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 미술
구체 미술Concrete art(아르 콩크레Art Concret, 콘크레테 쿤스트Konkrete Kunst)과 구성주의의 차이는 구체 미술은 환영을 배제하고 작품 자체와 그 작품의 구성 요소가 가상의 성질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제시되는 데 있다.
재료는 그 자체만을 반영한다.
‘실제 재료, 실제 공간’이라는 구호는 구체 미술과 관련하여 빈번히 사용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미술 문헌에서 구체라는 단어는 추상의 반의어로서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1861년 귀스타브 쿠르베는 사실주의 선언문에서 아카데미의 역사화나 종교화, 일반적인 의미의 상상에 의한 미술과는 대조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묘사하는 미술을 구체 미술이라고 했다.
이 단어는 1930년 반 두스뷔르흐가 ‘아르 콩크레 Art Concret’라는 선언문을 발표했을 때 처음으로 전문용어가 되었다.
이는 그가 격렬하게 반대한 원과 사각형 협회의 결성에 대한 답변이었다.
구성주의 원칙을 규정한 이 선언문에 카를순드, 반 두스뷔르흐, 투툰지안, 반츠, 엘리옹 등이 서명했다.
구체 미술 운동에 참여한 프랑스 화가 장 엘리옹(1904~87)은 릴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그후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926년 우루과이 화가 호아킨 토레스-가르시아(1874~1949)를 통해 입체주의를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몬드리안을 만났다.
또한 반 두스뷔르흐를 알게 되었으며 그의 선언문에 서명했다.
엘리옹은 1930년대에 제작한 기하 추상으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들은 기묘하게 구부러진 면들로 이루어진 넓게 패턴화된 구성으로 1920년대 초에 페르낭 레제가 제작한 기계적 회화의 영향을 반영한 것이다.
구체 미술 선언문은 간결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 회화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첫째, 미술은 범세계적이다.
둘째, 미술작품은 제작되기 전에 예술가의 정신에 의해 완전히 인식되고 형성되어야 하며, 자연의 형식적인 특성이나 인간의 관능성 혹은 감상성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정주의, 연극성, 상징주의 등을 배제하고자 한다.
셋째, 회화는 완전히 순수한 조형 요소, 즉 면과 색채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회화적 요소는 ‘그 자체’ 이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기 때문에 회화도 ‘그 자체’ 이외의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넷째, 회화의 요소뿐만 아니라 구성도 간결하고 시각적으로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기법은 기계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정확하고 반인상주의적이어야 한다.
여섯째, 절대적인 명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선언문은 구성주의로 대표되는 일종의 비재현적 추상과 자연 외관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세부 묘사를 줄이는 재현적 추상, 그리고 표현적 추상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반 두스뷔르흐가 1931년에 타계한 뒤 구체 미술이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다가 1936년 스위스에서 막스 빌과 아르프에 의해 다시 사용되었다.
막스 빌(1908~94)은 ‘구체 미술’이란 제목으로 1944년 바젤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회, 1960년 취리히 미술협회에서 열린 전시회 및 1964년 취리히의 헬름하우스에서 열린 전시회 등 여러 전시회를 기획했다.
스위스인 빌은 1927~29년 데사우의 바우하우스에서 공부했다.
1929년부터 화가, 조각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일을 했고, 1932~36년 추상-창조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반 두스뷔르흐가 타계하기 한 해 전인 1930년에 구체 미술을 채택하여 스위스에서 추상 대신 구체란 용어를 유행시켰다.
그는 1941년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갔으며 그곳에서 구체 미술의 개념을 전파했다.
빌의 작품은 주로 차가운 미술이라 불리던 유형에 속했는데, 차가운 미술이란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유발시키는 수학적 공식에 입각한 기하 추상 혹은 구성주의 미술 유형을 가리킨다.
빌은 자신이 기획한 전시회들에서 구체라는 단어를 추상과 거의 비슷한 분야를 총망라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그 명칭이 비구상 미술을 폭넓게 지칭하도록 만들었다.
도날드 저드와 로버트 모리스 같은 미니멀 아트의 주도적인 예술가들은 빌의 영향을 부인했지만, 빌이 상당히 기여한 구성주의 미술 경향은 훗날 추상 미술과 체계적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빌은 구체 미술을 수학적 원칙에 의거하여 부분들 사이의 비율과 관계를 결정하는 기하 추상이나 구성주의의 한 형태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가 기획한 전시회에 수학적 태도를 취한 예술가들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구체 혹은 구체주의자라는 단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스웨덴에서 기하적 추상 양식으로 작업하던 예술가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
요네스, 베르틀링, 로드헤 등과 같은 예술가들은 이를 다양한 양식으로 응용했다.
1941~47년 스톡홀름 미술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한 아르네 요네스(1914~76)의 기념비적인 조각은 공간이나 환경과 하나로 통합되므로 건축적인 형태를 띤다.
그러나 분위기는 매우 서정적이며 유기적인 성장을 연상시키거나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종종 현저하게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표현주의 그림을 그렸지만 1948년경 로트와 레제의 영향을 받은 뒤 기하 추상으로 방향을 바꾼 올레 베르틀링(1911~81)은 직사각형과 수직 수평선이 지배적인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를 추구하다가 점점 자신의 개성적인 화법을 발전시켜 매우 단순화된 쐐기 형태가 두드러진 선명한 검정, 빨강, 노랑 색조의 추상화를 그렸다.
야한 금속성 색채의 그의 그림들은 사당히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렌나르트 로드헤(1916~)는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입체주의 그림을 그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기하 추상으로 전환했으며,
스톡홀름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스웨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구체 예술가 중 하나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48년 솔다티, 무나리, 평론가 질로 도르플레스 등의 후원으로 구체 미술운동(MAC, Movimento per l'arte concreta)이 일어났다.
아타나시오 솔다티(1896~1953)는 처음에는 건축을 공부하여 1920년 학위를 받은 뒤 1922년부터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까지 입체주의와 형이상학적 회화의 영향 아래 주로 정물화를 그렸으나, 1930년대 후반 구성주의로 전향했고, 1946년 구체 미술 운동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1950년가지 솔다티는 이탈리아의 기하 추상의 선구자로서 위치를 확고히 했다.
조각가이며 화가로서 노동의 신성함을 찬양하는 사회적 사실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작업한 브루노 무나리(1907~)는 짧은 기간동안 미래주의에 심취하며 1931년 항공 회화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30년대에 쓸모없는 기계로 명명한 추상 구조물과 철사 모빌이었다.
무나리는 1938년 자신의 기계 미술 개념을 설명한 여러 선언문 중 첫 번째인 ‘기계주의 선언’을 발표했다.
1949년에는 구체 미술 운동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이탈리아의 아르테 프로그라마타Arte Programmata, 즉 산업 디자인과 연계된 복수 제작품 미술의 선구자였다.
아르테 프로그라마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키네틱 아트에 대해 붙여진 용어로 프로그램 중에 무작위적 요소가 개입될 수도 있으나 대체로 모터로 작동되는 일련의 일정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일컫는 명칭이다.
그 박에 옵 아트와 환경 미술을 비롯하여 특히 광선을 이용한 환경 미술에서의 관람자 참여도 여기에 포함된다.
무나리는 1951년 로마에서 개최된 ‘이탈리아의 추상 미술과 구체 미술전’에 참가했다.
1940년대 후반 폰타나도 이 구체 미술 운동과 연관이 있었고, 카포그로시는 짧은 기간동안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작업했다.
아르헨티나 태생 이탈리아 조각가이며 도예가 루초 폰타나(1899~1968)는 1930년 밀라노의 밀리오네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 처음으로 비구상 조각을 선보였고,
1935년까지 다수의 추상 작품을 제작하면서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새로운 양식과 기법을 추구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흰색, 검정색, 황금색 석고로 장식적인 도기 작품 및 추상 입상들을 제작했다.
1934년 파리의 추상-창조 그룹에 가입했고, 이듬해 제1회 이탈리아 추상 예술가 선언문에 서명했으며, 이탈리아에서 열린 최초의 공동 추상 미술전에 참가했다.
1946년 유명한 ‘백색 선언 Manifesto Blanco’을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네온 및 텔레비전과 같은 첨단기술을 사용하여 전후의 새로운 정신을 표현한다는 자신의 새로운 미학을 표명했다.
그는 이젤회화의 환영적 혹은 허상의 공간을 거부하고, 대신 색채와 형식을 실제 공간에서 자유로이 전개시켜 캔버스의 틀이나 조각의 부피를 벗어나는 작품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새로운 과학기술을 사용하여 작품을 건축과 주변 공간에 완전히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선언문은 이후 대두될 공간주의 이론의 기초가 되었고, 폰타나의 이론은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모두에서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주세페 카포그로시(1900~72)는 로마 태생으로 법학을 공부한 뒤 1927년 파리로 갔으며, 1930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33년 이탈리아로 돌아오자마자 로마 화파의 일원이 되었다.
1949년 로마 화파와 결별한 뒤 표현적 추상과 구체 미술의 중간 격인 ‘기호’ 구성회화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곧바로 앵포르멜에 반발하던 많은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카포그로시는 곡선으로 된 안쪽에 톱니 모양이 불쑥 나와 있는 빗과 유사한 형태의 서체적 상징을 사용했으며, 이 기본 이미지로 표면에 율동적인 연결감과 운동감을 부여했다.
잘 연결된 표면 위에 표의문자를 연상시키는 디자인, 즉 고립되었지만 균형이 잡힌 요소들을 겹쳐 놓음으로써 모든 방향으로 무한하게 팽창할 수 있는 올오버 패턴을 만들어냈다.
구체 미술이라는 용어가 사실상 기하 추상과 동의어라는 것은 1945년 파리의 르네 드루앵 화랑에서 열린 ‘구체 미술전’이라는 전후 최초의 중요한 추상 전시회를 통해 알 수 있다.
반 두스뷔르흐 미망인의 도움으로 이 전시회에는 들로네 부부, 도멜라, 에르뱅, 몬드리안, 칸딘스키, 마넬리, 조피 토아버-아르프, 앙투안 페브스네르 등과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집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