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해프닝을 연 존 케이지
워홀에게 미학적 도움을 주었던 디는 뉴욕 근교 포모나에 살았는데 이웃에는 작곡가 존 케이지가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두터웠으며 케이지의 음악회를 디가 주선해준 적도 있었다.
뒤샹이 ‘이미 만들어진(Ready Made)’ 물질들을 콜라주했듯이 케이지도 주변의 소리들을 수집하여 작곡하기도 했다.
그는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의 실존적 영웅심의 과시와, 예술이란 고상하고 지성적 사고의 결정체라는 주장에 반발했다.
뒤샹과 마찬가지로 그도 예술을 유머스러운 재담쯤으로 여기면서 사람들을 웃겼으며, 예술을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 자체를 조소하려고 했다.
예술의 본질은 예술가의 주관적인 느낌과 창조적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물리적 환경에서 발견된다고 생각한 케이지는 예술의 목적은 “예술과 인생의 구별을 흐리게 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웃는 사람들에게 눈물이 쏙 나올 정도로 더 웃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서 “인생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며 창조 안에서 진전을 암시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인생 그대로를 단순히 깨어있는 것으로 자각할 수만 있다면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케이지는 뒤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뒤샹과는 달리, 개념을 파괴하는 데서 예술의 목적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념을 확고하게 함으로써 목적에 도달하려 했다.
우연을 중요한 방법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선불교의 가르침과 유사했고 그렇게 해서 나타난 그의 행위는 영락없이 네오다다이즘에 속했다.
우연과 단절을 선호하긴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였지만, 예술가들이 과거의 대가들처럼 심원한 진실에 근접하기 위해 자신들의 잠재의식에만 의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의 이러한 미학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데, 많은 뉴욕 스쿨 1.5세와 2세 예술가들이 그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곧 살펴볼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는 전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케이지의 영향은 독일에서 벌어진 플럭서스(Fluxus) 그룹 예술가들의 해프닝에도 미쳤는데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대부분 케이지의 제자들이었다.
음악은 소리예술이므로 음식을 씹어 먹는 소리나 망치로 두들기는 소리도 악기 소리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플럭서스 그룹의 생각은 주변의 소리들을 콜라주하는 케이지의 작곡방법과 다르지 않았다.
우연을 자연적인 형태의 원리로 인식한 그는 예술가들이 형태를 이성적으로 창조하는 것에 반발했고 예술품에서 클라이막스와 단계가 나타나는 것을 배척해 반복을 선호했다.
그는 예술과 인생 사이의 간격을 없애버리기 위해 예술가 자신을 배제하는 방법에 도달했는데 여기에는 자아와 타아의 구별을 흐리게 하는 선불교의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잘 이해했던 백남준에 의하면, 케이지에게 “당신은 왜 예술 행위를 하느냐? 미술사에 케이지가 살았다는 기록만 남기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건 너무 드라마틱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신을 배제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케이지에게 “아예 작품조차 제작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온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백남준의 짖궂은 질문에 대한 케이지의 대답이었다.
나르시즘 미학을 가진 백남준은 자아와 타아의 구별을 무시하는 케이지의 미학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