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새 중개상 시드니 재니스와의 흥정
베티 파슨즈와 실제적으로 결별한 폴록은 새로운 중개상을 만나서 다시 미술시장을 석권하려는 야망을 품었다.
그는 유력한 중개상으로 피에르 마티스를 꼽고 있었는데, 마티스는 파리에서 화랑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이로서 뉴욕에 온 후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취급하는 실력 있는 중개상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는 폴록에게 관심이 없기보다는 자신이 없었으므로 어느 날 뒤샹더러 “잭슨 폴록에 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뒤샹은 “잭슨은 약탈하기 위해 올라갔다”고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뒤샹의 대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약탈자를 후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폴록에게 ‘No’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폴록은 다른 중개상을 만났는데 그의 이름은 그랜트 마크였다.
“모든 추상화가들은 마크를 통해서 그들의 작품을 팔고자 했다”면서 오소리오는 “마크는 미국 미술시장에서 가장 큰손이 되려고 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로드코, 뉴먼, 스틸, 그리고 탐린이 파크 애비뉴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대단함을 웅변했는데 뉴먼은 그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뉴먼은 “난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해봐서 아는데 마크와 같은 작자는 ‘여기에 대통령이 내게 보낸 전보가 있다’고 말하면서 전보를 너희에게 보여주겠지만 그 전보라는 게 사실은 자기 자신이 보낸 전보일 것이며, 너희에게 대단한 매매가 곧 성사될 것이라 하면서도 그것을 말해줄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자신의 소감을 피력했다.
뉴먼은 마크에게 직접 “누가 우리의 그림들을 살 것이냐?”고 묻자 그는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뉴먼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폴록은 마크를 신뢰하면서 자신에게는 마크 외의 다른 중개상은 필요 없다고 섣불리 단정했다.
그러나 폴록은 곧 마크의 허황함을 알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52년 4월 9일 모마에서 ‘열다섯 미국 예술가들 Fifteen Americans’ 전람회가 열릴 즈음 폴록에게는 그를 후원할 중개상이 없었다.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술가 뒤비페와 마더웰을 후원하던 샘 쿠츠는 폴록과 그의 그림 모두를 싫어했다.
폴록이 만취한 채 자신의 화랑으로 와서 “난 여기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그린 시팔놈들보다 낫다!”라고 말했던 것에 대한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았던 터에 그가 검정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그에게 “컬러를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물으면서 폴록의 그림에 대한 투자에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쿠츠는 그래엄이 “생존하는 미국 조각가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조각가”라고 칭찬한 데이비스 스미스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는 “스미스의 조각들은 너무 녹이 많이 슬었으며, 그는 술주정뱅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작품과 작가의 음주벽을 구별할 줄 몰랐던 무능한 중개상이었다.
폴록은 57번가에 있는 찰리 이간의 화랑을 타진해보았다.
이 시기에 이간은 드 쿠닝과 클라인을 후원하고 있었다.
이간 자신이 술을 좋아했으므로 폴록의 음주벽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었고 그는 폴록의 그림들도 좋아했지만, 그의 화랑은 비좁았다.
화랑의 크기가 고작 457㎝ 길이에 457㎝ 너비의 작은 정사각이었다.
폴록에게 “십년 전에만 왔었더라도 좋았을 걸”이라고 말한 이간은 폴록이 다녀간 며칠 후 해리 잭슨이 그에게 갔을 때는 해리에게 “십년 후에 오라!”고 말했다고 해리는 전했다.
폴록은 자신을 후원해줄 중개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레오 카스텔리는 폴록에 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잭슨은 자신이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화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화가들과 어울릴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AAA 화랑이 폴록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폴록은 그 화랑을 “대부분의 쓰레기 그림들을 매매하는 백화점”이라며 업신여겼다.
리는 참다못해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판단하고 1952년 4월 어느 날 베티의 화랑 바로 건너편에 있는 시드니 재니스의 화랑으로 갔다.
두 화랑은 같은 건물 안에 복도를 가운데로 하고 양편에 있었다.
작은 키에 안경을 낀 재니스는 화랑 개업 전에는 버팔로에서 봉제공장을 경영하던 사업가로서 미술작품 중개상이 된 후로는 유럽 작가들의 그림을 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는 피카소, 몬드리안, 레제, 자코메티, 브랑쿠지, 칸딘스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폴록은 과거에 그의 화랑에서 열렸던 그룹전에 두 번 참여한 적이 있었고, 리와 함께 ‘남편과 아내’라는 명제로 전람회를 가진 적도 있었으므로 재니스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리는 재니스를 만나자 한마디로 “잭슨은 유용하다”고 말했다.
재니스는 “리, 당신은 잭슨의 그림들이 미술시장에서 포화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리가 “표면에 아직 스크래치(상처)가 안 난 상태이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리의 날카로운 사업수단에 놀랐다.
재니스는 리에게 1952년 11월에 폴록의 전람회를 열어줄 것을 약속했다.
재니스는 1940년대 초에 『미국 내의 추상과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미술』을 출판한 적도 있는 결점 없는 중개상이었다.
그는 카스텔리와 가까왔고, 카스텔리의 도움을 받으며 미국 작가들 몇 사람들을 후원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고키, 바지오츠, 클라인, 드 쿠닝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니스는 베티와는 달리 미술을 좋아해서 중개상이 된 것이 아니라 미술시장을 석권하려는 야망이 있는,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을 투자할 줄도 아는 사업가형의 중개상이었다.
폴록의 뒤를 따라서 수년 사이에 로드코와 스틸도 복도를 건너 베티에게서 재니스에게로 갔다.
베티는 ‘묵시의 승마자들’의 탈출을 막을 수가 없었고 재니스에 대한 미움이 날로 커지고 있었다.
재니스에 대한 그녀의 미움은 1963년에 최고조에 달했다.
그녀는 건물 주인을 걸어 소송을 제기했다.
베티의 소장에 의하면 재니스가 집 주인에게 압력을 넣어 베티를 건물에서 내쫓으려 했다는 것이다.
재니스는 그 점을 완강히 부인했다. 베티가 재판에서 패소하자 그녀는 화랑을 세 얻어 확장했다.
재니스를 만났을 때 폴록은 마치 사업가처럼 말했지만 해리 잭슨의 말로는 그것은 “고양이와 쥐의 싸움”이었다.
“잭슨은 재니스를 만나 흥정을 잘한 듯이 까불었지만 재니스의 양말을 포장하지 못했다”고 해리는 전했다.
재니스는 폴록과 리를 모두 만난 뒤 자신이 두 사람을 조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후원자가 될 것을 약속한 것이었다.
스프링스로 돌아온 후 폴록은 재니스를 가리켜 “이자가 최고다!”라고 말했다.
재니스는 그만큼 예술가들을 다룰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