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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평점 :
2권은 11장에서 마지막 20장까지를 다룬다. 등장인물 기준으로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증손인 세군도 형제부터 6대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까지다.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 마을의 발흥과 쇠락을 그린 연대기라는 성격은 끝까지 유효하다. 이제 실질적 주인공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맡는데, 그는 가축의 초자연적 생산성으로 가문에 부귀의 절정을 이끌지만 동시에 자신의 거대한 방탕과 낭비로, 한편으로는 아내 페르난다가 가져온 폐쇄적이고 금욕적인 통제 위주의 생활 방식으로 가문 몰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1권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독특한 요소는 여기에서 더욱 발전한다. 교통의 발전으로 마꼰도 마을은 외부 자본과 물질문명에 개방하면서 과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혁명이 보수파와 자유파 간 이념의 대립이었다면,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가 참여하고 경험한 갈등은 자본주의 심화에 따른 계급적 성격이다. 정치와 자본이 결탁한 극단적 모습이 바나나 회사 노동자의 파업과 학살 그리고 은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꿈을 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마꼰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장교들은 그렇게들 주장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노조 지도자들을 몰살시킬 수가 있었다. (P.157)
마술적 측면도 한층 두드러진다. 절대적 유혹성을 지닌 양가적 인물인 미녀 레메디오스의 승천은 그녀가 지닌 천진한 순진성이 종교성의 원리와도 상통함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아들들 이마에 그려진 지워지지 않는 재의 십자가는 그것이 죽음의 표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와 함께 나타나는 노랑나비 무리 역시 환상적이다. 하지만 마꼰도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장마와 가뭄이 무엇보다 승천과 함께 더없이 비현실적인 면을 드러낸다. 사 년 십일 개월 이틀 동안 내리는 비와 이후 십 년 동안 다시는 내리지 않는 비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기반을 완전히 거덜 낸다. 그와 가족들을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는 점에서 범상하게 넘길 수 없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근친결혼에서 비롯한 근친상간적 요소는 삘라르 떼르네라의 형제 간 공유, 아마란따의 부적절한 근친상간적 취향처럼 지속되지만 내면에 잠복하고 있다가,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결합과 돼지꼬리 아기의 출산을 통해 결정적으로 표출되고 이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일찍이 부엔디아 부부가 마꼰도 마을을 개척하게 된 계기인 동시에 그토록 막고자 애썼던 파멸이 반인반수의 괴물 출현이라는 예고를 거쳐 거대한 운명의 흐름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한 것은 단지 이모와 자기가 가장 복잡하게 뒤얽힌 핏줄의 미로 속에서 서로를 찾아, 마침내 가문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신화적인 동물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305)
레메디오스의 승천을 제외하면 가문의 식구들은 모두 고독하거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우르술라, 아마란따, 레베까, 페르난다, 메메는 수명의 장단에 차이가 있지만 고독함의 기준에서는 동일하다. 고고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삘라르 떼르네라와 스스로 저택을 떠난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이 차라리 나을 정도다. 대령의 아들들, 호세 아르까디오, 아마란따 우르술라,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 돼지꼬리 아우렐리아노의 죽음은 회한과 비참 그 자체다. 이런 점에서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형제의 죽음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개인과 가문과 마을의 장대한 비극인 이 작품에 작가는 환상적 요소와 함께 희화적 요소를 곳곳에 집어넣음으로써 분위기를 전환하고 무게감을 한층 덜어내고 있다. 세군도 형제의 시신을 술 취한 조객들이 착각하여 다른 무덤에 묻었다는 대목은 희화성과 동시에 쌍둥이 형제가 죽음을 통해 비로소 본성을 되찾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무적의 대식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암꼬끼리’ 별명의 거대한 여자 사이에 벌어진 음식 많이 먹기 대결, 메메가 방학 때 학교에서 수녀와 급우를 떼거리로 데려옴으로써 벌어진 일대 혼란, 여러 면에 걸쳐 단 하나의 문장으로 길게 이어진 남편을 향한 페르난다의 불평 등은 해당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해학미를 삽입하여 심각한 작중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부엔디아 가문의 전통이라고 할 만한 반복적으로 동일한 이름 사용하기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인물 간 성격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호세 아르까디오의 충동적, 외향적 성격과, 아우렐리아노의 이성적, 내향적 성격 대비는 두드러진다. 우르술라의 근친결혼과, 아마란따의 근친상간 성향을 겸비하였다는 점에서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행보는 숙명적이다. 이러한 이름 짓기는 결국 시간과 세대가 지나도 예언된 운명은 흘러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오다가 어느 때에 이르러 발현된다는 운명론적 인식에서 비롯함이다.
그녀[삘라르 떼르네라]에게는, 비록 뚫고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부엔디아 가문 남자의 마음속에는 신비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 가문의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톱니바퀴이며, 그 축이 서서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해서 회전하는 하나의 바퀴라는 사실을 한 세기에 걸친 카드 점과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P.277)
이 장엄한 연대기가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 마을의 일개 차원을 넘어섬은 작가가 문명적, 사회적 이념을 투입하면서 확실해진다. 이들은 작가의 출신국인 콜롬비아,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가리킨다고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고유한 전통과 가치를 지니고 살다가 서양 문명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것이 발전과 번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쇠퇴와 파멸, 독재와 폭력으로 점철되는 사례를 반복하는 슬픈 현실. 그것은 비현실과 환상과 마술의 등장 없이는 도저히 이해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뼈저린 자기 인식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마꼰도는 서양 세계와의 진정한 족외혼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시도에서 번번이 실패하고서 수세기 전부터 지속된 고독 속에 갇힌 채 아직까지도 확실하고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P.323, 작품 해설)
오랫동안 이 작가와 이 작품에 대해 들었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명성이 높은 만큼 과대평가되거나 개인적 기대와 취향에 충족하지 못할 거에 대한 우려라고나 할까. 만시지탄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과 구성, 서사와 표현 기법, 무엇보다 이야기로서의 재미까지 고루 갖춘 작품을 1960년대에 서구가 아닌 라틴아메리카에서 써냈다니 대단하다고 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