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
라미 카민스키 지음, 최지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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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 외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향인'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있다니... 그것도 심리학에서 쓰고 있었으니,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이향인, 영어로 'OTROVERT'라고 하는데, 이 말의 기원은 스페인어란다. 이 책의 저자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본 요소는 '남들과 다른 방향'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향인otrovert'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페인어에서 'otro'는 '다른'을, 'vert'는 방향을 뜻한다. 말 그대로 'otrovert'는 '다른 방향을 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18쪽)


'다른 방향'이라고? 어떤 방향의 차이지? 책에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보통 우리는 사람들을 내향인, 외향인으로 분류를 하지만, 이들이 지닌 공통점은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방향은 공동체(집단)에 들어가 있든, 들어가 있지 않든 모두 공동체를 향한다는 것. 즉 소속을 지니려는 성향.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향인'은 다르다. 이들은 얼핏 공동체에 속하고, 또 공동체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공동체 내부가 아니라 공동체 밖이라고 한다. 이들은 집단에 속해 있어도, 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도 늘 개인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그래서 집단 속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한다.


이런 이향인의 핵심 특성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37쪽)고, '언제나 관찰자일 뿐, 진정한 참여자가 되지 못한'(38쪽)다고 하고 있으며, '관행을 따르지 않고'(39쪽),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한다'(41쪽)고 한다.


자, 이들의 특성을 보라.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아닌가.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 그리고 관행을 따르지 않는 자세, 여기에 공동체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직장을 잘 살펴보라.


이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즉 일로 맺어진 관계이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 모여 일을 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나마도 요즘은 재택 근무라고 해서 개인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공동체 지향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이향인들, 이들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그들을 질병을 앓는 사람, 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저자가 의사로서 만나본 많은 이향인들이 이렇게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더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다고도 하니...


'이향인'이라는 특성을 알게 되면 사람을 어느 한 부류에 집어넣고 판단하는 일을 삼가게 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도 있고, 그들의 성향에 좋고 나쁨, 또는 옳고 그름을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그래서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


이향인이라고 해서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공동체보다는 자신을 더욱 중시할 뿐이다. 이들도 역시 보편적인 규칙들은 존중하고 지키려 한다. 저자는 '이향인은 대체로 보편적 원칙은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역적 원칙을 파악하는 데는 자주 어려움을 겪으며 그런 이유로 종종 여러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119쪽)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종종 그들을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바로 '예측 가능성은 사회적 통합을 돕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치'(120쪽)라고 하니 이런 점에서 이향인들이 오해를 사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성향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향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잘 공감한다고 한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공동체 지향성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솔하고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이향인이라는 다른 성향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왜 공동체 지향성이 없음에도 공감 능력이 뛰어날까? 그것은 '정서적 자급자족은 행복과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243쪽)인데, '이향인은... 본능적으로 배려를 택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이향인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 존재로 보기 때문'(245쪽)에 이향인은 자신의 정서가 충만하고 사람을 집단의 일부가 아닌 개인 전체로 보기에 다른 이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향인들...아마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많을 것이다. 그들을 "이상하네."라고 여기지 않고, 아,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구나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향인'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 좋을지, 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고,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끝부분에 '이향인 테스트'가 실려 있는데,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사람을 내향인, 외향인 또는 이향인으로 딱부러지게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특성들을 조금씩은 다 지니고 있을 테니. 다만 그 중 어떤 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겠지만.


결국 이 책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부모나 교사들이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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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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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 꼭 읽어야지 하는 작가가 있다. 그간 읽어온 책들에서 작가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내 저금통에 돈이 쌓인 것 만큼 기쁘다. 내가 넉넉해진 것 같은 느낌.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저금통에는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돈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돈을 모아놓는다. 그리고 그 돈은 쓰지 않아도 나를 든든하게 해준다.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쓸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아도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생각에,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즐거운 기다림 또는 기대를 늘 지니고 있게 되니까.


이 작가의 책이 나왔네.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 이번엔 어떤 내용일까 하는 기대. 은유 작가의 이번 인터뷰집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역시 할 수밖에 없었다.


'생업'


살기 위해서 하는 일. 그런데 '생업(生業)'이라는 말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준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 그래서 '생업'이라고 하면 힘듦과 어쩔 수 없음이라는 말이 함께 따라온다는 생각을 한다.


생업에 종사하다라는 말은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하다라고 이해하고, 이때 방점을 일을 하다에 찍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에 찍는다. 그래서 생업이라는 말은 즐거움보다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에, 힘듦과 함께한다고 여기게 된다.


어차피 삶은 즐거움만으로 차 있지 않으니, 즐거움이 즐거움으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힘듦, 싫음도 있어야 하니까,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기에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생업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생업은 먹고살기 위한 일을 넘어서고 있다. 자신의 삶을 살리는 일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살리는 일, 그것이 바로 그들의 생업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찾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은유 작가다.


은유 작가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면, 이 책의 끝부분에는 그러한 은유 작가에 대해서 알려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중에 '책이 쌓일수록 은유는 그간 만난 사람과 써논 들을 배신하지 않는 게 너무 중요해졌다'(301쪽)는 말과 '삶이 먼저고 쓰기는 그다음이다. 세상과 부딪쳐야 느끼고 배우는 게 있고, 쓸 것도 있다. '산다'가 앞에 있어야 해요.'(302쪽)는 말, 그리고 '사람들의 품이 넓어지는 글,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글인가가 기준이에요'(303쪽)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


맨 앞의 문장은 언행일치나 지행일치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삶을 배신하지 않는, 그들과 함께한 글을 배신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심,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문장처럼 본인 역시 세상과 부딪치지만, 세상과 부딪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쓰기라는 것, '쓰기'가 '삶'이 되게 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세를 지닌 작가, 당연히 그의 글은 사람들의 품이 넓어지게 하고,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글을 읽으면 우리들의 마음의 문도 어느 정도 열리고, 통도 조금씩 조금씩 커지게 된다. 또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 옅어지게 된다.


이런 은유 작가의 마음이 이 책에도 오롯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하는 일로 여기고 또 그렇게 하는 모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는 책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6411의 목소리'라고 해도 좋다. 자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사회의 주체로 설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가 좋아지는데 한몫을 하는 당당한 주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많은 사람들, 소위 '그림자 노동'이라고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의 소중함, 그리고 그들이 일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들, 또 일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모습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하여 이들의 '생업'은 힘든 일이지만, 이들의 힘듦은 곧 다른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받아들이고 또 당당하게 하려 한다. 그 일에 진심으로 다가가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생업'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을 넘어선 일이고, 힘듦보다는 보람을 느끼는 일이 된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을 모두 언급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좋아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몇몇 분들을 언급하면 (이름은 생략하고, 그들이 하는 일, 소위 생업을 이야기하면) 급식노동자, 청년 농부, 우리밥연대 요리사, 배달노동자, 독립 연구 활동가, 산업재해 노동자 부인, 싱어송 라이터, 타투이스트, 요양보호사, 청소노동자 등등이다. 


모두들,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고 주변을 살펴보자. 이렇게 '생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서 살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그런 우리도 바로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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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살아 있을 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그가 떠났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떠난 사람이야 알 수 없겠지만...


  그렇게 자신의 삶을 잘 산 사람은 떠나도 다른 존재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살아 있을 때 인정을 받는다는 것, 칭송을 받는다는 것과 다른 개념. 물론 살아 있을 때 인정받고 칭송받으면 좋다.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는다는 것, 그것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인정을 위한 삶만을 산다면, 과연 그것이 잘산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참숯. 하나의 삶을 살고 이제 다른 삶을 사는 존재다. 자신을 불태웠는데, 그냥 사라지지 않고 다른 존재들에게 좋은 것을 남겨준다. 그렇게 참숯은 삶과 삶 이후의 삶도 의미가 있다.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숯과 같은 사람이겠지.


타지 않으려 버티지 않고, 또 이왕 타버렸으니 그냥 재가 되어 사라져야지 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게 남 뒤에서 그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존재. 그런 삶. 


어떻게 살아야 이런 참숯과 같은 존재가 될까? 좋은 사회는 이런 참숯과 같은 존재들이 많은 사회일텐데...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다. 양선희의 '참숯'


참숯


  누가 참숯을 한 가마 보내왔네. 쌀통에 두면 벌레를 막고, 옷장에 두면 습기를 먹고, 냉장고나 화장실에 두면 악취를 제거하고, 거실에 두면 공기를 정화하고, 장독에 넣으면 장맛이 좋아지고, 배개에 넣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곱게 갈아 물에 타 먹으면 속병이 씻길 거라며, 참이지 못한 것을 속속 흡수하는 놀라운 색을 얻은 참숯을 보내왔네.


  나도 생을 잘 불태우면

  한번 더 타오를 수 있는

  불씨를 얻을 수 있을까.


양선희, 그 인연에 울다. 문학동네. 2023년 2판 1쇄.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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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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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사실주의' 네 번째 소설집. 


2023년부터 시작해서 해마다 나오고 있다. 작가들의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직접 겪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이런 일들이 있구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총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중에 이태승이 쓴 '빈칸 채우기'는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라고 한다. 빈칸 채우기. 소설의 처음에 이 빈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온다. 공공기관에서 연구(정책)보고서를 내는데, 그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서명이 있어야 하는데, 3년이 지나서 감사가 나온다고 하니, 그 빈칸이 문제가 된다.


생각해보자. 공공기관, 정부부처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처에서 공무원이 학자 및 전문가, 관련자들을 모아 정책 연구를 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고서로 낸다. 당연히 보고서에는 참여자들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자신들이 그 연구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 표시가 바로 내가 했다는 서명이니까.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감사가 없다면 서명이 없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감사를 코 앞에 둔 시점, 징계를 받아도 큰 징계는 받지 않을 거라지만, 하필이면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책 잡힐 일이 생기면 승진에 문제가 된다.


어떻게 하겠는가? 빈칸을 채워야 한다. 이제 참여자들을 찾아가 3년 전 보고서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 3년,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소설은 그 점을 살펴보게 한다. 그들은 연구보고서에 과연 진심이었을까? 


읽어보면 안다. 진심? 글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참여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를 추진했던 공무원은? 마찬가지다. 그 역시 보여주기식 업무를 했을 뿐이다. 서명을 받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소설 속 상황을 마냥 소설이겠지 하고 넘기기엔 무언가 씁쓸하다.


이런 표현 '서명 누락이 감사에서 단골로 지적받는 사안이라는 건, 그만큼 흔한 행정 실수라는 뜻이었다.'(이태승, '빈칸 채우기'에서. 264쪽)


흔한 행정 실수. 아니 행정 실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보여주어야 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여 보고서는 의미가 없다. 정책연구 용역보고서. 좋은 말만 짜깁기 되어 있는, 그럴싸한 방안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는 계속 반복되어 말만 바꾸어 제안된 내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굳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고, 서명이 중요할 리 없다.


용역비만 받으면 그만이고, 보고서만 내면 그만인 상황. 그런 상황이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다면 사회는 그럭저럭 유지는 되겠지만, 이것을 우리는 관료화라고 한다, 변화는 힘들다.


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3년 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에게서 정말로 그들이 연구하고 제안한 정책들이 실현되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이런 모습을 그냥 소설 속 상황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책의 기획 의도가 한국사회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그렇다면 이는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관료 사회가 보이고 있는 모습 중의 일부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일부가 별것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보고서만 화려하고 실질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렇게 시간과 돈을 쓰고, 참여자에게는 스펙만 쌓게 하는 현실.


이젠 이런 모습을 관료 사회가 떨쳐내야겠지. 떨쳐내기 위해서 또 연구 용역을 주고, 보고서를 내는 일을 반복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보고서 천국으로, 서류 상으로는 너무도 훌륭한 사회가 되어 있을 테니.


이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 소설집의 제목이 되었다. 밀린 서명을 받으러 가는데 운전을 해주는 소위 금수저라 할 수 있는 후배 사무관이 하는 말.


'월급을 받으면서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이태승, '빈칸 채우기'에서. 279쪽)


무슨 소리? '워라벨'을 주장하는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다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사무관이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노동을 당연한 듯 평생 해온 사람들'(성혜령, '퇴직금 돌려받기'에서. 154쪽)이 될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기보다는 아무 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들. 이런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워라벨'은 바로 사무관이 하는 말처럼 그들의 삶에 다가올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재미있게,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무사'라는 직업도 있는데... 그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강보라가 쓴 '우리의 투어'라는 소설이다.


여기서 함께 두면 물어뜯고 싸우는 물고기가 나오는데, 반대로 함께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물고기도 있음을. 노동자들을 서로 싸우게 하는 사람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함께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노무사'여야 함에도 정작 '노무사' 사회에서도 그렇지 못함을 이 소설에서 신참이라고 할 수 있는 송엄지라는 노무사의 발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정말, '워라벨' 힘들다.


그럼에도 '노란빛의 작은 물고기 이모티콘 네 개가 연달아 찍혀 있었다. 나는 한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그 독립된 개체들을...'(강보라, '우리의 투어' 중에서. 54쪽)이라는 표현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작가들이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각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리라.


이밖에 실린 다른 소설들에서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이런 저런 우리 사회가 지닌문제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이렇게 정리되어 있으니 표를 참조하면 된다. 


무엇보다 직접 이 소설을 읽으면서 2026년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각해보는 것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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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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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존엄사'에 관한 법이 국회에 상정되었다가 폐기되었다고 한다. 존엄사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들도 있는데, 우리는 이제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법만 있을 뿐이다.


이 '연명치료중단'도 임종기에 들어선 사람에게만 해당한다는 것, 즉 임종이 임박하지 않다면 어떠한 연명치료도 불법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하여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많은 경우에는 이러한 환자의 뜻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조다. 이 점을 최근에 알고, 설마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것이 확실하구나 하게 되었으니...


이런 상태에서 '존엄사'에 대한 법이 통과되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죽음에 대해서, 아니 죽음 앞에 겪게 되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 자신의 말기가 '쓸데없이 병원에서 고생하며 비용을 소모하고,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고, 고통 속에 낯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한다.'(48쪽)고.


왜 그러냐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2024년 기대수명은 83.7세, 건강은 65.5세로, 평균적으로 약 18년을 아픈 상태로 살다가 사망하게 된다'(99쪽)고 하니.


나도 그렇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렇게 내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두려운 일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가족에게 부담은 부담대로 지우면서도 고통은 고통대로 받으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태로 지내는 것.


과연 이렇게 자신의 삶을 끝내야 하는가? 삶과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죽음을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하는데, 끝은 분명히 있는데, 그 끝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끝이 올 때까지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버티게 하는 것이 (아니, 연명치료를 거부하면 끝이 명확히 보이면 자신이 결정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임종 시기가 아니더라도 끝을 인식할 때가 있으니) 과연 그 사람을 위한 일일까?


'존엄사' (그냥 이 용어를 쓰기로 한다. 안락사라는 말보다는, 또 이 책의 저자들이 쓰고 있는 '의사조력임종'이라는 말보다는 쉽게 다가오니까)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들은 그래서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고통에 대한 연민, 그리고 존엄을 '조력임종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냥 삶이 힘들기 때문에 죽어야겠다가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인식에 바탕한 결정과 그 고통을 더 이상 완화하기 힘들고 다른 치료방법이 없을 때, 삶의 존엄이 훼손되기 쉽다고 판단되어 그 사람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 '존엄사'라는 것.


그래서 엄격한 과정이 요구되고 있는데, 주로 명확한 자기 의사 표명과 결정을 숙고할 수 있는 기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동의와 다른 의사 두 명 이상의 소견 등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존엄사'가 법으로 인정이 되었을 때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는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적 압력으로 본의 아니게 죽음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사회적 약자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비용이나 가족에게 지워진 부담 등으로 '존엄사'가 법으로 존재할 때 사회적 약자와 같은 누군가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존엄사'만 남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존엄사 법'은 사회적 약자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암묵적 압력으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그러니 '존엄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완화치료'와 같은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고통을 줄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완화치료(우리는 흔히 호스피스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존엄사'와는 달리 생명을 유지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인데, '존엄사 법'이 통과한 나라들에서는 이와 같은 '완화치료'가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완화치료' 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존엄사'로 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고,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제기를 저자들이 하고 있는데...


'존엄사' 논의와 함께 '완화치료'와 '재택 임종'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저자들의 말에 동의한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또는 함께해야만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 


'존엄사'가 법으로 인정되고 있는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의 몇몇 주, 스위스와 존엄사는 인정하지 않지만 세계에서 처음으로 법원이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하는 일본, 또 죽음의 질이 좋은 대만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그 법이 도입되기까지의 과정과 취지, 그리고 실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런 논의를 통해서 저자들은 '존엄사 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뿐 아니라 가족 관계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208쪽)고 하고 있다. 즉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게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보자. 과연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아니 우리는 치료 체계도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지 않나? 지방에서는 필요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또한 돌봄을 가족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완화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받지 못하고, 또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받지 못하지 않나?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아니 무엇이 먼저라고 할 수 없다.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의료체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과연 의사단체나 복지부에서 이런 점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참고로 우리나라 완화의료 대상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부전, 만성호흡기부전 등 다섯 가지 질환으로 제한돼 있으며, 이들 역시 말기 진단 이후에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79쪽)고 하니 갈 길이 멀다.


그러니 먼저 완화의료의 대상을 생명을 위협받는 질환을 앓는 환자라면 누구나, 병의 종류나 질환의 그시기와 관계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국제적 표준에 맞게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 돌봄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의료복지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해서다. 저자의 말처럼 '좋은 죽음은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좋은 삶은 혼자 만들 수 없다.'(250쪽)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용어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같은 행위를 무엇이라 부르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때로 명칭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그 행위의 성격과 도덕적 의미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안락사'와 '연명의료 중단', '조력자살'과 '조력임종'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윤리적 무게를 지닌다.'(25쪽)


그래서 이 책에선 '의사조력임종'을 주요 용어로 사용하기로 했다(6쪽)고 한다. 이 용어는 '환자가 스스로 요청하여 그에 동의한 경우, 환자를 죽게 하려는 의도로 의사가 치사량의 약물을 직접 투약하거나,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가 직접 복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6쪽)고 하고 있다. 이 풀이에 따라 표에 나온 용어를 이해하면 될 것이다.


구분 유형 용어 설명
소극적 안락사 연명의료 중단 소극적 안락사
연명의료 중단
죽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거나(유보), 이미 시작한 치료를 멈추는(중단) 것.
죽음의 직접적 원인은 의료인의 행위가 아니라 기존
질병에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한다. 
적극적 안락사 자발적
(환자가 직접
동의)
자발적 능동적
 안락사
환자의 명확한 요청에 따라 의료인이 직접 치명적
약물을 주입하는 등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의료인 등 환자가 아닌 타인'이 죽음을 실행한다.
의사조력 자살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인이 치명적 약물이나 도구를
처방하거나, 처방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죽음을 실행하는 주체는 '환자' 본인이다.
비자발적
(의사결정 능력 없는 경우)
비자발적
능동적 안락사
아동이나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의사결정능력이 없어
본인의 뜻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 이루어지는 안락사.
반자발적
(의사 확인 없이 진행)
반자발적
능동적 안락사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임에도 그 요청을 명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진행하는 안락사.
기타   조력임종 자발적 능동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이 관여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
  자비로운 죽음 안락사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나, 죽임에 관여하는이의
동기(연민과 자비심)를 강조하는 표현. 전쟁, 재난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의 행위를 가리키기도 해, 의료 환경의
안락사와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조력임종을 둘러싼 주요 용어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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