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다른 식물의 세계책들과 차이 나는 지점은 무엇보다 그림에 있다. 대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기 마련인데, 저자는 글과 그림으로 구성하며 해당 그림은 모두 저자가 직접 그렸다고 한다. 이건 저자가 식물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여 가능하다. 그림이라고 해서 간단한 차원이 아니라 식물도감 수준의 정밀한, 그리고 과학적인 도해 작업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조형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 식물의 입장에서 지구에 생존하는 형태, 생태, 진화를 그림에 담습니다.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식물에 대한 사랑을 조명한 것이 그림이지요. (P.8, 프롤로그)

 

예쁘고 세밀하게 그려진 식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문득 그림이 더 컸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176면과 177면 사이 펼친 양면 가득 실린 녹나무 그림 같을 수는 없더라도 한 면 가득 커다랗게 그림으로 채웠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건 순전히 개인적 욕심이다. 저자는 식물학자로서 대중이 잘 알지 못하는 식물의 다양한 생태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한층 클 것이기에 글도 놓칠 수 없을 테니.

 

식물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까우므로 소개된 식물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신기하다. 그나마 이름이라도 알고 있어 친숙하다고 착각했던 식물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생경한 면모가 있다는 점은 살짝 놀랄 정도다. 사람은 본성상 동물에 끌린다. 육식에 반대하는 채식주의자는 많지만, 식물은 마구 꺾고 자르고 뽑고 베도 되는 대상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에게 식물은 일상생활에서는 사물 또는 도구이며, 자연 속에서는 자원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식물이 생장과 번식을 위해 기울이는 엄청난 노력을, 한치라도 목적에 유리하도록 치열하게 탐색하고 적응하는 모습을 기술한다. 식물이라고 흔히 통칭하지만, 눈에 겨우 보이는 꽃가루와 작은 식물에서 거대한 나무에 이르기까지, 열대에서 극지방, 땅속과 지상에 걸쳐 생존하는 식물의 폭은 광대하다. 광합성을 하지 않는 기생식물과 식충식물처럼 동물성에 가까운 유형도 생존 가능성을 증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하물며 식물이 품은 맹독에 이르러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제한된 분량에 다양한 식물을 소개하고, 다양한 식물의 면모를 기술하려다 보니 보다 깊숙한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한 점은 이 책의 태생적 한계다.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부족한 점과 마찬가지 연유라고 짐작한다. 저자는 단순히 식물의 생태를 독자에게 알리려는 목적보다는 이를 통해 식물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애쓰고 있다. 그래야 식물이라는 생명체를 무심코 가볍게 취급하는 관행을 줄일 수 있을 테니. 나아가 식물의 생태에서 지혜와 교훈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각 장의 매 편 말미에서 저자는 해당 식물들에서 얻을 수 있는 이러저러한 지혜를 우리네 삶에도 유추하고 적용하기를 요청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식물은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시간에 꽃을 피우고, 삶의 다음 고리로 연결해갑니다. 사람도 저마다 꽃을 피우는 시간이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일찍 찾아올 수도, 어떤 사람은 늦게 찾아올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일찍 꽃을 피우는 것보다 나에게 맞는 시간에 꽃을 피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아닐까요? (P.39, 이제는 꽃을 피울 시간)

 

몇몇 재밌고 신기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현대에도 잘 살아남은 원시식물인 고사리, 미래의 사료와 환경 보전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개구리밥, 솔방울 가습기의 놀라운 원리, 붉은색을 많이 띠는 가을 열매의 이유 등은 신기하다. 국화과 등에 속하는 식물에서 보이는 로제트 잎, 생태적 특성과 환경 조건 등을 고려해 성을 선택하는 식물, 국화꽃 한 송이가 사실은 작은 꽃다발인 두상화서라는 사실, 식물의 이타심 등등. 특히 식물이 동물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루트-브레인 가설과 우드 와이드 웹. 게다가 주변에 흔히 보던 은행나무, 소철, 메타세쿼이아가 자연 상태에서는 멸종위기 종이라니 놀랍다. 수국과 수국백당, 장미는 관상용으로 인간이 계속 개조하여 자연번식이 불가능한 품종이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지구에서 오랫동안 진화해오며 살아온 종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주된 이유는 기후변화나 자연선택이 아닙니다. 직간접적인 인간의 활동이 가장 큰 원인이죠. (P.257)

 

인간이 살다 보면 많은 식물과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어떤 식물은 유용하여 우대받고 다른 식물은 무시되고 멸종되는 사례를 완전히 막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연과 생물을 이용 수단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동반자라고 관점을 바꾼다면 이 책에 실린 식물은 물론 인간 자체의 삶도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앞서 <이웃집 식물상담소>를 흥미롭게 읽었지만, 식물 이야기의 비중이 좀 더 높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이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므로. 확실히 식물학의 더욱 깊고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학술서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저자는 일반 독자에 대한 배려와 교감의 끈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전문 서적류의 건조하고 딱딱함보다는 식물학과 대중의 소통에 무게중심을 두려고 하는 저자의 의도가 나타난다. 그 결과가 <이웃집 식물상담소>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연명 : 186회 아트엠콘서트 - 김세준 비올라 리사이틀

일시 : 2026년 1월 15일(목) 19:30

장소 : 신영체임버홀

연주 : 김세준 (비올라), 박진형 (피아노)

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프로그램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D단조 BWV 1008

  - 브루흐, 로망스 F장조 Op.85

  - 비외탕, 비올라 소나타 B-flat장조 Op.36

  -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 Op.7 [윌리엄 프림로즈 편곡]


* 세줄평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올라로 들으니 바닥에 깔리는 저음 대신 한층 친근한 목소리로 다가온다. 파가니니 곡도 원곡의 화려한 고음이 주는 쨍한 맛과 다른 미감을 보인다. 두 곡 모두 첼로와 바이올린에 친숙하고 특화되다 보니 원곡을 능가하지 못하지만 색다른 별미로 즐길만하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브루흐와 비외탕이다. 중역대에 특화된 코맹맹이 같은 편안한 사운드를 중심으로 비올라가 보여줄 수 있는 서정적이고 기교적이며, 느림과 빠름의 모든 아름다움을 두 곡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바이올린 곡으로 유명한 작곡가들인데 이들의 비올라 곡이 소중하다. 2026 아트엠콘서트 메세나 회원으로 첫 공연 참석인데, 대화와 연주가 이어지는 진행이 흥미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도 대학 도서관의 대출 상위 도서 목록에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과학 에세이라고 하는데, 표제도 독특해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알라딘 서점의 서평을 보니 대체로 높은 평가를 하는 가운데, 극단적으로 낮은 평점을 부여하는 사례도 간혹 볼 수 있다. 아마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나 보다.

 

이 책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 생물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업적을 다루고 있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인 조던의 숨겨진 삶을 드러내어 고양하는 저작 의도로 이해하였다. 그만큼 어린 조던이 분류, 질서, 체계에 예민한 감각과 집착을 드러내는 일화라든가 대지진으로 거의 다 망가져 버린 수많은 어류의 표본과 명칭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면서도 굳세게 버텨냈다는 이야기 등은 확실히 저자가 삶의 모범으로 삼아 추구할 가치가 있는 인물로 보인다. 어류 분류학에서 그가 남긴 업적은 워낙 대단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부분은 스탠퍼드 대학 총장으로서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야기다. 그가 오늘날 세계적 명성을 지닌 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지만 이걸 통해서도 그가 당대 학계의 굉장한 저명인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설립자 부부와 조던 간 갈등, 특히 스탠퍼드 여사의 사망에 얽힌 조던의 혐의점은 그가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나온다. 그가 여사의 사망원인을 독살이 유력한데도 굳이 자연사라고 몰고 가기 위해 애썼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존경받는 과학자 조던의 이미지는 앞에서 이미 큰 흠집이 났는데, 저자는 세 번째 부분에서 쐐기를 박는다. 철저한 우생학자로서 조던을. 그가 우생학을 열렬히 옹호하고 차별을 법제화하기 위해 노력한 대목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비난받기에 충분한 오점이다.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고 체계화하고자 하는 그의 열성은 나아가 모든 생명체를 우열의 기준을 적용하여 사다리 형태로 배치하였다. 신체적 결함, 지적 장애, 인종 편견 등이 결합하여 우수한 인간을 배양하기 위해 소위 부적합자들에 대한 차별을 주창한 것이다.

 

이처럼 룰루 밀러의 저작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류학계 거장의 은폐된 잘못을 파헤치고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용 중 가끔 느껴지는 조던에 대한 저자의 냉소적인 어투를 이제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후기에 따르면 그가 재직하였던 인디애나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그리고 캘리포니아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학교, 건물 등의 명칭이 전부 변경되었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 명의 아우성-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요-도 무시해버린 남자. (P.201)

 

여기까지로 그쳤으면 이 책과 저자는 대단한 갈채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게 논란의 대상이 된다. 군데군데 조금씩 섞어놓은 저자의 개인사다. 과학자인 아버지에게서 인간은 자연에 있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존재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 수면제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실, 자신의 동성애로 실망하고 떠나간 연인이 돌아오기만 하염없이 기다리며 삶이 엉망이 되었다는 일종의 푸념. 솔직히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책에서 굳이 필요한 대목이었을까, 독자가 관심과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인가.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P.242)

 

조던이 일생을 바쳐 동정(identification)한 수많은 물고기가 오늘날 어류라는 학문적 분류가 사라져 헛되게 되었다는 사실은 조롱이 아니라 슬픔과 탄식이며 과학 발전에서 불가피한 사례로 위로받아야 마땅하다. 저자는 인간이 눈앞의 현상에 급급하여 깊은 과학적 인식을 하지 못해 단순히 물속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을 어류로 묶어놓았다는 점을 빗대어 조던의 우생학 옹호를 같은 선상에서 비판한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자신의 삶과 선택을 정당화한다. 연인의 복귀 기대를 포기하고 새로운 여성을 만나 동성애 커플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밝고 행복하게 기술한다. 독자는 저자를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어류의 분류학적 통찰에 실패했던 그리고 우생학을 부르짖던 조던과 같은 무리임을 자인하는 것과 똑같으므로. 이제야 비로소 알라딘 서점의 평점이 극단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P.267-268)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해 정말 몰랐을까? 생물분류학자인 그라는 존재에 맞닥뜨렸고 그의 단호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정신에 감명받고 그에 대해 좀 더 알기를 원했다면, 당연히 그의 일생에 대한 개략적 확인에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저자가 그의 삶과 학문에 관한 책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스탠퍼드 여사 관련 의혹이 아닌 우생학자로서의 그를 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우생학 지지자 조던과 스탠퍼드 여사 사망 혐의자 조던을 깡그리 엮어서 그를 악인으로 취급한다. 어류 분류학자로서 그의 열성과 업적은 전혀 비난의 대상이 아님에도 그조차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표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틀린 말이다. 어류라는 학문적 분류가 바뀌었을 뿐이다. 물고기라는 실체는 엄연히 존재한다.

 

저자의 의도는 자신이 선택한 성소수자의 정당성에 대한 옹호에 불과하다.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우생학자를 선택하였다. 저명한 스타 과학자의 화려한 외면 뒤에 숨어있는 어둡고 부정한 측면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행위는 긍정한다. 과학의 발전과 사회 정의라는 관점에서. 다만 그 저격이 개인적 목적-저자의 내밀한 삶과 선택에 억지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을 교묘하게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 또한 비판의 소지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어류 분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적 영역을 확장해 준 점에서 의의가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당대의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명문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에 대한 영광과 오욕에 대해 알게 된 점도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권은 11장에서 마지막 20장까지를 다룬다. 등장인물 기준으로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증손인 세군도 형제부터 6대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까지다.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 마을의 발흥과 쇠락을 그린 연대기라는 성격은 끝까지 유효하다. 이제 실질적 주인공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맡는데, 그는 가축의 초자연적 생산성으로 가문에 부귀의 절정을 이끌지만 동시에 자신의 거대한 방탕과 낭비로, 한편으로는 아내 페르난다가 가져온 폐쇄적이고 금욕적인 통제 위주의 생활 방식으로 가문 몰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1권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독특한 요소는 여기에서 더욱 발전한다. 교통의 발전으로 마꼰도 마을은 외부 자본과 물질문명에 개방하면서 과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혁명이 보수파와 자유파 간 이념의 대립이었다면,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가 참여하고 경험한 갈등은 자본주의 심화에 따른 계급적 성격이다. 정치와 자본이 결탁한 극단적 모습이 바나나 회사 노동자의 파업과 학살 그리고 은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꿈을 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마꼰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장교들은 그렇게들 주장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노조 지도자들을 몰살시킬 수가 있었다. (P.157)

 

마술적 측면도 한층 두드러진다. 절대적 유혹성을 지닌 양가적 인물인 미녀 레메디오스의 승천은 그녀가 지닌 천진한 순진성이 종교성의 원리와도 상통함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아들들 이마에 그려진 지워지지 않는 재의 십자가는 그것이 죽음의 표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와 함께 나타나는 노랑나비 무리 역시 환상적이다. 하지만 마꼰도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장마와 가뭄이 무엇보다 승천과 함께 더없이 비현실적인 면을 드러낸다. 사 년 십일 개월 이틀 동안 내리는 비와 이후 십 년 동안 다시는 내리지 않는 비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기반을 완전히 거덜 낸다. 그와 가족들을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는 점에서 범상하게 넘길 수 없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근친결혼에서 비롯한 근친상간적 요소는 삘라르 떼르네라의 형제 간 공유, 아마란따의 부적절한 근친상간적 취향처럼 지속되지만 내면에 잠복하고 있다가,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결합과 돼지꼬리 아기의 출산을 통해 결정적으로 표출되고 이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일찍이 부엔디아 부부가 마꼰도 마을을 개척하게 된 계기인 동시에 그토록 막고자 애썼던 파멸이 반인반수의 괴물 출현이라는 예고를 거쳐 거대한 운명의 흐름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한 것은 단지 이모와 자기가 가장 복잡하게 뒤얽힌 핏줄의 미로 속에서 서로를 찾아, 마침내 가문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신화적인 동물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305)

 

레메디오스의 승천을 제외하면 가문의 식구들은 모두 고독하거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우르술라, 아마란따, 레베까, 페르난다, 메메는 수명의 장단에 차이가 있지만 고독함의 기준에서는 동일하다. 고고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삘라르 떼르네라와 스스로 저택을 떠난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이 차라리 나을 정도다. 대령의 아들들, 호세 아르까디오, 아마란따 우르술라,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 돼지꼬리 아우렐리아노의 죽음은 회한과 비참 그 자체다. 이런 점에서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형제의 죽음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개인과 가문과 마을의 장대한 비극인 이 작품에 작가는 환상적 요소와 함께 희화적 요소를 곳곳에 집어넣음으로써 분위기를 전환하고 무게감을 한층 덜어내고 있다. 세군도 형제의 시신을 술 취한 조객들이 착각하여 다른 무덤에 묻었다는 대목은 희화성과 동시에 쌍둥이 형제가 죽음을 통해 비로소 본성을 되찾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무적의 대식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암꼬끼리별명의 거대한 여자 사이에 벌어진 음식 많이 먹기 대결, 메메가 방학 때 학교에서 수녀와 급우를 떼거리로 데려옴으로써 벌어진 일대 혼란, 여러 면에 걸쳐 단 하나의 문장으로 길게 이어진 남편을 향한 페르난다의 불평 등은 해당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해학미를 삽입하여 심각한 작중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부엔디아 가문의 전통이라고 할 만한 반복적으로 동일한 이름 사용하기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인물 간 성격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호세 아르까디오의 충동적, 외향적 성격과, 아우렐리아노의 이성적, 내향적 성격 대비는 두드러진다. 우르술라의 근친결혼과, 아마란따의 근친상간 성향을 겸비하였다는 점에서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행보는 숙명적이다. 이러한 이름 짓기는 결국 시간과 세대가 지나도 예언된 운명은 흘러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오다가 어느 때에 이르러 발현된다는 운명론적 인식에서 비롯함이다.

 

그녀[삘라르 떼르네라]에게는, 비록 뚫고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부엔디아 가문 남자의 마음속에는 신비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 가문의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톱니바퀴이며, 그 축이 서서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해서 회전하는 하나의 바퀴라는 사실을 한 세기에 걸친 카드 점과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P.277)

 

이 장엄한 연대기가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 마을의 일개 차원을 넘어섬은 작가가 문명적, 사회적 이념을 투입하면서 확실해진다. 이들은 작가의 출신국인 콜롬비아,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가리킨다고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고유한 전통과 가치를 지니고 살다가 서양 문명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것이 발전과 번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쇠퇴와 파멸, 독재와 폭력으로 점철되는 사례를 반복하는 슬픈 현실. 그것은 비현실과 환상과 마술의 등장 없이는 도저히 이해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뼈저린 자기 인식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마꼰도는 서양 세계와의 진정한 족외혼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시도에서 번번이 실패하고서 수세기 전부터 지속된 고독 속에 갇힌 채 아직까지도 확실하고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P.323, 작품 해설)

 

오랫동안 이 작가와 이 작품에 대해 들었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명성이 높은 만큼 과대평가되거나 개인적 기대와 취향에 충족하지 못할 거에 대한 우려라고나 할까. 만시지탄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과 구성, 서사와 표현 기법, 무엇보다 이야기로서의 재미까지 고루 갖춘 작품을 1960년대에 서구가 아닌 라틴아메리카에서 써냈다니 대단하다고 할 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가 마꼰도를 개척하고 가문을 일구어내고 자손에 이르는 일종의 연대기다. 20장 중 1권은 1장에서 10장을 다룬다. 인물로 보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서 증손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까지 차례차례 나타난다. 삼백 면에 못 미치는 분량에 4대를 다루고 있으므로 진행 속도가 제법 빠르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호세 아르까디오는 부엔디아 본인, 첫째 아들, 증손자까지 계속 사용하며, 중간에 단명한 손자 이름도 아르까디오를 쓴다. ‘아우렐리아노도 마찬가지다. 둘째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와 그의 많은 아들들, 증손에도 아우렐리아노가 있다. 여자 인물의 이름에는 우르술라, 레메디오스, 아마란따를 붙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 가끔씩 가계도를 들여다봐야 헷갈리지 않는다. 작가는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이름 간에 뚜렷한 성격 차이를 부여한다. 전자는 감각적이며 충동적이고, 후자는 내성적이며 강한 의지력을 소유한다. 둘 다 고독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은 공통이다.

 

우르술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똑같은 이름들을 집요하게 되풀이해 씀으로써 확실해 보이는 결론들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P.269)

 

그들이 보존했던 유일한 공통점은 그 집안 식구들이 지닌 고독한 기질이었다. (P.271)

 

작가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유명하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연대기이므로 사실주의에 기반하여 전개하고 있다. 이따금씩 판타지적 요소가 아무렇지 않은 듯 개입하는데, 이것이 마술적 측면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야 워낙 환상 문학 계열이 득세하고 있으므로 별거 아니게 보이지만, 이 소설이 발표된 1960년대라면 수용성의 관점에서 전혀 다를 수 있겠다 싶다. 니까노르 레이나 신부의 공중 부양,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죽음에 맞춰 호우처럼 내리는 꽃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소유 가축의 초자연적인 생산성 등등.

 

너무나 많은 꽃들이 하늘에서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이 되자 거리가 폭신폭신한 요를 깔아 놓은 것처럼 되어버려서 장례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삽과 갈퀴로 치워야 했다. (P.212)

 

한국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윤리적 기준에서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근친 간 결혼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우리네는 그러하지 않으므로. 가문의 창시자 부엔디아 부부는 사촌간이다. 근친결혼은 돼지꼬리 자손을 낳는다는 미신을 무릅쓰고 그들은 결혼한다. 호세 아르까디오가 여동생과도 같은 레베까와 결합하는 건 그렇다 치자. 아우렐리아노 호세와 고모 아마란따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을 뻔한다. 호세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형제는 삘라르 떼르네라를 정부(情婦)로 공유하여 각자 아들을 둔다. 1부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드러나지 않지만, 가계도를 보면 2부에는 분명히 중대한 문제로 불거지는 게 보인다.

 

남성 인물이 온갖 사고와 방탕, 모험을 무릅쓰면서 끊임없이 부엔디아 가문을 몰락시킬 위험에 노출시키는 가운데 가문을 지탱하는 역할을 우르술라와 딸 아마란따가 도맡고 있다. 어찌 보면 소설 속 실질적 주인공은 그네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우르술라는 고손주까지 태어날 때까지도 장수하며 가문을 발전시키고 저택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기독교적 신념은 미약하지만 인륜을 존중하고 상식에 근거하여 삶과 가문을 꾸려나가는 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아마란따는 어머니와 전혀 다르다. 레베까와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결혼을 깨기 위해 집요하게 애썼는데, 정작 끄레스삐가 본인에게 빠져들자 그와의 결혼을 단호하게 거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훗날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과 사랑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결혼을 거부한다. 실수지만 레메디오스를 죽게끔 하고, 조카와 부적절한 행각을 벌이는 등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크지만 어쨌든 독신으로 살면서 가문을 지킨다.

 

정치와 혁명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중남미의 정치적 혼란은 이 작품에도 깊숙이 반영되어 있는데, 자유파와 보수파 간 이념 다툼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지칠 줄 모르는 군사 봉기가 그러하다. 번영하던 마꼰도 마을은 전세의 상황에 따라 자유파와 보수파가 교차로 지배한다. 잔혹한 통치자의 면모를 보이다가 총살당한 아르까디오와, 부엔디아 가문과 우호적이며 관용적 통치를 하지만 결국 친구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총살형을 당하는 몬까다 장군이 이념의 헛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작중에서 비중이 크고 가문의 실제적 리더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혁명군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비윤리적 처사와 권력욕에 빠질뻔한 위험, 수십 번의 봉기와 갑작스러운 타협 등은 개인의 성격뿐만 아니라 전쟁의 무의미함과 중남미 정치적 해법이 녹록지 않음을 나타내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은 결국 전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는 실제적인 행동이었고, 젊음의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었던 전쟁이 이제는 막연한 개념, 다시 말하면, 공허한 그 무엇으로 변모되어 버렸던 것이다. (P.242)

 

마지막으로 집시 멜키아데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벗의 관계인 그는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아와 문명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마법사, 연금술사와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그와 부엔디아 저택에 자리잡은 그의 작업실은 이 작품에서 가장 마술적 요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부엔디아 가문의 미래에 관한 예언은 작품 전체와 결말에 이르는 여정을 상징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멜키아데스]는 마꼰도의 미래에 관한 예언 하나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꼰도가 부엔디아 가문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유리로 지은 거대한 집들로 이루어진 번쩍거리는 도시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P.87)

 

작가 마르께스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에서 비롯하여 후대 자손에까지 소설의 전개는 물 흐르듯 막힌 곳이 없다. 부엔디아 가문의 세대 간 흐름이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각 세대와 인물의 상세한 특성과 두드러진 사건을 빼놓지 않고 기술함으로써 종횡으로 풍성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안으로는 인물의 심리와 내면에서 밖으로는 군사혁명과 정세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스케일도 크다. 무엇보다 난해하고 개인적인 심리 묘사를 지양하고 이야기의 흐름 자체를 중시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2권에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1권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