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 유대인혐오증, 불만 표출

“엑소시즘도 통하지 않는 증오” 라는 제목의 『뉴욕 타임스』지 서평란을 보면 반유대주의를 다룬 두 권의 책을 두고 기자는 “반유대주의에 대해 더 할 말이 있는가?” 2라고 묻는다. 그 다음 물음은 좀 더 구체적이다. “무슬림 시위자들의 추악한 증오가… 정치적 불만을 표출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고 나서 기자는 근대식 반유대주의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 도입된 주된 개념을 지적했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기보다는 강력한 유대인의 모략에 당한 피해자들로 여겨진다. 로트스타인의 말마따나 “반유대주의는 증오가 아니라 묵시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유대인을 공격하는 것도 실은 방어인 셈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문헌과 원칙에도 기록되었듯이, 나치를 비롯하여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 또한 유대인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취급했다. 나치의 이데올로기는 근대 이슬람교의 극단주의와 여러모로 흡사하다.” 이는 반유대주의가 단순한 선입견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문화나 종교 혹은 민족을 악마로 몰아세우는 편견은 역사에도 흔히 나타나며 반유대 감정에 국한된 건 아니다. 선입견은 문화와 사회를 통틀어 어디에서라도 찾아낼 수 있으며, 도가 지나치면 상대를 위협하기도 한다.
한편, 반유대주의는 선입견과는 다르다. 앙심이나 분노에 그치지 않고 후속적인 아젠다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때 피해자는 존재할 권리마저 박탈되는데, 이를 두고 루이스는 『아메리칸 스콜라American Scholar』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굳이 반유대주의를 동기로 삼지 않더라도 이스라엘의 정책이나 대외활동 및 시온주의 사상을 비난하는 건 정당하다. … 굳이 반유대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유대인을 박해하고 증오할 수 있다. … 반유대주의는 별개의 문제로 두 가지 특성을 지닌다. … [첫째] 유대인을 타 민족에 적용되는 것과는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며… 두 번째 특징은 유대인이 자행한 엄청난 악을 규탄하는 데 있다. 정도를 따질 수 없는 데다 악마를 보는 듯한, 유대인의 죄악을 비난하자는 것이 최근에 반유대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나치는 홀로코스트에서 보편적인 악마근성을 유대인에게 씌워 대량살상 프로젝트와 인종말살을 정당화했다. 따라서 근대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혐오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유대인혐오증은 독일이나 유럽 문화의 특징이 아니다.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이는 이슬람 역사에도 등장한다. 물론 대량살상으로 이어지는 반유대주의는 특히 독일에 국한된 유럽의 병폐로 20세기 이전의 이슬람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슬람세계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30년대— 종교와는 무관한—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독일처럼 반유대주의를 선택했을 때부터다. 반유대주의를 이슬람세계에 편입시킨 건 훨씬 더 위험한 사건이었다. 본디 문화와 신앙의 결정체인 이슬람교는 증오 따위에서 벗어
나야 마땅한데 반유대주의가 근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는— 포괄적으로— 이슬람세계와 이스라엘, 유대인 및 서방세계를 아우르는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보스텀은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의 유산The Legacy of Islamic Antisemitism
』에서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서로가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특정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 5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제목에 “유산” 을 넣은 것은 반유대주의가 이슬람교의 전통과 본질로 자리 잡았다는 인상을 준다. 더군다나 겉표지에는, 보스텀이 동의해서 나왔겠지만, “이슬람교의 반유대주의는 이슬람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고 적혀 있다. 본문에도 “무슬림이 유대인을 증오하는 것이 20세기의 산물이라는 것” 은 틀린 주장이라고 했으니 분명 어폐가 있진 않다. 하지만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 는 한나 아렌트의 논리뿐 아니라 루이스가 『이슬람세계의 유대인Jews of Islam』에서 밝힌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는 뉘앙스가 풍긴다. 엄밀히 말하면, 보스텀은 내가 이 장에서 주요 전제로 밝힌 것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기존의 이슬람교식 유대인혐오증을 축소하거나 부인하지 않은 채, 유대인과의 관계를 두고 일반적인 공포증을 무슬림의 속성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 라는 개념은 없다.
사소한 점까지 시시콜콜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차이점이 중요하기에 그러는 것이다. 유대인과 무슬림의 유대를 도모해야 할 시기에 이슬람세계의 반유대주의 사상을 내세우는 것은 그 둘 사이에 선을 긋는 꼴과 같다. 유대인과 무슬림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이 장에서 굵직하게 다룰 두 가지 차이점, 즉 첫째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둘째는 유대인혐오증과 반유대주의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2009년 6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카이로에서 반유대주의를 비롯하여 홀로코스
트와 이를 부인하는 논리 및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각국에서 행사할 권리를 서로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는 서방세계와 이슬람 민족이 겪고 있는 “갈등의 원천” 일곱 가지를 언급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다. 아울러 이슬람 군중 앞에 선 그는 반유대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대인의 고충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