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녀 마르가리타>

김광우의 <프랑스 미술 500년>(미술문화) 중에서


벨라스케스는 1651년 여름 마드리드로 돌아가 펠리페 4세의 환대를 받았다.
펠리페 4세는 1652년 왕의 방들을 정리하고 왕의 여행을 준비하는 직책인 궁정의 시종에 그를 임명했다.

펠리페 4세의 첫 번째 아내는 프랑스 앙리 4세의 딸 엘리자베스(스페인어로는 이사벨라)202였다.
1644년 그녀가 죽은 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드 3세의 딸 마리아나와 결혼했다.
벨라스케스가 돌아오자 펠리페 4세는 그에게 왕비 마리아나와 그녀의 자녀들의 새로운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벨라스케스는 왕비의 초상화203와 왕의 맏딸인 마리아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204에서 유사한 구도법을 사용했으며, 많은 화실에서 이 작품들의 복제가 이루어졌다.
왕가의 여인들은 커다란 머리장식을 하고 버팀살대로 장식한 치마를 입고 있어 마치 인형같이 묘사되어 있다.
마소도 1644~45년 <어린 왕녀 마리아 테레사>205를 그렸는데 시기적으로는 벨라스케스보다 앞서지만 구성에서는 스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마소가 이런 구성을 먼저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색채를 밝게 사용한 벨라스케스의 작품과는 인물의 개성과 생동감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벨라스케스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201와 <펠리페 프로스페로 왕자>206는 구도와 양식이 서로 비슷하고 그의 작품들 중 가장 화려한 것으로 꼽히는데, 오른손을 의자에 올려놓은 것은 벨라스케스의 회화적 의도로 어리지만 왕녀의 의젓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모델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매우 섬세하게 정면에 왕가의 위엄을 드러내면서도 그 이면에는 모델들의 어린아이 같은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화가 지망생이던 드가와 마네는 루브르의 스페인 전시관에서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다양한 양식을 익혔는데, 벨라스케스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를 모사하면서 스페인 화풍의 장점을 받아들였다.207, 208
르누아르가 1864년에 그린 <로마인 라코>209도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고, 장-자크 에네도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앙리에테 제르맹>210을 그렸다.
휘슬러의 <회색과 초록색의 조화: 미스 시셀리 알렉산더>211도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미국화가 윌리엄 메릿 체이스도 1899년에 <어린 왕녀, 벨라스케스의 유물>212를 그려 벨라스케스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이들의 작품과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를 나란히 놓고 보면 200년 전에 그린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명암의 대비와 은은하면서도 밝은 색상에 의해 더욱 생동감 있으며 붓질이 자유롭고 활기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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