면 아무 문제 없지만, 그 부인은 외도를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 인물임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 장군의 형편없음을 더욱 부각한다.

 

그제서야 모든 사람들은 이 인간의 진면목을 알아채고 웃음거리로 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면전에 대고 멍청이라고 모욕했으니, 이제야 벨리사리우스의 어리석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P.96)

 

프로코피우스는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비서로 일하였다고 하니 그나마 이 정도는 봐준 셈이다. 황제와 황후에 대해서는 비난의 정도가 심하여 그들을 차라리 악마로 묘사할 정도니까 말이다. 두 사람은 로마제국을 파멸시키고 사람들을 망치기 위해 작정한 극악무도한 악한들이라고 기술한다. 테오도라 황후의 경우 한술 더 떠 그녀의 출신을 들어 세상에서 가장 불결하고 타락하며, 잔혹한 여성으로 폄하를 아끼지 않는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한번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어머니가 친구에게 고백하기를, 그가 남편인 사바티우스의 아들도 아니고, 실은 어떤 남자의 아들도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P.143)

 

그녀는 이렇게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의 이름은 모든 남자들의 입에서 일반적인 음란의 차원을 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P.124)

 

맹목적일 정도로 과도한 인신공격은 이 책의 진실성을 때로 의심케 할 정도이다. 저자가 이들에게 지독한 개인적 원한을 품은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무자비한 비난을 퍼붓는다는 건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난의 외피를 거두고 나면 동로마제국 전성기의 어두운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거창한 정복 사업에 따른 재정 부족은 과다한 징세로 이어져 백성들은 곤궁에 허덕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 등의 자연재해 빈발과, 치명적인 전염병의 유행은 인명과 재산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졌다. 황제 부부는 백성들의 어려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쓸데없이 화려한 건축물을 계속 짓고, 야만인들에게 재물을 아낌없이 퍼주고 국고를 고갈시켰다. 이것이 프로코피우스가 지적하는 당대의 큰 문제이자 현실이었다.

 

그의 지적은 상당한 적확성과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 덕분에 마냥 성공적이고 화려하기만 했던 유스티니아누스 치세가 사실은 장기적 쇠퇴의 조짐을 내포하고 있음을 후대에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이 빛 좋은 개살구였을까? 이 점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프로코피우스의 지적대로 유스티니아누스 치세가 어마어마한 폭정의 시기였다면 그의 사후 동로마제국은 곧바로 멸망으로 이어졌을 테지만, 누구나 알듯이 이후 천년 가까이 더 존속하였다. 그의 후세 황제 중에서 대단한 성군이 나왔다는 기록이 없는 걸 보면 저자가 지나치게 침소봉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복 사업을 옹호하자면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고토 회복을 포기한다는 건 황제로서의 소임을 방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훗날 이슬람 세력의 발흥 등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충분히 시도해 볼 만 사업이며, 어쨌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확보한 영토를 계속 유지하였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은 것도 이러한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백성들을 쥐어짜서 야만인들에게 펑펑 베푼다는 비난도, 격변기에 군사적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페르시아와 슬라브에게 협상을 통한 평화를 구한 정책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에 가깝다. 황제는 고토 수복을 위하여 서쪽으로 진군해야 하는데, 동쪽과 북쪽에서 적국이 쳐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들이 무력으로 침입해 온다면 그 피해는 협상 경비의 수준으로는 감당 못 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테오도라 황후의 출신에 대한 맹공은 오늘날 관점에서 지나치게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봐야 한다. 배우, 즉 매춘부 출신이 분명한 테오도라의 진면모를 알아차리고 결혼한 황제의 안목과, 이후 공동 통치자로서 역량을 발휘한 테오도라의 능력을 오히려 높이 상찬해야 한다. 귀족 출신인 프로코피우스로서는 그런 테오도라 황후가 결코 마뜩잖았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편견과 그릇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볼만 하고 흥미로운 점이 많다. 가뜩이나 사료가 부족한 동로마제국 초창기 시절, 그것도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유스티니아누스 시기의 궁중 비사를 그득 담고 있다. 아울러 당대의 종교 갈등과 청색파와 녹색파 간 파당 분쟁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동시대인의 시각에서 묘사한 당대 현실이므로 어떤 것에 비할 바 없는 생생함을 지니고 있어 당대의 사회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일차 사료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옮긴이의 말대로 미신적인 믿음에 기초한 일부 사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을 믿는 건 다소 위험한 견해다.

 

이 책은 프로코피우스의 원서를 1926년 리처드 앳워터가 번역한 영역본을 저본으로 한 중역본이다. 중역본이라고 해도 원전 번역이 없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동로마제국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일독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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