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경 - 난 인형이 아니예요

 

 

 

고대 로마인들은 쾌락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 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로마제국의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만끽이라도 하듯 로마인들은 더 강도 높은 쾌락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여자는 예외였다. 여성의 몸은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로마의 일인자》를 읽어 보면 당시 사회 인식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마리우스는 집정관 자리에 오를 기회를 잡기 위해 첫 번째 부인 그라니아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라니아는 수십 년 동안 남편에게 애정을 받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다. 냉정한 남편의 부탁에 그라니아는 모욕감을 느끼지만, 남편의 정치적 야심을 이해하고 그를 포기한다.

 

 

 

 

 

 

 

 

 

 

 

 

 

 

 

 

 

마리우스와 그라비아는 25년 동안 섹스리스 부부로 살아왔다. 그녀는 ‘아이를 원해서’ 마리우스에게 다가갔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고대 로마의 부부들은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서 섹스를 했다. 부부 사이에 친밀한 에로티시즘이 공유되지 않았다. 《로마의 일인자》 1권에 술라와 율릴라의 첫날밤 장면이 나온다. 훗날 로마의 일인자가 될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 거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라. 작가는 싱거울 정도로 두 사람이 섹스하는 장면을 야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마치 엄숙한 분위기 속에 부부만의 종교의식을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술라는 율릴라에게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하고 있어도 실제 로마 남편들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서로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하려면 전희(前戱) 시간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여성의 경우 전희 과정을 거쳐 서서히 성적 자극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믿는 성적 금기 중 하나가 남편은 아내에게 커닐링구스(cunnilingus)를 하지 않게 되어 있다. 작가 컬린 매컬로가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첫날밤 장면을 상상했는지 아니면 일부러 관능성이 떨어지도록 썼는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술라는 커닐링구스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진 : 드루수스의 저택 내부도 (로마의 일인자 2213)

 

    

주인의 침실이 두 개나 있다. 침실을 많이 만든 이유가 있다. 이게 다 집의 주인인 남편의 성적 만족감을 높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로마 남자들은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상한 기준을 내세웠다. 아내에게는 정숙한 섹스를 요구하는 반면에 첩이나 여자 노예를 거리낌 없이 품어 안았다. 남편은 아내보다 개인 침실을 여러 개 가질 수 있었다. 침실의 목적은 애인과 여자 노예들을 만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황제의 후계자로 지명될 뻔한 어느 로마인이 아내로부터 바람기에 지적받자 변명을 했다. “다른 여자들과 욕망을 발산하게 내버려두라. 아내의 동의어는 쾌락이 아니라 품위다.” (《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93쪽)  여자들은 태어나서면서 죽을 때까지 늘 정숙하게 행동하면서 다녀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원해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고른 신랑감을 만나야 했다. 소설에 나오는 로마 유행가에 보면 가장의 절대적인 권한 속에 갇힌 로마 여성들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나의 여동생 피기 필러
방앗간 구스와 같이 있다 들켰어.
방앗간 탑 밑에
여동생의 꽃이 짓눌렸지.
아버지 말씀, 그만 됐다.
벌써 당한 게 뻔하구나.
어서 당장 시집가거라.
안 그럼 궁둥짝이 회초리맛을 보리라!

 

(《로마의 일인자 1》 364쪽)

 

 


고대 로마의 결혼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손 있는 결혼식’인데, 신랑은 신부의 결혼 지참금을 포함한 전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 반대로 ‘손 없는 결혼식’은 신부의 재산을 인정해주었다. 단, 신부는 친정아버지의 통제에 벗어나지 못한다. ‘손 있는 결혼’을 한 아내가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가 남편에게 적발되면 일종의 명예 살인으로 남편이 아내를 죽일 수 있었다. ‘손 없는 결혼’을 한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은 그녀를 죽일 권한이 없다.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친정아버지다. 로마 사회는 간통을 저지른 여자를 범죄자 정도로 취급한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다. 특히 명예를 중요시하는 상류 계층 가문의 여성이 결혼하기 전에 남자와 몰래 연애한다거나 결혼 생활 중에 바람피운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들마저 그녀를 손가락질하고 무시했다. 《로마의 일인자》의 율릴라가 실존 인물이었으면, 그녀는 아버지의 손에서 일찍 생을 마감했다. 율릴라는 자신의 애틋한 감정을 담아 술라에게 풀잎관을 주게 되는데, 이 사실이 안 그녀의 부모는 크게 분노한다. 로마 여자는 결혼해도 아버지의 그늘에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술라와의 첫날밤을 보내고 난 뒤에 내뱉은 율릴라의 하소연처럼 로마 여자는 아버지의 그늘에 잠깐 벗어나 남편의 그늘 속으로 편입되면서 살아야 했다. 아버지와 남편 손이 이끄는 대로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섹스 돌(sex dol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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