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존 케이지는 음악이란 소리예술이므로
케이지와 뒤샹의 우정은 1941년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미국예술가들이 뒤샹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케이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케이지는 뒤샹의 미학을 받아들여 매일매일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것들에서 음악의 재료를 구했는데 그것들에는 자연히 아이러니컬한 요소들이 들어있었으며 작품에서 심리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당시 영웅처럼 대우받던 뉴욕 스쿨 1세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에게는 케이지의 미학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무기처럼 생각되었다.
케이지는 단호하게 “예술에 감성이 있을 자리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선불교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뒤샹의 지성에 대한 무관심과 대조되었다.
케이지가 ‘우연’을 음악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부터였다.
우연을 자연의 근원적인 원리로 인식한 그는 예술가들의 작위적인 이기심을 경멸했으며 예술과 우리들이 매일매일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 구별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말은 사람들에게 역설처럼 들렸다.
1950년대 맨해튼 남쪽에 있는 케이지의 아파트에는 음악과 춤에 관심 있는 예술가들의 방문이 잦았다.
당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크리스천 볼프는 어느 날 판테온(Pantheon) 출판사가 막 시판한 《주역 周易》을 케이지에게 주었다.
케이지는 주역을 읽고 감동했고 주역은 그가 1951년에 작곡한 〈변하는 음악 Music of Changes〉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동전 세 개를 여섯 번 던져 우연히 일어난 변화들을 자신의 음악에 이용했는데 영리한 그가 주역에서 말하는 점괘를 작곡에 적용하여 실험한 것이었다.
케이지는 주역의 점괘처럼 동전을 던져 음의 고저와 장단을 우연에 따라 작곡하면서 의도적으로 작곡하려는 작곡가의 이기심을 버렸다.
〈변하는 음악〉은 45분이나 되는 긴 음악이므로 그 곡을 작곡하기 위해서 아마 수없이 동전을 던지고 또 던졌을 것이다.
케이지는 음악이란 소리예술이므로 어떠한 소리도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거에 사람들이 음악으로 간주하지 않던 소리들을 과감하게 재료로 사용했다.
이는 비미학적 물질을 사용하여 예술품을 제작함으로써 전통미학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던 뒤샹의 행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소리에는 네 가지 요소들, 즉 음의 고저(pitch), 음색(timbre), 큰 소리(loudness), 지속(duration)이 있으며 오히려 정적(silence)이 유일한 지속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4분 33초〉는 단지 지속만이 있는 작품이다. 그는 무대에 올라 정확하게 4분 33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 퇴장했던 것이다.
그는 위의 세 가지 요소들을 배제한 후 환경에서 생기는 우연한 소리만을 지속의 요소로 받아들여 작곡이라고 우겼던 것이다. 라우센버그가 1951년에 소개한 〈하얀 그림들〉은 케이지로부터 영향을 받아 제작한 것인데 두 개의 캔버스를 손도 안댄 채 고스란히 벽에 걸었던 작품으로 지금 솔로몬 구겐하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그 작품은 침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케이지의 미학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들 가운데는 미니멀리즘, 후기 컬러필드 예술가들이 있고, 1960년대 초 독일에서 활동한 플럭서스 그룹이 있으며 그의 제자이면서 평생친구인 백남준도 그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았다.
그러나 케이지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예술행위를 한 예술가들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해프닝의 선구자 앨런 캐프로를 꼽을 수 있고, 뒤샹과 비슷한 청각적 재담과 역설 그리고 익살을 수용한 개념미술 예술가들도 케이지의 미학에 반발했다.
팝아트는 케이지의 미학에 보다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케이지는 워홀의 연속적인 초상 그림들을 반기면서 “워홀은 반복하면서 같은 반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케이지를 스승처럼 따르면서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한 뉴욕 스쿨의 1.5세 예술가들로 두 사람을 따로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