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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조건 - 자본주의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법
자라 바겐크네히트 지음, 장수한 옮김 / 제르미날 / 2018년 2월
평점 :
지난 2024년에 알게 된 한 독일 정치인이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자라 바겐크네히트(Sahra Wagenknecht)다. 바겐크네히트는 1969년 과거 동독 지역인 예나에서 이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 군사훈련에 적응 못하여 동독 정부로부터 크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부 불이익을 받았던 자라는 1989년 봄 “막 다른 길목에 내몰린 사회주의를 재구성하고 기회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동독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녀가 공산당에 가입했을 시기 동독의 호네커 정권은 무너졌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 그 당시 바겐크네히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외 독일 통일을 반동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통일 이후 그녀는 예나 대학과 홈볼트 대학에서 철학과 독일 근대문학을 공부했으며, 1996년 9월 네덜란드의 흐로닝언 대학 철학과에 등록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5년부터 국민경제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시작하여 2012년 8월 그녀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독일의 로자룩셈부르크 재단의 연구 교수이자 켐니츠 대학의 미시경제학 교수인 프리츠 헬메닥에게 제출해 좋은 평가와 함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이와 더불어 독일 통일 이후에도 좌파로서 정치활동을 이어갔고, 2015년 이후부터는 좌파당의 원내대표로 활동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좌파당 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가지고 갈등하다 2024년 바겐크네히트 동맹을 만들어 현재까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에 구 동독 지역에서 적잖은 지지율(10~15%)을 얻는 것처럼 보였으나, 2025년 안타깝게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총선결과 4.97%를 득표하고 0.03% 차이로 봉쇄조항에 미달하여 모든 의석을 잃고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2016년에 쓴 책이 있다. 책의 제목은 ‘Reichtum ohne Gier: Wie wir uns vor dem Kapitalismus retten’이다. 바로 『풍요의 조건』이다. 이 책은 2018년 제르미날 출판사에서 번역했고,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작년에야 알게 됐다. 사실 이 책은 21세기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비판서다. 현재 우리가 생활과 일상에서 숨쉬듯이 체감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분석했다. 해당 비판이 흥미로운 것은 현재 21세기 자본주의 경제를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경제 봉건주의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분석에서 바겐크네히트는 일정 부분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통해 현재의 시장체제가 소수의 독점 자본가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성과나 책임 그리고 경쟁에 토대를 둔다고 하지만, 현 21세기 상황은 그것이 실행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바겐크네히트는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면서 이런 얘기도 한다. “소수가 멋진 요트를 타고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반면, 다수는 겨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증대하는 압박을 견디면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실제로 정성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보편 선거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해야 상위 10%, 때로는 겨우 최상위 부자 1%만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정치가 거듭해서 다시 실현되는 것을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2018, 25쪽.) 그녀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했다. 즉, 현재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이 극소수의 자본가들을 위해 체제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이러한 부분에 전혀 문제의식을 못느끼거나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걸 바겐크네히트는 경제학적으로 알기 쉽게 풀어낸다. 계속해서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
“21세기가 시작된 지금도 최고 부자 1%가 중요한 경제적 자원을 그들의 손아귀에 장악하고 마음대로 사용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토지와 부동산 외에 산업시설, 기술 노하우, 디지털 혹은 다른 연결망, 서버, 소프트웨어, 특허 그리고 여타 다른 많은 것들 또한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자원들에 대한 소유권은 변함없이 세습 및 혈연원칙에 따라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으며 그 수익은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거의 세금도 물지 않은 채 소유자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그것이 노동소득으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생활양식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인구의 99% 중 압도적 다수는 이들 새로운 금융 귀족들을 위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2018, 29~30쪽.)
21세기 들어 자본주의는 높은 생산력과 부를 창출해냈고, 물질의 향상과 기술력의 향상을 불러왔다. 그러나 앞서 바겐크네히트가 지적하듯이, 과거 귀족들이나 부르주아들이 부를 세습하는 사례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그 밑에서 일하는 노동계급은 여전히 그들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희생하며 하루 밥벌어 먹고살고 있다. 물론 이것이 19세기의 물질적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다르지만, 여전히 불평등한 생산관계 속에서 모순이 재생산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그녀의 분석은 책을 읽으며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1인당 GDP에 관한 얘기였다. 세계은행의 계산에 따르면, 아프리카 주민의 1인당 GDP가 식민지 체제의 해체 당시에 견주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아프리카 가나의 건국의 아버지 콰메 은크루마가 레닌의 『제국주의론』적인 분석에 근거하여 신식민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적잖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전후 냉전기 독립을 했음에도 여전히 저발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가난에 직면한 이유를 자본주의 지배체제에서 은크루마는 찾았다. 그녀에 따르면, 아프리카 뿐만아니라 서부 발칸 국가들의 경우에도 사회주의 해체 이전인 1989년에 비해 현재(2016년 기준) 산업생산 수준이 10% 아래로 내려갔다고 한다. 즉, 지난 25년간 자본주의는 성장을 이루지 못했고 생활수준의 하락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2018, 73쪽.) 물론, 반대 사례로서 중국이나 한국 등은 분명히 번영을 이룬 것도 빠지지 않고 설명하지만, 여기서 바겐크네히트는 이들 나라를 부자로 만든 것이 과연 자본주의인가?라고 의문을 던진다.
그 외에도 바겐크네히트는 교육기관의 문제, 식품 생산의 문제, 환경 문제, 최저생계의 문제, 자본의 카르텔, 독점 기업 등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을 분석했다. 심지어 21세기에 들어온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 알고리즘, 유튜브, 구글, 그 외의 sns 등도 분석했다. 사실 우리가 무심코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하면, 그에 맞는 데이터들이 뜨는데, “구글의 검색 엔진을 사용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들이 축적되며 구글은 이 데이터들을 처리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 광고 지출의 10%에 이르는 금액이 검색 엔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구글이라는 한 회사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바겐크네히트는 국내총생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한다.
“국내총생산이 번영의 기준으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할 것까지는 없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연 3만 달러인 나라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1인당 국내총생산이 3,000달러에 머물러 있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보다 잘산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가난한 나라의 빈곤퇴치가 국내총생산의 성장과 결합되어 있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 년의 경험으로 보건대, 부자 나라에서 국내총생산과 가난은 동시에 증가할 수 있다. 더 많은 물품과 서비스가 생산되고 이어서 팔린다면 우리 경제는 성장한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으려면, 실업이 줄든 인구가 성장하여 하여튼 더 많은 사람이 일하게 되거나 같은 수의 사람이 더 오래 일하거나 혹은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생산하면 된다. 바로 이 사실에서 이미 생산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업이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정규직 노동자가 더 긴 시간 노동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같은 물품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반드시 개선하지도 않는다. 물품에 대한 수요는 결국 언젠가는 충족될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기업가는 물론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갖는데, 그것이 '그들의' 성장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풍요는 그것을 통해 반드시 높아지지는 않는다.”(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2018, 208~209쪽.)
즉, 국내총생산이 증가해도 이것이 반드시 소위 자본주의적 풍요를 절대다수에서 보장하거나 향상시킨다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은 분명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국내총생산과 국민소득도 향상됐다. 그러나 그 성장 이면에는 현재 청계천에서 살던 판자촌 주민들이 있었고, 비교적 성장을 하게 된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들은 개미굴이라 불리는 곳에서 사실상 노숙 생활을 했다. 즉, 빠른 성장이 국민들의 균형적 복지와 물질적 풍요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그 당시와 2000년대를 비교하면, 사람들의 보편적인 물질적 수준은 매우 향상됐다. 그리고 성장을 하더라도 한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말 그대로 굶지는 않더라도 하루 밥벌어 먹고 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에 반해 상위 1%는 그때도 풍족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모순을 생각해보자면,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분석은 많이 공감이 된다.
그녀의 책 『풍요의 조건 – 자본주의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법』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대중적인 언어로 담고 있는 책이다. 상당히 읽어볼만하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을 정도다. 또한, 경제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몰입해서 읽었을 정도니 바겐크네히트가 대중적으로 책을 집필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바겐크네히트의 책이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새롭고 흥미진진한 분석을 그녀가 내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해결 방법에 있어서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의 변혁과는 거리가 있다.
현재 한국에 있는 진보당만 하더라도 기간 산업의 국유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녀의 주장에는 이와 같은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진보좌파라면 지금 당장의 자본주의 해체를 주장하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기간 산업의 국유화 정도는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얘기가 없다. 이게 좀 많이 아쉬웠다. 자본주의적 봉건체제의 극복이나 대외문제 의식 그리고 경제문제 의식은 좋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주장이 너무 없는 것은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인에게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상당히 친 동독 정부 성향이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독일이 친동독적 주장을 상당히 막고 있기에 바겐크네히트 또한 정치인으로서 문제될 것을 피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러우전쟁 관련해서도 언급하겠다. 바겐크네히트는 서문에서 “러시아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과두 자본주의로 전환한 후 세계 무대에서 잠시 사라졌으나 이제 다시 영향력을 높이려는 투쟁에 나섰다.”고 언급한다. 그녀는 그 당시 진행되고 있던 2013년 유로마이단과 2014년 크림반도 합병 그리고 돈바스 내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돋보이는 모습을 보이는 측면이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정권에 대한 무기 지원을 항상 반대해왔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전 이후 독일은 그녀의 주장과는 달리 망상과 루소포비아에 빠져 전쟁을 선동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래서 내가 바겐크네히트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있다.
아무튼 너무나도 재미있는 책을 완독했다. 현대 21세기 자본주의에 대해 알기 위해 한번 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