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윤리란 무엇인가』

『윤리란 무엇인가』의 저자 크리스토퍼 베넷은 윤리 문제가 개인적·내면적이며, 이런 점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다. 누군가 대신 생각해줄 수 없다는 것은 타인의 생각을 단순히 복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개인의 윤리 문제라고 해서 어떤 견해를 선택하건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윤리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문제임과 동시에 옳은 답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윤리란 무엇인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도덕성에 관한 문제, 둘째, 주요 이론들에 대한 고찰, 셋째, 도덕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요구이다. 이 책은 어느 것이 가장 좋은 도덕이론인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이론들의 관점, 즉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검토한다.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쟁점은 죽음의 문제와 생명의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윤리와 종교의 연관성과 계약이나 합의를 바탕으로 도덕성이 고려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 뒤 마르크스와 니체 같은 인물들이 제시한 도덕성을 비판한다.
저자는 1장에서 독자로 하여금 죽음과 삶의 의미를 먼저 고찰하게 하고, 2장에서 생명의 가치에 관해 다룬다. 본질적이고 내재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행위에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인간의 가치는 다른 모든 것의 가치에 우선하므로 인간의 행위 자체에 일정한 제약이 설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에게는 생명에 대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즉각적인 권한이 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타인이 나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우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대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낙태, 살인, 안락사 등의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3장에서 도덕이 우리에게 남을 도울 의무를 어느 정도 요구하는지, 그들에게 우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지, 돕는 의무와 한계에 관해 고찰한다. 우리가 도덕적 행위를 할 때에 의무나 권리에 따라 마땅히 도와야 하기 때문에 돕는 경우와 의무상의 요구를 뛰어넘어 자발적으로 돕는 경우의 차이도 제시한다. 이런 차이, 즉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도덕철학의 주요 이론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2부에서 도덕론의 출발점으로 공리주의, 칸트의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각각의 이론에 대한 파악과 그에 대한 몇 가지 비평을 검토하고 그러한 비평들이 어떻게 수용·발전해왔는지를 짚어본다. 그가 도덕론의 세 가지 출발점으로 공리주의, 칸트의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특별히 중요하게 다룬 까닭은 이 세 가지 사상이 서방세계, 특히 미국과 영국의 도덕철학에서 논의의 초점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세 가지 중 어느 하나가 옳다는 식의 가정은 하지 않았다.
저자는 다수의 행복을 기준으로 하는 공리주의의 도덕론과 의무론적 윤리관에 기반을 둔 칸트의 도덕론의 차이를 지적한다. 칸트는 행위의 도덕적 부당성, 인간의 독립성, 인간, 권리, 또는 소유 사이의 도덕적 경계를 핵심적인 문제로 간주하는 반면, 공리주의자들은 이런 개념들을 중시하더라도 전반적인 행복에 더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될 때에만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공리주의와 칸트주의 모두 우정이나 사랑 같은 고귀한 인간관계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공리주의와 칸트주의 모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지만 인간은 일상에서 공정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친구, 자녀, 부모처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쓴다. 우리는 친구와 가족을 특별히 배려하며, 사랑과 믿음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삶에서 큰 보람의 하나로 여긴다. 도덕론의 비현실성을 공격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공정한 관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새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거론하는 것은 공리주의와 칸트주의 모두 인간의 정서를 불합리의 근원으로 보고 투철한 도덕적 사고를 하는 데 장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현실화를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가 없더라도 윤리학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와 도덕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도덕이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행위를 설명하는 순수 기준이므로 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도덕은 무의미하다며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렇지만 인본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이성이 있으므로 도덕적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과학이 아니고서는 세상에서 우리를 깨우쳐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오직 물질적 세계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의미나 가치가 없는 텅 빈 세상이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과학을 신뢰하다 보면 인간은 생물학적 우연의 결과일 뿐 우리는 오직 본능과 충동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오로지 과학만이 세상 지식의 원천이라면 옳은 행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희박해질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은 유신론자와 무도덕주의자들이 도덕에 관한 인간의 사고능력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인본주의자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도덕적으로 행동하려고 마음먹을 때에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본주의의 관점은 계시이건 성서이건, 도덕적 지식의 근원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이 도덕적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경우, 그 도덕적 지식은 기껏해야 독단적이거나 불충분할 뿐이고, 나쁘게 말하면 인간을 완전히 오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