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예술로 둔갑한 신문기사


작품의 아이디어를 구하는 데 열정적이던 워홀은 현대의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눈을 돌렸다.
그것이 바로 매일매일 터져 나오는 새로운 사건,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하는 신문의 표지기사(cover story, 신문의 1면 기사)들이다.
그는 일간지 《뉴욕 포스트》 1961년 11월 3일자 표지기사 〈메그의 남자〉(그림 82)를 확대했다.
영국의 마가렛 공주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의 왼쪽 상단에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마가렛 공주와 시나트라의 얼굴을 사진과 달리 초상화처럼 그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막상 초상화를 보면 신문표지를 재현한 것임을 알면서도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게 했다.
글자와 숫자는 워홀의 그림에서 중요한 회화적 요소였으며 날카롭게 각진 글자는 관람자들로 하여금 대충만 보지 않고 읽도록 시각적으로 충동했다.

그가 두 번째 신문 표지기사를 그린 것은 1962년 3월 29일자 《데일리 뉴스》였다.
신문의 앞면과 뒷면을 함께 그렸는데 뒷면의 기사 제목은 〈에디 피셔 쓰러지다/여기 병원에 입원:로마에 있는 리즈〉(그림 83)로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가수 에디 피셔와 영화배우 리즈 테일러에 관한 내용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 부부인 데다가 그때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나빴기 때문에 그들에 관한 기사는 더욱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인기 있는 두 스타의 붕괴되기 직전의 부부관계를 주제로 그리는 것이 바로 워홀의 의도였다.
그가 리즈를 그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62년 여름 워홀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주간지 《타임》이 자신의 기사를 보도한 데다 앞서 말했듯이 7월에는 로스앤젤레스 페러스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신문 표지기사로 작품을 해오던 워홀은 6월 비극적인 사회 사건들을 주제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워홀은 그 동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헨리가 내게 죽음과 재난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었다.
1962년 6월 4일 우리는 함께 점심식사를 했는데…… 그가 테이블 위에 《뉴욕 미러》 신문을 올려놓았다.
신문의 표지기사는 ‘비행기 사고로 129명 사망’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죽음에 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자동차 사고, 재난,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전기의자 등등…….

헨리는 “삶에 관해서는 충분하다. 이젠 죽음에 관해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는 의아해 하는 워홀에게 신문을 내밀며 “이것이 진짜 일어난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헨리가 보여준 《뉴욕 미러》의 〈129명 비행기 사고로 사망!〉(1967. 6.4) 기사는 파리 근처에서 프랑스의 보잉 707기가 추락한 내용을 보도한 것으로 워홀의 세 번째 표지기사 그림이 되었다(그림 80).
비행기 사고는 자동차 사고에 비해 횟수는 적지만 떼죽음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에게 끔찍한 사건으로 각인된다.

워홀은 “내가 작업하는 모든 것들이 죽음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리즈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친구 스웬슨에게 “그녀가 병에 걸렸으므로 사람들은 그녀가 곧 죽을 것처럼 생각했다”고 말했다.
워홀은 신문을 읽다보니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공휴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운전하게 되므로 자연히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도 부쩍 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혹한 장면을 그리기 위해 신문과 잡지를 자주 뒤적거린 워홀은 “지독한 장면을 보고 또 보다보니 아무 느낌도 생기지 않더라”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워홀이 실크스크린한 자동차 사고현장은 그의 가장 과격하고 힘 있는 주제였다.
〈불타는 푸른 자동차, 아홉 번〉(그림 84)은 자동차가 뒤집어진 채 불타는 장면을 초록색으로 아홉 번 실크스크린하여 캔버스에 부착한 것이다.
실크스크린 작업은 정교한 기교를 요해 어느 정도 훈련기간이 필요했다.
워홀은 수없이 실험했으므로 이제 제법 기교를 부릴 줄도 알게 되었으며, 일부러 얼룩을 남겨 세심하지 않게 묘사하는 방법은 그의 술수적인 기교의 소산이었다.
그림의 오른쪽 끝을 부러 겹치게 하여 생기는 반복효과를 회화적 요소로 사용했다.
아홉 번을 반복해도 여전히 충돌사고 현장은 참혹했다.
수십 번을 반복한 〈시각적 자동차 충돌〉(1962)은 워홀의 말마따나 옷감의 무늬처럼 나타났다.
추상화처럼 보이는 그 그림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는데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고의 구체적 장면이 보였다.
〈발과 타이어〉(그림 85)는 자동차 타이어에 신발이 낀 모습만을 크게 확대하여 추상화처럼 묘사한 작품으로 신발과 타이어로 한정하여 사고현장을 상징했다.
이러한 작업은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동정을 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참혹한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도록 하여 한 번쯤 자동차 사고가 끔찍하다는 것을 상기하게 했다.

워홀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난 친절하게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그들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만든다.”

신문표지 그림들은 워홀의 회화 경향에 분기점이 되긴 했지만 훌륭한 그림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들을 경악시킨 기사를 재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워홀 자신도 그러한 그림들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다시 수프 통조림과 코카콜라 병을 그리기 시작했다.
〈푸른 코카콜라 병들〉(그림 86)은 112개의 병을 바둑판처럼 가로세로로 반복하여 대량생산품의 기계적 이미지를 조형적 요소로 사용한 작품이다.
동시에 병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물체로 존재하도록 조금씩 다르게 그렸다.
고르게 색칠한 병들은 반듯한 모습이었지만 어떤 병은 고의로 엷은 색조를 사용했고 어떤 것은 마시고 난 후의 빈병이었다.
이러한 경우를 보더라도 워홀은 진지한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했으며, 그러한 이유로 그는 훌륭한 예술가라기보다는 술수적 디자이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