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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수십억에 달하는 세상 인구 중에는 영웅호걸보다는 갑남을녀, 장삼이사, 필부필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 역시 제아무리 보통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점에서 결코 예사로운 인물이라고 볼 수 없다. 작품의 분량에 따라 한 명에서 대하소설은 수백 명까지 인물이 나오지만, 이들이 모든 세상 사람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면 과언이다. 게다가 등장인물 전체가 모두 주인공은 아니지 않는가.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삶만이 소설의 주인공과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이들의 삶과 생각과 감정이 오히려 공감을 일으킨다. 인생의 온갖 신분과 환경과 행동과 사고와 감정을 한두 명의 주인공이 독점한다면 아무리 허구지만 너무 작위적이지만, 다수의 인물이 나눠 갖는다면 자연스럽다. 수많은 범부의 평범한 이야기가 차라리 그럴듯하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P.392, 작가의 말)
하물며 우리네 같은 필부들의 삶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자신의 구구절절한 삶을 글로 풀어놓으면 대하소설이나 대하드라마 못지않을 거라고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세상 사람 모두의 삶은 자체로 타인의 삶과 전혀 동일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정세랑 작가의 이 작품은 독특하다. 오십 명, 작가의 계산 실수로 오십일 명의 등장인물은 자기 이름의 장에서 각자가 짧지만 당당한 주인공이다. 작가는 각기 몇 쪽이라는 제한된 분량 속에서 인물의 생을 전반적으로 훑기도 하지만, 대개는 가장 임팩트 있는 때와 사건을 다룬다.
별개의 작품이 아닌 이상 각 장은 어떤 식으로든 연계성을 지녀야 한다. 많은 인물이 드나들 수 있고, 각자가 저마다 사연을 지닐 수 있어야 하며, 성별이나 계층에서 편중되지 않아야 하는 곳으로 작가는 종합병원을 골랐다. 의사, 간호사, 기사, 행정직 등의 원내 구성원과 병원 이웃. 환자, 보호자, 병문안 또는 업무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 개개의 인물은 남자나 여자, 아이, 어른, 노인으로 나뉠 수 있다. 어른이면 결혼 여부, 결혼했으면 자녀 여부, 나아가 손주 여부를 물을 수 있다. 학력, 건강, 취미, 국적 등 다양한 조합을 고려하면 경우의 수는 수천수만 가지로 확장된다.
무심코 한두 장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앞에 나왔던 인명인데 또는 어쩐지 비슷한 배경과 사건을 다루는 데 하는 느낌이 든다. 이후로는 책장을 앞뒤로 넘기며 그가 누구였던가 하는 숨은그림찾기를 시작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사람 간의 관계를 매칭시키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나아가 작중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결코 나와는 무관하지 않으며,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제각기 하나의 소우주를 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작가는 왜 이러한 시도를 하였을까 궁금하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장편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사연을 갖고 있는데. 아마도 오십일 편의 장편소설을 작가가 쓰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인식이 있었으리라. 발자크의 인간 희극,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조차도 모든 인간 현상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없으므로.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말은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과 동의어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지만, 전후좌우를 둘러보면 타인도 모두 또 다른 주인공임을 보게 된다. 내 삶의 특수성을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의 상대적 우월성을 내세우기 어렵다. 우리는 보다 겸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오십일 명의 인물 중에서 독자가 누구를 선호하고 더 공감하게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 있다. 나로서는 장유라, 배윤나, 홍우섭, 이설아, 한규익, 임찬복, 김시철, 이동열, 방승화, 소현재가 그러하다. 놓인 처지와 사고, 감정과 경험에서 가장 유사한 인물이 누구인가에 따라 독자의 마음이 끌리는 인물은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이들 모두가 전혀 감흥이 없거나 무관하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공감과는 별도로 각 인물은 제각기 흥미롭다. 브리타 훈겐과 스티브 코티앙의 이야기는 황당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송수정과 장유라가 겪는 슬픔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조희락과 지현, 최대환과 남세훈, 양혜련과 하계범은 내게 미지의 세계다. 이수경과 지연지는 우리네와 다른 인종이 아니지 않는가. 그들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거나 실행의 엄두조차 내지 못한 선택을 통한 다른 차원의 삶은 살아간다. 개중에는 딱한 처지에 동정심을 품게 되거나 응원하고 싶은 인물도 있지만, 우리도 결국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확실히 정세랑답다. 대다수의 등장인물이 한날한시, 한곳에 모이게 하는 설정이. 현실적 가능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당당함이 작가 특유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인물 모두에게 가급적 춤을 추도록 하려고 했는데 실패하였다는 점과 반복하여 등장하는 도마뱀 캐릭터에 관한 언급도 일종의 이스터에그처럼 흥미 유발 장치다.
여태껏 이런 유형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수많은 조각이 모여 커다란 모자이크가 완성되는 느낌이랄까. 하나의 그림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불필요한 조각은 없는 것처럼. 우리네 삶도 결국 다층 다종의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오십일 명의 인물 중에 분명히 나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우리네 삶으로 인식하고 다가올 때 비로소 삶의 온전한 얼개를 그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