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건축가, 조각가, 화가, 그리고 작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1404~72)는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이다.
그는 1404년 제노바에서 망명중인 피렌체 상인의 사생아로 태어나 파두아와 볼로냐에서 교육을 받았고 라틴어에 정통하여 스무 살 때 라틴어로 희극을 쓸 정도였다.
그가 피렌체로 간 것은 스무네 살 때였으며 당시 유명한 예술가들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기베르티, 루카 델라 로비아, 마사초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승마에 뛰어났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철학자, 수학자, 공학가이기도 했다.
그는 1432년부터 1464년까지 교황청에서 서기관직을 맡았다.
당시 교황청의 정책은 점차 중앙 이탈리아로 집중되는 추세였으며 주로 상인계급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들의 사고방식 또한 인문주의적 성격이 짙어 알베르티는 그곳에서 고향 피렌체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철학, 과학, 고전, 예술 등의 각 분여를 골고루 탐구하면서 윤리학, 사랑, 종교, 사회학, 법학, 수학, 그리고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 관한 논문과 소책자를 펴냈다.
그는 시를 썼으며 고전에 능통했다.
그는 1436년에 첫 이론서를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회화론 Della Pittura di Leon Battista Alberti Libri tre』을 출간했다.
그는 라틴어로 쓴 후 브루넬레스키를 위해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주제로 논문을 썼으며 건축과 조각에 관해서도 썼다.
그는 타계할 때까지 『건축론 De Re Aedificatoria』을 집필하는 데 전력을 다 했는데, 10권에 달하는 이 전집은 그가 사망한 후 1485년에 출간되었고 건축에 관한 최초의 이론서였다.
그는 1450년경에 쓰기 시작하여 1472년 타계할 때까지 계속해서 추가하고 수정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펴낸 책이다.
건축은 인간의 실제 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그의 이론에서 전반적인 그의 사회사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건축을 하나의 완전한 시민 활동의 장으로 본 그는 건축이 유용적인 면과 장식적인 면에서 도시에 영광을 가져준다고 주장했다.
그의 『조각론 De Statua』은 1464년 바로 직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련의 저술을 통해 미술을 신학적 진실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중세의 관념에서 벗어나 미술에 대한 이성적 기반을 강조했으며 예술가가 과학, 즉 역사, 시, 수학을 기반으로 작업해야 함을 역설했다.
알베르티의 인생관에서 특징이 되는 점은 기독교의 가르침보다는 고대 철학에 입각한 합리주의이다.
그는 기독교 신학에 끊임없이 경의를 표했지만 그의 기독교관은 전형적으로 인문주의적 색채를 띤 종교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생애 대부분 피렌체와 로마에서 보냈고 이 두 곳에서 건축가로 활동했으며 만투아와 리미니Rimini에서 활동한 적도 있었다.
그는 교황 니콜라스 5세와 우르비노의 공작 페데리코 다 문테펠트로와 가까운 사이였다.
그가 디자인한 건물들 가운데는 만투아의 성 안드레아와 성 세바스티아노 교회가 있으며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와 루첼라이 궁전의 외관을 그가 장식했다.
그는 화가와 조각가로서도 활약했지만 현존하는 그림과 조각품은 없다.
아마 회화와 조각에서는 아마추어 정도였던 것 같았다.
자화상을 기념 명판으로 제작한 것이 두 점 현존하며 1450년경에 제작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