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평양아...
김찬구 지음 / 비봉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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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재미교포의 16년간 북한 사업 체험기'라고 한다. 16년간 북한을 왕래하면서 사업을 했다고 하면 북한에 대해서 많이 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이 한정되어 있어서 여전히 내게는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저자가 북한을 드나들면서 겪게 된 이야기들은 내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겠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참 자주 북한을 드나들고, 많은 북한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저자에게도 북한은 여전히 낯선 곳이다. 일이 될듯 하다가도 한순간 안 되어 버리는 곳. 약속이라는 것이 실행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말이나 문서에 불과할 뿐이었던 곳.


여러 사업을 북한에서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저자의 이익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업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어떤 장애에 막혀 좌절하고, 돈과 시간과 정열을 흘려버리고 만 긴긴 시간에 대해서 책에 잘 나와 있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니 원칙대로 일이 처리 안 될 때도 많고, 또 수령과 당 중심의 사회니 그것에 배치되는 말을 할 수도 없고, 이동은 늘 안내원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회. 만나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는, 16년이나 다녔어도 혼자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곳.


그럼에도 자주 다니다 보니 북한 사회의 행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결국 북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제대로 하지는 못한 저자의 이야기.


그럼에도 저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는데, 사업가의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에 간혹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있기도 하지만 (요즘 같으면 성감수성 미비로 비판받을 말과 행동들이 있다. 그 점을 유념하고 읽어야 한다, 또 기업가들의 접대 문화 등도) 그럼에도 90년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어려움을 겪는 때의 모습을, 북한 소설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또 그들만의 사고에 갇혀 지내는 모습도 만나게 되고. 북한 지도부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가 있다. 그리고 북한이 폐쇄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들이 북한을 돕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우리가 통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자유로운 교류가 가장 좋은 답이겠지만, 국제 제재도 있고, 또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려는 모습 때문에 자유로운 교류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제 유지를 우선시 하는 집단은 자유로운 교류를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통제할 수 없는 만남은 다양한 생각을 양산하게 되고, 이것은 단일 체제를 고수하는 집단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쉽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런 쪽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이렇게 체제 바깥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아도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체제 바깥의 사람들과 만남이 자유롭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다. 가장 당성과 출신성분이 좋다는 평양에 사는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못하고, 북한을 그렇게 자주 드나드는 저자에게도 안내원 없이는 외출이 통제되는 상황, 그럼에도 저자는 아침 산책을 위해 안내원 없이 외출하기도 하는데, 이런 특혜를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어느 정도 북한에서 인정하는 사람도 이렇게 많은 제약을 받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 심한 제약이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많은 사업을 하려고 했고, 우리나라 기업과들과 북한 산업을 연결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지만, 난관에 부딪혀 성사된 일은 많지 않다. 그런 저자의 고군분투가 이 책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저자의 사업 경험과 더불어 저자가 만난 많은 북한 사람들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어, 이 책을 읽으면 여전히 폐쇄된 사회인 북한에 대해서, 적어도 북한의 90년대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된다.


한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입주 등으로 교류가 이루어졌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모두 끊겨 다시 이 책의 저자가 활동했던 시기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북한은 우리가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 삶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다. 지금 북한을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90년대 북한의 모습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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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률 시집을 읽으며 '스미다'란 낱말을 떠올렸다. 한번에 확 변하지 않고 시나브로 다가와 어느 순간 전체가 바뀌어 있음을 알게 하는 것.


  스며들다. 스미다. 그의 시집을 읽으며 무언가 촉촉한 기운이, 물기가 내 맘 속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스미다'란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듯이.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 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이병률 '스미다' 중 일부분)


  이병률 시집을 읽으며 그렇게 그의 시가 내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이병률 시의 무엇이 이토록 내 마음에 스며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자세 대문이 아닐까? 우리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만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나갈 수 있는 것.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 그런 욕망을 표현한 것이 이병률의 이번 시집 제목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어딘가로 가려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렇게 어딘가로 가려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빚' 때문이 아닐까?


평생을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할 빚. 그런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가야 한다. 빚을 갚을 수 있는 곳으로. 빚을 다 갚았을 때 우리가 있을 곳은 단 한 곳. 바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일테니.


    가슴을 쓸다


빚을 갚지 않은 인연이 있어

나무에 대고 비는 일이 많아졌다

빚을 빚으로 손에 쥐어주지 않아

오래도록 마음 녹지 않는 사람 있어

들에도 빌다 물에도 빌고 뿌리에도 빈다

흔들리는 긴 머리의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도 빌고

초겨울 밭에 다 익어 떨어졌겠지 싶은 

열매에게도 고개 수그린다

빌어 갚아지는 것이 빚이 아님에도 빌고

빌고 쌓아야 하는 것이 공덕이 아님에도 빈다

스스로 조아리지 않더라도

멀리 날던 새가 몸을 낚아 비탈에 끌어다 벌주기도 하고

하다못해 식탁 옆에 떨어져 밟힌 쌀알에도 놀라

양손을 모으다 통곡하게 한다

빚으로 야위어 세월의 중심에 눈길 주지 못하는 이

이자도 갚지 않아 길에 나돌아댕기지 못하고

마음만으로 미쳤다 소용돌이치는 값이 있다

저녁 그림자는 달에 닿은 지 오래건만

진종일 물가를 다 돌고도 모아지지 아니하는 생빚이 있다


이병률,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2013년 2판 10쇄. 14-15쪽.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빚으로 여겨도 좋지만, 이 시에서 빚은 우리가 금전적으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 신세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다르게 해석할 때 더 큰 울림이 있다는 생각이다.


무언가 태어났다는 자체가 빚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존재. 그럼에도 다 갚아질 수 없는 빚이라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하는.


하지만 그 빚으로 인해 우리는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빚이란 신세고, 신세란 함께 함이니,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빚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손에 만져지든 만져지지 않든,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이런 빚의 존재를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어떻게 막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빚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늘 변하는 존재여야 한다. 


이 시를 읽으며 이 '빚'이라는 존재가 어느덧 내게 '스며들'었음을 느끼게 된 이병률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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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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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온 지 오래된 책이다. 개정판이 나왔지만, 도서관에서 옛날 판을 빌려 읽다. 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많은 고민을 주는 책에 이르다 늦다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개정판이 나왔다는 얘기는 이 책이 아직도 쓸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 책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랆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는 보편과 특수라는 이분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젠더는 특수한 문제도, 소수자 문제도 아니다. (12-13쪽)


이제까지 유일한 것으로 군림해 온 목소리가 조금 낮아질 때, 비로소 다른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43쪽)


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 이른바 신사회운동이나 '탈근대적' 사회운동에서도 성(gender)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고, '평화운동가'라고 해서 저절로 성평등 의식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254쪽)


인용한 세 부분을 더 생각해 본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로 만들지 않고 여럿이 있음을 드러낸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 다름을 같음으로 치환하려 하지 않고 (우리가 남이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그 다름의 소리들이 사회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그래, 우리는 남이다. 그런 남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바로 사회다)


이러한 여성주의는 남성성에 갇힌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남성에게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들은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곧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단일한 목소리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이 어느 목소리인지 생각해야 한다. 왜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그간 조화롭다고 생각했던 것이 강자의 일방적인 문화에 불과했다는 것, 약자의 희생 또는 약자의 희생이 드러나지 않고 당연시 되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정희진이 이 말은 새겨두어야 한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라는 이 말.


그렇다면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곳에서 불거지는 성폭력 문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진보'라는 말에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진보'라는 말로 다른 갈등을 뭉뚱그리고, 무마했던 것은 아닌지.


'진보'는 오히려 다른 목소리들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제시하는 문제제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좀더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진보'는 더 고민하고 더 질문하고, 더 성찰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15년도 지난 과거에 쓴 글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만큼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여길 수 없게 한다. 모든 문제가 끝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는 것이고, 좀더 나은 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소리들을 누를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희진의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소통과 공존'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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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성스러운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1
김보영 지음, 변영근 그래픽 / 알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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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모두 잘 어울리며 함께 일하면서 살아가던 세상이 갑자기 너와 나를 분리하고, 남녀를 분리하고 다른 것들로 서로 나뉘어 갈등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자연까지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 인간에게 종속시키고 있는 중이다. 인류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그런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 철학자들, 인문학자들, 종교학자들 모두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답은 없다. 답은 없이 오로지 상상만이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억측이라고, 또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


이렇게 논리적으로 대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우리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문제를 끌어내고,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지, 답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답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특히 소설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소설은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상상이 현실인 세계, 그런 세계가 소설인데, 이 소설은 특이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전지전능하고 사랑과 자비로 인간에게 다가와야 할 신이 만약 차별주의자라면? 이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이렇게 다름을 차별로 전환시킨 데에는 만약 신이 있다면 신도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소설은 인류가 행복하게 모두 동등하게 잘 지내던 시대로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일을 같이 했다. 들에서는 다 함께 무장을 하고 짐승을 잡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같이 아이를 돌보며 요리를 했다.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모두 함께였으며 평등하게 공사를 정했다.

  신이 보기에 세상에는 좀더 질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신은 지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자는 우수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신은 그 말을 남기고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 (15쪽)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찾기 시작한다. 왜 신이 그런 말을 했을까? 차이는 단 하나... 남자에게는 고추가 있었다. 이 달랑 고추 하나 가지고 남자들은 자신들의 고추를 애지중지하면서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신은 다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증오가 세상을 휘감고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증오했고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했다. 늙은이와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했다. ... 다른 세상 한구석에서는 권력자들이 과학자들과 성별이 모호한 이들을 신의 이름을 살해하고 있었다. ... 이에 신은 만족하며 말했다.

  "이제야 세상에 질서가 잡혔구나." (25쪽)


섬뜩하지 않은가. 신이 차별주의자라면 우리 인류는 바로 이렇게 살아가게 된다. 소설 속 모습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습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별 차이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차별을 없애나가려는 노력이 일어난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소설은 더 큰 상상력을 보여준다. 함께 평등하게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신이 광화문에 내려온다. 거대한 모습으로... 이런 신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다른 방도를 찾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협력하는 모습이 아니라, 신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그것을 자신이 위대하다고 하는 근거로 삼는다.


신이 차별의 근거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신(소설에서는 신 중에 알파다)만 있지는 않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간으로 재림해 몸소 경험하는, 즉 차별을 경험하는 신들도 있다. 오메가, 입실론, 감마 등등. 


그들은 광화문에 재림한 신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즉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를 멈추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차별주의자인 신을 등장시켜 인간들의 삶을 조망한다. 신이 차별주의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모두들 멸망할 때까지 차별주의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찾는다. 찾아야 한다. 모두 차별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신과 비슷한 형상을 지녔다고 안전한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면에서 신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의해 도전받고 투쟁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렇게 신이 우리 인간은 어떤 질서를 찾을 것인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질서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서로가 협력해서 좀더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질서로 삼을 것인가? 답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번에는 이 소설을 다시 생각해 보자. 신이 차별주의자라고 해도 우리는 평화로운 질서를 추구해야 하는데, 과연 신은 차별주의자인가? 아니라고 모두들 답하지 않을까? 신이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우리 인간들이 서로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고 투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소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신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신이라면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이 차별로 가는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어울리며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을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의 의지는 언제나 신의 읾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본인 자신이 신이기에 신을 소환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이 세상에 뿌려진 신의 파편이며 지상에 내려온 신,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88-89쪽)


자, 우리 모두 신이 되자. 세상에 차별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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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에 두 번 [빅이슈]를 만난다. 정확한 명칭은 [빅이슈 코리아]라고 하겠지만, 줄여서 그냥 [빅이슈]라고 한다.


  주로 우리나라 사람들 이야기가 실렸기 때문인데, 가끔 다른 나라 이야기를 번역한 글이 실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라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 이번 호에서는 독일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물론 젊은 사람들도 함께 살아도 된다) 주거 공동체를 만든 사람 이야기가 실렸다.


  [빅이슈]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있으니, 이런 글들이 반갑고 또 고맙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방치되어 쓸쓸히 사라져가는 삶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습, 또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독일 브레멘 전 시장인 헤닝 쉐르프가 시도한 삶. 그 삶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늙어가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호에 실렸다. 그렇다. 주거공동체. 주택난이 너무도 심각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집을 한채 장만하려면 평생을 모아도 힘든 상황.


그런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데 주거공동체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거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주거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꼭 나이로 주거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 그리고 토착민들과 이주해 온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이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집에 관한 글 [빅이슈]이기 때문에 더 가슴에 다가오는데, 이번 호에서는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일은 삶을 지탱해 주는 주요 요소다. 그런데 예전에는 평생을 한 직장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면, 현대는 여러 직장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은 곧 내가 가는 길이 된다. 나는 한 길만 갈 수는 없다. 내 앞에 주어진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기 때문이다. 이 여럿의 길 중에서 내가 선택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여러 일 중에 내가 선택한다. 그런 삶을 살아간다. 길을 가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때 다른 길로 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일을 택해 살아가다가 그 일에서 자꾸만 지쳐가는 나를 발견할 때 과감히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일에 치여 또는 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이번 호에서는 그래서 과감하게 일을 바꾼, 삶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 이야기가 실렸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는 나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는 여러 일을 할 수 있다. 그 일을 하면서 내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일은 길이다. 내가 살아가는 길. 그러므로 한 가지 일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내 길을 가기 위해, 그 길이 나올 때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내 길을 가기 위해 나는 수많은 길을 걸어와야 했다고, 이제 이 길을 간다고, 또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그때 또 선택하면 된다고. 그렇게 [빅이슈] 이번 호는 일이 길임을, 삶이 일이고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빅이슈]의 좋은 점을 몇 가지 추리면 

[빅이슈]를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빅이슈]를 통해 따스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는 것

[빅이슈]를 통해 새로운 책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

[빅이슈]를 통해 다양한 삶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

[빅이슈]를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


더 많은 좋은 점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이 정도.  


저번 호에 이어 이번 호 표지도 그림이다. 표지 그림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커버 스토리가 소중한 [빅이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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