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감정이 전달되어야 한다
레오나르도는 잠시 고향을 여행한 후 피렌체로 돌아왔다.
그가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했음이 틀림 없을 텐데 현존하는 작품이 없다.
레오나르도는 곧 베로키오 작업장의 반장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메디치 궁전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직접 볼 수 있었다.
로렌초는 베로키오에게 공작을 위해 로마 스타일의 갑옷과 헬멧을 디자인하라고 했다.
레오나르도가 전사의 옆모습을 그렸는데 아마 그런 갑옷과 헬멧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갑옷은 소용돌이 무늬, 사자의 얼굴과 발톱, 잇빨, 독수리 날개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을 것이다.
밀라노 공작이 피렌체를 방문하는 중에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를 포함한 조수들과 함께 종교적 축제 행렬과 함께 교회 상 펠리체에 <수태고지 Annunciation>를,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에 <그리스도의 승천 Ascension of Christ>을, 산토 스피리토에 <사도들에게 성령의 내림 Descent of the Holy Ghost to the Apostles>을 걸었다.
3월 21~22일 그림을 모두 걸었을 때 재앙이 닥쳤는데 불이 나서 교회를 전소하고 말았다.
화재의 원인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세워놓은 많은 횃불들 가운데 하나가 쓰러져 일어난 것 같았다.
레오나르도에 관해 정통한 학자 케네스 클락Kenneth Clark은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의 취미는 "옷을 잘 입고, 말을 길들이며, 류트lute(14~17세기의 기타 비슷한 현악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레오나르도는 1472년 견습생활을 마치고 마스터로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는데 20살 때였다.
그 해 그의 이름이 페루지오와 보티첼리 이름과 나란히 성 누가 교회의 지출 명단에 올라 있었다.
성 누가 교회가 레오나르도의 후원자가 된 것은 <동정녀 마리아 Virgin Mary>의 초상을 그린 후부터였다.
레오나르도가 마스터가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수련기간이 끝났다는 것 뿐이지 여전히 베로키오의 조수로 그를 도왔다.
그는 여전히 드로잉하면서 기술에 완벽을 기했는데, 석고로 제작된 "웃음짓는 여인의 머리와 아이들의 얼굴을" 드로잉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마스터가 된 후 처음 제작한 것을 아버지가 싼값에 팔았다고 적었고 이는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세르 피에로가 지방에 있을 때 소작인 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소작인은 자신이 무화과나무로 방패를 만들었다면서 피에르가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에게 장식을 의뢰하면 그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피에로는 그러마하고 그 일을 레오나르도에게 시켰다.
레오나르도는 나무가 거칠게 깍인 것을 보고는 자신이 깍아 매끈하게 한 후 특별한 유약을 발라 광택을 냈다.
그는 방패에 고르곤Gorgon(그리스 신화의 동물로 머리가 뱀이며 보는 사람을 도로 변화시켰다는 세 자매의 괴물)의 머리를 그려 넣었는데 적을 두렵게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고르곤을 그리기 위해 크고 작은 도마뱀, 귀뚜라미, 메뚜기, 박쥐, 그리고 그 밖의 낯선 동물들을 드로잉하며 습작했다.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괴물을 만들기 위해 그는 "검은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부터 나와 턱을 크게 벌리고 불을 토해내고 눈에서는 빛이 나며 코에서 독이 있는 김이 방사되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뱅패의 장식을 완성한 후 아버지를 오게 해서 의견을 들으려고 했다.
피에로는 아들의 작업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만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는 자신이 마귀를 봤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르도는 "방패는 이래야 합니다. 가져가세요"라고 했다.
바사리는 이 말에 덧붙여서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예술에서 기대하는 점입니다"라고 레오나르도가 말한 것으로 적었다.
피에로는 곧바로 장터에 가서 화살이 방패에 꽂힌 모습으로 장식된 것을 하나 사서 소작인에게 주었고 소작인은 매우 흡족해 했다.
피에로는 아들이 장식한 방패를 몰래 피렌체 상인에세 100두카트를 받고 팔았다.
그 상인은 그것을 미라노 공작에게 300두카트에 팔았다.
이 이야기는 바사리에 의해서만 전해오지만 사실을 그가 기록한 것 같으며 그 방패는 현존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쓴 『회화에 관한 논문』에서 화가는 환상적인 동물을 실재의 요소들에서 구성해야 한다고 적었다.
용을 그릴 경우 그는 "맹견이나 사냥개의 머리에 고양이의 눈, 소마기porcupine의 귀, 그레이하운드(몸이 길고 날쌘 사냥개)의 주둥이, 사자의 눈섭, 늙은 수탉의 볏, 거북이의 목"으로 할 것을 권했다.
이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는데, 베로키오가 의전에 사용하는 헬멧에 장식한 적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이를 글로서 분명히 했다.
레오나르도는 미술품이 단지 장식적이서는 안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은 그가 고향의 동굴 앞에서 두려움과 욕망으로 보고 싶어 했던 것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예술이라는 미지의 동굴 속에 이런 것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는 『회화에 관한 논문』에서 드로잉을 시에 비유하면서 느낌, 인상,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매개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드로잉의 기능을 기교적, 과학적 화제에 시각적으로 시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드로잉을 시인의 언어에 비유하면서 객관적 실재를 가장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적었다.
"드로잉을 하는 사람은 이야기적 회화를 구성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의 외양을 예리한 선으로 종료시키는 것을 억제해야 하며 대부분의 화가들이 목탄으로 세심하게 묘사하는 데 이런 방법을 억제해야 한다. 세심하게 묘사하는 것이 완벽하게 보일런지는 몰라도 예술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데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갖고 있는 사고나 감정을 전달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드로잉을 완성시키고, 아름답게 하며, 모양을 잘 배열하기 위해서 화가는 터무니 없는 모양을 그리기도 하고 높거나 낮게 또는 멀리 있거나 바로 앞에 있는 것인양 그려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지식에 대해 칭찬을 받을 자격이 없다. 자, 시인들이 어떻게 시를 짓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쓴 시인들에게는 몇 구절을 삭제해서 나은 문장으로 새롭게 쓰는 것이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므로 화가는 오브제의 부분을 대충 그려야 하며 인물의 아름다움과 장점에 깊이 생각하기 전 인물의 동작을 적절하게 재현하는 데 숙고해야 하고 이야기적 회화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정신적인 점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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