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마이페이퍼 당선작

쓰레기가 되는 삶, 쓰레기 줍는 삷 - 잠자냥
지난 금요일, 맥주를 한잔 하면서 영화를 볼 요량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뭘 볼까 요리조리 영화를 찾다가 고른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Les Glaneurs Et La Glaneuse>(2000). 바르다의 영화를 좋아한다. 바르다 감독을 좋아한다. 지혜롭고 명민하며 유쾌하고 윤리적인 그의 카메라.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이라면 대부분 고다르나 트뤼포를 떠올린다. 그렇지만 여기 바르다가 있다. 누벨바그의 대모? 훗. 웃기지 마시라. 아녜스 바르다는 누벨바그의 왕이다. 여성이라 오랫동안 ...

말하지 않기로 - 단발머리
방학이긴 한데 휴가는 아니다. 한 명은 출근하고, 한 명은 이런저런 일정이 있고, 한 명은 비행기 타고 KTX 타고 친구들이랑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 계획 짜서 어디 가는 스타일도 아니고, 많이 덥기도 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더운 날씨를 피하고 일상에서 탈피하는 게 휴가라면, 일단 집 밖이 더워서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출근하지 않고 있으며(아싸!), 챙겨야 할 어린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러고 보니 휴가가 맞다. 방학이고 휴가다. ​인스타 계정은 있는데 비공개 상태다. 사진 보정 목적으로 앱을 ...

잘 왔구나! - blanca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회자되는 작가나 책은 아무래도 좀 저어하게 되는 면이 있다. <인간실격>도 읽었을 텐데, 내용이나 감상 모두 어렴풋하다. 젊은 시절 세상을 등진 그의 방식도 하나의 비장한 텍스트처럼 남았지만, 거기에 동의하거나 공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쓰가루>를 읽고 나서 왜 사람들이 이렇게나 자주 그를 여전히 소환하는지 알 것 같았다. <쓰가루>는 자신이 나고 자란 혼슈 북단의 고향에 돌아가 옛 친구, 친척들...

에로틱한 우정 혹은 플라토닉 사랑 - 다락방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다.아주아주아주아주 오래전에 처음 읽고 그 후 몇 년이 지난 뒤에 한 번 다시 읽고, 그리고 내가 읽었던 책을 당시의 애인에게 주고 다시 사서 한 번 더 읽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력이란, 아니 나의 기억력이란 정말이지 대단치않은 것이어서 딱히 기억나는게 없더라. 주인공들의 이름과, '공개적으로 변한 사랑은 무게를 더한다'는 문장과, 그리고 '무지는 죄다' 라고 내가 이 책을 읽고 썼던 페이퍼에 대한 것만 기억났다. 호이안에서 혼자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면서 자, 뭘 들어볼까 하...

2026년 여름 폭염에서 빙하 이야기까지 - 벤투의스케치북
2026년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던 시간이었다. 기억으로 뜨겁고 건조한 고기압이 하늘을 덮어 낮 기온이 극단적으로 치솟는 형태였던 1994년 여름도 숨막히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바다가 막대한 수증기까지 공급함에 따라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역대급 열대야가 동시에 타오르는 양상을 보인 올해는 1994년 더위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기후학자들은 2026년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했다. 2026년이 실제로 시원했다는 뜻이 아니라 가속되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다가올 여름은 올해보다 무조건 더 ...

생활인으로서의 버지니아 울프 - M의서재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항상 글쓰기가 있었다. 주제도 없고, 장르도 없다. 글쓰기로 이루고 싶은 성취도 없고 부귀영화도 없다. 그저 무엇이든 조금씩 쓰고, 그것으로 언젠가 책을 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글을 써야지, 언젠가 글을 쓸테다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일기도 쓰지 않고 리뷰도 쓰지 않고 (지금은) 어떤 글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항상 쓰고 싶어 하는가? 아니 진짜 질문은 이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 나는 항상 글쓰기를 이토록 염원(하는 척) 하면서 글을 쓰지 않는가? 그에 대한 답변은 당...

뮤즈여, 노래하라, 한 인간을. - 페넬로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된다는 소식에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재독했다. 8년 전쯤 『오뒷세이아』를 처음 읽을 때는 독서의 속도가 빠르진 못했다. 약 3000년 전의 고대 희랍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이 필요했고 그것이 만만치 않아서였다. 신화와 거기에 얽힌 인물의 이야기가 워낙 복잡해 주석과 네이버 지식 백과를 참조해 읽어도 헷갈려 다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 때 이후로 호메로스의 작품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신화와 비극을 열심히 읽다보니 이제는 신과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와 암기가 된 상태다....

환대: 자리 만들어주기 - 스프링버드
환대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둔 주제였다. 그건 무척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데, 사람들에게서 이기적인 모습이 좋은 모습보다 더 많이 보이고, 나 자신에게서 그 점을 가장 예민하게 느껴서이다. 천사와 악마가 내 양 옆에서 반대되는 말을 속삭이며, 악마의 말은 천사의 말보다 훨씬 달콤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소극적으로나마 할 때면 나 자신이 너무 위선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소설가 이승우의 글을 읽고 위안이 되었다. 오래전 신문 칼럼에 그는 대강 이런 식의 얘기를 썼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선한 일을 했더라도 어찌 됐...

누가 추리소설을 모함했나? - cyrus
추리소설은 시간을 죽이는(killing Time) 오락물이다. 교양 독서를 선호하는 독자들은 추리소설을 읽으면 시간을 낭비(wasting time)한다고 생각한다.추리소설은 SF와 더불어 독서 모임에 자주 초대받지 못한다. 박학다식한 다독가들의 머릿속에 추리소설이 단 한 권도 꽂혀 있지 않다. 다독가들은 추리소설이 독서 모임 필독서로 선정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마저 추리소설을 외면한다. 그들은 추리소설을 순문학과 반대되는 ‘비문학’으로 취급한다. 어정쩡한 추리소설은 ‘장르문학’이라는 특별 보호구역에 정착...

특별한 애정을 담은 - 자목련
『나만 아는 단어』란 제목에 끌렸다. 그러니까 나만 아는, 나만 알고 싶은, 특별한 단어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뭔가 비밀스럽지만 평범하고 모두에게 다 열린 단어였다. 작가, 시인, 번역가 10명이 각가 자신만의 다섯 단어를 소개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이미 만난 단어, 독자라면 그 작가가 어떤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지 알 법도 하기에 그걸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일례로, 김화진의 주머니라든가, 정용준의 산책 같은 것이다. 그러니 작가, 시인, 번역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려주는 책이다. 그게 무엇이든 나만의 의...

집합행동의 딜레마에 빠진 AI 경쟁 - 비의식
AI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당한 목표 없는 경쟁을 물으며;지금 벌어지는 AI 기업 간의 과열 경쟁은 단지 그들 기업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일종의 군비경쟁(arms race) 구조가 이들 산업주체들의 전략적 경쟁논리가 됨으로써, 이를테면 1960년대 미소간의 핵무기 경쟁처럼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경쟁자가 더 큰 모델을 훈련하면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어 ‘더 큰 GPU, 더 큰 데이터 센터(Data Center)’가 되고 만다. 이것은 사회 전체에서 보면 전혀 최적(最適)이 아니다. 이것을 경제학에서 ‘...

8월에, 책들과. - 곰돌이
주문한 책이 도착해 박스를 열어 볼 때마다 어찌나 후끈한 열기를 가득 품고 있던지, 거의 구해내듯 책을 꺼낸 것 같다. 한동안 책 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책장에 새 책들을 옮겨 보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어느새 아침으로는 습하지만 조금은 선선해졌고, 또 이때쯤이면 눈길이 가는 이야기가 생긴다.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라는 책을 만났다.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에 대한 경고를 담은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환경 서사시라는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201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적힌 띠지를 떼어내...

박완서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 - 건수하
두 번이나 연장된 박완서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에 다녀왔다. 사실 박완서 작가의 팬은 아니었던지라 지금까지 가지 않은 것인데, 주변인들 중 가고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출퇴근길에서 좀 샛길로 새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위치라 갈 마음을 먹었다. 결국 시간이 안 맞아 혼자 다녀왔지만..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어진 근대화 혹은 현대화까지... 몇 년 전 백수를 다 누리고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의 삶이 참 변화무쌍했다 생각했는데, 박완서 작가는 그 생각을 '스쳐간 문화의 부피가 500년은 될 것 같다' 고 표현했다.출판된 책, 외국어로 번역된 ...

책이 먼저, 그 다음은 너 - scott
스마트 폰을 충전 하는 걸 깜빡 잊고 눕자 마자 잠이 들어 버린 어느 날 아침, 충전기기에 올려 놓자마자 알림 메시지가 쉼 없이 쏟아진다.대부분 광고성 알림이거나 이벤트를 알려주는 알림, 출석 도장을 찍으라는 알림 그리고 일과 관련된 알림 까지 초-분 단위로 쏟아진다.손끝으로 터치해서 지우고 나면 스팸성 문자와 전화가 들어 오고 차단하고 신고 해도 마치 실시간 방문객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듯 미끼성 문자와 광고 알림을 보낸다.스마트 폰이나 이메일이 없었던 시대에는 이런 폭탄성 메시지와 불필요할 정도로 쏟아지는 광고들에 시간과...

삼국지를 위한 첫 걸음 - 거리의화가
모름지기 영화든 드라마든 한 번에 몰아서 보아주어야 하는데 드라마 <삼국지>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다. 워낙 길다보니 이제 반쯤 보았나. 다 보고 나면 엮어서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계속 그 시간이 길어져서 이제 그만하자 생각하고 읽은 책이나 정리해야겠다 결단을 내렸다. 삼국지를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핵심만 쏙쏙 골라서 써낼 수가 있구나 일단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읽히고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대부분 삼국지는 중반까지 가지도 못하고 책을 놓게 된다. 워낙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도 다양하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