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 우리는 어쩌다 아픈 몸을 시장에 맡기게 되었나
김현아 지음 / 돌베개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도 의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의대 학생수 증원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 전공의들의 사퇴로, 또 의대생들의 휴학으로, 그리고 의사국가고시의 거부로 이어지고 있다.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이런 때 의사가 쓴 책을 읽는다.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으리라 믿고, 또한 그러한 문제점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를 어느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관점을 다를 수 있음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 정책에 현장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다면 문제는 더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 책을 쓴 김현아 교수는 류마티스 내과 교수라고 한다. 오랫동안 의사로 활동해 왔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문제들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이 책을 읽으면 되는데, 가장 큰 문제의식은 시장이 우리나라 의료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료 민영화를 거부하는 나라인데, 의료가 시장에 잠식당하고 있다고?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 속하는 삼성의료원과 현대아산병원이 어디 소속인가? 거대 재벌 소속 아닌가. 이들 재벌이 자신들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그 병원을 운영하는가?


아니다. 이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첨단 장비를 이용한 검사비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약을 처방받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환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검사를 받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검사와 치료를 공공의료가 담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히려 중증을 치료하는 병원은 사적인 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라 공공의료병원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중은 10%정도라고 한다. 다른 선진국들이 약 30%정도라고 하니, 공공의료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의대 정원 문제는 단지 의사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료를 확충하느냐 아니면 의료를 시장에 넘기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시장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대형병원 의사들이 하루에 만나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대형병원에 가면 예약을 하고 가도 근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달랑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진료받고 처방받고 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료의 시장화다. 의사들이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병원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하니... 건강보험에서 진료수가가 낮은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지금 제도에서는 진료수가를 올려도 환자를 진찰하는 시간이 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병원이 이익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말한대로 의료는 우선 인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과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 완벽한 정상 몸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질병에 걸릴지는 본인도 의사도 모른다. 하지만 첨단 기계를 이용해 검사를 하면 병에 걸릴 인자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 인자가 자신의 몸에 있다면 그때부터 마치 병에 걸린 듯 치료를 받으려 한다.


그러나 과연 몸에 있는 인자들이 모두 질병으로 발현되는가? 아니다. 수많은 인자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질병으로 발현된다. 발현되는 경우보다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1차 병원에서 진료받고 꾸준히 상담하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지켜보는 의사가 있다면 상급종합병원에 가는 것보다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의사들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자본주의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과 시민들이 대립할 이유가 없다. 의사들 역시 당연하게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해야 한다.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수가 너무 많으면 적정한 진료 환자수를 정하자고 해야 한다. 스스로 과잉 검사를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살인적인 업무 환경을 고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만큼 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고 주장해야 한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하고, 충분한 진료 시간을 확보해야 하며, 진료나 치료가 아닌 다른 일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가 시장에게 잠식당하지 않는다. 이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도 명심해야 하지만 당사자인 의사와 국민들이 협심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 수가 있게 된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의료 문제... 그런 중에 읽은 이 책. 이 의료의 문제가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제도와 환경이 함께 마련되어야 의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의사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자고 하면 국민들도 납득하고, 서로에게 더 나은 의료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 책이다.


덧글


얼마 전에 읽고 써놓은 글인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전국민을 놀라움과 두려움, 당혹감에 빠뜨린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가 6시간만에 해제되었다. 절차를 지키지도 않았다는 문제, 지금이 과연 계엄령을 선포할 시기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언어로 협박이라고 느낄 수 있는 표현을 했으니, 과연 의사들이 이 포고령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합니다.


과연 해결할 의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절차를 밟기 힘들 때 대통령이 긴급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을, 세상에 대통령이 스스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려 비상 시국으로 만들다니... 이것이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할 일인지.


누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12월 3일 밤... 그날, 일을 겪은 국민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작 당사자가 전혀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화 속에 가려진 여자'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메두사에 대한 재해석 정도 되겠다. 메두사 하면 뱀머리를 가진 괴물로,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아테나의 방패에 박힌 존재로 기억한다.


그냥 그렇게 페르세우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세 여자 중 하나로만 기억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르세우스 신화에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인 다나에, 그리고 또 한 여자는 메두사, 마지막 한 사람은 안드로메다이다. 


이 중에 다나에는 탑에 갇혀 있을 때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페르세우스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화를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면 여성은 성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그들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존재로 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나에는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페르세우스의 말을 통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언제나 남성의 욕망에 휘둘리고 위협받는 존재로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안드로메다는 이 소설에서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화에서는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가 돌아가는 길에 안드로메다를 구출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 페르세우스는 돌이 되어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가야 남성의 욕망에서 풀려나는 다나에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소설에서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안드로메다 역시 남성의 힘에 자신을 맡기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소설에 등장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메두사는? 괴물로 알려진 메두사는? 사실 신화를 읽다가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사고는 포세이돈이 쳤는데, 왜 아테나는 메두사에게 벌을 내렸을까? 같은 신이라서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는가? 아테나 역시 여신 아닌가? 그렇다면 여성의 편을 들고 포세이돈에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벌을 메두사에게 내린다. 그것도 가장 위협적인 뱀의 머리를 하는 존재로.


이것은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사례라고 해야 할까? 즉 아테나는 여성이지만 남성성을 추구한다. 남성이 추구하는 세상을 구현하려 하지 여성성이 구현된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성을 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신화나 이 소설에서 아테나를 통해 알게 된다.


괴물이 된 메두사.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왜 메두사를 괴물로 여겨야 하는가?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메두사의 외모가 변한 것은 우리나라 고전소설 [박씨부인전]에서 박씨 부인이 변한 것과 반대 방향이다.


메두사는 미인에서 추녀 혹은 괴물로, 박씨 부인은 추녀에서 미녀로 변신했다. 둘을 대하는 다른 사람의 태도는 어떠한가? 메두사는 아름다운 소녀에서 피해야만 할 (메두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돌이 된다) 존재가 되었다. 반대로 박씨 부인은 천대받는 여성에서 사랑받는 여성으로 변했다. 


이 둘의 변신을 보면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다. 즉 여성은 외모로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여성이 지닌 능력이나 성품은 그 다음이고.


이 소설에서 메두사 역시 페르세우스의 본질을 파악하기 전에는 그 점을 깨닫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페르세우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하고 자신이 메두사임을 밝혔을 때,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냥 괴물일 뿐이다. 자신이 처치해야 할.


처치하고 돌아가 엄마를 구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메두사를 여기지 않는다. 그때까지 둘이 터놓았던 마음들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편견에 갇혀 있을 뿐임을 보여준다.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페르세우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메두사임을 알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만, 대화의 상대가 메두사임을 알게 된 순간 과거의 마음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자신이 처치해야 하는 존재로만 여기는 페르세우스.


페르세우스는 사회적 통념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지만 메두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의 머리에 있는 뱀들이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도 인식하고,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언니들이 날개가 달린 존재로 변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고, 그럼에도 메두사에게 날개가 달리지 않은 것은 메두사가 지내야 할 세상은 여전히 만만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뱀이 달린 머리, 이는 우리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장치다. 그런 다름이 차별로, 차별이 처단으로 이어지게 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화 속 여성을 다른 각도에서 쓴 다른 소설들 생각을 했다. [페넬로피아드]와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더불어 어쩌면 우리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메두사'처럼 괴물로 여기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여성들을 '메두사'로 매도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경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박경석 하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에 앞장선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의 얼굴을 뉴스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고. 한때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으로 지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그의 삶과 생각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냥 시위를 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기만 했을 뿐.


그러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계속되고 있다는 말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생각했다.


사람도 많고 바쁘기도 한 출근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함께 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말지만, 어떤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나와서 우리 출근을 방해하느냐고 비난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을 지지합니다라고 하기도 하는, 서로 다른 관점들이 표출되는 그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직시한다.

 

그가 왜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포기할 수 없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것은 단순히 장애인도 지하철을 편하게 타자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근본 시스템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여기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 투쟁이 단지 자신들의 편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운동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공감 차원을 넘어서서 지금 시스템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드러내고 ,그 시스템을 잠시라도 중지시켜보는 실천들이 필요한 거죠. 전장연처럼 지하철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춰 세우는 것 같은 실천이 그래서 저는 정말 중요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 지금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건 이놈의 시스템인데, 정작 고 시스템은 전혀 공격도 안 받고 우리끼리 각자 권리를 두고서 서로 피터지게 싸우기만 하고. (65쪽)


그렇다. 그는 이를 원형경기장에 비유했다. 원형경기장에서 싸우는 검투사들. 그들은 상대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사람들은 그들의 싸움을 보면서 즐긴다. 이게 무엇인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현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습 아닌가.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원형경기장에서 나와야 한다.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눈 앞에 있는 검투사가 아니라 원형경기장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싸우게 만든 자들이다.


박경석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무지를 탓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 사회가 T4사회라고 외쳤는데, T4사회가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무지를. 아니 T4사회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은 나의 무지를.


장애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한 나치의 정책이 T4정책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장애인을 제거한 것이나 지금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하는 박경석의 절규. 이 절규를 우리가 왜 듣지 않고 있는지.


그래서 박경석은, 그와 더불어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에서 목소리를 내는 존재로 당당하게 사회에 나서려 한다.


그들이 당당하게 나설수록 우리 사회는 더 좋은 사회기반을 마련할 것이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원형경기장에서 바로 눈 앞의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원형경기장을 부수려는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장애인 투쟁의 역사를 어느 정도 개괄할 수 있었는데... 새롭게 느낀 점은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고 있었던 것.


국가 예산 편성권을 기재부(기획재정부)가 독점적으로 쥐고 있다는 것. 복지부나 기타 다른 부서와 합의가 되어도 기재부에서 예산 편성을 하지 않으면 합의된 정책들이 실시될 수 없다는 점. 그런데 기재부는 무슨 근거로 예산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철저히 경제(성과)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한다고 하는데... 


국가는 비용(성과)보다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쪽에, 사람을 중심에 두는 쪽에 예산을 편성해야 하지 않나. 그러니 기재부의 예산 독점권은 시민들에 의해 견제받아야 한다는 박경석의 말에 동감한다.


국민적 합의로 예산을 편성해야 사회적 합의를 이룬 문제들을 실행할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411번 버스. 고 노회찬 의원이 언급했던 버스 번호. 이 버스에는 새벽 일찍 일을 나가는 사람들이 탄다고 한다. 그것도 첫차와 두번째 차에...


그렇지만 이들의 삶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남들이 보이지 않은 데서 일을 하기 때문이고,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일을 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일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고.


성숙한 사회라면 자신들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런 그림자 노동으로 인해 자신들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음을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런 고마움을 그들에 대한 처우 개선으로 이끌어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아니다. 이들이 눈에 띄는 순간 인상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왜, 남들 일하는 시간에 하느냐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들의 일과 그들의 일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오히려 그들도 자신들이 일할 때와 같이 좀더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나.


그런 사회가 성숙한 사회일텐데...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할텐데, 그와 반대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이라도 그런 사람들의 노동환경이 변하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사회 각지에서 일하는 6411번 버스를 타는 사람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라는 질문 형식으로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근무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참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모르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그들로 인해 내가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 그럼에도 이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좋은 사회란 사회적 약자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 아니던가. 그런 사회를 우리가 추구하지 않는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고 노회찬 의원은 이들을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373쪽)'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면 이들의 처우가 나아질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생활을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이루어졌는지를.


이 책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소리를 남들이 듣게 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들만 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들리게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소중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직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곧 다가올 현실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어떤 직업들이 사라질까? 아마도 지금 사회에서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담당하는 직업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판결하는 사법부라면 사법부, 기존에 있던 법조문과 판례대로 판결만 하면 되니, 이들이 먼저 사라지고, 또 영상판독이나 간단한 치료를 하는 의사들, 또는 처방전대로 처방을 하는 약사들, 그리고 회계사 등등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도 있으나, 힘있는 자리는 이상하게도 법을 이용해서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책은 작가 한승태가 직접 경험한 직업들에서 경험한 노동을 보여주고 있다. 강도 높은 노동들이다. 이런 노동을 소개하기 전에, 그는 들어가는 말 '소개하다'에서 '직업소개소'를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버글버글거렸던 직업소개소.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찾아간 직업소개소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분명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직업소개소가 사라지니 일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모일 장소가 없어졌다고 한다.


직업소개소가 사라져서 가장 불행한 대목은 바로 이런 결속력이 산산조각 났다는 점이다. 20쪽.


그가 이렇게 표현한 것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직업소개소에 온 사람도, 또 그냥 무료해서 시간을 보내러 온 사람도 그곳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필요한 일들을 서로 해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부대끼는 일이 줄어들었기에, 사람들끼리의 결속력도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직업이 없어진다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10-11쪽)'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에는 어떤 직업들이 나와 있을까? 아까 이야기한 직업소개소를 포함하여 


전화받다 콜센터 / 운반하다 까대기 / 요리하다 주방 / 청소하다 청소노동자 /쓰다 작가


이렇게 다섯 개의 직업이 나와 있다. 물론 작가는 아직 현실이 아니지만 그는 미래를 상상하여 작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거의 후기나 다름없으니 작가를 제외하면 이 일들은 모두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하기는 힘든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방에서 하는 일이 그리 노동 강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라. 주방의 노동 강도가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의 땀이 들어가 있음을, 그들이 쉴 틈도 없이 요리하고 청소하기에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야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러한 감정노동에 더해서 그들도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린다는 사실. 쉴 틈 없이 전화를 받아야만 하는 현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택배 상하차를 하는 일명 '까대기'는 만화로도 책이 나왔기 때문에 그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또다시 느낄 수 있었고, 청소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설렁설렁 일을 한다고 이야기 하지 말자. 우리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애쓰고 있는지를 이 책은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많은 일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특히 이렇게 보이지 않는 노동부터 사라지겠지. 하지만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일은 없다.


삶을 최저선에서 더 낮은 곳으로 밀어내는 일. 여기에 작가 한승태가 직접 경험한 일들이 있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일들. 그림자 노동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그런 일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인간들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고, 노동을 더 보이지 않게 한다는 작가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동식물이 멸종하면 생태계가 변하듯이, 직업이 없어진다는 것은 인류의 문화가 바뀐다는 것인데, 그 바뀜에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변화를 통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그러니 생각해 보자, 어떤 직업부터 없어질 것인가. 


사라짐을 뒤로 하고 이 책에선 치열한 노동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힘든 일도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음도.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과 함께 문화도 사라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힘든 일을 계속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좀더 쉽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이 보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