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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고고학이라고 하면, 옛날 유적과 무덤을 파헤치는 우리네 일상적인 삶과는 무관한 분야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저자는 고고학이 인간의 삶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상아탑에 안주하는 현학적인 학문 분과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1부 잔치 편에서 다루는 항목은 막걸리, 소주, 김치, 삼겹살, 소고기, 닭, 상어 고기, 해장국이다. 음식과 관련된 내용이다.
소주가이 새삼 눈길을 끄는데, 최초의 증류식 소주는 거란에서 만들었고, 세계화에 성공한 것은 몽골제국 시기라고 한다. 추운 지역에서 몸에 열을 내려고 일개 유목민이 마시던 높은 도수의 술이 세계의 술이 된 것은 역시 국력의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김치와 삼겹살 항목에서 유라시아 각지의 절임 채소 요리의 공통성, 우크라이나와 우리나라의 돼지고기의 유사성을 통해 지역을 막론한 민중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생존 본능을 우선 꼽는다.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반영된 항목도 있는데, 경상도 지역의 상어 고기 문화의 역사성을 예시하며 “신라 문화는 상어(돔베기) 문화권”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언급, 우리나라에서만 ‘도토리묵’과 ‘해장국’이라는 음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부 놀이 편에서는 놀이, 고인돌, 씨름, 축구, 여행, 낙서, 개, 고양이 항목을 다룬다.
고구려의 <수렵도>가 실제 사냥 장면이 아니라 일종의 사냥놀이를 하는 모습이라는 분석은 간과했던 사실인데 매우 설득력 있다. 씨름과 축구처럼 신체가 맞부딪히는 스포츠는 격렬한 만큼 거친 폭력성의 해소와 함께 신체 단련의 의미도 지닌다. 다만 그것이 과도하면 흥분과 폭력으로 확대되는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고인돌이 놀이와 무슨 관계인지 의아했는데, 제의는 엄숙성과 동시에 축제성도 지니고 있다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현세에서 여행은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내세로의 여행은 영생과 피안에서의 행복을 지향했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반려동물의 대표격인 개와 고양이 이야기도 재밌지만, 시대를 초월한 낙서 애호의 흔적은 인간 본성이 한결같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기에 해학적이다. 러시아 아이 온핌의 필기 뭉치처럼.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실현하기 위한 본능적 욕망을 품는다. 3부 명품 편의 석기, 실크, 황금, 신라 금관, 인삼, 기후와 유물, 도굴, 모방 항목은 바로 이 욕망을 얘기한다.
고급 옷감의 대명사인 실크는 실크로드라는 불후의 유산을 남겼는데, 실크에 열광한 흉노족의 쇠망 원인 중 하나가 실크라는 견해는 참신하다. 물욕하면 바로 황금이 연상되는데, 황금 문화의 역사가 흑해 연안에서 오래전 피어났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우리 고대사도 황금과 무관하지 않다. 신라 금관이 대표적인데, 금관총 발견의 아픈 역사와 함께 복제품 유물 도난 사건의 어처구니없는 시대상이 함께 다루어진다.
인삼은 고대부터 명품으로 취급되었으며, 특히 고려 인삼이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점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인삼과 관련하여 소개된 두 개의 에피소드도 이를 충분히 입증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청나라의 발전이 인삼 파워라는 견해는 놀랍다. 하물며 인삼이 병자호란의 사실상 원인이라는 주장은 어안이 벙벙할 뿐.
명품은 모방과 도굴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모방은 방제경처럼 긍정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도굴은 재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 아닐까. 그런 면에서 도굴의 왕이었던 조조의 무덤이 도굴로 발견되었다는 점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할지 애매하다. 한편, 지구온난화가 현대 인류 사회에만 영향을 미치는 줄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고고학자는 다르다. 동토 지대에 오랜 기간 보존되어 온 유물들이 온난화의 결과로 녹아서 부패하고 소멸하는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의 심정은 다만 헤아릴 뿐 충분히 따라잡기 어렵다.
4부 영원 편의 벽화, 추모, 미라, 발굴 괴담, 마스크, 문신, 점복, 메신저 항목은 결국 죽음과 미래에 관한 항목이다. 인간의 죽음은 필연이며 회피할 수 없지만 누구나 벗어나고자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마찬가지다. 고인을 추모하고 그네들이 저승에서 현세처럼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거대한 무덤과 화려한 부장품, 제2의 집으로 그려진 벽화를 보라.
기후로 우연히 된 미라가 아니라 의도적 미라 또한 영생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투탕카멘과 레닌의 미라는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의도를 지닌다. 두 사람은 자신의 시신이 오늘날 이렇게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마스크에 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마스크는 애초에 인간과 신을 중개했던 샤먼의 전유물이었으면서 오늘날 영정 사진의 역할도 했다는 설명은 마스크, 즉 가면의 비일상성을 증명한다. 다만 코로나 시기를 경험했던 만큼 전염병 예방을 위한 마스크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문신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에 문신은 부족과 신분을 나타내거나, 훈장처럼 특별한 공적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물론 묵형처럼 먹을 새기는 형벌도 있었는데 모두가 문신의 반영구성에 기인한다. 문신에 대한 요즘 세간의 인식은 나쁜 편이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 가치관이 내재화되어 있는데 문신은 소중한 신체를 훼손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문신충’이라는 폄하적 용어도 존재한다. 문신을 개성의 표현으로 인정할지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과거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유물을 발견해나가면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밖에 없다고요. 그걸 해내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P.345)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고고학의 의의와 자부심을 토로한다. 이 책은 대중을 겨냥한 고고학 입문서다. 새삼 골치 아픈 학문적 얘기는 제쳐두고, 세상의 다양한 사물과 풍습의 기원을 고고학과 결부시켜 의외성과 함께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풀어놓는다. 굳이 고고학이라는 어휘를 일부러 결부시킬 필요도 없다. 인간과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사항의 기원과 유래를 가볍게 읽어 나가다 보면 절로 고고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