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병걸이>
레디 메이드란 말은 2년 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지만 그런 말이 통용되기 전 1914년 그는 레디 메이드를 두 번 더 발견했다.
겨울 어느 날 저녁 그는 루엥으로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 불이 켜진 진열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불이 켜진 진열장은 약국 사인처럼 빛에 색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게 주었다”고 했다.
그는 미술재료를 파는 상점에 가서 나무와 강이 그려진 무의미한 컬러 석판화를 프린트한 종이를 석 장 샀다.
그는 약국 사인처럼 그 종이에 과슈로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동그란 점을 그렸는데, 여동생 수잔느가 약사 남편과 1914년에 이혼한 것을 상징한 것이라면서 “지성적인 개념을 나타내기 위한 시각적인 개념의 일그러뜨림이었다”고 했다.
뒤샹이 발견한 또 다른 레디 메이드는 병을 말리는 데 사용하는 <병걸이>로서, 이 경우 시각적 일그러뜨림과는 무관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포도주병을 거듭 사용하는데 이와 같은 병걸이에 포도주병을 말린 후 그 빈 병을 포도주 상점에 가지고 가 포도주를 채운다.
그는 상점에서 병걸이를 구입했지만 포도주병을 말리는 데 사용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내가 병걸이를 구입한 것은 레디 메이드 조각이란 생각 때문이었다”고 그는 2년 후 수잔느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하지만 병걸이는 그의 작업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 레디 메이드 조각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된 적은 없었다.
그는 1914년에 여전히 <큰 유리>에 몰두하면서 2월에 <초콜릿 분쇄기 No.2>를 그렸는데, 한 해 전에 그린 <초콜릿 분쇄기 No.1>에 비하면 더욱 기계적인 드로잉이었다.
1912년 가을 황금 섹션 전시회 이후 그는 새 그림을 발표하지 않았다.
<정지들의 네트워크>와 더불어 그가 초콜릿 분쇄기 드로잉을 작품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