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학예를 연결시킨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술과 학예를 연결시킨 최초의 인물을 꼽으라면 레오나르도라 할 것이다.
원근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말했다.

"자연계의 원인과 이유를 탐구하다 보면 빛이 주로 관람자를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학의 특성 중에서 증명의 확실성이야말로 탐구자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가장 주요한 특성이다. 그러므로 원근법은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와 학설 중에서 으뜸으로 인정되어야 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이 문학보다 손작업이 훨씬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품격이나 권위면에서 시에 비해 뒤떨어진 대접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미술은 정신보다는 육체적 노동이 훨씬 더 요구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레오나르도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회화가 그 어떤 것보다도 손으로 하는 일이라고 해서, 또 상상을 통해 착상된 것을 손이 만든다고 해서 회화를 기계적인 일로 보는데, 작가들 역시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펜을 이용해 손으로 적지 않는가."

레오나르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화가의 창조력이 시인의 것에 비해 못하지 않음을 역설하면서 회화가 어떤 의미에서 시보다 더욱 더 완벽하게 재현해내며 특히 시가 뽐내는 도덕적 목적을 회화가 시만큼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했다.

"시인이 '내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나 짓겠다'고 말한다면 화가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아펠레스Apelles가 중상Calumny이란 주제의 작품을 그렸듯이 시가 도덕철학에 관련되었다면 회화는 자연철학과 관련이 있다. 시는 정신의 활동을 묘사하며 회화는 정신이 표출하고자 하는 점을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나타낸다. 시가 무시무시한 이야기로 사람에게 겁을 준다면 회화도 동일한 이야기를 재현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회화가 동작과 얼굴 표정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보여주기 때문에 도덕적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오나르도의 사고와 감정은 그가 말한 대로 그가 묘사한 인물의 제스처, 태도, 행위 등으로 나타났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글을 쓰듯 신속하게 손을 놀렸을 것이다.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1451~1508)의 궁전 소속 시인 베르나르도 벨린치오니Bernardo Bellincioni는 1492년에 사망했는데 그는 레오나르도가 작업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며 또한 드로잉하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그의 『서리 Rime』는 1493년에 출간되었는데 그는 저서에서 레오나르도의 드로잉을 먼저 칭찬했고 다음에 채색을 칭찬했다.

레오나르도는 베로키오의 사클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는데, 베로키오의 작업장은 마스터 예술가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로 마음만 먹으면 베로키오를 도와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가능하면 자신의 독단적인 사업에 매진했다.
레오나르도는 안토니오(1432년경~98)와 피에로 풀라이우올로Piero Pollaiuolo(1441년경~96년경)의 작업장과도 관련을 맺었다.
그는 형제의 작업장에서 인체의 운동에 따른 근육의 변화와 뒤틀린 인체의 근육을 배웠다.
레오나르도는 피에로의 <벌거벗은 남자들의 전투 The Battle of the Nude Men>를 보고 해부학의 필요성과 근육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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