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일기 눈빛사진가선 72
전제훈 지음 / 눈빛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탄광촌.


이곳에서 나온 석탄은 여러 연료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특히 연탄으로 요리를 하거나 추위를 물리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연탄이 아직도 곡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연탄은 과거의 물건이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에서나 보는.


이런 연탄으로 대표될 수 있는 탄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광부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사들이 즐거운 기사가 아니라 대부분 사고 기사였으니...


이들의 일터는 너무도 힘든 곳이었다. 막장이라고 했다.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석탄을 캐야 하는 직업. 방진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잘 가리려고 해도 온몸에 들러붙는 석탄가루들, 몸 속으로 들어오는 미세가루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갱도로 들어갈 때 그들의 모습과 갱도에서 나올 때의 모습은 다르다. 색깔이. 완전히 검은 색으로 뒤덮인 그들의 모습. 그들이 사진기 앞에 서기 좋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사진작가 역시 갱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화약기사로 광산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기록들. 결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될 노동들.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이 사진집에 있다. 


그렇다. 그들의 노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힘듦을 바탕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던 생활. 그러니 더더욱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노동을.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이었던 그들의 노동 생산물을... 그런 기록들. 사진으로 남은 기록.


이렇게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도록 한 작가의 노력이 고맙기도 하다. 이런 작가들이 있기에 우리의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말 - 평양문화어에서 험한 재미를 파헤치다
정소운 지음 / 황소자리(Taurus)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둥이박치기, 얼음보숭이, 꼬부랑국수, 가락지빵'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겠는가? 한때 북한말을 알자는 프로그램이나 교육이 있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순우리말로 외국어를 많이 바꾸었다고, 대표적으로 거론된 말들이 바로 앞에 인용한 말들이다.


주둥이박치기는 '키스'를, 얼음보숭이는 '아이스크림'을, 꼬부랑국수는 '라면'을, 가락지빵은 '도넛'을 말한다고 했다. 그런가보다 했다. 북한에 가본 적도 없고, 북한 사전을 찾아본 적도 없으니.


아니, 우리나라에서 북한 사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자칫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려 잡혀갈 수도 있는데... 예전에 '이적표현물 소지 금지법' 비슷한 것이 있었으니...


하지만 많은 책에서 순화한 북한말이라고 이 말들을 소개하곤 했다. 그래서 북한에서 이 말들이 쓰이는구나, 조금 어색한 말도 있지만, 괜찮은 말도 있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잘못 알려진 북한말'이라는 부분에서 이 단어들 실제로 북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403-412쪽). 그만큼 북한과 우리가 교류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때 공통 사전을 편찬하자는 움직임까지 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도.


여기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북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날래'가 나오는데, 이 말은 평안도 사투리라고 한다. 북한에서 우리 표준어라고 할 수 있는 '평양문화어'는 사투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신문에서는 이 말이 전혀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이 책의 저자는 노동신문을 중심으로 북한에서 쓰이는 말들을 살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도 있지만 처음 보는 말도 있다.


또 그 말을 어떤 의미로 쓰는지, 어떤 말들이 사라졌는지를 살피고 있다. 노동신문이면 북한의 공식 신문 아닌가. 그러니 이 신문에 쓰이는 말들은 북한의 공식언어라고 보면 된다.


저자가 방대한 양의 노동신문과 다른 매체들을 살펴서 북한에서 쓰고 있는 말들을 알려주고 있기에, 북한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떤 말들을 쓰고, 어떤 말들은 쓸 수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거기다 공식 매체인 노동신문에 실리는 글 중에 정말로 찰진 욕들이 왜이리 많은지, 북한은 그러한 찰진 욕들을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퍼붓는다고,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그러한 욕설을 싣지 않는다고 한다.


참. 가끔 북한에서 나온 성명서를 보면 와, 저런 심한 욕을 하기도 하는구나, 어떻게 정부의 대표라는 사람이 공식적인 문서에서 저런 표현을 하지 했었는데, 자신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강하게 외부를 향해 표현하는 방식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이 책은 북한의 공식 매체를 통해서 사용되는 말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낯설지만 친숙한 말들이기도 하다. 북한과 우리는 한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또한 많은 어휘들이 여전히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럼에도 분단으로 인해 달라진 말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제 북한이라는 말도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남한이라는 말이 북한에서 사라지는 과정도 살펴주고 있으니, 어떤 말들이 북한에서 쓰면 안 되는 말인지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다.


다만, 공식적인 매체에 쓰인 언어를 살피고 있기에, 아마 북한 당국이 특정한 말들을 금지했다고 해서 그 말들이 쓰이지 않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말은 탄압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오히려 억압이 심해지면 그 언어를 몰래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 말이 더 오래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런 일상에서의 말까지 살필 수 없는 것이 한계이긴 하지만, 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북한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니까. 아마도 관계가 회복되어 서로 교류가 된다면, 이 책의 2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노동신문에서 다루는 말들과 실제 생활에서 쓰는 말들의 같고 다름을 살피는 책. 공식적인 매체를 통해서 살핀 북한말이기 때문에 좀 답답한 느낌도 있다. 재미가 아니라 답답함. 언어를 꼭 이렇게 통제해야 하나 하는 생각.


하지만 교류가 끊긴 이때 북한에서 쓰는 말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남과 북은 아직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 그나마 위안이 될까.


하루빨리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해서 실생활에서 쓰는 북한말에 대한 책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창우 노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에서 이런 가사가 있다.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라는...


이 소설 제목을 보자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는데, 이름 없는 것들의 밤에서 '이름 없는'이라는 말과 '밤'이라는 말이 힘든, 어려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등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말 그대로 힘든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삶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그런 삶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않을까 했다.


연작소설이라고 한다. 첫소설 제목을 보고서는 어, 어디서 본 소설인데, 아니 내가 읽은 소설인데 했다. 읽으면서 역시 읽은 소설이야 했는데, 이 소설은 짧은 소설로 먼저 출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시작으로 연관된 내용의 소설 두 편이 묶여 이 소설집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흡혈인, 인조인간, 인간, 기계 등이 등장하는데, 이름 없는 것에 이들이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 소설에서는 흡혈인과 인간 마리카, 그리고 인조인간 빌리가 등장하는데, 인조인간이 빌리라는 이름을 얻고 기계로서의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물론 흡혈인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인간의 피로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기계에 종속된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인간 마리카의 이야기다. 아니 인조인간 마리카의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처음 읽으면서는 앞 부분에서 잠깐 언급된 마리카의 삶을 두 번째 소설에서 펼치고 있구나 했는데, 읽으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마리카가 생각하는 자신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기계에서 이용당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마리카는 자신이 기계 또는 기계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과거의 의식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식이 과연 인간일까? 그런 의식으로 인해 다른 존재에게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마리카는 그렇게 기계를 위한 첩자 역할을 하게 되고, 여기에 기계로 인해 아이를 낳는 기계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세 번째 소설에서는 이런 마리카의 아이라고 하는 존재가 흡혈인 앞에 나타난다. 그런 그에게 흡혈인은 '모르다'는 뜻을 지닌 '네빔'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네빔과 흡혈인 또다른 인간들, 그리고 인조인간들이 모두 나와 기계에 저항하는 장면.


그렇다고 기계에 승리하는 장면으로 끝맺지 않는다. 그런 행복한 결말을 내기에 지금 세상은 불확실하다. 우리는 이 소설에 나오는 기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으니.


그것들이 일으킬 부작용을 생각하기보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로움만을 생각하고 있으니... 그러한 이로움만을 추구하다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기계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수록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갈지도 모르는데...


그러면서 이러한 기계 시대에 소외되는 존재들의 문제에 대해서 눈 감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 말하듯이 끝까지 저항하는 존재들은 소수자들이다. 기존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던 존재들이 아니다. 특권을 누리던 존재들은 기계 시대에도 자신들의 특권을 잃지 않기 위해 기계에 협조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존재들,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은 그러한 기계 시대에도 역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계속 이름 없는 것들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가지려고 할 수록 탄압은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밤'에 살던 사람들... '밤'에 묻혀 영원히 이름 없는 것들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이들은 이름을 가져야 한다. 당당한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밤'이 아닌 '낮'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에서 그들은 '악마'로 분류되어도 된다.


이 소설의 끝에서 "우리는 모두 악마에게서 왔다'(286쪽)는 말이 이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이 좋은 이유는 재미있다.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고 싶어진다. 흥미진진한 소설. 그러면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글, 불편한 진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자극적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반론이라고 여기는 제목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니...


그렇다면 한글에 대해서, 세종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진실이 아니었던 말인가? 이런 주장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자료를 살펴야 한다. 한글의 창제과정부터, 창제된 이후에 한글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주로 누가 사용했고, 남아 있는 기록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한글에 대한 진실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이 창제된 지 600년이 되어 간다. 1443년에 창제했고, 1446년에 반포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으니 반포한 년도로 따져도 한글은 580년이라는 세월을 우리 곁에 있었다. 그동안 한글에 대한 연구도 많았고...


하지만 한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당시에 인쇄술과 종이의 문제다. 금속활자가 있었다고는 인쇄를 나라에서 관리를 했기에, 누구나 인쇄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그것을 찍어낼 종이는 많지 않았던 시대 아니던가.


그래서 옛날 이야기를 읽다보면 종이가 없어서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러한 이면지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개울가에서 모래에 쓰던지, 아니면 바위에 글씨를 썼다고 하지 않던가. 정보를 장악한 국가가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인쇄해서 유포하느냐, 인쇄하지 않느냐를 결정했으니, 한글로 인쇄된 종이가 많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또한 신분제 사회에서 문자를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근대에 들어서도 문맹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조선시대에는 문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삶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수시로 문서를 주고받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인쇄 역시 대량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가 겪었던 전쟁이다. 한글 창제 이후에 겪은 큰 전쟁만 해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해방이 되고나서 벌어졌던 전쟁까지.


대체로 전쟁은 많은 기록을 없앤다.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할 때에 기록물까지 챙기기는 힘들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벌어졌던 많은 전란으로 기록들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몇 안 되는 한글 기록들이 사라진 것.


여기에 그러한 기록물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근대 이후의 삶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먹고살기 바빠서 불쏘시개로 쓴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국가에서 편찬한 기록물들이야 철저하게 관리를 했겠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경우), 또 권세가들에서, 나름 전통있다고 자랑하는 집안에서는 자신들의 문집을 보관했겠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들은 그러한 기록물을 보존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쓴 글들이라야 주로 계약에 관한 사항이거나 개인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편지글들이었을 테니.


이런 기록물의 제약을 염두에 두고 한글에 대한 논쟁을 살펴야 한다. 당연히 지금 우리가 살필 수 있는 자료들은 국가의 공인을 받은 기록물들이 많고, 명문가라고 할 수 있는 집안들에 전해져 내려온 기록물들인 경우가 많다.


저자가 살피고 있는 기록물도 그렇다. 그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은 제목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훈민정음에 세종의 서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서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서문을 읽으면 세종은 백성을 가엾게 여긴 것이 맞다. 그들이 편리하게 쓰도록 한글을 만들 생각을 한 것도 맞다. 이 점은 '불편한 진실'이라고 제목을 단 저자도 인정한다.


다만, 창제 이후의 과정에서 백성들을 위한 문자가 그들에게 다가갔느냐, 또한 그들이 편리하게 썼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자료들을 살피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부민고소법(部民告訴法)'이라고 한다. 지방 수령이 잘못했을 때 그 고을의 사람들이 수령을 고발하는 제도. 조선 초기에 이 제도가 살아있었다고 하는데, 이 법이 폐지된 때가 바로 세종 때라고 하는 것.


백성들이 자신들의 뜻을 펼치게 하려면 수령들의 잘못을 한글로 적어 호소하는 법을 시행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법을 폐지했으니, 어떻게 백성들이 자신들의 뜻을 쉽게 펼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점을 들어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글을 사용한 사람들이 과연 일반 민중이었을까? 오히려 사대부라고 하는 양반들이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 여러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이 역시 '불편한 진실'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두 가지를 구체적인 사료(史料)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은 당연히 양반층이 많았을 것이다. 왜냐? 이들에게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또한 이들은 읽고 쓰는 일이 생활이었으니까.


반면 민중들은 먹고살기 바빴다. 글을 배워 읽고 쓸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루하루 노동하면서 사는 사람들, 그들이 한글을 익힐 여유가 있었을까? 결국 한글에 얽힌 불편한 진실은 세종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민중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노력해왔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소수의 집권층이 자신들은 경제적 부와 정치 권력, 그리고 문화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삶을 받치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문제삼아야 하는 것이다.


한글이라는 훌륭한 문자로 누구나 문화 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어졌으나, 사회제도로써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을 세종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종이 살았던 조선 초기, 왕권이 막 강화되기 시작한 때, 세종은 한글이라는 누구나 익히고 쓸 수 있는 문자를 선물로 남겨둔 것이 아닌가. 그 한글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후대의 몫이지 세종의 몫은 아닌 것이다. 물론 후대 왕들이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조선은 왕조 사회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왕-사대부-양인-천민으로 구성된 신분제 사회에서 문자를 익힐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집단은 사대부 이상이었다. 그것이 경제가 발전하면서 양인들도 여유가 생기게 되니, 여항문학이 생겨나게 되고, 이들에게도 문자의 필요성이 대두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민들도 삶에 여유가 생기면 문자를 익히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이때 한글은 그들에게 배우기 쉬운 문자로 다가갈 수 있다. 아니, 다가갔을 것이다. 그러니 1894년에 한글을 나라의 공식 문자로 선포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즉, 한글은 처음에는 양반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지만 점차 백성들에게로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세종 당대에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한글이 있었기에 민중들이 점차 문자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로 사대부(양반)층에서 한글을 사용했다고 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한글이 창제된 이후 그 쓰임이 어떠했는가를 살피고 있어서, 한글 창제 이후 한글의 쓰임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한글이 꾸준히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우기 쉽고, 우리 말을 문자로 표기하는데 좋은 문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히려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저자의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한글 창제 이후, 한글의 쓰임을 알고 싶으면 꼼꼼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스팅 - 유령화 시대의 사랑
도미닉 페트먼 지음, 최리외 옮김 / 동녘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령화 시대의 사랑'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실체를 만나지 않고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를 유령화 사회라고 할 수 있다면, 현대처럼 기술이 발전한 시대는 분명 유령화 시대가 맞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사회적관계서비스망(SNS)을 통해서 맺고 있다. 어떤 이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사회학자 로빈 던바의 연구에 의하면 '150명이 넘어가면 진정한 추동력을 가진 우정이나 지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며, 관계는 공허한 유사-사회적 제스처로 허물어진다'(16쪽)고 하니, 이런 관계를 중심으로 유지되는 사회를 유령화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유령화 시대에 너무도 쉽게 관계를 끊는 일이 발생한다. 끊기도 하고 끊김을 당하기도 하고... 이를 '고스팅'이라고 한다.


'2012년에 나온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고스팅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행동, 특히 SNS나 문자 메시지 등에서 갑작스럽게 응답을 중단하는 행동. 모든 의사소통을 중단함으로써 관계나 연결을 끝내는 행위'(26쪽)라고 정의된다.


이 정의만 봐도 지금 시대는 유령화 시대가 맞다. 너무도 쉽게 고스팅을 하고 또 고스팅을 당한다. 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관계가 계속 유지될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끊든, 끊김을 당하든.


하여 '고스팅은 우리 자신의 내면과 영혼에 빈 공간을 만든다'(12쪽)고 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고스팅을 연인 관계, 가족이나 친구 관계, 그리고 사회 관계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가장 친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가족 간에도 고스팅이 빈발하고 있음을 문학, 영화, 그리고 실제 사례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사람의 삶에 큰 상처를 남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가족 간에도 이런 고스팅이 일어난다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연인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순간 연락을 끊어버리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 상대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런 암시도 없이 연락을 끊는 경우도 많다고.


영화나 소설을 보면 이러한 일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이러한 고스팅이 낯선 일은 아니다. 다만, 고스팅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된다는 점. 그러한 고스팅이 빈번하다면 그 사회는 실체들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유령들과 같이 실체가 없는 관계들만 난무하게 된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이런 고스팅이 빈발하게 된 데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크다고...특히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들이 자신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사회적으로 고스팅을 유발하고 있다고...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치-경제적 권력자들도 사람들을 한 순간에 고스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고스팅 중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우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 것들과 '재개발'을 들 수 있겠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한 순간에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 이것은 정치권이 시민들을 고스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을 쉽게 고스팅 하는 사회라면 다른 분야에서도 고스팅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고스팅은 전염성이 강하니까.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관계들. SNS를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들. 이런 관계들을 모두 끊어야 할까? 아니, 그런 관계들을 모두 끊으라는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이미 우리는 그런 세상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되돌릴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잊어서는, 잃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직접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즉 특정한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존재, 지금처럼 SNS 속 관계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는 우리 몸과 몸이 만나는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


하여 '가까운 이들과의 싸움, 갈등 그리고 좌절은 그저 진솔한 대인관계의 연결감으로부터 형성되는 질감, 역사, 궁극적으로는 보상의 일부'(178쪽)라고 한다. 즉 이러한 갈등은 피할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어가는 데 필수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보상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으니...


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고 해도 인간들이 인간들과 만나 관계를 맺는 일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상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유령이 될 것이다. 그러니 만나야 한다.


만날 수 있는 장소들, 그런 장소들의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이 나와 다르다고, 나를 귀찮게 한다고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조금 내어주고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고스팅'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결국 이 책은 비대면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대면 사회'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 고스팅을 우리말로 '손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무언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으니, 손절, 배제, 따돌림 또는 자발적 고립 등이 모두 포함된 말이 고스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 그것이 바로 고스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