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에게는 여러 연애 사건 가운데서도 그녀와의 관계가가장 심란하게 느껴졌다. 그 일 때문에 처음으로 자신이 바람둥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아가씨와의 사건은 잠시 공수병 같은 광기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느껴졌다. 베절 부인과의 관계는 저질스러운 배덕 행위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남편이 묵인해주었고, 서로 진정 사랑했으며, 레오노라는 오랫동안 아내 역할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그에게 아주 잔인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감상적인 그는 베절 부인을 잔인한 운명이 갈라놓은 자신의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다. - P193

그런데 매주 베절 부인에게 긴 편지를 쓰면서도 메이시 메이단을 하루 종일 못 본 날은 애가 타 미칠 지경이었다. 자기도 모르는새 초조한 마음으로 문 쪽을 바라보고, 그녀의 어린 남편을 몇 시간씩 미워하고, 늦은 오전에 메이시 메이단과 산책하러 갈 시간을벌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그녀가 썼던 귀여운 구어를 사용하면서 그 단어에 감상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에드워드는 살이 빠지고, 눈이 때꾼해지고, 가끔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본인 말마따나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 P173

그런데 아주 무더운 어느 날, 에드워드는 자기도 
모르는 새 레오노라에게 이렇게 물었다.
"메이단 부인을 유럽에 데리고 가서 나우하임에 
떨어뜨려주면 안 될까?"
레오노라에게 그렇게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별생각 없이 삽화가 든 신문을 읽던 참이었다.  - P173

저녁이 20분 늦어져서 그렇지, 안 그러면 이렇게 단둘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정말이지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두려움과 그리움, 더위와 열에 들뜬 채 혼자서 고통받고 있었다. 둘이 한달후브램쇼로 돌아가면 메이시 메이단은 여기 남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말이 나왔다.
어둑한 방 안에서 하인이 큰 부채를 부치고 있고, 지친 레오노라는 의자에 가만히 기대 있었다. 둘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주 아팠기 때문이다.
이윽고 레오노라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아까 찰리 메이단에게 그런다고 약속했어요. 비용은 내가 내겠다고 했고요."
에드워드는 하마터면 "세상에!"라고 할 뻔했다. 그는 레오노라가 메이시, 베절 부인, 심지어 그 스페인 아가씨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로서는 정말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레오노라가 자기 재산뿐 아니라 여자 문제까지 직접 관리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가 더욱 밉살맞고, 그러면서도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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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읽기 시작... 구입한 지 몇달이 지났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1장
이렇게 슬픈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나우하임‘에서 애쉬버넘 부부와 9년이나 절친하게 지내왔다. 아니, 절친하다기보다 좋은 장갑이 손에 딱 맞듯이 그렇게 느슨하고 편하면서도 가깝게 지내왔다고나 할까.  - P11

아내와 나는 애쉬버넘 부부와 더할 수 없이 가까운 사이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는 영국인들의 경우에만 가능한 일인데, 오늘날까지도 이 슬픈 사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나는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6개월 전 처음 영국에 왔고, 영국인들의 본심은 전혀 알 길이 없다. 내가 알던사람들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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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좋은 점이라고는 없는 만성 질병˝이라고 사회과학자 로보트 와이스Robert Weiss는 말한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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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빌딩 6층이나 17층, 아니면 43층 창가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도시는 세포의 집합처럼 보인다. 어둡기도 하고, 초록색, 흰색, 금색의 불빛이 쏟아지기도 하는 수십만 개의 창문을 가진 세포집합. 그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저마다 볼일을 본다. 그들은 내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가까이 가닿을 수는 없다. 세계 어느 도시든 밤이면 겪게 되는 이러한 현상은 아주 사교적인 사람에게도 고독의 전율을, 단절과 노출이 복합된 불편한 감각을 전해준다. - P13

사람은 어디서든 고독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느끼는 고독에는 특별한 향취가 있다. 많은 사람이 무리 지어 사는 도시에서의 삶은 고독과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단순히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는 내적 고립감을 밀어내기에 부족하다. 타인들과 어깨를 비비듯 가까이 살면서도 황량하고 적막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며, 오히려 그런 데서 쉽게 느낄수 있다. 도시는 외로운 곳일 수 있다. - P13

사전적 정의에따르면 고독은 타인과의 교제가 없음에서 비롯되는 불행이라고 한다. 그러니 놀랄 것도 없이 군중 속에서도 고독의 극치에 도달할 수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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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모 일은 너무 안됐어. 하지만 진모가 한 일은 정말 옳지 못한 거야.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잖아. 나는 정말 모르겠더라. 진모가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어."
진모의 행동을 꾸짖는 천사의 얼굴은 엄격했다. 그건 옳은 말이었다. 졸개들과 더불어 연적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갈겨대는 짓 따위는 해서는 안 될 일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나라면 주리처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P173

진모 때문에 나는 울지 않았지만, 김장우는 자신의 형 때문에내 앞에서 눈물을 비쳤다. 진모의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 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 P188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나 역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이러이러한 일로 지금 죄수복을 입고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해줄 수 있었다면 김장우의 아픔은 훨씬 가벼워졌을 것인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몇번이나 망설였지만 결국 말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 그랬는지, 왜 김장우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지 여행을 떠날 때까지 나는 정녕 알지 못하였다. - P188

그러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마침내 나를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더 의심해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모든 일들의 앞뒤를 꼼꼼이 더 살펴봐야 한다고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다. - P189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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