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교수신문의 청탁을 받고 쓴 것입니다.
김경인의 <소낭구 이야기> 시리즈가 기대된다
김경인(1941~)은 노력하는 화가이고 스스로 “화단 뒷켠에서 아웃사이더”로 자처한다.
그래서 1994년 제6회 이중섭미술상을 받을 때는 영광과 더불어 “생소함”을 느꼈다.
197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74년 제3그룹전에 출품하고 회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0년에 걸친 회화여정을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시기는 1974~91년으로 17년의 창작을 민중미술에 헌납한 때이다.
1974년 33세 때 그린 <문맹자 34-1>는 앞으로 서정적 표현주의를 추구하게 될 바로미터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국민 모두에게 문맹자가 될 것을 강요한 군사독재에 대한 항거를 방 안에 갇힌 사람들을 실루엣으로 묘사하고 신문지 얼굴에 눈가리개를 한 형상으로 표현했는데 강렬한 회화적 이미지이다.
이 시기 작품을 서정적 표현주의라고 칭하는 이유는 다분히 격앙된 감정을 과장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창작의 주요 원동력은 분노였다. 일차적인 동기는 1972년 10월에 선포된 유신에 대한 분노로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념이었다.
“한국 현대미술사는 집단적 이기주의이고 다분히 사이비적인 판짜기에 편중”되어 있다는 데 대한 분노가 이차적 동기가 되었다.
그의 첫 시기는 “정직하게 현실과 나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의 서정적 표현주의는 한국이 처한 정치적, 예술적 억압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다.
문제는 창작을 분노에 의존한 것으로 어두운 좌절의 수렁에 스스로를 17년이나 방치한 것이다.
비탄, 절망, 죽음 등의 문제에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것은 화가에게 불행이었다.
그가 새로운 회화 세계를 찾는 데 힘겨웠고 적응하는 데 또 다시 수년을 허비한 것만 봐도 17년은 너무 오랜 세월이었다.
분노의 감정을 오래 품은 것은 자신을 수렁에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1978년작 <소멸>은 뛰어난 작품이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구성, 흰색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영혼은 이 시기 최고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1980년대 작품들을 보면 혼란에 빠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에는 온갖 서양 양식이 다 등장한다.
도록을 통해 꼽을 수 있는 서양 양식의 차용만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서양화를 연구한 화가도 드물다고 생각된다.
아쉬운 점은 양식의 차용이 아니라 자기의 것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서양 미술 이론을 이대로 답습하는 것은 그들이 씹던 껌이나 받아 씹는 것이 아닐까” 하고 고백하는 그는 매우 겸손하고 솔직하며 자성의 미덕을 갖춘 화가이다.
둘째 시기는 1991~95년으로 소나무에 집착한 때이다.
서양 양식을 답습하기를 중단하고 새로운 회화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그는 강원도 정선 몰운대에 솟아 있는 벼락 맞은 소나무를 보고 창작의욕이 생겼다.
“뒤틀린 줄기와 파이고 갈라진 껍질, 끈질긴 뿌리에 우리의 미적 원류가 흐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분노의 시기에서 한국 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시기로의 이행이다.
“방방곡곡 소나무를 찾아다니며 국토를 세 바퀴는 돌았지요”라고 하는 그에게 ‘소나무 화가’란 명칭이 붙여졌다.
이 시기의 작품을 보면 그가 자연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소나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소나무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연의 소나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춤을 추는 동적 소나무, 그가 바라보고픈 소나무이다.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17년 동안이나 사용하다보니 습관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자유롭지 못하고 소나무도 자유롭지 못하다.
셋째 시기는 1995~2004년으로 소나무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그도 자유를 누리는 때이다.
1995년 아크릴로 그린 <신목의 세월>을 2004년에 유채로 개수보완한 것을 보면 자연을 좀더 존중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미 그린 것을 정정하느라 채색에 한계가 있어 어느 정도 자연으로 되돌리고 싶어 했는지는 측정되지 않지만 그런 의도는 충분히 감지된다.
아쉬운 점은 방황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것으로 이번 전시 작품에서도 주제와 양식의 다양성이 나타나 회화에 대한 그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자신감의 상실로 보인다.
그도 자유롭고 소나무도 자유로워졌음을 <돌산 앞 소낭구>(2001)에서 본다.
그리고 <소낭구 이야기0301>(2003)와 <소낭구 이야기0302>(2003)는 매우 훌륭하며 앞으로 전개될 김경인의 신화 이야기의 서문이라는 느낌이다.
이 작품들을 시작으로 정진한다면 커다란 회화적 수확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소낭구 이야기> 시리즈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