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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서점 북두당
우쓰기 겐타로 지음, 이유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5년 8월
평점 :
'전생에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살았던 검은 고양이가 이번 생에는 북두당의 책방지기로 환생했다'는 책 띠지의 문구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환생 판타지의 설정을 뛰어넘어 고양이라는 독창적인 시선을 통해 문학, 생명, 창작, 기억의 본질을 탐구하며 환상적 설정 속에 철학적 사유를 정교하게 녹여내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했던 이름 없는 고양이의 환생체인 쿠로가 있다는 것도 꽤 인상적이다. 에도 시대 대기근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덟 번의 생을 살아온 쿠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회의와 상처를 품은 채, 어느 날 신비한 고서점 북두당에 이끌리듯 도착하게 된다. 북두당은 단순한 고서점이 아닌 책을 사면 저절로 재고가 채워지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점주 에리카의 일상, 그리고 주술적 기운이 얽힌 비범한 공간이다. 쿠로는 이곳에서 작가를 꿈꾸는 열 살 소녀 마도카를 만나고 그녀의 순수한 글쓰기에서 과거의 주인 소세키를 떠올리게 된다. 이를 계기로 쿠로는 ‘이야기란 무엇인가’, ‘존재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와 같은 질문을 품고 스스로의 삶과 기억을 되짚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 책은 고양이 환생이라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존재의 의미, 창작의 고통과 구원, 생명과 언어의 관계처럼 무게감 있는 주제들을 정제된 언어와 따뜻한 서술로 풀어내었다. 판타지라는 단순한 장르적 재미를 넘어 문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의 이야기는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고양이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했던 세 번째 생은 고양이 쿠로에게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절이었지만 끝내 진명, 고양이에게 있어 존재의 격을 뜻하는 이름을 얻지 못한 채 끝나버린 기억이기도 하다. 쿠로는 여덟 번의 생을 거치며 인간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키워왔고, 마지막 아홉 번째 생에서는 다시 태어난 가족조차 경계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결국 떠날 존재이며, 그 호의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처럼 한 고양이의 냉소적이고 철학적인 시선으로 삶과 이름, 존재의 의미를 되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 내리는 어느 날, 북두당 앞에서 몸을 웅크린 쿠로는 낯선 여자를 목격한다.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날에도 그녀는 물그릇을 채우고, “언제든지 와도 돼”라는 말을 조용히 남긴다. 그 순간 쿠로는 자신을 향한 친절과 기다림이 담긴 그 말에 흔들리고 만다. 이후 쿠로는 북두당을 몰래 관찰하며 점점 더 많은 의문을 품게 된다. 책은 팔리는데도 재고가 줄지 않고, 고양이들은 마치 여자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반응한다. 그녀는 단순한 서점 주인이 아닌 것만 같다. 고양이들과 책, 그리고 이야기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그녀, 에리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처럼 북두당은 쿠로의 마음에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스며드는 신비로운 장소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다시는 인간과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쿠로조차 이곳에서 다시 한번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쿠로는 처음엔 북두당을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점주 에리카의 꾸밈없는 배려와 고양이들과의 조화로운 일상을 지켜보며, 경계심은 서서히 누그러진다. 그렇게 쿠로는 북두당의 다섯 번째 고양이로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작가를 꿈꾸는 열 살 소녀 마도카를 만나게 된다. 서점의 손님이었던 마도카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직 서툴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쿠로의 전생 중 하나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이 이야기 전체의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서사로 꽤 인상적이면서 매력적인 이 책의 설정이다. 이는 바로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로 살아갔던 세 번째 생이다. 이름 없이 곁에 머물렀지만, 쿠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탄생하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한 존재였고, 자신이 그 소설의 실제 모델이라는 자의식을 품고 있다. 무심하고 냉소적인 듯 보였던 소세키가 창작이라는 행위를 통해 서서히 변화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쿠로는 처음으로 이야기라는 것의 힘과 온기를 경험한다. 정작 자신의 이름은 끝내 부여받지 못했지만 쿠로에게 그 시간은 여덟 번의 삶 중 가장 온전하고 명확한 기억으로 남는다. 과연 이번 생에서 쿠로는 자신만의 이름을 곧 ‘진명’을 얻고 서사 속 자리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에리카는 어떤 서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까? 이 책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책은 단순한 고양이의 환생 판타지를 넘어 삶과 죽음, 기억과 회복, 문학과 존재를 입체적으로 직조해내고 있다. 주인공 쿠로가 거듭된 환생을 통해 자아의 실체를 되묻고 북두당이라는 신비한 공간 안에서 책과 인간, 고양이 사이의 관계를 다시 짚어나가는 과정은 이야기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이 작품은 고양이를 사랑한 문학인들인 나쓰메 소세키, 이나가키 타루호, 이케나미 쇼타로 등이 등장하여 창작이라는 고독한 행위와 그 속의 감정들을 정교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들의 문학적 유산은 쿠로의 기억과 교차하며 이 이야기를 더욱 깊은 울림으로 이끈다.
이야기는 결국 쿠로가 생과 사, 시간과 감정의 경계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정체’와 맞닥뜨리며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간다. 이야기의 전개는 점차 더욱 확장되며, 현실과 환상을 부드럽게 넘나든다. 이 소설의 진가는 그것이 단순히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야기를 쓰는 존재와 그 곁을 지키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한 헌정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문학을 쓰는 이유, 삶을 견디는 힘, 그리고 말없이 곁에 머물러주는 이들에 대한 고요한 찬사말이다. 그렇기에 문학과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