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마이페이퍼 당선작

자신을 감추지 말라. 자신을 드러내라 - cyrus
대구 독서 모임<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2월의 세계 문학차학경 《딕테》김경년 옮김, 현대문학 (2024년) 2025년 2월 28일 금요일, 저녁 8시~10시 20분장소: 인더가든<세계문학>을 만든 독자들조약돌, 향기, 최해성(모임 후기 엮은이)지난주 수요일 저녁에 카페 <small talk>의 주인장 김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김 사장님은 철학책 독서 모임(니체, 미셸 푸코, 레비나스)을 함께 했던 분입니다. 우리는 고요한 어둠이 채워진 <small talk>에서 대화를 했습니다. 말을 주...

선비의 밥상에서 삼겹살집 쌈바구니까지 - 은하수
3월 3일. 삼겹살 데이는 지났고 우린 그날 저녁 삼겹살을 구워 상추쌈 싸서 볼 미어질 정도로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 『단어가 품은 세계 』에서 '상추'라는 단어의 어원을 소개하는 글, 그리고 옛 문헌에 나타난 상추쌈을 맛깔나게 먹는 모습을 담은 시詩를 만나게 되었다. 어찌나 맛있게, 생동감 있게 묘사를 해놓았는지 내가 아는 그 맛이 연상되어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이 상추를 먹는 과정을 묘사한 시詩의 일부를 실어본다.밥은 입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뜨고상추잎은 손바닥 크기만큼 퍼 놓고장을 떠서 생선도 곁들여 얹...

부재가 부재하여 부재한 삶 - 잠자냥
문득 보뱅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아니, 이 문장은 틀렸다. 보뱅에 대해 말하고자 하기엔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보뱅의 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이 옳으리라. 무언가 끼적이고 싶은 까닭은 최근 읽은 그의 에세이 <빈 자리>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빈 자리를, 부재(不在)를, 그 부재에서 비롯한 상실을, 공허를, 결핍을 써 내려간다. 곁에 없기에 더 타오르는 목마름으로 쓰고 또 쓴다. 그 마음의 흔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무겁지 않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그의 문장은 단 한 줄도 ...

깃발과 꽃잎과 소년 - 로쟈
지난겨울에 한 일로 기록해둘 만한 것은 한강 소설 전작 읽기와, 그와 무관하지 않은 한국문학기행이다(한강의 첫 책 <여수의 사랑>을 염두에 두고서 군산, 목포, 장흥, 여수를 찾았다). 각각에 대해 자세히 정리하는 글을 써야 마땅하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언제나 복병처럼 가로막는다. 간단하게는 글을 쓸 에너지가 없다(여수 향일암에 오르는 일도 계단길에서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적어두는 게 좋겠다. 한강 문학의 여정에 대한 것.한강의 책은 동화와 산문집을 제외하면 총 12권이다. 시집 1권, 소...

머릿 속이 혼란 스러울 때마다 펼쳐 드는 책이 있다. - scott
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출간한 책들은 지난해 10월 부터 최근 까지[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순번을 서로 번갈아 가며 1위 자리를 밀어 내고 올라서기를 반복했다. 한강 작품 열기 속에서 인기 아이돌이 추천하는 책, SNS열풍을 타고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책,영향력 있는 인사가 추천하는 책들이 빠른 속도로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이 와중에 세상은 12·3 불법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심판이 열렸고 전국 주요 도심은 탄핵 찬반 시위, 시국 선언,집...

우주에서 나의 과거를 대면한다면 - blanca
흔히들 나이가 들면 현실적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 치일수록 더 내 앞의 이 물리적 현실이 허깨비 같은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순간 '나'라는 자아를 가진 의식이 출현하여 '너'를 만나 때로 '우리'가 됐다 어긋나 헤어지거나 죽음으로 이별한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과정인가. 한때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시간과 함께 스러져버리는 일이. 화성 탐사가 가능하고 손바닥 만한 전자기기에 세상 전부를 담을 수 있는 순간에도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이 존재의 부조리 앞에서 사람들은 더 큰 절망을...

창덕궁 나들이 - 페넬로페
창덕궁(昌德宮)은 태종 집권 시기인 1405년 10월에 이궁(離宮-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물던 별궁)으로 지어졌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궁이 전소하자 1608년 경복궁보다 먼저 복구되었다. 창덕궁은 1868년 경복궁이 복원될 때까지 260년 동안 정궁(법궁-임금이 거처하는 곳)으로의 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창덕궁 건물은 17세기 이후 20세기 초 사이에 여러 차례 화재와 재건, 수리와 개축을 거쳐 남은 모습이다. [창덕궁은 한국 건축의 전통이 잘 살아 있는 곳이다. 특히 후원은 광대한 영역은 물론이고 건물이 거의 숨어 있는 듯이 다...

시를 품었던 시절은... - 자목련
언제부터 시를 좋아했을까. 읽지도 않을 시집을 욕심내며 사들이는 나는 시를 좋아하는 게 맞을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시집이 있다. 선배 언니가 선물한 정현종 시인의 시집이다. 나를 시로 이끈 사람은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과 선배 언니였다. 그리고 문학소녀 흉내를 내고 싶었던 나의 열망. 그 후로 나는 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시를 배우던 수업 시간에 가장 중요했던 건 시험에 나올 것들, 은유와 상징, 공감각적 표현 같은 걸 외우기에 급급했다. 십 대에는 시집은 좋아하는 이를 위한 선물이 전부였다. 나를 위한 시집은 생각하지 못했...

어떤 기다림 - 다락방
루쉰 생가에서 내 발길이 오래 머무는 또다른 방은 루쉰의 첫 부인이 살던 곳이다. 루쉰 어머니 방 위층에 있다. 공개하지 않아서 올라가 볼 수는 없다. 루쉰이 도쿄에서 유학할 때, 어느날 어머니가 위중하니 얼른 돌아오라는 전보를 받는다. 급히 집에 왔더니 붉은 등이 온 집을 밝히고 있었다.결혼식 준비가 한창인 거였다. 루쉰 나이 스물여섯살 때였다. 혼기가 찬 장남을 하루빨리 결혼시켜 후손을 보려는 홀어머니 마음에 거짓 전보를 친 것이다. 루쉰은 혼례를 거절하지 않았다. 혼례를 치르고 신부와 하룻밤을 지낸 뒤, 다시는 그녀 방에 들어...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리운 한국인, 아빠가 해준 음식이 그리운 중국인,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문화적으로 보면, 한국 남자나 중국 남자나 다 공자의 후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남자다. 그런데 어디서 차이가 난 것일까? 중국 남자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를 무시하고, 부엌일은 여성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통 시대는 물론이고 근대 시기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 남자와 같았다. 그런데 사회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나서 달라졌다.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를 두고 긍정적·부정적 차원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녀관계 차원에서 보자면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는 가부장 문화를 단절하고, 남녀관계를 새롭게 세운 시대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사회적 노동을 제공하는 한편, 가사노동, 육아노동 부담을 줄였다. - P102


선고 유예! 부조리한 상황 - 그레이스
선고유예! 인간이 처한 상황이다. 카프카가 이 소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이다. 요제프 K는 선고를 받기 원하지만 판사도 만날 수 없고, 법정도 찾을 수 없다.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판별하는 예심 판사만 만났을 뿐이다. 법정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있지만 문지기가 막고 서있는 역설 역시 인간의 상황이다. 카프카의 『소송』에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없다. 주인공이 혼자 있는 어두운 공간에 갑자기 조명이 켜지듯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문고리를 잡은 손 위에 어떤 손이 얹어져 있고 갑자기 시야가 넓어져 그 손의 주인을 의...

가난한 사람들 & 외투 니콜라이 고골 - 구름모모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다보면 고골의 『외투』 소설이 등장한다. 작가의 생애를 읽고나서 읽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외투 소설을 읽고 고골의 여러 소설들을 읽었기에 이 소설은 더 깊게 투영된다. 가난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 작품이다. 소설의 인물은 9등관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47세 남성이다. 시대적 흐름을 바탕으로 그는 늙은 노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인물이다. 작품을 읽어갈수록 가난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난은 돈이 급하게 필요하지만 담보조차도 없는 상황을 의미한...

세상은 흉악하고 사람들은 공정하지 않아요. 94


어쩐지 발자크 단편과 펭귄 60주년 기념 문고... - 나귀님
얼마 전부터 발자크의 단편 몇 가지가 생각나던 참인데, 지난 주에 바깥양반과 대화를 나누다가 "무신론자의 미사"의 줄거리와 유사한 일화를 듣게 되어서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꺼내 읽기로 했다. 내친 김에 "그랑드 브러테슈"와 "불사의 묘약"도 꺼내 읽었는데, 아쉽게도 내가 가진 번역서는 워낙 옛날 것들이다 보니 하나같이 중역본이어서 그리 좋지는 않았다."무신론자의 미사"는 이성을 중시하고 종교를 배척하기로 악명 높은 어느 저명한 의사가 어느 날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제자가 우연히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알고 보니 가난했던 학생 ...

Une Vie - 수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문장을 읽고, 이건 일종의 타이밍과 비슷한 것도 같다 싶었다. 4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고창에서 주말을 보내고 다시 4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서울로 돌아와 다시 일주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어떤 인물이 떠올랐다. 이건 내 이야기가 되겠구나 라는 감이 오면서. 하나의 이야기, 한 사람, 삶은 하나, 인간은 쉬이 변하지 않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변화란 거의 미션 임파서블인 거고 그런 식으로 Une Vie. 발터 벤야민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벤야민. 정체성이 또렷하고 좀 덜 또렷하고 이 차이로 인해서 하나인 게 ...

먹는 거에 진심이 될 수밖에 - 구단씨
‘밥이 뭐라고.’이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굳이 밥이 아니어도, 하루 세끼가 아니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고, 밥 챙겨 먹는 것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 많은데, 굳이 먹는 것까지 우선순위에 두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 몸무게 최저점이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먹는 일이 진심이 되었고, 전국 맛집을 찾아다니는 정도는 아니어도 시간이 생기면 뭔가 맛있는 것을 찾고 검색하며 가까운 곳을 돌았다. 고급스러운 메뉴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쉽게 먹는 칼국수 한 그릇에도 조금 더 맛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때부...

전쟁과 여성 - 아시마
전쟁과 여성 어느날 우리집 책장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어마어마한 벽돌책이 나타났다. 숫자와 지명, 유명 장군의 이름으로 요약되는 전투와 전쟁의 이야기는 스펙타클한 재미가 있다. 그것이 실화, 진짜로 있었던 일이기에 더욱. 물경 9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삼국지 읽듯 숨도 안 쉬고 독파했다. 전쟁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나는 뇌의 어디가 고장 난 거 아닐까. 사이코패스였는데 나만 몰랐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야기가 식상해져 갈 무렵이었다. 트럼프가 또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재선이 못 될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