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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조종사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2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이림니키 그림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3월
평점 :
나는 ‘인간’을 위해 ‘인간’의 적에 맞서, 그리고 나 자신과도 맞서 싸울 것이다. (P.297)
이 작품은 생텍쥐페리가 1939년과 1940년 정찰 비행단 소속으로 활동하였던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 아라스 지구 정찰 비행에 나서 귀환에 요행히 성공한 임무가 작품 얼개에 해당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작가인 화자가 비행기 조종사로서 창공에서 품는 다양한 상념들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장르를 과연 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지 애매하다. 에세이 또는 수기에 차라리 가깝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가는 이 무렵, 다른 모든 이들에게 한 가지 인상을 주는 감정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불합리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주위에서 모든 것이 부서진다. 모든 것이 무너진다. 사방이 온통 그러한 상황이라 죽음조차도 불합리하게 보인다. (P.10-12)
작중에서 우선 두드러지는 점은 반전 관념이다. 화자는 전쟁의 무의미성을 토로한다. 여기에는 여러 배경이 있을 텐데 먼저 프랑스의 패전이다. 나치 독일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개와 안타까움이 전재 자체의 비인간성과 맞물려 있다. 자신이 맡고 있는 비행 업무의 터무니없음도 한몫한다. 상식적으로 불필요하고 무모한 비행을 지시하는 지휘부에 대한 불만을 화자는 가감 없이 독자에게 토로한다.
전쟁은 속성상 잔인하고 엄혹하다. 전쟁은 가능하면 회피하고, 불가피하다면 최소의 희생으로, 신속한 종료를 거두어야 한다. 그것이 위정자의 책무다. 살인, 방화, 파괴, 죽음, 희생, 비탄 등으로 가득한 상황은 인간을 인간 이하의 지위로 타락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철저히, 그리고 신속하게 굴복당하였다. 화자는 이렇게 자조한다.
프랑스는 자신의 역할을 했다. 프랑스가 맡은 역할은 무너져주는 것이었다. [......] 공격이 들어오면 총알받이로 내세울 사람이 필요하다. (P.165)
화자는 프랑스의 패전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비행기 조종사로서 평소의 생각에, 전시 조종사로서의 경험을 결합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프랑스에 무엇이 결여되었고, 부족한가를. 여기서 그는 구분한다, 개인과 인간을. 프랑스 대혁명과 계몽주의로 대변하는 합리주의를 화자는 여기서 인본주의로 부르고 있다. 기존 인본주의의 가장 큰 흠결은 고립된 개인주의다.
개별성에 보편성이 우위를 점하듯 개인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위해 나는 싸울 것이다.
나는 보편성에 대한 숭배가 개별적인 풍요로움을 촉진시켜 주고 유기적으로 연결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하나의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는 삶의 질서가 된다. (P.295)
개인과 인간의 차이는 개인 간 연결, 관계의 유무다. 고립된 개체를 넘어 우리로, 공동체를 결성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생텍쥐페리의 작품들 속에서 중요한 개념인 관계가 여기서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인간은 관계로 매듭지어진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오직 중요한 것은 관계뿐이다. (P.204)
개인이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 그저 희망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 여기서 화자는 말이 아닌 행동을 강조한다. 개별 차원의 행동과 관계 속에서 행동은 완전히 다르다. 후자는 내가 그 역할과 의무, 책임을 인식해야 하고 참여를 통해 비로소 행동으로 전환된다. 개체적 자아를 포기해야 하기에 그것은 희생이기도 하다. 즉 관계, 의무, 책임, 참여, 행동, 희생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일련의 맥락 속에 존재한다. 이것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가 바로 공동체다.
내가 만약 참여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하려면 참여해야 한다. (P.222)
우리의 공동체는 이미 민감해져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해 이를 표현하는 일이다. 이는 의식과 언어의 노력이다. (P.254)
화자가 강조한 새로운 인본주의와 공동체 개념은 프랑스의 패전이라는 쓰라린 체험에서 퍼 올린 진실이다. 기존의 프랑스는 바로 이 미덕이 부족하였기에 과거의 고립적 인본주의에 안주하였기에 패망을 맛보게 되었다. 혹자는 화자가 제시한 이 개념이 오히려 전체주의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 때문에 작가는 한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는 작가의 관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인간이 부재한 공동체를 표방한 게 전체주의다.
‘인간’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내가 속한 문화의 요체도, 내가 속한 공동체의 열쇠도, 그리고 내가 깨달은 승리의 원칙도 모두 ‘인간’이다. (P.269-270)
화자는 인간에게 바탕을 둔 공동체를 찬미하였다. 바로 인간을 통해 인간 평등, 인간 존중, 형제애, 자비, 책임, 희생의 사상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제26장의 내용 전체를 이의 선언과 설명에 할애하고 있을 정도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재미없다. 관념과 사색의 비중이 크고 핵심적인 내용을 형성하기에 작가의 이전 작품과는 독서의 궤를 달리해야 한다. 비행기 조종사 임무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와 유사성을 갖는다. 소설로서 반전 의식이 표출되고, 서사적 구조보다 사색이 주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대지>에 오히려 가깝다. 다만 전자는 서사와 사색이 비교적 균형을 이루는 반면 여기서는 사색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작품의 평가를 함부로 내리기 어려운데, 그 유명한 <어린 왕자>의 기본 사상이 전작들과 아울러 특히 이 작품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단순한 아동서 차원을 넘어 깊이 있는 독해를 하고자 한다면 결코 이 작품을 건너뛸 수 없다는 소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