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끼리는 사는 곳이 달라도, 나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나 보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시집을 읽으며 우리나라 시인인 나희덕이 쓴 최근 시집 [시와 물질]이 떠올랐으니.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물론 글에 관한 많은 책을 내기도 했지만, 주로 애트우드의 소설을 읽었는데, 시도 썼다니, 좀 생소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애트우드가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다는 것. 꾸준히 시집을 냈다고 해서 열다섯 권이 넘는 시간을 출간했다고 하니, 어느 한쪽으로 애트우드를 규정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가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시나 소설 도는 수필의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
애트우드는 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시라는 것은 인간 존재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다루지요. 삶, 죽음, 회복, 변화를. 공정함과 불공정함, 불평등과 드물게 평등을. 각양각색의 세계와 기후와 시간을. 슬픔과 기쁨을.' ('독자들에게'에서. 7쪽)
여기서 '시'를 문학(예술)'로 바꿔도 될 것이다. 그러니 작가들이 어느 한 분야에서만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도 시와 소설을 모두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애트우드가 시집에서 한 말은 소설에서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인데, 문제는 시가 독자에게 도착하는데 늦을 수 있다는 것이다. '늦은 시'(13-14쪽)에서 시인은 '시라는 건 십중팔구 / 대단히 늦기 마련이다,'('늦은 시' 중에서)라 하는데, 그러면서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늦었다, 너무 늦었다, / 춤을 추기에는 대단히 늦어버렸다. / 그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라. / 빛을 더 밝혀라. 계속 불러라. / 노래를, 영원히.'('늦은 시' 끝 부분)라는 표현을 통해 포기하면 안 된다 하고 있다. 이것은 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애트우드가 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누군가의 말처럼 브레이크가 없는 세상이다. 멈춤을 모르는 사회, 성장이 아니면 망한다고 생각하는 세상. 그래서 끊임없이 성장, 성장을 외치는 사회. 성장하기 위해서는 온갖 물질들을 이 지구에 토해내야 하는 세계. 그런 세계다.
이런 세계가 멈추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하여 시인은 제발 멈추라고, 힘들지만 멈춤을 알아야 한다고 시 '플라스틱기 모음곡'(123쪽-136쪽) 중에 '6.마법사의 견습생'(129-130쪽)이라는 시에서 '마법사의 견습생 / 그것도 같은 이야기. '나아가기'는 쉽다, / 진짜 어려운 건 '멈추기' / 처음에는 아무도 그걸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러고 나면 '기다리기'는 너무 늦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시가 늦을 수 있지만,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시는 '인간 존재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떨까? 그런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바꿔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문학(예술)이 하는 역할 아니겠는가. 최근에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이 나오는 이유도 그런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아이들아'(139-140쪽)라는 시에서 시인은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표현하고 있다. 미래 세대들이 그런 세상에 살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무슨 권리로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아, 너희는 새가 없는 세상에서 자라게 될까? / 귀뚜라미가 있을까, 너희들이 사는 곳에? / 과꽃이 있을까? / 적어도, 조개는 있겠지. / 조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 ...... / 아이들아, 너희는 얼음 없는 세상에서 자라게 될까? / 쥐도 없고, 곰팡이도 없을까? // 아이들아, 너희는 자라기나 할까?'('아이들아'에서)
정말, 이런 미래를 물려주면 안 된다. 멈춤을 아는 지혜, 그것을 우리 조상들은 지학(止學)이라고 했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 아닐까. 시인은 나이로 보면 저물어가는 때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릴케의 말인 '시는 우리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과거이다'(84쪽)를 인용한 시 '좀비'(84-86쪽)의 내용과는 일대일 대응이 되지는 않겠지만, 애트우드의 이 시는 '좀비'가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과거, 우리의 현재를 만들고 또 미래를 만들어갈 버려서는 안 될 것들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함을 알려주는 '시'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애트우드의 시가 바로 그렇다.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겠다는, 계속 우리 곁에 머물면서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그런 시.
애트우드의 시집을 읽으면서 소설도 생각하게 됐으니, 다만 책의 분량을 고려할 수밖에 없겠지만, 영어 원문이 실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면 300쪽이 훨씬 넘어 문제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