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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읽다가 불현듯, 어라 이 소설집에 '안녕 주정뱅이'라는 소설은 없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제목은 '안녕 주정뱅이'지만 그러한 제목을 가진 소설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제목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야 한다.
분명 공통점이 있으니 이런 제목을 붙였겠지. 주정뱅이라는 말부터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주정쟁이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하긴 '-뱅이'라는 말에 높임의 뜻은 없을테니, 그렇다고 '-쟁이'라는 말에도 높임의 뜻은 없을텐데, 주정쟁이는 '주정을 부리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니 그냥 그러한 속성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제목에 '주정뱅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술과 관련된 일들을 겪은 사람들이리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인물들 모두 술을 마시고 그로 인해 어떠한 일들을 겪게 된다.
우리 인생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소설집에 실린 소설 모두가 술과 관련이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면서 읽다보니, 술로 인해 우리는 뜻하지 않은 일들을 겪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어디 우리 인생에서 뜻하지 않는 일이 술로만 일어나는가. 인생 자체가 뜻하지 않은 일들의 연속 아니던가. 그러한 우연들이 겹쳐 인생을 이루고 있으니.
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소설은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술과 비슷하게 뜻하지 않게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안녕'이라는 제목이 들어갔나 보다.
'안녕' 우리가 인사할 때 주로 쓰는 말 아닌가. 이는 주정뱅이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인생에서 뜻하지 않게 겪게 되는 일들을 외면하고 회피하지 않고 그것들을 마주보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층'에서, 230쪽)
당연히 내 탓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게 다가온 일이다. 이미 내 일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 탓은 아니잖아요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마주해야 한다. '안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면서 내 삶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한 받아들임, 소설집의 첫소설인 '봄밤'에서 아프게 다가온다. 지독하리만큼 힘든 상황임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분자를 키워가려고 한다. 분모가 어려움, 안 좋음이라면 분자는 할 수 있음, 좋음이라고 한다.
분자와 분모가 같으면 1이 되겠지만, 우리 인생은 불확실한 분모 쪽이 클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분모 쪽은 우리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훅 치고 들어오는 불행들, 사건들... 불확실한 분모를 어찌할 수 없다면 인생에서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어디인가? 바로 분자 쪽 아니던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 상대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려고 하는 것. 그것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부분을 하는 일. '안녕 주정뱅이'하고 술을 맞이하는 일이다.
'봄밤'에서 영경이 하는 말.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봄밤'에서, 25쪽)
수환이 하는 말.
'분모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분자라도 늘려야지.' ('봄밤'에서, 32쪽)
이런 장면 아니겠는가. 이것을 꼭 상대방과의 관계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안녕 주정뱅이'라고 하는 순간이, 내게 찾아오는 온갖 불행들, 내 책임이 아닌 것 같은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면서, 그것이 내 탓이 아니잖아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일로 바꾸는 때가 된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분자를 늘리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분자를 늘리는 인물들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인생은 그렇지 않으니까. 다만 작가는 분모에 들어갈 수 있는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카메라, 층'은 이런 점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자, 이런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그것은 어찌할 수 없다고. 어찌할 수 없으니 그냥 포기할 것이냐고. 아니라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하여 '봄밤, 이모'에서는 어찌할 수 없음에도 분자를 늘리는 사람의 모습이 펼쳐진다. 나머지 소설들에서는 분모에 해당하는 일들과 그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하여 분모에 해당하는 삶이든, 분자에 해당하는 삶이든 모두 우리 삶의 일부임을, 그것들이 우리 삶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술을 마시는 경우가 기분이 좋아서, 또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등등 다양한데, 술이 외부에서 내게 들어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과 같다. 그 일들이 때로는 나를 좋게도, 나를 좋지 않게도 하지만 한번 마신 술이 다시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그러한 일들도 시간이 필요함을.
그 시간 동안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대면할 수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함을.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에서 분모와 분자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모습임을 이 소설집은 생각하게 한다.
그렇지. 나도 내 삶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분모에 모든 힘을 쏟아붓기보다는 분자를 어떻게 키울지에 힘을 써야겠다. 이것이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이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문학을 만나는 일은 분자를 키우는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