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작품들

 
가장 오래된 예술품?으로 독일의 지역 Neanderthal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묘비가 있는데 약 3만 5천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 동굴 속에 그려진 벽화들 중에는 무려 2만 7천 년 전에 제작된 것들도 있고, 오스트랄리아에 있는 동굴벽화는 적어도 2만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앞으로 구석기시대에 제작한 벽화들이 세계 도처에서 더 발굴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새로운 형태의 벽화와 좀더 오래된 것들이 우리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줄 것이다.

우리의 궁금증을 다소 풀어주는 대부분의 오래된 예술품들은 프랑스 남서쪽과 스페인 북쪽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며 그것들은 작은 형상의 돌, 뼈다귀, 야성을 상징한 흙으로 빚은 조각, 장식적 물체들로 연장, 무기, 그리고 벽과 천장에 그려진 그림들인데 주로 동물들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미술책에 나오는 라스코Lascaux 동굴벽화는 1940년 소년들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아직까지는 유럽인 최초의 사실주의 그림이다.
벽에 그려진 소와 사냥장면은 원시인이 기억을 더듬어 상황을 재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재현하려는 의지가 있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벽화를 보면 사냥꾼이 뻗어있는데 아마 사냥하던 중에 거대한 들소의 날카로운 뿔에 받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땅바닥에는 그가 사용하던 창이 놓여져 있고 다른 창 하나는 그가 들소의 배를 찔렀으므로 배에 꽂힌 채 땅에 넘어져 있다.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냥에 실패한 사냥꾼의 죽음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이 장면은 죽은 사냥꾼의 동료에 의해서 그려졌을 텐데 동료는 이 그림을 기억을 되살려 그리면서 들소를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들소를 그리면서 두려움을 떨쳐냈을 것이다.

또 한가지는 원시인들에게 동굴은 가장 안전한 장소였을 것이다.
동굴은 그들에게 성소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들소를 벽에 그린 데서 사냥에 필승하려는 저의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거대한 들소는 실재보다 작게 그린 데서 과학적 관찰을 알 수 있는데 큰 것을 작게 그리고 작은 것을 보고 큰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이는 과학이 아니겠는가!
동굴은 원시인들에게 가장 안전한 지성소나 다름 없었으므로 종교와 과학이 동굴에서 동시에 출발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궁금한 점은 그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색으로 칠했으며 그 색이 여태까지 보존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동물의 기름에 색이 있는 돌을 빻아 섞어서 그것을 벽에 짖이겨 발랐다. 동굴은 통풍이 잘 되어 있어 채색이 보존될 수 있었다.
학자의 말에 의하면
원시인들이 동굴에서 이런 그림을 그릴 때 프랑스 인구가 약 2만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세계인구는 약 1억이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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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와 그림문자

 
기원전 3천 년경의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은 파라오Pharaoh와 그림문자Hieroglyph이다.
흥미로운 것은 물고기와 끌(chisel, 연장)의 이미지를 이집트어로 나르메르Nar-Mer라 하고 나르메르가 파라오의 이름이 되었다.
그림문자 혹은 상형문자는 중국에서 발견된 뼈에 새겨진 갑골문자 이전에 사용된 문자로서 말 그대로 그림과도 같은 문자이다.
예를 들면 남자가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그림은 늙은이를 의미하는 문자이다.
상형은 상징symbol이란 뜻으로 오늘날 회화와 조각에서 말하는 형상을 최소화하는 추상abstract과 같다.
고대 이집트인은 눈으로 보는 형상을 추상화해서 문자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추상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어는 히브루어와 아랍어와 마찬가지로 모음이 없고 자음으로만 되어 있었고 그들은 자음을 읽을 때 모음을 붙여서 읽었다.
자음은 남아 있지만 그들이 어떤 모음을 사용했는지 몰라 우리는 그 자음들을 읽어낼 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도 하고 야훼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음을 잘못 붙여서 읽기 때문에 생긴 혼돈이다.
야훼가 맞고 여호와는 오랫동안 잘못 붙여진 모음이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모음붙이기는 여전히 학자들의 소일거리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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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과 미학의 차이


미학은 심미적aesthetic 경험과 경험 대상에 대한 심리학적, 사회학적, 문화적, 정치적, 생물학적 지적 탐구를 말한다.
예술작품이 미적 가치의 구현이며 필연적으로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전제하는 한 미학의 대상은 예술작품을 필연적으로 포함하지만,
예술작품과 전혀 무관한 자연현상과 인공품 모두 미적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모든 경험 대상이 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술작품은 이런 대상 중 한 종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미학은 예술철학에 비해서 포괄적 학제적 개념이다.


예술철학은 예술과 철학 모두에 관한 탐구로서 철학이 무엇인가 하는 개념을 정해야만 탐구가 시작된다.
철학은 다른 학문들 역사학, 문학, 예술학, 과학, 물리학, 화학, 심리학, 법학, 의학, 사회학, 경영학, 정치학 등과 같이 지적 탐구의 한 분야이지만,
역사학이 역사적 사건을, 문학이 문학작품을, 예술학이 예술작품을, 물리학이 물리적 현상을, 화학이 화학적 현상을, 심리학이 심리적 현상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 데 반해,
철학의 탐구 대상은 분명하지 않다.
철학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은 탐구 대상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로부터 비롯되었다.
데카르트는 철학을 절대적으로 확실한 존재를 밝히고, 인식 주체로서 선험적 자아, 유일신, 물질적 세계 등의 존재와 그것들의 각기 다른 본질을 밝히는 인식적 탐구활동이라고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은 진, 선, 미, 정의, 영혼, 인간, 삶, 자연, 우주, 신, 존재 등을 탐구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특별한 대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철학도 다른 학문의 대상인 역사적 사건, 물리적 존재, 화학적 존재, 심리적 존재, 법적 제도, 정치적 사건 등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으며,
철학의 탐구 대상으로 알려져온 영혼, 인간, 삶, 자연, 우주 신 등을 다른 학문 심리학, 신학, 생물학, 동물학, 지질학, 우주학, 신학이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철학 외의 학문들은 각기 인식 대상의 차이에 근거하는 개념인 데 반해 철학은 어떤 대상에 접근하는 논리적 시각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학문의 대상은 철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철학, 과학철학, 종교철학, 법철학, 도덕철학, 자연철학, 심리철학, 언어철학, 교육철학, 경제철학, 사화철학 등 다양한 철학의 개념들이 성립하는 것이다.
다른 학문은 대상에 대한 경험적 시각을 말하지만, 철학은 그러한 시각에 대한 인식을 문제로 삼는다.
철학의 결과물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담론 혹은 텍스트 쓰기이다.
다만 다른 점은 다른 학문은 대상에 대한 일차적 텍스트 쓰기인 데 반해 철학은 일차적 텍스트 쓰기에 대한 이차적, 즉 메타 텍스트 쓰기이다.

철학이 언어학과 문학평론과 마찬가지로 언어 텍스트를 인식 대상으로 삼는 메타 텍스트, 메타 언어이지만, 언어학자와 문학평론가들이 대상을 설명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데 반해 철학자는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와 텍스트를 둘러싼 담론에 사용된 언어적 의미의 투명성과 논리적 일관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담론에 담겨 있는 신념의 진위를 더욱 더 극명하게 밝히려고 한다.
다른 학문이 불분명한 낱말을 사용하면서 그 뜻이 자명한 것처럼 전제할 때 혹은 명제들 의미의 불투명성이 드러날 때 철학적 사유가 시작되고 철학적 인식이 결과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철학의 존재 의의는 분석철학자들의 주장대로 '개념적 해명'에 있다.
철학적 사유의 본질은 반성적인 데 있다.
진리를 언어의 그물 밖에서 발견할 수 없는 한 '개념적 해명'은 불가피하고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진리에 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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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의 키네틱 아트

한 달 동안 돔에서 노래와 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도 워홀은 카스텔리 화랑에서 열릴 전람회(1966. 4. 2~4. 27)를 준비해야 했다.
이 전시에서는 핑크색 황소 머리가 그려진 벽지와 〈은빛 구름〉(그림 142, 143)을 소개했다.
가로세로 121×91cm 크기의 은빛 비닐 풍선에 수소를 채워 화랑 안에 띄웠는데 수십 개의 풍선들은 반짝이며 거울처럼 주위의 것들을 반사시켰다.
허공에 뜬 풍선들은 마치 움직이는 미니멀 조각처럼 보였다.
워홀의 풍선제작을 도운 빌리 클루버는 38세의 스위스 태생 전기 엔지니어로 1960년대에 ‘예술가의 과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라우센버그와 존스를 도운 적도 있으며 같은 나라사람 장 팅글리를 돕기도 했다.

워홀은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키네틱 아트는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20년 러시아의 나움 가보가 시도했던 적이 있으며 뒤샹의 자전거 바퀴와 알렉산더 캘더의 움직이는 조각은 유명하다.
이러한 키네틱 아트가 1960년대에 중반에 부활한 것이다.

워홀은 카스텔리 화랑 안에 베개 모양의 은빛 구름을 띄웠다.
풍선이 적당한 높이로 뜨도록 수소의 양을 조절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소를 가득 채우면 풍선이 천정에 닿았고 너무 적게 넣으면 바닥에 가라앉았다.
구름은 한 점에 50달러에 팔았다.
클루버는 구름을 산 사람에게 향후 10년 동안 A/S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런 방법이 사람들에게 먹혀들 것 같지 않아 카스텔리는 조그만 수소통을 끼워 50달러에 팔았다.

이 전람회는 뒤샹의 설치작업을 상기시켰다.
뒤샹은 1938년 1월 파리에서 열린 국제 초현실주의전에서 1,200개의 석탄 푸대를 전시장에 매달았다.
사실 푸대는 비어 있었지만 뒤샹은 마치 석탄이 담겨 있는 것처럼 다른 물질을 넣어 무겁게 보이도록 위장했다.
워홀이 뒤샹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풍선에 수소를 채워 공중에 띄운 것은 아주 신선한 방법이었다.
〈은빛 구름〉과 함께 소개된 핑크색 황소 머리는 벽지로 붙였다.
워홀은 실제 황소의 머리보다 크게 확대한 황소 머리 그림들(그림 144)을 연속적으로 화랑
벽에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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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와 지구라트

 
문화적으로 가장 두드러졌던 수메르Sumer는 메소포타미아 남쪽 페르시아만 강가에 위치했던 나라로 영토의 길이가 100마일가량 되었다.
수메르인들은 코카서스 백인들Caucasians로서 이웃 남서쪽에 살던 셈족Semitic(특히 히브루족)과 티그리스 강 건너 북쪽에 거주하던 이람족Elamites과는 달랐다.
메소포타미아 남쪽에 살던 사람들을 학자들은 수메르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기원전 4천 년 전부터, 그러니까 이집트인이 왕국을 건설할 때부터, 페르시아Persia로부터 그곳으로 이주해 왔으며 나중에는 다른 종족과 섞였다.
수메르는 기원전 4천 년경 청동시대를 맞았으며 메소포타미아 남쪽에는 돌이 귀했으므로 수메르인은 진흙을 물에 개어 말려서 벽돌을 사용하여 집을 지었다.
그들이 흙벽을 사용해 건물을 지었으므로 이집트와는 달리 거의 현존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건물의 기초만 폐허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 CNN TV에서 유적지를 종종 보여주는데 기초의 폐허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놀라운 건축기술이 있었다.
그들은 벽돌을 쌓아 성전을 건립하면서 천장을 하늘에 닿을 듯 매우 높게 지었으며 그런 성전들 중 하나가 미술사책에 으례 등장하는 지구라트Ziggurat이다.
이 지구라트는 기원전 2500년에 건립된 것으로 이를 구약시대 사람들은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이라고 불렀다.
구약성서에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 단계로 높은 층을 이루며 하늘로 솟은 지구라트는 현재 터전만 남아 있으며 위로 솟은 상층 두 단계는 없어졌지만 황룡사의 터전으로 황룡사의 높이와 크기를 측정할 수 있듯이 남아 있는 터전을 근거로 당시의 성전의 규모를 어림하면 얼마나 크고 웅대했었는지 알 수 있다.
지구라트는 그리스인이 믿었던 신들의 거주지 올림푸스 산Mount Olympus과 비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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