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란 무엇인가』중에서

 

도덕적 사고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도덕적 사고를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흔히 ‘윤리’를 특별한 주제로 생각한다. 예컨대, 논쟁거리가 될 만한 어떤 의학적 연구를 과연 허용해야 할지, 각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놓는 가운데, 특별히 한 사람의 윤리 ‘전문가’를 모셔놓고 그의 관점을 들으려고 한다. 때론 이런 식의 분업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는 윤리를 일상과 동떨어지게 보는 경향을 부추기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처럼 윤리를 세상사와 멀리 떨어진 하나의 전문분야로 보는 건 잘못이라는 점이다. 삶이 윤리적인 소재들, 즉 관계, 욕망, 계획, 책임,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등으로 짜여 있기에 우리는 늘
윤리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보다 재능 있는 친구를 질시하는 것이 나쁜지, 나를 업신여기거나 내게 무관심한 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 고장의 정치에 참견해야 할지, 자녀의 생활에 어느 정도 관여해야 할지, 부모의 간섭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같은(너무 강압적이지만 방안을 구할 수 있는) 문제들을 놓고 어느 날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의문을 명쾌하게 하려는 노력 자체가 골치 아픈 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압박한다. 의식적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때조차 이들은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그뿐 아니라 때때로 이런 문제를 놓고 직장이나 가정, 체육관, 그리고 카페에서, 또 저녁이나 점심을 먹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친구나 동료와 길게 이야기를 나눈다.
윤리 문제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것이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거나 견해가 옳지 않다고 말하면 당사자는 필시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윤리적 견해는 우리의 느낌과 감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윤리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이라는 점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모나 친구의 생각에 따
르겠다는 사람을 본다면 누구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봐도 마찬가지로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누군가 대신 생각해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윤리적 사고가 개인적인 일이라고 본다(다른 사람의 생각과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단순히 복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염려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은 곧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 암시한다.
각 사례에서 어찌 보면 윤리 문제는 스스로 결정해야 할 개인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떤 견해를 선택하건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돌이켜볼 때 잘못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수정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릴 때 둘 다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많은 문제에서 우리가 옳은 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윤리는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즉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문제임과 동시에 옳은 답을 얻고자 (또는 잘못된 답을 피하고자) 노력할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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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란 무엇인가』

 

 

 

 

 

『윤리란 무엇인가』는 철학과 윤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도덕적 선택을 스스로 판단하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의 역할을 한다. 각 장 끝에는 그 장에서 토의한 내용을 요약하고 추가 연구를 위한 질문과 주석을 붙인 ‘토의사항’과 ‘더 읽을 책’이 있어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이 책은 윤리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가지는 독자에게 매우 유용한 학습서이다.

 

저자 크리스토퍼 베넷(CHRISTOPHER BENNETT)은 영국 셰필드 대학교의 철학과 부교수로, 『사죄의 의식: 형벌에 관한 철학이론THE APOLOGY RITUAL: A PHILOSOPHICAL THEORY OF PURNISHMENT』(2008) 등을 집필했다.

목차

●●●들어가는 말
도덕적 사고란 무엇일까
도덕이론이란 무엇일까
도덕이론이 왜 필요할까
도덕성은 모두 상대적일까
도덕이론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이 책의 구성
1부삶과 죽음
1장죽음, 그리고 삶의 의미
죽음은 정말 나쁜 일인가
삶이 무의미할 수도 있을까
쾌락주의: 쾌락의 요구 원칙
고급 쾌락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활동에서의 의미
엘리트주의
오시만디아스의 문제
결론| 토의사항| 주| 더 읽을 책
2장어떤 생명이 중요한가
살인에 관한 몇 가지 의문
이상한 제안
인간의 성스러운 생명
인간의 생명은 왜 신성할까
‘생명의 신성함’에 관한 실제 논의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비평
결론| 토의사항| 주| 더 읽을 책
3장도덕은 우리에게 남을 도울 의무를 얼마나 요구하는가
세계적 빈곤: 급진적 견해
그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을까?
돕는 의무와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급진주의자들의 반응: 의무와 자선의 폐지
결론| 토의사항| 주| 더 읽을 책
제2부도덕이론의 세 가지 출발점
4장공리주의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공리주의의 실행: 처벌과 약속
그 밖의 문제: 공리주의자의 고달픈 삶
해법을 찾아서: 규칙 공리주의
규칙 공리주의 비판
행복의 본질에 관한 몇 가지 결론적 생각
결론| 토의사항| 주| 더 읽을 책
5장칸트의 윤리학
인간의 존엄성
인간을 단지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 왜 나쁜 일일까
인간은 자유를 어떻게 인식할까
사람을 이성적 행위자로 존중하는 길
칸트의 윤리학은 우리를 무방비 상태로 버려둘까
합리성의 요건으로서의 도덕적 요건
정언명령
보편법칙
보편법칙의 절차에 대한 비판
결론| 토의사항| 주| 더 읽을 책
6장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
덕 윤리학의 동기
덕 윤리학: 기본 개념들
인간의 기능과 선한 인간
중용의 사상과 정념의 합리성
덕 윤리학과 이기주의
결론| 토의사항| 주| 더 읽을 책
제3부도...(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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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윤리란 무엇인가

 

 

 

 

 

 

 

윤리란 무엇인가의 저자 크리스토퍼 베넷은 윤리 문제가 개인적·내면적이며, 이런 점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다. 누군가 대신 생각해줄 수 없다는 것은 타인의 생각을 단순히 복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개인의 윤리 문제라고 해서 어떤 견해를 선택하건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윤리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문제임과 동시에 옳은 답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윤리란 무엇인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도덕성에 관한 문제, 둘째, 주요 이론들에 대한 고찰, 셋째, 도덕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요구이다. 이 책은 어느 것이 가장 좋은 도덕이론인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이론들의 관점, 즉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검토한다.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쟁점은 죽음의 문제와 생명의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윤리와 종교의 연관성과 계약이나 합의를 바탕으로 도덕성이 고려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 뒤 마르크스와 니체 같은 인물들이 제시한 도덕성을 비판한다.

 

저자는 1장에서 독자로 하여금 죽음과 삶의 의미를 먼저 고찰하게 하고, 2장에서 생명의 가치에 관해 다룬다. 본질적이고 내재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행위에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인간의 가치는 다른 모든 것의 가치에 우선하므로 인간의 행위 자체에 일정한 제약이 설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에게는 생명에 대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즉각적인 권한이 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타인이 나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우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대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낙태, 살인, 안락사 등의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3장에서 도덕이 우리에게 남을 도울 의무를 어느 정도 요구하는지, 그들에게 우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지, 돕는 의무와 한계에 관해 고찰한다. 우리가 도덕적 행위를 할 때에 의무나 권리에 따라 마땅히 도와야 하기 때문에 돕는 경우와 의무상의 요구를 뛰어넘어 자발적으로 돕는 경우의 차이도 제시한다. 이런 차이, 즉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도덕철학의 주요 이론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2부에서 도덕론의 출발점으로 공리주의, 칸트의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각각의 이론에 대한 파악과 그에 대한 몇 가지 비평을 검토하고 그러한 비평들이 어떻게 수용·발전해왔는지를 짚어본다. 그가 도덕론의 세 가지 출발점으로 공리주의, 칸트의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특별히 중요하게 다룬 까닭은 이 세 가지 사상이 서방세계, 특히 미국과 영국의 도덕철학에서 논의의 초점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세 가지 중 어느 하나가 옳다는 식의 가정은 하지 않았다.

저자는 다수의 행복을 기준으로 하는 공리주의의 도덕론과 의무론적 윤리관에 기반을 둔 칸트의 도덕론의 차이를 지적한다. 칸트는 행위의 도덕적 부당성, 인간의 독립성, 인간, 권리, 또는 소유 사이의 도덕적 경계를 핵심적인 문제로 간주하는 반면, 공리주의자들은 이런 개념들을 중시하더라도 전반적인 행복에 더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될 때에만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공리주의와 칸트주의 모두 우정이나 사랑 같은 고귀한 인간관계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공리주의와 칸트주의 모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지만 인간은 일상에서 공정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친구, 자녀, 부모처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쓴다. 우리는 친구와 가족을 특별히 배려하며, 사랑과 믿음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삶에서 큰 보람의 하나로 여긴다. 도덕론의 비현실성을 공격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공정한 관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새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거론하는 것은 공리주의와 칸트주의 모두 인간의 정서를 불합리의 근원으로 보고 투철한 도덕적 사고를 하는 데 장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현실화를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가 없더라도 윤리학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와 도덕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도덕이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행위를 설명하는 순수 기준이므로 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도덕은 무의미하다며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렇지만 인본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이성이 있으므로 도덕적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과학이 아니고서는 세상에서 우리를 깨우쳐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오직 물질적 세계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의미나 가치가 없는 텅 빈 세상이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과학을 신뢰하다 보면 인간은 생물학적 우연의 결과일 뿐 우리는 오직 본능과 충동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오로지 과학만이 세상 지식의 원천이라면 옳은 행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희박해질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은 유신론자와 무도덕주의자들이 도덕에 관한 인간의 사고능력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인본주의자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도덕적으로 행동하려고 마음먹을 때에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본주의의 관점은 계시이건 성서이건, 도덕적 지식의 근원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이 도덕적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경우, 그 도덕적 지식은 기껏해야 독단적이거나 불충분할 뿐이고, 나쁘게 말하면 인간을 완전히 오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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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 유대인혐오증, 불만 표출

 

 

 

“엑소시즘도 통하지 않는 증오” 라는 제목의 『뉴욕 타임스』지 서평란을 보면 반유대주의를 다룬 두 권의 책을 두고 기자는 “반유대주의에 대해 더 할 말이 있는가?” 2라고 묻는다. 그 다음 물음은 좀 더 구체적이다. “무슬림 시위자들의 추악한 증오가… 정치적 불만을 표출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고 나서 기자는 근대식 반유대주의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 도입된 주된 개념을 지적했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기보다는 강력한 유대인의 모략에 당한 피해자들로 여겨진다. 로트스타인의 말마따나 “반유대주의는 증오가 아니라 묵시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유대인을 공격하는 것도 실은 방어인 셈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문헌과 원칙에도 기록되었듯이, 나치를 비롯하여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 또한 유대인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취급했다. 나치의 이데올로기는 근대 이슬람교의 극단주의와 여러모로 흡사하다.” 이는 반유대주의가 단순한 선입견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문화나 종교 혹은 민족을 악마로 몰아세우는 편견은 역사에도 흔히 나타나며 반유대 감정에 국한된 건 아니다. 선입견은 문화와 사회를 통틀어 어디에서라도 찾아낼 수 있으며, 도가 지나치면 상대를 위협하기도 한다.
한편, 반유대주의는 선입견과는 다르다. 앙심이나 분노에 그치지 않고 후속적인 아젠다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때 피해자는 존재할 권리마저 박탈되는데, 이를 두고 루이스는 『아메리칸 스콜라American Scholar』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굳이 반유대주의를 동기로 삼지 않더라도 이스라엘의 정책이나 대외활동 및 시온주의 사상을 비난하는 건 정당하다. … 굳이 반유대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유대인을 박해하고 증오할 수 있다. … 반유대주의는 별개의 문제로 두 가지 특성을 지닌다. … [첫째] 유대인을 타 민족에 적용되는 것과는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며… 두 번째 특징은 유대인이 자행한 엄청난 악을 규탄하는 데 있다. 정도를 따질 수 없는 데다 악마를 보는 듯한, 유대인의 죄악을 비난하자는 것이 최근에 반유대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나치는 홀로코스트에서 보편적인 악마근성을 유대인에게 씌워 대량살상 프로젝트와 인종말살을 정당화했다. 따라서 근대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혐오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유대인혐오증은 독일이나 유럽 문화의 특징이 아니다.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이는 이슬람 역사에도 등장한다. 물론 대량살상으로 이어지는 반유대주의는 특히 독일에 국한된 유럽의 병폐로 20세기 이전의 이슬람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슬람세계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30년대— 종교와는 무관한—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독일처럼 반유대주의를 선택했을 때부터다. 반유대주의를 이슬람세계에 편입시킨 건 훨씬 더 위험한 사건이었다. 본디 문화와 신앙의 결정체인 이슬람교는 증오 따위에서 벗어
나야 마땅한데 반유대주의가 근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는— 포괄적으로— 이슬람세계와 이스라엘, 유대인 및 서방세계를 아우르는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보스텀은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의 유산The Legacy of Islamic Antisemitism
』에서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서로가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특정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 5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제목에 “유산” 을 넣은 것은 반유대주의가 이슬람교의 전통과 본질로 자리 잡았다는 인상을 준다. 더군다나 겉표지에는, 보스텀이 동의해서 나왔겠지만, “이슬람교의 반유대주의는 이슬람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고 적혀 있다. 본문에도 “무슬림이 유대인을 증오하는 것이 20세기의 산물이라는 것” 은 틀린 주장이라고 했으니 분명 어폐가 있진 않다. 하지만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 는 한나 아렌트의 논리뿐 아니라 루이스가 『이슬람세계의 유대인Jews of Islam』에서 밝힌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는 뉘앙스가 풍긴다. 엄밀히 말하면, 보스텀은 내가 이 장에서 주요 전제로 밝힌 것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기존의 이슬람교식 유대인혐오증을 축소하거나 부인하지 않은 채, 유대인과의 관계를 두고 일반적인 공포증을 무슬림의 속성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 라는 개념은 없다.
사소한 점까지 시시콜콜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차이점이 중요하기에 그러는 것이다. 유대인과 무슬림의 유대를 도모해야 할 시기에 이슬람세계의 반유대주의 사상을 내세우는 것은 그 둘 사이에 선을 긋는 꼴과 같다. 유대인과 무슬림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이 장에서 굵직하게 다룰 두 가지 차이점, 즉 첫째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둘째는 유대인혐오증과 반유대주의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2009년 6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카이로에서 반유대주의를 비롯하여 홀로코스
트와 이를 부인하는 논리 및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각국에서 행사할 권리를 서로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는 서방세계와 이슬람 민족이 겪고 있는 “갈등의 원천” 일곱 가지를 언급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다. 아울러 이슬람 군중 앞에 선 그는 반유대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대인의 고충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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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재는 개념으로 담아낼 수 없다

 

 

 

죽음에 대한 간단한 개념으로 시작해보자. 유물론자는 죽음을 그냥 끝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죽음을 환생이란 측면에서 생각해서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개념들은 너무 단순하다. 아무것도 진정으로 태어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진정으로 죽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이미 우리 부모나 조상 속에서 그리고 다른 많은 형태들로 살고 있었다.
내가 죽은 후에도 나는 많은 형태들로 지속된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며 사후에 가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환생을 문자 그대로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여서 죽고 다시 태어남을 계속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나 신비스러워서 불교에서 공śūnyatā이라고 부르는 경이로운 생성의 실재(색色)이다. 한계가 없는 것에 한계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죽음과 환생을 곰곰이 생각하면 극단적인 시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물질과 에너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변화할 뿐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마찬가지로 죽음도 하나의 변화일 뿐이다.
문자 그대로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죽음은 끝이지만 단순한 끝이 아니다. 실재는 존재bhava 또는 비존재abhava로 구분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상견常見(sassata, 만물이 실제로 영원히 존재한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 또는 단견斷見(uccheda,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져 공무空無로 돌아간다는 그릇된 견해)으로 나눌 만큼 간단하지도 않다. 실재는 그 중간에 있다. 커피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 맛을 설명하는 것처럼 실재가 무엇인지 말로는 정확 히 표현하지 못한다. 실재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개념을 떠나 그것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가 분리된 자아로 존재한다는 착각과 우리를 동일시하면, 죽음이 다가올 때 고통을 겪게 된다. 반대로 우리를 삶 그 자체와 동일시한다면 지금 그리고 죽는 순간에도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상인이었던 아나타핀디카Anathapindika는 오랫동안 붓다와 붓다의 일행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죽을 때 큰 고통에 몸부림쳤다. 붓다는 그를 돕기 위해 수행이 높은 제자 사리푸트라Shariputra와 아난다Ananda를 보냈다. 이들은 아나타핀디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에게 여러 가지 명상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명상법은 육체적 자아와의 전면적인 탈동일시와 관련되어 있었으며, 이 명상으로 아나타핀디카는 크게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두려움 없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무아, 대선사의 죽음 또는 환생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두려움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두려움을 없애려면 우리 자신의 통찰이 요구된다. 다음은 아나타핀디카에게 도움이 된 명상법의 일종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이 수행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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