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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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1장에서 마지막 20장까지를 다룬다. 등장인물 기준으로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증손인 세군도 형제부터 6대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까지다.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 마을의 발흥과 쇠락을 그린 연대기라는 성격은 끝까지 유효하다. 이제 실질적 주인공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맡는데, 그는 가축의 초자연적 생산성으로 가문에 부귀의 절정을 이끌지만 동시에 자신의 거대한 방탕과 낭비로, 한편으로는 아내 페르난다가 가져온 폐쇄적이고 금욕적인 통제 위주의 생활 방식으로 가문 몰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1권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독특한 요소는 여기에서 더욱 발전한다. 교통의 발전으로 마꼰도 마을은 외부 자본과 물질문명에 개방하면서 과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혁명이 보수파와 자유파 간 이념의 대립이었다면,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가 참여하고 경험한 갈등은 자본주의 심화에 따른 계급적 성격이다. 정치와 자본이 결탁한 극단적 모습이 바나나 회사 노동자의 파업과 학살 그리고 은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꿈을 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마꼰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장교들은 그렇게들 주장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노조 지도자들을 몰살시킬 수가 있었다. (P.157)

 

마술적 측면도 한층 두드러진다. 절대적 유혹성을 지닌 양가적 인물인 미녀 레메디오스의 승천은 그녀가 지닌 천진한 순진성이 종교성의 원리와도 상통함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아들들 이마에 그려진 지워지지 않는 재의 십자가는 그것이 죽음의 표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와 함께 나타나는 노랑나비 무리 역시 환상적이다. 하지만 마꼰도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장마와 가뭄이 무엇보다 승천과 함께 더없이 비현실적인 면을 드러낸다. 사 년 십일 개월 이틀 동안 내리는 비와 이후 십 년 동안 다시는 내리지 않는 비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기반을 완전히 거덜 낸다. 그와 가족들을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는 점에서 범상하게 넘길 수 없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근친결혼에서 비롯한 근친상간적 요소는 삘라르 떼르네라의 형제 간 공유, 아마란따의 부적절한 근친상간적 취향처럼 지속되지만 내면에 잠복하고 있다가,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결합과 돼지꼬리 아기의 출산을 통해 결정적으로 표출되고 이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일찍이 부엔디아 부부가 마꼰도 마을을 개척하게 된 계기인 동시에 그토록 막고자 애썼던 파멸이 반인반수의 괴물 출현이라는 예고를 거쳐 거대한 운명의 흐름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한 것은 단지 이모와 자기가 가장 복잡하게 뒤얽힌 핏줄의 미로 속에서 서로를 찾아, 마침내 가문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신화적인 동물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305)

 

레메디오스의 승천을 제외하면 가문의 식구들은 모두 고독하거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우르술라, 아마란따, 레베까, 페르난다, 메메는 수명의 장단에 차이가 있지만 고독함의 기준에서는 동일하다. 고고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삘라르 떼르네라와 스스로 저택을 떠난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이 차라리 나을 정도다. 대령의 아들들, 호세 아르까디오, 아마란따 우르술라,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 돼지꼬리 아우렐리아노의 죽음은 회한과 비참 그 자체다. 이런 점에서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형제의 죽음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개인과 가문과 마을의 장대한 비극인 이 작품에 작가는 환상적 요소와 함께 희화적 요소를 곳곳에 집어넣음으로써 분위기를 전환하고 무게감을 한층 덜어내고 있다. 세군도 형제의 시신을 술 취한 조객들이 착각하여 다른 무덤에 묻었다는 대목은 희화성과 동시에 쌍둥이 형제가 죽음을 통해 비로소 본성을 되찾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무적의 대식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암꼬끼리별명의 거대한 여자 사이에 벌어진 음식 많이 먹기 대결, 메메가 방학 때 학교에서 수녀와 급우를 떼거리로 데려옴으로써 벌어진 일대 혼란, 여러 면에 걸쳐 단 하나의 문장으로 길게 이어진 남편을 향한 페르난다의 불평 등은 해당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해학미를 삽입하여 심각한 작중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부엔디아 가문의 전통이라고 할 만한 반복적으로 동일한 이름 사용하기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인물 간 성격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호세 아르까디오의 충동적, 외향적 성격과, 아우렐리아노의 이성적, 내향적 성격 대비는 두드러진다. 우르술라의 근친결혼과, 아마란따의 근친상간 성향을 겸비하였다는 점에서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행보는 숙명적이다. 이러한 이름 짓기는 결국 시간과 세대가 지나도 예언된 운명은 흘러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오다가 어느 때에 이르러 발현된다는 운명론적 인식에서 비롯함이다.

 

그녀[삘라르 떼르네라]에게는, 비록 뚫고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부엔디아 가문 남자의 마음속에는 신비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 가문의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톱니바퀴이며, 그 축이 서서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해서 회전하는 하나의 바퀴라는 사실을 한 세기에 걸친 카드 점과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P.277)

 

이 장엄한 연대기가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 마을의 일개 차원을 넘어섬은 작가가 문명적, 사회적 이념을 투입하면서 확실해진다. 이들은 작가의 출신국인 콜롬비아,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가리킨다고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고유한 전통과 가치를 지니고 살다가 서양 문명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것이 발전과 번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쇠퇴와 파멸, 독재와 폭력으로 점철되는 사례를 반복하는 슬픈 현실. 그것은 비현실과 환상과 마술의 등장 없이는 도저히 이해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뼈저린 자기 인식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마꼰도는 서양 세계와의 진정한 족외혼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시도에서 번번이 실패하고서 수세기 전부터 지속된 고독 속에 갇힌 채 아직까지도 확실하고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P.323, 작품 해설)

 

오랫동안 이 작가와 이 작품에 대해 들었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명성이 높은 만큼 과대평가되거나 개인적 기대와 취향에 충족하지 못할 거에 대한 우려라고나 할까. 만시지탄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과 구성, 서사와 표현 기법, 무엇보다 이야기로서의 재미까지 고루 갖춘 작품을 1960년대에 서구가 아닌 라틴아메리카에서 써냈다니 대단하다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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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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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가 마꼰도를 개척하고 가문을 일구어내고 자손에 이르는 일종의 연대기다. 20장 중 1권은 1장에서 10장을 다룬다. 인물로 보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서 증손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까지 차례차례 나타난다. 삼백 면에 못 미치는 분량에 4대를 다루고 있으므로 진행 속도가 제법 빠르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호세 아르까디오는 부엔디아 본인, 첫째 아들, 증손자까지 계속 사용하며, 중간에 단명한 손자 이름도 아르까디오를 쓴다. ‘아우렐리아노도 마찬가지다. 둘째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와 그의 많은 아들들, 증손에도 아우렐리아노가 있다. 여자 인물의 이름에는 우르술라, 레메디오스, 아마란따를 붙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 가끔씩 가계도를 들여다봐야 헷갈리지 않는다. 작가는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이름 간에 뚜렷한 성격 차이를 부여한다. 전자는 감각적이며 충동적이고, 후자는 내성적이며 강한 의지력을 소유한다. 둘 다 고독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은 공통이다.

 

우르술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똑같은 이름들을 집요하게 되풀이해 씀으로써 확실해 보이는 결론들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P.269)

 

그들이 보존했던 유일한 공통점은 그 집안 식구들이 지닌 고독한 기질이었다. (P.271)

 

작가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유명하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연대기이므로 사실주의에 기반하여 전개하고 있다. 이따금씩 판타지적 요소가 아무렇지 않은 듯 개입하는데, 이것이 마술적 측면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야 워낙 환상 문학 계열이 득세하고 있으므로 별거 아니게 보이지만, 이 소설이 발표된 1960년대라면 수용성의 관점에서 전혀 다를 수 있겠다 싶다. 니까노르 레이나 신부의 공중 부양,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죽음에 맞춰 호우처럼 내리는 꽃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소유 가축의 초자연적인 생산성 등등.

 

너무나 많은 꽃들이 하늘에서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이 되자 거리가 폭신폭신한 요를 깔아 놓은 것처럼 되어버려서 장례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삽과 갈퀴로 치워야 했다. (P.212)

 

한국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윤리적 기준에서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근친 간 결혼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우리네는 그러하지 않으므로. 가문의 창시자 부엔디아 부부는 사촌간이다. 근친결혼은 돼지꼬리 자손을 낳는다는 미신을 무릅쓰고 그들은 결혼한다. 호세 아르까디오가 여동생과도 같은 레베까와 결합하는 건 그렇다 치자. 아우렐리아노 호세와 고모 아마란따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을 뻔한다. 호세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형제는 삘라르 떼르네라를 정부(情婦)로 공유하여 각자 아들을 둔다. 1부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드러나지 않지만, 가계도를 보면 2부에는 분명히 중대한 문제로 불거지는 게 보인다.

 

남성 인물이 온갖 사고와 방탕, 모험을 무릅쓰면서 끊임없이 부엔디아 가문을 몰락시킬 위험에 노출시키는 가운데 가문을 지탱하는 역할을 우르술라와 딸 아마란따가 도맡고 있다. 어찌 보면 소설 속 실질적 주인공은 그네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우르술라는 고손주까지 태어날 때까지도 장수하며 가문을 발전시키고 저택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기독교적 신념은 미약하지만 인륜을 존중하고 상식에 근거하여 삶과 가문을 꾸려나가는 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아마란따는 어머니와 전혀 다르다. 레베까와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결혼을 깨기 위해 집요하게 애썼는데, 정작 끄레스삐가 본인에게 빠져들자 그와의 결혼을 단호하게 거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훗날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과 사랑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결혼을 거부한다. 실수지만 레메디오스를 죽게끔 하고, 조카와 부적절한 행각을 벌이는 등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크지만 어쨌든 독신으로 살면서 가문을 지킨다.

 

정치와 혁명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중남미의 정치적 혼란은 이 작품에도 깊숙이 반영되어 있는데, 자유파와 보수파 간 이념 다툼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지칠 줄 모르는 군사 봉기가 그러하다. 번영하던 마꼰도 마을은 전세의 상황에 따라 자유파와 보수파가 교차로 지배한다. 잔혹한 통치자의 면모를 보이다가 총살당한 아르까디오와, 부엔디아 가문과 우호적이며 관용적 통치를 하지만 결국 친구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총살형을 당하는 몬까다 장군이 이념의 헛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작중에서 비중이 크고 가문의 실제적 리더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혁명군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비윤리적 처사와 권력욕에 빠질뻔한 위험, 수십 번의 봉기와 갑작스러운 타협 등은 개인의 성격뿐만 아니라 전쟁의 무의미함과 중남미 정치적 해법이 녹록지 않음을 나타내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은 결국 전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는 실제적인 행동이었고, 젊음의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었던 전쟁이 이제는 막연한 개념, 다시 말하면, 공허한 그 무엇으로 변모되어 버렸던 것이다. (P.242)

 

마지막으로 집시 멜키아데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벗의 관계인 그는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아와 문명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마법사, 연금술사와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그와 부엔디아 저택에 자리잡은 그의 작업실은 이 작품에서 가장 마술적 요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부엔디아 가문의 미래에 관한 예언은 작품 전체와 결말에 이르는 여정을 상징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멜키아데스]는 마꼰도의 미래에 관한 예언 하나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꼰도가 부엔디아 가문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유리로 지은 거대한 집들로 이루어진 번쩍거리는 도시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P.87)

 

작가 마르께스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에서 비롯하여 후대 자손에까지 소설의 전개는 물 흐르듯 막힌 곳이 없다. 부엔디아 가문의 세대 간 흐름이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각 세대와 인물의 상세한 특성과 두드러진 사건을 빼놓지 않고 기술함으로써 종횡으로 풍성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안으로는 인물의 심리와 내면에서 밖으로는 군사혁명과 정세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스케일도 크다. 무엇보다 난해하고 개인적인 심리 묘사를 지양하고 이야기의 흐름 자체를 중시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2권에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1권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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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 - 양자 역학부터 양자 컴퓨터 까지 처음 만나는 세계 시리즈 1
채은미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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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1930년대 양자 역학 개념과 이론이 본격적으로 정립된 이래 여러 논란과 도전이 잇달았다. 20세기 후반부터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를 입증하는 실험이 가능해짐에 따라 지금은 대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 국가 간, 기관 간 양자 컴퓨팅 경쟁이 치열하다. 컴퓨터는 알겠지만 양자가 붙은 컴퓨팅은 무엇이 다른지 그토록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는지, 기존의 슈퍼컴퓨터와는 다른 것인지 궁금과 의문을 품었다.

 

이 책은 바로 독자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획의 결과다. 전반부 1부는 양자 역학을, 후반부 2부는 양자컴퓨터를 각각 다루고 있다. 후기를 보면 평가가 엇갈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표제로 인한 혼동으로 생각된다. 표제만 보면 초심자를 위한 양자 역학 소개서 내지 입문서로 기대하였는데, 다루는 내용의 깊이와 방향이 기대와는 다를 수 있어서다. 물론 부제에서는 언급하였지만, 차라리 표제에 양자 컴퓨터까지 추가하였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개인적 생각이다.

 

1부는 양자 역학의 개념과 발전사를 소개하는데, 제한된 분량에 최대한 담으려고 애쓰다 보니 상세한 풀이와 설명보다는 약간 요약형에 가깝다. 혹자는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개인적으로는 흥미진진하게 탐독할 수 있었다. 파동-입자 이중성과 불확정성 원리 같은.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은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양자 역학의 핵심 개념이며, 양자 컴퓨터의 기본 원리에 해당한다.

 

고전 역학은 거시 세계에, 양자 역학은 미시 세계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는데, 저자는 미시와 거시 세계 모두 양자 역학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점이 신선하였다. 양자 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반론이 실험을 통해 오히려 양자 역학의 결정적 승리로 확인되었다는 점은 최신 과학적 결과의 산물일 것이다. LED, 레이저, GPS 등 양자 역학의 기술을 활용한 제품의 예시는 현대사회가 양자역학과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게 한다.

 

2부가 이 책의 핵심이다. 1부는 2부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에 해당한다. 도대체 양자 컴퓨터가 왜 이렇게 이슈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컴퓨터의 비트 개념이 양자 컴퓨터의 큐비트이며, 큐비트의 개수가 많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력한 연산 능력을 가지는데, 그것이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의 속성 때문이라는 점 등.

 

얽힘과 중첩이라는 양자 역학의 특성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 컴퓨터는 고전 컴퓨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연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P.120)

 

슈퍼컴으로 수백 년에서 수만 년 걸릴 계산을 수 시간 내 처리할 수 있다면 강력한 능력을 바탕으로 기존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기술적 도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 차원을 넘어, 산업과 사회 전반, 나아가 국가와 문명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될 수 있기에 그토록 맹렬한 선점 질주에 나서는 것이다.

 

이후부터는 양자컴퓨터의 다소간 기술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굳이 입문서에 이 정도까지 필요할까 싶지만 최신 과학기술 동향을 따라잡으려면 알아서 나쁠 것은 없으리라. 먼저 범용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대표적인 3가지 방식인 회로 기반, 단열, 측정 기반 양자 컴퓨팅을 순차적으로 소개하며, 이의 원리와 한계도 함께 언급한다. 이어 특수 목적 양자 컴퓨터도 차례로 다룬다. 양자 컴퓨터는 태생적으로 다양한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기에 오류 보정 기술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워낙 막대한 연산 결과를 내보이기에 사소한 오류조차도 결과값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여러 양자 오류 정정 기술이 개발되는 까닭도 오류 최소화 중요성에 대한 증거라고 하겠다.

 

오늘날 실제 양자컴퓨터는 어떤 유형이 있을까? 초전도 큐비트 양자 컴퓨터, 중성 원자 양자 컴퓨터, 이온 트랩 양자 컴퓨터가 현재 각각의 장점과 한계를 지니면서 경쟁하고 있지만, 초전도 큐비트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한다. 차세대 도전자로 반도체 양자점, 위상 큐비트, 분자 큐비트 양자 컴퓨터도 충실히 소개한다.

 

독자가 이러한 세부적인 기술과 경향을 모두 숙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춘추전국시대처럼 난무하는 여러 방식과 기술은 차츰 정리되게 마련이다. 컴퓨터의 기술적 지식이 없어도 잘 사용할 수 있듯이 우리는 좋은 사용자 역할에 필요한 지식만 갖추면 된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류 문명이 대전환을 맞이하였듯이, 양자 컴퓨터의 본격화는 못지않은 대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문명은 철저하게 정보통신 과학기술 기반이다. 근래 들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잇달아 발생하는데, 디지털 서비스의 핵심은 보안이다. 양자 컴퓨터는 기존의 보안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에 보안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양자 컴퓨터는 자연계의 복잡한 현상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디지털 실험실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험실의 문은 과학자뿐 아니라 인류 모두가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열려 있겠지요. (P.253)

 

과학자답게 양자 컴퓨터의 미래를 기술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애석하게도 평범한 독자인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4차 산업혁명, 로봇, AI의 출현과 급격한 발전으로 유용성과 편의성의 증대 못지않게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모든 과학기술은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양자 컴퓨터의 발전은 다양한 분야와 층위에서 분명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다만 혁신의 결과인 새로운 미래가 밝을지 어두울지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은 여전하다.

 

양자 역학의 최신 학문적 성과와 양자 컴퓨팅의 발전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에 좋은 책이다. 워낙 난해한 개념을 평이하게 서술하려다 보니 표와 도판에도 불구하고 쉽지만은 않지만 저자의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1부의 비중을 키워서 더 충실한 설명을 추가할 수 있었다면 입문자가 접근하기 한층 쉬웠을 텐데 하는 한 가닥 아쉬움을 제외하면, 무엇보다 양자 컴퓨터의 다양한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서 유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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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2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35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이림니키 그림 / 현대문화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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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으면서 몇 개 장이 누락된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이 어렵고 방대한 작품을 번역하면서 일부를 실수로 빼먹지는 않았을 텐데. 의아해하던 찰나에 2권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글을 통해 비로소 연유를 알게 되었다.

 

글에 따르면 번역 저본 자체가 원본의 80%에 해당하는 갈리마르 축소판이라고 한다. 완전판을 구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절판되었고, 프랑스 현지에서도 축소판만 유통된다고. 무슨 까닭이 있으니 출판사에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완역본이 아니라고 번역자와 출판사를 탓할 수는 없다. 범우판 염기용 번역본이 1968년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하니 완역본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나온 페리버튼판 김지현 번역본도 완역본 같은데 확인할 수 없다.

 

2권은 112장에서 219장까지를 담고 있다. 내용은 새롭다기보다 1권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생각을 담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주요 소설을 보면 임무 수행을 위해 목숨을 무릅쓰는 용기와 희생에 대한 찬사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일컬어 행동주의라고 일컫는 까닭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을 중시하고 목숨을 아까워한다. 그럼에도 대의를 위해 나약함을 버리고 한발 한발 위험을 향해 나갈 때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앞에서 반복하였듯 사회와 국가의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삶의 참다운 목적이 이루어진다. 그런 관점에서만 개인의 희생은 역설적이지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삶과 죽음, 희생에 대한 논의가 이것이다.

 

나는 희생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희생이란 그대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가는 게 아니다. 반대로 그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희생이다. (P.7, 112)

 

따라서 죽음의 위험을 받아들인다는 건 곧 삶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위험을 사랑한다는 건 곧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P.213, 190)

 

현상과 이성, 사물과 표면만을 의식하고 중시하는 눈에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매듭이 보이지 않는다. 화자가 작중에서 논리학자, 역사학자, 비평가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사시 예언자의 강변을 단호히 거부하며, 진정한 기하학자와 정원사의 대화를 길게 소개하며 찬탄하는 까닭이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다. 그들을 완벽한 이성의 잣대로 재단하면 벗어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애정과 사랑으로 보듬어 영원한 가치를 향해 열의를 갖고 자라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 인간 개체를 하나의 씨앗으로 비유할 때, 씨앗 한 알은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싹트고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씨앗을 키워내는 것은 결국 사랑이 아니겠는가.

 

먼저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 개별 요소들이 전체를 이루고 있고 이들이 어떻게 조합을 이루는지 생각해 볼 겁니다. (P.274, 206)

 

중요한 건 오직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그러나 그 개별 요소가 모여 전체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덫으로써 제가 잡아들이고자하는 목표물, 즉 사람 그리고 다름 아닌 사람의 자질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P.314, 213)

 

화자는 베르베르의 왕이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을 외면과 내면이 조화를 갖추어 신에 이르는 영원의 도상에 오르기를 갈구한다. 참다운 지도자란 이처럼 백성을 무력으로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하여 일개인의 탐욕을 충족하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화자의 부왕과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수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여기에 기쁨과 의의를 찾는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제국의 매듭이요, 그대에게 기도 한 편을 지어주었느니, 사물에 대한 취향에 있어 나는 종석(宗石)이 되는 존재요, 그대를 엮어주는 존재다. (P.39, 126)

 

사람을 고귀한 사랑과 가치 있는 지식과 열렬한 기쁨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존재로 만들고 싶은 나 (P.82, 142)

 

제법 긴 마지막 219장을 마무리하면서 새삼 <성채>야말로 생텍쥐페리의 필생의 대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소설을 통해 보여준 여러 사고를 잠언, 우화, 에세이, 철학의 형태로 여기서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을 확연히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여타 작품도 그러하지만 특히나 이 작품은 한번 읽었다고 해서 제대로 음미하였다는 만족감은 섣부르다. 매 장마다 풍부한 논의와 비유, 함의를 담고 있어 반복 독서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완역본에 대한 궁금증과 이 책 번역의 온전성에 대한 비교를 다시금 해소하고 싶다는.

 

마지막으로 2권의 편집 오류를 언급한다. 126장이 124장과 125장보다 선행하며, 서로 다른 내용의 128장이 두 개다. 따라서 이후 장 번호의 정확성을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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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1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34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이림니키 그림 / 현대문화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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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생텍쥐페리의 이 책을 읽다가 중도에 덮고 <내 마음의 성채>라는 편역본을 읽었다. 그래도 원본에 미련이 남아 다시금 도전한다. 원전은 총 21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은 1장에서 108장까지 수록하고 있다. 대체로 순서를 따르지만 중간에 몇몇 빠진 장이 보인다.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다.

 

이 작품을 여전히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크게 봐서 우화와 잠언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별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작중 화자는 베르베르의 왕으로 아버지에게서 나라를 이어받아 백성을 다스리고 있다. 내용은 화자의 생각, 기도, 왕국 내 인물들과의 대화 등으로 전개된다. 외적으로는 국왕으로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통치 철학을 표방한다. 내적으로는 왕국 백성들이 절대자에게 이를 수 있도록 올바른 내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종교철학에 가깝다.

 

편역서를 읽은 덕택인지 이전보다는 독서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번에도 독서에 실패하면 완전히 덮을 생각마저 품고 있었는데. 거칠게 말하면 작가 또는 화자가 주장하는 바는 단순하다. 사람은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조직과 사회의 고차원적 목적을 위해 열정을 품고 헌신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이 삶의 진정한 목적이고 신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며, 영혼을 고양하는 방안이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우리는 삶이란 게 서서히 자신을 헌신하여 무언가를 얻어내는 교감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P.39, 5)

 

만일 돌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사원 또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각각의 돌이 제자리에서 사원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 비로소 돌들이 만들어낸 침묵이 의미를 갖게 되며, 그곳에서 기도가 이뤄지는 법이다. (P.111, 15)

 

받음으로써 살아가지 말고 내어줌으로써 살아가라. 그것만이 그대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주는 것을 가볍게 여기란 소리가 아니다. 네 스스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P.221, 60)

 

한 편의 논설 또는 논문이라면, 서론과 본론, 결론의 형태로 화자의 주장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겠지만, 화자는 그렇지 않다.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수레바퀴가 돌 듯이 반복한다. 언뜻 무척 지겹고 재미없을 것 같지만, 표현과 대상, 형식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되풀이하기에 오히려 화자의 메시지를 한층 강화하는 효과를 얻는다. 화자는 자신의 주장을 공고히 하는 예시로 사원과 배를 자주 언급한다. 화자가 전체를 중시한다고 해서 전체주의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통일을 이룬다는 건 개별적 다양성을 엮어주는 것이지 부질없는 질서 하나를 세워보겠다고 각각의 다양성을 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P.295, 88)

 

내가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걸 엮어주는 신의 매듭이 되는 전체와 소통하고 내 앞에 들이닥친 벽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P.338, 108)

 

<성채>는 생텍쥐페리의 완결작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의 원고를 출판사가 취합하고 편집하여 내놓은 작품이다. 현재의 <성채> 구성과 내용이 저자의 애초 의도와 부합한다고 확언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방대한 분량도 저자 자신이 직접 정리하였다면 빼거나 줄이고 합치는 과정을 통해서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면서 각 장의 내용을 무리하게 연계시키려고 하기보다 자체로서 완결성을 지닌 짧은 에세이로 읽어 나가면 오히려 이해에 낫다는 생각이다. 짧고 간단한 장도 있지만 제법 깊숙한 사상을 다루면서 나름 서사를 갖춘 긴 장도 있다. 모든 장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다. 몇 개의 장을 삭제한 까닭도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지에 굳건하게 서 있는 튼튼한 성채처럼, 인간의 현실적 삶이 확고한 안전과 번영을 누리는 동시에 내면도 온갖 유혹과 위협에 흔들리지 말고 이상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 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면서 생텍쥐페리가 보고 듣고 겪었던 일체는 인간성에 반하는 것이었다. 무너진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어느 이념과 가치를 따라야 순수한 본성으로 회귀하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사유가 깃들어 있다.

 

큰 맥락에서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적지만, 군데군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단락 또는 문장도 나타난다. 이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원전 자체의 난삽함인지 섣불리 판단하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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