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코에 관하여
그렇잖아도 뉴욕에 가기 한 달 전 마로니에 출판사에서 도어 애쉬턴의 <로스코에 관하여>를 번역해달라고 의뢰가 왔었드랬습니다.
그때 출판사 측에서 로스코의 전시회가 있을 것을 말해주면서 가능하면 전시회가 열릴 즈음 책을 내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번역을 마치고 뉴욕으로 떠나기 이틀 전 원고를 넘겨주었습니다.
그 책은 7월 중순경에 나올 것으로 봅니다.
지금 편집중입니다.
로스코 전시회를 보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내가 쓴 '역자 서문'과 '저자 서문'을 여기에 싣습니다.
역자 서문
마크 로스코와 절친한 친교가 있었고 그와 더불어서 뉴욕 화파의 손가락을 꼽을 만한 지성적이며 또한 감성적인 화가 로버트 머더웰이 매우 적절하게 언급한 대로, 이 책이 로스코에 관한 한 가장 권위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 도어 애쉬턴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로스코의 그림자가 되어 그의 주변을 맴돌면서 불가사의한 화가의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뿐만 아니라 쉽게 간파되지 않는 내면에서 갈등을 통해 끓어오르는 심리적, 지성적, 그리고 미학적 추이를 확대경에 눈을 가까이 대고 경이로울 정도로 면밀히 살폈으며, 그런 추이의 요인들을 추적하고 규명하기 위해 로스코에게 영향을 끼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상황들을 상세하게 분석 서술함과 동시에 그의 정신세계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준 개별적인 예술가, 시인, 작곡가, 철학자들의 사상까지도 고찰하고 분석하는 놀라운 결과물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그녀는 로스코의 고대 비극적 신화에 대한 관심을 추적하다가 아이스킬로스로부터 니체, 그리고 니체에게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로 이어지는, 또한 구약성서와 키르케고르의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 체험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문화적 연결고리를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고대와 근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방대한 연구와 실적을 기술했다.
따라서 그리스 고전, 기독교, 철학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은 난해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이 역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화가 로스코와 인간 로스코를 동전의 양면으로 치우침 없이 동등하게 다룬 이 훌륭한 저술을 독자들의 감동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방안을 모색했는데, 난해한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애쉬턴은 위대한 비극작가, 시인, 철학자들의 말을 여러 차례 인용했는데, 영어로 되어 있어 그것들을 번역하더라도 그리스어와 독일어 전공자로서 그들을 개별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이 읽을 때는 미흡할 것이 틀림없다.
번역하면서 그런 인용문들을 접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는데, 영어에 대한 직역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특히 시를 번역하는 것은 그 시를 쓴 시인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내용들이 전후 문맥에서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서 절충안으로 내용의 흐름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용들 가운데 일부와 인용에 대한 저자의 해석 일부를 번역에서 제외시키면서 문맥의 일관성과 저자의 의도가 손상되지 않게 했으며, 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역주를 많이 달아 제외된 일부의 본문으로 해서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감소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번역에서 제외한 분량이 전체의 5퍼센트 미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그 내용은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가 바라본 시각에서의 그녀에 맞춤형이 되는 인용이기 때문에 화가와 인간 로스코의 참모습을 아는 데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역자의 판단에 의해서였다.
그렇게 하고나니 읽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역주는 주로 인명, 작품, 단체의 성격에 치중되었고 더러 상세하게 기술했는데, 주변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애쉬턴이 조명하는 로스코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노파심에서였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관한 책을 썼고 이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했지만 번역을 마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음을 도어 애쉬턴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성실한 태도로 한 예술가의 전모를 드러내기 위해 사소해 보이는 것,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도 설명하기 위해 그에 해당되는 자료를 찾아 고대와 근대의 사상가들을 탐문하여 뒷받침하는 기술의 노력은 역자를 포함하여 예술가의 전기를 쓰는 작가들에게 귀감이 된다.
로스코와 같이 지성적이며 내성적인 화가의 정신세계를 훤히 꿰뚫어본다는 것은 그에 걸 맞는 지성과 예민한 감성을 가진 사람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로스코에 대한 저자의 존경심은 대단히 커서 그를 거의 불가사의한 존재로까지 끌어올려놓고, 그의 심연 깊은 어두운 곳으로까지 내려가서 예술가 자신도 스스로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느라, 그리고 여기에 더 보태어 로스코가 받은 영향 전반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영향에 대한 화가의 반응 내지는 대응을 구체적으로 파헤치기 위해 여간 노력하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한 화가의 생애가 분석적으로 그리고 파노라마로 적나라하게 독자들에게 열린 것이다.
이 책을 로스코에 관한 완벽한 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저자가 그와 18년 동안 교류하면서 그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며, 이제는 고인이 되어 그를 직접 바라볼 수 없게 된 오늘날 어느 누구도 이 책의 저자처럼 1950년대와 60년대의 특수한 상황에서 로스코의 말을 십분 이해하고 그의 예리한 감성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마크 로스코는 물론 경제공황, 러시아 혁명,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미술에 헌신한 다수의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한층 증폭되기를 바란다.
저자 서문
책의 제목을 ‘로스코에 관하여’라고 한 것은 전반적, 대략적 두 가지 이유에서 회화에 관한 기술이란 늘 무엇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예술가에 관한 기술이란 늘 대략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적, 전기적 세부사항을 넉넉하게 충원하더라도 상세한 인물묘사를 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전기 작가들은 예술가 개성의 반응이 맹렬할 정도로 각양각색이라는 점을 잘 안다.
로스코의 복잡한 개성이 일반적이지 않고 드물다는 나의 견해는 그의 친구와 면식 있는 사람들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인증 받는 절차를 통과했다.
로스코의 성격은 친구들에게조차 불분명하게 나타나서 친구들이 종종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일이 있었다.
내가 비교적 다양한 각도에서 로스코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부터 타계한 1970년까지 약 18년에 걸쳐서 그와 친분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로스코와의 대화는 작업실을 방문하고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할 때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6번가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주로 구운 소고기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지만, 그의 말년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내로 가서 근사한 중국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대화의 내용은 거의 동일했고 우리는 일종의 철학적 야유를 즐겼다.
우리는 옛 러시아 문학에서 서술되어온 그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인생에 관하여 오래 이야기를 나누면서 윤리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미술에 대한 변죽을 울리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런 큰 틀 내에서 이루어졌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초창기에 익히 알려진 모습으로서의 로스코의 위트와 넘치는 활기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는 인사할 때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예사였으며 때로는 부드러움이 넘쳐흘렀다.
많은 친구들이 그의 반기는 미소와 두꺼운 렌즈를 낀 안경 뒤로 보이는 부드러운 눈이 풍기는 온화함을 회상한다.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심란해할 때가 있었다.
로스코는 불안정했으며 종종 침착성을 잃었다.
종종 나의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곤 했는데, 순서대로 요리가 나오는 동안 그는 담배를 손에 쥔 채 일어서서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활기 있게 말하고 열심히 경청했다.
마음이 산란해질 때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걸었고 시선이 모호해져서 그가 대화를 계속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로스코에게는 분노가 있었다.
그의 가까운 친구들 대부분이 이 점을 인정하고 더러는 판에 박힌 작업실에서의 생활이 가져다준 외로움 때문으로 이해했으며, 더러는 원인을 회의적인 그의 태도로 꼽았다.
로스코의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 K모씨는 로스코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말을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불명료함으로 해서 사람들이 그의 말을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조심성스럽고 수줍은 성격이 낭만적이고 때로는 감상적인 정신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고 고립을 자초하게 했다.
그는 아주 많은 감성적 에너지를 소비하여 자기 자신을 주제넘게 나서지 못하도록 했으며, 일생 사업에서의 과열된 반응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의 회화가 초자연력에 의한 변형에서 변용으로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들이 일종의 환희로서 그를 대변한다는 데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열정의 깊이를 감지하고 자신의 언명이 어떤 면에서 의식주의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다정다감하게 대했다.
로스코는 1970년 2월 25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후 그는 예술가로서 선정적인 이름을 남기는 전에 없던 가장 복잡한 법정투쟁을 동반한 재판을 통해 부동산을 하나 남겼다.
나는 로스코가 말한 “인간의 일생 사업의 의미”에 관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악명 높았던 재판에 관해 쓸 여분의 페이지는 마련하지 않았다.
뉴욕에서 도어 애쉬턴
198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