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미술
대지 미술은 흙, 바위, 모래 등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말하지만 이 세 가지의 구별이 명확하지는 않다.
대지작품은 주로 거대한 규모의 작업을 의미한다.
이런 작품은 1960년대 후반에 등장했는데 당시의 다양한 경향의 미술과 관련이 있다.
제작된 형태가 종종 극도로 단순한 점은 미니멀 아트와 비슷하며,
보잘것없는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아르테 포베라와 관련이 있고,
제작된 작품이 일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면 해프닝이나 퍼포먼스와 관련이 있으며,
거창한 작업에 관한 계획안은 단지 계획으로만 존재하므로 개념 미술과 연결지을 수 있다.
또한 도시 문화의 세련된 기술에 대한 혐오를 반영한 히피 문화의 자연 회귀 정신의 한 부분으로서 선사시대의 흙무더기와 목초지 경계선에 대한 연구에 열광했던 당시의 상황과 연관되는 점도 있다.
전통적인 엘리트 미술과 상업성을 지향하는 화랑 중심의 미술계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또한 현대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였지만,
사실 거대한 대지작품은 막대한 경비를 필요로 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닌 외진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적이지 못했다.
대지 미술의 개념은 1968년 뉴욕의 드완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와 이듬해 코넬 대학에서 열린 ‘대지 미술전’을 통해 정립되었다.
드완 화랑에서의 전시회에는 강철 입방체를 매장해놓은 르윗의 <구멍 속의 상자>와 네바다 사막 위에 두 개의 흰 평행선을 그린 디 마리아의 <1마일 드로잉>의 기록사진들이 포함되었다.
이런 작품들은 개념 미술이라고 할 수 있으나, 디 마리아는 전시장을 흙으로 채웠고 다른 예술가들은 바위와 작은 나뭇가지 같은 물질들을 화랑에 가져다놓았다.
1945~49년 시러큐스 대학에서 공부하고 1965년 뉴욕의 대니얼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솔 르윗(1928~)은 1966년 휘트니 연례전과 1968년의 드완 화랑에서 열린 ‘10전’에 초대되었다.
알루미늄 대들보 위에 에나멜을 씌워서 구워 만든, 틀도 없고 유리도 끼워져 있지 않은 다중 칸막이 구조물은 르윗을 도널드 저드, 로버트 모리스와 더불어 미니멀 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예술가로 올려놓은 동시에 시리얼 아트의 발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구체 미술처럼 수학적 공식에 의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1968년에 금속 입방체를 제작하여 네덜란드 베르게이크에 있는 비세르 하우스 내의 땅에 묻었고 이 오브제가 시각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멜 보크너는 <미니멀 아트>에서 르윗의 작품에 관해 적었다.
“르윗의 복잡한 다중 구조물은 엄격한 논리 체계의 결과로, 개인적 요인의 작용을 가능한 제거한 것이다.
이는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그의 작품의 경계를 제작자와 관람자 모두로부터 분리된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물’로서 제한하는 데 적합하다. ...
르윗의 작품을 접하면 즉시 직관적으로 질서 정연함을 느낄 수 있으나 작품을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방법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 대신 선, 이음매, 각과 같은 엄청난 양의 정보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르윗은 작품의 개념을 매우 엄격히 통제하고 미술품은 이러해야 한다는 어떠한 기존 관념과도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개념적인 질서가 시각적 혼란으로 빠지는 특이한 지각의 와해 현상에 도달했다.”
관람자는 르윗 조각의 주위를 걸어가며 감상하게 되므로 그의 조각이 개별적이고 관계없는 사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즉각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다른 시점에서 본 모습들이 표로 그려지기 때문에 매순간마다 다르게 보이지만 늘 평면적이라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공부한 월터 디 마리아(1935~)는 1968년 유럽을 방문한 뒤 이듬해 구겐하임 재단 연구지원금을 받았다.
디 마리아는 미니멀 아트의 초기 주창자 중 한 사람이었고, 미니멀 아트라는 명칭이 일반화되기 이전인 1960년경 이미 미니멀 아트 작품을 제작했다.
1961년부터 퍼포먼스 작업에서 로버트 모리스 및 이본 레이너와 함께 공동으로 작업했으며, 1961년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아트 야드Art Yard 프로젝트를 통해 대비 미술 분야를 개척했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개념 미술의 범주에 속하는데, 1968년의 <마일 드로잉>이 이런 예로, 모하비 사막에 서로 3.6m 떨어진 두 개의 분필선이 평행으로 3.2km 뻗어 있는 작품이다.
1968년 뮌헨의 하이너 프리드리히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여기에 45.3 입방 마터에 달하는 흙으로 가득 찬 방을 전시했다.
누구보다도 거대한 규모의 대지 미술 작업을 한 예술가는 로버트 스미스슨(1938~73)이었다.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수학한 스미스슨의 작품은 미니멀 아트의 범주에 속했다.
그는 특히 반사작용과 거울 이미지들을 실험했는데, 예를 들어 크릴론을 칠한 금속 테에 거울처럼 반사하는 플라스틱만 끼운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지구라트 거울>은 보통의 거울 조각들을 하나 위에 또 다른 하나를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구축한 작품이다.
그는 수학적 비개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1966년 <아츠 Arts> 11월호에 실린 글에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스미스슨은 1960년대 말부터 대지 미술로 전환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와 뉴저지 주의 버려진 채석장이나 오래된 광산의 흔적을 찾아가 바위조각이나 자갈, 지질학적 폐물들을 수집하여 무작위로 쌓아올리거나 금속상자 혹은 나무상자 속에 배열했다.
이것과 거울들을 장소 계획서, 지질도, 인스태마틱 컬러사진과 함께 놓아 잘 알려진 ‘탈장소 Non-Sites’를 구성했다.
그는 이전에 정크 예술가들이 도시의 쓰레기를 사용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연의 쓰레기를 예술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유타 주의 그레이트 솔트 호에 나선형으로 돌출되어 나온 <나선형 방파제>(1970)는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전시 장소에서 제작된 구조물 중 하나로 물의 흐름에 따라 침식되도록 만들어졌다.
1971년에는 네덜란드의 엠멘에 <나선형 언덕>을 제작했다.
스미스슨은 이런 새로운 개념들을 충분히 발전시키기도 전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다른 주요 대지 예술가들도 대부분 스니스슨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로 지하 미로를 제작한 앨리스 에이콕(1946~), 메리 미스(1944~), 마이클 하이저(1944~) 등이 있다.
하이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이중 부정>(1969~70)은 네바다 사막 위에 만들어진 폭 30피트, 깊이 50피트, 총 길이 1,500피트인 두 개의 길로, 그가 “예술가들이 늘 자신들의 작품을 놓고 싶어 하는 유린되지 않고 평화로우며 종교적인 공간”으로서 찾아낸 장소에 만들어졌다.
불가리아계 미국 조각가이며 실험 예술가 크리스토(1935~)는 때때로 대지 예술가로 분류되지만, 그의 작품은 사실 분류가 불가능하다.
섬유 공장을 운영하던 화공학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52~56년 소피아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그는 1964년에 뉴욕에 정착했고 1973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처음에는 초상화가로서 생계를 유지했지만 곧 크리스토 자신이 발전시킨 표현의 한 형태이며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포장 empaquetage’을 창안했다.
이는 캔버스 천이나 반투명 비닐 같은 물질로 포장한 물체와 그 결과를 예술이라고 명명하는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크리스토는 처음에 스튜디오에 있는 물감 통 같은 작은 물체로 포장을 시작했는데, 이는 만 레이가 이미 예견한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의 규모가 점점 더 커져 나무와 자동차를 거쳐 건물과 환경의 부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관해 말했다.
“나의 작업은 전치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오늘의 나조차도 정착하지 못한 사람이고, 이것이 나로 하여금 지속되지 않는 예술을 만들게 한다. ...
나는 매우 흥분되는 작품을 제작한다.
강철, 돌, 혹은 나무와 다르게 천은 바람과 태양의 물리적인 상태를 감지한다.
작품은 새로운 것이며 재빨리 사라져버린다.”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대지 예술가로는 앤디 골즈워디(1956~)와 리처드 롱(1945~)을 들 수 있다.
롱의 작품은 조각, 개념 미술, 대지 미술 모두를 아우른다.
1967년 이후의 작업은 영국의 자연에서 출발한 것으로 1969년부터 국외로 확대되어 때로는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이나 적대국에서까지 행해졌다.
그는 걸어가면서 수집한 돌과 잔가지 같은 것을 화랑 안으로 가져와 원 또는 단순한 기하 형태로 배열 전시했다.
또한 화랑이 아니라 재료들이 원래 있던 위치에서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며, 산책로를 찍은 사진, 걸어가며 본 것이나 자신의 심리 상태를 쓴 글, 지도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롱은 영국 대지 미술을 이끄는 인물로 이미 197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국 대표로 참가할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