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를 체험하는 영혼
신을 향한 영혼의 상승은 두 가지의 도움으로 달성되는데 지성과 의지이다.
신에 대한 지식은 신에 대한 에로스를 수반하고 궁극적인 비전은 즐거움의 행위를 수반한다.
피치노는 『플라톤의 신학, 영혼들의 불멸성에 관하여』 대부분을 영혼의 불멸에 관해 논했는데, 영혼의 불멸에 대한 옹호의 논증을 플라톤, 플로티노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많은 카톨릭 신학자들의 사상에서 빌려 왔다.
그의 논증은 당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한 인문주의자들의 형이상학적 노력의 일환으로 간주해야 한다.
영혼의 불멸에 대한 사상은 당대 예술가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쳐 육체의 아름다운 표현을 통해 불멸하는 신의 광휘를 갈구하게 했다.
특히 르네상스 전성기의 미켈란젤로에게 이는 예술적 신념이 되었으며 그로 하여금 그같은 정신을 작품에 구현하게 했다.
신의 광휘란 윤회를 통해 만물이 신과 결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피치노는 자연을 미 혹은 선의 작품으로 보고 선과 자연이 일치하는 데 사람의 영혼이 매개적 존재로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는 르네상스를 특징짓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의 철학적 표명이기도 하다.
영혼이 매개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플라톤이 전한 소크라테스의 말로 하면 육체는 땅에서 왔지만 영혼은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영혼이 신성을 지녔으므로 불멸성을 마땅히 지니게 되며 인간의 존엄성 또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피치노는 자연을 형상과 질료의 결합체로 보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영혼Spiritus mundanus의 매개를 통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질료는 형상을 결여할 뿐만 아니라 생명도 없는 비존재에 불과하다.
질료가 형태와 운동 그리고 존재로 드러날 수 있는 것은 형상을 입을 때인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영혼이다.
영혼은 영원을 좇으면서 동시에 일시적인 질료를 정신화하고 고양시킨다.
이는 불과 물 사이를 매개하면서 불을 열에너지로 변화시키고 물을 수분으로 증발시키는 공기에 비길 만하다.
피치노는 영혼의 불멸을 사람의 인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로 보았고, 플라톤의 에로스 개념을 카톨릭의 자비나 사랑charitas과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하여 심리적 요소와 신학적 요소가 융합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플라톤적 사랑amor Platonicus이라는 말을 만들어 플라톤이 묘사한 정신적인 사랑 혹은 그 자신이 말하는 신적인 사랑을 의미했다.
플라톤에게 에로스는 예지와 감각의 중간에 해당하며 예지와 감각의 결합이 이데아를 추구하여 불멸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에로스는 예지와 감각의 결합으로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전제가 되는 가운데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다.
신적인 사랑이 선 혹은 미로 하여금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게 했고, 피조물들로 하여금 자신과 일체가 될 수 있는 의지가 생기게 했으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사랑이 자연을 통해 다시 자신에게도 돌아오게 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런 사랑은 육체의 미를 통해 신적 미로 상승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일종의 욕구다.
사랑은 미를 소유하려는 인식적 덕에 의한 욕구, 혹은 선이 창조해 퍼뜨린 미를 향한 욕구desiderio di bellezza, 혹은 소유하려는 욕구이며, 사랑을 통해 선은 자신이 창조한 자연을 자연에 내재한 미를 통해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는 것이 피치노의 논증으로 선은 정신, 영혼, 자연, 질료의 중심이며 그 모든 것에 미가 두루 퍼져 있다.
정신에는 이데아가 있고, 영혼에는 이성이 있으며, 자연에는 영혼이 생성될 수 있는 씨앗Semina이 있고, 질료에는 형상Form이 있으며, 미의 원리가 되는 선은 모든 미적 사물들의 원인이 된다.
사람은 자연에서 선의 특색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게 되고, 자연의 힘 즉 자연에 내재한 미에서 선의 위력을 어림할 수 있으며, 이런 자연의 유용성에서 선을 볼 수 있다.
자연미는 선의 광휘로서 변화의 현상을 나타내지만 그 자체는 불변한다.
자연미는 형이상학적 실재의 미가 지닌 형상의 반영으로 완전한 미는 아니다.
피치노의 사랑과 미에 대한 사고가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정신에 내재한 추상적 형상을 질료로 구현하게 했다.
예술가들은 그렇게 하는 데서 형상의 구체성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