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정지들의 네트워크> 

 

뒤샹은 1913년 봄 피카비아를 자주 만나며 뉠리의 작업실에서 <큰 유리>를 위한 습작에 몰두했다.
10월에는 작업실을 몽마르트에서 멀리 떨어진 상 히폴리트로 옮겼다.
그 동네에는 레이몽 두무세와 그 밖의 친구들이 거주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미국 작가 스타인과 교류했다.
스타인은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뒤샹은 영국 청년처럼 보이는 젊은이인데, 사차원에 관해 아주 열심히 말하더군”이라고 적었다.
이 시기 뒤샹의 정신은 매우 복잡했다.
1913년에 쓴 노트에는 “사람이 미술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무엇이라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거기에는 기교, 훈련, 의도 등 정신적인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 그는 “미술에 있어서 전통적인 표현방법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다.
그는 <세 기본 정지들>을 제작한 후 이 작품에 대해 “나의 미래에 있어서 주요 요인이 되었다”면서 “그것은 중요한 미술품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로 하여금 전통적인 표현방법으로부터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세 기본 정지들>은 과거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한 첫 번째 행위였다”고 했다.

그는 1914년에 현재 뉴욕의 모마에 소장되어 있는 <정지들의 네트워크>를 그렸다.
그는 1914년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우연을 좀 더 조직적으로 사용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 그림에서 그가 우연을 사용했음을 본다.
그가 우연의 요소를 사용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는 우연을 아주 개인적인 것으로 여겼고, “너의 우연은 나의 우연과 같지 않지 않느냐? 내가 던진 주사위와 네가 던진 주사위는 같지 않다. 그래서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는 너의 잠재의식을 표현하는 데 매우 적절한 방법이 된다”고 했다.
그의 입에서 잠재의식이란 말이 나온 것이 주목되는데, 1900년에 출판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몽』은 지성인들에게 잠재의식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다.
프로이트는 오랫동안 갇혀 있던 세계의 자물쇠를 풀었으며, 그에 의해서 잠재의식의 세계는 또 다른 실제의 세계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상 히폴리트로 작업실을 옮긴 후 1913년 가을 뒤샹은 자전거 앞바퀴를 부엌에서 사용하는 등받이 없이 걸터앉는 원형의자 위에 거꾸로 세워 조립했다. 평론가들은 그것을 20세기의 첫 ‘레디 메이드ready made’ 작품이라고 했고, 또는 움직이는 첫 조각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뒤샹은 평론가들이 말한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제작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그렇게 제작하고 싶어서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는 자전거 바퀴는 “즐거움처럼 그저 나타난 것”이라면서 “당신이 불이나 연필깎기를 가진 것처럼 불필요한 것이 내 방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운동을 주는 즐거운 부속품이다”라고 했다.
자전거 바퀴를 앞으로 혹은 뒤로 밀면 바퀴살은 보이지 않지만 바퀴가 천천히 돌면서 바퀴살이 불분명하게 보이다가 결국 분명해진다.
그는 <자전거 바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제작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사용하려고 제작한 것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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