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평사리 클래식 2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평사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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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를 포함한 풍자문학의 대가 스위프트가 만년에 수년에 걸쳐 쓴 글이다. 최종적으로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가난했던 작가는 먼 친척뻘인 귀족의 집에서 식객 겸 비서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눈칫밥 먹는 처지에서 목격했던 하인들의 행태, 훗날 그가 고용했던 하인들의 경험에서 이런 예리한 탐구가 가능했을 것이다.

 

글은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과 개별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들로 구성되었는데, 우선 18세기 하인들의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놀랐다. 집사, 요리사, 정복 착용 하인, 마차꾼, 말구종, 재산관리 집사, 문지기, 침실 담당 하녀, 몸종 하녀, 청소 담당 하녀, 버터 제조 담당 하녀, 보모, 유모, 세탁부, 하녀장, 여자 가정교사. 모든 귀족계층이나 중산층이 이들을 다 고용하지는 못하였을 테고, 부의 수준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만을 채용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당대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지닌 작가이니만치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인 안내가 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대단히 해학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으로 시종일관하는 그의 지침은 한마디로 최대한 주인의 등골을 빼먹고 철저히 이기적으로 되라는 것이다.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의 몇 대목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땐 뻔뻔하게 적반하장으로 나가라. 그리고 마치 피해자인 양 행동하라. (P.9)

 

당신에게 특별히 할당된 고유 업무 외에는 그 어떤 업무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마라. (P.14)

 

이상하지 않은가? 현대 우리네들의 조언과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목소리 큰 게 임자라며, 자기 잘못을 무조건 부인하는 풍조와 유사하다. 내 업무와 타인의 업무는 칼같이 구분하여 절대로 맡고자 하지 않는 게 요즘 세태가 아닌가. 이처럼 18세기라는 시간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은 여전하다는 것을 이 글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인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이기적인 하인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현명하지 못한 주인이다. 고용주로서 피고용인인 하인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홀대하며, 그들이 눈치를 보며 행동을 정할 수 있도록 모범적인 언행을 갖추지 못한 주인들. 결국 하인은 주인의 눈에 들도록 애쓰기 마련이기에 사소한 말,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이에 따라 반응한다.

 

상전의 본을 따라 누구보다도 이런 자들은 더 홀대하는 것이 당신 같은 집사나 식탁 서비스를 담당하는 정복 착용 하인의 임무다. (P.34, 집사)

 

마님께서 도박을 좋아하신다면 당신의 행운은 영원히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절한 도박은 당신에게 일주일에 10실링 정도의 부수입을 가져다 줄 테니까. 그런 집이라면 나는 가정목사나 재산관리인이 되는 것보다도 오히려 집사가 되는 편을 택하겠다. (P.53, 집사)

 

몸종 하녀 편에 이르러서는 주인의 성적 유혹을 조심하고 사리를 잘 살펴서 선택적으로 대응하라고 조언한다. 당시 하녀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사례가 빈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마님의 연애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유독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지침은 하인들 간의 단결과 협력이다. 외란 중에는 내홍은 덮어두는 것처럼, 공공의 적인 주인으로부터 이익을 최대한 쟁취하고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단합하라는 의미다.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당신들끼리는 서로 싸워도 된다. 내 말은, 당신들에게는 공공의 적인 주인님과 마님이 있으며 공통으로 수호해야 할 공공의 목적이 있다는 걸 명심하란 소리다. (P.20,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

 

모두의 공익을 위하여 그 내용을 엿들어라. 그리고 모든 하인들이 일치단결하여, 하인 사회를 해칠 수 있는 개혁조치들을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들을 취하라. (P.100, 정복 착용 하인)

 

이 작품은 여러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표제 그대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인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처신 요령의 집대성이라는. 역으로 주인들에게 주는 지침으로 볼 수 있다. 하인들의 다양하고 불합리한 행동의 현상과 원인을 간파하여 이들을 적절히 부리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이 글을 실용적인 지침서로 보지 않을 수 있다. 스위프트가 젊은 시절이 아닌 최만년에 이르러 쓴 글에서 굳이 실용성을 염두에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그의 여타 작품처럼 이 또한 인간과 사회를 향한 우스꽝스러운 풍자가 본령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보면 18세기의 당대와 21세기의 현대에도 근본적인 인간 본성은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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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노벨라33 세계 중편소설 전집 2
메리 셸리 지음, 정미현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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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가 이 작품을 집필한 해는 1820년이고, 아버지 고드윈에게 보낸 건 1821년이니 그의 나이 23, 24세 무렵이다. 아버지는 출간을 거부했고, 백 년 넘게 묻혀 있다가 1959년이 되어서야 출간이 이루어졌다.

 

마틸다가 남긴 수기 형식으로 작성된 작품의 서사는 외형상 단순하다.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마틸다의 아버지는 출산 직후 사망한 아내를 못 잊어 가출한다. 마틸다는 외톨이가 되어 냉담한 고모와 시골에서 16세가 될 때까지 고독하고 적막하게 자란다. 다시 돌아온 아버지와 재회의 기쁨을 한껏 누리는 마틸다, 딸에게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고 솟구치는 감정에 번민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달라진 태도에 원인을 알고자 다그치는 마틸다와 그가 듣게 된 진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아버지의 가출과 이어진 자살. 이중의 정신적 충격으로 오지에서 홀로 은둔의 삶을 꾸려가다 결국 병으로 죽게 되는 마틸다.

 

메리는 무슨 까닭으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작중에서 마틸다의 아버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마틸다 또한 사회적, 윤리적 금기를 저촉한 게 두려워 고립을 선택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친구 우드빌의 따스한 조언도 그녀를 절망에서 끌어내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하였다. 당시 잉글랜드의 사회 윤리적 기준으로서는 그들의 죽음은 불가피하고 정당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메리가 단지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사랑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위해 이 작품을, 그것도 자신의 처지와 흡사한 배경의,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험을 무릅쓴다면, 혹시 메리와 고드윈 사이의 감정이, 마틸다와 그의 아버지와 동일 선상에 놓여있는 게 아니었을까. 다만 전자는 후자와 달리 이성적 틀을 허물지 않고 마틸다의 아버지가 원하였듯이 시간이 해결해 준 지나간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작품 외면과 내면의 이야기는 전혀 상반된다.

 

그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고 단조롭던 모습에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한 눈부신 풍경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느끼는 행복은 내가 장담했던 기대치보다 훨씬 컸다. (P.32)

 

딸이 아버지에게 끌리는 감정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할 때, 대개의 아버지는 딸에게서 제2의 아내를 찾고자 한다. 너무나 사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죽었고, 훗날 거의 성인에 다다른 딸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때 격렬한 감수성을 지닌 마틸다의 아버지는 딸을 이성으로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성을 통해 거부하려는 내적인 고뇌와 번민과 투쟁이 벌어진다. 마틸다는 아버지와 재회하기 전에는 철저한 고독자의 처지였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랑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수 있는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깊이와 강도는 독자가 섣불리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교육받고 똑똑한 마틸다지만, 자신의 추궁으로 아버지를 상실하자 죄책감과 한편으로는 되돌릴 길 없는 그리움에 자신을 가두고 만다.

 

내 심장은 죽음의 상처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었다. 겉보기로는 평온한 가운데에도 절망과 우울이 찾아올 때가 많았다. 무엇으로도 쫓아버리거나 극복할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웠다. 삶이 혐오스러웠다. 아름다운 것에 무심해졌다. (P.107)

 

마틸다는 끝내 죽음을 소망하는 단계에 이른다. 우드빌의 부드러운 위로와 친절한 격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음에서 오히려 기쁨과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이미 죽은 아버지와 저승에서 재회하여 못다 한 사랑을 완성하려는 바람이 아니겠는가. 마틸다의 글 속에서 죽은 어머니와 만나고 싶다는 문장은 찾을 수 없다.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세상 전부였던 것이다.

 

수의가 나의 웨딩드레스 아니겠는가. 그것만이 아버지와 내가 영원히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될 때 우리를 결합시켜줄 것이다. (P.160)

 

이 중편소설을 읽고 나면 고드윈이 출간을 거부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마틸다와 작가 메리는 너무나 비슷하다. 작중 화자인 마틸다처럼 작가 메리도 탄생 직후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리고 아버지 슬하에서 홀로 자랐다. 게다가 소설은 아버지가 딸을 사랑한다는 비도덕적인 근친상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자는 소설에서 작가의 삶을 비교하고 유추하기 마련이다. 고드윈으로서는 그런 불쾌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마틸다의 짙은 회한과 상념 속에 드리워진 어둡고 고통스러움이 독서를 어렵게 한다.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한 번에 쭉쭉 읽어 나가지 못하고 조금 읽다가 책장을 덮고 한참 후에 다시금 책을 펴 들기를 반복하였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여성작가가 <프랑켄슈타인>과 더불어 이러한 소설을 썼다는 게 자못 대단함과 동시에 어쩌면 그 나이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지극히 도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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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명 : 알폰스 무하 : 빛과 꿈

기간 : 2025.11.8-2026.3.4

장소 : 더현대 서울 ALT.1


관람일자 : 2026년 1월 23일(금)


* 관람평

충동적으로 관람한 전시다. 알폰스 무하를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체코의 국보 11점을 포함하여 총 143점을 선보인다고 한다. 상업 포스터와 상품 디자인 등을 예술적으로 발전시켜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높은 장벽을 세우지 않고 더불어 호흡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훌륭하다. <지스몽다>에서 시작하여 <사계>, <꽃>, <예술> 시리즈가 흥미로운 가운데 <백합의 성모>가 가슴 속을 휘젓는다. <슬라비아>를 비롯한 몇 편의 민속적 작품은 <슬라브 서사시> 연작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유발한다. 언젠가 프라하에 가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촛불을 응시하는 여성>과 <희망의 빛>은 예언적이다.

이번 전시는 사진촬영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인파로 북적거리지 않아 여유롭게 찬찬히 작품과 설명을 관람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알폰스 무하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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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jongpac.or.kr/portal/performance/performance/performTicket.do?menuNo=200558&performIdx=36656#none



전시회명 :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기간 : 2025.11.5. - 2026.2.22.

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관람일자 : 2025년 12월 26일(금)


* 세줄평

100주년을 맞이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국내 최초 전시회다. 안내에 따르면 60명의 거장과 65점의 걸작이 소개된다고 한다. 공연명과 같이 르네상스 시기에서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그나마 이름이라도 아는 화가는 엘 그레코, 루벤스, 고야, 쿠르베, 로트렉, 드가, 모네, 로랑생, 모딜리아니 등이 전부다. 

개인사로 마음이 심란한 가운데 기록도, 촬영도 하지 않았기에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이 인물묘사의 특이함으로 인상을 남겼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희생양 그림은 음반 표지에서 봤기에 반갑고 신가하였다. 벨로토의 베네치아 풍경, 모딜리아니와 로랑생 작품도 흥미롭게 보았다. 전시회의 표지그림으로 사용된 호아킨 소로야와 부그로의 그림은 그림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수년 만의 미술전 관람인데 앞으로도 종종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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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187회 아트엠콘서트 - 문태국 첼로 리사이틀

일시 : 2026년 2월 12일(목) 19:30

장소 : 신영체임버홀

연주 : 문태국 (첼로), 박영성 (피아노)

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프로그램

  - 프로코피에프, 첼로 소나타 C장조 Op.119

  - 카발레프스키, 첼로 소나타 B-flat장조 Op.71


* 세줄평

오늘의 연주곡목은 모두 한번이라도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 모두 마이너곡이라고 하겠지만, 막상 연주를 듣고난 소회는 오히려 메이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유난히 묵직한 첼로의 사운드로 깊은 정감과 짙은 비감을 흘뿌리니 연주자의 말대로 아직 현실은 물론 인생의 겨울이 지나지 않았음을 새삼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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